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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릉!

함장실의 격벽에 붙어있는 내부통화기의 신호종이 울렸다.

신통히도 녀인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육감을 주는 따스한 고무인형을 껴안고 단잠을 자던 부처는 흠칫 눈을 떴다. 고무인형을 밀어놓고 얼른 상반신을 일으킨 그는 침대를 가린 모직가림천을 제끼고 송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함장님, 항해장 해군대위 머피가 보고합니다. 함은 요꼬스까항을 10마일 앞두고있습니다. 항해중 이상이 없습니다.》

부처는 탁상등을 켜고 입귀가 째질 지경으로 하품을 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였다.

이제 한시간남짓하게 항해를 계속하면 도꾜만의 주요군항인 요꼬스까항에 들어가게 된다. 고독하고 지루한 장기항해에 함장으로부터 기관수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지칠대로 지쳐서 절군 배추처럼 휘주근해졌다. 그런데도 머피는 항해당직을 긴장하게 수행하고있다.

부처는 피곤이 잔뜩 뒤엉킨 얼굴로 지휘소에 앉아있을 머피를 눈앞에 그려보며 당신의 수고를 내가 다 알고있다는 의미를 담아 부드럽게 물었다.

《대위, 피곤하겠지?》

머피는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이거 네시간째나 당직을 서다나니 졸려서 정말 못 견디겠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야?

부처는 탁상우에 놓여있는 항해당직표를 보았다. 오늘 새벽 2시부터 4시사이엔 연구장교인 해리슨대위가 당직을 설 차례였다. 부처는 의아해서 물었다.

《왜 당직근무를 교대하지 않았소?》

머피는 잔뜩 볼이 부어서 두덜거렸다.

《교대하지 않은게 아니라 교대를 못했습니다.》

《어째서?》

《그 북극여우처럼 교활한 놈이 자기는 더이상 항해당직근무를 설수 없다고 합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부처는 대뜸 기분이 상해서 움푹 패인 두눈을 사납게 치뜨며 손으로 뾰족한 턱을 매만졌다.

부처는 공정하게 보건대 머피는 짠물이 뼈속까지 스며든 진짜배기 배군이였다. 그는 오랜 배군들이 그러하듯이 고지식할 정도로 성실하고 근면했다. 바다물계에 환하고 항해실무도 높았다. 성실하고 실무수준이 높으면 의례히 출세하려니 하고 생각하는게 약점이라고 볼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 함장자리에 앉아보지 못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부처는 이런 능력있는 사나이가 자기의 대리인으로 곁에 있는것이 좋기도 했지만 나쁘기도 했다. 머피가 함장에게 이따금 제 주견을 고집하거나 지어는 이렇게 하자거니 저렇게 하자거니 하고 훈시까지 하려들기때문이였다. 그의 주견과 훈시가 대체로 옳은것이여서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군 하는데 부처는 그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머피가 《북극여우》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해리슨은 령리해보이면서도 아주 말째게 생겨먹은 사나이였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하여 해군예비역장교훈련소를 거쳐 쉽게 별을 달았다.

그후 구축함에서 통신장교로 근무하다가 워싱톤에 있는 미국방 외국어연구원에 가서 로어를 배우고 3년간 통신탐색첩보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그는 30여명에 달하는 특수분견대를 거느리고 《푸에블로》호에 왔다.

그는 특수분견대가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함장을 제외한 다른 성원들이 알 필요가 없으며 또 알아서도 안된다는 소리를 자주 해서 머피를 비롯한 다른 장교들의 비위를 거슬려놓았다.

하여튼 그놈이 으시대는 수작을 합쳐서 쥐여짜보면 나는 선발된 인재로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니 너희들 배놈들과는 다르다는것이였다. 놈은 그 무슨 특수임무를 턱에 걸고 장교들이 응당 교대로 서야 할 당직근무까지 서지 않겠다고 배짱놀음을 한다.

함에는 장교가 여섯명이다.

함장과 기관장, 경리장교를 내놓으면 항해장교와 작전장교, 연구장교가 남는다. 낮에는 함장이 주로 지휘소에 있으니 야간에는 이들 세명이 교대로 당직을 서야 한다.

그런데 해리슨은 지난 11월 6일, 함이 미국 산디에고항에서 출항한 그날부터 그 무슨 임무수행의 특수성을 운운하면서 당직근무에서 자기를 고려해달라고 요구했다. 부처는 밉살스런 그놈을 되게 다불러댔다.

