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을 느낄수록 과거를 잊지 말자!

 

 

오늘의 행복을 느낄수록 과거를 잊지 말자!

                                                      

리  오  성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나 모멸에 찬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희망에 넘쳐 씩씩하게 자라나는 우리의 어린 세대들을 볼 때마다 《너희들은 참말로 행복하구나.》하고 매번 감격하고 흥분하군 한다.

언제인가 한번은 이야기책을 읽고있던 어린아이한테서 짚신이란 어떻게 생긴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었다.

이것은 사실 너무나도 순진하다고 할만 한 질문이였다. 그러나 나는 내 얼굴을 쳐다보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짚신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 어린 세대들의 행복을 가슴뜨겁게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자신이 직접 체험한 착취제도의 본질에 대하여, 지주나 일본제국주의자들이란 과연 어떤 놈들인가에 대하여 알려주어야겠다는 부모로서의 높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짚신에 대해 설명해주고나서 내가 9살때에 겪었던 한 토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9살 났을 때 우리 집은 왕청현 백초구에 있었다.

본래 아버지는 포수였으나 왜놈들의 단속이 심해지고 또 화약을 구할수 없어 이미 사냥총을 당반에 얹어놓은지가 오래였고 온 집안식구들은 주가란 지주놈의 땅뙈기에 얽매여 고역을 당하면서 겨우 끼니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는 9살때부터 등짐으로 나무를 해야 했으며 어머니를 도와 김도 매고 가을도 해야 했다. 그런데 몸에는 그래도 어머니의 헌치마자락으로 만든 홑잠뱅이라도 걸쳤지만 신발이 없는것이 제일 난처하였다.

나는 아직 짚신을 삼을줄 몰랐고 아버지는 생활이 구차하여 돈벌이를 한다면서 줄창 어덴가 가군 하였기때문에 짚신조차 제대로 신어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발은 트다 못해 마지막엔 쪼개져서 피까지 흘러내렸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녘에 나는 마른 삭정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그만 뾰족한 나무 그루터기에 발바닥을 찔리였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샘솟듯 나왔다. 하나밖에 없는 홑잠뱅이에다가 온통 피칠을 한 후에야 나는 간신히 피를 멈출수 있었다.

그렇지만 상처입은 발로 대낮에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어머니가 이 발을 보면 얼마나 가슴아파할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산에서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가 어두워서야 집으로 내려왔다.

고콜불이 가물거리는 방구석에서 저녁을 먹을 때도 나는 상한 발을 될수 있는대로 감추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절룩거리는것을 보고 벌써 다 알고있었다.

밥숟가락을 놓자 나를 등불밑으로 부른 아버지는 《웬 피냐? 발을 어디서 상했니.》하고 물었다.

《일없어요. 아프지 않아요.》하면서 나는 발을 잔뜩 까드리고 굳이 안보이려고 고집을 썼다. 그러자 아버지는 잡았던 나의 발을 밀어놓으며 침통한 어조로 《맨발로 다니니 그럴수밖에 있니, 원 이 고약한 놈의 세상이 언제 가야 망할려누.》하고 땅이 꺼질듯이 깊은 한숨을 쉬였다.

그리고나서 아버지는 집에서 나가는것이였다. 아버지는 며칠이 지나서야 밤중에 돌아왔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찌기 아버지는 나를 깨우면서 말하는것이였다.

《얘 오송아. 차빌했다가 오늘은 꿩사냥을 가자, 꿩을 잡으면 다른것을 못사도 네 고무신부터 사주마.》

그제서야 나는 아버지가 고무신을 사주려고 산탄을 얻으러 어딘가 먼곳에 갔다왔다는것을 알았다.

일찌기 조반을 먹고 우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사냥개가 없어서 사냥하기가 퍽 어려웠다.

총알에 정통으로 맞은 놈은 그 자리에 픽 하고 떨어지지만 빗맞은 놈은 어떻게나 재빨리 기여 가시덤불속으로 빠져나가는지 좀처럼 찾아낼수가 없었다. 어지간히 날래게 뒤쫓아가지 않고서는 놓쳐버리는수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숨이 턱에 닿아서 달려가고 달려오고 하였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려 옷은 물주머니처럼 되고 채 아물지 않은 발의 상처가 뜨끔거리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 모든것에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너무나 덤벼치는 바람에 그만 나는 나무그루터기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졌다. 뿍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핑 돌았다.

꿩을 놓칠가봐 바삐 일어서려고 하는데 어쩐지 다리가 몹시 아픈것을 느끼였다. 바지가 째져서 살이 드러난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나는 너덜너덜한 바지가랭이를 마저 째서 무릎에다 감았다.

《어디 상하지 않았니?》하고 아버지가 덤불너머에서 소리쳤다. 사실 이때 나는 상처가 너무나 아파서 대답할 경황도 없었지만 큰 목소리로 《일없어요.》하고 대답했다.

내가 상한걸 알면 아버지는 분명히 언짢아 할것이고 사냥을 그만두자고 하겠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래서 나는 절룩거리는것을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전보다 더 빨리 뛰기도 하고 기기도 하였다.

나무가지가 후려치는줄도, 얼굴과 손등이 가시덤불에 긁히여 째여지는줄도 몰랐다. 이리하여 이날 우리는 10마리나 되는 장끼와 까투리를 잡았다.

