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김정일
변하지 않은 과녁
주체49(1960)년 4월 17일 화창한 봄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시였다.
학원에 정중히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앞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경건한 안광으로 동상을 우러르시였다.
싸창을 허리에 차시고 백포자락을 날리며 항일대전의 혈로를 헤쳐나가시는 만고의 령장 김일성장군님의 거룩한 모습.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 없으시였다.
일군들도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윽하여 정적을 흔들며 장군님의 음성이 조용히 울리였다.
《수령님의 동상앞에 서면 학원교사준공식때 어머님을 모시고 왔던 일이 눈앞에 선히 떠오릅니다. … 그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1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추억의 물결우에 못 잊을 사연을 실으시며 그이께서는 천천히 동상앞을 거니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나는 그때 수령님의 동상을 보면서 어머님에게 아버님은 왜 싸창을 차고계시는가고 물어보았다. 어머님은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미국놈들과 싸워야 하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 …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다시금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시였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지저귀던 새들도 정숙을 지키는듯…
이윽하여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교정뜨락으로 울려퍼졌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였어도 혁명의 과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숫눈같은 동심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새긴 그날의 사연을 회억하시는 그이의 말씀은 자자구구 일군들의 가슴에 충격의 파도를 일으켰다.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원쑤에 대한 복수심과 적개심이 매우 높다. 학생들에게 미제와 일제가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하며 지주, 자본가계급의 착취적본성도 잘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원쑤들을 끝까지 소멸하고 조국을 통일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
숭고한 추억끝에 하신 장군님의 말씀에는 조국을 통일하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하고야말 신념과 의지가 력력히 맥박치고있었다.
민족의 징표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주체49(1960)년 10월 4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조선력사강의가 한창인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1학년 교실의 분위기는 자못 팽팽하였다.
조선민족의 형성문제에 대하여 강의하던 교원은 선행한 고전리론에 서술되여있는대로 민족을 특징짓는 네가지 공통성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언어의 공통성, 지역의 공통성, 경제생활의 공통성, 문화생활의 공통성에서 나타나는 심리적성격의 공통성을 가지고있어야 한민족으로 될수 있습니다.》
교원은 이 고전리론에 기초하여 민족문제를 자본주의시대에 형성된 력사적범주로 설명하였던것이다.
하면서 그는 이 공통성가운데서 어느 한가지만 빠져도 한민족이 될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강의가 끝날무렵이였다.
한 학생이 일어나 민족의 형성문제를 고전에 비추어 평가하게 된다면 해외에서 사는 우리 동포들은 조선민족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고 질문하였다.
해외동포들이 조선민족이라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였으나 고전의 명제를 가지고 풀자니 똑똑한 해답을 찾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교실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수업휴식종이 울려 교원은 학생들에게 좀더 연구해보자는 말을 남기고 강의를 마쳤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속에서 벌어진 열기띤 론쟁은 오전수업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되였다.
학생들의 론쟁을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일단 문제가 제기된 이상 정확한 해명을 주는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민족을 이루는 기본징표는 피줄,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며 이가운데서도 피줄과 언어의 공통성은 민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로 됩니다.
민족은 피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으로 하여 결합된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피줄과 언어의 공통성은 민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
학생들의 눈앞을 가리웠던 고전의 장막을 벗겨버리고 모든것을 환히 밝히는 서광과도 같은 명철한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안에서 한피줄을 타고 같은 말을 하면서 살아왔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다. 해외에서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도 다 같은 조선민족이다. 일본에서 살고있는 조선동포들은 지난날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지주, 자본가들의 가혹한 착취와 압박에 못이겨 정든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너간 사람들이다. 그런것만큼 재일동포들이 지금은 비록 일본땅에서 살고있지만 그들도 조선민족이다. …
그러시고는 선행고전에서 그 어떤 만능의 공식을 찾아보려는 그릇된 관점, 교조주의의 고질병을 뿌리뽑을데 대하여 간곡히 이르시였다.
참으로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는 민족의 징표와 그 형성의 력사적합법칙성에 대한 새롭고도 독창적인 해명이였다.
선행한 고전가들이 한생을 바쳐 이룩한 학설, 100여년간이나 내려오면서 굳어질대로 굳어진 고전의 리론을 순간에 분석총화하시고 민족의 징표를 새롭고도 완벽하게 정립하시여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을 한품에 안아주신 장군님의 사상리론적예지에 대한 매혹과 흠모로 학생들의 심장은 불타올랐다.
《파시즘은 망하기마련입니다》
주체50(1961)년 7월 20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파쑈화의 길로 줄달음치는 남조선정세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위대한 장군님께 국제로동운동사와 결부하여 남조선에 세워진 군사파쑈독재에 대하여 해설해주실것을 청드렸다.
장군님께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하시며 그들의 청을 쾌히 받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요즘 남조선에서는 지난날 도이췰란드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파쑈독재를 실시하던 때보다 더 엄중한 사태가 빚어지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파시즘과 파쑈독재의 본질에 대하여 이렇게 밝혀주시였다.
파쑈독재는 가장 반동적이고 야수적인 테로독재이다. 파쑈독재의 특징은 국가권력이 파쑈두목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 통치배들의 수중에 집중되며 소수 통치배들이 무제한한 권력을 가지고 인민대중의 초보적인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마저 빼앗고 야수적인 테로와 폭압을 실시하는것이다. 파쑈독재란 파시즘에 기초한 정치체제를 말하며 파쑈분자란 파시즘을 신봉하는자를 말한다. 파시즘은 극도로 타락한 소수 독점자본가계급의 가장 반동적인 정치리념이며 정치사조라고 말할수 있다. …
그러시고는 파시즘이라는 말의 유래와 파시즘의 발생경위에 대하여 생동하게 들려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원래 파시즘이라는 말은 이딸리아의 파쑈두목 무쏠리니가 1919년 3월에 반동적인 장교들과 지주, 자본가의 자식들을 규합하여 파쑈적당인 이딸리아전투자단을 조작한 때부터 생겨났다고 볼수 있다고 하시면서 《단체》 또는 《단》, 《결사》라는 뜻으로 쓰이던 《파쑈》라는 단어가 그때부터 파시즘이라는 반동적인 정치사조를 의미하는 술어로 불리우기 시작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파시즘은 이딸리아에서 생겨났지만 도이췰란드의 히틀러에 의하여 극도에 이르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히틀러는 인류력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독재를 세웠던 극악한 파쑈분자라고 격분에 넘쳐 단죄하시였다.
문제의 본질을 단 몇마디로 밝혀주시며 모든 문제를 력사적으로 폭넓게 전개해나가시는 장군님의 놀라운 분석력과 해박한 지식에 깊이 감동된 학생들은 어려움도 잊고 알고싶었던 문제들을 다시금 말씀올렸다.
《남조선사태와 결부시켜 파시즘의 대두와 파쑈독재의 출현을 불가피한 력사적현상으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이것은 심중한 문제라고 하시면서 그 물음에는 두가지의 서로 다른 문제가 포함되여있는것 같은데 하나는 파시즘의 출현이 필연적인가 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쑈분자들이 정권을 잡고 파쑈독재를 세우게 되는것이 불가피한 현상인가 하는것이라고 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장군님께서는 확신에 넘치신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파쑈독재의 수립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피치 못할 현상은 아닙니다. …
로동계급을 비롯한 인민대중이 단결되여있고 반파쑈민주력량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파쑈분자들이 감히 정권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파시즘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 나타났지만 파쑈분자들이 정권을 잡고 파쑈독재를 실시한 나라는 도이췰란드, 이딸리아, 일본을 비롯한 몇개 나라뿐이고 프랑스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에서는 파쑈분자들이 정권을 잡으려다 좌절되고말았다. 력사적사실은 민주력량이 단합되여있고 광범한 인민대중이 반파쑈투쟁에 떨쳐나선다면 파쑈분자들의 책동을 얼마든지 저지파탄시킬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
장군님께서는 격정을 진정할수 없으신듯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아직도 지구상에는 파시즘이 없어지지 않고있다고 하시면서 지금 남조선에서 집권세력이 군사파쑈독재체제를 세우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지만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요구하는 인민들의 투쟁을 가로막지는 못할것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파시즘은 망하기마련입니다.》
군사파쑈독재체제를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이 일시 시련을 겪고있는것을 보며 사람들이 조국통일의 전도를 우려하고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으로 사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판단하시고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리신것이다.