《대위, 당신이 어떤 특수임무를 받았든지간에 나는 함의 주인이요. 함장은 승선한 모든 성원들을 통솔하고 책임질 권한이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감히 나의 명령에 복종할수 없다는건가?》

해리슨은 조금도 수그러들거나 주눅이 들지 않았다. 도수높은 안경을 낀 그의 잽잽한 두눈과 얇은 입술에 비양기가 어린 야시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얼마나 밉살스러웠던지 부처는 놈의 상통을 주먹으로 치고싶은걸 겨우 참았다.

《함장님,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나는 분견대를 데리고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나의 상급은 당신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미태평양군 전자정보본부입니다. 나는 전자정보본부를 거쳐 미국가안전청의 지시도 받게 됩니다.》

해리슨은 가소롭게도 제가 국가적인 인물이라도 되는것처럼 흰소리를 치며 으시댔다.

《헌데 당신과 분견대의 봉급은 누가 지불하오?》

해리슨은 굳어졌다.

《함장인 내가 지불한단 말이요. 나는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자에겐 한푼도 주지 않겠소.》

해리슨의 눈과 입술에서 야시꼬운 미소가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목소리도 자못 고분고분해졌다.

존경하는 함장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특수임무에 빙자하여 그 무슨 생색을 내자는게 아닙니다. 특수임무자체가 나로 하여금 헐치 않은 그 수행에 전심전력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고도의 신경전입니다. 나에겐 순간도 딴눈을 팔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 분견대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푸에블로〉호는 태평양을 횡단하든, 대서양을 횡단하든 소용이 없지요.

그러면 우린 날바다에서 가슴을 조이며 고생만 잔뜩 하고나서 빈털터리가 됩니다. 설마 그걸 바라는거야 아니겠지요?》

사리정연한 그 소리에 부처는 말문이 막혔다.

《푸에블로》호의 임무수행에서 해리슨대위가 책임진 특수분견대의 위치와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특수분견대의 사업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함은 지난 5월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취역하여 워싱톤주 브레머턴항에서 석달동안 중수리를 하고 빠나마해협을 통과하여 서부해안인 캘리포니아주 산디에고에 가서 두달이나 시험항해를 진행한것이였다.

결국 《푸에블로》호는 특수분견대가 리용하는 운반수단에 불과했고 함장은 마부인셈이였다.

부처는 자존심이 상해서 신경질을 부렸다.

《그래 당신은 벌써 그 특수임무를 받았다는건가?》

해리슨은 멋적은 기색으로 쭈밋거렸다.

《저… 아직은… 구체적인 임무는 일본에 도착한 다음 받게 됩니다.》

《그러니 요꼬스까항에 들어갈 때까지는 당직근무를 서시오. 여보, 우리야 이제부터 싫든좋든 한배를 타고 운명을 함께 해야 하잖소. 배사람들의 전통적인 관습과 의리를 봐서도 서로 도와주어야 하오. 그게 당신에게도 리로울거요.》

《아, 그야 물론입지요. 전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그때 해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뭐 어쨌다구?! 매끄럽고 까다로운 자식, 하기 싫은 일을 하면 여름에도 손이 시리다더니…

부처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대위, 잠간만 기다리게. 내가 이제 대책을 세우지.》

《함장님, 괜찮습니다. 이젠 다 왔는걸요.》

머피가 황송해서 사양했지만 부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격벽에 걸려있는 항해용양털잠바를 벗겨 입으면서 그는 탁상에 나란히 세워놓은 조각상과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이른바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녀신》상을 볼 때마다 부처는 세계를 제 마음대로 쥐고흔드는 강대국의 해군장교가 된 긍지와 자부심을 뿌듯이 느끼군 한다. 한편 곁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면 자기가 다름아닌 한 가정의 세대주이며 사랑하는 안해의 남편이며 귀여운 두 자식의 아버지라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자각하게 되는것이였다.

수영복차림의 안해가 두 아이를 량팔에 껴안고 백사장에 앉아서 장미꽃처럼 활짝 웃는 그 사진을 찍던 날이 눈에 선했다.

《푸에블로》호는 번잡한 부두에서 멀리 떨어진 항만 한복판에 나가 자차판정을 하고있었다. 배에 설치한 라침기는 외부영향으로 일정한 시일이 지나면 편차가 생기군 한다. 때문에 이것을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수정해주어야 했다. 그러자면 부표들에 맨 바줄을 당기며 함선을 각이한 각도에 세우고 해안에 있는 표식물과 일치시켜야 하는데 그게 헐치 않았다. 하루종일 바줄을 당기며 진맥을 뽑아야 하는 역사질이였다.

