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겨레의 통일념원을 실현하시려고
《오늘 우리 민족의 대단결과 조국통일은 그 어느때보다도 절박한 문제로 나서고있습니다. 나라의 안팎의 정세로 보나 우리 민족의 근본리익과 시대의 추세로 보나 지금이야말로 온 민족이 대단결을 이룩하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통일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쳐야 할 때입니다.》
김정일
문무를 겸비한 정치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은동에서 군사야영의 나날을 보내시던 주체51(1962)년 9월 11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아침 얼음같이 찬 산골샘물로 몸을 씻고 오시는 장군님께 한 야영생이 이렇게 물었다.
《대학을 마치시고는 군사분야로 나가시려는것이 아닙니까?》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받으신듯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래, 내가 장차 문인이 되겠는가, 무관이 되겠는가 알고싶단 말이지. 동무들의 생각은 어떻소?라고 물으시였다.
야영생들은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장군님께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시니 그 분야에로 나가실것이다.
-장군님께서 군사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는것으로 보아 군사에 뜻을 두신것 같다. …
그들의 대답을 다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그들을 둘러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나는 문과 무를 다 중시한다. 어느 한쪽도 과소하지 않고 다같이 겸비하려고 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가 아니라 알아야 할 모든것을 다 알고 그것을 초월하여 더 깊이 파고들어보자고 한다. …
이렇게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신 그이께서는 정치가는 문무를 겸비하여야 한다고, 이 말의 참뜻은 정치가가 군사를 알아야 한다는것이라고, 지금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나라들을 압살하려고 끊임없이 무력을 증강하고있고 또 기회가 있으면 전쟁을 일으키려고 책동하고있는 조건에서 정치가는 반드시 문무를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리고 군사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있는 오늘에 와서는 군사를 알아도 깊이 알고 그에 완전히 정통해야 한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야영생들은 숙연한 감정에 휩싸였다.
장군님께서는 문인이 되는가, 무관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운명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장래운명과 직결시켜 생각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군사를 모르는 정치가는 진짜 정치가가 아니라고, 현대정치가의 권위와 역할, 그의 실력은 비상한 군사적지략과 담력, 뛰여난 령군술에 있다고 언명하시고나서 자못 흥분하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군사제일주의를 주장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총대를 중시하고 언제나 총대를 제일시한다는것을 숨기지 않는다. …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유서깊은 령군봉기슭에 메아리쳤다.
《나는 문무를 겸비한 전사가 되여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조국통일을 이룩하며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을 끝까지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할 결심입니다.》
천근만근의 무게를 안고 울리는 그이의 말씀은 야영생들을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이게 했다.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사회주의완전승리를 끝까지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할 굳은 결심을 다지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그들은 찬란히 밝아올 내 나라의 밝은 아침을 크나큰 감격과 환희속에 그려보았던것이다.
마지막 철탑
주체52(1963)년 2월 6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전연의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무릎을 치는 눈길을 헤치시며 감시소에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포대경으로 전방 지형지물과 군사분계선을 굽어보시였다.
흰눈덮인 분계선 산중턱에는 시커먼 고압선철탑이 우뚝 서있었다.
그 철탑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장군님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저것이 마지막 고압선철탑이구만.》
멀리 북쪽으로부터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발을 타고넘으며 거침없이 뻗어오던 고압선은 비무장지대의 한복판, 그 산마루에서 뭉텅 동강이 나고말았던것이다.
한쪽 팔은 북으로부터 뻗어나온 고압선을 쥐고 한쪽팔은 남쪽으로 뻗어나갔던 끊어진 전선줄을 쥔채 그대로 서있는 철탑…
국토량단으로 인한 뼈저린 아픔을 애써 누르시는듯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철탑을 보시던 그이께서는 곁에 선 군인에게 물으시였다.