학생들의 가슴마다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장군님께서 계시여 조국통일은 반드시 성취되고야말리라는 확신이 차고넘치였다.
백두산정신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은동에서 군사야영의 나날을 보내고계시던 주체51(1962)년 9월 3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군사야영생들이 야영소병실앞 록지에 흰 자갈로 《백두산정신》, 《통일단결》, 《조국통일》이라는 글을 멋있게 새기였다.
그 글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내용이 아주 좋다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야영생들에게 《백두산정신으로 전민족이 단결하여 조국을 통일하자!》, 이것이 얼마나 깊은 뜻이 담긴 구호인가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은 반드시 우리 세대에 이룩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20성상 백두산에서 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는것을 돌이켜보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동무들도 아는바와 같이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한강토우에서 단일민족으로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민족분렬정책에 기인된다. 조국통일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미제침략자들을 남조선에서 몰아내고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는 문제이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 미제가 분별없이 불질을 할 때에는 즉시 맞불로 대답할것이며 미제침략자들을 징벌하고 조국을 통일할것이다. …
장군님의 담대한 말씀을 새기며 야영생들은 미제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조국을 통일할 열망으로 뜨거운 피를 끓이였다.
그런 그들을 둘러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동족끼리 서로 싸우는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을 살리는 통일이지 결코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한피줄을 이어받고 같은 언어를 쓰며 한강토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 전쟁의 참화를 입게 되는 그런 통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면서도 심사숙고하고 인내성있게 자주적평화통일을 주장하는것입니다.》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장군님의 심오한 가르치심은 어은동의 산발들을 즈렁즈렁 울리는듯싶었다.
조국통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찌기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밝혀주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민족단결사상에 따라 전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쟁취하여야 한다. 위대한 통일전선의 기치인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전민족적단결의 대강이다. 우리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밝혀준 민족단결사상에 따라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
장군님께서는 오늘 자신께서 록지에 새겨진 구호를 보고 좋은 구호라고 하는것은 백두산정신으로 전민족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자는것이 바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기본정신과 우리의 일관한 민족단결사상을 반영하고있으며 우리 민족이 나아갈 출로를 표현하고있기때문이라고, 민족의 단결을 실현하자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민족단결대강에 충실하고 성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위업이 정당하고 민족단결대강에 대한 우리의 충실성과 성실성이 인정되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누구나 다 우리를 신뢰하고 우리가 추켜든 민족단결의 기치아래 뭉치게 될것이라고, 이것은 의심할바 없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을 들으며 야영생들은 백두산정신으로 전민족이 단결하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는 고귀한 진리를 더욱 심장깊이 새기였다.
산정에서 읊으신 즉흥시
주체51(1962)년 8월 29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군사야영구분대는 훈련강령에 따라 고지탈환전투를 진행하였다.
고지정점에 오른 야영생들은 유쾌한 오락회를 열었다.
노래소리, 웃음소리, 박수소리…
장군님께서는 고지정점에서 아름다운 조국의 산야를 굽어보고계시였다.
그때였다. 오락회를 하던 야영생들이 그이께 노래를 청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옷깃을 여미시며 먼저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높고낮은 산발들이 멀리 뻗어간 저 북쪽하늘가에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 솟아있을것이다. 백두산에서 바로 우리 혁명의 행군길이 시작되였다. 지금 우리 새 세대들은 항일혁명선렬들이 걸어온 영광스러운 그 길을 이어 힘차게 걸어가고있다. 우리는 혁명의 무기, 계급의 무기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이 땅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 우리 세대앞에 나선 이러한 숭고한 의무를 생각하면 가슴에 솟구치는 맹세를 억제할수 없다. 나는 오늘의 이 감정을 시행에 옮겨놓고싶다. …
이어 즉흥시를 읊으시는 장군님의 찌렁찌렁한 음성이 산정에 메아리쳤다.
총창을 비껴들고 산정에 오르니
멸적의 장수힘 온몸에 넘친다
미래를 꽃피울 피끓는 가슴에
달려갈 앞길이 파도쳐 밀려온다
천만대군 이끌고 험산준령 넘고넘어
백두의 행군길을 곧바로 이어가리
침략자 미제를 이 땅에서 내몰고
통일된 조국을 한품에 안으리라
삼천리강산을 락원으로 꽃피워
조선의 영광을 온 누리에 떨치리
그 어떤 원쑤도 다치지 못하게
내 조국 영원히 지켜가리라
우렁찬 박수가 뢰성마냥 터져올랐다.
군사야영생들은 고지의 바위우에 높이 서시여 한손을 힘있게 추켜드시고 천만대군을 이끌고 백두의 행군길을 이어 조국을 통일하고 삼천리강산에 락원을 일떠세울 맹세를 즉흥시에 담아 피력하시는 그이의 모습에서 수령님 그대로이신 또 한분의 백두산장군, 절세의 령장을 보았다.
후날 우리 인민은 그 력사의 봉우리를 《령군봉》이라 이름짓고 화강석비에 장군님께서 그날에 읊으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백두의 행군길 이어가리라》의 전문을 아로새겼다.
또다시 만나주신 해녀
주체56(1967)년 8월초 어느날이였다.
함경남도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리 멀지 않은 수산사업소에 지난날 제주도에서 해녀로 일하던 나이지숙한 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을 보내시여 그를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무슨 사연인지도 알지 못한채 차에 올라 어느 한 곳에 도착한 녀인은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일가?)
그때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녀인의 앞으로 마주오신 장군님께서는 고향이 제주도라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수고로이 오게 하였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녀인의 보폭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시며 년세는 어떻게 되였는가, 고향은 제주도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나이는 쉰살이 넘었고 고향은 남제주 표선리라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어델 가나 금수강산이니 필경 제주도도 경치가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어찌나 친절하게 대해주시는지 녀인은 어려움도 잊고 제주도경치에 대하여 한참동안이나 자랑을 늘어놓았다.
녀인의 두서없는 자랑을 흥미있게 듣고나신 그이께서는 고향에 갈 그날은 꼭 온다고 하시면서 고향에 가까운 혈육이라도 있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두고 온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수십년세월이나 서로 갈라져 소식조차 모르고있으니 얼마나 보고싶겠는가고 하시며 오늘은 우리와 함께 보내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한 녀성일군을 녀인에게 붙여주시며 그와 함께 휴양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도록 각별한 사랑을 돌려주시고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꼭 한해가 지난 여름 어느날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평범한 제주도녀인을 잊지 않으시고 바다에 함께 나가자고 또다시 불러주시였다.
배에 올라 수산물생산을 늘이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세워주신 장군님께서는 갑판우에 서있는 녀인의 곁으로 다가가시며 고향에 두고 온 딸생각을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렇다는 녀인의 솔직한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이 배길이 제주도와 잇닿아있으니 고향생각이 왜 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오래도록 남쪽바다를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배를 타고 내처 제주도까지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물새들도 자유롭게 북과 남을 오고가는데 한피줄을 나눈 부모처자들이 서로 갈라져 생사여부조차 모르고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녀인은 죄송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때문에 너무 속을 쓰지 마십시오.》
장군님께서는 혈육들이 서로 갈라져 이제는 얼굴도 모르게 된 이 비통한 일이 어찌 어머니네 한가정만의 비극이겠는가, 온 민족이 당하는 고통이다, 그래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문제를 두고 제일 심려하고계신다고 하시였다.
잠시 사이를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당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분계선장벽을 허물고 조국을 통일할것입니다. 조국은 반드시 통일됩니다.
어머니, 그날까지 늙지 말고 오래 사셔야 합니다.》
녀인은 몇번이나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통일된 강산에서 사랑하는 딸을 만날 감격의 그날을 그려보았다.
이날 저녁이였다.
숙소앞 백사장을 거니시던 장군님께서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두고 못내 가슴아프시여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국토의 량단으로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국통일은 더이상 미룰수 없는 민족지상의 과제입니다.
