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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거슬리던 녀석들이 없어지니 쏘던 이발을 뽑아던진것처럼 씨원하군.》

항해장 머피대위가 말한바와 같이 턱없이 건방지고 까다로와서 승무원들에게 심리적부담을 주던 해리슨이 특수분견대인지 뭔지 하는 졸개들을 끌고 훈련기지로 떠나자 함은 소란스럽던 불청객들이 물러간 대사집마냥 즉시 조용해졌다.

부처는 이 기회에 함장실에 꾹 들여박혀서 해군제독이 준 참고자료들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비사 조선전쟁》, 《현대조선사》,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도서들과 군사 및 외교론평잡지들, 태평양전쟁과 조선전쟁에서 이른바 명성을 떨친 인물들의 전기나 회상록, 실화들이였다.

지금까지 주로 윁남이나 필리핀수역에 나가서 복무한 부처는 조선반도에 대한 관심이 거의나 없었다. 조선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고 따라서 이렇다할 견해도 가지고있지 못했다. 해군제독이 준 참고자료는 그에게 조선에 대한 표상과 예비지식을 주었을뿐만아니라 세계적인 범위에서 군사정치정세에 대한 인식도 새로운 각도에서 폭넓게 해주었다.

참고자료들에 의하면 세계는 낮과 밤이나 북극과 남극처럼 서로 다른 사회제도와 정치방식으로 날카롭게 대립되여있었다. 사회주의진영에서 의장구실을 하는건 첫 사회주의국가이며 광대한 령토와 풍부한 자연부원을 가진 쏘련이였고 자본주의나라들을 틀어쥐고 두목노릇을 하는건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하여 비대해진 미국이였다.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쏘련편에 속한 나라들은 대체로 대륙국가들이고 미국편에 속한건 대개 해양국가들이다.

대륙국가들과 해양국가들과의 대를 이어 계속되여오는 싸움이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력사였다. 대륙국가들과 해양국가들사이에는 조선이나 윁남과 같은 작은 나라들이 끼여있었다. 이런 나라들은 다수가 섬도 아니고 대륙도 아닌 반도였다. 중간지대의 전략적요충지인 이 반도들을 누가 틀어쥐는가는 렬강들에 있어서 사활적인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예로부터 미국의 정치가들은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조선반도를 아시아대륙이라는 커다랗고 기름진 빵덩이에 박혀있는 단검으로 보며 군침을 흘렸다. 이 단검을 틀어쥐면 쏘련의 원동지방이나 중국의 동북지역을 쉽게 베여먹게 된다. 먹은만큼 살이 지고 힘을 쓰기마련이다.

기력이 더 뻗치면 씨비리를 삼키고 우랄산줄기를 넘어 유럽지역에까지 진출하며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이 그러했듯이 베이징을 타고앉고 남하하면서 중국본토는 물론이요, 남방에 널려있는 크고작은 반도와 섬들을 차례로 식탁에 올려놓을수 있었다.

현재 남아메리카는 꾸바를 제외하면 미국의 고요한 뒤동산이라고 볼수 있다. 아프리카나 대양주도 거의다 미국과 동료들의 손에 들어있다. 그러니 아시아만 삼키면 세계가 다 미국의것이 되는셈이다.

그런즉 세계의 주인이 되자면 아시아의 주인이 돼야 하며 그보다 앞서 주변렬강들의 사활적인 리해관계가 엉켜있는 조선반도를 손에 넣어야 했다.

1852년 11월 24일.

해군제독 패리는 군함 《미씨씨피》호를 타고 미국의 노퍼크항을 떠나 아시아에로의 미지의 항로를 개척하고 일본이라는 섬나라에 가서 함포를 몇방 갈기고 개항의 문을 열었다. 온 미국땅이 패리를 콜롬부스처럼 떠받들었다. 소책자 《패리원정사》가 출판되여 인기를 독점했다.

아시아진출열에 들뜬 미국은 몇년후 당시로서는 최신장비인 증기기관을 설치한 《제네랄 셔먼》호를 일본곁에 있는 《은둔국》이라는 조선에 보냈다. 남북전쟁에서 명성을 떨친 셔먼장군의 이름을 단 군함을 몰고가서 함포나 몇방 쏘면 일본처럼 쉽게 손을 들려니 했었는데 웬걸, 예상외로 반격이 강했다. 대동강을 거슬러올라가면서 함포사격을 하던 《셔먼》호는 용약 떨쳐나선 평양사람들의 반격과 화공전술에 걸려 불타서 침몰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셔먼》호의 함장인 프레스톤이 자기네 가문의 조상임을 알게 된 부처는 자부심을 느꼈다.

