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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대위는 왜 소식이 없을가? 하긴 그놈이 돌아오면 소란스럽기나 하겠지. 선저관리문제를 놓고 기관장과 싸움질을 할테니까.

자료연구를 하던 부처가 느닷없이 갈마드는 이런 생각에 잠겼는데 함장실에 깃든 정숙을 미묘하게 건드리며 전송관을 통하여 기타반주에 맞추어 조용히 부르는 노래소리가 알릴듯말듯 울려나왔다.

서정적이면서도 애달픈데가 있어 은근히 심중을 파고드는 그 노래소리에 무심중 귀를 기울이노라니 부처의 눈앞에는 보석의 마당이 춤을 추듯 온통 눈부시게 번쩍거리고 넘실거리던 진주만의 황홀한 모습이 유혹하듯 떠올랐다.

지휘소에서 당직을 서는 작전장교인 슈마커중위가 부르는 그 노래는 《푸에블로》호가 일본으로 오던중 기름과 물을 보충하기 위해 진주만에 들렸을 때 선원구락부에서 귀에 익힌것이다. 바다사나이들이 뭍에 오른 기회에 환락을 즐기는 그 장소에는 하와이토착민의 피가 섞인 요염하게 생긴 녀가수가 인기였다. 그 녀자는 능란한 솜씨로 기타를 타면서 녀색에 굶주린 걸탐스런 눈길로 거의다 드러낸 자기의 몸매를 살펴보는 선원들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군 했다.

그 녀자의 목청은 실컷 울고나서 자기의 억울하고 서글픈 신세를 하소연하듯이 거쉬고 갈린것이였다. 그나마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토막토막 끊어지군 했다. 헌데 그런 목청으로 부르는 애수에 잠긴 노래소리가 이상하게도 선원들의 가슴을 찌르르 울리며 파고들었다.

선원구락부의 단골손님들은 해군장교들과 해병들, 민간선박의 선원들이다.

노상 망망대해의 거치른 파도우에서 수시로 위험을 동반하는 적막감과 싸우며 날과 날을 보내는 배놈들에게는 떠나온 고향과 정든 집, 헤여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항시적인 그리움에 시달린다.

처량하고 애달프고 지친듯 한 녀가수의 목청과 표정에는 조폭하고 거친 바다사나이들이 저도 모르게 눈굽을 적시게 하는 그런 애잡깔한것이 어려있었다. 척 보면 얼싸안고 키스를 해주고싶게 요염하고 유혹적인 얼굴에 비하면 몸이 약하고 키가 작은것이 그 녀자의 치명적인 약점이였다. 세련된 화장술도 이 약점을 가리울수 없었다. 함이 출항할 때 그 녀자가 허겁지겁 부두에 달려나와 눈물을 머금고 손저으며 바래주었다. 누군가 그와 무슨 인연이라도 맺은 모양이다.

녀가수를 홀려낸 녀석이 대관절 누구일가? 혹시 난봉군인 슈마커중위가 아닐가? 그에게는 안해와 세살난 딸애가 있다. 하기야 그런게 무슨 상관이랴. 슈마커가 분명하다. 그래서 그가 쩍하면 지어는 지휘소에서 당직근무를 서면서도 저렇게 홀로 기타를 타며 녀가수의 지정곡을 부르는거겠지.

부처는 불시에 안해와 두 아들이 그리워졌다.

마음이 허전하고 싱숭생숭해진 그는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바람이나 쏘이려고 갑판에 나갔다.

날씨가 온화한게 봄날같았다.

도꼬만을 자옥히 덮었던 짙은 안개는 어느덧 사라져버리고 정오의 해빛이 눈부시게 비쳐들었다.

미술가가 환영할만 한 기막히게 좋은 날씨였다.

심장이 후두둑 뛰고 손이 근질거렸다. 붓을 휘둘러대고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얼른 함장실에 들어가 성급히 침대를 제껴올리고 밑에 간수해둔 그림도구함을 꺼냈다. 그안에는 그림도구와 속사첩, 화첩이 들어있었다. 그는 애용품인 그림도구함을 소중히 들고 상갑판에 올라가 접이식으로 된 세개의 다리를 펴고 화판을 세웠다. 그리고는 한눈에 선명히 안겨오는 요꼬스까항의 봄날같은 설경을 화판에 담으려고 부지런히 연필을 놀리였다.

