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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참가자이며 초기복무사관인 권중섭은 김철진전대장과 동갑이다. 군사복무년한도 같았다. 그런데 한사람은 상좌요, 다른 사람은 상사다. 권중섭은 십년이 넘게 상사령장을 달고있지만 기관조장인 자기의 직무를 사랑했으며 겸손하고 근면하며 례절이 밝아 비단 구잠함 103호만이 아니라 온 군항의 존경을 받고있었다.

그를 누구보다 존경하고 따르는 해병이 바로 김형길이다. 권중섭은 형길이를 친동생처럼 사랑하며 꼭 《우리 형길이》라고 부르군 한다. 권중섭이 처음으로 애정을 담아 그렇게 부른 날이 바로 형길이가 3마일수영에 참가했다가 락오자가 되여 톡톡히 망신을 당한 그 이튿날이다.

그때 박철호는 형길이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수 없었다. 자기는 물론 초소장까지 망신시킨 형길이를 불러다놓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고싶었다.

《여! 이게 무슨 망신이야? 십메터를 헤염치는 사람은 백메터도 헤염칠수 있고 백메터를 헤염치면 천메터나 만메터도 얼마든지 헤염칠수 있다고 내가 동무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주었는데두 그 꼴이야? 우린 바다에서 싸우는 해병이야! 뭐니뭐니해도 헤염을 잘 쳐야지 손풍금이나 타고 그림이나 그려서 무슨 소용이 있어?

동무와 함께 함에 배치된 신입병사들은 비록 시간이 늦어지긴 했지만 3마일을 끝까지 다 헤염쳤는데 동문 뭐야? 의지가 그렇게 약해가지고 어떻게 원한을 품고 수장당한 부모들의 원쑤를 갚겠어?

3마일수영로정은 원쑤들을 쳐부시러 나가는 진격로야! 그런데 넌 비겁하게도 락오자가 됐어.

이게 훈련이 아니라 전투였다면 넌 총살감이야!》

이렇게 눈알이 툭 터져나오게 된욕을 퍼부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려고 내심 윽윽 벼르었다.

하지만 박철호는 막상 그를 불러놓고는 차마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형길이는 3마일수영에서 락오자가 된 자신을 두고 얼마나 괴로워하며 고민했는지 어깨가 축 처지고 그리도 영채가 돌던 두눈이 빛을 잃고 눈확속에 푹 꺼져들어갔다. 한마디만 큰소리를 쳐도 당장 쓰러질것만 같았다.

죽지가 부러진 여린 갈매기랄가.

박철호는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상대방을 지그시 지켜보다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후!- 난 동무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꼴이요? 정말 유감이요.》

박철호는 이렇게 나무라고 돌아섰다.

등뒤에서 《흐윽!》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형길이가 종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린것이였다. 그는 헉! 헉! 더 크게 소리내여 흐느꼈다. 박철호는 돌아서서 그를 위로해주고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취침시간이 되였다.

2층침대에 올라가서 누운 형길은 모포를 얼굴까지 뒤쓴채 그냥 터져나오는 울음을 씹어삼켰다.

아래침대에 누운 박철호는 웃침대의 흔들림과 간간이 새여나오는 흐느낌소리를 몸으로 감촉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지만 웃침대는 사나운 비바람을 맞는 가냘픈 나무가지마냥 계속 애처롭게 흔들렸다.

동정심이 지나쳐서, 그만 짜증이 났다.

젠장! 사내가 저게 뭐야? 온밤 눈물이나 줴짤셈인가? 꼬락서니를 보니 배사람이 되긴 글렀군. 아마 래일 아침이면 륙상구분대에 보내달라고 할거야. 거기에 가면 3마일수영을 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갈테면 가라!

박철호가 결김에 속으로 웨친 그 소리를 들었는지 형길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수밀문을 열고 나갔다.

위생실에 갔다오겠거니 하고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예감이 심상치 않았다. 박철호는 재빨리 일어나 갑판에 나갔다. 구조물들사이를 살펴보는데 구명조끼함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얼른 다가가보니 형길이가 분명했다. 수영복을 꺼내입고 수영모를 쓴 그는 구명조끼를 손에 들고있는데 고개를 기웃거리는게 입을것인가, 말것인가 망설이는것 같았다.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을 하면 안전하다. 그러나 속도를 낼수 없고 장시간 헤염을 치면 구명조끼에 쓸려서 겨드랑이의 살갗이 벗겨진다. 그래서 3마일수영훈련을 할 때 구대원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다.