모두들 바줄당기기에 지쳐서 혀를 가로물고 헐떡거리는데 해빛을 반사하며 찰랑거리는 잔물결을 쭉 가르며 흰돛을 올린 요트가 경쾌하게 미끄러져 달려왔다. 시원한 해풍을 안고 잔뜩 부풀어난 원추형의 흰돛아래서 화려한 수영복차림의 젊은 금발머리녀인이 날씬하고 탄력에 넘치는 온몸으로 돛조종줄을 솜씨있게 움직이고있었다. 요트는 뻗치며 힘껏 굽히기도 하고 살짝 비틀기도 하는 녀인의 률동적인 황홀한 동작에 따라 잘 길들인 준마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달리는데 두 아이가 녀인의 량옆에서 손을 저으며 환희에 넘쳐 뭐라고 웨치고있었다. 그것은 과연 보는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행복과 기쁨의 풍경화였다.

땀투성이가 되여 갑판에 너부러졌던 《푸에블로》호의 승무원들은 파도를 박차고 나래쳐오는듯 한 요트를 보자 모두들 뛰쳐일어났다.

《여! 저거 보라! 금발머리에 상아같은 육체인걸.》

《아! 저 풍만한 가슴을 보게. 저기에 코를 쿡 박아보았으면 당장 죽어도 한이 없겠네.》

《몇장을 뿌려야 저 녀자와 배놀이를 할수 있을가? 이거 오금이 다 저리는구만.》

휘파람소리와 함께 질탕한 웃음이 터졌다.

《이봐, 그런 너절한 수작은 삼가하게. 저 녀자는 바다의 성모 마리아야. 보라구, 곁에 천사들이 있잖나.》

《오! 정말 행복한 녀인이로군.》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녀성들은 누구나 아름다워지는 법이지. 그런데 저 녀자가 왜 이쪽으로 요트를 몰아올가?》

《자네에게 반해서 그러겠지.》

모두들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요트를 바라보며 법석 떠들어댔다.

사진애호가이며 녀자라면 오금을 못쓰는 작전장교 슈마커중위는 입이 헤작해져서 금발머리녀인의 활짝 드러낸 육체에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었다.

부처는 지휘소에서 머피와 이마를 맞대고앉아 판정결과에 따르는 자침편차를 수정하고있었다.

고도의 집중성과 침착성, 세밀함을 요구하는 그 작업에 옴했던 부처는 뒤늦게야 갑판에서 울리는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저건 뭐야?》

현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움푹 패여들어간 매눈이 사납게 번뜩거렸다. 무엇을 노리며 재빨리 덮치려는듯 한 매눈에 걸맞게 거만하고 위협적인 곡선을 이룬 매부리코가 그를 사나운 독수리처럼 보이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바다수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본인은 내심 그것을 흐뭇하게 여기는터이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자차판정을 하는 장소에 계집이 나타날건 뭐람.》

함장이 두덜거리며 상골을 찡그리기에 머피도 허리를 펴고 현창밖을 내다보았다.

요트를 몰고오는 매력있는 녀인의 자극적인 모습이 유혹적으로 안겨왔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외면했다.

《거 정말 재수가 없군요.》

배군들은 녀자를 꺼린다. 치마자락이 눈앞에 얼씬거리면 정신이 혼돈되여 항로를 바로잡을수 없다. 하기에 계집을 태운 배는 암초에 걸리기 쉽다. 하필이면 거사를 앞두고 깃을 다듬을 때 요염스런 계집이 나타날건 뭐란 말인가.

《대위, 당장 접근불허를 알리는 신호를 보내시오. 우리 함에 다른 함선이나 외부인원을 접근시켜서는 안된다는걸 잊었는가?》

접근불허를 알리는 신호기들은 자차판정을 시작할 때 이미 마스트에 올린 상태였다.

녀인은 신호기들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인지 계속 신나게 요트를 몰고왔다. 머피는 확성기를 들고 지휘소밖으로 나갔다. 그가 당장 돌아서라고 고함을 치려는데 뒤따라나온 함장이 황급히 제지시켰다.

《가만, 저건 로즈로구만.》

《예?!》

머피는 의아해서 함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저으기 놀랐다. 사납던 《바다수리》의 인상이 돌변했기때문이였다. 노상 거만하고 페롭고 신경질적이던 함장의 얼굴에 만딸라를 공짜로 얻은 사람만이 지을수 있는 그런 웃음이 피여났다. 그렇게 웃으니 아주 선량하고 부드러워보였다.

《저건 내 처란 말이요.》

부처의 얼굴은 탐조등을 켠듯이 환했다.