오늘 제주도해녀를 다시 만나보니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하여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은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야말겠다는 철석의 의지를 더욱 가다듬었다.
압록강반에 울린 총성
주체57(1968)년 7월 20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차가 김정숙군읍(당시 신파군읍)을 뒤에 남기고 얼마간 달렸을 때였다.
차창밖을 내다보시던 장군님께서 차를 멈춰세우시였다.
그냥 지나기엔 아쉬운 고장이요. 강바람도 쏘일겸 잠간 내렸다 갑시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여기가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신파군 신상리 민탕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압록강을 이윽토록 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항일의 나날에 압록강반에 메아리치던 조국광복의 총소리가 지금도 그대로 들려오는것 같습니다.》
모두가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 압록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다.
이때 길섶의 소나무가지우에서 여러 마리의 메새들이 청을 돋구어 지저귀고있었다.
한 항일혁명투사가 장군님께 새를 몇마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올렸다.
새를 잡자기보다 총을 쏴보고싶단 말이겠지요. 아마도 이 강을 넘나들며 왜놈들을 족치던 생각이 간절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하지만 아름다운 이 나라 산천이 좋아 노래하며 즐기는 산새들을 쏘아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여기에는 항일투사들도 있고 군사지휘관들도 있는데 차라리 저 소나무밑에 목표를 설정하고 권총사격경기를 해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좋습니다. 모두들 찬성이면 권총사격을 해봅시다.
곧 사격목표판이 세워졌다.
드디여 민탕굽이의 고요를 깨뜨리며 총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한 항일투사가 먼저 사격을 하고 물러서자 한 군관이 뒤를 이었다.
사격성적은 모두 괜찮은편이였으나 누구도 30점을 맞히지는 못하였다.
누군가 장군님께서 사격을 하여주실것을 청을 드리자 그이께서는 내라고 경기에서 빠지면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사격좌지로 천천히 다가서시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면서 비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한 일군이 그이께 잠시 비를 그은 다음 사격하시면 어떻겠는가고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화선에 나선 병사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목표를 소멸하기 전에는 돌아설 권리가 없다고 하시며 목표를 겨냥하시였다.
야무진 세방의 총소리가 골짜기를 들었다놓았다.
이어 환성이 터져올랐다.
세방 다 10점 동그라미안에 명중되였던것이다.
일군들이 탄복을 금치 못하며 격동된 심정을 그대로 터놓자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조국을 평화적방법으로 통일하는것은 변함없는 우리 당의 방침입니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장군님께서는 그러나 원쑤들이 한사코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일격에 놈들을 때려부시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그러자면 누구나 총을 쏠줄 알아야 하며 특히 군사지휘관들은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압록강반에 메아리친 이날의 총성은 미제가 또다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다면 혁명의 총대로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고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는 백두령장의 철의 선언으로 강산을 울리였다.
정원길에서 나누신 이야기
주체58(1969)년 4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은 한 일군은 그이께 급히 달려가 그동안의 사업정형에 대해 보고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의 보고를 받으시고나서 사업에서 지침으로 되는 고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다나니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문득 장군님께서는 일군에게 바람을 쏘일겸 바깥에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일군은 죄책감을 금할수 없었다. 장군님의 건강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 오래동안이나 사업보고를 드렸다는 생각에 더없이 민망스러워졌던것이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이를 모시고 정원길을 산책하게 될 영광의 기회가 차례진것으로 하여 마음이 개운했다.
유난스레 화창한 봄날씨였다.
훈훈한 봄바람에 짙은 꽃향기가 실려오고 머리우에서는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봄노래처럼 들려왔다.
일군은 상쾌한 기분으로 그이를 따라 걸었다.
한동안 걸으시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신 장군님께서는 일군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봄은 참말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의 봄을 생각합니다.
그이의 음성은 서정적으로 울리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얼마전에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57돐을 뜻깊게 기념하였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을 때마다 수령님께 통일의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것이 죄송스럽습니다.
우리모두가 힘을 합쳐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깁시다.
수령님의 수십성상의 혁명활동력사를 상징하는 만경대의 봄과 조국통일.
한평생 조국통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나라의 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장군님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자자구구 맥박쳐왔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가는데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근본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오래도록 계속되였다.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기시려는 장군님의 사색의 세계는 화창한 봄의 정서와 더불어 더욱 폭넓게 펼쳐지고있었던것이다.
통일은 애국, 분렬은 매국
주체62(1973)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가까이 부르시였다.
일군으로부터 그동안의 사업정형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놓으시기 위하여 조국통일5대방침을 내놓으시였다고 하시면서 지금 해외동포들속에서 어떤 반향이 일어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5대방침을 접하자 민족적량심을 가진 모든 해외동포들이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고있습니다.》
일군은 민족의 영구분렬을 막기 위한 애국투쟁에 떨쳐나설 굳은 결의를 표명하고있는 해외동포들의 반향에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가며 대답을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응당 그럴것이라고 하시면서 얼마전에 남조선당국자들이 이른바 《특별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여 《유엔동시가입론》을 들고나왔는데 그것은 미제의 부추김밑에 《두개 조선》을 조작하려는 극악한 민족반역행위라고 분격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조국통일5대방침은 영구분렬책동을 파탄시키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혁명적이고 적극적인 방침이라고, 이 애국애족적인 통일구국방안을 그 누가 받아들이지 않을수 있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민족의 리익은 티끌만치도 안중에 없이 저들의 더러운 명줄을 끊기우지 않기 위해 《두개 조선》조작책동에 미쳐날뛰고있는 남조선당국자들이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매국노들이라고 준절히 단죄하시였다.
일군은 천추에 용서할수 없는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민족적격분으로 몸을 떨었다.
근엄한 안색을 띠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노기를 가라앉히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통일은 애국이고 분렬은 매국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지 통일을 원합니다. 조국통일은 참말로 민족의 량심이 가리키는 애국위업입니다.
그러시면서 예로부터 조선사람들은 침략자와 매국노들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정의롭고 애국적인 민족이라고,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조국통일5대방침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면 할수록 해외의 모든 동포들도 미제와 그 주구들의 《두개 조선》조작음모책동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투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떨쳐나설것이라고 하시였다.
통일은 애국이고 분렬은 매국이다!
그것은 절세의 애국자이신 장군님의 통일의지의 선언이였다.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를 바탕으로 한 조국통일사상의 천명이고 민족적량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통일의 길, 애국의 길을 걸을데 대한 호소였다.
《여기서 서울까지 몇리나 됩니까?》
위대한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찾으신 주체63(1974)년 7월 어느날이였다.
판문점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곧바로 판문각 2층로대로 나오시여 허리에 두손을 짚으시고 회의장마당과 판문점주변을 둘러보시였다.
해마다 덧쌓이는 분렬의 년륜과 더불어 해묵은 쑥대와 갈대만이 무성해진 남쪽산야…
불행과 고통이 비낀 황량한 산천에서 통일을 갈망하는 남녘겨레들의 피타는 절규를 들으시는듯 한동안 남녘하늘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나직이 뇌이시였다.
《삼각산!》
그이의 음성은 비분에 젖어있었다.
《삼각산!》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조용히 되뇌이시며 검은구름이 떠도는 남쪽하늘에서 점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삼각산은 세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솟아있다고 하여 북한산에 붙여진 이름이였다. 바로 그 산밑에 서울이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여기서 서울까지 몇리나 됩니까?》
한 일군이 서울까지의 거리에 대하여 말씀올렸다.
그러나 다음순간 말씀올린 일군도 곁에 있던 일군들도 못박힌듯 굳어지고말았다.
장군님께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몰라서 물으시는것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사실 판문점에 처음으로 나오시였을 때에도 그이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었다.
그때도 판문각 로대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여기서 서울까지는 지척이라고 하시며 쌍안경으로 남녘땅을 바라보시고나서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판문점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자동차로는 불과 1시간, 걸어서는 하루길도 안되는 지척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다.