이번에 품을 놓고 연구하는 자료들에 드문드문 나오는 프레스톤의 이름을 보니 자기도 그처럼 력사적인 인물로 되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물론 프레스톤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에 가서 수중고혼이 된 수난자였다. 그러나 그는 《셔먼》호에 신약성서를 500권이나 싣고가서 조선을 《문호개방》시키려다가 생을 미쳤기에 미국력사에 이름을 남긴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모험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으로 식민지쟁탈에 혈안이 되여 날뛰는 렬강들에게 맑은 아침의 나라이며 금은보화가 가득한 조선반도는 미국이 먼저 맡아놓았으니 그리 알라고 선포하였다. 물론 미국은 제딴의 리해관계로부터 속이 알찌근한대로 사무라이족속들에게 조선을 림시 양보하고 대신 필리핀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간섭과 회유를 끈질기게 벌려 드디여 봉건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게 되였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을 결속하면서 조선반도의 남쪽을 차지했고 계속하여 북쪽까지 다 삼키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고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였다. 그러니 조선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였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살인장군으로 불리운 워커나 맥아더에게 지우겠는가? 만약 그래야 한다면 신대륙을 개척하고 미합중국을 세우는데 기여한 워싱톤이나 링건에게도 책임추궁을 해야 할것이다.

그들은 책임추궁을 받기는 고사하고 딸라에 자기의 초상을 남긴 력사적인 인물로 되였다.

부처는 프레스톤이 그렇게까지 유명한 인물로 되지 못한걸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백여년전에 《셔먼》호를 끌고 조선으로 가지 않았다면 미국은 조선에 영원히 발을 붙여보지 못했을수도 있다.

또 하나 아쉽게 생각되는것은 미국이 조선전쟁을 치르며 원한만 잔뜩 사고 이기지는 못한것이였다.

하기에 미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조선을 먹어치우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도 주인노릇을 하려고 했다. 이 전략수행의 앞장에 다름아닌 《푸에블로》호가 선것이다.

부처는 미국의 전략에 자기의 리해관계를 결부시켜보았다. 해군제독이 되는것도 좋지만 점령한 북조선에서 군정장관쯤 해먹는건 더 좋을것 같다.

그러면 나의 안해와 두 아들은 경치가 그리도 좋다는 송도원에서 해수욕을 하고 요트놀이도 하게 될것이다.

그는 자료연구를 심화할수록 야심이 꿈틀거리고 기분이 들떴다.

이번에 북조선이 과연 어떤 나라인지 타진해보자. 몇해어간에 우리가 북조선을 타고앉을 승산이 있으면 바싹 달라붙어야지. 그래, 이번 작전기간에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조선문제전문가로 되여야 한다.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머피대위가 문가에 서있었다.

《함장님, 일본인기술자들이 왔습니다.》

《일을 시키게.》

《예, 기술자들을 데리고온 함선수리회사 중역이 함장님을 만나고 싶답니다.》

머피가 옆으로 비켜서자 빵처럼 부풀어오른 다후다직솜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소해보이는 일본인이 함장실에 들어와 인사를 했다.

《함장님, 저는 함선수리와 전자기재교정을 책임진 오까모도 겐지입니다.》

겐지는 도수높은 쇠테안경을 꼈는데 상판이 여위여서 얼굴이 아니라 안경만 보이였다.

《앉소.》

《감사합니다.》

겐지는 함장이 권하는 의자에 앉아서 호기심이 어린 민첩한 눈길로 방안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탁상우에 널려있는 도서들과 잡지들, 자료철을 거쳐 책꽂이앞에 나란히 세워놓은 조각상과 사진틀에 못박혔다.

부처는 하인을 대하는듯 한 눈길로 체소하고 턱이 뾰족해서 송곳같은 인상을 주는 일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미국류학을 한게 아니요?》

겐지는 송구스러워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전 아직 미국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두 영어를 꽤 하는구만.》

《일본에 와있는 미국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영어를 모르면 밥벌이를 하기 곤난하지요.》

태평양건너 멀리에 떨어져있는 이 섬나라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강한가를 실감하게 해주는 말이였다.

