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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의 가르침을 받들어
윤 태 홍
한사람을 고쳐서 열사람을 바로잡아주고 백사람, 천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우리 편에 서게 하는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사업방법이며 진실한 태도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상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그러기에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대원들은 헤아릴수 없는 간난신고속에서도 각계각층 군중들을 훌륭히 교양개조하여 항일투쟁에로 힘차게 이끌어나갔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나어린 김택만동무를 잊지 못하고있다. 1937년 여름, 그가 사령관동지의 지시를 받고 남만지방에 파견되여 공작하게 된 부대(나도 이 부대에 있었다)에는 구국군에서 편입된 병사들과 신입대원들이 많았다. 그들중 《장돼지》라고 부르는 구국군출신 병사와 그의 동료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도 이미부터 《무장을 잡고 일제와 싸웠다.》고 하면서 새로 입대한 동무들을 《햇내기》라고 얕잡아보려 했고 자기들이 《선배》라고 하면서 여러가지로 문란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다. 김택만동무는 조직으로부터 《장돼지》와 그의 몇몇 동료들을 교양개조할데 대한 임무를 받게 되였다. 1937년 9월이였다. 우리 부대는 남만의 휘남현성을 공격하게 되였다. 이때 우리를 따라나선 구국군출신 병사들은 일제정규군과 싸워본 경험이 없는데로부터 승리의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 행군도중 대렬에서 리탈하려고 하였다. 또한 《장돼지》를 비롯한 일부 구국군출신 병사들은 밤길을 걸어보지 못했으니 낮에 행군하자고 하면서 행군도중에 애를 먹였다. 택만동무는 휘남현성의 적을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야간행군을 함으로써만 쥐도 새도 모르게 적들에게 불의타격을 가하여 전투승리를 보장할수 있다는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 그들의 짐도 져다주고 어떻게 하여서든지 그들에게 신심을 안겨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장돼지》와 그의 동료들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나중에 그들은 밤길을 걷기 어렵다고 하며 대렬에서 떨어져 길가에 눕고말았다. 택만동무는 할수없이 몇몇 동무들과 함께 담가를 만들어 거기에 《장돼지》를 앉혔다. 하루밤사이에 100리길을 달려가서 휘남현성을 공격하고 날밝기전에 되돌아서야 하는만큼 기본대오의 행군속도는 비상히 빨랐다. 택만동무는 어린 몸으로 《장돼지》를 담가에 앉혀가지고도 빨리 달리는 대오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진노력을 해야 하였다. 그는 오직 《장돼지》를 감화시켜서 다른 구국군출신 병사들까지 교양하려는 생각으로 모든것을 참고 인내성있게 달라붙었다. 이날 전투는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적들을 무찌르고 수많은 무기와 식량, 피복, 약품 등을 로획한 우리 부대는 정회향이라는 곳에 철수하여 휴식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날 《장돼지》와 그외의 구국군출신 병사들은 로획한 물품들을 운반해내오면서 자기들의 마음대로 전리품들을 뽑아가졌고 전체 동무들의 겨울나이용으로 계획한 내의들도 2~3벌씩 껴입었거나 배낭속에 감추어넣었다. 이렇게 되자 대원들 특히 신입대원들속에서는 《장돼지》를 비롯한 구국군출신 병사들의 소행에 대하여 격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실 당시 신입대원들은 내의라고 변변히 입고있는 동무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택만동무는 자기가 이미부터 입고있던 내의를 벗었다. 《…새것은 아니지만 우선 이거라도 입고 지내다가 다음에 더 좋은것을 구하기요.》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내의를 신입대원 한동무에게 주었다. 택만동무뿐만아니라 다른 많은 구대원들도 자기 내의를 신입대원들에게 벗어주고 초겨울 추운 새벽에 홑옷을 입고나섰다. 이 사실은 갓 입대한 동무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구국군에서 넘어온 병사들속에서도 각성되기 시작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였다. 