《전사동무는 저 철탑을 하루에 몇번이나 바라봅니까?》
《근무를 설 때마다 수십번씩 바라봅니다.》
《그래 그때마다 무엇을 생각합니까?》
《미국놈들을 증오하게 됩니다.》
《옳습니다. 미국놈들때문에 남해끝까지 뻗어갔던 저 고압송전선이 저렇게 뭉텅 끊어졌습니다. 그래 그 다음엔 뭘 생각합니까?》
《…?》
《중요한것을 잊었습니다. 끊어진 저 송전선을 다시 이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송전선을 이어야 할 영예로운 임무가 바로 젊은 세대들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고, 우리는 저 은빛고압선을 기어이 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끊어진 송전선을 다시 잇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이룩하고야말 철의 의지를 안으신채 마지막 고압선철탑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백두산줄기내려 솟은 한나산
주체61(1972)년 6월 4일 저녁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혜산에서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의 한 인사를 친히 만나주시였다.
석상에서 그는 량강도에 온 기회에 백두산에 오르고싶은 자기의 절절한 소원을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소원이 성취되도록 해주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백두산을 두고 뜻깊은 담화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백두산은 우리 나라 조종의 산이요, 혁명의 성산입니다. 조선의 뇌수이며 의지이며 신념이며 조국의 상징입니다.
그이의 안광은 백두의 정기를 뿜는듯 하였고 근엄하신 표정은 백두의 기상을 비껴담은듯싶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모든 산맥들은 백두산으로부터 뻗어내려온 줄기라고 볼수 있다. 저 남해 한나산도 바로 백두산의 줄기가 뻗어내려 솟은 조국의 남쪽산이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백두산은 조선의 모든 지맥이 집중된 어머니산이다. 산과 땅에 산맥과 지맥이 있듯이 사람들에게는 혈맥이 있다. …
자연과 사회의 모든 현상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시고 그를 비교종합분석하고 추리하여 위대한 명제를 도출해내시는 절세위인의 높은 지성은 그 인사를 끝없이 감동시켰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침묵하시고 창너머 아득히 펼쳐진 남쪽하늘가를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나는 백두산에 자주 오른다. 백두산에 올라 마음의 눈길로 남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남해 한나산까지 바라보이고 통일을 기다리는 남조선인민들의 얼굴들이 보이는것만 같다. 조선을 알자면 백두산을 보아야 하며 조선에서 혁명을 하자면 백두산을 알아야 한다. …
(과연 백두산에서 탄생하신분이 다르시구나!)
장군님께서는 흥분을 걷잡지 못하는 그를 정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며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깊은 눈이 쌓였지만 걱정말라고, 마음놓고 백두산에 올라가보도록 하여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튿날 다시 그와 일행을 만나신 그이께서는 백두산에 올라가보겠다는 소망이 풀렸다고 하시면서 혈압이 높지 않는가를 알아보시고 감기에 걸릴세라 겨울옷과 내의도 두툼히 입고 가라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장군님께서 즉시 수많은 청년들을 동원하여 그들이 오르게 될 백두산길에 키넘게 쌓인 눈을 말끔히 쳐내도록 하셨던것이다.
드디여 그들은 이 나라 지맥의 절정이며 혁명의 성산인 백두산에 올라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에 몸과 마음 다 바칠 맹세를 굳게 다지였다.
이른새벽의 호수가에서
주체61(1972)년 7월 어느날, 동녘하늘이 밝아오려면 퍼그나 시간이 흘러야 하는 칠칠야밤이였다.
한 일군이 잠든 방안의 전화기에서는 《따르릉?》하고 전화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였다.
(때이른 이 새벽에 무슨 전화일가?)
이런 생각을 하며 급히 일어난 그 일군은 송수화기를 든채 굳어지고말았다.
송수화기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친근한 음성이 우렁우렁 울려나왔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새벽에 깨워 안됐다고 하시며 급히 자신께로 오라고 이르시였다.
이 시기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의 려명을 안아오시려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계시였던것이다.
어느덧 그이께서 계시는 건물앞에 이른 일군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것을 느꼈다.
