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의 약점을 간파하고
윤 태 홍
자기 목숨보다 혁명이 귀중하며 자기 한 개인의 청춘보다 조국의 자유독립과 인민의 행복이 더 귀중하다는 생각을 할 때에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떻게 싸워야 하겠습니까. 우선 정확한 전투계획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적들을 타승할수 있는 우리의 우점은 무엇이고 적들의 약점은 무엇인가, 또한 우리에게는 부족점이 없는가,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가, 이렇게 하나하나 잘 생각하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가 유격대에 입대하던 때부터 이렇게 친히 가르쳐주고 백전백승하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키워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어떠한 역경에서도 반드시 승리할것을 확신하며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싸웠고 싸우면 반드시 이겼다. 이제 이야기하는 《룡강불무지전투》도 바로 그이의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새기고 싸워이긴 전투중의 하나이다. 1937년 겨울 우리가 사령부와 멀리 떨어진 화전, 림강, 류하 등지에서 장기간 활동하다가 그이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다시 돌아오던 길이였다. 이때 우리에게는 이미 준비하였던 식량, 탄약도 거의나 떨어졌었다. 그런데 도중에서 린접부대의 환자들과 로약자들(40여명)을 만나 그들을 호송해줘야 했으므로 우리에게는 더욱더 애로와 난관이 조성되였다. 특히 림강밀영을 떠난지 며칠후부터는 식량이 완전히 떨어졌다. 그러나 눈이 길길이 쌓인 무인지경 심산속 어디에서도 식량을 보충할 도리가 없었다. 산나물이나 나무열매, 칡뿌리 등으로 연명한다는것도 여름에나 있을 일이였다. 게다가 적들은 도처에서 계속 집요하게 달려들어 가렬한 전투는 그칠사이가 없었다. 환자들과 로약자들을 업거나 이끌면서 한쪽으로는 적과 싸우고 또 한쪽으로는 사나운 눈보라와 생눈길을 뚫고 헤치며 룡강산줄기의 험준한 길을 톺아오르던 전우들, 그들은 실로 그 어떤 고비에서도 물러서거나 헛되이 쓰러진 일이 결코 없었다. (혁명을 위해 나선 우리가 어떻게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쓰러질수 있으랴. 단 한개의 탄알이라도 남아있는한 그리고 붉은 심장과 드센 주먹이 있는한 어떻게 한놈의 원쑤인들 살려둘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교양육성하신 소년중대 대원인 김택만동무가 불뿜는 적의 화점에 달려들어 기관총을 빼앗고 적 헌병순찰대를 몽땅 섬멸해버린 바위산전투도 바로 이때의 싸움이였으며 적 500여명의 공격을 불과 수십명의 동무들로써 물리쳐 승리한 삼차자령전투도 바로 이 행군과정에 있은 전투였다. 이렇게 우리가 가렬한 투쟁속에서 험준한 령들을 넘어선것은 1938년 1월 23일 저녁이였다. 그토록 악착하게 달려들던 적들의 발악이 한풀 꺾이운 때라 우리는 오래간만에 류도거우부근 산중턱에서 숙영을 하게 되였다. 여기저기 깊은 눈무지속에 구멍을 파고 마른나무가지들을 주어다가 불을 피우고 눈을 녹여 더운 물을 마셨다. 그리고 어느때에 또 나타날지 모를 적들을 경계하면서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이러는 사이에 여러날 시달린 피곤과 졸음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대원들은 불무지옆에 앉아 눈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였다. 박성철동지를 비롯한 지휘성원들은 감시근무를 보살피면서 번갈아 짬짬이 휴식을 하고있었다. 이렇게 하여 얼마쯤 시간이 지난 후였다. 감시초로부터 적의 대부대가 나타났다는 전달이 왔다. 밖에 나가보니 우리가 정한 숙영지 맞은편 산턱아래 벌판에서 적들의 수많은 불무지가 불타오르고있었다. 우리는 즉시 정찰조를 파견하였다. 그 사이에도 적들의 불무지는 점점 더 많아져서 순식간에 수백개로 늘어갔다. 얼마후에는 10여리가 잘 되는 넓은 벌판이 온통 불바다로 되는듯 했다. 《불무지 하나에 대략 10놈씩만 쳐도 6,000~7,000명은 될것 같군.》 일부 환자들이 어느 사이에 밖으로 나왔는지 우리 곁에서 이런 말들을 했다. 얼마 안되는 소수인원으로써 만일 그대로 있다가 날이 밝는다면 적의 대부대공격을 어떻게 막아내겠느냐 하면서 그들은 이날 밤 휴식을 그만두고 행군을 계속하자는것이였다. 