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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에 기록될 1968년 1월 23일 저녁.

구잠함은 《푸에블로》호를 해안광장부두에 끌고갔다. 미제무장간첩선을 붙잡아왔다는 소식이 날개가 돋친듯 해안도시에 퍼져나갔다. 시민들이 다투어 해안광장부두로 떨쳐나왔다. 그들속엔 목총을 메고나온 로농적위대원들도 있었고 식칼과 빨래방치를 들고나온 녀인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양키놈들의 상통을 치려고 몽둥이와 돌맹이를 들고나왔다. 고무총이나 팽이채를 들고온 꼬마들도 있었다.

준엄했던 시련의 시기에 도시를 강점했던 놈들의 야수적인 만행을 직접 목격하고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시민들의 뿌리깊은 원한과 복수심이 일시에 폭발한것이였다.

모두들 두발가진 승냥이들을 제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푸에블로》호를 해안광장부두에 대자 구잠함과 어뢰정들이 탐조등을 켰다. 눈부신 불빛이 초점을 이룬 부두는 순식간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두손을 번쩍 들고 고개는 떨군채 비칠거리며 부두에 내리는 놈들이 탐조등빛에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항해모를 쓰고 야전복을 입은 사병들은 말할것도 없고 다림발이 서고 금줄이 달린 정복을 입은 장교들도 초절임을 당한듯 후줄근한게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실로 남의 집 울타리를 넘다가 덜미를 잡힌 도적놈의 꼬락서니였다.

격노한 군중이 와! 하고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자칫하면 함장과 승무원들모두가 만신창이 되게 두들겨맞아죽거나 버러지마냥 짓밟혀 죽을판이였다. 놈들은 기절초풍했다. 부들부들 떨고있는 놈들의 모습은 그대로 미국의 몰골이였다.

자동보총을 들고 놈들을 호송하던 해병들은 군중들을 막아내느라 서로 팔을 끼고 뻗치였다. 놈들의 몰골을 사진찍느라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불빛을 번쩍거렸다. 박철호는 놈들을 풍을 친 군용화물차들에 싣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최정식대좌를 보면서도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럴 경황이 없었다. 그가 수색조를 데리고 구잠함에 오르려고 할 때였다.

《잠간!》

전대장이 매우 긴장해진 안색으로 그들을 제지시켰다.

《수색조는 다시 적함에 승선하시오. 적함을 놈들의 정찰위성이나 정찰기가 발견할수 없는 장소에 신속히 은페시켜야 하겠소.》

김철진은 방금 상급참모부로부터 받은 적정을 수색조원들에게 알려주었다.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들은 일제히 경계태세에 들어가고 오끼나와주둔 미항공대는 남조선의 전초기지들에 날아들었다. 전면전쟁이 한창인 남부윁남으로 가던 초대형항공모함이 부랴부랴 조선동해로 침로를 돌렸다. 한편 무장유격대의 맹활약에 질겁하여 이미 비상경계령을 내렸던 남조선괴뢰당국은 미군에 편승하여 괴뢰군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비무장지대에까지 중무기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여태 미국놈들의 군함이 나포된적은 없었다는거요. 헌데 이번에 우리에게 나포됐으니 왜 지랄발광을 하지 않겠소. 놈들이 전쟁을 일으킬수도 있소. 동무들은 나포된 적함을 은페시키고 해당 부문에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하오. 필요한 인원은 더 보충해주겠소.》

박철호는 증강된 수색조를 인솔하고 즉시 적함에 올라 신속히 항해 준비를 갖추고 출항하였다.

어뢰정중대와 비행대의 엄호를 받으며 백수십mile(마일)을 항해하여 놈들의 정찰위성이나 고공정찰기도 발견할수 없게 특수한 설비를 갖춘 장소에 《푸에블로》호를 은페시켰다.

《자! 이젠 푸짐히 먹고 한잠 자자구.》

이때껏 초긴장해서 임무를 수행한 수색조는 명절을 맞은듯이 흥성거렸다.

갑판장과 경리분대장은 각종 창고들을 검열하고 취사장에 들어가 식사준비를 했다.