《남조선에서도 그런가?》

《예, 우리와 마찬가지지요.》

부처는 예언자라도 되는듯이 엄숙히 말했다.

《앞으로는 북조선에서도 영어를 모르면 살아갈수 없게 될거요.》

겐지는 아첨기가 어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조각상과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부처는 우쭐해서 턱짓을 했다.

《그 조각상이 바로 뉴욕항입구에 세워져있는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녀신〉상이요. 그러니 당신은 지금 미국을 방문한셈이요. 방문을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겐지는 탁상앞에 바투 다가가 모조품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녀인은 쇠사슬을 짓밟고 추켜든 량손에 홰불과 종이장 같은것을 쥐였는데 거기엔 1776년 7월 4일이라는 글자가 깨알만 한 크기로 새겨져 있었다.

《묘한데요. 사진에 있는 부인의 얼굴과 〈녀신〉의 얼굴이 신통히도 같으니 말입니다.》

부처의 안색이 부드럽고 온화해졌다.

《프랑스의 유명한 조각가 바르똘리는 〈자유의 녀신〉상을 제작할 때 애인을 모델로 삼았소. 나 역시 모조할 때 그렇게 한거요.》

겐지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럼 이게 함장님의 솜씨란 말입니까?》

부처는 자부심이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차겁고 음험하던 얼굴이 퍼그나 선량해보였다.

《대단하십니다. 함장님은 예술가인 동시에 애처가이시군요.》

부처는 겸손하게 응대했다.

《나는 미술적재능이나 처에 대한 사랑을 시위하자고 저걸 모조해서 가지고다니는게 아니요.

〈자유의 녀신〉상을 건립할 때 대통령이였던 링컨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표방했소. 이것이 미국식민주주의인데 우린 이걸 지구상에 다 전파하여 세계적인 국가인 자유의 왕국을 세우자는거요. 나는 이 조각상을 볼 때마다 그 성스러운 사명을 자각하게 된단 말이요.

우리 함이 고생스레 태평양을 건너온것은 바로 그때문이요.》

《잠간만 실례하겠습니다.》

겐지는 복도에 나가 배가 부른 등산용배낭을 들고 들어왔다.

《그건 뭐요?》

《뭐 변변치 않습니다만 그저 함장님과 한잔 나누고싶어서…》

겐지는 배낭아구리를 헤치고 《마사무네》 두병과 마른 물고기안주를 꺼내더니 깍듯이 한잔 부어주었다.

《고맙소.》

부처가 흥이 나서 미국식민주주의에 대한 연설을 계속하려는데 겐지가 선코를 뗐다.

《함장님, 저는 링컨대통령이 미국식민주주의에 대하여 더 간소하고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 있는걸 알고있습니다.

〈짓밟지도 짓밟히우지도 않는다.〉

바로 이거지요?》

부처는 그제서야 간단치 않은 상대와 맞다들렸다는걸 깨달았다.

겐지는 비양조로 뒤를 달았다.

《그게 말은 그럴듯한데 도저히 실현불가능하니 문제지요. 미국이나 일본이나 생존경쟁이 치렬한데 어떻게 남을 짓밟지도 않고 남에게서 짓밟히우지도 않을수 있겠냐 말입니다.》

부처는 대꾸할 말이 없어서 그저 덤덤히 일본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난 정치가들의 미끈한 연설에 신물이 나서 그럽니다. 눈감고 아웅할거 있나요? 그런 수작에 귀를 기울일바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아틀란타들은 어깨를 으쓱거린다〉를 읽는편이 낫지요.》

부처는 버럭 화를 냈다.

《당신은 내앞에서 감히 미국을 헐뜯는거요?》

겐지는 고개를 갑삭거리며 손을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라 미국식자유가 좋다는겁니다. 난 아슐레가 아니라 레트나 아틀란타들을 존경하고 따르지요. 그래야 남에게서 짓밟히지 않고 남을 짓밟을수 있으니까요.》

그제서야 부처는 속이 누그러졌다.

자기의 내심도 그러하기때문이다.

