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은 유격대를 피로써 도 왔 다
오 백 룡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들은 1937년 겨울(1938년 초까지)을 몽강현 마당거우밀영에서 보내였다. 아군이 감쪽같이 이 밀영으로 자취를 감추자 우리를 찾아헤매던 적들은 기진한 나머지 《공산군을 완전섬멸하였다.》고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인민들에게 기만선전을 일삼고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들은 조중인민들의 반일사상을 마비시키며 유격대원들의 전투사기를 저락시켜보려고 획책하였다. 그러나 놈들이 원하는바와는 달리 인민혁명군은 이 겨울에 자기 력량을 정비하고 전투준비를 더욱 튼튼히 다지고있었다. 적들의 허위선전은 적들자신에게 있어서 제손으로 제목에 올가미를 거는셈이 되고말았다. 이를테면 일만군병사들로 하여금 아군을 과소평가하는 안일감에 물젖게 하였으며 이것은 오히려 아군의 유격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을뿐이였다. 이때 몽강현 마당거우밀영에 계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산하 각 부대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동기간 아군이 소규모적인 작전으로 이행하게 되자 적들은 지금 안일감에 물젖어있습니다. 아군은 안일감에 사로잡힌 적들의 약점을 리용하여 제때에 적의 유생력량을 소멸하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조중인민들속에서 애국주의사상을 고취시키며 아군의 필승불패의 신심과 전투사기를 앙양시키는 한편 앞으로의 대규모적작전수행에 필요한 피복, 식량, 탄환 기타 군수물자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이 명령을 접수한 우리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1938년 봄을 맞이하면서 몽강을 떠났다. 조국으로 향하는 마음과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발악하는 원쑤들에게 보복의 칼을 내리며 인민들의 혁명기세를 북돋아줄것을 생각하니 우리는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우리가 가재수에 도착한것은 4월 8일 저녁이였다. 8도구강을 은밀히 건는 우리들은 가재수부락을 3면으로 포위하였다. 7련대가 주력이 되여 북쪽포대를 공격하며 8련대는 남쪽포대를 치게 되여있었고 경위중대는 동문으로 돌입하여 8련대와 같이 행동할 계획이였다. 한개 소대는 8도구강 부근에 방차대로 파견되여 신방자로부터 오는 적의 응원부대를 격퇴할 임무를 맡았다. 신방자에는 적경찰서와 300여명의 위만군 대대가 있었던것이다. 해가 지고 사방이 어슥어슥해지자 우리는 곧 습격을 개시했다. 이렇게 초저녁에 우리가 행동을 개시한데는 리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때가 성문을 아주 닫아버리기전이므로 쉽게 토성안으로 들어갈수 있다는것과 더 중요하게는 인민들의 안전을 생각해서였다. 아직 산에서 돌아오지 않은 농민들도 많을것이요, 부락안의 인민들은 날이 완전히 어둡지 않으므로 대피하기도 헐할것이였다. 우리는 일본군복장으로 변장을 하고 뻐젓이 보초앞으로 갔다. 보초를 선 자위단놈은 우리를 저희들의 상관인줄 알고 가까이 갈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놈아, 초저녁부터 졸기는 왜 졸아? 총을 이리 보내!》 우리는 그놈이 우리에게 누구냐고 묻지 않은것을 오히려 트집잡아 총을 빼앗고 성문을 열게 하였다. 문이 열리자 밖에서 대기하고있던 대원들이 부락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우리는 먼저 포대들과 경찰분서를 포위하였다. 적들은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아군부대의 기관총대는 적의 경찰분서와 포대에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적의 포대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이 사이에 선전대원들은 집집마다 담벽에 삐라와 격문을 붙였다. 총소리가 즘즛해지자 밖에 나와있던 인민들이 부락복판으로 달려나오더니 네거리복판에 세워둔 교수대부터 자빠뜨렸다. 놈들은 무시로 무고한 인민들을 이 교수대우에 올려놓고 위협공갈하였으며 잔인무도한 만행을 서슴지 않고 감행했던것이다. 이 부락의 자위단놈들이 어떻게나 인민들을 못살게 굴었던지 한번은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한 집에서 결혼잔치가 있었는데 자위단놈들은 저희들을 청하지 않았다고 심술이 나서 난데없이 비상소집 싸이렌을 울렸다. 그때는 이 신호에 응하지 않으면 《통비분자》라는 죄명을 쓰고 큰 봉변을 당했다. 잔치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는수없이 신랑, 신부만 남겨놓고 모두 집합장소로 달려갔다. 그러자 자위단 단장이란 놈이 나타나 한사람씩 점검을 하더니 왜 아무개 아무개는 오지 않았느냐고 눈을 부라리며 따졌다. 신랑, 신부를 어떻게 데려오겠는가 하고 누가 대답하자 그놈은 《우린 그런 신고를 받은 일이 없다. 어서 데려와.》하고 을러메면서 종시 신랑, 신부도 데려오게 했다. 그리고는 종일 사람들을 길닦이부역에 내보내고 그동안에 저희들끼리 잔치상을 다 털어먹었다. 이 백주의 날강도보다 더한 놈들을 쳐죽이지 못하고 한 하늘아래에서 사는것이 인민들은 통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를 보자 부락인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반가와하였다. 인민들이 유격대를 마중나오는 그때 북쪽포대에서 불의에 우리에게 사격을 가해왔다. 북쪽포대만은 입구를 찾지 못해 아직 우리 대원들이 올라가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고있었다. 