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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 어디서나 투쟁을 멈출수 없다
한 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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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9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받고 나는 국내공작을 위하여 두만강을 건너 함북도일대에서 활동하게 되였다. 우리 소조원들의 공작은 순조롭게 진행되였다. 청진지방에서 공작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던 길에 그만 우리들은 두만강기슭에서 원쑤들의 추격을 받게 되였다. 무리로 원쑤들을 쏘아눕히면서 산발을 탔을 때는 벌써 적의 포위속에서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놈들은 산마루와 산밑에서도 우리를 겹겹이 포위하고 욱실거렸다. 우리 대오는 불과 3명이였으나 원쑤들은 몇백명이나 되는지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추격하여오는 적과 싸우다가 두 동무는 희생되였고 나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런데다가 탄알마저 떨어졌다. 상처에서 피가 샘솟듯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멈추어낼 힘조차 없었다. 입술을 옥문채 나는 산마루 어느 비탈진 곳에 쓰러져 그만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나는 청진경찰서의 류치장에 있다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의식을 회복한 날부터 나는 고문실에서 고등계형사놈과 매일같이 맞서게 되였다. 《그래 몇번이나 왔댔는가?》 《어디서 건너왔어?》 징글스럽게 생긴 형사놈은 이런 질문을 몇번이고 반복했으나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드디여 무서운 고문이 시작되였다. 형사놈은 가죽채찍으로 나의 잔등, 어깨,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고통을 참느라고 채찍이 몸에 휘감길 때마다 나는 그것을 세였다. 그런데 60까지 세고는 그이상 더 셀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의식을 잃기를 몇차례나 거듭하였다. 어느날 나는 놈들의 모진 고문에 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자신도 몰랐다. 혼미한 가운데 《너희들의 비밀을 대지 못할테냐?》하고 악에 받쳐 소리치는 형사놈의 목소리에 나는 소스라쳐 정신을 차렸다. 《비밀》이라는 이 한마디가 나의 몽롱한 의식을 깨웠던것이다. 원쑤는 나에게 간직된 혁명의 비밀을 빼앗으려 든다. 혁명의 비밀을 고수하는가 못하는가, 이 시각에 원쑤와의 싸움에서 비밀을 고수하는것외에 더 귀중한것은 없다. (비밀, 그렇다. 비밀을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혁명가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고결한 절개를 끝까지 지켜내야 하며 혁명의 비밀을 고수해야 하오. 혁명의 비밀은 바로 혁명운동의 생명이요. 1940년 6월말 오도양차골에서 우리들에게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말씀을 나는 가슴속에 다시한번 아로새기면서 이렇게 다짐하였다. (사령관동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당신의 전사답게 혁명적절개를 지키겠습니다.) 형사놈은 나에게서 비밀의 실머리를 찾아내기 위해서 갖은 방법과 술책을 다 썼다. 교활하고 음흉하게 나를 회유하고 기만하려들었으며 모진 고문으로 나를 위협하였다. 고문은 거의 매일같이 계속되였다. 놈들은 참대꼬챙이를 깎아가지고 손톱눈을 찌르는가 하면 쇠꼬챙이를 시뻘겋게 달구어서 나의 허벅다리를 지졌다. 1주일이 지나자 나의 몸에는 한군데도 성한데가 없이 터지고 망울이 들고 찢겼다. 그렇지만 나는 혁명의 비밀은 바로 혁명운동의 생명이라고 하신 그이의 말씀을 가슴속으로 되뇌이며 몸서리치는 고문을 이겨냈고 마음을 더욱 든든히 다잡았다. 그러나 한가지 근심은 있었다. 나는 원쑤놈들의 고문에 정신이 흐려지군 할 때마다 부지불식간에 혁명동지들에 대한 비밀의 조그마한 단서라도 루설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때문에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그래서 잠간씩 정신이 드는 때면 형사놈의 상판대기부터 쳐다보군 하였다. 그놈이 악에 받친 몰골을 하고있으면 비로소 안심하였고 그놈의 얼굴이 좀 부드러워지기만 하면 가슴이 선뜩하였다. 이렇게 20여일이 지났다. 고문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차린 어느날 깊은 밤중이였다. 