그런데 《장돼지》와 그외의 몇몇 구국군출신 병사들만은 자기들의 결함을 뉘우치려 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장돼지》와 그의 몇몇 동료들은 자기들이 신입대원들보다 응당 《선배》로서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하였고 신입대원들을 계속 얕보려 했다. 택만동무에게도 이것저것 요구하는것이 많았다. 택만동무는 먹을것을 못먹고 잠을 못자면서도 참고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해결해주기에 성의를 다했다. 그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침울해있을 때는 불편한것이 있는가, 무엇이 요구되는가고 자진하여 물어도 보았다. 그러면서 택만동무는 그들이 진정으로 일제를 반대해 싸우는 항일구국의 참된 목적과 혁명군의 품성을 깨닫도록 꾸준히 해설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부 신입대원들은 《나어린 동무가 그렇게 침식을 잊고 애를 쓰다가 몸이 견디여내겠소. 지나치게 어루만지다가는 나중에 그들에게 밥까지 떠먹여주게 되겠소.》라고 하면서 《장돼지》와 그의 동료들의 행동에 대하여 분개해하며 택만동무를 충고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택만동무는 《한사람을 고쳐서 열사람을 바로잡아주고 백사람, 천사람에게 영향을 주라고 사령관동지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았소.》하고 오히려 그들을 설복하군 하였다. 그후 택만동무가 속한 분대원들이 휴식을 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택만동무는 지휘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숙소안에서 떠들썩하니 고아대는 소리를 들었다. 달려가 본즉 다름아닌 《장돼지》를 둘러싸고 여러 대원들이 한편이 되여 그를 몰아세우고있었다. 그중에는 총을 쥐고 내휘두르는 동무도 있었다. 금시에 무슨 변이 생길것 같은 심상치 않은 광경이였다. 택만동무는 침착하게 그들사이를 가르고 들어가서 우선 총을 쥐고 서있는 동무부터 막아섰다. 총을 쥔 청년은 휘남현성전투 당시에 입대한 리동무였다. 그는 입대한 첫날부터 택만동무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가 하는 일을 적극 도와온 동무였다. 이러한 그가 《장돼지》의 행동에 더는 참을수 없어서 누구보다도 그를 몰아세우는 앞장에 섰던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사연인즉 다음과 같았다. 택만동무가 지휘부에 간 사이에 《장돼지》와 그의 동료들은 취침시간이 되여 다른 동무들이 모두 자리에 누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지 않고 떠들어댔다는것이다. 그래서 리동무가 그들에게 《잡시다.》하고 조용히 타일렀다. 《장돼지》는 이 말을 못마땅히 여겨 자리에서 일어나 《햇내기가 재수없이 군다.》고 하며 대뜸 총을 집어들고 장탄을 하는것이였다. 리동무로서는 너무도 뜻밖이였다. 사실 《스이죠》(잡시다) 하고 친절히 타이른 말은 그들이 구국군에 있을 때 《죽는다》는 뜻으로 통용되여왔던것이다. 알고보니 리동무로서는 참으로 맹랑한 일이였다. 그는 가까스로 《장돼지》에게 량해를 구했다. 그러자 《장돼지》는 더욱 우쭐해서 《그냥은 용서할수 없어. 재수없는 말을 들었으니까… 어떻든 나는 하늘에라도 대고 총 3방을 쏘아서 재앙을 풀어야겠다.》고 하며 기어이 총을 쏘려는것이였다. 이 역시 구국군부대에 있을 때 하던 횡포한 습성의 하나였다. 리동무뿐만아니라 다른 동무들도 그를 타일렀다. 《밤중에 총소리를 내면 혹 부근에 싸다니는 적들에게 우리의 위치가 폭로될수도 있고 또 지휘부에서라도 총소리를 들으면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해서 근심할게 아닌가. 그러니 다시한번 더 생각해보오.》 그러나 《장돼지》는 막무가내로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총 3발을 쏘지 못하게 하겠으면 마당에 나가서 절을 백번 하라.》고 하는것이였다. 추운 겨울 눈보라가 산을 뒤흔드는듯 한 동북 험산중에서 무엇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가. 방안의 다른 사람들뿐만아니라 리동무도 그이상 더는 《장돼지》의 행동을 보고 참을수 없었다. 택만동무가 지나치게 어루만져온탓이라고도 생각하게 된 리동무는 《장돼지》의 총을 빼앗았고 그를 단단히 한번 혼을 내자고 닦아세우던 참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료해한 택만동무는 곁에 있는 리동무와 방안에 있는 다른 동무들을 먼저 타일렀다. 