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당백의 혁명전사였다

그는 일당백의 혁명전사였다

 

박 성 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조직진행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어깨를 겯고 한대오에서 싸운 수많은 전우들의 슬기로운 모습을 그려보군 한다.

그들은 자기의 모든것을 오직 혁명위업에 바친 조국의 참된 아들딸들이였고 위대한 수령님께 충직한 전사들이였다.

류경수동지 역시 바로 이러한 동지들중의 한사람이였으며 자기의 일생을 조국광복과 혁명위업을 위해 바친 훌륭한 투사였다.

류경수동지는 1932년 연길현에서 유격대에 입대하여(당시 17살) 초기부터 남달리 용맹을 떨치였다.

《혁명을 위해 나선 몸이니 혁명대오를 떠나서는 살수 없다. 살아도 혁명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혁명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움직일수 없는 하나의 신념이였다.

언제나 승리만을 믿었고 혁명적락관주의로 무장한 류경수동지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비관과 실망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일에서 침착하고 민첩하였을뿐만아니라 그 어떤 어려운 정세에 부닥쳐도 망설이지 않고 대담하게 그리고 완강하게 돌진하는 혁명가의 기백을 발휘하군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지휘관들과 전우들은 류경수동지를 부대의 자랑으로, 모범으로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유격대의 어엿한 분대장으로, 기관총수로 초기부터 이름이 높았던 류경수동지는 언제나 솜씨있고 완강한 사격술을 보여줌으로써 전우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으며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나는 지금도 지난 시기에 류경수동지가 자기에게 맡겨진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언제나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선두에 서서 희생성과 대담성을 발휘한 수많은 사실들을 회상하군 한다.

그 대표적실례는 1937년 8월에 있은 무송현 묘령전투에서 찾아볼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의하여 진행된 묘령전투에서 류경수동지는 수령님께서 키워주신 일당백의 혁명전사답게 빛나는 전투위훈을 세웠다.

이 시기로 말하면 일제가 중국에 대한 침략흉계를 꾸미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가혹한 략탈과 탄압을 감행하던 때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부대는 백두산서남부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면서 령활한 전술로 보천보와 무산지구 그리고 장백현 간삼봉에서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에 의하여 진행된 국내진공작전에서 큰 승리를 이룩한 우리 부대는 그후 무송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부대에 무송현 묘령의 적을 치라는 명령을 내리시였다.

우리는 그이의 명령을 전달받으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

무송현 묘령에는 위만군 1개 대대가 주둔해있었다. 그런데 이 위만군대대의 대대장으로 있은 사람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만원정을 하실 때 파견하신 우리 동무였다.

그는 적들속에서 사업을 잘하여 위만군 대대장직무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악질적인 장교놈들에 의해 그 비밀이 로출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험에 처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묘령에 주둔해있는 위만군대대를 급히 공격할것을 우리들에게 명령하시였던것이다.

위만군대대가 주둔해있는 묘령의 산봉우리는 하나의 요새로 되여있었다. 성의 네귀에는 높은 포대가 솟아있었으며 화점들도 견고하게 만들어져있었다. 그리고 성안에는 탄약도 많았고 식량도 3년이나 먹을것이 쌓여있었다. 그런데다가 박격포중대와 기관총중대까지 있었다.

하기에 적들은 자기들의 병영에는 새도 못 날아든다고 떠들었다.

우리는 놈들을 공격하기 위해 위만군 대대장으로 있는 우리 동무와 미리 련계를 가지고 적들의 내부형편과 군사시설들을 면밀히 알아내였다.

공격개시날은 이미전에 우리와 련계를 맺고있던 위만군병사들이 성의 정문보초를 서는 날로 정했다.

우리보다 몇배나 되는 적을 불의에 습격하여 무장을 해제하자면 최대의 은밀성과 민활성을 보장하여야 하였다.

더우기 부대 전체가 동시에 행동한다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부대지휘부에서는 솔선 자원하여나서는 8명의 대원으로써 결사대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어려운 혁명과업일수록 항상 자기에게 맡겨줄것을 요구한 류경수동지는 이때에도 《저를 결사대에 보내주십시오.》하고 자원하여나섰다.