기타를 타며 노래를 부르던 슈마커는 상갑판에 함장이 나타나자 얼른 기타를 치우고 쌍안경으로 주변감시를 하는척 했다.

그는 호남아였다. 순혈종의 앵글로색손족이여서 살색이 허여멀쑥하고 약간 장미빛을 띠였다. 그는 쾌락을 즐겼고 계집을 좋아했다. 계집들도 슈마커를 좋아했다. 그가 장교복차림으로 허리에 찬 해군단검을 멋스럽게 흔들거리며 거리에 나가면 치마를 두른것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그를 쳐다보며 왕자라도 만난듯이 덮어놓고 황홀해하는것이였다.

그는 전문가수준의 사진촬영기술을 소유했는데 그래서인지 그림쟁이따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슈마커는 쌍안경을 내리우고 상갑판을 떠나지 않고있는 함장을 슬쩍 훔쳐보았다.

헌데 이게 뭔가? 과묵하고 거만해서 정서라고는 있음직하지도 않은 함장이 그림을 그리고있다.

함장이 가끔 심심풀이로 속사를 하는건 보았지만 저렇게 화판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달라붙은건 보기에 처음이다. 재간이나 있어가지고 그러나?

슈마커는 호기심이 동해서 슬며시 지휘소를 나가 상갑판으로 걸어갔다.

그는 발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함장의 뒤에 접근하여 그림그리는 솜씨를 지켜보았다. 함장이 허리를 굽히고 두눈을 번쩍이며 자신만만하게 연필을 놀리는걸 보니 풋내기가 아닌것 같았다. 슈마커는 슬며시 오금을 꺾고앉아서 뚜껑을 열어놓은 그림도구함안에 있는 화첩을 꺼내여 한장두장 번져보았다.

부처는 뒤늦게야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슈마커가 로즈의 초상그림을 반한듯이 들여다보고있었다. 그것은 부처가 신혼려행차로 어느 해수욕장에 갔을 때 열흘이나 품을 넣어 그린것이다. 로즈는 남자들이면 누구나 쉽게 눈길을 땔수 없을 정도로 미인이지만 결혼을 하니 더 예뻐진것 같았다. 그야말로 봄비를 촉촉히 맞고 방금 망울을 터친 한송이의 장미꽃이였다.

《거 정말 미인인데요.》

슈마커는 아첨기가 어린 목소리로 탄복하더니 능청스레 물었다.

《함장님, 침대나 모래불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부인님의 전신상을 그린건 없습니까?》

부처는 말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가 산디에고에서 자차판정을 할 때 요트를 몰고왔던 부인님을 보니 육체미가 대단하더군요. 라체무용수같더라니까요. 미술가라면 누구나 부인님을 모델로 삼으려고 돈을 아끼지 않을겁니다.

우리 사진애호가들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만딸라라도 낼 용의가 있습니다.》

뻔뻔스럽게도 이런 수작을 감히 줴치는 젊은 중위의 음탕하게 번들거리는 눈깔을 보자 부처는 기분이 잡쳐서 얼른 화첩을 빼앗아 그림도구함에 넣고 뚜껑을 소리나게 덮어버렸다.

재수가 없게도 자기 부하에게 사랑하는 안해의 소중하고 고상한것을 도적질당하거나 모욕당한듯 한 심정이였다.

함장의 뒤틀린 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슈마커는 황금새라도 잡았다가 놓친듯 못내 아쉬운 기색이였다.

《그날 눈부시게 매혹적인 함장님 부인의 전신상을 제꺽 촬영했어야 하는건데… 참, 잠간만 실례하겠습니다.》

슈마커는 사다리를 구르며 하갑판으로 내려가더니 장교침실에 들어가 사물고에 건사해두었던 사진기와 악어가죽으로 표지장정을 한 사진첩을 들고나왔다.

《함장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는 미술을 골동품으로 여깁니다. 그림이라는거야 사진기를 발명하지 못했을 때 필요했던거지요. 우린 이렇게 촬영대상에 대고 샤타를 한번 누르고 필림을 현상하여 인화지에 올리면 그만입니다.