동터오는 려명속에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일군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먼길에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새벽에 불러서 안됐습니다.》
그러시고는 아침공기가 아주 몸에 좋으니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면서 싱그러운 솔향기가 풍겨오는 호수가의 숲속길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일군도 그이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젖빛안개에 휩싸인 호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듯 잔잔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명주필같은 안개발이 피여오르는 호수가를 가리키시며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호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것입니다, 해방전에는 지도에도 없던 호수입니다, 수령님을 떠나서는 오늘의 사회주의조국도,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도, 휘황한 미래도 생각할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사이의 적십자사단체 대표들사이에 진행되고있는 대화문제를 꺼내시며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수령님께서 년세가 더 높으시기 전에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통일된 조국에서 전체 인민이 수령님을 모시고 단란하게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일군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우리 나라에서 통일문제를 순조롭게 풀수 있는 유일하게 정당한 구국강령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의 3대원칙을 제시하시지 않았더라면 공동성명도 나올수 없었을것이다. 조국통일의 3대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우리는 남북대화전반에서 의거해야 할 확고한 기초를 가지게 되였으며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는 길에서 력사적인 리정표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외세의존에 대한 자주로선의 승리이며 민족의 반목을 지향하는 대결로선에 대한 민족대단결로선의 승리 다시말하여 매국배족적인 영구분렬로선에 대한 애국애족적인 자주통일로선의 승리이다. …
수령님의 불멸의 주체사상이 빛나게 구현되여있는 조국통일3대원칙의 의의를 명철하게 밝혀주시는 그이의 고귀한 가르치심이였다.
장군님의 말씀은 중단됨이 없이 이어졌다.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은 우리가 통일문제해결에서 언제나 튼튼히 틀어쥐고 나아가야 할 근본초석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 발전의 추이와 온 민족의 념원을 집대성한것이기때문에 여기에서는 한걸음도 양보가 있을수 없다. 우리는 이 원칙을 가지고 통일의 길을 넓혀나가야 한다. …
일군은 우리 겨레의 통일념원을 하루빨리 실현하실 불타는 열정을 안으시고 사색속에서 새날을 맞으시는 그이를 경모의 정에 넘쳐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마디마디에 박력을 주어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분렬을 위한 대화를 할수 없으며 통일을 위한 대화만을 주장합니다.》
이날 젖빛안개 흐르는 이른새벽의 호수가에서 그 일군은 아무리 남조선당국이 분별없이 날친다 하여도 오로지 민족의 근본리익으로부터 출발하시여 북남대화의 성공을 위하여 모든 정열을 다하시며 통일대업의 방략을 모색하시는 장군님의 위대하고도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에 의하여 통일의 아침은 반드시 밝아오리라는 진리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백리, 천리를 더 가고싶소》
주체62(1973)년 1월 6일 새벽 4시, 제기된 일감을 미처 처리하지 못해 그때까지 사무실에 있던 한 일군의 방에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순간 일군은 격정으로 온몸이 굳어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던것이다.
(지금이 몇시인데 아직 퇴근하지 않으시고…)
일군은 목이 꽉 메여 몇가지 문제를 료해하시는 장군님의 물으심에 더듬거리며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이젠 집에 돌아가지 않겠는가고, 자신의 승용차로 함께 가자고 정겹게 이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일군은 장군님을 모시고 퇴근길에 오르게 되였다.
이른새벽, 수도의 아빠트창가들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에게 피곤하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일군이 말끝을 흐리자 그이께서는 할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하시였다.
《이제는 밤에 좀 일찍 주무시고 끼니도 건느지 말아주십시오. 이것은 저 하나의 심정만이 아니라 온 나라 인민들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고맙소, 동무들이 그렇게 생각해주어서…》
장군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셨다가 갈리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갑이 지난 몸이신데도 인민들에게 조국통일을 선물하기 전에는 편안히 잠드실수 없다고 늘 말씀하시며 어느 하루밤도 편히 쉬지 않으신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떻게 조국통일에 대해서 한시인들 생각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
일군은 가슴이 뭉클하여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절절한 음성으로 계속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에게 조국통일을 선물하시겠다고 하시지만 조국통일은 우리들이 수령님께 선물로 드려야 하오. 우리가 빨리 조국을 통일해서 수령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오. … 이렇게 깊은 밤길이 수령님께서 그처럼 심려하시는 조국통일에 가닿아있다면 나는 이제라도 백리, 천리를 더 가고싶소.
