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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참다운 주인공이 되라
리 오 송
오늘 우리 시대의 어린이들은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자라며 마음껏 배우고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어린이들의 명랑한 얼굴과 그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볼 때마다 누구나 할것없이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크나큰 사랑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국땅에서 학대받고 천대받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난 나의 어린시절은 참으로 비참하였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한창 재롱을 부려야 할 나이때부터 나는 입을것을 못입은채 굶주린 창자를 졸라매고 나무를 해야 했으며 지주놈의 소를 먹여야 했다. 이러한 내가 어찌 학교에 갈 생각을 꿈엔들 할수 있었으랴. 설상가상으로 나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모진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 병에 걸린 어머니는 약한첩 써보지 못하고 어린 나와 녀동생을 남겨놓고 원한에 찬 눈을 감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그후에 아버지마저 굶어 돌아가시고 고아로 된 나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들어가 사령관동지의 따뜻한 손길아래 자라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나에게 있어서는 오늘의 벅찬 현실을 볼 때 다시금 지난날의 잊을수 없는 가지가지의 일들을 회상하게 된다. 나와 같이 어려서 부모를 원쑤놈들에게 잃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간 많은 소년, 소녀들이 모두가 한결같이 해빛처럼 따사로운 사령관동지의 사랑속에서 혁명의 전사로 자라났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 우리 나어린 동무들에게 동무들은 조국의 미래이며 장래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참다운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건전한 사상으로 무장하며 신심을 단련하여야 합니다라고 항상 가르치신 말씀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일과 같이 적과 치렬한 싸움을 하는 전투원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돌보시였다.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우리 어린 대원들에게 돌려주신 사령관동지의 끊임없는 지도와 사랑은 지극히 컸다. 부모없는 고아들인 우리들에게 옷과 신발, 연필과 학습장을 마련하여주시였으며 참된 혁명전사가 되라고 몸소 글을 가르쳐주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은혜를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그뿐이랴.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어린 대원들을 온갖 난관과 시련을 용감히 뚫고나아갈수 있는 불굴의 투사로, 동지들을 위할줄 아는 고상한 품성의 소유자로 키워주시였다. 1940년 여름 부대가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안도현의 어느 밀림속을 행군하던 때에 있은 일이다.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떨어질줄 모르는 적들을 하루에도 몇차례씩 격퇴하면서 행군을 계속하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았던 식량마저 떨어지고말았다. 풀죽으로 끼니를 에워가며 계속하는 행군은 나어린 우리들에게 있어서 참기 어려운 고된 일이였다. 등에 짊어진 배낭은 점점 어깨를 파고들며 총을 다룰수 없을만큼 무거워졌다. 온종일 걸음을 다그치다가 잠시 휴식을 하게 되면 몸이 솜처럼 노그라져 천길 땅속에라도 잦아드는감을 느꼈다. 그러나 사령부의 전령병인 우리들에게는 자신이 힘든것보다도 사령관동지께 변변한 식사를 대접하지 못하는것이 가슴아팠다. 비상용으로 남겨두었던 얼마간의 밀가루마저 떨어지게 된 어느날 우리들은 휴식시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 나물을 뜯었다. 이렇게 뜯은것을 저녁에 모아보니 두어배낭은 실히 되였다. 우리 전령병들은 모여앉아 이 나물을 펴놓고 연하고 깨끗한것을 골라내였다. 두번, 세번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런 다음 배낭을 털어모은 두어줌되는 밀가루와 함께 밥통에 넣고 죽을 쑤었다. 우리는 그것을 천막안에 계시는 사령관동지께 가져다드린 다음 다시 우리가 먹을 나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비록 그것이 풀죽이기는 하지만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들의 성의가 깃든 죽을 드시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들이 식사를 하려고 우등불가에 둘러앉은것은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깃든 때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이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밥통을 한손에 드시고 천막에서 나오시여 우리의 곁에 와앉으시면서 《식사란 여럿이 함께 해야 맛이 더 나는 법이요.》라고 하시며 밥통을 앞에 내놓으시였다. 그리고 우리가 먹으려고 만든 풀죽을 손수 한술 떠잡수시고나서 《동무들의것이 참 맛이 있구만.》라고 하시면서 밥통에 들었던 풀죽을 우리들한테 골고루 나누어주려고 하시였다. 우리는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모두들 자리에서 한걸음씩 뒤로 물러앉으며 그이께서 떠주시는 풀죽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령관동지께서는 곁에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그러지들 말고 자, 어서 오송이부터 받소.》라고 하시였다. 나는 어떻게 할바를 몰랐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인들 어찌 이보다 더하랴.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에 나는 사양할 말문을 잃고 그이께서 떠주시는 풀죽을 받아들고야말았다. 나는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에 울컥 치밀어 죽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이것은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머리에는 어머니가 살아계시던 어린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함께 써레질을 하고있노라면 어머니가 점심밥을 함지에 담아이고 나오시군 하였다. 