형길이는 인기척을 느꼈던지 흠칫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해병의 눈길이 마주쳤다. 형길이의 눈동자는 그 어떤 운명적인 중대한 결심을 내린듯 엄엄하면서도 무섭게 번뜩이였다. 심상치 않았다. 박철호는 조심스레 물었다.

《형길동무, 어쩌자는거야?》

형길이는 씩! 하고 숨을 다몰아쉬더니 짤막하나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3마일수영을 하겠습니다.》

《이제?》

《예.》

《이 깊은 밤중에?》

《예.》

《정신이 나갔어? 안돼, 래일 날이 밝으면 나와 함께 하자구. 자, 어서 들어가 자자구.》

형길은 두눈을 부릅뜬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의 심정은 알만 해. 그러나…》

형길은 자기의 팔을 잡으려는 초소장의 손을 뿌리치고 구명조끼는 갑판에 내동댕이쳤다.

《나를 막지 마십시오!》

그의 목소리에선 서리발이 풍겼다.

《이제 당장 과오를 씻지 못하면 난 바다물에 빠져 죽어버리고말겠습니다!》

그 말투, 그 태도에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풍겼다. 박철호는 절망과 고민끝에 독하게 사려먹은 부하의 결심을 그 무엇으로써도 돌려세울수 없음을 깨달았다. 더는 말릴념을 못하는 초소장을 외면한 형길은 현측으로 재빨리 다가가더니 숨을 길게 들이쉬고 바다물에 첨벙 뛰여들었다.

《누구야?》

감시대와 선수선미갑판에서 직일병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감시대에서는 즉시 탐조등을 켰다. 탐조등빛에 먹물을 풀어놓은듯 한 바다물에서 서툰 동작으로 헤염을 치는 형길이의 뒤모습이 드러났다.

박철호는 감시대에 대고 소리쳤다.

《직일병동무! 탐조등을 끄라구. 형길동무가 야간수영훈련을 하고있어.》

직일병은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 대낮에도 제대로 헤염을 치지 못하는 주제에 야간에 수영을 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글쎄 탐조등을 끄라구.》

《이거 뭐 승인을 받고 하는 훈련입니까?》

《승인은 이제 받겠소.》

《안됩니다. 난 비상종을 울리겠습니다.》

박철호는 급해맞았다.

《제발 그러지 마오! 소동을 피우지 말란 말이요!》

《그럼 형길동무가 빨리 함으로 돌아오게 대책하십시오.》

《그래.》

박철호가 부랴부랴 바지와 내의를 벗고 구명조끼함에서 수영복을 꺼내 입는데 최정식함장이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요?》

박철호는 간단명료하게 사연을 보고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였다.

《함장동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길동무와 함께 3마일수영을 하겠습니다.》

최정식은 선수갑판으로 나가서 앞을 살펴보았다.

벌써 수십메터나 헤염쳐간 형길이의 모습이 파도우에서 번뜩이는 린광으로 어렴풋이 안겨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음, 자존심이 있고 결패도 있군. 동무가 뒤따라가면 저 친구의 자존심이 상할수 있겠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수야 없잖습니까.》

《기관조장동무와 함께 고무단정을 타고 멀찌감치에서 따라가시오. 형길이가 알아차리게 하면 절대로 안되겠소.》

《알았습니다!》

기관단정과 고무단정은 기관조장이 관리한다.

박철호는 미안한대로 사관실에 들어가 코를 요란하게 골며 자는 권중섭을 깨웠다. 달콤한 잠에서 깨여난 권중섭은 짜증을 냈다.

《왜 그래?》

《고무단정을 써야 하겠기에…》

고무단정을 한번 꺼내서 쓰고나면 그 손질이 시끄럽다. 고무단정을 청수에 깨끗이 씻어서 물기가 조금도 없게 말리워 활석가루를 발라서 포개여 함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그래서 웬간해서는 고무단정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밤중에 고무단정은 왜 쓰겠다는거야?》

《지금 우리 형길동무가 혼자서 3마일수영훈련을 하고있어서 그럽니다.》

《뭐라구?!》

권중섭의 두눈이 탐조등처럼 커졌다.