철창을 통해서 교교한 달빛이 내리비치는 감방안은 고요했다. 이런 정적속에서도 나의 마음은 복잡했고 갈피를 잡을수 없이 괴로왔다. 놈들의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느끼는 육체적고통보다도 혁명이 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원쑤들에게 붙잡힌 마음의 고통이 더 참기 어려웠다. (멀지 않아 나는 놈들의 손에 죽을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제 놈들과 더 싸울수 없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있으며 지금 모든것을 생각하고있지 않는가. 그렇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는 한 나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놈들과 싸워야 할 의무만이 남아있다.) 이렇게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났을 때 눈앞에는 사랑하는 고향의 부모형제들이며 그리고 어린시절에 처음으로 혁명대오에 들어서던 날의 감격 등 지나온 나의 반생의 가지가지의 사실들이 어제일처럼 안겨왔다. 더우기 어버이처럼 사랑하고 키워주신 사령관동지를 생각할 때 그리고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전우들을 생각할 때 가슴은 타고 초조한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내가 이렇게 된줄을 모르고 나를 기다리고계실것이 아닌가.) 령하 40℃의 강추위와 눈보라속에서 대오가 길을 잃게 되였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나를 부르시여 암만해도 천추동무가 나왕(지도없이도 산만 보고 곧추 간다는 뜻)을 서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나를 앞세우고 대오의 맨앞에 서서 걸어가시던 일, 이런 곤난할 때일수록 혁명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던 그이의 말씀. 더우기 입대할 때 나에게 반짝반짝 윤기가 나게 닦은 총과 연필을 쥐여주시던 그이, 《ㄱ》자도 모르던 나에게 그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짬있는대로 글을 배워주고 키워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였다는것을 생각할 때 나는 못견디게 괴로왔다. 《사령관동지, 저는 당신의 말씀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최후순간까지 혁명에 충실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가르치시기를 원쑤와의 싸움에서 피동에 서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주동적이여야 합니다라고 하시였다. (놈들에게 잡힌 몸일지언정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원쑤의 철창속이라고 해서 과연 내가 할 일이 없겠는가. 그럴수 없다. 형사놈의 심문에 내가 피동에 서서는 안된다. 감방안에서도 가만히 누워있어서는 안된다. 나의 독감방곁에 련이어 있는 잡감방안에는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들어와있지 않은가. 옳다. 그들에게 힘을 불러일으켜주어야 하며 그들의 가슴에 혁명의 씨앗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렇게 결심한 나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힘이 용솟음쳤다. 나는 누운채로 있는 힘을 다 모아 혁명가요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의 노래소리가 쉰듯 하고 류창하지 못하였을망정 나는 정열을 다하여 가사의 한구절한구절에 힘을 주어 불렀다. 고요한 밤중에 감방속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에 간수놈들은 당황하였다. 《가만 있지 못해.》, 《닥치지 못해.》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대로 소동을 일으켰다. 나의 노래소리에 원쑤들이 당황망조해하는것, 이것은 바로 우리 유격대가 퍼붓는 총탄마냥 원쑤들이 두려워하고있다는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렇게 누워서 총탄대신에 노래로도 원쑤를 당황망조케 하고있다는것을 생각하니 매우 기뻤다. 이런 환경에서 혁명가요는 원쑤와의 싸움에서 위력한 무기로 될수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원쑤들이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더욱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발광하는 원쑤들의 가슴을 짓눌러버리고 철창을 뚫고 거침없이 다른 감방으로 울려퍼졌다.