이윽고 승용차는 일군의 집앞에 와닿았다.
일군이 차에서 내리자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편히 쉬라고 이르시고는 다시 차를 몰아가시였다.
그런데 그이의 승용차는 집무실을 향해 달려가고있었다.
묘향산에 오르시여
주체70(1981)년 5월 19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묘향산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이날 등산길 정점에 오르신 장군님께서는 신묘하고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은 한 일군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수령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묘향산에 와보니 정말 아름답다고, 묘향산은 조선의 명산이며 자랑이라고, 묘향산의 경치는 미의 절정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물으시였다.
《남조선에도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까?》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멀리 흰구름이 피여오르는 남쪽하늘가를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국을 빨리 통일하여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마음대로 보도록 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은 민족최대의 경사이라고, 한 민족이 세계적인 수령을 70년이나 모시고있다는것은 최상의 행운이라고, 온 인류가 축복하는 민족경사의 날이 다가오는데 통일을 촉진시키는 그 어떤 선물을 가지고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조국통일문제때문에 수령님의 머리에 흰서리가 많이 내렸습니다. 수령님께서 젊어지시게 하자면 조국통일을 빨리 성취하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수령님께서 기뻐하시면 나는 제일 즐겁고 수령님께서 심려하시면 나는 제일 괴롭습니다.
누구는 투쟁을 행복이라고 했지만 나는 수령님께 드리는 기쁨을 곧 행복이라고 말하고싶습니다.》
묘향산등산길에서까지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시고 조국통일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오르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천길벼랑으로 떨어지는 폭포도 장쾌한 음향을 잠시 죽이고 장군님의 말씀을 듣는듯싶었고 푸른 하늘로 뭉게뭉게 날아가던 흰구름도 잠시 멈춰서서 그이의 절절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것만 같았다.
진정 조국통일위업에 바치시는 장군님의 사색과 열정은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었다.
늦출수 없는 속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던 시기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실 때에 있은 일이다.
장강1호발전소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길로 어느 한 단위에서 건설한 토목언제식발전소로 가자고 이르시였다.
그런데 그곳까지 가는 길은 워낙 험한 산골길인데다가 눈얼음까지 덮여 승용차가 빨리 달리기에 매우 불리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차에 오르시자마자 곧 속도를 내게 하시였다. 시간은 적은데 돌아보실 대상은 많았던것이다.
그이를 모신 승용차는 울퉁불퉁한 곳을 날아넘기도 하고 눈과 얼음이 덮인 곳에서는 눈갈기를 뽀얗게 날리며 전속으로 내달렸다.
장군님께서 타신 차가 이렇게 높은 속도로 달리니 수행차들은 겨우겨우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내가 탄 승용차가 너무 빨리 달려 동무들이 따라오기 힘들다는데 평양을 떠날 때 내가 뭐라고 했는가, 이번 길은 전에 없었던 강행군길이기때문에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라고 하지 않았는가고 하시며 이제부터 나를 따라다닐 기질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따라서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데 그곳 지형에 밝은 도의 책임일군이 《장군님, 도로들이 얼음강판처럼 미끄러워 위험하기때문에 속도를 늦추었으면 합니다.》라고 간절히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왜, 걱정이 되여 그러는가고 하시더니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하시였다.
《우리가 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그만큼 우리 인민의 강행군이 늦어지고 조국통일과 조선혁명이 늦어지게 됩니다.》
조국통일과 조선혁명이 늦어지게 된다!
그이의 말씀은 일군들의 심장속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이의 심중에는 조국통일을 늦추면 절대로 안된다는 절대불변의 신념이 굳건히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일군들은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지 않으시고 오직 조국통일과 조선혁명을 위해 불철주야로 달리시는 그이의 강행군속도에 마음을 따라세우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수 없었다.
철령너머에서
주체87(1998)년 4월 15일 이른아침,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선동부 철령너머의 전방부대를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수령님이 그리워
험준한 산발들과 가파로운 령들을 오르내리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목적지에 도착하신 때는 중낮무렵이였다.