서해바다가로부터 동해바다가에 이르는 동서 수백리에 뻗어있는 이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수많은 마을과 부락들이 종적마저 없어지고 북과 남을 잇던 도로들과 관개수로도 끊어졌다.
북남으로 뻗은 산줄기들과 철길들, 림진강, 북한강을 비롯하여 크고작은 강줄기들과 시내들도 군사분계선에 의하여 토막나 나루터도 다리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북남을 이어주던 모든것이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동강나고만것이다.
《여기서 서울까지 몇리나 됩니까?》
이 물으심에는 하루내에 오갈수 있는 내 나라 지경을 가로막은 군사분계선을 더이상 그대로 둘수 없다는 장군님의 의분, 조국통일위업의 완수를 자신의 사명감으로 감수하시며 민족분렬의 고통을 끝장내려는 그이의 강의한 통일의지가 마디마디에 깃들어있었다.
충신의 피형
사람들의 피형은 대체로 4가지로 나뉘인다.
O형, A형, B형, AB형.
이것은 생물학적존재인 사람에게 고유한 피형이다.
그러면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피형은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할수 있을것인가.
주체63(1974)년 12월 23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뜻깊은 담화를 하시며 혁명가의 피형에 대한 철학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탄생일을 하루 앞둔 이날 어머님에 대한 이름할수 없는 추억을 더듬어가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늘 나에게 조국을 통일하여 백두산에서 고생하며 싸우신 수령님께 조국통일의 기쁨을 드려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시였다. 어머님을 생각할 때면 어머님께서 왜 아직까지 수령님께 조국통일의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가고 준절하게 말씀하시는것만 같다. …
그이께서 잠시 말씀을 끊으시자 방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떠돌았다.
어머님의 준절한 물으심이 일군들의 가슴속에도 세차게 파고드는것만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어떻게 하면 수령님께 조국통일의 기쁨을 드리겠는가 하는것을 늘 생각한다고,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는것은 혁명전사들의 최대의 행복이라고 언명하시였다.
행복, 누구나 다 행복에 대하여 제나름대로 일컫는다.
그러나 수령님의 혁명전사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은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는것이다.
그 기쁨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 나라의 혁명전사들이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헌헌히 바쳐오고있는것인가.
장군님께서는 방안의 정적을 깨치며 이렇게 선언하시듯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변심을 모르는 주체형의 충신이 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충신의 피는 O형이나 A형이 아니라 주체형이여야 합니다.》
우리 혁명가들의 피는 주체형.
사람들의 심장에 불을 지펴주는 또 하나의 주옥같은 명구를 받아안은 크나큰 격정과 흥분을 안고 일군들은 예지로 빛발치는 그이의 모습을 우러렀다.
장군님께서는 주체형의 피가 끓는 사람은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이 티없이 맑고 깨끗하며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하지 않는다고,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만 높으면 지혜가 움트고 방법이 떠오르며 가능성이 생기고 신념이 강해져 그 어떤 어려운 문제도 다 풀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주체형의 붉은 피로 심장을 끓이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으로 주체형의 피를 더욱 붉게 물들이자.
누구의 가슴속에서나 이런 심장의 웨침이 소용돌이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일군들은 주체형의 피가 끓는 신념화된 충실성을 간직하고 수령님께 조국통일의 기쁨을 드리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여야 합니다.》라고 뜻깊은 담화를 마치시였다.
이날 일군들은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주체형의 피를 펄펄 끓이며 헌신분투하는 참다운 일군이 되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고야말 굳은 결의를 다졌다.
《남조선인민들이 그립습니다》
주체64(1975)년 2월 16일이였다.
탄생 33돐을 맞이하는 이날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하루를 긴장하게 사업하시였다.
저녁늦어서 그이께서는 어느 한 단위의 일군들을 찾아가시였다.
(한밤중에 이곳에까지 오시다니?!)
경사로운 2월의 명절날 뜻밖에도 장군님을 맞이하게 된 일군들의 감격은 이를데 없었다.
방안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시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오늘 저녁 동무들이 보고싶어 찾아왔습니다. 나는 오늘 밤을 동무들과 함께 보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일군들은 탄생일을 맞으시는 그이께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마련해드릴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였다.
장군님께서 아침일찍부터 종일토록 집무를 보셨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그들이였다.
그러나 일군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다정하게 자리를 같이하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일이 바로 조국통일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문제를 두고 제일 심려하십니다.
(조국통일문제가 얼마나 걱정되시였으면 생신날 밤마저도 쉬지 못하시고 우리들을 찾아오시였으랴!)
일군들은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장군님의 절절한 음성이 그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동무들을 볼 때마다 남조선인민들이 보고싶습니다. 아, 정말 남조선인민들이 그립습니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만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일군들은 보통날도 아닌 뜻깊은 생신날 밤조차도 남녘의 동포들을 잊지 못해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고 조국통일에 관한 그이의 구상을 잘 받들어 일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일군들을 잠시 둘러보시고나서 모두 일을 잘해 조국통일을 앞당기자고 하시며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가르쳐주기도 하시고 일군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문제들도 차근차근 말씀해주시였다.
일군들은 그이의 귀중한 말씀을 받아안으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정녕 한해에 한번밖에 오지 않는 뜻깊은 생신날의 한밤마저 분렬된 조국땅 남쪽에서 수난받는 인민들을 그리시며 조국통일의 려명을 안아오시는 일에 고스란히 바치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모습은 조선민족 온 겨레가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따라야 할 위대한 태양의 모습이였다.
새해의 깊은 밤
주체65(1976)년 1월 1일이였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양력설날의 즐거운 밤을 보내고있는 11시경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의 일군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장군님을 뵈옵는 순간 일군들은 가슴뜨거움을 걷잡지 못했다.
(오늘도 온종일 쉬지 못하시였구나! …)
일군들이 전사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신들을 돌이켜보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친히 한사람한사람에게 새해를 축하해주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조국통일문제에 대하여 매우 심려하고계십니다. 동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령님의 이 심려를 반드시 덜어드려야 합니다.》
일군들은 새해의 깊은 밤에도 나라의 분렬로 하여 겪고있는 겨레의 고통을 생각하시며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시려는 장군님의 확고부동한 신념, 철석의 의지를 심장으로 절감하였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창문가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과업을 다음세대에까지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 세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은 일군들의 가슴속에 절절히 울리였다.
새해의 첫날 온 겨레의 통일념원을 하루빨리 이룩하기 위하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정력적으로 사업을 보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반드시 통일의 그날을 앞당겨올 굳은 맹세로 가슴을 불태웠다.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
주체65(1976)년 7월초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조종의 산 백두산에 오르게 되였다.
이른새벽 남먼저 출발지점에 나오시여 일군들을 반가이 맞이하신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행군준비정형을 차례차례 알아보시였다.
한 일군에게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에 몇번 올라가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여러번 올라가보았다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그랬을것이라고, 자신께서도 몇번 올라가봤다고, 그런데 오늘 새벽에 또다시 백두산에 올라가보자고 하는것은 백두산에 올라가보면 볼수록 우리 조국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가 하는것을 더 느끼게 되고 이 조국을 위해 피흘려 싸운 항일혁명선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워 혁명에 더 충실하겠다는 혁명적인 각오와 열정, 투지와 의욕이 더 솟구치군 하기때문이라고 격정에 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일행은 곧 장군님을 따라 백두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백두의 정기를 안으시고 탄생하신 장군님을 모시고 백두령봉에 오르게 된 환희와 기쁨으로 하여 일군들의 걸음은 하늘을 날을듯 하였다.
행군대오가 삼지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삼지연못가에 서신 장군님께서는 수정같이 맑은 호수며 그 주변의 울창한 숲을 그윽히 바라보시였다.
잊지 못할 불멸의 이야기가 어려있는 삼지연의 맑은 물…
저 멀리로 사시장철 흰눈을 머리에 이고 구름우에 치솟아 천하를 굽어보는 백두산의 장중한 위용이 드러나있었다.
《백두산!》
일군들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환성이 튀여나왔다.
얼마후 삼지연못가를 떠난 대오는 행군길을 다그쳐 백두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만리창공에 아아히 솟은 백두의 메부리!