2
몇달이 지난 어느날 고등계형사놈은 나에게 큰《혜택》이라도 베풀어주는것처럼 과자와 권연까지 내다놓고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하는 수작이 이제부터는 조직에 대한 비밀에 대해서는 말 안해도 좋으니 나 개인의 《죄행》에 대해서만은 속이지 말고 다 말하라고 은근하게 접어드는것이였다.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게 되였다. 이 형사놈은 우리의 국내공작원들에 대한 자료를 알아낼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자 나의 《죄행》만이라도 엮어서 사건을 제기하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나는 이미 각오한바라 조금도 주저할것이 없었다. 몸서리치는 고문도, 교수대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때 비록 철창속에 갇힌 몸이지만 사형장에 나서게 되는 그 순간까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원쑤들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울 결의를 굳게 다지고있었다. 나는 형사놈에게 선뜻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내가 말하는대로 적어라. 내가 어떻게 강도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웠는가를 빠짐없이 이야기할테다.》 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떨어지자 형사놈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조서를 꾸밀 도구를 갖추느라고 분주히 서둘렀다. 내가 그렇게 수월하게 저희들의 요구에 응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모양이였다. 나는 그놈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왜놈들의 등쌀에 못견디여 할수없이 우리 부모는 동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왜놈들은 그곳까지 쫓아들어와서 내가 살던 마을을 포위하고 하루에도 수백명씩 무고한 인민들을 살륙하였다.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오는 선량한 조선사람들을 총창으로 찔러서 다시 불속에다 처넣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한것도 왜놈들이며 그 앞잡이 개들이였다. 이 참경을 보고 그래 참을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을 듣자 머리끝까지 약이 오른 형사놈은 《허튼 소리는 집어치우고 〈죄행〉만 말하라.》고 을러댔다. 《내 말을 도중에서 막지 말라. 만약에 이제 다시한번 막는다면 말하지 않을테다.》 나는 형사놈에게 위협조로 쏘아붙인 다음 입을 다물었다. 이 한마디 말은 형사놈으로 하여금 궁지에 빠지게 하였다. 나는 이 형사놈이 나의 사건을 너무 오래동안 질질 끈다 하여 웃자리에 앉은 놈들에게서 욕을 자주 먹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형사놈은 울며 겨자 먹는격으로 다시는 도중에 말허리를 끊지 않겠다고 나한테 다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후부터 형사놈은 나에 대한 심문과정에서 완전히 피동에 빠지고말았다. 《생각해보라. 강도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잃어버린 조국을 찾고 짓밟힌 인민들을 해방하겠다고 싸우는 나에게 과연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죄가 있는 놈들은 바로 왜놈들과 거기에 붙어 먹고사는 꼬리빠진 개들뿐이다. 우리 인민혁명군은 오직 조선인민의 원쑤를 타도하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 총을 잡았다. 우리 인민혁명군은 무송현성에서, 보천보에서, 간삼봉에서, 무산지구에서 그리고 수많은 전투들에서 왜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나는 전투때에 더 많은 놈들을 쏘아죽이지 못한것이 지금 생각하면 원통하다.》 전투들에서 놈들이 어떻게 녹아났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형사놈은 얼굴을 찌프리군 하였다. 나의 《공술》이 계속될수록 형사놈의 얼굴은 점점 더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내 말을 자주 중단시키려고도 해보고 내 말을 내리눌러보려고도 했으나 날이 거듭될수록 그 놈은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으며 마지막에는 그저 기계적으로 내 말을 적기만 했다. 경찰서에서 내가 청진형무소 미결감방으로 옮겨간 후부터 형사놈은 더 자주 나를 불러내다가는 은근히 우리의 력량을 타진해보려고 애썼다. 최종적인 예심조서를 만들 때 형사놈은 거의 창백한 얼굴로 조심조심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 지금 유격대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가?》 《동북의 밀림속에 차고넘쳤다. 몇십만이 되는지 몇백만이 되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정말로 당신들이 하는 혁명이 승리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승리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꼭 승리한다.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고 호통을 치던 파쑈도이췰란드가 지금 어떤 꼴이 되였는지 알고있는가. 멀지 않아 파쑈도이췰란드가 패망하리라는것이 이제 와서는 불을 보듯 환하지 않는가. 파쑈도이췰란드가 거꾸러진 다음 차례는 왜놈들이다. 그날을 위해서 지금 우리 인민혁명군은 만단의 전투준비를 하고있다.》 