군부대장병들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차에서 내리시는 장군님을 뵈옵는 순간 너무도 놀랍고 격정이 커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장군님, 저희들이 무엇이라고 태양절날에 이 먼데를…》
부대지휘관은 말끝을 맺지 못한채 장군님의 두손을 잡으며 어깨를 들먹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태양절을 맞는 동무들이 어버이수령님을 그리워할것 같아서 내가 이렇게 왔다고 하시며 군부대장병들의 름름한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자애로운 그 모습에서 어버이수령님의 그리운 모습을 보며 군인들은 감격과 기쁨으로 가슴을 설레이였다. 그들이 목청껏 터치는 《만세!》의 환호성은 하늘땅을 뒤흔드는듯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제는 그만하라고, 명절을 어떻게 쇠는지 어디 좀 보자고 하시면서 천천히 병실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러시며 감회깊으신 눈길로 지휘부건물이며 병실들, 주변의 산천들을 둘러보시였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다녀가시였던 낯익은 고장이였다.
이 부대 지휘부의 수수한 방에서 하루밤을 묵으시면서 갈라진 조국에 대한 생각으로, 짓밟힌 남녘동포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시였고 식사도 제대로 못 드시던 그날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장군님께서는 이윽토록 묵묵히 서계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여기에 오니 조국통일을 위해 그리도 마음쓰시던 수령님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밤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시며 우리가 지난날 산에서 싸울 때에도 저렇게 밤새가 울면 짓밟힌 조국인민들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분계선이 가까운 여기서 또다시 저 밤새소리를 들으니 남녘동포생각에 잠들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나와 함께 오래도록 숙소마당가를 거니시였다. …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한평생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시였습니다.》
장군님의 그 절절한 말씀에 군인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그리고 어찌하여 태양절 이날에 분계선이 지척인 이곳까지 몸소 오시였는가 하는 그 깊은 심중이 헤아려져 목이 꽉 메여올랐다.
줴기밥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기다리겠는데 그들과 함께 식사나 한끼 같이하자고 하시며 식당으로 가시였다.
그리하여 군부대군인들은 영광스럽게도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점심상에 둘러앉게 되였다.
크지 않은 수수한 방의 보통밥상에 그들이 다 둘러앉자 장군님께서는 모두 좀더 가까이 나앉으라고 이르시고는 《변변치는 못하지만 내가 싸온 점심밥이 있으니 같이 듭시다.》라고 하시며 마련해가지고 오신 점심곽을 풀어놓으시였다.
순간 군인들은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밥은 뜻밖에도 줴기밥이였던것이다.
크지 않은 주먹밥에 몇가지의 보통나물채… 바로 이것이 가장 뜻깊은 명절날에 장군님께서 드시려는 점심식사였다.
(아무리 우리가 간고한 행군을 하고있고 나라의 식량형편이 어렵다고 하여도 어떻게 장군님께 이런 식사를 드릴수 있단 말인가. …)
군인들은 너무도 격하여 장군님을 모시고 온 일군들에게 원망의 눈길을 던지였다.
《자, 어서들 드시오. 그래야 나도 먹을게 아니요.》
장군님께서 거듭 이렇게 말씀하시였지만 군인들은 수저를 들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오늘은 뜻깊은 명절날이니 한잔씩 들라고 하시며 축배도 부어주시였다.
그래도 선뜻 잔을 들지 못하는 군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영생을 기원하여 들자고, 수령님의 유훈을 언제나 잊지 말자고 뜨겁게 당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지금 우리 인민은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며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을 하고있다고, 우리 인민들은 수령님의 유훈을 기어이 관철하기 위하여 그 어떤 고생도 참고 견디며 부강조국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용감히 투쟁하고있다고, 우리는 오늘의 고생을 락으로 여기며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기고 줴기밥을 두손에 받아든 군인들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아, 줴기밥! 조국통일! …
험난한 혁명의 길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드시였고 우리 장군님께서 드시는 줴기밥,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조국의 통일번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며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헌신의 상징인 줴기밥.
군인들은 장군님께 불타는 맹세를 드리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저희들은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오늘의 점심식사를 성찬으로 받아안고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겠습니다. 미제가 또다시 덤벼들면 단매에 쳐부시고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불같은 맹세에 크게 박수를 쳐주시였다.