기껏해서 하루품이지요. 최근에는 촬영을 한 즉시에 사진을 뽑아내는 사진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림쟁이들은 며칠이나 몇달, 지어는 몇년씩이나 붓방아를 찧는 수고를 하거던요. 그건 시간랑비고 정력랑비입니다.》

뭐?! 미술가를 가리켜 그림쟁이라구?

부처는 결김에 열이 올라서 자기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미술을 적극 옹호해나섰다.

《중위, 명심하라구. 미술가는 그림쟁이가 아니라 예술가야. 색과 명암대조로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철학가야. 그래서 미술가는 사물과 현상에 자기의 넋을 불어넣는거야. 예술적인 환상으로 추녀도 미녀로 그릴수 있고 저렇게 번잡하고 어지러운 항구도 아름답게 그릴수 있어. 이건 사진기따위로는 엄두도 낼수 없는거지.》

슈마커는 약간 군살이 진 아래턱을 손으로 매만지며 히죽이 웃었다.

《그럼 이걸 보십시오.》

슈마커는 함장에게 사진첩을 넘겨주었다.

흥심없이 몇장 번져보던 부처는 손을 멈추며 눈을 크게 떴다. 그야말로 비너스상에나 비길수 있는 활짝 벗어제낀 미녀의 모습이 나타나 눈을 시그럽게 했던것이다. 늘씬하고 풍만하면서도 탄력있는 육체미가 너무도 적라라하고 도전적이여서 부처는 부지불식간에 입을 항 벌렸다.

《이게 누구요?》

슈마커는 흡족해했다.

《모르겠습니까? 함장님도 아실텐데…》

《그으래?》

부처는 부쩍 감질이 나서 입술을 혀끝으로 감빨며 사진을 자세히 여겨보았다.

낯이 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분명 본것 같은데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부처가 기억을 되살리려고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슈마커가 튕겨주었다.

《〈하와이의 녀왕〉입니다.》

부처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럼 이처럼 늘씬한 육체미를 뽐내는 녀자가 선원구락부의 가냘프고 체소한 그 녀가수란 말인가? 그럴수가 있나?

이전에 하와이라는 소국의 통치자였던 녀왕이 미국에 나라를 빼앗기고나서 눈물을 뿌리며 지었다는 노래를 지정곡으로 부르기에 녀가수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던것이다.

자세히 뜯어보니 얼굴생김은 분명 그 녀자인데 몸매는 너무도 판이했다.

《함장님, 나는 그 녀가수의 눈매를 부드럽게 고치고 녀자정구선수의 몸매와 합성촬영을 했답니다. 어떻습니까? 그게 알립니까?》

부처는 사진을 다시금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작한 흔적을 거의나 발견할수 없었다.

슈마커는 으쓱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내 보기엔 사람들이 한판에 찍어낸 제품이나 마찬가지더군요. 누구의 얼굴에나 두개의 눈과 귀가 있고 하나의 코와 입이 있지요. 이것들이 어떤 크기와 모양을 가지고 어떻게 배치되였는가에 따라 곱게 보이거나 밉게 보이는거랍니다. 우리 사진사들은 합성촬영으로 이목구비의 크기와 모양, 위치를 마음먹은대로 변경시킬수 있습니다. 몸매도 마찬가지지요.》

부처는 쓰거워서 입을 다셨다.

《흥, 그러니 이젠 사진도 가짜라는건가?》

《가짜를 만드는게 아니라 우리도 미술가들처럼 예술적환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모습을 창조해내는거지요.》

슈마커는 제딴의 우월감을 가지고 자랑을 했다.

《해군에 항해술이 능한 장교는 많아도 촬영기술을 겸비한 장교는 드물지요. 나는 촬영기술을 소유한 덕분에 〈푸에블로〉호에 오게 된거랍니다.

해리슨대위가 자기네 분견대만이 특수임무를 수행한다고 으시대는데 나에게도 별도로 받은 그런 임무가 있습니다. 나는 이번 작전기간에 북조선해군의 기지들과 전투함선들을 촬영해야 합니다.》

《그런 명령을 받았단 말이지?》

《명령을 받은게 아니라 계약을 맺았지요. 내가 북조선해군의 미싸일정이나 잠수함을 촬영해오면 사진 한장당 3천딸라씩 주겠다고 합니다.》

부처는 놀라서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슈마커는 씁쓸해하는 기색이였다.