《정치란 그런거요.》

《아, 골치아픈 그런 소린 그만두시고 어서 드십시오. 마실 땐 장사얘기가 좋습니다.》

부처는 허거프게 웃으며 겐지의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나와 거래를 하고싶단 말이지. 그래 당신네 회사의 주되는 업무가 뭐요?》

《미해군기지의 함선수리와 정비지요.》

《일감이 많소?》

《예, 요즘은 윁남전쟁덕분에 호경기랍니다. 우린 지난 조선전쟁때와 마찬가지로 황금소나기를 맞고있지요.》

조선이 화제에 오르자 부처는 호기심이 나서 캐물었다.

《조선전쟁때 일본이 돈을 많이 벌었단 말이지?》

《예, 미국은 매일 150만 내지 200만딸라분의 군수물자보급과 장비수리를 요구했지요. 패전후 파산에 직면했던 우리 나라의 수백개 기업체들이 이 주문을 받고 가물에 단비를 흠뻑 맞은 초목처럼 되살아난겁니다. 3년간에 걸친 조선전쟁기간에 일본은 로무제공까지 합쳐서 수십여억딸라나 벌었지요.》

겐지는 남의 불행을 기화로 횡재를 한 이 사실을 숨길 대신에 내놓고 자랑했다. 제 자랑하기를 좋아하는것은 일본인들의 기질인것이다.

《에- 조선전쟁은 우리에게 있어서 다시 없을 재생의 계기였고 〈축복〉이였지요. 우리 나라는 워낙 메마르고 외진 섬나라여서 예로부터 곁에 있는 조선반도를 뜯어먹어야만 살수 있었답니다.》

《흠, 그게 이른바 정한론이지.》

겐지는 탈피명태를 쥐려던 손을 멈추었다.

《아니, 함장님이 그런걸 다 아십니까?》

《음, 한때 일본이 조선을 먹게 도와준건 우리 미국이요. 미국은 지금도 조선반도에 일본에 못지 않은 리해관계를 가지고있소.》

겐지는 황송한 기색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그래서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협력하고있는게 아닙니까. 자, 어서 드십시오. 원하신다면 긴쟈의 일류급료정에 함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부처는 매우 흡족했다.

일본이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니 일본인도 미국인을 이처럼 깍듯이 대하는것이 아니겠는가.

《고맙지만 나는 순간도 함을 떠날수 없소.》

《예, 그럴것 같아서 제가 이런 초라한 술자리를 마련한것입니다.》

《초라한게 아니라 조촐하지. 배놈들은 이렇게 마시는게 편하고 좋소. 그러나 조선료리집이라면 한번 가보고싶군. 거기에 신선로라는게 있다지?》

겐지는 난처한 기색이였다.

《예, 그런데 요즘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재일조선인들이 귀국을 하는걸 막았더니 또 들고일어나 귀국신청놀음을 벌리고있지요.》

《그들이 많은가?》

《예, 태평양전쟁을 전후로 하여 우리가 조선에서 징용으로 끌어온자들중에서 죽지 않고 요행 살아남은게 가족들까지 합쳐서 최근엔 60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 방대한 수자에 부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 다수가 남쪽에 고향을 두고있는데 〈한국〉은 그들을 본체만체 하고있고 북조선에선 그들을 다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북조선의 제의에 의하여 콜롬보에서 일조간에 적십자회담이 인차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우리더러 재일조선인들을 북조선에 돌려보내지 말라고 야단입니다.

미국도 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내심 그런 의향이구요.》

부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리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러는가?》

《거기엔 예민한 정치적인 문제가 있지요. 재일조선인들의 귀국을 계기로 북조선의 명망이 높아지게 됐거던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사회로 많은 인적자원이 이동하는것도 문제고… 재일조선인들의 귀국을 승인하거나 그에 협력하는 경우 우리 일본은 싫든좋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것으로 됩니다. 그래서 귀국을 중지시켰더니 온 일본땅이 법석 끓는단 말입니다.》

《당국자들이 골머리를 앓겠군.》

겐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처하기는 이남당국자들이 더하지요. 남조선에 고향을 둔 재일조선인들까지도 다 북조선에 가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들이 왜 그럴가?》

《북조선에 가야 걱정없이 인간답게 살수 있다는거지요.》

《국민소득이 얼마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쌀값이나 부식물가격이 형편없이 눅다고 합니다.》

《모를 소리다. 저마다 식량과 부식물을 대량 사들이면 동이 날게 아닌가.》

《수요에 따라 분배를 공평하고 골고루 하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국가가 책임지고 먹고 입고 쓰고살 걱정이 없게 해준다니까요. 돈 한푼 내지 않고 치료를 받을수 있고 배울수도 있다는거지요.》

부처는 술마실 생각도 잊고 부단히 속궁리를 해보았다.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1위인 미국에서도 절대다수인 국민들을 상대로 그런 복지정책을 실시한다는건 엄두조차 낼수 없는 일이였다.

