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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겨낸 처창즈
백 학 림
혁명의 길은 간고하다. 그 로정은 순탄한 대로에서의 안일한 걸음이 아니다. 적들과의 결사적인 투쟁, 굶주림과 추위, 경제적난국의 극복, 원쑤들의 온갖 악랄하고 음흉한 암해책동의 분쇄없이는 혁명의 전진이 있을수 없다. 련달아 밀려드는 힘겨운 난관과 준엄한 시련의 파도를 맞받아부시며 넘어서야만 혁명의 승리를 얻을수 있다. 우리는 실로 얼마나 많은 파란곡절을 거쳐 휘황한 오늘에로 이르렀는가. 누구나 자기의 지난 생활에서의 간고하던 시기를 잊지 못한다. 나는 오늘의 행복을 생각할 때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 처창즈에서의 고난에 찬 투쟁과 생활을 돌이켜보게 된다. 적들이 빚어낸 참화속에서도 굶주림속에서도 혁명의 승리를 철석같이 믿으며 불사조같이 싸운 처창즈인민들에게 있어서는 생활이 그대로 원쑤와의 결사전이였다. 안도현 처창즈유격근거지는 백두의 태고연한 밀림으로 둘러싸인 인적이 드문 고장으로서 적들이 《토벌》하기에는 불리하고 아군이 방어하기에는 비교적 유리한 지대였다. 처창즈근거지는 동만 여러 지방 근거지들보다 훨씬 늦은 1934년말에 이르러 창설되였다. 근거지에 대한 일제군경들의 《토벌》이 극심하여갔고 근거지봉쇄정책이 강화되는 조건에서 굶주림과 피어린 투쟁의 동란속에 시달리던 인민들이 적《토벌대》의 발광적인 살인만행을 피해 이곳에 집결되여 새로운 근거지가 창설되였었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화룡, 연길의 유격근거지들로부터 온 수많은 혁명군중들이 살고있었다. 그들은 이미 이 곳에 옮겨오기전에 화룡, 연길현의 각 근거지들에서 간고한 곤난을 겪어온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다시 살림을 꾸렸다. 골짜기들에는 인민혁명정부 기관들이며 학교, 병원, 병실들, 인민들이 사는 귀틀집들이 생겨났다. 당시 나는 이 곳에서 조직된 반일자위대에 속해있었다. 무장으로 근거지를 보위할 임무를 지닌 반일자위대원들은 매일같이 경계근무에 나섰고 군사훈련과 정치학습을 진행하였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우리 세상. 정말 힘이 솟고 사는것 같았다. 모두가 삶의 보람과 신심에 넘쳐있었다. 인민혁명정부의 시책들은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있었고 우리의 행복을 마련해주었다. 녀성들과 장년, 로인들, 누구나 할것없이 모두가 자신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여 일했다. 인민혁명정부는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그들에게 줄수 있는 모든것을 주면서 따뜻이 품어주고 받들어주었다. 소년들이 귀틀집학교에서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책에 또박또박 우리 글을 쓰는 광경은 모든 처창즈사람들의 가장 커다란 행복의 상징이였다. 그러나 그 행복을 지킨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처창즈사람들은 적들과 치렬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적들은 근거지를 봉쇄하는 한편 어떻게 하든지 근거지를 빼앗아보려고 발광적으로 달려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식량, 피복 등 필수품을 해결한다는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한홉의 식량을 구해오기 위해서도 피를 흘려야만 하였다. 적《토벌대》는 날이 갈수록 더욱 발악적으로 덤벼들었다. 그러기에 근거지의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전투동원태세를 늦출수 없었고 유사시에는 목숨으로 근거지를 지켜야 하였다.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밀림속에 자리잡은 처창즈는 너무도 척박한 고장이였다. 흔한것이란 울창한 밀림과 골짜기를 뒤덮은 눈뿐이였다. 워낙 단벌 토스레옷을 걸치고 맨주먹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인민들에게 있어서 겨울은 가장 곤난한 계절이였다. 낟알도 풀도 소금도 없었다. 굶주림은 사정없이 사람들을 쓸어눕히기 시작했다. 