진달래
귀로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차는 철령의 고개마루에 이르러 조용히 멈춰섰다.
장군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봄바람에 옷깃을 날리시며 생각깊은 안광으로 낯익은 산천을 바라보시였다.
얼기설기한 나무들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계곡들에는 아직도 잔설이 드문히 깔려있었지만 철은 속일수 없는것이여서 이 높은 령에도 꽃들이 활짝 피여있었다.
더미더미 소담하게 피여나 봄바람에 하느적이며 산발을 불태우는듯 하는 연분홍빛 진달래!
《만산에 활짝 피여난 저 진달래꽃을 보시오. 철령의 진달래는 유별히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다리쉼도 할겸 꽃구경을 하고 가자고 하시며 길가에 호함지게 피여난 한떨기의 진달래꽃으로 다가가시였다.
금시 온넋을 앗아갈듯 아름답고 청초한 진달래의 매혹적인 모습, 타는듯 한 그 빛갈…
장군님께서는 유난히도 붉게 핀 진달래를 이윽토록 바라보기도 하시고 굽이굽이 끝간데 없이 뻗어간 령길을 둘러보기도 하시다가 《진달래는 우리 수령님의 성스러운 혁명력사에 깊은 추억을 새긴 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좀처럼 진달래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장군님의 어조는 무척 부드러우시였으나 각별한 정회에 싸여 하시는 뜻깊은 말씀이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후더워났다.
진달래!
우리 장군님께 만단사연을 불러일으키는 꽃이였다.
항일의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진군의 길에서 그 향기를 맡으시며 조국해방의 일념을 뜨겁게 담으시던 꽃, 어버이수령님께 꺾어드리면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충정의 마음 담으시던 조국의 진달래…
봄이면 이 땅의 산과 들 어디에나 피여나는 진달래이건만 장군님께서 이 꽃에서 그리도 애틋함과 사무치는 정서를 느끼시는것은 바로 조국의 진달래에 인민을 위하여 한생을 다 바치신 위인들의 고결한 애국의 넋과 숭고한 념원이 깊이 어려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일군들이 소중한 추억을 불러주는 진달래를 바라보느라니 더미더미 더더욱 유정스레 안겨왔다.
장군님의 선군장정길에 만발하여 소리없이 웃고있는 철령의 진달래, 명절날에도 로고속에 계시는 장군님께서 잠시라도 쉬여가시기를 바라여 그윽한 향기 한껏 풍기며 굽이굽이 령길에 설레이는 봄의 상징 조국의 진달래, 참으로 천송이만송이 그 꽃들은 장군님께 드리는 천만군민의 축원의 꽃다발 같았고 축복의 인사인듯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진달래꽃 만발한 령마루에 높이 서시여 아득히 펼쳐진 조국의 대지를 굽어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는 어디 가나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조국산천을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꾸려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인민이 번영하고 통일된 조국땅에서 행복하게 살 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다! …
경애하는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통일의지가 담긴 우렁우렁한 음성이 높낮은 산발들에 메아리쳐갔다.
백두산에서의 침묵
주체89(2000)년 3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의 성산 백두산지구를 찾으시였다.
백두산일대에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날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한번 용기를 내여 가보자고 하시며 앞장서 눈길을 헤치시였다.
일군들은 하얀 숫눈우에 성큼성큼 큰 자욱을 남기시는 그이의 발걸음을 따랐다.
위대한 령장을 모신 백두산기슭은 경사를 맞이한듯 신비경을 펼치고있었다. 주먹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다가도 순간에 멎고 창창하게 개였다가는 갑자기 흐려지면서 눈송이를 꽃보라인양 날리기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광풍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백두산은 천태만상의 풍경을 다 안고있는 신성한 조종의 산이라고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눈이 내리다 해가 나고 해가 나다 눈이 내리고 날리는 눈송이는 금은빛이 되여 반짝인다고, 신묘하고 아름다운 이런 정경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것이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어느 한 곳에 이르시여 걸음을 멈추시더니 아득히 머나먼 남쪽하늘가에 눈길을 보내시고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
침묵, 침묵.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말씀이 없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20성상의 항일혈전사를 회고하실가, 아니면 강성국가건설대전의 방략을 구상하실가? …)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은 침묵을 이어가시는 그이의 웅심을 두고 여러가지로 생각을 굴리였다.