《그건 아마 빨갱이들의 선전이겠지. 말로야 무슨 소린들 못하겠소.》

《함장님, 인정하기 괴로운 일이지만 이건 죄다 사실입니다.》

겐지는 신중한 안색으로 안경을 벗어들더니 모달리천을 꺼내여 안경알을 꼼꼼히 닦으며 말을 이었다.

《북조선에서는 남쪽에 차넘치는 실업자들을 다 받아들여 안정된 일자리를 주며 학비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게는 취학의 길을 열어주고 장학금까지 주겠다는겁니다. 그래서 남조선의 서민들과 학생들은 통일만이 살길이라고 웨치며 반정부투쟁을 계속 하고있지요.》

부처는 놀라움이 지나쳐서 전률했다.

《여보, 그게 사실이라면 조선반도가 인차 다 새빨개진다는 소리가 아니요.》

겐지는 안경을 끼더니 탈피명태를 손에 쥐고 잘게 찢었다.

《그러게 수수방관할수 없지요. 조선반도의 남쪽까지 적색화되면 우리 일본은 정말 야단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지.》

《그러게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공동보조를 취하여 북조선을 압박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북조선을 선제공격해야지요.》

부처는 겐지의 주제넘는 수작이 가소로워 퉁을 주었다.

《당신이야 뭐 정치가나 군사가가 아니지 않소.

그런건 그 사람들이 하라고 내버려두오.》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내 밥줄이 거기에 달려있으니까요. 함장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겐지는 정색해서 본론에 들어갔다.

《함장님, 우린 주일미군사령부로부터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될 〈푸에블로〉호에 검은상자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부처는 의아해졌다.

《검은상자라는건 뭐요?》

《함의 기밀문건을 넣어둘 상자이지요. 자폭장치가 되여있습니다.》

부처는 으쓸 몸서리가 쳐졌다.

그 말을 들으니 자기가 아주 위험한 일, 생사를 건 아짜아짜한 모험에 어쩔수 없이 끌려들어가는듯 한 심정이였다. 검은상자의 폭발은 곧 함의 침몰을 의미했다. 결국 함을 자폭시켜서라도 비밀은 엄수해야 했다.

피할수 없는 그 만약의 경우를 예상해보는지 겐지는 비장한 기색이였다.

《만약의 경우 중대결단은 함장님이 내려야 할테니까 제 생각엔 검은상자를 여기에 설치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부처는 덴겁을 했다.

《여기라니?! 함장실에 말이요?》

《예, 검은상자를 폭파시켜야 할 그런 최악의 경우야 생기지 않겠지요. 그러니 그것을 호신부처럼 생각하십시오.》

뭐?! 폭탄을, 호신부로 생각하라구? 발칙하고 얄미운 놈이라구야.

부처는 겐지에게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히 말했다.

《나의 호신부는 〈자유의 녀신〉상이요. 녀신의 축복을 받는 한 나와 우리 함은 무사할거요.》

겐지는 난처해졌다.

《그럼 검은상자를 도로 가져가랍니까?》

부처는 망설이였다.

싫든좋든 검은상자는 자기가 지고다녀야 할 십자가였다. 그것을 지지 않으려면 함장자리를 내놔야 했다.

《거 뭐 이왕 가져온건데 설치하겠으면 하오.

내 생각엔 정보실선저가 적합한 위치인것 같소. 검은상자는 정보실에서 주로 사용하게 될테니까.》

《알았습니다. 설치작업이 끝나면 자폭장치열쇠를 함장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부처는 선체관리를 책임진 기관장을 불러 일본기술자들이 정보실선저에 들어가 작업할수 있게 도와주라고 했다.