《이만하면 네 고무신도 사고 네 동생것도 사줄수 있겠다.》하면서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는것이였다.

나는 볼수록 탐스러운 꿩을 쓰다듬어도 보고 장끼의 예쁘게 생긴 꽁지를 만져도 보았다. 나는 자랑삼아 꿩을 직접 내손으로 들고가고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졸라서 5마리씩 나누어들고 집으로 향하였다.

노을이 붉게 타는 저녁무렵이였다.

나는 흥이 나서 점심망태를 둘러메고 아버지앞에서 뛰고 까불고 하였다. 아버지도 기분이 매우 좋아서인지 내가 아무리 까불어대도 꾸짖지 않았다. 나는 이제 며칠밤만 자면 새까만 고무신을 신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당장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얼마나 기뻐하랴. 비록 10마리의 꿩은 불과 몇푼어치밖에 안되지만 그것은 가난에 짓눌리고있는 우리 한가정에 잠시나마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크나큰 밑천이였던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마을어귀에 들어섰을 때였다.

멀리서 팔자걸음으로 마주오는 웬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지방의 지주인 주가놈이였다.

늘 호통을 치고 거드름을 피우는 그놈을 얄밉게 보아오던터이라 나는 보란듯이 그놈의 앞으로 꿩묶음을 일부러 내휘두르며 지나갔다.

《다녀오십니까.》하고 인사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돌아다보니 주가놈은 입을 헤 벌리고 서서 꿩을 탐스럽게 바라보고있었다.

《거, 참 수고했네, 그만하면 우리 집에서 가져간 빛의 리자는 됨직하이. 그 꿩을 팔아서 돈으로 빚을 갚으려고 공품 팔게 있나, 그대로 우리 집에 가져가게나.》

전에 없던 상냥한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묵묵히 서서 입을 옥문채 주가놈의 얄미운 상판대기만을 쏘아보았다.

《전번에 리자라도 빨리 갖다 물라지 않던가. 덮어놓고 없다고 하더니 거보게나. 이렇게 육신을 놀리면 제때에 물수 있지 않나.》

주가놈이 하는 수작이였다.

나는 이때 잘못하다가는 꿩을 통채로 빼앗길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놈을 막 때려주고싶었다.

나는 더 참을수가 없어 잠자코 서있는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꿩묶음을 나꾸어채 가지고 뒤걸음질을 쳤다.

《허, 그 녀석. 맹랑한 놈인데…》

이렇게 뇌까리며 주가놈은 나에게 독이 오른 눈총을 쏘더니 다시 아버지를 돌아보며 《꼭 우리 집에 가져가야 하네.》하고 이미 결정된 일이기나 하듯이 다짐을 두고서는 그자리를 떠났다.

점점 멀어져가는 지주놈의 뒤통수를 쏘아보는 아버지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타번지고있었다.

무엇때문에 방금전까지도 꿩을 팔아서 고무신을 사주겠다고 하던 아버지가 그놈한테 못주겠다고 떳떳이 말하지 못했는가?

왜? 무엇때문인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지주네 집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왔을 때 나는 꿩묶음을 한아름에 그러안고 그자리에 주저앉아 앙탈을 썼다. 그러나 꿩묶음을 달라고 말없이 손을 내미는 아버지의 침통한 얼굴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는 그만 더 떼를 쓸 기운이 나지 않았다.

꿩을 가지고 지주의 집으로 들어갔던 아버지는 잠시 후에 빈손으로 그놈의 집에서 나왔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와락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면서 웨쳤다.

《아버지, 뭣때문에 꿩을 줬나요? 왜 그놈은 꿩을 빼앗는거예요?》

아버지는 여전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저 마디져 울퉁불퉁한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의 목덜미에로 뜨거운것이 흘러들었다. 올려다보니 아버지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있었다.

《오송아, 왜 우리가 이렇게 괄세를 받는지 아니? 왜놈들과 지주놈들에게 매워있기때문이란다.》

그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아버지의 이 말은 나의 가슴에 깊이 못박혀져서 몇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때로부터 나는 《왜? 무엇때문에?》하고 세상만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였고 점차 계급적원쑤들에 대하여 불같은 증오를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이 세상에서 온갖 계급적원쑤들을 소멸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애써 일하고 잘살아보자고 발버둥쳐도 결국은 가난과 몽매와 학대밖에 차례질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분연히 일어나 손에 총을 잡고 조국의 해방과 가난한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한 생활을 쟁취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게 된것이다.

그이의 크나큰 품에 안겨서 나는 소년중대원으로부터 유격대원으로 자라났으며 그이의 가르침을 높이 받들고 조국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원쑤들과 싸웠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끝내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너희들은 과거 아버지, 어머니들이 어떻게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살았는가 하는것을 책이나 이야기에서만 듣고 볼수 있는 그런 좋은 세상에서 살고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행복하면 할수록 너희들은 부모들이 겪은 과거에 대해서 똑똑히 알아야 하며 그분들이 어떻게 원쑤들과 견결히 싸웠는가를 알고 그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계급적원쑤를 미워할줄 알고 또 그래야 끝까지 혁명에 충실할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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