박철호는 부함장과 함께 지휘소와 정보실을 다시 수색하고 함장실에 들어갔다.

탁상우에도, 격벽에 붙은 서류장안에도 잡지와 도서, 신문따위가 가득 들어있었다. 모직가림천을 제끼니 침대우에서 벌거벗은 녀자모양의 고무인형이 눈에 띄였다. 흠칫 놀랐던 조용순은 고무인형을 집어 복도에 내깔리고 두덜거렸다.

《젠장, 거 함장놈이 색광이로군. 지휘소엔 깨진 녀자조각상이 뒹굴더니 여기엔 이런 너절한게 있군요. 이거 무슨 책들인지 다 내다가 태워버립시다.》

재수없게 발목이 삐여져서 함선수색조에 망라되지 못했던 조용순은 그 아쉬움을 일종의 분풀이로 봉창하고싶은지 책들까지 복도에 내던지려고 했다.

박철호는 만류했다.

《가만, 거기에 혹시 참고할만 한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오. 따로 보관해두었다가 해당 부문에 보내주기요.》

그들은 두개의 장교침실과 사관침실을 수색하고 사병침실로 향했다. 사병침실은 상층구조물이 아니라 기관실처럼 갑판밑에 있었다. 창고처럼 어수선하게 생긴 격실안에 사품을 넣을수 있게 함통식으로 만든 금속침대를 쇠사슬로 여러단씩 매놓았다. 좁은 공간에 서양장기판과 꼬니판을 놓은 자그마한 탁상도 있었다.

적함을 나포한 다음 수뢰초소장과 함께 사병침실에 놈들을 죄다 몰아넣고 지켰던 해남이가 손에 잡히는대로 어느 침대의 웃판을 열어제끼고 시퍼런 돈뭉치를 꺼내여 흔들어보였다.

《이게 바로 딸라라는겁니다. 놈들은 이걸 벌자고 우리 령해에 기여들었다가 혼쌀이 난겁니다.》

자기가 사용할 침대를 손질하던 해병들은 이게 뭐야? 하고 다투어 침대웃판을 열어보았다. 쇠를 잠근건 망치로 까거나 나사틀개로 비틀어 열었다.

흡사 대형트렁크처럼 생긴 침대안에는 증명서와 편지봉투들, 사진들과 화보나 신문에서 오려낸 그림쪼박들, 손목시계나 회중시계, 목걸이와 귀걸이따위들과 함께 돈뭉치가 들어있었다. 벌거벗은 계집들의 방탕하고 요염한 꼬락서니가 대다수인 사진들과 화보따위를 쓰레기처럼 밀어제끼고 돈뭉치를 꺼낸 기관수가 몇장 번져보더니 미간을 찡그리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거 괴상하군. 돈에 왜 늙다리들의 보기 흉한 낯짝을 그려넣었을가? 늙다리들이 왜 녀자들처럼 파마를 했는가? 다 색광들인가부지.》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이따위도 돈인가? 화페에야 우리처럼 사과따는 처녀라든가 풍어기를 날리며 물고기를 잡는 어로공들의 모습을 그려넣어야지.》

《그래, 색갈을 봐도, 그림을 봐도 우리 돈이 더 멋있어.》

긍지에 넘쳐서 한마디씩 하는데 박사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좀 뒤져본게 있어 세계상식에 밝은 탐지수가 설명을 해주었다.

《이건 미국의 그 무슨 건국과 번영에 기여했다는 대통령놈들의 낯짝이요. 파마를 한게 아니라 위엄을 돋구노라 가발을 쓴거지. 뒤면에 있는건 국회의사당이나 그러루한 건물들이요.》

《그래, 그럼 이놈은 누굴가?》

해병들은 호기심이 나서 딸라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박철호는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딸라에 찍혀진 놈들이 역시 거기에 찍혀진 소굴들에서 우리 나라를 침략하고 세계를 제패하려는 침략모의를 벌려왔고 지금도 벌리고있소. 이걸 명심하오.》

해병들의 얼굴에 얼핏 나타났던 호기심은 증오로 일변했다.

《이거 보기만 해도 눈에서 불이 이는군. 싹 걷어내다가 불태워버리자구.》

너도나도 찬성했다.

