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조 도 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 나의 머리에는 잊혀지지 않는 한 녀대원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는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났으나 혁명의 최후승리와 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조선녀성들이 지닌 고결한 정신과 강의한 투지를 가지고 굴함없이 꽃다운 청춘을 바친 백장숙동무이다. 그를 회상하는 나의 가슴은 지금도 한없이 뜨거워진다.

1936년 봄에 있은 일이다.

안도현 대전자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나는 그후 처창즈와 내도산을 거쳐 화전현 유신덴이란 깊은 수림속에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당시 이곳에는 6~7명의 환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백장숙동무를 알게 되였다.

그때 그는 21살의 나어린 처녀였다. 언제나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을 가진 그는 병석에서도 곧잘 노래를 즐겨불렀다.

나는 그에게서 가끔 이런 노래를 듣군 하였다.

 

흐르는 내물은 굽이쳐 흐르고

혁명의 앞길은 곡절도 많아라

굶주리며 죽은자 총칼에 상한자

묻노라 동무여 그 얼마이던가

그러면 우리들도 나직하나 힘있는 목소리로 따라불렀다. 어느새 고요한 수림속에는 우렁찬 노래소리가 메아리쳐 울려퍼졌다.

우리 환자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더욱 어려워만 갔다. 이미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비상미를 내놓고보니 남은것은 불과 몇끼분밖에 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자 그것마저 죄다 떨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을 떠날수 없었다. 본부대에서 련락이 올 때까지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기다려야 했다.

우리들의 얼굴은 몰라보게 창백해졌다. 풀기있는 미음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우리들, 약치료라고는 짓이겨놓은 느릅나무껍질을 상처에 처매는 그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참고 견디였는데 그중에서도 백장숙동무는 남다른 인내력으로써 극복해나아갔다. 그는 티끌만한 아픔의 기색도 얼굴에 나타낼줄 몰랐다.

그는 종종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혁명에서 승리하면 그땐 사정이 달라질거야요. 비록 지금은 의사도 약도 없는 이 깊은 수림속에서 병치료를 하지만 혁명이 승리하는 그날엔 우리 조선에도 많은 병원이 새로 생기고 좋은 약품도 생산될겁니다.

어때요. 그렇지 않아요? 난 그땐 의사가 되겠어요. 백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인간의 생명을 연장할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고싶어요.》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끝없는 행복감에 잠기군 했다.

이렇게 백장숙동무는 심한 고통속에서도 늘 앞날을 생각하며 희열을 느꼈고 바로 그 희열속에서 그는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다져왔다.

그는 언제나 자기 아픔보다 남의 아픔을 더욱 가슴아파했다. 시장기어린 동무들의 파리한 얼굴을 볼 때면 그는 몇끼 굶으면서도 자기에게 차례진 미음을 동무들의 입에 떠넣어주군 하였고 또 동무들이 랭기가 들어 몸을 떨면 큰 일이나 난듯 자기 솜옷을 벗어 씌워주군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은 찬비가 몹시 내렸다. 늦은 봄철이라 하지만 남만의 기후는 쌀쌀하여 겨울옷을 입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그런데 초막지붕에서는 비물이 새여 내렸다. 추위에 파랗게 질린 우리들은 좀처럼 잠들수 없었다. 잠자리에도 얼굴에도 굵은 비물이 떨어졌다.

이때 백장숙동무는 환자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섰다. 우리를 책임진 한 대원이 기를 쓰고 말려도 그는 끝내 듣지 않고 넓은잎나무가지를 꺾어다 지붕우를 덮어놓은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젠 마음놓고 어서들 주무세요. 비물은 안샐거야요.》

그날밤 백장숙동무는 열이 올라 모진 고통을 겪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그런 티를 얼굴에 나타낼줄 몰랐다.

도리여 아침이 되자 그는 담벽에 의지한채 창문을 열어제끼고 맑게 개인 상긋한 날씨의 아침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것이였다. 초막의 맞은편 나지막한 둔덕우에는 밤새 핀 도라지꽃이 활짝 피여있었다.

그는 환희에 넘쳐 소리쳤다.

《야, 꽃이 피였어요. 봐요. 얼마나 아름다와요.》

어느덧 계절이 바뀌여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철은 식량이 부족한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유리한 시절이였다.

우리는 그간 마을에 내려가 공작해온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산열매나 연한 풀들로 끼니를 에우기도 했다.