형사놈은 맥빠진 얼굴로 멍청하니 허공을 쳐다보더니 수심에 찬 어조로 다시 물었다. 《그래 당신 생각에는 이제 얼마쯤 있으면 일본이 망할것 같은가?》 《기껏해야 반년, 늦어도 1년내에 당신의 상전은 거꾸러질것이고 당신의 목에도 올가미가 걸려질것이다.》 그러자 이놈의 얼굴이 삽시에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뺨이라도 후려갈기고 당장 고문실에 끌고갈것 같았는데 어떻게 달리 마음먹었는지 제풀에 도로 주저앉으면서 맥없이 묻는것이였다. 《당신은 공산대학을 졸업했소?》 《나는 문맹자였는데 김일성사령관동지께서 이렇게 키워주셨다.》 그놈은 갑자기 골을 싸쥐고 안깐힘을 다 쓰더니 와락 고개를 들면서 발작을 일으킨 놈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봐, 이 자식을 빨리 끌어내가라.》 이때 그놈의 어성은 비록 높았으나 그 소리에는 풀기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강한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물에 빠진 자가 지푸래기를 잡고 허우적거리는것과 같은 절망속에서 허덕이는 놈의 단말마적발악이였다. 나는 그놈의 낯짝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조국이 광복된 다음에 목숨이라도 부지하겠거들랑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 처신하는게 좋을것이라고 한마디하고 그놈의 방에서 끌려나왔다. 나는 이때 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사라는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다시한번 깊이 간직하였다. 민족적량심마저 저버린 이 주구놈까지도 그이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혁명의 진리앞에서는 오금도 못쓴다는것을 실지 내 눈으로 보게 되였던것이다. 나는 오직 그이께서 가리키시는대로 행동하였을뿐이였는데 원쑤놈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며 오래지 않아 저들이 멸망하리라는 예감을 막연하게가 아니라 아주 똑똑히 감촉했던것이다.
3
1945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원쑤들은 매일과 같이 무고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검속하였다. 형무소는 그들로 차고넘쳤으며 무서운 《죄수》만을 넣는다는 독감방에까지 인민들을 가두어넣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내가 있는 독감방에도 여섯사람이나 들어왔다. 다섯사람은 까닭도 없이 불온사상이 있다고 해서 끌려들어온 경성농업학교 학생들이였고 나머지 한사람은 돈푼이나 있는 선주였다. 나이가 지긋한 선주령감은 고기배를 여러척 부리고있는 기업가였는데 세상물정에 몹시 어두웠다. 《군기헌납금》을 내지 않았다는 《죄》로 끌려들어왔다고 하였다. 어느날 밤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고있는데 선주령감도 역시 잠을 못이루고있었다. 령감은 자기가 없으면 가문이 망한다고 그것만 근심하고있었다. 나는 한숨짓는 선주령감과 왜놈들을 비방했다는것으로 잡혀와 내 곁에 주런이 누워있는 학생들을 굽어보면서 짓밟히고있는 조선인민의 운명에 대하여 다시한번 가슴아프게 느꼈다. (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어 한숨대신에 적과 싸우도록 하여야 하며 조선사람이 죽지 않았다는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 감방에 있는 여섯사람을 혁명의 길에 이끌어세운다면 나는 비록 교수대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그대신 여섯사람이 더 혁명대오에 참가할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 나는 무한히 기뻤다. 그 이튿날부터 나는 소조원들이 모두가 군중의 조직자가 되는 동시에 선전선동원이 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감방안에서 항일유격대의 투쟁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간수놈들은 제발 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저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재판할 때 많이 봐주도록 웃사람들한테 말해주겠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원쑤들의 회유와 간청으로 잠시도 멈출수는 없었다. 그들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다 리용하여 끊임없이 진행되였다. 사령관동지의 신출귀몰한 전술에 대하여,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준 수많은 전투들에 대하여, 전체 인민이 힘을 합쳐서 원쑤를 족치는 투쟁에 나서야 하며 일제놈들은 멀지 않아 멸망하고 조국이 광복된다는데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감수성이 빠른 학생들은 내말을 듣느라고 밤을 지새는줄도 몰랐다. 나는 학생들에게 혁명가요도 배워주었다. 《이제 나가면 나도 유격대처럼 싸우겠어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난 정말 똑똑히 알았습니다.》 학생들은 이렇게 제가끔 말했다. 이때 김가성을 가진 간수가 있었는데 그도 나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으나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그가 진정으로 내 말을 듣고싶어한다는것을 알았다. 어느날 내가 학생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보천보전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있는데 김간수가 다가오더니 《그만 하시우. 