행군도상에서 있은 일

 

 

행군도상에서 있은 일

                                                      

박  우  섭               

 

《항일유격대는 인민들을 항상 자기 혈육처럼 사랑하고 존경하며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민들의 생명, 재산을 목숨으로 보호해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날이나 오늘이나 우리들이 이러한 군중관점에 확고히 서서 혁명과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할것을 간곡히 가르치고계신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마다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이 떠오른다.

1943년 7월, 우리 소부대성원들이 지휘부로부터 홀루문일대에서 활동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목적지를 향해 행군할 때에 있은 일이다.

홀루문을 약 80리 앞둔 지점에서 휴식한 우리는 날이 밝기 전에 홀루문에 다달을것을 목표로 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깊어가면서 더욱 세차게 퍼부었다. 개인용천막들을 비옷삼아 쓰기는 했으나 얼마 못가서 의복도 휴대품도 물투성이가 되여버렸다.

초저녁에는 어슴푸레하게나마 지형, 지물을 알아볼수 있었으나 밤이 깊어지자 아름드리나무도 바위도 먹물속에 잠긴듯 그 형태마저 분간할수 없었다. 한치의 앞도 내다볼수 없는 깊은 수림속을 한발자국한발자국 더듬다나니 힘은 곱절 들고 좀처럼 속도를 낼수 없었다.

높은 령을 가까스로 넘어섰으나 우리는 더 갈수 없었다. 가둑나무밭을 벗어나자 앞에는 험한 낭떠러지가 나타나고 깊은 골짜기에서는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두운 산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지형을 알수 없었던 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는 가둑나무밭에 되돌아가서 천막을 치고 날밝기를 기다렸다. 창살같이 내리는 비는 잠시도 멎지 않았으며 산밑으로 흐르는 강물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할 험준한 길을 생각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자 떠날 차비를 하면서 우리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진흙물이 강기슭의 둔덕을 차넘어 온 골짜기가 미여질듯 넘쳐 흐르고있었다.

범람한 강물은 돌을 굴리고 아름드리나무를 뿌리채 뽑아 밀어내리고있었다.

앞길을 살피기 위하여 앞으로 삐죽이 내민 릉선에 내려가보니 얼마간 떨어진 강하류쪽에는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폭포가 있었다.

거세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우리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인민들이 피땀으로 가꾸어온 곡식들이며 가장집물들과 집짐승들이 격랑을 일으키는 물결에 휩싸여 계속 떠내려오고있었다.

어느 마을이 결딴났을가?

우리의 눈앞에는 집과 가장집물들을 잃고 거처할 곳 없이 헤매는 뭇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구원을 바라는 애타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런 안타까운 생각에 잠겨있을 때 몇걸음앞서 강기슭에 내려섰던 리동무가 다급히 웨쳤다.

《사람이 떠내려온다.》

우리는 그가 있는 강기슭으로 달려갔다. 과연 굵다란 나무토막을 잡고 웬 사람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오고있었다.

리동무는 《저걸, 저걸 어쩌나.》하며 강기슭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돌아갔다. 헤염칠줄 몰랐던 그는 당황해하며 나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애처로운 비명이 사나운 물소리에 섞이여 들려왔다.

(어떻게 할것인가?)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에 사로잡힌채 떠내려오는 사람을 주시하고있었다.

차츰 가까이 떠내려오는것을 보니 그는 중국로인이였다.

람루한 옷을 걸친것이라든가 머리채를 땋아올린것으로 보아 우리가 산중에서 흔히 보아온 그러한 로인이였다.

그냥둔다면…아니다… 그럴수 없다.

죽음의 위험을 눈앞에 둔 로인을 바라보는 나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번뜩였다.

나는 더 생각할새 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에 뛰여들었다.

이 순간 다른 동무들도 옷을 벗고 뛰여들었다. 나는 헤염칠줄 모르는 그 동무들을 가까스로 만류하여 강기슭에 밀어올렸다.

《동무들은 여기 있소. 나 혼자라도 문제없으니… 념려마오.》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더 힘있게 헤염을 쳐서 로인에게로 빨리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산골짜기에서 쏟아지듯 내려미는 거센 물결은 나의 몸을 사정없이 아래로만 마구 밀어버리는것이였다.