《함장님, 그게 무슨 그리 큰돈이라고 놀라십니까?》

부처는 놀라움이 지나쳐 아연해지고말았다.

《그게 적다는거야?》

《물론이지요. 함장님은 귀신이나 도깨비를 본적이 있습니까? 물론 없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랍니다. 우에서는 북조선에 잠수함이나 미싸일정이 있을거라고 추측을 하고있지만 아직은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답니다. 그러니 그것을 찍은 사진을 손에 넣는다는것은 굉장한 소득이지요.》

부처는 슈마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을 놓고 펜타곤은 국회에 군비를 추가증강하라고 강경히 요구하고 군수산업복합체들은 환성을 올리게 될것이다. 결국 그 사진은 세계를 뒤흔들어놓을수 있는 주패장이 될수 있다.

난봉군이고 바람쟁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슈마커중위가 이런 타산과 야심을 가지고있다는게 놀라왔다. 하기야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겠지. 너나없이 한몫 보자고 《푸에블로》호에 왔을것이다. 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미국의 세계제패전략에 기여하게 될 중대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수 있을가?

휘익!-

별안간 부두쪽에서 새되게 불어대는 휘파람소리가 울렸다.

부처와 슈마커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수십메터 떨어진 부두에 언제 나타났는지 세명의 사나이가 서있었다.

검은색안경을 끼고 잠바를 입은 그들은 왼손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겨끔내기로 휘파람을 불면서 오른손을 머리우로 흔들어댔다.

부처는 대뜸 골상을 찡그렸다.

《저건 도대체 웬놈들이야?》

슈마커는 얼른 지휘소에 달려들어가 쌍안경을 들고나왔다. 부처는 그가 넘겨주는 쌍안경을 받아들고 흡사 시카고의 깽들처럼 차려입고 꼴사납게 너들쩍거리는 놈들을 눈여겨보았다.

《음, 훈련기지에 갔던 해리슨대위로군.》

함장의 말을 듣고 슈마커는 대뜸 우거지상을 했다.

《빌어먹을… 그 자식이 왜 벌써 돌아왔어?》

《헌데 곁에 있는 두 작자는 낯이 설구만. 웬놈들일가?》

해리슨이 입에 물었던 손가락을 빼더니 두손으로 손나팔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여! 내가 왔어! 해리슨이 왔단 말이야. 빨리 단정을 보내라!》

슈마커는 코웃음을 쳤다.

《자식, 마치 제 집에라도 온듯이 큰소리를 치는군.》

《중위, 단정을 몰고 부두에 나가서 연구장교와 함께 온 낯선자들이 누구인가 확인해보고 데려오게.》

《챠! 이거 한창 예술을 론하는데 저런 망나니들이 나타날건 뭐람. 재수없게스리…》

슈마커는 두덜거리며 선미갑판으로 내려가 함의 꽁무니에 차고있던 단정에 올라 계류바줄을 풀었다.

기분이 잡치기는 부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맘이 내켜서 화판을 세우고 한창 흥에 겨워 붓질을 할 때 나타난 해리슨이 얄미웠다.

도수높은 안경알을 통하여 기름칠이라도 한듯 반들거리는 그 자식의 메밀눈을 상기하면 독사의 날름거리는 혀를 본듯 진저리가 났다. 그는 아쉬운대로 그림도구를 거두고 선미갑판에 내려갔다.

슈마커가 해리슨대위의 일행을 단정에 태우고왔다. 선미배말뚝에 계류삭올가미를 걸고 먼저 갑판에 오른 슈마커는 함장에게 보고했다.

《해리슨대위가 훈련기지에서 보충받은 기관총수 두명을 데리고왔습니다.》

《기관총수를?!》

《예, 기관총이야 누구나 쏠줄 아는건데… 흥! 식객이 늘어난거지요.》

해리슨이 싱글벙글 웃으며 란간을 붙잡고 힘껏 몸을 솟구쳐 갑판에 올랐다. 며칠만에 함으로 온것이 반가운 모양이였다. 그는 잠바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무랍없이 수인사를 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날씨가 참 좋군요.》

부처는 더 기분이 상해서 해리슨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함장님, 왜 이러십니까? 무슨 기분나쁜 일이라도 있었는가요?》

부처는 아연해진 해리슨에게 비양조로 추궁했다.