《그게 정말이요?》

《예, 함장동지는 형길이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고무단정으로 은밀히 뒤따라가라고 합니다.》

《암, 그래야지. 허! 그 친구 정말 괴짠데… 아까 3마일수영에서 락오자가 됐을 땐 기가 푹 죽은게 해병구실을 못할것 같더니 용단을 내렸구만. 암, 응당 그래야지. 형길인 응당 그래야 해. 형길이가 장차 큰일을 치게 될거야. 야밤에 3마일수영을 혼자서 하는 그 배짱과 용단이 마음에 들어. 정말 장해!》

권중섭은 원래 말이 적은 사람이였다. 그런데 형길이를 놓고는 이처럼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다. 단정을 꺼내여 바람을 넣고 물에 떨구고 그우에 올라탄 다음에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한편 형길이는 무서움도 두려움도 잊고 두눈을 부릅뜬채 홀로 파도를 헤치며 나갔다.

그는 철부지때 한생에 못 잊을 돌이켜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무서운 참극을 겪고난 다음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강물이 무서워서 미역을 감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형길이네 마을에 승냥이처럼 포악하게 생겨먹은 놈들이 달려들었다. 놈들은 집집을 뒤지며 어른들을 닥치는대로 붙잡아 군용트럭에 실었다. 형길이네 부모도 례외로 될수 없었다.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노전이 찢어진 방엔 나어린 오누이만 남았다. 형길이보다 서너살우인 누나는 놈들의 구두발에 걷어채워서 허리를 꼬부리고 나동그라진채 신음하고있었다. 다섯살잡이인 철부지 형길이는 악을 쓰고 울어댔다.

그는 도무지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무섭게 생겨먹은 어른들이 왜 달려들어서 행패질을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붙잡아갔는지 그리고 어머니의 치마폭에 매달려 발을 동동 구르던 누나를 구두발로 걷어차서 쓰러뜨렸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울다울다 지쳐서 쓰러졌다. 맥없이 어푸러져있노라니 배가 고팠다.

《누나야, 나 배고파. 밥달라, 밥달라!》

그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하는 누나에게 막무가내로 졸라댔다.

《형길아, 좀 참으렴. 엄마가 돌아와야 밥을 지어준단다.》

《싫어싫어, 배고파. 밥달라!》

《애두 참, 엄마가 와야 해.》

《나 엄마 찾으러 갈래.》

형길이는 벌떡 일어나 토방에 나섰다.

《형길아! 가지 마! 가면 안돼!》

누나가 겨우 상반신을 일으키며 소리쳐 만류했지만 형길은 고무신을 주어신고 마당을 나섰다.

《형길아! 형길아!》

누나의 부름소리가 희미해졌다.

마을은 텅 비였다. 사람들은 고사하고 멍멍이나 닭 한마리 눈에 띄우지 않았다. 《엄마야! 엄마야!》하고 울며불며 여기저기 돌아가던 그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멈춰섰다.

강을 건너지른 다리우에서 숱한 사람들이 뒤엉켜 밀고당기며 복작거리고있었다. 몸을 꽁꽁 묶이우고 목에나 가슴에 큰 돌맹이를 매단 사람들은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손에 총을 든 무섭게 생겨먹은 놈들은 그들을 강물에 처넣는다.

저주와 원한에 찬 아우성소리, 쌍욕을 퍼붓는 소리, 총소리, 만세소리…

겁에 질려 뒤걸음치는 철부지를 보고 웬놈이 씨물씨물 웃으며 다가와 멱살을 틀어쥐고 번쩍 들더니 다리밑으로 홱 내던졌다. 설설 끓는 지옥의 불가마인양 사품치는 강물이 어린 아이를 덥석 삼켜버렸다. 놈들의 천인공노할 학살만행이 저질러진 수장터에서 형길이가 살아난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였다.

그에게는 그때 수장된 부모님들과 마을사람들의 원한을 기어이 풀어주어야 할 필생의 의무가 있었다. 그것을 수행하려면 강물이 아니라 바다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원쑤들과 싸우기 위해 우선 파도와 싸워 이겨야 했다.