없는 반찬에 내가 점심을 맛있게 먹을 때면 곁에 앉아 애정어린 눈매로 지켜보군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우리들이 맛있게 먹는것을 지켜보고계시는 사령관동지에게서 나는 그전날의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식사가 끝나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의 어깨를 일일이 만져보시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동무들, 오늘 배낭이 퍽 무거웠지요.》 《무겁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한결같이 이렇게 말씀드리자 《왜 무겁지 않았겠소. 식량이 들어있지 않으니 배낭은 퍽 가벼워졌을지 모르나 실상은 종전보다 몇배 더 무거웠을것이요. 동무들, 그렇지 않소?》 이렇게 다시 물으시며 우리를 둘러보시였다. 우리들의 심정을 그처럼 깊이 알고계시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에 우리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였다. 어떻소, 행군이 고되여 힘겨울 때, 이처럼 매일같이 풀죽으로 끼니를 에울 때마다 집생각이 나지들 않소. 이렇게 물으시기에 내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사령관동지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오송동무의 말이 옳소. 곤난에 빠졌을 때 집생각을 하거나 마음을 약하게 가지는 사람은 참된 대원이 아니요. 참된 대원이 되자면, 진정한 혁명투사가 되자면 어떠한 곤난이라도 극복할줄 알아야 하오. 그래야 우리 조국을 광복하고 미래의 참다운 주인이 될수 있소라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는 어떤 곤난이라도 참아가며 원쑤들과 싸워이겨야 한다, 우리는 승리할수 있으며 멀지 않은 앞날에 반드시 잘 살수 있는 광명한 행복의 날이 온다고 차근차근 말씀하여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하시는 말씀에서 우리는 막혔던 앞이 환히 트이는것을 느꼈다. 피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 새로운 용기가 샘처럼 온몸에 용솟음쳤다. 《자, 동무들, 용기를 내여 노래를 불러보오. 누가 먼저 부르겠소?》 사령관동지의 말씀에 우리는 앞을 다투어 모두 벌떡 일어섰다.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 빨리 나가자 …
우리들은 앞뒤산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기운차게 노래를 불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의 노래를 들으신 후에도 곤난한 때일수록 서로 돕고 받들어주어야 하며 잠시도 해이해져서는 안된다고 일러주시고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날밤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부모도 누나와 동생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령관동지의 육친적사랑이 있고 그이의 따뜻한 품이 있다. 그리고 우리를 아끼고 도와주는 혁명선배들, 친근한 동무들과 함께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사령관동지의 고귀한 은정에, 혁명동지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그들처럼 강의한 투사가 되여야 한다.) 나는 몇번이고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후 나는 이 뜻깊은 날 저녁에 있은 일과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었다. 헤아릴수 없이 큰 난관이 앞을 가로막을 때에도 언제나 그날밤 그이의 말씀을 회상하면서 용감히 뚫고나아갔다. 어린 전사들에 대한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 그것은 한없이 깊고도 넓었다. 그러기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의 잘못에 대하여서는 언제나 엄하게 타일러 고쳐주시였다. 1937년 부대가 장백현 7도구근방에서 활동하던 때라고 생각된다. 그때 소년중대에는 리두익, 조명선동무들을 비롯한 30여명의 나어린 전사들이 있었다. 부대가 밀림속에서 숙영하고있던 어느날 밤늦도록 책을 읽고계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년중대가 숙영하고있는데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소년중대동무들은 깊이 잠들고있었다. 벗어던진 모포를 거두어서 덮어주기도 하시면서 그들의 잠자리를 돌아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문득 이들이 모두 신발을 벗어놓고 자는데 주의를 돌리시였다. 이윽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곧 소년중대의 지휘성원들을 부르시였다. 《어째서 이 애들의 신발을 벗겨 재웠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엄격하고도 걱정어린 어조로 이렇게 물으시였다. 침묵이 흘렀다. 한참만에야 작식책임자인 녀동무가 《신발을 신은채 자는것이 너무 애처로와서 … 제가 그만 …》하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더운 여름철 여러날의 행군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한번도 신발을 벗고 시원하게 쉬여보지 못하는것은 누구나 할것없이 느끼는 고충의 하나였다. 후에 듣고 안 일이지만 이날밤 소년중대동무들이 한번 신발을 벗고 자겠다고 못견디게 졸라대여 작식책임자동무가 할수없이 허락하였다고 한다. 한참이나 묵묵히 생각에 잠기셨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윽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 소년들이 어떤 애들인줄 아는가. 물론 신발을 벗겨 재우면 좋은줄이야 누가 모르겠는가. 우리는 장차 조국의 운명을 두어깨에 걸머지고 나아갈 일군들을 키우고있소. 우리는 이 애들이 어떤 곤난과 난관도 두려움없이 뚫고나아갈수 있는 백절불굴의 혁명가로 자라도록 키워야 하오. 그러기에 오늘은 비록 가슴이 아프지만 강하게 요구도 하고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책망도 하고 때로는 처벌까지도 적용해야 하는것이요.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것은 그저 그들이 하자는대로 시켜두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그들이 혁명가로,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자라도록 가르치며 이끌어주는데 있소. 사령관동지의 간곡한 말씀에 작식책임자는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어린 전사들에 대한 사령관동지의 깊고도 넓은 사랑, 지극한 배려밑에 우리는 자라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늘 생각한다. 무엇으로 이 바다보다도 깊은 은혜에 보답할것인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에 충실하여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혁명의 길에서 언제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아갈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질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