《흥, 대위는 사복을 입고 며칠간 들놀이를 하더니 군사규정까지 잊어먹었나?》

해리슨은 그제서야 정색해졌다. 그는 부랴부랴 복장을 바로하더니 서툰 동작으로 엉금엉금 갑판에 기여오른 두 대원을 자기곁에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는 안경을 벗고 두 대원도 안경을 벗게 했다.

《나란힛! 차렷!》

해리슨은 지나칠 정도로 격식을 차리며 큰소리로 보고했다.

《함장님, 연구장교 해군대위 해리슨은 훈련도중 필요에 의하여 보충한 두명의 대원을 데리고왔습니다.》

두 대원을 엄한 눈초리로 뜯어보던 부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해리슨이 신통히도 자기처럼 생겨먹은 녀석들을 끌고왔다. 곱슬머리에 갱핏하면서도 꾀바르게 생긴 얼굴, 눈은 챕챕하지만 눈동자는 흡사 독사의 눈알처럼 사납게 반들거린다. 코와 턱은 물론이고 입술까지 뾰족해서 창끝이나 송곳을 련상시켰다.

하여간 꾀바리에 악발이들이 분명하다. 배군들이 중시하는 성실성이나 근면성같은건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대위, 우리 함에 뭐 기관총을 다룰 사병들이 없어서 이들을 데려왔는가?》

해리슨은 난처해하더니 함장의 뒤에 서있는 슈마커를 꺼리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저… 함장님, 정보실에 들어가서 구체적인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슈마커는 자기를 경계하며 따돌리려는 해리슨이 눈꼴사나워서 가래를 톺아 바다물에 뱉고 지휘소에 올라갔다.

해리슨이 부처에게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함장님, 이들은 미해군안전단에서 손꼽히는 무전도청수들입니다. 조선말도 할줄 압니다. 실로 보배같은 존재들이지요.》

그제서야 부처는 낯색이 좀 풀어져서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해리슨이네와 함께 정보실에 갔다.

정보실에 들어가자 해리슨과 두 대원은 털실로 뜬 항해모를 벗었다. 부처가 보니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세명이 다 량쪽귀를 다림질한듯 귀바퀴가 머리에 납작하게 붙었다. 귀바퀴둘레엔 레시바자리가 동그랗게 났다.

부처는 만문한 인조가죽을 씌운 회전의자에 앉아서 긴장하게 자기를 주시하는 중사에게 물었다.

《이름은?》

《해몬드입니다.》

《소개를 계속하라구.》

《뉴헴프셔주 클래어몬트에서 출생했습니다. 스물세살입니다. 4년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켈리포니아주에 있는 몬트리륙군어학학교에 가서 한해동안 조선말을 배웠습니다.》

해병대에는 외국어를 배워주는 교육기관이 없다. 그래서 륙군어학학교에 필요한 인원을 보내여 위탁교육을 받게 한다.

《조선말이 어때? 배우기가 헐치 않았겠지?》

《예, 여간만 어렵지 않았습니다.》

《뒤떨어진 민족은 뒤떨어진 문자를 가지고있기마련이지. 거 듣자니 조선어에 섞어쓰는 한자는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운다고 하더군.》

해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선어는 발전된 언어입니다. 표현이 풍부하고 성구속담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선말을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조선에 대한 자료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있는 부처는 흥미를 가지고 질문을 계속했다.

《중사는 조선에 가보았나?》

《예, 어학학교나 다녀서는 조선말을 제대로 배울수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후 여기 일본에 있는 해군안전단에 배치되여오자마자 현지실습차로 두달정도 한국의 미군기지에 가있었습니다.》

《거기 형편은 어떻소?》

《미군기지촌에서는 조선말보다 미국식영어를 더 사용하고있습니다. 한국인지 미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곁에 있는 하사가 말참견을 했다.

《그때 우린 잘 지냈습니다. 관광지나 휴양지에 간 기분이였지요. 아마 미군의 해외기지들중에서 제일 좋은게 한국에 있는 기지들일겁니다.》

해몬드도 성수가 나서 지껄여댔다.

《주한미군기지들은 우리 세상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별의별짓을 해도 무사하지요. 한국경찰따위는 우리에게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합니다.》

으시대면서 겨끔내기로 자랑질이다. 녀석들의 얼굴엔 그때의 도락과 유흥을 그리워하는 기색이 력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부처가 관심하는건 그런게 아니였다.