장군님께서는 장군봉에 오르시자 두손을 허리에 짚으시고 숭엄하면서도 장쾌하게 펼쳐진 백두산천지며 험준한 산발들을 이윽토록 둘러보시였다.
그 어디에나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투쟁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전적지였고 못 잊을 추억이 깃든 고장이였다.
숭엄한 안광으로 백두의 산야를 더듬으시던 장군님께서는 남쪽으로 련련히 물결쳐간 수림바다너머로 눈길을 보내시며 무거운 표정을 짓고계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해야 하겠소.》
일군들은 무엇이라 말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사실 그이로부터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말씀을 받아안은적이 한두번이 아닌 일군들이였지만 이때처럼 세찬 충격을 느껴본적은 아직 없었다.
아득한 세월 두팔 뻗쳐 금수강산이라 이름높은 삼천리강토를 펼쳐놓았고 흰 물결 부서지는 다도해 섬들과 한나산까지 자래워놓은 백두산, 바로 삼천리조국강토를 낳은 이 조종의 산 백두산마루에서 두동강 난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할데 대해 주시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일군들의 가슴속에 온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체현하신 백두산의 아들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지닐수 있는 위대한 결단, 력사의 맹세로 울려왔던것이다.
판문점을 찾으신 숭고한 뜻
주체66(1977)년 7월 어느날 분계연선지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개성시안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고 남녘땅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어느 한 언덕에 오르시였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비구름이 드리운 남녘하늘을 바라보시며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그러시다가 이곳에서 저 남녘하늘가를 바라보느라니 남녘의 부모형제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조국통일3대원칙에 따라 력사적인 북남공동성명이 채택되고 대화의 문이 열리였어도 외세와 야합한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은 의연히 진통을 겪고있었다.
이것을 두고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는 장군님이시였다.
이윽고 판문점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곧바로 판문각 로대로 나가시였다.
로대앞에 다가서신 그이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시야에 안겨드는 조국의 산야를 둘러보시였다.
조국땅 한복판을 가로질러간 저 원한의 분계선때문에 멀리 북쪽에서 나오던 철길과 고압선철탑들이 여기서 남으로 더 잇닿아가지 못한채 끊기우고말았다.
분노의 시선으로 분계선너머에서 거만스레 오가는 미제침략자들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침묵을 깨뜨리시였다.
《저 뻔뻔스러운 미국놈들을 보시오.
남의 나라를 먹고도 <자유의 수호신>으로 자처하고있습니다.》
그이의 음성에서는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하고 우리 민족에게 온갖 불행과 재난을 들씌우고있는 미제침략군에 대한 용납할수 없는 단죄가 뢰성같이 울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놈들이 지금 제아무리 거들먹거리지만 그리 오래 배겨내지는 못할것이라고 하시며 우리 시대는 자주성의 시대이며 남조선인민들도 이러한 시대의 추세속에서 숭미사대주의의 잠에서 깨여나 반미항전의 거세찬 불길을 지펴올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위엄에 찬 기상은 하루빨리 민족분렬사를 끝장내고 남녘인민들을 구원하실 숭고한 의지로 빛나고있었다.
일군들은 모두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우리는 그날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앞당겨오기 위해서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나는 이곳에 오면 하루빨리 분계선을 없애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더욱 굳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분계선지구에 나올 때마다 판문점에 들리군 합니다.》
이렇듯 우리 인민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는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성스러운 사명감으로 여기시며 모든것을 다 바쳐가시는 장군님의 심중에는 언제나 남녘의 겨레들과 조국통일이 떠날줄 몰랐다.
언제나 하나의 조선만을…
주체68(1979)년 10월 어느날 밤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국제무대에서 론의되고있는 우리 나라의 통일전망에 대한 견해에 대해 물으시였다.
일군은 우리 나라의 통일전망과 관련한 세계여론을 종합해놓고보면 조선의 통일이 우리 세대에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관점들도 있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일군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우리 세대에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들이 왜 생겨난것 같은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일군은 자기나름대로 생각하고있는 문제점들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조국통일을 위해 피도 많이 흘리고 시간과 정력도 많이 소모했지만 통일의 앞길에는 여전히 암초만 가로놓여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통일이 먼 앞날의 일이라고 비관하는 현상도 생기고 통일이 우리 세대에는 이룩되기 어려울것이라고 실망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지어 어떤 사람들은 조선의 분렬을 고찰함에 있어서 그것을 조선반도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대치하고있는 힘의 균형상태의 반영으로 보면서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견해까지 대두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의 전도를 비관하는 태도가 나오게 된 주객관적요인들을 분석하시며 우리 나라의 통일에 대하여 비관하는 론조는 결국 하나의 조선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속에서 나오는 사상적경향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조선의 통일문제는 결국 하나의 조선인가 아니면 두개의 조선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단호한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조선만을 생각하고있습니다. 두개의 조선을 순간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격한 심정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조선은 하나로 합쳐져야 살고 둘로 갈라지면 살수 없는 유기체와 같다.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이다. 《조선은 하나다!》, 이것은 나의 확고한 의지이다. 나는 어린시절 38°선이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 분렬의 장벽을 일시적인것으로 생각했지 결코 영원한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계속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통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후대에 통일위업을 미루려는 그릇된 관점이라고, 통일위업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여도 온 민족이 애국의 마음으로 단합하면 능히 내외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음모를 짓부시고 우리 세대에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조선만을 생각한다!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에 넘치신 그이의 말씀은 그 일군뿐아니라 온 겨레의 가슴속에 새로운 힘과 용기, 굳건한 통일의지를 북돋아주었다.
《우리 세대가 조국을 통일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주체69(1980)년 4월 어느날이였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어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일군들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우리 머리도 쉴겸 평양시내를 한번 돌아보자고 하시며 밖으로 나서시였다.
일군들은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장군님을 모시고 거리를 돌아보게 된 무상의 영광은 말할것도 없고 그이께서 차안에서라도 잠시 휴식을 하실수 있게 된것이 더없이 기뻤다.
장군님을 모신 승용차는 봄기운이 짙어가는 수도의 거리를 경쾌히 달리였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여난 모란봉과 살구꽃이 만발한 수도의 거리…
하지만 그이께서는 달리는 차안에서도 인민들의 옷차림과 수도의 건설정형을 비롯한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며 줄곧 인민생활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황혼의 장미노을이 붉게 물든 수도의 거리로 장군님을 모시고 귀로에 오른 일군들은 뜨거운것이 하염없이 괴여오름을 누를길 없었다.
남녘겨레들의 모습을 생각하시는지 차창밖에 한동안 눈길을 두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해야 합니다.
날이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민족분렬의 참화는 더 커지고 조국통일은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력사앞에서, 민족앞에서 책임지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달리는 차안을 가득 채우며 힘있게 울리는 그이의 말씀은 일군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하루속히 끝장내기 위하여 그리도 마음쓰시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어느 한 기회에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조국통일문제를 후대들에게 넘겨준다면 그것은 력사와 민족앞에 큰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
나라와 민족이 분렬되는 민족적비극을 직접 당하고 민족분렬의 모진 불행과 고통을 뼈에 사무치도록 체험한 우리 세대가 조국을 통일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조국을 통일하지 못하면 우리는 조선혁명을 했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참으로 깊은 의미를 새겨주는 말씀이였다.
일군들은 장군님의 말씀을 가슴속에 새기며 조국통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겠다는 철석의 의지를 가다듬었다.
아침도 저녁도, 새벽에도 밤에도
주체69(1980)년 여름 동해안일대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한 일군과 함께 바다가로 나가시였다.
마침 그날따라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개여있었다.
푸른 물결이 늠실대는 장쾌한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백사장을 거니시였다.
매일같이 바쁜 시간을 보내시던 장군님께서 필경 오래간만에 바다구경을 하며 휴식하시게 되였다고 생각한 일군은 기쁜 마음으로 조용히 따랐다.
그런데 사색의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며 일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아침에 깨여나도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고 저녁에 잠들 때에도 통일을 위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 …》
그제서야 그 일군은 장군님께서 이 시각 바다가의 장쾌한 경치를 부감하시는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통일과 잇닿아있어야 합니다.