《그게 좋겠소. 이따위 잡스러운걸 넣어둔 침대에서 자다가는 악몽에 시달리거나 병에 걸릴수 있어.》

저마다 침대안에서 사진과 그림쪼박들, 미국돈을 꺼내 발판에 내동댕이치려는걸 박철호는 제지시켰다.

《가만, 이걸 보고 생각되는게 없소?》

해병들은 의아해하는 눈길로 정치부함장을 돌아보았다.

《어떻습니까? 기관조장동지.》

말없이 신중한 기색으로 그 물건짝들과 딸라뭉치를 바라보던 권중섭이 고개를 들었다.

《이걸 보니 전쟁때 일이 생각납니다. 미국놈들을 붙잡아 몸수색을 하면 이런 돈뭉치와 함께 조선어와 중어, 영어로 쓴 투항문이 나오군 했지요.》

해남이가 눈이 올롱해서 물었다.

《투항문이란건 대체 뭡니까?》

《문자 그대로 투항하겠다는 의사를 적은 글이요. 내용을 보면 자기는 미국 어느 주 출신의 아무개인데 상관의 명령에 의해서 어쩔수없이 조선전쟁에 참가하게 되였다는것, 자기에겐 가족이 있으니 인도주의와 자비심을 베풀어 목숨을 살려달라는것, 제발 본국에 보내달라는 수작이요. 그러면 딸라는 얼마든지 주겠다는거지.》

모두들 어처구니가 없어서 쓰겁게 웃었다.

《비겁한 놈들!》

《이따위 돈뭉치를 내밀면 만사가 해결된다는거야?》

《돈벌레들이고 색광들이야.》

권중섭은 아쉬운 기색이였다.

《그때 놈들의 투항문을 한장 건사해두었더라면 이 동무들에게 보여주는건데정치부함장동지, 이런것도 반미교양에 필요하지 않을가요?》

《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너절한 사진들과 물건짝들, 딸라엔 미제침략군놈들의 썩어빠진 정신상태와 생활양식이 적라라하게 반영되여있습니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함선호각소리가 어지럽고 노린내가 풍기는 짐승굴안같은 사병침실에 울려왔다.

박철호는 그제서야 시장기를 느끼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허, 이거 식사시간이 퍼그나 지났구만. 자, 식사를 하고 정리작업을 계속하기요.》

갑판에 나오니 시원한 공기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식당에선 갑판장과 경리분대장이 밥차림을 하고 기다리고있었다. 시뻘건 양념을 친 가오리탕과 상어회, 김치… 보기만 해도 입맛이 부쩍 당겼다

《식사가 왜 늦었소?》

박철호가 물으니 갑판장은 얼굴이 벌개졌다.

《오늘은 전투항해를 총화짓는 의미에서 창고에 있는 통졸임과 코카콜라, 빵, 이러루한 전리품으로 한상 차리려고 했는데 근무에 나가려고 먼저 식사를 하려던 형길동무가 노발대발하며 야단을 치더군요.

뭐라구요? 나더러 양키놈들의 노린내가 풍기는 이따위를 먹으라는겁니까? 구역질이 나서 못 먹겠소! 설사 굶어죽어도 이런건 안 먹겠단 말이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휴- 별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부랴부랴 쌀을 씻어 밥을 하다나니 늦었습니다.》

《역시 형길동무가 투철하구만. 미국제통졸임과 코카콜라에 맛을 들이면 싸움을 못해!》

조용순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갑판장동무, 그런게 다 각성이 없고 해이된 표현이요. 나처럼 순간이나마 탕개를 풀고 허튼 생각을 하면 놈들과 싸움을 해보기도 전에 부상을 당할수 있소.》

갑판장은 비판을 성근히 접수했다.

《알겠습니다. 가오리탕이 식기 전에 어서 드십시오. 부함장동지가 좋아하는 가오리탕과 상어회…》

조용순은 귀에 거슬리는 그 말을 듣고싶지 않아서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홰홰 내저었다.

《아! 제발 그런 소리는 하지 마오. 입맛 잡치겠소.》

와하하!

웃음통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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