인민들에게 피해가 생길수 있는 급한 순간이였다. 녀대원들은 두팔을 벌리고 비발치듯 적탄이 쏟아지는속에서 인민들을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북쪽포대의 적들은 완강하게 대항하였다. 적탄이 귀밑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분명 화약냄새까지 감각할수 있었다. 이때 어둠속에서 이를 갈면서 적화구를 쏘아보던 한 유격대원이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리더니 포대우측의 민가로 재빨리 뛰여들었다. 그는 4련대 2소대장 김동무였다. 포대문을 찾으러 바삐 달려간 그의 얼굴은 땀투성이였다. 그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기에는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껴안고 엎디여있었다. 소대장은 포대로 나드는 문이 어디 있는가고 다급히 물었다. 어머니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누구냐고 되물었다. 《김일성장군님부대에서 온 사람입니다.》 소대장이 이렇게 대답하자 어머니는 《장군님부대 사람이시오?!》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는 선뜻 부엌구석에서 도끼를 집어들며 《그놈들이 묘하게 만들어놔서 잘 모를게요. 날 따라오시오.》하고 말이 끝나기 바쁘게 어느새 앞장에 서서 어둠속에 나섰다. 적포대에서는 계속 불을 뿜고있었다. 문이 붙은 방향이나 가리키겠거니 했는데 어머니는 그냥 앞에서 걸음을 재촉했다. 《어머니, 위험합니다. 가리켜만 주십시오.》하고 김동무는 어머니를 부여잡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어머니는 머리우로 총탄이 날아오는데도 아랑곳 안하고 줄곧 반달음질쳐서 앞으로 나아가며 한마디 말만 남기였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어느덧 포대문앞에 당도한 그는 번쩍 도끼를 머리우에 쳐들어 널문을 까부시기 시작했다. 총소리 요란한 어둠속에서 널문을 찍는 도끼소리가 쩡쩡 울려퍼졌다. 그러다가 그의 머리우에 도끼날이 번쩍이는 순간 그만 그는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것을 본 소대장이 그의 곁으로 황급히 달려가고있을 때 어머니는 다시 일어나 도끼질을 계속하다가 재차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어머니에게로 달려간 김동무의 가슴속에서는 불보다 더 뜨거운 그 무엇이 치밀어올랐다. (어머니, 어머니가 우리에게 진공로를 열어주며 뿌린 붉은 피는 헛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원쑤들을 모조리 소멸하고야말겠습니다.) 소대장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비호와 같이 포대안으로 돌입했다. 그 뒤를 이어 련속 유격대원들이 물밀듯이 포대로 달려들었다. 유격대원들의 힘찬 발구름소리, 우렁찬 만세소리, 싸창의 사격소리, 적들이 지르는 째지는듯한 비명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장군님, 장군님…》하고 속삭이듯 부르며 생애를 마쳤다. 후에 우리는 이 어머니가 김일성동지의 영상을 눈앞에 그리며 장렬한 최후를 마친 불타는 심정이 깃들어있는 그 사연을 알수 있었다. 조오선어머니는 왜놈들의 압제밑에서 한숨과 눈물의 나날을 보내오던 가난한 조선녀성이였다. 그 어머니에게도 남부럽지 않게 기쁘고 행복한 날이 있었다. 하루는 뜻밖에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받았던것이다. 그것은 설명절을 앞둔 추운 어느날이였다. 돈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의 설빔을 만든다, 떡을 친다, 지짐을 지진다 야단인데 조오선어머니는 당장 끼니를 끓일 낟알이 없어서 기막히고 한심한 나머지 혼자 가슴만 쥐여짜고있었다. 그러던 차에 저녁때 부락에서 조국광복회 조직성원인 황로인이 어머니를 찾아와 묵직한 보따리를 내놓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 설을 쇠라고 선물을 보내주셨소. 아주머니, 자 받소.》 어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있는데 로인은 말하기를 유격대원들이 30여근의 산돼지고기와 천, 양말 등속을 련락장소인 백바위근처에 갖다놓았는데 그속에는 가난한 집들에서 나누어가지도록 하라는 장군님의 편지도 같이 있더라는것이였다. 이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어린것에게 양말을 신겨보았다. 그때로부터 조오선어머니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뵐 그날을 더욱 애타게 기다려왔던것이다. 놈들이 제아무리 《공산군을 완전소멸했다.》고 떠들어대도 어머니는 밤이 지나면 꼭 붉은 해가 동산으로 떠오르듯이 겨울이 가면 반드시 장군님의 승리의 새 소식과 함께 새봄이 올것을 굳게 믿고있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흠모와 충성의 마음은 조선의 평범한 어머니가 피로써 유격대의 승리의 길을 열어놓는 위훈을 세우게 하였던것이다. 포대에 올라간 소대장과 다른 유격대원들은 악질자위단놈들 4명을 끌고 내려왔다. 그놈들은 분격에 못이겨 이를 가는 부락인민들앞에서 머리도 들지 못했다. 우리는 인민들의 요구대로 이자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부락인민들은 《왜놈들도 이렇게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 로획한 군수물자를 지고 밀영가까이까지 따라왔다. 가재수전투에 뒤이어 우리 인민혁명군은 4월 26일 6도구에서 또다시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우리의 위력을 시위하였으며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