방파제를 돌아서니 더 세찬 파도가 줄지어 밀려들었다. 바다물도 더 차거웠다. 형길이는 더 힘껏 파도를 헤쳤다. 숨이 차오르고 손목이 금시 부러져나갈듯 아파났다.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달빛에 검스레하니 보이는것이 사슴섬이다. 잔교에 켠 표식등이 보인다. 거기에 갔다가 돌아오면 3마일, 륙로로 보면 약 시오리다. 정확히 5 556메터다. 팔을 세번 저으면 1메터를 간다. 그러니 16 668번을 저어야 했다. 이제야 겨우 900번을 저었다. 그런데… 기운이 진했다.

형길은 헤염치기를 그만두고 몸을 돌려 반듯이 누웠다. 숨을 돌리며 발끝만 약간씩 놀렸다. 이렇게 물우에서 휴식하는 방법도 초소장이 배워주었다.

《동문 왜 바다물에 들어서기만 하면 겁을 먹고 헤덤벼치나? 그저 가만 엎드려있거나 누워있어도 가라앉지 않아. 발끝이나 손만 약간씩 놀리라구. 하루종일이라도 물우에 얼마든지 떠있을수 있어.》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주던 초소장이다. 그런데 물에 뛰여들기 전에 자기를 념려해주는 초소장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우둘렁거린것이 몹시 후회되였다. 이제 3마일수영을 기어이 해내고서 용서를 빌기로 했다.

바다물우에 드러누워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왔다. 별들이 다투어 반짝거린다.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자라던 학원에서 손풍금을 울리며 바라보던 저 하늘의 정다운 별들이다. 친근한 노래소리가 귀전에 울려왔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못 잊을 학원시절이여!

저 별빛들은 이밤도 저 멀리 학원에서 기대를 안고 나를 지켜보시는 선생님들의 눈빛같구나.

가자! 어서 가자! 내 오늘 밤에 기어이 3마일을 돌파할수 없다면 정녕 살아서 무엇하리.

된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그만두고 동정과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자기를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하던 초소장의 말이 귀전에 되살아난다.

《후… 난 동무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꼴이요? 정말 유감이요.》

그것이 험한 추궁이나 욕설보다 더 아팠다. 그의 마음을, 심장을 찔렀고 상처입은 자존심이 고개를 들게 해주었다. 그래서 여느땐 할수 없었던 비상한 용단을 내려 용약 밤바다에 홀로 뛰여들었던것이다.

정말 그래, 초소장동지는 날 그렇게 보지 않았지. 함장동지를 비롯한 지휘관들도, 기관조장동지를 비롯한 구대원들도 날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내가 손풍금을 타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어서 읊으면 정말 잘한다고, 재간둥이라고 기뻐했다. 내가 신입병사들가운데서 함선규정을 제일먼저 통달했을 때는 또 얼마나 대견해했던가.

그런데 오늘 진행한 3마일수영훈련에서 이 김형길이라는 인간의 진면모가 드러난것이다. 해군옷을 입었지만 정작 바다에 뛰여들면 닻처럼 가라앉는, 그래서 해병구실을 할수 없는 있으나마나한 존재, 있어야 오히려 부담이 되고 거치장스러운 나의 진면모가 여실히 드러났던것이다.

아니! 아니다!

나는 락오자가 아니다. 락오자가 될수 없다. 나에겐 복수자로서의 의무가 있다, 학원선생님들의 기대에도 보답해야 한다.

형길은 몸에 기운이 넘치는것을 느꼈다.

그는 다시 헤염을 치기 시작했다. 셈세기를 그만두고 입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그는 넓고넓은 품, 사랑의 바다에 안겨있었다.

그래서 추운줄도 힘든줄도 몰랐다. 용기를 내여 헤염을 치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애육원에서 배운 노래, 학원에서 배운 노래, 해군에 입대해서 배운 노래… 부르고부르고 또 불렀다.

사슴섬의 잔교에 가닿았다. 잔교기둥을 붙잡고 숨을 돌리고나서 군항을 향해 다시 헤염을 치기 시작했다. 푸름푸름 날이 밝아왔다. 그제서야 그는 은밀히 자기를 뒤따르는 고무뽀트를 발견했다.

고무뽀트에서 초소장과 기관조장이 주먹을 흔들며 소리쳤다.