사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적의 대부대와 싸우기에는 매우 불리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적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곳을 떠날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장기간의 간고한 전투와 행군에서 지치고 며칠째 굶다싶이한 우리 동무들이 환자들과 로약자들을 데리고 적의 대부대추격이 예견되는 개활지대로 나선다는것은 무모한 일이였다. 박성철동지와 나는 대원들을 만나 의논해보았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야 할것이 무엇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어 어떠한 역경에서도 주도권을 견지하고 부닥친 국면을 유리하게 전변시키는 문제였다. 그러므로 적들이 설사 우리보다 몇백배의 량적우세를 차지했고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추호도 놀랄것은 없었다. 오히려 적들이 가지고있는 모순과 약점들을 옳게 리용한다면 우리는 적들을 능히 타승할수 있었다. 그것은 정찰나갔던 동무들의 보고에 의하여 더욱 명백해졌다. 벌판에 널려있는 그 많은 불무지중에서 1,000명정도의 일제놈들을 내놓고는 거의 전부가 놈들에게 강제로 끌려온 농민들이였다. 일제놈들은 그 농민들에게도 제놈들과 비슷한 위장포를 씌우고 숙영지주변에 있는 불무지들에서 밤을 새우게 하고 제놈들은 그 복판에 들어가 누워잔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놈들이 수량상 우세를 믿고 달려들기는 하나 항상 유격대의 위력앞에 공포를 느끼고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것이였다. 또한 놈들은 여기까지 기여드는사이에 벌써 발이 부르터서 대부분 장교놈들은 제발로 걷지 못하고 농민들에게 메운 담가를 타고다니는 형편이였다. 그리고 모두가 불무지곁에 신발을 벗은채 잠에 곯아떨어져있다는것이였다. 우리가 이러한 때를 놓치지 않고 불의에 달려들어 우선 적의 지휘부를 습격소탕해버린다면 공포에 싸인채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적병들은 무질서한 저항으로부터 결국은 혼란에 빠져서 제놈들끼리 개싸움질을 하게 될것이 명백하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가르쳐주셨고 실지 전투에서 실증하여주신 여러가지 현명한 전술가운데서 마침내 우리가 취할 방도를 찾아냈다. 일부 동무들은 부상자들과 로약자들을 보호하면서 숙영장소에 남아있게 하고 박성철동지가 인솔한 대원들과 내가 인솔한 경기관총분대원들중에서 건강한 동무들만을 선발하여 길을 떠났다. 산우에서 내려다 볼 때는 손에 닿을듯 한 곳이였으나 막상 길을 떠나고보니 눈이 깊어서 행동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얼마후에 우리가 적진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그 부근 수림속에서 나무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밀히 접근해본즉 놈들의 감시속에서 농민들이 밤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불피울 나무를 찍고있었다. 이에 우리 동무들은 더욱 격분하였다. 우리는 적감시병을 감쪽같이 제껴치우고 나무찍는 농민들과 만났다. 농민들은 우리를 알아보자 너무도 반가와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묻는 이외에도 여러가지로 적들의 동태를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특히 우리는 적지휘부의 위치와 방비상태에 대해서 세세히 알아냈다. 그리고 우리는 농민들에 대한 안전대책을 철저히 세운 다음에 적들의 지휘부를 중심목표로 접근했다. 이때 우리가 시킨대로 농민들은 계속 나무찍는 소리를 쿵쿵 내여 깊은 밤 밀림속의 정적을 흔들었다. 적들쪽에서는 아무런 인적기도 느끼지 못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너무도 태연히 다가서는 바람에 적의 보초놈까지도 미처 군호를 묻지 못했다. 이때 우리는 의복과 무장까지도 적들과 비슷하게 차렸으므로 아마 보초놈은 우리를 제놈들의 순찰대인줄로 짐작했던것 같았다. 그러나 방심할수는 없었다. 적의 보초놈이 우리 대렬선두에 시선을 돌리고있을 때에 내곁에 있던 리동화련락병과 또 한동무가 어둠을 리용하여 딴 방향으로 접근했다. 매우 긴장한 순간이였다. 우리는 계속 적의 지휘부불무지를 향해 들어가고있었다. 적의 보초가 50~60m쯤 앞에 있을 때였다. 《누구냐!》하고 보초놈이 황급히 소리를 쳤다. 그러자 그 부근 불무지에서 자다가 놀라 깬 몇몇 교대병놈들이 저마다 총을 더듬어쥐는것이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물론 우리가 일제히 사격을 들이댄다면 몇몇 교대병놈들을 쓸어눕히는것쯤은 문제도 아니였다. 