《그옆에 있는건 내 아들들이요.》

《아, 그렇습니까?》

《자네가 수고를 마저 해주게.》

《예, 어서 부인님과 자식들을 만나보십시오.》

손에 쥐고있던 연필을 내던진 부처는 사다리를 탕탕 구르며 하갑판에 내려갔다. 때마침 요트는 바구니처럼 둥글게 생긴 함의 선미에 코를 박았다. 부처는 보호용란간을 솜씨있게 뛰여넘어 요트에 뛰여내렸다. 그 서슬에 요트는 당장 뒤집혀질듯 기우뚱거렸다. 일순 균형을 잃고 비칠거리는 부처를 안해와 두 아들이 붙잡아주었다.

《여보, 여긴 왜 왔소?》

반가움과 나무람이 뒤섞인 그 물음에 로즈는 어리광을 담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지휘하는 함선을 구경하려고 왔지요.》

함장이나 선장의 안해는 응당 이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부처는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래 우리 〈푸에블로〉호를 보니 감상이 어떻소?》

로즈는 그닥 내키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그러하듯이 웃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코살을 찡그렸다.

《뭐랄가? 이전세기의 노예선을 보는것 같군요. 골동품냄새가 나요.》

열세살난 맏이도 얼굴을 찡그렸다.

《체, 이따위두 전투함선이나요? 대포두 어뢰발사관두 없구만요.》

다행히도 둘째는 함의 선미에 용접으로 부각시킨 《푸에블로》라는 글자를 만져보며 호기심을 표시했다.

《아버지, 〈푸에블로〉란건 뭐나요?》

《인디안의 족속들이 모여사는 부락을 두고 하는 소리란다. 큰 집을 짓고 일가친척들 수백명이 한지붕아래서 살지.》

맏이가 눈을 찌뿌둥하게 떴다.

《미개하군요. 하필이면 함선에 그런 이름을 달게 뭔가요.》

《함선도 수십명이나 수백명이 모여서 사는 큰 집이나 마찬가지란다. 우리 미국은 장차 지구를 하나의 집으로, 즉 〈푸에블로〉로 만들자는거다. 주인인 미국인들이 검둥이들과 황둥이들을 노복으로 부려먹으면서 뚱땅거리며 살자는거야. 그러기 위하여 이 함선은 구축함이나 순양함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단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미국은 세계제패를 위한 정보수집을 더욱 활성화하려고 우정 이 낡은 상선을 중수리하여 지난 5월 해군에 취역시켰던것이다. 《푸에블로》호는 겉보기엔 낡은 상선이였지만 내부는 해상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발신할수 있는 기재들로 장비하였다.

두 자식의 눈이 호기심에 반짝거렸다.

《아버지, 그러니 특수함선이라는거지요?》

《어서 함에 올라가보자요.》

자식들에게 긍지감을 주려다가 저도 모르게 아니할 소리를 한 부처는 저으기 난처해졌다.

《함엔 올라갈수 없다.》

《아버지가 함장인데두요?》

맏이는 제법 사리를 따지려들었다.

《집에선 아버지가 맘먹기탓이고 함에선 함장이 맘먹기탓이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함에 올라갈수 없다는거예요?》

둘째가 반박했다.

《아니야. 집에선 엄마가 맘먹기탓이야! 엄마가 아버지보다 더 쎄!》

《쳇, 그거야 아버지가 집에 자주 오지 않으니까 그렇게 된거지. 그래두 집주인은 아버지야!》

《아니야. 지금 우리가 사는건 엄마네 집이야.》

자식들의 말다툼이 이렇게 번져지자 부처는 더 난처해졌다. 로즈도 몹시 당황해하더니 얼른 돛줄을 당겼다. 해풍을 안고 흰돛이 부풀었다.

부처는 《푸에블로》호의 선체에 두손을 대고 요트를 힘껏 밀었다. 함에서 떨어진 요트는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눈부신 백사장을 향하여 달려갔다. 부러움과 시샘이 어린 승무원들의 눈길이 요트를 따라왔다.

부처는 오래간만에 따가운 해빛이 내리쪼이는 백사장에 올랐다. 피서계절이라 수영복차림의 남녀들이 백사장에 한벌 쭉 깔려서 자반뒤집기를 하고있었다. 부처는 요트를 바다기슭에 끌어올리고 우선 가족사진을 찍은 다음 마른새우를 안주로 병맥주를 마셨다. 장난꾸러기 두 아들은 구명환을 들고 바다물에 뛰여들어 새끼오리인양 왁작 떠들며 물장구를 쳤다.

남편의 애무를 바라는지 취기가 오른 두눈을 지그시 감고 까딱없이 모래불에 누워있던 로즈가 별안간 눈을 치뜨더니 걸고들듯이 물었다.