《형길이! 기운을 내라!》

《앞으로 천메터가 남았다.》

김형길은 더 속도를 냈다. 방파제끝을 에돌았다.

사랑하는 정든 함의 모습이 보였다. 갑판에 떨쳐나온 해병들이 와! 하고 환성을 올리며 반겨주었다. 모두들 밤을 꼬박 새우며 갑판에 나와서 형길이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박철호는 형길이를 제 친동생처럼 여기며 끔찍이도 위해주는 기관조장을 만나 의논을 해보고싶어 기관실에 갔다.

갑판엔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 기관실은 후끈후끈했다. 배기름냄새가 짙게 풍겼다. 이곳은 전투초소라기보다 기계공장이나 발전기실같았다.

기관수들은 아래우가 맞달린 검은 정비복을 입고 작업모를 쓰고서 주기관과 보조기관, 압축기, 전동발전기, 윤활유탕크, 청수탕크, 고압탕크 등 비좁게 설치된 설비들사이에 들어박혀 뭔가 직심스레 닦아내거나 분해하기도 하고 기운차게 뽐프질도 하고있었다.

기관정비작업은 고되고 품이 많이 든다. 온몸에 시꺼먼 기름칠을 해야 한다. 기관수들에 비하면 탐지수나 항해수, 무전수와 같이 약전기재를 다루는 해병들은 신선놀음을 하는셈이다. 그들은 정비를 해도 옷에 기름찌끼 한점 묻지 않는다.

항해를 할 때도 다찬가지다.

기관수들은 출항한 함선이 항해임무를 수행하고 입항할 때까지 귀고막이 터질 지경으로 그칠새 없이 퉁탕거리는 주기관이나 보조기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박철호가 찾는 기관조장은 열어제낀 선저안에 들어가서 배밑창에 고인 걸쭉한 기름찌끼를 퍼내고있었다. 이게 함선정비에서 제일 어렵고 구접스러운 일이다. 이 기름찌끼를 《비류지》라고 부른다. 기관실의 배밑창에 비류지가 더 많이 생기기때문에 기관수들이 남보다 더 고생하게 된다.

박철호는 서슴없이 선저안에 들어가 기관조장을 도와 비류지를 퍼내기 시작했다.

노상 기관실에 붙어있는 기관조장은 배기름에 절어서인지 얼굴과 두손이 거무틱틱하고 번질번질했다. 눈섭은 시꺼멓고 광대뼈는 주먹처럼 두드러졌다. 억센 턱엔 수염터가 유표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뚝뚝하고 험상궂게 생겼다. 이마에 가로찍힌 상처자리가 더욱 그런 인상을 자아냈다.

권중섭은 뒤늦게야 인기척을 느끼고 일손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아, 정치부함장동지군요. 여긴 어지럽습니다. 그만두십시오.》

권중섭은 매우 미안하고 송구스러워하면서 만류했다.

험상궂은 그 얼굴에서 따뜻한 정이 풍기는데 신기할 지경이였다. 박철호는 헌신성과 성실성, 근면성과 솔직성으로 빚은 조각상과도 같은 이 전쟁로병에 대한 존경심을 새삼스레 가지며 더 부지런히 일손을 놀렸다.

《그만두시라는데두요.》

《괜찮습니다, 함께 합시다. 비류지를 꺼리면 배사람이 아니지요.》

《하긴 그렇지요.》

권중섭은 미더운 눈길로 정치부함장을 바라보며 동감을 표시했다.

함선승무원들은 자기를 가리켜 배사람이라고 즐겨부른다.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는듯 한 그 말속엔 함선승무원이라는 자랑과 긍지가 담겨있었다. 아울러 나는 어떤 구질고 험한 일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여있었다.

얼굴에 피가 몰리도록 고개를 수그리고 땀을 철철 흘리며 미끈거리는 비류지를 다 퍼내고나서 맑은 물로 배밑창을 깨끗이 닦는다. 물걸레로 배밑창과 주기관의 고정틀을 빡빡 문질러주노라면 거물인 구잠함이 발가숭이처럼 여겨진다. 해병들의 가슴속에서 모성애가 생겨난것이다.