레이시는 거푸시시한 머리칼을 배기름이 밴 시커먼 손으로 쓸어만지며 마지못해 응하더니 겐지를 데리고 함장실에서 나갔다.

레이시는 자기를 군인이라고 생각해본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기관장이였다. 배밑창에 고인 비류지나 퍼내고 기관이나 돌려먹는 천덕꾸러기였다. 배운 재간이 그거니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은 천하고 고되지만 실업당할 근심이 없고 대우도 괜찮아서 그럭저럭 지내고있다. 햇내기들이 저보다 똥별 한두개 더 달고 으시댈 때면 그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러나 꾹 참았다. 그런 소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적당히 먹고 지내면서 깐지게 저축을 해서 군복을 벗게 되면 뭍에 올라가서 구수한 땅김을 쏘이며 여생을 편히 보내고싶은게 그의 소원이였다.

내키지 않는대로 얄미운 일본인을 뒤에 달고 정보실에 들어간 레이시는 발판을 열어제꼈다.

선저가 일상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말이 아니였다. 룡골과 륵골짬들에 물이 고이고 바닥에 먼지가 뽀얗게 깔렸으며 지어는 먹고버린 통졸임깡통과 음식찌끼까지 있어 오물장을 련상시켰다.

레이시는 오만상을 찡그리면서도 실무적인 투로 말했다.

《자, 어서 작업을 시작하시오.》

겐지는 진저리를 치며 류창한 영어로 항의했다.

《이런 너절한 장소에서 어떻게 작업을 한다는거요? 우린 청소부가 아니라 고급한 기술자들이란 말이요.》

레이시는 대뜸 눈을 부라렸다.

《그러니 나더러 선저청소를 하라는거요? 정보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기관수들이 남의 더러운 밑구멍을 씻어주라는건가?》

겐지는 모욕을 당한듯이 가뜩이나 페롭게 생겨먹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어쨌든 난 선저를 깨끗이 청소하기 전엔 검은상자설치작업에 착수할수 없소.》

부처는 복도에서 그들이 티각태각하는 소리를 듣고있었다.

어느 함선에나 관리조직표가 있다. 《푸에블로》호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의하면 정보실의 선저관리는 해리슨대위가 책임진 특수분견대가 해야 했다. 헌데 그놈들은 손님격이니 선저관리에 관심을 두지 못한 모양이다.

개자식들! 깡지근한 그놈들때문에 망신을 톡톡히 하게 되는군.

부처가 정보실에 들어가려는데 수밀문이 탁 열리더니 기관장이 씩씩거리며 나오려다가 멈춰섰다.

《함장님, 해리슨이 그 새끼와 특수분견대인지 뭔지 하는 아새끼들은 다 주둥이만 깐 알건달들입니다. 선저관리를 한 꼬락서니를 보십시오. 이건 완전히 오물장입니다.》

부처는 한번 성이 나면 상관이나 상급도 가리지 않고 받개질을 하며 밸을 풀고서야 즘즉해지는 레이시를 점잖게 타일렀다.

《갸들이 우리 배놈들처럼 근면할리야 없지. 그러나 선체관리야 당신이 책임진거지. 특수분견대가 이동훈련을 갔으면 당신이 정보실의 선저관리를 다른 성원들에게 맡겼어야 할게 아닌가.》

레이시는 상통을 잔뜩 찡그리고 짜장 억울한듯 게두덜거렸다.

《우리 함이 그런 놀새들을 태우고다니는 노새입니까? 우린 바다물이 쓴지 짠지도 모르는 땅버러지들의 노복이 아니거던요.》

부처는 신경질이 났다.

《그럼 어쩌자는거야?》

《갸들이 올 때까지 정보실의 선저관리는 우리 기관수들이 하겠습니다. 그러나 셈은 바로 해야지요. 난 관리비용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레이시는 특수분견대원들의 봉급에서 선저관리비로 30프로를 떼내여 자기네에게 넘겨달라고 했다.

헌데 해리슨이 순순히 응할리 만무다.

부처는 시끄러운 분쟁에 말려들고싶지 않아서 무난한 절충안을 내놓았다.

《야박하게 현금을 꼭 받아야 하겠나? 차라리 한상 잘 차리라고 하게. 어쨌든 빨리 검은상자를 설치할수 있게 조건을 보장해주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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