하면서도 종시 매듭을 짓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평양에서는 조국분렬사상 처음으로 북남수뇌상봉이 이루어지고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이 채택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백두산에 가셨을 때의 일을 회고하시면서 자신께서는 그때 올해 조국통일을 위한 통이 큰 작전을 펼칠것을 설계하고 이것을 구상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 어떤 큰 구상을 하거나 작전을 할 때에는 늘 백두산에 가군 합니다. 눈보라가 날리는 백두산정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피어린 항일대전을 돌이켜보고 온 나라에 떠받들려있는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느라면 통이 큰 작전과 구상이 떠오르고 그에 대한 신심과 용기도 생기군 합니다.》
삼천리강토를 품어안은 혁명의 성산 백두산기슭에서 남쪽하늘끝으로 굽이쳐간 조국의 산발을 굽어보시며 그이께서 침묵속에 구상하신 통이 큰 작전과 대용단!
우리 대에 반드시 터져오르고야말 조국통일의 축포성은 그날의 침묵의 의미를 조국청사에 불멸의 글발로 아로새길것이다.
한편의 노래로 완성된 조국통일장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창작되던 때에 있은 일이다.
처음 《아리랑》대본에서 조국통일내용은 종장안에 반영되여있었다.
어느 한순간도 조국통일에 대하여 잊으신적이 없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통일장을 특별히 따로 내오도록 하시고 제4장 《통일아리랑》이라고 제목을 달아주시였다.
주체90(2001)년 1월, 일군들에게 《아리랑》의 조국통일장창작에서 지침으로 되는 가르치심을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20세기에 우리 수령님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정치가는 없다고, 수령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걸출한 위인이시였다고 하시며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제일 큰 념원은 우리 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고 조국을 통일하는것이였다.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 …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창작가들의 가슴은 6. 15시대의 통일열기로 불타올랐다.
그들은 조국통일장창조에 력량을 집중하면서 최상의 수준에서 사상예술성을 보장하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어 힘있게 밀고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불같은 그 열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응당한 수준에 올라서지 못하고있었다.
6. 15시대에 맞게 아리랑민족의 통일감정을 어떻게 현실그대로 생동하게 담을수 있겠는가 하는데 모를 박고 지혜를 깡그리 바쳐 드디여 대본을 완성하여 련습에 들어갔지만 조국통일장이 《아리랑》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기둥장인데 아직 속시원히 터쳐야 할 말을 다하지 못한듯 한 아쉬운감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였던것이다.
속시원히 터쳐야 할 말!
창작가들의 고심은 컸다.
그런 속에서 창작가들은 종시 《속시원히 터쳐야 할 말》을 찾지 못한채 한해를 넘기게 되였다.
주체91(2002)년 새해에 들어서면서 《아리랑》창조소식을 들은 해외동포들과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에게서 《아리랑》의 한두장면만이라도 미리 보여달라는 간절한 소식을 담은 편지들과 전보들이 련속 날아들었다.
먼저 보여달라는 그 한두장면에는 언제나 조국통일장이 특별히 찍혀져있었다.
창작가들이 가슴을 치면서 돌파구를 열지 못하고 모대기고있던 바로 그때 장군님께서는 《아리랑》창조사업을 료해하시고 조국통일장의 생명인 노래 《우리는 하나》를 친히 보내주시였다.
노래 《우리는 하나》의 선률을 듣는 순간 창작가들은 북과 남을 상징하는 두 무용수들이 애타게 찾고 부르며 안깐힘을 쓰다가 마침내 두팔을 벌려 얼싸안는 명장면을 착상하게 되였다. 노래 《우리는 하나》의 선률이 막혔던 창작의 물목을 열어주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몸소 보아주실 때였다.