오냐, 이녀석아, 뭘 그리 부끄러워하느냐? 그까짓 배밑창이 좀 어지러워진게 대수냐? 내가 씻어주지, 어때? 시원하지? 음, 워낙 잘생긴 녀석이라 목욕을 하니 멀끔한게 보기 좋구나. 넌 보기엔 요란해도 코흘리개나 같아서 늘쌍 보살펴주고 어루만져주어야 해. 그래야 임의의 시각에 기운차게 동음을 울릴수 있지.

무정한 함선이지만 유정하게 여겨져서 이렇게 다정히 속삭이노라면 힘든 생각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흥이 난다. 즐거워진다. 코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이처럼 정비작업은 함선과 해병들을 육친의 정으로 살틀하게 련결시켜준다.

정비휴식을 알리는 함선호각소리가 울리자 일손을 놓고 선저에서 나온 박철호는 기관조장에게 물었다.

《형길동무를 어떻게 할가요?》

권중섭은 난데없는 그 물음의 뜻을 알수 없어 두눈을 크게 떴다.

《정치부에서는 창작에 재능이 있는 형길동무를 군무자예술축전준비에 동원시키라고 하는데…》

웬일인가 해서 바싹 긴장해졌던 권중섭은 배기름이 거무틱틱하게 슴배인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어서 그렇게 해야지요. 그거야 좋은 일이 아닙니까.》

《나는 이 기회에 형길동무를 전문창작기관이나 대학에 보낼 생각입니다.》

《예?!》

권중섭은 흠칫하더니 신중해진 기색으로 정치부함장을 마주보았다.

《그럼 군복을 벗는다는건데… 우리 형길이가 설마 그걸 바란다는겁니까?》

《아, 그런건 아니고… 그저 형길동무의 재간이 아깝기에 앞날을 생각해서 …》

그제서야 권중섭은 마음이 놓이는지 벙글써 웃으며 간청했다.

《거 이왕이면 해군대학에 보내주십시오. 형길인 시인이나 작곡가가 아니라 함장이 되여야 합니다. 본인도 그걸 바라고있지요.》

박철호는 롱담 잘반, 진담 절반으로 물었다.

《몇년후에 형길이가 정말로 합장이 되여 나타나면 어쩌겠습니까?》

《내가 먼저 거수경례를 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지요.》

권중섭은 이렇게 대답하고나서 비류지가 묻은 두손을 비누칠을 해가면서 깨끗이 씻었다.

박철호는 생각이 깊어졌다.

동생벌이 되는 형길이에게 먼저 경례를 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어디 쉬운가?

군대에서는 복무년한이 매우 중시된다. 나이나 학력엔 관계없이 하루라도 늦게 입대하면 먼저 입대한 사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복무과정에 늦게 입대한 사람의 직무나 군사칭호가 더 높아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럴 때 호상관계에서 먼저 입대한 사람이 군사규정의 요구를 지키기가 조련치 않다. 자존심이 상하기때문이다.

박철호도 갓 입대했을 때 전쟁참가자인 권중섭에게서 많은것을 배웠지만 권중섭은 오늘에 와서 그것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정치부함장을 존중해주고 그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고있다. 이 근면하고 성실한 초기복무사관은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형길이가 함장이 되여도 의례히 그렇게 존중해주고 받들어주겠다는것이다.

군사규률이 그렇게 할것을 요구한다. 군대에서 규률은 생명이다. 여기에 대면 일개인의 자존심따위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박철호는 기관조장앞에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권중섭은 두손을 수건에 문지르고나서 군의소에서 공급해준 오미자단물을 한고뿌 부어 먼저 정치부함장에게 권했다.

《자, 드십시오.》

그 고뿌를 받아쥔 박철호는 불쑥 목이 메였다.

《그러니까 기관조장동지는 형길이가 해군대학을 졸업하고 별을 달고 올 때까지도 계속 구잠함에서 복무하겠다는겁니까?》

권중섭은 흔연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럼요, 나에겐 우리 함이 집이고 우리 동무들이 다 친형제지요. 내가 집과 형제들을 두고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박철호는 우정 비꼬는 소리를 했다.