공장을 하나 건설해도 통일에 보탬을 줄 생각을 해야 하고 만풍년을 마련해도 통일의 밑천을 굳건히 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바다가를 걸으시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그이께서는 이렇듯 조국의 통일을 두고 마음쓰시였던것이다.
주체74(1985)년 9월 22일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은 우리의 가장 성스러운 사명이며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세대에 조국을 통일하려면 모든 일군들이 언제나 조국통일에 대하여 생각하며 일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 때에도 조국통일을 생각하고 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울 때에도 조국통일을 생각하여야 하며 꿈을 꾸어도 조국통일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조국통일과 잇닿아있어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사업은 조국통일에로 지향시켜 진행하여야 합니다.》
이렇듯 장군님께서는 그 언제, 그 어디에 가시여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새벽에도 밤에도 언제나 조국통일에 대해 생각하시였다.
《조국통일은 나의 사명입니다》
주체70(1981)년 9월 22일 날이 어두워질무렵이였다.
한 일군을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오늘 자신과 함께 지방으로 떠나자고, 해외인사를 만나 이야기나 나눠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오늘말입니까? 오늘은…》
일군은 불의의 충격을 달래며 애원하듯 말씀드렸다.
《정말 오늘이 9월 22일이지.》
사랑하는 어머님을 너무도 뜻밖에 잃은 그 비통한 날을 그이께서 천년이 간들 만년이 간들 어찌 잊으실수가 있으랴.
하지만 누구보다 가슴아픈 이날을 깊이 새겨두시고도 전사들이 괴로와할가봐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장군님께서는 차라리 이런 날에는 동무들과 같이 조국통일문제를 의논하는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였다.
《조국통일문제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 떠납시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빨리 갑시다. 언제나 이렇게 밤에 먼길을 떠나군 해서 미안합니다.》
이날 목적지에 이른 일군들은 호수가에 있는 숙소의 수수한 방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뜻깊은 밤을 보내게 되였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못견디게 차오르는 그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로 된다는 격언이 불쑥 떠오른 한 일군이 장군님께 어머님의 령구를 모란봉에 안치하던 일을 추억하여 몇마디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당시 어데서 무슨 일을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저는 회의에 참가하러 평양에 올라왔다가 그 가슴아픈 비보를 듣고 어머님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란봉에 올라갔었습니다.》
묵묵히 듣고계시던 그이의 안광에는 무거운 그늘이 비껴있었다.
그제서야 일군은 장군님을 위로해드린다는것이 오히려 그이의 가슴속에 서린 마음의 상처를 또다시 아프게 해드렸다는 생각에 자신을 책망하였다.
그이를 순간이나마 위로해드릴수 없는것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창가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숙연한 정적속에 출렁이는 호수와 저 멀리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천천히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처럼 조국통일을 바라신분은 흔치 않을것이다. 항일투사들이 찾아와 이제는 백두산시절과는 달리 령토도 있고 주권도 서고 나라의 재부도 많은데 옷 한벌쯤이야 왜 못해입으시겠느냐고 간절히 말씀드려도 통일이 되여 모든 겨레가 다같이 잘 입고 잘 살 때 우리도 비단옷을 입고 잘 살아보자고 타이르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늘 조국통일을 먼저 생각하시며 모든 행복을 뒤로 미루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백두산에서 고생하시던 수령님을 잘 모시자면 빨리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1940년대말에 어머님으로부터 수령님을 받들어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길데 대한 말씀을 받은 나는 오늘도 아직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
자기들이 조국통일위업을 촉진하지 못하여 그이의 심중에 자리잡고있는 아픔을 덜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일군은 자책감과 송구함으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그이의 음성은 계속하여 방안을 울리였다.
《조국통일은 나의 사명입니다. 조국통일은 수령님앞에서 책임진 나의 당면과업입니다.》
밤은 깊어가고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어머님을 추억하시는 그 순간조차도 조국통일문제를 생각하시는 장군님앞에서 일군은 크나큰 격정을 누를수가 없었다.
함께 나누신 동지죽
한해가 저물어가는 주체70(1981)년 12월 22일 몇몇 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이날은 국가적명절도 아니고 또 어떤 기념일도 아니여서 모두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오늘이 동지날이라고, 그래서 오래간만에 동지죽을 쑤었기에 동무들을 불렀다고 하시는것이였다.
그제서야 그이께서 부르신 의도를 알게 된 일군들은 그만 목이 메여올랐다.
하지만 그처럼 바쁘신 장군님께서 동지날을 잊지 않으시고 동지죽을 함께 나누시려 자기들을 불러주신데는 사연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뜻깊은 날이였다.
동지날이라고 하면 년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이며 이날에 팥죽을 쑤어먹는것은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민족적풍습이였다.
한해농사를 지어 알알이 골라두었던 잘 영근 팥을 삶아 걸러서 별식으로 끓인 죽을 온 식솔이 단란하게 둘러앉아 먹는것은 우리 인민의 아름다운 풍속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식탁으로 이끄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지날을 쇠며 동지죽을 먹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동지죽을 먹으면서 한살을 더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해를 돌이켜보며 새해의 결의를 다지게 되니 좋고 이웃들이 서로 동지죽을 나누어 먹으면서 화목을 도모하니 또한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시고는 팥죽을 많이 들라고 권하시며 즐겁게 웃으시였다.
식사를 마쳤을 때 그이께서는 이렇게 모두 한가마에 끓인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생각깊은 어조로 뇌이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나라와 민족이 분렬된채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고 하시면서 절절히 이르시였다.
《동무들, 조국통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이의 음성은 조용히 울렸으나 그 말씀속에는 조국을 통일하지 못한채 또 한해를 보내며 동지날을 맞는 괴로움이 무겁게 실려있었다.
잠시후 장군님께서는 조국을 통일하고 남녘동포들과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앉아 동지죽을 나누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그날을 하루속히 앞당겨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동지날 동지죽 한그릇을 앞에 놓으시고도 분렬된 조국과 남녘겨레들을 생각하시며 조국통일의 의지를 굳히시는 위대한 장군님.
잊지 못할 그날에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온 겨레와 함께 동지죽을 나누시며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기시려는 철석같은 신념을 다시한번 심장에 새기시였으니 참으로 뜻깊은 동지날이였다.
질문과 대답
주체74(1985)년 5월 2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 한 나라의 주석을 만나시였을 때의 일이다.
이날 주석은 장군님께 조선의 통일과 관련한 세가지 질문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즉석에서 명쾌한 답변을 주시였다.
그날에 있은 이야기이다.
조선의 통일문제
위대한 장군님의 겸허하신 풍모에 매혹된 주석은 조선의 통일문제가 지금 일정에 오르고있다고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다.
《현재 통일문제가 어떤 형편에 처해있습니까?》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조선민족 내정의 일인지라 심사숙고하여야 할 물음이였다. 그러나 한 나라의 정치가로서 장군님의 견해를 직접 청취하고싶은 욕망이 앞섰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조선의 통일문제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민족최대의 숙망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이며 세계인민들의 커다란 관심사로 되고있는 국제정치의 초미의 문제의 하나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올해에 조국해방 40돐을 맞이하게 되는데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지난 40년은 세기적인 진보와 번영을 이룩한 승리와 영광의 40년이였으나 전민족적견지에서 본다면 민족분렬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불행한 40년이였습니다.》
장군님의 음성은 지난 40년간의 민족분렬의 고통을 돌이켜보시는듯 은근히 갈려있었다.