그런데다가 흘러내리는 나무단들이며 검불들이 나의 머리우에 덮씌워지는 바람에 행동하기가 더욱 곤난했다. 나는 몇번인가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솟아나군 했다.

이러는 사이에 벌써 로인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갔다.

강물이 폭포로 떨어지는 지점까지 미치기전에 로인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헤염쳐갔다. 그리하여 겨우 로인이 매달린 굵은 나무토막을 따라잡을수 있었으나 이미 그때 로인은 거의 의식을 잃고있었다.

《나무를 놓고 나를 붙잡으시오.》하고 내가 큰소리를 쳤으나 로인은 삭정이같이 마른 팔로 나무토막을 꽉 그러안은채 그대로 떠내려갈뿐이였다.

깊은 주름살이 간 로인의 여윈 얼굴을 본 순간 나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로인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힘이 부쩍 솟아나는것 같았다.

나는 한손으로 그의 팔을 쥐여당기였다. 로인이 어찌나 나무토막을 단단히 그러안았는지 아무리 당겨도 꼼짝하지 않았다. 나무토막을 그러안은 로인을 강가로 밀어내자니 너무나도 힘에 겨웠다.

나는 나무토막을 그러안은 로인의 팔을 푸느라고 한동안 애를 썼다.

이러는 동안에 나는 또 몇번이나 물속에 잠겼고 그때마다 물을 삼키였다. 이렇게 되자 나는 자신으로서도 차츰 힘이 진해지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든것을 단번에 삼킬듯이 쏟아지는 폭포는 점점 더 가까와지고있었다.

긴장된 순간, 나는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다.

나무토막에서 겨우 로인을 떼내였을 때 그는 발작적으로 나무토막대신 나의 허리를 꽉 그러안았다. 그바람에 나는 다리도 팔도 마음대로 놀릴수 없게 되였다.

오직 무엇이든 붙들어야 산다는 생각만 품고있었던 로인은 두팔로 점점 더 억세게 나를 그러안을뿐이였다.

나는 그냥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어깨를 잡으시오, 어깨를 붙잡으시오.》

몇번이나 웨쳤으나 로인은 물만 삼킬뿐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겨우 로인의 손에서 벗어난 나는 이번엔 한팔로 로인을 부축하고 한팔로는 물을 가르며 헤염쳐나갔다.

나는 얼마만에야 겨우 물살이 센 강복판을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팔다리의 힘이 풀리고 가슴도 몹시 답답해지는것을 나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강기슭의 동무들이 《우섭이, …우섭동무.》하고 부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이때 동무들은 헤염칠줄 모르나 서로들 팔을 잡아가며 강물이 가슴을 치는 곳까지 들어와 손을 내밀고있었다.

나는 다시금 기운을 내며 헤염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이 있는 곳까지는 불과 10m 안팎이였다.

내가 있는 힘을 다하여 깊은 곳을 벗어나 마지막힘을 모아 로인을 떠밀었을 때 동무들이 로인의 팔을 끌어당기였다. 로인은 구원되였다.

나의 마음은 몹시 기뻤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힘이 풀려 몸을 가늠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물에 밀려 떠내려갔다.

이윽고 나는 동무들이 내여민 장대를 잡은 생각뿐 그후 어떻게 강언덕까지 올라왔는지 몰랐다.

얼마후에 정신을 차리게 된 나는 우선 로인부터 살펴보았다.

동무들은 이미 로인을 엎드려놓고 물을 토하게 하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중이였다.

내리던 비가 멎고 개인 동녘하늘에서는 아침해살이 비치였다.

해빛을 받은 로인의 얼굴에는 차차 화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는 우리는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우리는 로인의 젖은 옷을 벗기고 물을 쥐여짰다.

로인은 이때야 막혔던 숨을 몰아쉬더니 눈을 떴다.

이때 나는 진정 나의 아버지를 다시 대하는것 같은 기쁨을 느끼였다.

로인은 정기도는 시선으로 우리의 옷차림이며 기뻐하는 얼굴들을 살펴보더니 《당신들은 누구시오.》하고 물었다.

《로인님,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유격대입니다.》

로인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넘친 얼굴로 우리의 차림새를 찬찬히 살피더니 《유격대라니요? 왜놈들과 싸우는 혁명군말인가요?》라고 묻는것이였다.