인민들은 크고작은 낫이며 칼을 들고 추위에 떨며 산에 올라가 힘자라는대로 소나무껍질을 벗겨먹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껍질을 벗긴 허연 소나무들이 늘어나 마침내 수림마저 보기에 처참했다. 그런가 하면 남녀로소가 언손으로 깊이 쌓인 눈밑을 헤치고 묵은 풀뿌리며 마른 머루순이며 감자넝쿨들을 캐여다가 소금도 없이 삶아먹었다. 이런것을 먹을 때는 목이 콱 막히는듯 했고 목에서 피가 나왔다. 그러나 그것마저 넉넉하지 않아서 못먹는 형편이였다.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참상을 앉아서 볼수 없어서 식량을 구하러 떠나갔다. 우리들 무장자위대원들도 사선을 헤치고 적들의 식량을 얼마간씩 로획해오군 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에 풀칠을 하기에도 모자랐다. 그리하여 식량을 분배할 때에는 마치 약제사가 약을 떠놓듯 조그마한 숟가락으로 손바닥에 나누어주었다. 실로 낟알 한알이 금덩이처럼 귀했다. 소금이 없어 몸들이 붓고 다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실로 형언할수 없는 몸서리치는 생활이 날과 달을 이어갔다. 그러나 누구도 곤경에 못이겨 생명을 스스로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일본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화룡현에서 온 한 로인은 굶어서 누운 처자들에게 끓인 소나무껍질을 내놓으며 말했다. 《일어들 나라. 일본놈들을 멸살시키기전에 우리가 눕다니, 그게 될 말이냐? 흙을 먹고라도 살아야 한다. 썩 일어들 나라.》 이 말에 누웠던 처자들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고무하고 원호하였다. 몸이 성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먹을것을 마련하여서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나눠주었다. 《형님, 힘을 내시우.》 《유격대가 또 원쑤를 쳤다오, 일어들 나시우.》 《살아서 왜놈 하나라도 죽여야 하지 않소.》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이렇게 인사말을 하였다. 누구나 백배천배 원쑤를 복수하지 않고서는 설혹 천길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죽어서는 안된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이것은 투쟁과 미래에 대한 자각이였고 혁명에 대한 열망이였다. 겨울의 한두달은 10년 맞잡이로 지루하게 흘러갔다. 어느덧 날씨가 누그러지고 해빛이 짙어왔다. 처창즈의 하늘에 날아드는 계절조들과 초목을 스쳐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은 기쁜 봄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처럼 기다리던 봄을 서서 맞이할 힘이 없었다, 누워서들 눈물어린 눈으로 봄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곡식을 심으라고 감자, 강냉이, 메밀, 조, 기장 등 얼마간의 종곡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전에는 《농군은 죽으면서도 종곡은 베고 죽는다.》는 속담을 진실로 외우군 하던 인민들이 이제는 더는 참을수 없어 종곡을 몰래 먹어버리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이미 괴로운 몸이 의지의 말을 듣지 않게 된것이였다. 그리하여 혁명조직과 정부에서 일하는 일군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종곡을 먹지 않도록 설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람들은 서로 부축여주며 또 의지하면서 느린 발걸음으로 파종하러 나갔다.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여서 밭으로 나갔다. 악전고투속에서 한치두치 땅은 뚜져졌고 한알두알 씨앗이 뿌려졌다. 그런데 밤을 자고나면 파종한 밭이 말끔히 파헤쳐지는 뜻밖의 일이 발생되였다. 그러나 인민들은 다시 파종했다. 그러면 또다시 파헤쳐지는 일이 생기였다. 후에 판명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대렬안에 잠입한 반혁명분자들은 농사를 망쳐놓음으로써 인민들을 굶겨죽이려고 책동하였던것이다. 