그는 장군님의 안색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결연한 통일의지로 안광을 빛내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여야 우리 인민은 민족분렬로 인한 재난과 불행에서 벗어날수 있으며 온 민족이 다같이 진보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수 있습니다.》
이어 조선의 분렬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항시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긴장상태의 근원으로 되고있으며 바로 그렇기때문에 세계인민들은 조선의 통일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라고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조국을 자주적으로, 민주주의적원칙에서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방침과 여러가지 합리적인 제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여왔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성의있는 노력과 주동적인 발기에 의하여 1972년에 오래동안 격페되였던 북과 남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김일성주석께서 내놓으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력사적인 7. 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 오늘 우리 나라의 북과 남사이에는 적십자회담의 문도 열려져있고 경제회담의 문도 열려져있다. 우리는 앞으로 북과 남사이의 대화를 잘 추진하여 고위급정치회담으로까지 발전시키려고 한다. …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의 문도 열어놓고있다고, 우리 공화국정부는 벌써 10여년전에 조미회담을 열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으며 지난해에는 우리와 미국, 남조선사이의 3자회담을 열것을 제의하였다고,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가 내놓은 제안들은 다 상대측에서 진실로 조선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호응해나서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실현될수 있으며 또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 있는 매우 공명정대하고 현실성있는 방안들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나라의 통일을 위한 대화를 성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것입니다.》
조국통일의 장애는 무엇인가?
위대한 장군님의 사리정연하신 대답에 매혹된 수반은 두번째 질문을 하였다.
《통일된 하나의 조선을 건설하는데서 장애로 되는것은 어떤것들입니까?》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한것은 그 질문에 몇마디로 해답하기에는 지나간 력사가 너무도 벅찼기때문이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분렬을 끝장내고 통일된 조선을 건설하는데서 장애로 되는 문제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남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두개 조선>정책을 실시하고있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후 오늘까지 계속 남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있으며 우리 나라의 분렬을 고착시켜 《두개 조선》을 만들려는 정책을 실시하고있다고, 우리 나라를 분렬시킨 장본인도 미국이고 우리 나라의 통일을 가로막고있는 주되는 장애물도 미국이라고, 미국군대가 남조선에서 철거하고 미국이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민은 자체의 힘으로 얼마든지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조선의 분렬은 우리 인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미국에 의하여 강요된것이였다.
《38°선을 조선의 분렬선으로 하는것은 한번도 국제적인 토의에 제기된바 없었다. 이것은 일본의 전쟁기구가 돌연히 파괴되였을 때 미국측에서 실제적인 해결책으로 제안한것이였다.》
트루맨이 솔직히 토설한바와 같이 주체34(1945)년 5월 9일 파쑈도이췰란드의 항복과 함께 국제파쑈세력의 붕괴는 급속히 추진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이전 쏘련군대의 대일작전개시로 하여 미제는 등이 달았다.
그것은 노도와 같이 진격하는 이 세력이 불피코 단숨에 남하하여 전조선을 차지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당시 미제는 조선에 파견할 선박도 군대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조선을 타고앉아야 한다는 야망밑에 트루맨은 국무, 륙군, 해군 3성조정위원회에 그 해결책을 강구할데 대해 직접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그날 국방성에 모인 륙군장교들(그 대다수가 겨우 준장이하의 대좌급들이였다.)은 론의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어떻든 조선은 두 부분으로 갈라져야 하며 그것도 오늘 오후 4시까지 해내야 한다.》
륙군장교들은 세계지도를 놓고 북위 38°선에 분렬선을 긋고 만주와 조선 38°선 이북 그리고 싸할린에 있는 일본군은 쏘련원동군 총사령관앞에 항복하며 일본본토와 조선 38°선 이남 그리고 필리핀에 있는 일본군은 미극동군 총사령관앞에 항복하게 한다는 최종안을 만들었다.
이 계획은 《일반명령 제1호》로 서문화되였다.
트루맨은 이것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조선의 절반땅을 먹게 되였다고 몹시 흡족해하면서 이 강도적인 요구를 즉시 쏘련정부에 통보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8월 15일 무조건항복을 선포한지 20여일이 지난 9월 8일에야 자기의 륙전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이때로부터 반만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은 분렬의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되였다.
조선을 둘로 갈라놓은 그 저주로운 분계선, 38°선은 세계제패의 야망에 환장한 미제가 백주에 날조한 모략의 산물이였다. …
제2차 세계대전후의 국제정치정세의 추이를 돌이켜보며 심통해있는 그에게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의 앞길에 비록 커다란 장애와 난관이 가로놓여있지만 우리는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하여 비관하지 않습니다.》
조국통일의 전망은? …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 힘을 얻은 수반은 세번째 질문을 하였다.
《오늘 통일문제해결의 전망이 좋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우리 나라 통일문제 해결의 전망은 락관적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은 물론 남조선인민들과 해외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을 포함하여 전체 조선민족이 한결같이 통일을 원하고있으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고있다고,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진보적인민들도 조선이 평화적으로 통일되기를 바라고있으며 나라의 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이으시였다.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인민들의 투쟁이 승리하는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력사의 흐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속에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나라의 통일도상에 가로놓인 온갖 장애와 난관을 이겨내고 반드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고야말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날 담화가 있은 후 그 주석은 장군님의 명석한 해답, 뜨거운 민족애와 열화같은 통일의지에 탄복하여 이런 말을 남기였다.
조선인민은 위대하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제국주의아성,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 민족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조선인민은 정녕 위대하다. 그 위대성은 바로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였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였기에 조선인민은 반드시 민족분렬의 력사를 끝장내고 동방의 강대국으로 빛날것이다. 이미 인류력사는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민족의 미래는 밝고 창창하다는것을 증명하였다. …
고려민족의 넋
주체81(1992)년 2월초 설날에 있은 일이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켜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는 조국통일도 남의 힘으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이룩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선언하시였다.
《우리 민족은 그가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누구나 다 고려민족으로서의 넋을 지니고있기때문에 얼마든지 단결할수 있습니다.》
고려민족으로서의 넋!
장군님의 민족의 넋에 대한 가르치심은 일군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참으로 우리 민족과 온 겨레를 한품에 안으시고 조국의 무궁번영을 위해 모든 정력을 깡그리 바치시는 민족의 어버이만이 찾아줄수 있는 정신력이 아닌가.
한 일군이 장군님께 말씀드리였다.
《그런데도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 민족이 40여년동안이나 북과 남으로 갈라져 살았기때문에 민족성이 이질화되였다고 떠들고있습니다.》
격하여 저도 모르게 높아지는 일군의 목소리도 탓하지 않으시고 장군님께서는 피줄관계로 보나 미풍량속으로 보나 우리 인민의 민족성은 이질화되지 않았다고, 오늘이 설날이여서 그런지 서울시내에도 조선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차근차근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민족의 넋에 대한 가르치심은 계속되였다.
고려민족의 넋을 지니고있고 조국통일을 바라는 조선사람이라면 그가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누구나 다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단결하여야 하며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나라가 통일되면 우리 민족은 더욱 존엄있고 힘있는 민족으로 될것이며 우리 나라는 7천만의 인구와 찬란한 민족문화와 위력한 경제를 가진 자주독립국가로 세계에 빛을 뿌리게 될것이다. …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우리는 고려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켜 북과 남, 해외에 있는 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함으로써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고려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
고려민족의 넋으로 단결할데 대한 장군님의 조국통일사상은 민족의 이질성을 떠들면서 민족분렬을 영구화하려는 분렬주의자들의 머리우에 철추를 내리고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자주통일의 한길로 억세게 나아가게 한 힘있는 추동력이였다.
판문점시찰
재촉하시다가 늦잡으신 걸음
주체85(1996)년 11월 24일 이른새벽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의 병사들을 찾아 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였다.
달리는 차창밖을 내다보며 일군들은 병사들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불같은 마음에 가슴이 젖어들었다.
이제 병사들이 문득 찾아오신 장군님을 뵙게 되면 얼마나 감격해할것인가. 그들의 눈앞에는 벌써부터 병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보이는것 같았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 차들은 목적지를 가까이 하고있었다.
그런데 왜서인지 앞에서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멈춰서는것이였다.
무슨 일인가. 예상치 않았던 정황이라도 생겼는가.
일군들은 급히 차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긴장하게 달려간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여기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좀 쉬였다 갑시다.》
《예?!》
최전연의 병사들이 한시바삐 보고싶다고 그토록 재촉하시던 그이가 아니시던가. 그런데 지금은…
더우기 주변은 인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놀라와하는 그들에게 너무 일찌기 떠나 이렇게 로상에서 동무들을 고생시켜 안되였다고 하시며 오면서 생각해보니 아직 아침기상시간이 되자면 멀었는데 우리가 문득 초소에 나타나면 단잠에 들었던 전사들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잠이 중요하다, 잠을 푹 자야 초소근무를 실수없이 잘 설수 있다, 그러니 그들이 일어나 아침식사까지 한 다음에 가야 할것 같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속에서는 무엇이라 형언할수 없는 격정이 고패쳤다.