《그때 북조선에 대한 말을 좀 들어보았나?》

두 대원은 입을 다물었다.

부처는 하사에게 물었다.

《네 이름은 뭐야?》

《치따입니다.》

《결혼했나?》

《예, 두살나는 딸애가 있습니다. 귀엽게 생겼지요. 몹시 보고싶습니다.》

부처는 빗나간 화제를 제자리에 돌려세웠다.

《북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껏 해보라구.》

《저…》

치따는 저으기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해몬드를 돌아보았다. 해몬드는 그의 눈길을 외면했다. 그러자 해리슨이 부추겼다.

《함장님께 보고들은대로 솔직히 말씀드리게.

함장님은 작전을 앞두고 북조선의 실정을 알고싶어 그러시는거야.》

치따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북조선엔 외국군대나 외국군사기지가 없다고 합니다. 인민군대가 강군이여서 한국군 장교들은 몹시 무서워하지요. 미군이 핵무기를 가지고 지켜주지 않으면 저희들은 견디여내지 못한다는겁니다.》

해몬드가 말을 보탰다.

《미군이 없으면 북이 당장 남침한다는거지요.》

부처는 잘 리해되지 않았다.

《북조선이 그렇게까지 호전적인가?》

치따가 신중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장교들은 대다수 그렇게 말하는데 사병들과 서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북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한다는거지요. 통일이 되면 남쪽에서도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답니다.》

해리슨은 함장의 눈치를 보고나서 짐짓 나무랐다.

《여, 그건 빨갱이들의 선전에 불과한거야.》

치따는 고집스레 강조했다.

《어쨌든 지금 남쪽의 민심은 북쪽에 쏠려있습니다. 이건 죄다 사실이지요.》

해리슨은 눈을 부라리며 욱박질렀다.

《자식, 자꾸만 그런 식으로 말하겠어?》

치따는 억울해서 두덜거렸다.

《나야 뭐 대위님이 보고들은대로 함장님께 말씀드리라기에 그랬을뿐인데요.》

《임마, 그러게 우리가 철수하면 남쪽은 즉시에 빨강물이 든단 말이야. 그러면 우리 밥통이 떨어지는거야.》

그 소리에 치따는 쑥 들어갔다.

《예, 그야 물론이지요. 우리 미군은 남쪽에서 계속 뻗치고 앉아있어야 합니다.》

해리슨은 부쩍 열을 올렸다.

《그저 앉아있는게 아니라 북쪽까지 타고앉아야 해. 너희들은 그 준비를 위해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내 벌써 몇번이나 강조했나. 이걸 명심해!》

《예.》

치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함장을 바라보며 아첨기가 흐르는 얼굴로 말했다.

《함장님, 해군안전단에서는 해몬드와 내가 〈푸에블로〉호를 타고 한달가량 특수임무를 수행하면 상금을 주고 본국에 휴가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해몬드도 발라맞추는 미소를 지으며 갑삭거렸다.

《우린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처는 미간을 찡그리며 해리슨을 돌아보았다.

《대위, 해군안전단의 임무가 뭔가?》

《주로 쏘련과 북조선의 해군에 대한 정보수집입니다. 아울러 륙군과 공군의 정보는 물론이고 두 나라의 내부형편과 외교활동에 대한 정보까지 수집하여 본국에 보냅니다.》

《그러자면 인원이 많아야 하겠군.》

《예, 3천명이 넘습니다.》

부처는 어마지두 놀랐다.

《뭐라구?! 그렇게 많은 인원이 전적으로 정보수집만 한다는건가?》

《예, 그들이 공밥을 먹는게 아닙니다. 이걸 보십시오.》

해리슨은 자물쇠가 설치되여있는 자그마한 트렁크를 열더니 문건봉투를 여러개 꺼냈다. 봉투의 왼쪽귀통이에는 《극비》 혹은 《절대비밀》이라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여기엔 인민군대 륙해공군의 무선호출암호표와 주파수대역표들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해군기지들과 해군함정들에 장비된 무선통신설비들과 전파탐지기들에 대한 자료도 있지요.》

부처는 부쩍 호기심이 동해서 문건봉투를 집으려 했다. 해리슨이 야단을 하며 제지시켰다.