그러나 총소리에 따라 적지휘부에서 장교놈들이 깨여나는 날이면 전투는 예정한 성과를 기대할수 없는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어둠속으로 뛰여들어간 리동화련락병과 또 한명의 대원이 적보초놈의 뒤통수를 총탁으로 쳤다. 동시에 총을 잡고 일어서는 교대병놈들을 계속 후려쳤다. 이것은 순간의 일이였다. 이때 박성철동지가 인솔한 동무들은 이미 적지휘부곁에 있는 낮은 언덕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불을 뿜기 시작했다. 나도 이때 경기관총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리동화동무가 싸우는것을 도와주는사이에 이미 우리 동무들이 앞질러 뛰여들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경기관총을 쏠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기로 사격하기 좋은 위치를 찾아서려는데 적지휘부쪽에서 적장교 몇놈이 황급히 달려나왔다. 놈들은 미처 옷도 바로 입지 못한채였다. (이놈들을 놓쳐서는 안된다.)하는 생각에 나는 육박전을 하게 되였다. 우선 그중에 장교놈부터 먼저 불무지쪽에 후려넘겼다. 이렇게 두놈째 마주섰을 때에 그 뒤의 다른 동무들이 놈들을 이미 한놈씩 그러안고 불무지옆에서 딩굴기도 하고 불무지속에 처넣는것이 보였다. 그 다음에야 나는 경기를 그러안고 박성철동지가 사격하는 우측으로 나서며 적지휘부 불무지들을 향해 마음껏 불을 뿜을수 있었다. 신을 벗은채로 허둥지둥 방향없이 내뛰다가 쓰러지는 놈들이며 모포를 그러안은채 불무지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놈들, 겨우 총을 더듬어잡고 목표없이 앞뒤로 란사하는 놈들, 적진은 순식간에 일대 수라장으로 변하였다. 주변은 여기저기 어수선히 쓰러진 적들의 시체로 뒤덮여갔다. 총알이 나가는대로 사방에서 불티가 튀여오르고 적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길과 총탄속에서 이리저리 무리를 지어 날치다가 계속 쓰러졌다. 우리는 적진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 맹렬한 사격을 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적의 지휘부와 그 부근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소탕해버렸을 때 사처에 널려있는 다른 불무지들의 적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아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놈들에게도 계속 불을 뿜었다. 이렇게 놈들을 연거퍼 쓸어눕히며 한바탕 놈들의 숙영지중심을 뒤집어놓은 우리는 일정한 기회에 맞은켠쪽으로 적진중심을 갈라나가면서 계속 좌우로 불을 뿜었다. 쓰러지는 적들은 아우성을 쳤다. 불무지는 사납게 타올랐다. 연기와 눈보라속에서 발길에 채이는 적들의 시체를 넘으며 우리가 적진을 벗어져나오자 극도의 혼란에 빠진 적의 숙영지는 불속에 싸인 개미둥지와 흡사하였다. 불의의 타격에 넋을 잃고 미쳐날뛰던 놈들은 마침내 개싸움질을 시작했다. 우리가 불을 뿜으며 뚫고지나온 숙영지중심을 향하여 놈들은 좌우쪽에서 서로 총질을 하게 된것이다. 서로 쏘고 쓰러지고 비명을 올리면서 계속 저희들끼리 란투를 하고있는 그 꼴은 과연 볼만한 일이였다. 숙영지 한쪽 산비탈에서는 농민들이 나무몽둥이로 허둥지둥 내뛰는 일부 놈들을 때려눕히고있었다. 일제놈들의 총칼아래서 마소처럼 천대를 받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있던 인민들, 그들이 새힘과 투지를 가지고 일어나 싸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농민들이 무사히 돌아가도록 엄호해준 다음에 우리가 숙영장소로 돌아온 때에도 적들이 서로 싸우는 총소리는 계속 울리고있었다. 날이 밝은 뒤에야 적들은 수많은 시체를 끌고 도망치고말았다. 우리는 얼마간 휴식을 보장한 후에 한결 새로운 기세로 행군을 계속하였다. 이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지난날의 투쟁들을 지금도 잊지 않고 생각하면서 무한한 긍지와 새힘을 느낀다. 어떠한 역경에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깊이 명심하고 승리를 확신하며 싸워이긴 지난날들처럼 바로 오늘도 그이의 가르침대로 확고한 승리의 신념을 품고 싸울 때 우리앞에는 뚫지 못할 난관이 없으며 타승하지 못할 적이란 있을수 없다. 우리는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하며 또 이길수 있다. 바로 이러한 신심이 나의 가슴에 끓고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