《왜 그러고있어요? 내가 보기 싫어졌나요?》

안해의 얼굴과 몸매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아닌게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던 부처는 당황해졌다.

가까이에서 보니 안해는 이미 시들기 시작한 꽃이였다. 눈귀엔 어쩔수없이 주름이 잡히고 그처럼 탄력이 있고 윤기가 돌던 두볼도 처지기 시작했다. 갓 결혼을 했을 땐 날씬하여 매력이 있던 몸매도 지나치게 몸이 나서 풍만하기는 하나 물크러지려는 과일처럼 징그러워보였다.

로즈는 남편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만 했던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허리가 자꾸만 굵어져서 속상해요. 운동료법에 안마치료를 해도 그닥 효과가 없군요. 얼굴에 생기는 검버섯과 주름살을 볼 때면 서글퍼져요.》

부처는 안해를 위로해주려고 속에 없는 소리를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당신은 지금이 한창 매력이 있소. 방금전에 우리 선원들이 당신을 보고 미친듯이 환성을 올렸거던.》

로즈는 미간을 찌프리며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선원들이란 그런거죠. 몸까기엔 절식료법이 좋다는데 난 먹지 않고서는 하루도 참아낼것 같지 못해요. 까짓거, 당기는대로 먹고 놀고싶은대로 놀고 그래야 속이 편하지요. 하지만 젊음을 잃고싶진 않아요.》

부처는 안해가 젊음과 미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 잘 알고있었다. 그 돈이면 최하층의 녀인들은 한생을 부유하게 살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안해는 미국의 지나친 사치와 호화로움을 상징하는 꽃이였다. 안해만이 아니라 해수욕장에서 씨글거리는 부유층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위해 세계도처에 세력을 뻗치고 고혈을 빨아들이는것이다.

로즈는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정색해서 물었다.

《당신은 어떤 임무를 받았어요?》

부처는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로즈는 사위를 재빨리 둘러보고나서 나직이 물었다.

《군사비밀이라는건가요?》

부처는 여전히 입을 봉한채 고개만 끄덕이였다.

남편을 주시하는 로즈의 파란 눈동자에 한줄기의 연기처럼 근심이 어렸다.

《언제 출항하는가요?》

《석달후에…》

《준비를 착실히 하는군요. 언제 돌아와요?》

부처는 이제야 입을 열었다.

《늦으면 1년, 빠르면 반년정도 걸리겠지.》

《어디에 가기에 그렇게 오래 걸려요?》

《태평양을 건너야 하오.》

부처는 이 순간에 자기의 몸에 바싹 기대인 안해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육체가 흠칫 굳어지는것을 감촉했다.

《혹시 조선동해나 울라지보스또크쪽으로 가는게 아니예요?》

안해가 항해목적지를 면바로 찍는통에 부처는 놀라도 이만저만 놀라지 않았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오?》

로즈는 픽 웃었다.

우월감이 내배인 그 미소로 하여 안해는 녀왕처럼 도고하고 거만해보였다.

《당신은 내가 누구의 딸인지 잊었는가요?》

안해가 이렇게 뻐길만 했다.

부처의 장인은 사용기일이 지나서 퇴역한 낡은 군함들을 대수리하고 재장비하여 해군에 넘겨주거나 다른 나라에 팔아 폭리를 보는 군수산업체의 거물이였다.

해군성에서는 정보수집능력을 본격적으로 높이려고 뉴욕조선소에 주문하여 현대적인 전자정찰함선들을 여러척 건조했는데 여기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이것을 넌지시 엿보던 부처의 장인은 태평양전쟁때 쓰다가 퇴역시킨 낡은 수송선들을 전자정찰선으로 손쉽게 개조하였다. 처음으로 개조한것이 《배너》호이고 다음으로 《푸에블로》호와 《팜비취》호를 내놓았던것이다. 하여 자금난에 부딪쳤던 해군은 적은 투자로 전자정찰함선들을 많이 보유할수 있게 되였다.

《〈배너〉호는 올해 정초에 울라지보스또크쪽에 갔다왔대요.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북조선령해엔 들어가보지 못했다더군요. 그쪽일은 당신네 몫으로 남겨둔거겠지요. 양보심이 많아서 그런건 결코 아닐거예요. 난 그게 께름직하군요.》

《조짐이 좋지 못해도 가라면 가야지.》

《난 당신이 그런 위험한 일에 말려드는걸 바라지 않아요.》

로즈는 미국의 녀성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도 가정과 남편의 리익과 안전을 우선시했다.