《함장님, 안됩니다. 이 봉투는 나도 개봉할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함이 작전수역에 들어서면 해몬드와 치따에게 이걸 넘겨줄 의무만 있습니다.》

문건봉투에서 얼른 손을 뗀 부처는 기분이 잡쳤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한 기색으로 두손을 비비였다.

《이들의 주요임무는 잠수함과 로케트정에서 발신하는 특수전파를 잡는것입니다. 내용해득이 불가능한 신호들은 해군안전단에…》

꽝꽝꽝!

누군가 주먹으로 문을 두들겼다.

《야! 문을 열라! 이것들이 시퍼런 대낮에 문을 잠그고 뭘하고있어? 어서 문을 열지 못해?》

성난 곰처럼 질러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기관장이 분명했다.

《해리슨대위! 어서 문을 열라! 난 당신과 계산할게 있어! 회계를 볼게 있단 말이야!》

해리슨은 아연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수작질입니까? 라고 묻는 눈길로 함장을 바라보았다.

부처는 우려했던대로 일이 시끄럽게 번져진다고 생각하면서 사연을 대충 말해주었다.

《대위, 당신이 훈련기지에 가있는 동안 정보실선저에 검은상자를 설치하는 작업을 했소. 그런데 선저관리상태가 너절해서 기관장과 일본인기술자들사이에 말이 좀 있었지.》

해리슨은 팩 신경질을 부렸다.

《뭐라구요?! 훈련기지에 가있는 우리가 선저청소를 하려 매일 여기에 올수야 없잖습니까.》

《그래서 특수분견대가 올 때까지 정보실의 선저관리를 기관수들이 해주기로 했네. 기관장은 그 수고비를 당신이 지불하라는거요.》

해리슨은 펄쩍 뛰며 노발대발했다.

《그 개자식이 무슨 뚱딴지같은 나발을 부는가요. 나는 돈이 썩어나도 그놈에겐 한푼도 주지 않겠습니다.》

해몬드와 치따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였다.

부처는 해리슨을 얼리였다.

《먹자는 귀신은 먹여야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나? 레이시는 조폭한 놈이야. 까짓거 한잔 내라구. 그러면 누그러들거네.》

해리슨은 기가 뻗쳐서 사리를 따지며 징징거렸다.

《내가 어째서 저런 미욱쟁이에게 술을 먹여약 합니까? 우린 특수임무수행을 위한 훈련을 하고있습니다. 무도장에 가서 춤이나 추고있는게 아니란 말이요.》

안에서 나는 말소리를 들었는지 기관장은 더 요란하게, 그야말로 북치듯이 문을 두드렸다.

《어서 열지 못해? 열지 않으면 수밀문을 도끼로 까부실테다!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기관장이 일을 칠듯이 으르렁거리자 해리슨은 겁이 나는지 얼굴이 해쓱해졌다. 해몬드와 치따도 불안한 기색이였다.

부처는 해리슨에게 넌지시 귀띔했다.

《성난 곰과는 맞서는게 아니야. 슬슬 구슬려보라구. 거 트럼프놀이를 하자고 꼬이란 말이야. 트럼프놀이라면 레이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거던.》

해리슨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수밀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을 칠듯이 두눈을 부릅뜨고 정보실에 뛰여든 기관장은 엄한 기색으로 자기를 쏘아보는 함장과 마주치자 당황해서 말뚝처럼 굳어졌다.

《기관장! 무슨 추태야!》

레이시는 게면쩍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저… 함장님도 아시다싶이 난 해리슨대위와 회계를 볼게 있어서…》

《그런거야 오손도손 의논해야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레이시가 김빠진 공처럼 쭈그러들자 바싹 긴장해서 눈치를 보던 해리슨이 랭소를 지으며 비꼬아 물었다.

《자네가 나에게서 선저청소비라는걸 받겠다고 한다지?》

레이시는 해리슨의 곁에 경호원처럼 서있는 낯선 두 대원을 힐끔힐끔 쳐다보고나서 대꾸했다.

《그렇소. 계산이야 바로 해야 할게 아니요.》

해리슨의 챕챕한 두눈에 조롱기가 어렸다.