《그래서 집에 잘 안 들어가는군요. 복남이 어머니가 섭섭해한다고 합니다.》

권중섭은 어이가 없는지 허!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거 누가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집에 잘 안 들어가는거야 정치부함장동지지요. 하긴 함장동지도 마찬가지구요.》

박철호는 고뿌에 오미자단물을 정히 부어 대할수록 미덥고 존경이 가는 기관조장에게 권했다.

권중섭은 그것을 달게 마시고나서 휴식시간이지만 여전히 정비에 열중하고있는 기관수들에게 소리쳤다.

《동무들! 어서 와서 오미자단물을 마시라구.》

그는 일손을 놓고 모여드는 기관수들에게 오미자단물을 한고뿌씩 부어주었다. 그 모습이 정다웠다. 전쟁참가자이며 초기복무사관인 권중섭이 있어 언제봐도 기관초소는 한가정, 한형제들인듯 친근하고 다정했다.

누군가 큰일이 났는지 사다리를 재빨리 구르며 기관실에 내려왔다. 포장 장길준이였다.

눈섭이 진하고 눈이 부리부리한데다가 얼굴이 노상 시뻘겋게 달아있어서 화를 내는것처럼 보이는 그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얼굴이 별스레 환해서 소리쳤다.

《정치부함장동지! 우리 해남이가 재간둥이입니다. 손풍금을 얼마나 멋지게 타는지 귀신같더라니까요. 히야! 대단합니다.》

박철호는 귀가 번쩍 열렸다.

그러지 않아도 앞으로 김형길을 대신할 손풍금수가 없어 마음을 써오댔는데 해남이가 손풍금을 멋지게 탄다니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게 사실이요?》

《예.》

장길준은 성수가 나서 장황하게 떠들어댔다.

《거 며칠전 군중문화시간에 함장동지가 해남이에게 혹시 손풍금수가 아닌가고 묻지 않았습니까.

그때 해남동무가 당황해하는게 내 보기엔 이상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동무를 주시해보니 쩍하면 량손을 가슴팍에 대고 손가락장단을 치더군요.

동시에 어깨까지 들썩이는데 률동적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해남이에게 강다짐으로 손풍금을 메워주고 연주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두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았더니 이 동무가 할수없이 손풍금을 타는데… 야! 그 솜씨에 난 홀딱 반했습니다. 형길동무도 그걸 보더니 감탄을 합니다.

자기 솜씨를 해남이가 릉가한다는거지요.

해남이가 한곡조 연주하고나서 솔직히 고백하더군요. 자기는 입대전에 학생소년회관 손풍금소조에 다녔답니다. 전국학생소년예술공연에까지 참가했답니다.》

모두들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그럴만도 했다.

군사복무를 다년간 한 구대원들은 신대원들이 눈에 차지 않아서 철부지 막내동생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데 그들속에 김형길보다 손풍금을 더 잘 타는 재간둥이가 있다니 이 정녕 놀라도 이만저만 놀랄 일이 아니다.

손풍금수는 군무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다. 손풍금수만 있으면 훈련이나 정비의 쉴참에 손풍금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며 흥취를 돋굴수 있다. 예술소조공연도 손풍금수가 있어야 한다. 하기에 어느 구분대에서도 손풍금수는 떠받들리우기마련이다.

군인생활에는 미술이나 문학, 체육에 소질이 있는 군인들도 필요하다.

박철호는 신입병사들이 오면 그들속에 어떤 재간둥이들이 있는가를 먼저 료해해보고 그 재간이 군무생활에서 더 빛이 나게 해주려고 마음을 썼다. 문학과 예술에 재능이 있던 김형길이 전투소보원으로, 초급선동원으로, 해병시인으로 성장한것도 그때문이였다.

《포장동무, 해남동무가 왜 자기에게 그런 재간이 있다는걸 숨겼댔을가?》

《해남인 자기가 아직 함선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시간을 쪼개가며 배울것이 많은데 손풍금을 껴안고 노래를 부를 체면이 없어서 그랬답니다.》

그 생각이 기특했다.

《그럴수 있지. 길준동무가 자기 직속부하의 재능을 발견하길 잘했소. 어서 나가보기요.》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모두들 법석대며 갑판에 올라갔다. 해병들이 모여들어 어깨성을 쌓은 선수갑판에서는 손풍금독주곡 《통일렬차 달린다》의 박력있고 기백있는 선률이 흥취를 돋구며 울려퍼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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