우리들의 병은 차차 나아갔다. 부대에 찾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생활은 한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우리는 이날 오래간만에 흰쌀미음을 먹고있었는데 갑자기 적의 《토벌》을 받게 되였다. 불의에 기여든 적들은 우리들이 모두 환자임을 알자 처음부터 생포할 목적으로 악을 쓰며 달려드는것이였다.

위급한 순간이였다. 너무나 다급해진 우리들은 미처 손을 쓸수가 없었다. 더구나 병석에서 갓 일어난 우리들이 아닌가. 오도가도 못할 깊은 함정에 빠진듯 우리들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때 한 녀대원의 오돌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장숙동무였다.

《왜들 꾸물거려요? 어서 돌바위골짜기로 몸을 피해요. 어서요.》

그제야 우리는 생각난듯 모두 지정된 곳을 향해 힘껏 달렸다. 온몸에 진땀이 났다. 차라리 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놈들의 손아귀엔 잡힐수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백장숙동무만은 우리와는 반대켠으로 달리지 않는가. 그때 그는 쨍쨍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개놈들아, 어서 따라올테면 따라오라.》

그러자 적들은 《저쪽이다.》라고 지껄이며 그를 뒤쫓아 한곬으로만 추격해나갔다.

이를 본 우리는 비로소 모든것을 깨달았다.

(희생을 각오하고 적을 유인하는구나.)

우리는 몇발자국을 뛰다가 뒤를 돌아보고 다시 뛰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가슴은 탈 지경으로 아파왔다.

과연 백장숙동무는 어떻게 되였는지. 그의 신변엔 어떤 위험이 닥쳐왔는지.

높은 산마루에 올라 우리가 거처하였던 초막쪽을 내려다보았을 때 그곳에는 삼단같은 불길이 타오르고있었다.

이것을 본 우리의 눈앞은 아찔해졌다.

그때 나는 환자여서 총이 없는것이 분했다. 아니, 나뿐만아니라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참다 못해 몇시간이 지난후 초막을 향해 내려갔다. 잃어버린 동지에 대한 가슴아픈 생각으로, 동지들을 위해서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택한 혁명전우에 대한 애타는 심정으로 우리는 급히 그곳을 향해 떠났다.

초막에 도착했을 때 주위는 아직 불기가 남아있었다.

아무런 인적도 없었다. 주위는 고요하고 다만 석양노을만이 서서히 사라지고있었다.

내가 방금 타버린 초막입구에 다달았을 때 나는 하마트면 《악-》소리를 칠번 했다.

바로 나의 앞에는 피투성이 된 백장숙동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지 않는가. 그는 전우들을 찾아 다시 이곳까지 기여온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백장숙동무를 힘껏 부여안았다. 그의 얼굴에는 흙탕칠한 구두발자리가 나있었고 군복은 온통 총창에 갈기갈기 찢기워있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사람을 이처럼 무참하게 만든 적들에 대한 분노로 하여 막 치가 떨렸다.

《개놈들, 어디 두고보자.》

백장숙동무는 스르르 눈을 떴다. 처음은 흠칫 놀라며 악을 쓰다가 옆에 모여선 사람들이 동지들임을 알게 되자 비로소 만족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다시 눈을 감았다.

《백동무, 백동무!》

우리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고 그는 다시 눈을 떴다.

백장숙동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자한자의 획들에 마지막 심혈을 부어 또박또박 박아쓴 그 글줄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놈들은 나에게 심한 고문을 들이댔어요. 그래도 난 두렵지 않았어요. 다만 놈들의 모진 악형에 그만 정신을 잃고 나도 모르게 혁명의 비밀을, 동지들이 피신한 장소를 헛소리라도 친다면? 아, 나는 치가 떨렸어요. 그래서 나는 끝내 혀를 끊었어요.

오직 이것만이 적들과 싸우는 유일한 길이였어요. 혁명의 요구였어요.

조선혁명 만세!》

글을 읽고난 우리는 저마다 흐느끼며 주먹을 부르쥐였다. 투쟁에서 굴할줄 모르던 혁명의 전우, 동지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영원히 살자던 백장숙동무의 최후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눈은 적에 대한 참을수 없는 증오와 분노로 하여 이글이글 타올랐다.

혁명이 승리하는 그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에 돌아가면 의사가 되여 인간생명을 위해 일하겠다던 백장숙동무.

그는 그날을 끝내 맞이하지 못한채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혁명의 최후승리와 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굴함없이 싸워 이긴 그의 고결한 절개, 고귀한 혁명정신은 오늘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숨쉬며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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