그는 우리가 혁명을 위하여 적과 싸우고있다는것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적과 싸우는 군인일뿐만아니라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이끌어주고 하나의 목적에로 단합시키는 교양자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때 어떤 곳에서나 항상 혁명을 위하여 사소한 일에 흥분하지 말고 개별적사람들의 습성까지 잘 알고 신중히 대하면서 침착하게 사업해야 한다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방안은 조용해졌다. 택만동무는 《장돼지》의 요구대로 자기가 대신하여 그의 《재앙을 풀어주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되자 여러 병사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입대원들은 물론이고 구국군출신 병사들도 밖으로 달려나와 택만동무를 붙잡고 만류하였다. 그들의 간청에 못이겨 방안에 들어온 택만동무는 《장돼지》곁에 앉았다. 《장돼지》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조용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가 어째서 그렇듯 무지몽매한 인간으로 자라게 되였으며 왜 남들이 그를 류달리 대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는가를 택만동무는 자기 일처럼 가슴아프게 생각하면서 일깨워주었다. 《장돼지》가 세상에 태여나서 이때까지 걸어온 길은 실로 눈물겨운 행로였다. 《장돼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지주놈의 집에서 머슴살이로 뼈가 굵은 사람이였다. 지주와 지주녀편네는 자기들이 먹다남은 찌꺼기를 주면서도 그것이 아까와서 늘 《돼지처럼 처먹는다.》고 그를 욕했다. 보통때도 지주와 그 녀편네는 그를 《장돼지》라고 불렀다. 그것이 그대로 그의 이름처럼 되여버렸고 구국군에 들어왔을 때에도 함께 온 동료들이 그렇게 불렀던것이다. 세상에 나서 한번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그가 어째서 지금까지 동지들의 따뜻한 사랑을 꼬집어 병으로 만들며 홀로 뒤틀린 심정으로 살아가는가를 잘 알고있는 택만동무는 진심으로 그를 타이르고 누구보다도 그를 동정하였다. 부모의 사랑도, 형제간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하고 오직 참을수 없는 학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살아온 그에게 동지들의 따뜻한 사랑을 안겨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택만동무는 우선 그에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부르게 하고 글을 가르쳐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집저집 떠다니면서 누구에게 이름 한번 불리워본 일이 없었던탓으로 자기의 이름을 모르고있었다. 《그저 나는 장가야요. 모두 그렇게 불렀을뿐인걸요.》 택만동무의 진정에 감동된 그는 말없이 먼산만 바라보고있었다. 가슴아픈 자기의 지난날을 새삼스럽게 돌이켜보는듯 그의 량볼에는 눈물이 흘렀다. 《아무려면 이름이야 없었겠소만 들은적이 없으니…》 개에게도 이름이 있고 돌과 나무도 제가 놓일 자리가 있는데 험한 세상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렇듯 제이름도 알지 못할만큼 버림을 당하여왔을가.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기 끝이 없는 일이였다. 이것이 누구의 탓인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 장본인은 바로 남의 피땀을 짜내고 순박한 인민을 무지와 몽매, 암흑의 구렁창에 넣어 자기들의 노예로 만드는 지주, 자본가와 침략자들이란것을 그에게 똑똑히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택만동무는 생각하였다. 그자신이 이렇게 된것이 바로 이 사회제도라는것을, 하루속히 원쑤가 누구이며 누구를 증오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며 그로 하여금 적들을 쳐부시게 해야 한다. 《이제라도 그저 아무렇게나 수수하게 부르기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주구려. 〈돼지〉란 말만 면해주면 내야 뭐… 워낙 무식해서 어디 제이름이나 지을줄 알아야죠.》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전에없이 감격어린 흥분된 빛이 떠올랐다. 《어째 동무의 이름을 생각나는대로 지어 부르겠소》하고 택만동무는 그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조선의 부모들은 누구나 자식을 낳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소. 