그러자 정치위원동지는 잠시 류경수동지를 바라보다가 《기관총수는 안되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류경수동지는 일단 마음먹은것을 굽히려고 하지 않고 다시금 자기를 꼭 보내줄것을 강경하게 요구하였다.

《기관총을 가지고 어떻게 가겠다고 그러오?》

《기관총은 다른 동무에게 잠시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정치위원동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기의 권총을 류경수동지앞에 내놓으면서 《이것을 가지고가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류경수동지는 정치위원동지의 권총을 가지고가기에는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중대장의 권총을 받으려고 그의 앞에 다가섰다.

류경수동지의 두눈은 투지와 기쁨으로 하여 이글이글 끓고있었다.

중대장동무는 그의 손을 덥석 그러잡고 자기의 권총을 내주었다.

이때 나는 류경수동지의 기관총을 받아쥐며 감동과 흥분으로 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정치위원동지는 자기의 탄띠에서 권총탄알 30발을 류경수동지에게 주면서 잘 싸워주기 바란다고 당부하였다.

류경수동지가 결사대에 자원한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였다. 그는 위급하고 어려운 그 많은 전투들에서 언제나 서슴없이 결사대로 나서서 용맹을 떨치군 하였다.

묘령전투가 있기 이전 어느 성시습격전투때에도 그러하였다.

성시포대를 삼면 포위하여 들어가던 아군은 예상외에 적의 강한 화력에 부딪쳐 진격할수 없게 되였다. 적탄이 비발치듯 날아오고 적의 기관총이 련달아 불을 토하였다.

바로 이때 적정을 재빨리 간파한 류경수동지는 폭탄을 두손에 틀어쥔채 결연히 일어나 탄우속을 뚫으며 쏜살같이 돌진하였다.

자기 한몸을 바쳐서라도 위급한 사태를 극복하고 지휘부와 전우들을 보호하고야말리라는 일념으로 불타는 그의 앞길을 누구도 막아낼수는 없었다.

그는 불사조마냥 포대에 올라가 저주로운 적화구속에 폭탄을 던졌다.

《꽝!》하는 폭음과 함께 포대속의 적들은 물론 적기관총이 녹아났다.

이렇게 지난날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류경수동지는 묘령전투에서도 4명의 조책임자로서 기습전의 앞장에 서게 되였던것이다.

이날 전투는 8명의 결사대원들이 2개 조로 나누어 진행하게 되였다.

밤 10시, 쥐도 새도 모르게 적들의 성벽가까이에 접근한 아군은 어둠속에 솟은 포대들을 노려보면서 재빨리 주위에 매복했다. 부대의 전투계획에 따라 결사대는 드디여 행동을 개시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류경수동지를 포함한 이 8명의 결사대원들의 앞길에 부디 성공만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주위는 물을 뿌린듯 조용했고 금시에 모든 화구에서 불을 토할것만 같았다.

마침내 위만군보초병은 우리와 약속한 시간에 정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그 보초병은 두팔을 공중에 높이 펴며 기지개를 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알리는 신호였다.

성문이 열리자 우리의 결사대원들은 순식간에 정문으로 들어갔다.

류경수동지가 책임진 4명의 결사조는 정문에서 약 100m 더 들어가있는 병영(박격포중대, 기관총중대, 호위소대, 대대본부 등)으로 들어갔다. 류경수동지가 책임진 결사조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은밀히 병실문앞으로 접근해갔다.

불빛이 환한 병실창문에는 마음놓고 지껄여대고있는 놈들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이때 위만군병사 한놈이 변소에 갔다가 류경수동지를 발견하고 병실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었다.

순간도 지체할수 없는 이때에 류경수동지는 힘을 다하여 발로 문을 차넘기고 병실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류경수동지가 적병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적기관총수놈이 먼저 사격했다. 그러나 날쌔게 창문벽에 의지하여 적기관총수를 쏴눕히고 병실안에 들어선 류경수동지는 한손에는 권총, 한손에는 수류탄을 높이 쳐들고 웨쳤다.