놈들은 유격대가 원정을 떠날 때 인민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주고간 적지 않은 약담배를 팔아서 식량을 사올 생각은 하지도 않고 고의적으로 인민들을 굶겨죽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민들은 피할길 없는 굶주림과 싸우면서 동시에 숨은 원쑤들과 피어린 격투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간고한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것은 인민들이였다. 파종한 곡식은 끝내 싹이 트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그 싹이 종자로부터 솟아났지만 인민들이 흘린 피와 땀에서 솟아난것이나 다름없었다. 날이 갈수록 기아는 혹독한 전염병처럼 무자비하게 많은 생명들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명을 위한 결사전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처창즈의 산과 들에는 풀을 뜯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봄빛이 점점 짙어감에 따라 고사리, 삽주, 곰취, 송곳나물, 도라지, 둥굴레, 나리, 무수해, 넘나물 등 여러가지 나물들로 끼니를 에웠다. 지어 개구리알까지 서슴없이 먹었고 거덜이 난 《도로기》(겨울용가죽신)까지 삶아먹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였다. 이러한 나날에도 반일자위대는 초소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소금 한알없이 풀들만 먹으면서 총을 쥐고 보초를 섰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전신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맥이 없었다. 눈앞에는 간단없이 별꽃이 감돌았고 이따금 하늘과 땅이 거꾸로 보이기도 하였다. 이런 때면 총을 쥔채로 맥없이 그자리에 곤드라지군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일어났다. 살아도 죽어도 혁명을, 인민을 지켜야 했다. 생에 대한 포기는 변절이였고 리기주의는 반혁명처럼 해로왔다. 우리는 오직 의지의 힘으로 설수 있었고 인민에 대한 복무와 사랑의 정신으로 눈을 뜨고 발을 옮겨디딜수 있었고 또 총을 쏠수 있었다. 이런 때 우리에게 있어서 그중 나은 식량은 쇠스레나무와 봇나무였다. 물이 오른 쇠스레나무와 봇나무를 1m가량 껍질을 벗긴 다음 그밑에 그릇을 대고 한참 있노라면 한사발가량의 물이 고인다. 그 물을 마시면 속이 열리고 다소나마 힘이 생겼다. 이렇게 어려운 나날에도 적의 《토벌대》가 습격해오면 근거지를 보위하던 유격대원들과 자위대원들은 용기백배하여 적과의 결사전에 나섰다. 인민들도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를 도와나섰다. 처창즈의 유격대와 인민들은 오직 혁명적열정과 강철같이 굳은 단결의 힘으로 우세한 무장을 가진 적들을 때려부실수 있었다. 그러나 적의 대부대가 불의에 습격해올 때면 부득불 근거지의 일부를 내여주고 일단 모두 산으로 올랐다가 반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때면 적들은 근거지의 시설물을 파괴하고 불태우고 달아났다. 그러면 인민들은 이악스럽게 불탄 자리에 또다시 귀틀집을 세웠다. 이러한 일은 실로 헤아릴수 없이 반복되였다. 《원쑤놈들아, 네놈들이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어디 겨루어보자.》 《놈들때문에 집짓는 기술이 늘겠는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금 귀틀집을 일으켜세웠다. 원쑤들은 근거지의 집들을 불태울수는 있었으나 그속에 깃든 혁명적인민들의 굳센 의지까지 없앨수는 없었다. 여기에 바로 처창즈인민들의 불굴의 힘이 있었다. 이것은 미래를 사랑하며 행복이란 어떤것인가를 아는 사람들의 힘이 얼마나 굳센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난관이 심할수록 군중들에 대한 정치사업은 매우 중요하였다. 간부들은 보리이삭이 패기전에는 보리대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오래지 않아 이삭이 나올것이니 난관을 이기자고 고무했다. 보리이삭이 나올 때는 그 풋이삭을 들고다니면서 오래지 않아 햇곡식이 날것이니 락망하지 말라고 서로서로 힘을 북돋아주었다. 