〈량반〉들이 옵니다.》라고 하는것이였다. 아닐세라 서장놈과 형사놈이 감방으로 들어왔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는 우리의 《보초》가 되였다. 그런데 선주령감만은 며칠후에 있을 재판을 앞두고 더 자주 한숨을 쉬면서 침울해하였다. 《〈국방헌금〉을 못냈다고 설마 징역을 보낼라구.》하고 령감은 하루에도 몇번씩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놈들은 령감의 예측과는 달리 그에게 3년형을 언도하였다. 재판정에서 돌아오자 령감은 목놓아 울었다. 우리들은 가까스로 그를 위안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울다가는 한숨짓고 한숨짓다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3년씩 먹인단 말이냐.》 3~4일이 지나서야 령감은 겨우 진정하였다. 《우리같은 사람을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어떻게 대해주실것 같소?》 선주령감은 나한테 묻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왜놈들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손잡고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방헌금〉을 안내는것도 바로 왜놈들과 싸우는것으로 됩니다. 우리들은 오직 왜놈들과 그에 붙어먹고 사는 놈들을 반대하여 싸웁니다.》 《아니 그분께서 우리같은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요?》 나는 반일감정을 가진 모든 중소기업가들도 우리 혁명의 편이라는것을 깨우쳐주었다. 선주령감은 내 말을 유심히 귀담아듣고있었다. 2월의 어느날 드디여 나는 재판정에 나섰다. 재판이란 격식뿐, 재판정에는 재판장과 검사 그리고 나를 호송하는 경관밖에 없었으며 넓은 방청석에는 나를 예심한 형사놈이 우울하게 앉아있었을따름이였다. 재판장놈앞에는 내가 체포될 당시 가지고있던 싸창과 쌍안경이 증거물로 놓여있었다. 《당신의 총인가?》하고 재판장놈이 물었다. 《내가 가지고있던 총이다.》 《어디서 났는가?》 《바로 네놈들에게서 빼앗아냈다. 그 총에는 수많은 혁명가들과 조선인민의 피가 스며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그 총으로 피흘린 혁명가들과 인민들의 피값을 하기 위해서 네놈들에게서 빼앗아 왜놈들을 쏘아죽였다.》 놈들은 내 말을 중둥무이해치우려고 악을 썼으나 나는 계속 원쑤들의 죄행을 규탄하였다. 당황망조한 원쑤들은 재판의 초보적절차도 다 쥐여뿌리고 부랴부랴 나한테 사형을 언도하고는 재판을 끝냈다. 재판정을 나올 때 나는 원쑤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는것을 보았다. 나는 그 얼굴들에서 죽어가는 일제의 몰골을 보는듯 하였다. 나는 통쾌한감을 금할수가 없었다. 물론 나도 빨리 죽고싶지 않았다. 더우기 조국이 광복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에 그러했다. 그렇지만 나는 비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혁명의 길에서 떳떳이 죽을수 있기때문이였다. 나는 감방에 들어오면서 옷차림을 단정히 하였다. 내가 의기소침해 들어가면 감방에 있는 사람들도 기운을 잃을수 있었다. 내가 감방에 들어오자 고대하고있던 학생들이 일시에 어떻게 됐는가고 물었다. 그런데 이때 김간수가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통분한 어조로 《한선생님, 원통합니다.》하고 말했다. 이 한마디로 내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것을 감방안의 모두가 알게 되였다. 한 학생이 나의 품에 와락 안겨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한선생님.》 그 목소리는 나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하였다. 너무나도 빨리 죽는다는것을 생각할 때 통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비분을 참았다. 그리고는 학생을 꼭 껴안은채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혁명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약해서야 쓰나. 그이의 전사가 되려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 부닥치더라도 원쑤들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되오.》 그러자 선주령감도 나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한선생, 나도 이제껏 미련하게 살아왔소.》하고 말끝을 채 맺지 못하는것이였다. 나는 이때부터 더욱 줄기차게 이들과의 사업을 하였다. 그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였으나 그 마지막 순간까지 혁명사업을 계속하여야 할 의무를 나는 느끼고있었기때문이였다. 마지막 시기에 가서 나는 그들속에 혁명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서대문형무소에 이송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원쑤들은 사형집행을 앞두고 교회당에 나를 끌어내더니 참회하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원쑤들은 끝내 나를 교살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먼저 망하고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오매에도 그립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에 안기게 되였으며 다시금 혁명대오에 들어서게 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