《자네 그걸 꼭 받아야 하겠나?》

《물론이지.》

《흥, 그 잘난 수고비를 주고싶지만 그러면 자네의 낯이 깎이울가봐 그러네. 이보라구, 우리야 한배를 타고 고생을 함께 하는데 수고비니 뭐니 할게 있나?》

《그러니 어쩌자는건가? 말로 굼땔셈인가?》

《지불형식을 자연스럽게 하자는거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아웅다웅하지 말고 트럼프나 치자구. 자네야 트럼프선수지.》

미꾸라지같은 놈이 무슨 요술을 피우지 않나해서 잔뜩 긴장해있던 레이시는 난데없는 트럼프소리에 일순 어정쩡해졌다.

《트럼프를?》

《음, 자네가 이기면 내 한달봉급을 봉투채로 주지. 그러나 내가 이기면 우리 분견대원들이 훈련을 끝내고 올 때까지 수고스러운대로 자네들이 선저청소를 해달라구.》

레이시는 두눈을 껌벅거리다가 어쩌면 좋은가 하는 눈길로 함장을 돌아보았다.

부처는 해리슨의 제의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게 좋겠소. 당신이야 트럼프귀신이 아닌가.》

이통에 레이시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지나칠 정도로 트럼프를 애용했다. 그저 짬이 생기면 꽁무니에 차고다니던 트럼프를 꺼내여 시꺼멓게 배기름에 절은 손으로 한장두장 펴놓으면서 여러가지 놀음을 하거나 신수도 보군 했다. 내기를 걸고 트럼프를 치면 대체로 이겼다.

해리슨은 아직 트럼프놀이에 끼운적이 없었다.

선원들이 성수가 나서 법석 고아대며 트럼프를 칠 때면 야즐거리는 미소를 흘리며 곁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대체로 트럼프놀이를 할줄 모르거나 큰돈을 대고 모험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자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제편에서 내기를 하자는걸 보니 이왕 줄 돈이지만 거저 주기 아까운 모양이다. 그렇다면 품을 들여 트럼프를 배워주고 내 운수와 솜씨가 얼마나 좋은가도 보여줘야지.

이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해리슨의 도전에 기꺼이 응했다.

《좋아! 이제 당장 하자구.》

그는 뒤호주머니에서 기름때가 반질반질하게 오른 트럼프갑을 꺼냈다.

해리슨은 거지가 걸친 넝마를 보듯이 즉시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는 해몬드에게 장교침실에 가서 새 트럼프를 꺼내오라고 했다. 해몬드가 나가자 《젠장, 꾸물대긴…》하고 두덜거리며 뒤따라나간 해리슨은 제꺽 밀담을 하고나서 새 트럼프를 들고 의기양양해서 들어왔다. 해몬드는 치따에게 조선말로 뭐라뭐라고 했다. 치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것들이 무슨 수를 쓰는 모양이군.

부처는 대뜸 그것을 간파했다.

우직한 레이시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해리슨과 마주앉아 트럼프를 치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해몬드와 치따가 묘한 손장단을 쳤다. 처음 수세에 몰렸던 해리슨은 신에 접했는지 련속 좋은 패를 뽑아들며 공격을 개시했다. 레이시는 십분도 못돼서 손을 들고말았다.

《내 수가 어때?》

해리슨이 잔뜩 기고만장해서 흰목을 뽑았다.

우거지상이 된 레이시는 미심쩍은지 곁에 서있는 해몬드와 치따를 번갈아보더니 투덜거렸다.

《젠장, 당신은 훈련기지에 가서 트럼프만 치다 왔나?》

해리슨은 깨고소해서 야즐야즐 웃으며 약을 올렸다.

《트럼프놀이는 두뇌전이야. 선저에 들어박혀서 비류지나 퍼내는 자네가 이 연구장교를 이겨낼상싶어? 그쯤하고 물러가게.》

레이시는 울상이 되여 한탄했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구만. 쥐는 패쪽마다 걸레짝이니…》

《재수가 없는게 아니라 재간이 없겠지.》

레이시는 빌붙었다.

《여보게, 아니, 대위님. 딱 한판만 더해봅시다.》

해리슨은 공모자들인 해몬드와 치따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세. 자네 이번에도 지면 새로 온 기관총수들에게 술 한잔 내게. 그래야 인사차림이 되는거야.》

부처는 우려하던 일이 이 정도로 무마된걸 다행으로 여기며 슬며시 복도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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