인민들은 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실로 초인간적인 인내성으로 난관과 싸워나갔다. 밭에는 풀이 무성했다. 인민들은 또다시 밭으로 기여나가 손끝에서 피가 나도록 김을 맸다. 설사 호미가 있어도 들 힘이 없었다. 김을 매다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묻을 맥이 없었다. 한줌씩, 두줌씩 흙을 모아 복수의 눈물, 원한의 눈물을 적시며 그 시체를 묻었다. 뜯어먹을 풀마저 없어졌다. 산 사람들의 마지막 생명마저 경각에 다달았다. 그러나 누구하나 근거지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거지는 삶의 집이였고 투쟁의 요람이였다. 단 하루를 살아도 자기의 주권과 유격대의 보호아래 살고있다는 행복감이 그처럼 불굴의 힘을 낳게 하였다. 그들은 근거지생활을 통하여 행복이 무엇인가를 똑똑이 알고있었기에 그 행복으로부터 조금도 물러설수가 없었다. 사지가 떨어지면 가슴으로, 가슴이 없어지면 이발로라도 지켜야 할 근거지였다. 인민들은 원쑤들에게 가산을 략탈당했고 가족을 잃었고 빈몸으로 된 사람들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또한 유격대의 가족들이였다. 그러므로 혁명과 유격대는 그들의 제일생명이였고 삶의 보람도 거기에서 찾았다. 《혁명을 위하여 끝까지 살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유격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죽어도 혁명을 위하여!》 인민들은 이러한 혁명적지조를 가다듬고 고무하면서 서로 어깨를 잡고 풀 뜯으러 갔고 한알의 소금을 쪼개여 먹으면서 근거지를 사수하였다. 마침내 햇곡식을 먹을수 있게 되였다. 이 햇곡식을 먹으면서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란 한사람도 없었다. 이무렵에 멀리에 나가 활동하던 유격대가 돌아왔다. 유격대원들을 껴안은 인민들은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한 유격대원은 자기 어머니가 있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누군지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늘 동무를 기다리면서 말씀했어요. 〈난 그저 쌀 한숟가락만 먹었으면 아들 올 때까지 살것 같네.〉하구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 소원마저 못 푸셨어요.》 이 말을 들은 유격대원은 비분에 떨었다. 그의 손에서 자그마한 주머니가 떨어졌다. 그것은 쌀주머니였다. 그는 행군과 전투시에 가슴을 허비는 주림을 참으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그 쌀을 간수해온것이였다. 유격대원들은 인민들의 전대미문의 영웅주의에 감격하면서도 이러한 참상을 빚어놓은데는 그 어떤 못된자들의 악행이 숨어있음을 간파하였다. 참상을 빚어놓은 원인을 찾기 위하여 유격대와 인민들은 회의를 가졌다. 문제가 차츰 명백해지자 대렬안에 숨어있던 반혁명종파분자들은 달아나버렸다. 우리는 그때 대내의 원쑤가 얼마나 혁명에 위험한가를 똑똑히 느꼈고 혁명대오와 조직군중의 순결성을 위하여 모두가 경각성을 높이여 투쟁해야 한다는것을 가슴에 사무치게 느꼈다. 유격대가 돌아온후 근거지는 다시금 활기를 띠고 소생하였다. 녀인들은 나물을 캐오면 맛있는것은 유격대원들에게 주려고 따로 모았고 쑥떡, 송기떡을 해서는 자신들은 못먹으면서도 한사코 유격대원들에게 권했다. 지어 소년들마저 처창즈를 끼고 흐르는 고동하에서 고기나 개구리를 잡으면 자기들은 주림에 쓰러지면서도 그것을 전투에서 돌아올 유격대원들을 위하여 남겨두었다. 그들은 풀을 뜯으면서도 유격대원들을 위로하려고 연예종목을 준비하였다. 어느날 밤 아동단원들은 유격대원들앞에서 연예공연을 하였다. 소박한 무대우에서 여러명의 소년들이 춤추며 《총동원가》를 불렀다. 이때 한 소년이 현기증으로 그만 무대우에서 쓰러졌다. 노래는 끊어졌다. 모든 관중이 일어났다. 한 유격대원이 무대에 뛰여올라 소년을 안아들었다. 그러자 소년은 다시금 가느다란 목에 힘을 모두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왔고나 왔고나 혁명이 왔고나 혁명의 기세는 전세계를 덮었다 돈없는 로동자 망치 메고 나오고 땅없는 농민은 호미 메고 나오라 … 모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소년들의 노래소리에 합세하였다. 눈물섞인 《총동원가》는 처창즈의 밤하늘을 흔들었다. 