《당신이야 미술가가 되는게 소원이 아니나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군복을 벗어던지고 붓을 쥐세요.》

진심으로 되는 권고에 부처는 크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랬다. 어릴적에 품은 그의 희망은 세계적인 걸작으로 유명짜한 미술대가들과 자기의 이름을 나란히 놓는것이였다. 희망의 상상봉은 이렇듯 높았지만 거기에로 기여올라갈 재력이 부족했다. 빠리류학을 하지 못하면 미술가로 인정조차 받을수 없는데 거기에 드는 거액의 자금을 누가 보장해준단 말인가. 기를 쓰고 화판을 들고다니던 그는 자그마한 미술전시회장에 자기의 그림쪼박 하나 종시 걸어보지 못하고 군대에 나오고말았던것이다.

잠수함에 배치된 그는 야심을 품고 바다물속에 몸을 푹 잠그고 출세의 사다리를 한단, 두단 착실히 밟아올랐다. 결과 해군장교복을 입게 되였으며 용감한 바다사나이라면 무턱대고 따르는 아릿다운 처녀를 안해로 맞아들이였다.

재색이 겸비된 안해덕분에 살림은 유족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나이는 그때문에 노상 빚진 심정이였다. 아까 막내아들이 제 형에게 엄마가 아버지보다 더 쎄다느니, 우리가 사는건 엄마네 집이라느니 한건 괜한 소리가 아니였다.

로즈는 남편이 《푸에블로》호의 함장자리를 타고앉아 앞으로 2~3년간 해외에 나가 특수임무를 수행하게 되자 두 자식을 데리고 산디에고에 있는 친정아버지의 별장에 왔다.

부처는 장인을 대할 때마다 선망과 위압감 그리고 혐오감을 동시에 받아안군 한다.

수단가이고 실무가이면서도 포식을 즐기는 장인이 위스키를 물마시듯 하며 포크로 구운 송아지고기와 고기순대를 쿡쿡 찍어 먹는 모습은 꼴단을 코로 휘감아 통채로 입에 넣고 삼키는 코끼리를 방불케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엘레훤트》(코끼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것이 우람진 체구와 용모에 잘 어울렸다. 본인도 그렇게 불리우는것을 불쾌해하기는 고사하고 흡족하게 여기였다.

그는 작년에 쇄빙선으로 40년이상이나 써먹은 함선을 파철값으로 넘겨받아 도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선체에 쓴 시뻘건 녹을 죄다 벗겨내고 땜질을 하고 연마를 하고 뼁끼칠을 한 다음 대구경함상포 4문과 고사포 6문을 설치하였다. 거기에 어뢰발사관과 폭뢰투하기까지 놓으니 보기에도 으리으리하고 화약내가 물씬 풍기는 신형구축함으로 변모되였다.

장인은 자기의 걸작품에 《엘레훤트》라는 이름을 달아 령토팽창을 위한 전쟁열에 들뜬 이스라엘에 팔아먹었다.

한창 중동전쟁을 치르던 이스라엘은 《엘레훤트》호를 싸이드만에 급파하였다. 기세등등하여 돌아치던 에짚트와 수리아의 어뢰정들과 소포정들은 신형구축함의 함포사격에 얻어맞고 격침격파되였다. 코끼리가 풀밭에 뛰여드니 뭇짐승들이 혼비백산하여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밟혀죽는셈이였다.

《보라구! 나에겐 당장 전기로에 처넣을 파철더미로 신형구축함을 만드는 재간이 있단 말이야!》하고 장인은 기고만장해서 부처에게 큰소리를 쳤다. 《〈엘레훤트〉호가 아랍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있어. 이스라엘의 수상과 국방상이 나에게 감사전문을 보내왔네. 그저 감사전문이 아니라 요청문이지. 〈코끼리〉를 한마리 더 보내달라는거야.

돈벼락을 맞게 됐네. 자네도 나와 손잡고 이 일을 하지 않겠나? 군복을 입고도 돈을 벌줄 알아야 해! 난 돈을 벌려고 군복을 입었단 말이야. 돈이 많아야 우리 해군이 세계1위의 지위를 계속 고수할수 있어. 물론 나도 그통에 잘사는거지. 자네 내 대리인이 되여주게.》

《푸에블로》호의 함장으로 갓 임명된 부처는 그 유혹적인 제기에 응할수 없었다.

그런데 두어달이 지나서 비통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싸이드만에서 제왕행세를 하던 《엘레훤트》호가 함포사거리밖에서 불시에 날아든 세개의 비행물체에 얻어맞고 침몰된것이였다. 이스라엘군부가 발표한 조사자료에 의하면 정체불명의 비행물체인즉 에짚트해군의 소형해상미싸일정이 발사한것이였다. 어뢰정을 개조한 이 함선은 너무 작아서 《꼬마르》라고 불렀는데 모기라는 뜻이였다.