내 생각 같아서는 동무의 부모도 우리의 부모들처럼 그랬을것이요. 지금 동무의 이름을 알려줄 부모는 여기 없으나 우리모두가 다같이 혁명을 위하여 싸우는 훌륭한 형제들이 아니요. 부모를 대신하여 우리 형제들이 의논하여 동무의 훌륭한 이름을 지어보기요.… 택만동무는 분대의 동무들을 다 모이게 했다. 분대원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저마다 하나씩 지어보았고 마침내는 원래 부모들의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장승원이라고 짓기로 하였다. 이름을 짓고나서 택만동무는 정숙히 말하였다. 《이 시각부터는 〈돼지〉라는 사람은 없소. 장승원이란 동무가 있을뿐이요. 장승원동무.》하고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장승원의 뺨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그칠사이없이 흘렀다. 이 사실은 이튿날부터 부대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그만큼 그는 자기 기쁨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했던것이다. 《택만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는 그를 선생님처럼 대해야겠소. 아는것도 많지만… 내가 그렇게 못된짓을 했는데두 도무지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이 대해주는데서 돌덩이같은 나에게서도 눈물이 나왔소.》 이 말은 다른 구국군출신 병사들에게 보다 새로운 감명을 안겨주었다. 장승원은 점점 각성되여갔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직도 많은 결함이 남아있었다. 택만동무는 계속 인내성있는 교양과 함께 실지 투쟁을 통하여 그에게 모범을 보였다. 그후 어느날이였다. 로약자들과 부상당한 동무들을 호송하면서 림강현 바위산골짜기를 지나던 우리의 일부 동무들은 갑자기 적과 조우하게 되였다. 나타난 적들은 120여명의 악질적인 일본《헌병순찰대》놈들이였다. 그런데 당시 그곳에 있는 아군의 력량은 로약자들과 부상자들을 제외하고는 불과 17명뿐이였다. 게다가 적들은 눈보라가 휩쓸어내리는 벼랑턱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란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우리는 우선 벼랑밑으로 바싹 다가붙어서 침착하게 적정을 살폈다. 이때 택만동무곁으로 기여온 장승원은 뜻밖에도 《불리한 조건에서 싸울것이 아니라 눈보라를 리용하여 퇴각하자.》고 하였다. 《로약자들과 부상자들을 데리고 포위를 뚫자는 말인가.》하고 되묻는 택만동무는 이 사람이 아직도 자기 립장을 깨닫지 못하고 적들을 무서워한다는것을 생각하였다. (그에게 일본놈들보다 우리의 위력이 비할바없이 강하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자.) 우리 동무들은 이윽고 두조로 나뉘여 적의 기관총이 불을 토하는 벼랑턱을 향하여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머리를 들면 적탄이 귀전을 스칠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절벽에 몸을 붙이면 무너져내리는 눈이 계속 뒤덮여서 기여오르기가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택만동무는 찬눈속에 몸을 묻어가며 적들의 턱밑을 치받을듯이 계속 기여올랐다. 이렇게 얼마동안 어려운 투쟁이 계속되였다. 이윽고 적들의 기관총 총구가 바로 손에 닿을듯이 머리우에서 불을 뿜고있는것이 보였다. 이럴 때였다. 택만동무의 발아래쪽에서 《로진(김동무), 조심하오.》하는 장승원의 말소리가 들렸다. 순간 택만동무는 그가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내 걱정은 말고 우리가 싸우는것을 똑똑히 보아라. 왜놈들이 어떻게 거꾸러지는가를.) 벼랑우에 기여오른 택만동무는 기관총에 매여달려 발광하는 왜놈들에게 싸창을 겨누고 갑자기 벽력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아, 꼼짝 말라.》 왜놈의 기관총 사수에게도, 부사수에게도 미처 몸을 돌릴틈을 주지 않고 뛰여든 택만동무는 기관총을 힘껏 잡아채며 적 두놈을 쏘아눕혔다. 장승원도 다른 대원들에 못지 않게 적들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성난 사자마냥 돌격하고있는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원쑤가 어떤놈인가를 알게 되고 그 원쑤를 향하여 그처럼 용감하게 싸우는 장승원을 바라보는 택만동무의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어 꾸준히 애쓴 그의 노력에 의하여 이렇듯 또 한사람의 훌륭한 유격대원이 자라났던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