유격대원들 역시 인민들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투쟁했다. 그들은 생명과 식량을 바꿔왔고 자신들은 굶으면서도 인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수많은 군중의 식량을 해결한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였다. 유격대와 인민과의 철석같은 단결로 하여 처창즈는 살아 숨쉬였으며 기여드는 원쑤들을 쳐물리치면서 자기의 권리와 자유를 수호했다. 적들의 《토벌》은 더욱 심해져 놈들은 점점 더 대부대로 몰려왔고 더욱 발악적으로 덤벼들었다. 심지어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폭격하였다. 실로 사활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처창즈의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숨지는 한이 있더라도 근거지를 지키고야말리라는 비상한 열정으로 들끓었다. 처창즈의 유격대원들과 자위대원들은 한사람이 열놈, 백놈의 적을 맞받아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실로 형언할수 없는 간고한 싸움이였다. 탄알이 떨어지면 작탄으로, 작탄이 떨어지면 총창과 총탁으로 육탄이 되여 적을 까눕혔다. 이러한 때면 피신했던 인민들까지 도와나섰다. 바위를 굴리는 사람들, 부상당한 동무들을 업어나르는 로인들, 실로 처창즈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까지 원쑤를 까눕히며 싸웠다. 처창즈는 이렇게 결사전에 나섰고 적을 쳐부셨다. 굶주림속에서, 추위속에서, 적의 총검의 숲속에서, 원쑤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속에서도 광명한 미래를 믿은 처창즈인민들은 살아있었으며 피에 물든 혁명의 기발을 높이높이 추켜들었다. 1935년 9월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로선에 따라 유격근거지들을 해산시키게 되였다. 조성된 새로운 혁명정세는 협소한 유격구역에 인민들을 집결시키고 적의 집중공격을 받을것이 아니라 유격근거지를 해산하고 유격투쟁을 더욱 광활한 지역에 걸쳐서 기동적으로 전개할것을 요구하였다. 거듭되는 회의가 열렸다. 그것은 인민들이 근거지로부터 그리고 유격대의 곁을 한사코 떠나가지 않으려 했기때문이였다. 혁명정부일군들과 유격대지휘관들은 인민들을 거듭 설복하고 해설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민들은 북받치는 눈물을 삼킬뿐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연길에서 온 한 로인은 울면서 말했다. 《어떻게 적통치구역으로 내려가겠소. 난 원쑤들에게 다섯식구를 잃은 몸이요. 차마 못 떠나겠소. 여기서는 풀을 먹어도 우리의 세상이였소. 우리의 주권은 나에게 토지까지 주었소. 늘그막에 우리 글까지 배웠소. 정말 사는것 같소. 그런데 어떻게 이곳을 떠난단 말이요?!》 이것이 어찌 이 로인 혼자의 심정이였겠는가. 누구나 삶과 투쟁의 요람인 처창즈를 떠나기 괴로와했다. 그들에게는 사실 적통치구역으로 내려가는 길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원쑤는 인간이 아니라 승냥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아는 그들은 이번에는 유격대를 따라가겠다고 애원했다. 그러나 이것도 불가능한것이였다. 몸가눔도 잘할수 없는 그들이 산야를 줄달음쳐다니는 유격대를 어떻게 따라다닐수 있으랴. 오랜 설복끝에야 인민들은 적통치구역으로, 더러는 더욱 깊은 산중으로, 일부 젊은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유격대를 따라가게 되였다.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혁명을 위해 살겠소.》 이것은 적통치구역으로 떠나가는 인민들이 다시다시 유격대원들을 돌아보며 울면서 한 말이였다. 이렇게 처창즈인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이렇게 처창즈인민들은 불사신처럼 싸웠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고 회상하느라면 처창즈의 끓는 심장들이 올린 활활 타는 혁명의 불길이 보이는것 같다. 그 불길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뜨겁게 타오를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