그런즉 싸이드만의 코끼리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모기에게 물려서 죽은셈이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고 절통하고 기막힌 일이라구야. … 하느님맙소서.

부처는 허둥지둥 가시집으로 달려갔다,

수중고혼이 된 자기의 걸작품을 놓고 통분하여마지않을 장인을 위로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장인은 희색이 만면해서 거품이 부글거리는 샴팡주병을 들고 사위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보게, 자네 희소식을 들었나? 〈엘레훤트〉호가 침몰된 소식 말일세.》

부처는 아연실색해졌다.

가시령감이 너무 절통하던 나머지 머리가 돌지 않았는지 의심이 될 지경이였다.

《무슨 말씀인지?… 어째서 그게 희소식이란 말입니까?》

장인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싱글벙글하는데 금이발들이 즐겁게 번쩍거렸다.

《흐흐, 그런게 희소식이 아니면 뭐가 희소식이겠나. 드디여 해상미싸일전의 서막이 열렸단 말이야. 그걸 축하해서 한잔 들자구.》

부처는 아직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아 얼떨떨한 상태에서 잔을 받았다.

장인은 그의 잔에 샴팡을 부어주었다. 그러고나서 자기는 병나발을 불었는데 매우 흡족할 때 하는 행동이였다.

《나의 코끼리를 물어죽인 모기에는 쏘련이 최근에 개발한 신형미싸일이 장착되여있었다누만. 그게 바로 백리밖에서도 해상목표를 정확히 타격할수 있는 자체유도식해상미싸일이라는거야.

로씨야놈들이 비밀리에 이런걸 개발했는데 우리 미국은 해군력이 세계최강이라고 뽐내기만 하면서 그것두 모르고있었으니 청맹과니였어. 우리도 빨리 해상대해상미싸일을 개발해야 해. 나는 어뢰정들을 미싸일정으로 개조하는 동시에 구축함이나 순양함들에도 미싸일발사장비를 하자는거야.

그러자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야지.

해군은 응당 그에 필요한 자금을 내라고 국방성과 국회에 압력을 가해야 해. 그렇게 되면 나에겐 방대한 량의 주문이 들어올거네. 그러지 않아도 군수복합체들이 돈냄새를 맡고 벌써부터 나에게 추파를 던지고있네.》

부처는 그제서야 장인이 희열에 넘쳐 금이발을 번쩍거리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장인의 걸작품은 수중고혼이 됐지만 장인에게로 흘러드는 돈줄이 끊어진게 아니였다. 이거야말로 화가 복이 된셈으로 오히려 묵돈을 챙길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된것이였다.

장인은 또 부처를 유혹했다.

《나와 손잡고 판을 크게 벌리자구. 늘씬하게 돈벼락을 맞아보잔 말일세.》

군복을 입은 수전노인 장인에게서 부처는 혐오감을 느꼈다.

《장교이며 함장인 나의 명예를 존중해주기 바랍니다.》

장인은 앙천대소했다.

《그따위 명예가 무슨 필요가 있나? 황금이 만능이야! 세상이 그렇게 돼먹었어.》

부처는 분노해서 장인을 쏘아보았다,

《군복을 입은 우리가 시정배들처럼 제 주머니나 챙기려고 한다면 세계를 제패하려는 대아메리카의 전략은 누가 실현하겠습니까? 그 전략이 실현되면 돈이나 재산따위는 저절로 생깁니다.》

장인은 철부지를 대하는듯 한 눈길로 부처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이 사람아, 돈이 없이 어떻게 세계를 타고앉는다는거야? 돈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거야. 돈을 벌자면 머리를 써야지.》

장인은 손가락으로 호박통처럼 길둥그렇고 번들거리는 자기의 대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배너〉호와 자네의 〈푸에블로〉호도 내가 낡은 수송선을 개조한거야. 거기서 절약한 비용이 적지 않아.》

부처는 어마지두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런즉 꿩먹고 알먹기지. 퇴역시켰던 낡은 수송선들을 전자정탐선으로 개조하면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세.》

우선 건조비가 적게 든다. 또한 겉보기에 의심을 사지 않을뿐더러 국제보험에 든 배들이니 만약의 경우 파손이나 침몰이 돼도 리득을 보게 된다.

《자네가 이번에 임무수행을 잘하면 나는 〈푸에블로〉호와 같은 전자정탐선을 열다섯척이나 더 주문을 받아 건조하게 될것인즉…》

부처는 경멸감을 표시하며 장인의 말꼬리를 잘라버렸다.