멀리에서는 병사들이 보고싶으시여 그리도 서두르셨던 그이이시건만 초소를 지척에 둔 지금은 오히려 걸음을 늦잡으시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그곳에서 오래동안 지체하신 후에야 길을 떠나시였다.
전사들의 단잠을 깨울세라…
소리없는 환호
차는 판문점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일군들의 심장의 박동도 차의 속도와 함께 빨라졌다.
다행스럽게도 그날따라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게 짙은안개장막이 드리웠다.
예리한 눈초리로 근무를 수행하던 우리측 경무관들은 불시에 나타난 차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내리시자 너무도 놀랍고 믿어지지 않아 한순간 멍해있었다.
그러다가 인차 사태를 알아차리고 어린애들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없는 《만세!》의 환호로 그이를 맞이하였다.
하늘땅을 뒤흔드는 함성보다 더 가슴을 세차게 울리던 그 무언의 《만세!》소리, 눈물범벅이 된 경무관들의 입에서는 어쩔수없이 흐느낌이 새여나오기도 했다.
장군님의 눈가에도 물기가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흔연스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너무 울지 마오. … 나는 동무들이 보고싶어 이렇게 찾아왔소.》
그래도 좀처럼 격정이 가라앉지 못하자 그이께서 분위기를 돌려세우시려고 다시 더 흔쾌하게 유모아를 보내시였다.
《악수바람에 내 손이 부스러지는가 했소. 키큰것을 보면 공화국롱구선수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구만.》
그제서야 마음이 좀 누그러진 경무관들이 그이를 안내하였다.
그들의 눈길은 긴장과 불안으로 더욱 날카로와졌고 만약을 예견한 전투동원태세로 한껏 충만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정전담판회의장, 정전협정조인장 등을 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판문점의 경무관들을 한사람도 빠질세라 모두 만나주시고 기념촬영을 하시였으며 마디마디 그루를 박아 말씀하시였다.
여기는 전연초소인것만큼 녹이 쓸지 말아야 한다. 쉬가 쓸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공간이 있으면 절대로 안된다. …
그이의 음성은 더욱 격렬해졌다.
오늘 인민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구호는 망국노가 되겠는가, 아니면 자주적인민, 자주적근위병이 되겠는가 이것이다. 동무들에게 이것을 강조하고 당부한다. …
수령님의 조국통일친필비
판문점대표부에 도착하시여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부터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시고 숙연히 서계시였다.
비문판에는 수령님께서 생을 마치시기 하루전날에 친히 조국통일관계문건에 마지막으로 쓰신 존함과 날자가 수령님필체그대로 새겨져있었다.
친필비에 새겨진 비문을 한자한자 눈여겨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판문점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가 세계전쟁사상 처음으로 미제를 타승한 력사적인 장소이면서도 민족의 분렬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자신께서는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려는 념원에서 해마다 해내외의 수많은 통일운동자들이 모여 통일행사를 벌리는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게 하였다고,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 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진 뜻은 수천수만자의 비문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일군들모두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판문각을 다 돌아보시고 각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또다시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친필비앞에 이렇게 서니 생각되는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기울여오신 수많은 낮과 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나날에도 전체 조선인민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분망한 시간을 보내시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략문건에 마지막 친필을 남기시고 다음날 갑자기 순직하시였다고,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이 력사적인 친필에는 수령님의 강의한 통일의지와 신념이 함축되여있고 조국통일에 대한 수령님의 확신이 담겨져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절절하고도 뜨거우시였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일군들의 가슴속에 통일의 의지를 더욱 굳게 새겨주었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선언하시듯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였는데 나는 조국을 통일하고 통일된 조국을 우리 인민들에게 반드시 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시려는 철석의 의지를 력사앞에, 7천만겨레앞에 엄숙히 선언하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근엄한 빛이 어리여있었다.
짙게 드리워 서서히 감돌아흐르는 안개도 그이의 숭고한 모습을 소중히 새겨안는듯 흐름을 멈추고 좀처럼 걷힐줄 몰랐다.
통일각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일군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통일각에 들리시였다.
통일각의 내부를 일일이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 건설유래와 거기에 깃들어있는 가지가지 이야기들을 감회깊이 들려주시였다.
사실 통일각은 장군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세심한 지도를 주시여 건설된 뜻깊은 건물이였다.
주체73(1984)년 초가을 공화국이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준것을 계기로 북남사이에는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진행될것이 예견되고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여도 판문점에는 판문각이 있었지만 북남회담을 하기에는 매우 협소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관계부문의 한 책임일군에게 판문점에 북남회담을 할수 있는 집을 한채 잘 지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조건을 최우선적으로 충분히 보장해주시였다.
건설이 끝난 후 일군들은 집이름을 어떻게 짓겠는가를 의논하던 끝에 몇가지 안을 만들어 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시고 어버이수령님과 토론하시여 《통일각》이라는 이름을 친히 지어주시였던것이다.
이런 일을 회고하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통일각>이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통일을 념원하는 뜻에서 좋고 통일된 다음에는 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좋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통일각은 진짜 멋쟁이집이라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통일각이 준공된 후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남회담들은 례외없이 여기에서 진행되였다.
통일각이 건설된 후에 처음으로 진행된 북남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통일각에 왔던 남측 기자들은 현판과 건물외형을 사진찍으면서 회담장이 정말 멋있다고, 이남 당국자들은 통일의지가 없다보니 통일을 상징하는 이런 건물을 지을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참으로 통일각은 민족의 통일념원과 의지를 체현하고있는 뜻깊은 집으로, 누가 진정으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바라고 누가 대결과 분렬을 추구하는가 하는것을 직접 목격하고 만천하에 웨치는 력사의 증견자로 되고있다.
바다같은 도량
새 세기의 첫 년륜이 새겨지던 주체90(2001)년 1월 3일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해에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것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인 사변으로 된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눈앞에는 흘러간 해의 격동적인 사변들이 어제런듯 방불하게 펼쳐졌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으실 굳은 결심을 품으시고 온 한해를 선군령도의 길에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4. 8북남합의서 채택, 평양상봉과 6. 15공동선언발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 남조선의 정당, 단체대표들의 조선로동당창건 55돐 경축행사참가…
아울러 온 민족의 관심속에 6. 15공동선언을 리행하기 위한 북남사이의 상급회담과 군사당국자회담, 적십자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회담들이 열리고 협력과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였다. 이 모든 특기할 사변들은 전적으로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장군님의 로숙하고 세련된 령도의 결과라는것을 다시금 절감하는 일군들의 가슴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강철의 선군령장이신 그이를 모시고 혁명하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끝없이 부풀어올랐다.
장군님께서는 통일에 대한 신심과 락관이 넘쳐나는 일군들의 얼굴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에게 줄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위업에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 보아주신 문건도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이였습니다.》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추연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시는 장군님.
새 세기를 맞이하고보니 수령님생각이 더욱 간절하다시며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던 새해의 그 시각에 수령님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당시)을 찾으시였던 그이이시였다.
이윽고 일군들에게로 돌아서신 장군님께서는 저력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민족적단합을 이룩하는것입니다.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났을 때에도 이야기하였지만 6. 15북남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묻지 말고 다 손을 잡아야 합니다. 과거를 따지기 시작하면 민족적단합을 이룩할수 없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반공>을 하던 사람들도 조국통일의 길에 나서겠다고 하면 대담하게 포섭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나서는 사람들은 다 포섭하여 민족적단합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과거를 묻지 말고 다 손을 잡아야 한다!
정녕 흐려진 천만가닥의 내물도 다 받아안는 바다와도 같은 한없이 넓으신 도량이였다.
밝아온 새해에도 민족대단합으로 자주통일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으실 철석의 의지를 천명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앞으로 그이의 손길따라 다가오는 통일의 려명이 찬란히 비껴흐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