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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쑤를 몰아내고 꼭 돌아오리다
임 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1943년 7월 어느날 나는 지휘부로부터 도문과 연길시내의 적정을 정찰할 과업을 받고 리정섭동무와 함께 훈춘현 밀강구 쏙새골 렴로인한테로 나왔다. 우리는 이미 그해 3월에 이곳에 온 일이 있었는데 그때 렴로인과 그의 아들과도 련계를 맺어두었던것이다. 렴로인의 초막이 바라보이는 뒤산에 다달으자 우리는 숲속에서 초막안의 동정을 살폈다. 모피가 지붕우에 널려있는 초막안에서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혹시 아들이 올라와있는 모양인가? 그렇지 않으면 전번에 우리가 왔다간것을 알아차리고 적들이 기여든것이나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렴로인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신호를 듣자 렴로인은 사위를 휙 둘러보고나서 우리가 숨어있는 숲속으로 달려왔다. 《임자들을 또 보게 되니 참 반갑네. 얼마나 고생들 했나.》 로인은 우리를 보고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렴로인에게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주저하는 눈치가 보이였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할아버지,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 임자가 어떻게 생각할는지.》 로인은 말꼬리를 흐리더니 한참만에야 결심한듯 말을 이었다. 《임자의 아버지가 와계시네.》 《아니, 저의 아버지가요?》 나는 너무나 뜻밖이여서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얼마나 그립던 아버지인가. 헤여져서 10년동안 하루도 잊어본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나는 초막을 향하여 달려내려가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이 곳에 올줄을 어떻게 알고오셨을가.) 필경 여기에는 무슨 곡절이 있다. 나는 렴로인에게 말하였다. 《할아버지, 먼저 내려가십시오. 우리는 저녁에 내려가겠습니다.》 렴로인을 먼저 내려보낸 다음 우리는 그 일대의 동향을 감시하면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어떻게 되여 아버지가 이곳에 오셨을가?) 줄곧 이 한가지 생각으로 나의 마음은 죄여들었다. (아버지가 적의 강요에 못이겨 오시지나 않았을가? 아버지가 나에게 귀순할것을 한마디라도 권유한다면 나도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돌려세우리라.) 나는 이렇게 몇번이고 다짐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우리는 줄곧 감시를 계속했으나 별다른 징조가 없었다. 우리는 초막으로 내려갔다. 머리에는 벌써 백발이 성성하였고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잡힌 아버지를 보았을 때 나는 《아버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하고 한마디 인사를 드린 다음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도 떨리는 손으로 나의 손을 더듬어 잡은채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철아, 죽기전에 너를 보는구나.》 가슴속에 쌓이고쌓였던 회포를 한꺼번에 털어놓는듯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목이 메였다. 이윽고 아버지는 자기가 여기로 오게 된 경위를 말하였다. 우리가 지난봄에 이곳에 왔다간것을 알게 된 일제놈들은 동경성부근에서 살고있는 아버지를 강제로 이곳에 보내였다. 놈들은 아버지를 보내면서 아들을 데려오면 잘 살게 해준다고 감언리설을 다하더라는것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속심으로는 이 기회에 아들이나 한번 더 만나볼 한가지 생각으로 떠나왔다는것이였다. 《죽기전에 너나 한번 더 보고싶어서 왔다. 놈들은 너를 데리고오라고 하더라만 아들을 잡아다 원쑤에게 내여줄 애비가 어디 있겠니. 이젠 너를 보았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이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밤이 깊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아버지곁에 누웠다. 아버지는 이따금씩 눈물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잠들지 못하였다. 나도 잠들수가 없었다. 지난날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던 나의 어린시절이 눈앞에 떠올랐다. 병으로 오래동안 앓던탓으로 7살까지 제대로 걷지 못하던 나를 추켜세워보려고 아버지는 모든것을 아끼지 않았었다. 가재를 잡아먹이면 좋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자 아버지는 오래동안 정들었던 고장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가재가 많은 밀강구로 이사해왔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나를 업고 내가를 오르내리면서 가재를 잡아서 구워주었고 나의 몸이 추서자 아버지는 곤궁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학교에 보내주었다. 얼마나 고마운 아버지인가. 나는 아버지의 손을 가만히 잡고 만져보았다. 아버지의 손등은 거북등처럼 터있었다. (철없는 동생들을 데리고 고생인들 얼마나 했으랴.) 내가 떠난후 아버지는 살길을 찾아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동경성으로 정처없이 방황하였다고 한다. 유격대의 가족이라고 부락에서 무슨 일만 생겨도 경찰에 붙잡혀가 고생하기가 일쑤였고 하루한시도 마음놓고 생활하지 못했다는것이다. 인제는 모든 시름을 아들, 손자들에게 맡기고 여생을 편안히 즐겨야 할 때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 나의 가슴은 메여지는것 같았다. 《아버지, 고단하신데 좀 주무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나의 손을 어루만지는것이였다. 《네가 이번에 가면 언제 올지 모를테지. 아무튼 내 걱정은 아예 말고 나라를 찾기 위해 힘껏 싸워라. 그리고 꼭 이기고 돌아오너라. 나는 네가 광복이 되여 돌아올 그날까지 유격대의 애비답게 꿋꿋이 살아갈터이다.》 아버지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뜨거운것이 울컥 가슴에 치밀어올라 목이 콱 메였다. (나를 만나고 그냥 돌아온것을 알면 원쑤놈들은 아버지를 당장 결단낼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음을 각오하고 정녕 나에게 이 말을 해주려고 천리 먼길을 찾아온것이 아닌가. 아버지의 마음, 이것이 어찌 나의 아버지 한사람의 마음이랴. 이러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정든 고향에서 내쫓고 사랑하는 아들딸들과 헤여져 살지 않으면 안되게 한 놈들, 그 저주로운 원쑤놈들을 끝까지 쳐부시리라. 그리하여 조국을 광복하고 아버지ㅡ 아니 조선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이 아들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그날을 가져오고야말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하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원쑤들을 몰아내고 꼭 돌아오리다. 그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며칠후 나는 아버지와 작별하였다. 아버지와 헤여지는 나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인제 헤여지면 다시 못만날수도 있는것이다. 《부디 몸조심하여 오래 앉아계십시오. 그리고 제가 떠난후 인차 가시지 말고 가을에 헌병대에 가서 기다려도 오지 않기때문에 그냥 돌아왔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놈들의 행패는 면할수 있을것입니다.》 《내 걱정은 아예 말고 어서 떠나라.》 아버지의 말씀이였다. 아버지는 우리가 고개너머 멀리 사라질 때까지 초막앞에 오래오래 서있었다. 그후 나는 백배천배의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원쑤놈들과 싸우고 또 싸웠다. 조국이 광복된 후 나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의 부모들이 그렇게도 념원하던 행복한 사회주의락원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드디여 이루어졌다. 오늘 60이 환갑이 아니라 90이 환갑이라고 젊은이들의 일손을 도와 떨쳐나선 할아버지들, 손자들과 더불어 여생을 즐기는 할아버지들속에서 나는 나의 아버지의 얼굴도 그려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