《그렇습니다. 어서 이걸 좀 잡수시오.》우리는 미시가루를 물에 풀어 로인의 입에 떠넣었다.

그러나 로인은 그것을 받아넘길 생각은 않고 우리를 다시 쳐다보았다. 로인의 얼굴에는 눈물이 줄지어 흘렀다.

《당신들이 나를 구원해주었구려… 고맙소. 고맙소. 이 은혜를 어떻게 갚겠소.》

그는 부풀어오르는 감격을 참지 못하여 거치른 손으로 우리의 손을 번갈아 잡는것이였다.

로인은 다시 맥없이 눈을 감았다. 그의 두눈에서는 그칠사이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그동안 불을 피워 그의 옷과 신발을 말리워놓고 떠날 차비를 하였다.

로인은 다시 눈을 뜨고 푸른 하늘을 한참동안 묵묵히 바라보다가 《참, 반갑소. 꼭 내 아들을 만난것 같소다. 아들을… 내 아들도 당신들처럼 손에 총을 잡고 일본놈들과 싸운다오. 팔로군에서 말이우, 어찌 당신들을 내 아들이라 부르지 않을수 있겠소…》라고 나직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하였다. 이윽고 그는 간신히 일어나앉아서 자기의 래력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로인의 성은 양가였다.

로인은 아들이 팔로군에 나간 후 살길을 찾아 홀루문근처의 산속에 들어와 초막을 짓고 살고있었다. 그러다가 왜놈들의 등쌀에 못이겨 며느리와 두 손자를 데리고 이곳에서 얼마쯤 떨어진 《집단부락》에 내려오게 되였다.

집단부락에 내려온 후 그들의 생활은 더욱 말이 아니였다.

생활이 하도 구차하여 며느리와 손자들을 그냥 그곳에 두고 로인은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깊은 산속에 다시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농사를 짓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몹시 내리고 물이 불게 되자 로인은 손자들이 념려되여 그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갔었다.

부락어귀에 다달은 로인은 그만 멈춰서고말았다. 며칠전까지도 총총히 들어앉았던 마을의 집들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밀려가고말았다.

모두 어데로 갔단말인가?

로인은 자기 손자와 며느리를 부르고 또 부르며 헤매다가 어느 한 지붕에 올라탔다. 이때 갑자기 밀려든 홍수가 집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로인은 집과 함께 무서운 물살에 휩쓸렸던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나서 로인은 《…이 일을 어쩌면 좋소. 내 혼자 살아선 무얼하오.》하며 목놓아 우는것이였다.

가족을 잃고 집도, 먹을것도, 입을것도 없이 알몸만 남은 이 로인을 우리는 무슨 말로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우리는 속히 떠나야 했으나 그 로인과 헤여질수 없었다.

우리는 양로인과 함께 그가 살던 산속의 초막으로 가기로 했다. 날이 저물어서야 우리는 초막에 도착하였다. 마침 그곳은 우리가 가야 할 홀루문에서 약 60리쯤 떨어진 지점이였다.

산골인 여기에는 로인이 거처하는 한채의 초막이 있을뿐 인가라고는 없었다.

우리는 우선 로인의 집을 수리해주었다. 비에 허물어진 담벽도 바르고 비가 샌 지붕도 손질하면서 그의 살림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돈을 주어 가장집물들과 먹을것을 장만케 했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사유를 알게 되자 로인은 기뻐하며 말했다.

《반갑소. 몸은 늙었지만 마음만은 단단하오. 무슨 일이든 내 힘껏 도와드리겠소.》

양로인은 우리에게 그 지대의 지리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었으며 우리의 정찰공작을 돕기 위하여 《수박장사》로 가장하고 적병영으로도 여러차례 드나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적의 군사시설과 적군의 배치정형 등에 대해서 알려주었을뿐만아니라 철도부설공사장에서도 일하면서 공작을 수행하였다.

우리는 양로인의 지극한 방조를 받으면서 소조활동을 계속하였다.

다음해에도 우리는 양로인의 도움을 받아 맡은 공작을 승리적으로 완수하였는데 양로인은 자기의 모든 노력과 지혜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방조해주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유격대는 언제나 인민의 생명, 재산을 목숨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뜻대로 살며 싸웠기때문에 어느곳에서나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일제와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를 이룩할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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