《꼼짝 말라, 움직이면 다 죽는다.》

청천벽력같은 웨침소리에 도박을 놀고있던 놈들과 주변에 늘어서있던 놈들이 어리둥절해서 꼼짝 못하고 손을 쳐들었다. 바로 이때 병실 한쪽구석에서 적 한놈이 총을 들어 이쪽을 겨누는것을 발견한 류경수동지는 재빨리 그놈을 쏘아눕혔다. 그놈이 지르는 비명과 함께 적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악질적인 놈들은 대항하여나섰다. 사태가 위급하게 되자 류경수동지는 일제사격을 명령하면서 수류탄을 던졌다. 적병실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고 순식간에 40여명이 너부러졌다. 우리 결사조의 집중사격에 의해 놈들은 독안에 든 쥐처럼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항복할테니 사격하지 말라.》는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런 정황속에서 어디까지나 동요하는 적병사들은 끌어당기며 악질적으로 대항하는 놈들을 끝까지 제압하여야겠다고 생각한 류경수동지는 사격을 중지시키고 병실을 포위한채로 함화공작을 들이댔다.

《위만군병사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혁명군이다.

당신들은 무엇때문에 왜놈의 총마개로 죽어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어서 인민의 편에 넘어오라.》

류경수동지의 목소리는 병실안을 뒤흔들었으며 그의 말 한마디한마디는 병사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세웠다.

류경수동지가 책임진 결사조에서 적들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키고있을 때 보병중대에 돌입한 다른 결사조는 병실문을 제때에 마스지 못하여 놈들의 사격을 먼저 받게 되였다.

적들은 병실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창문밖을 향하여 무턱대고 사격하였다.

이 긴박한 정황을 시급히 수습하지 않는다면 사태는 적들에게 호전되여 우리의 기습전이 파탄될수 있었다. 이때 류경수동지는 조원들에게 경비조직을 강화하게 하고 옆에 있는 대대본부로 달려들어갔다.

악질장교 한놈은 어찌나 당황하였던지 부엌아궁밑에 엎디여 넋을 잃은 사람처럼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그놈은 목숨만 살려달라고 두손을 살살 비비는것이였다.

《목숨을 살려줄테니 저기 보병중대의 사격을 중지시키고 무기를 전부 바치게 하라.》

그놈은 자기 목숨을 살려준다는 류경수동지의 말을 듣고 연신 절을 하면서 련락병을 보병중대장에게 보냈다. 그러자 보병중대장놈은 즉시 사격을 중지하고 기관총을 비롯한 중대의 모든 무기를 창밖으로 내던지고 항복하고야말았다.

이렇게 하여 놈들이 자랑하던 《난공불락의 요새》는 류경수동지가 책임진 결사조원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완전히 녹아나고말았다.

묘령전투에서 우리는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70여명의 적을 살상하고 400여명의 적을 포로하였으며 40여명의 위만군병사들을 유격대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박격포 1문, 중기 1문, 경기관총 3정, 보총 200여정을 비롯하여 3,000여마대의 밀가루 등 전리품을 로획하였다.

류경수동지를 비롯한 결사대원들의 전투승리를 축하하여 부대성원들이 그들을 포옹하고있을 때 정치위원동지가 뛰여나와 류경수동지를 자기 품에 그러안으며 《장하오. 장하오. 동무는 우리의 보배요.》라고 치하하였다.

그후에도 류경수동지는 수많은 전투들에서 용맹과 명성을 떨치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1939년 여름에 있은 연길현 천보산전투와 돈화현 요차전투에서, 그해 가을에 있은 안도현 한총구전투에서 그러했다. 특히 1941년 봄 위대한 수령님을 직접 모시고 진행한 소부대활동에서 류경수동지는 그이의 두터운 신임과 사랑을 받은 충직한 전사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임무를 맡아 그를 빛나게 수행하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시종일관 혁명과업수행에서 자기의 충실성과 용감성을 발휘하여온 류경수동지는 8.15해방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과업 특히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을 위한 사업에 자기의 모든 힘과 지혜를 남김없이 바치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그는 훌륭한 군사지휘관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전술적방침을 받들어 우리 인민의 혁명적전취물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혁명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여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류경수동지의 생애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 당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직성,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정신, 당과 인민의 충직한 아들로서의 고상한 풍모를 보여준 모범으로서 오늘 당과 수령이 제시한 혁명과업실천에 나선 우리들을 무한히 고무하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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