서장에서 울리던 주제가 《아리랑》노래의 선률이 다시금 은은히 흐르고 분렬 반세기의 비통한 장면들이 흐른 후 《우리는 하나》노래선률에 실려 경기장 한가득 통일광장의 환희가 터져올랐다.
고조되는 노래와 함께 바닥무대에는 하나된 조선지도가 펼쳐지고 민족적색채와 향기가 진한 장고춤에 실려 통일환희가 터져오르는 속에 배경대에는 《수령님의 유훈은 조국통일》, 《6. 15공동선언》, 《통일의 문을 우리 민족의 손으로》, 《땅도 하나》, 《피줄도 하나》, 《언어도 하나》, 《풍습도 하나》라는 글발이 눈부신 광채를 뿌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미소어린 안광으로 펼쳐지는 장면들을 바라보시면서 못내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통일아리랑>장면을 훌륭하게 잘 형상하였습니다. 작품이 끝나갈수록 더욱 긴장해지고 관람자들에게 주는 감동도 더 큽니다. 조국통일장면을 감동적으로 잘 형상하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다음에도 장군님께서는 《아리랑》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끌고가면서도 큰 감동을 준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장면도 아주 잘 형상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노래로 마감지었는데 그 장면에 대한 처리를 잘하였습니다.》
순간 창작가들은 뜨거워오르는 마음을 누를길 없었다.
《우리는 하나》의 노래가 있었기에 민족분렬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통일의 광장에서 얼싸안고 춤판을 펼칠 7천만의 환희에 넘친 모습을 담은 조국통일장을 훌륭히 완성할수 있지 않았던가.
참으로 21세기의 걸작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제4장 《통일아리랑》은 언제나 조국통일을 뜨거운 심장속에 안고 사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가요 《우리는 하나》의 노래에 의해 완성될수 있었다.
부산땅을 뒤흔든 통일열풍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우리 응원단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주체91(2002)년 10월 13일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우리 응원단의 활동을 료해하시고 기쁨에 넘쳐 하시는 말씀이였다.
순간 일군들속에서 격정의 파도가 일어번졌다.
부산에서 진행하는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참가문제로 일군들속에서 의견이 제기되였을 때였다.
장군님께서는 부산에서 진행되는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참가문제는 단순히 남녘땅에서 진행되는 국제경기에 참가하느냐 아니면 그만두느냐 하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겨레의 굳센 통일의지를 세계에 힘있게 과시하는 계기로 될것이라고 일군들의 편협한 생각을 바로잡아주시였다.
6. 15시대에 맞게 민족의 통일을 먼저 생각하시며 베푸시는 장군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 숭고한 뜻이였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 놓아주신 6. 15통일오작교를 따라 우리의 녀성취주악대와 대규모응원단이 부산땅에 나타나게 되였던것이다.
경기대회 전기간 우리의 이채로운 녀성취주악대와 대규모응원단의 황홀한 모습은 민족의 혈맥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쌍무지개를 펼쳐놓았다.
우리 응원단이 《우리는?》 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응답하는 통일의 함성은 부산땅만이 아닌 온 남녘땅을 진감하였다.
우리 응원단은 경기응원만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민족적향취가 진하게 풍기는 예술공연도 진행하여 남녘동포들의 가슴마다에 우리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겨레이라는 자각을 심어주었다.
부산땅은 민족통일열풍으로 끓어번졌다.
남조선의 각계층 동포들은 응원단의 활동을 보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 보낸 일당백의 응원단》, 《최고인기군단》, 《아시아게임의 최고스타》 등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응원단의 활동에 감동을 금치 못하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남조선사람들은 우리 응원단성원들을 보고 한결같이 미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 응원단성원들이 모두 곱게 생기고 순수할뿐아니라 절도가 있고 조직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조직력에 있어서 우리 응원단을 따를데가 없다보니 인기가 더 높았던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세상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미덥고 훌륭한 청년들을 가지고있는 자랑과 긍지로 하여 더욱 격조높이 울렸다.
그후 남조선에서 인기를 끈 응원단의 모습은 그 다음해에 열린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때 그대로 재현되여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우리 겨레의 굳센 통일의지를 세계에 또다시 힘있게 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