《또 돈벼락을 맞게 된다는거겠지요.》

그제서야 장인은 정색해져서 본심을 드러냈다.

《이보게, 그 돈이 어디에 쓰일건가? 바로 더 많은 현대적인 군함을 만들어 5대양을 다 우리 미국의 고요한 호수로 만들자는거야. 그때에 가서 나는 해군장관이 될수도 있지.》

해군장관은 작전과 관련이 없이 주로 해군의 무장장비를 주관한다. 그러고보니 장인은 구접스레 낡은 상선에 뼁끼칠을 해서 팔아먹는 협잡군이 아니라 미국과 해군의 장래를 생각하고 그에 결부시켜 자신의 목표도 크게 세운 야심가이고 정력가였다.

부처에게도 남아로서, 해양대국인 대아메리카합중국의 해군장교로서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해군장교들이면 누구나 바라는 해군제독이 되여 함대를 거느리는것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목표를 더 높이 세워 해군작전부장이 되고싶었다. 그래야 장차 해군장관이 될 장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었다.

장인은 벌써 해군장관이 되기라도 한듯이 엄엄하고 거만한 자세로 훈시했다.

《자네는 이번에 자기의 실력과 용맹을 과시해야 하네. 내 일본주둔 미함대사령관에게 자네를 잘 돌봐달라고 전신으로 부탁을 했네.》

부처는 반신반의했다.

《아버님이 죤슨제독을 아십니까?》

장인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알구말구. 해군제독들이야 다 내 신세를 지고있으니까.》

일본주둔 미함대사령관인 프랑크 에이 죤슨소장은 부처에게 있어서 이제 진행하게 될 특수작전상의 직속상관이였다.

부처는 이에 대하여 안해에게 다 말해주었다.

안해가 남편에 대한 긍지와 기대를 가지게 해주고싶었던것이다. 하지만 안해는 세계제패니, 해군대장이니, 해군제독이니 하는 어마어마하고 요란한 소리를 귀등으로 들어넘겼다.

《아유, 천진도 해라. 그게 어디 바란다고 되는거예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어요.》

《글쎄 두고보라니까. 나는 기어코…》

《됐어요. 난 당신이 위험한 일에 나서는걸 바라지 않아요. 경치좋은 이 백사장에 화판을 세우고 우리 애들이 요트를 타고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그림이나 그리란 말이예요.》

부처는 완강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세계지도를 새롭게 그리고싶소. 이번 작전수행으로 그 길을 확고히 열겠소. 그게 나자신만이 아니라 당신과 아이들을 위한 일이요.》

남편을 설복해내지 못한 로즈는 한숨을 쉬였다.

《그렇다면 투자를 해야겠군요. 돈이 얼마나 요구되는가요?》

부처는 빙긋 웃으며 거절했다.

《필요없소. 난 이번 작전기간에 해군제독과 맞먹는 봉급을 받게 되오. 승무원들에게 3년간 지불할 봉급의 전량을 이미 배에 실었소.》

그 액수가 대단했다. 겉으로 표현은 삼가했지만 부처는 은행가나 재벌이 된듯 한 심정이였다. 역시 대의명분에는 돈이 절로 붙어다니는것이다.

《작전이 성공하면 승급을 하거니와 상금도 받게 되지.》

로즈는 기뻐하기는 고사하고 근심스러운 기색이였다.

《돈을 많이 준다는건 그만큼 위험하다는거죠.》

《녀자들이란…》

부처는 태연히 웃으며 활기있게 력설했다.

《행운이 뭐 저절로 찾아드나. 바랄게 아니라 쟁취해야지. 그러자면 어차피 모험도 해야지. 그래야 우리의 요트는 보물섬에 가닿게 되거던.》

《그렇게만 된다면 좋으련만…》

《걱정하지 마오. 난 시험항해기간에 〈자유의 녀신〉상을 축소한 모조품을 만들어 함장실에 놓았소. 그건 당신을 모델로 한거요. 태평양을 건너 멀리에 가도 나를 지켜줄 수호신이고 호신부지.》

안해는 흐뭇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불쑥 다짐을 받으려들었다.

《당신 하와이나 일본에 들리면 처신을 바로하세요. 바람을 피우지 말란 말이예요.》

《별소릴 다하는군.》

《물론 내가 없는 침대가 허전하겠지요. 그래서 내가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 선물이 바로 크기와 모양과 색갈까지도 홀랑 벗은 녀인그대로인 고무인형이였다. 전기코드를 련결하고 껴안고 자면 따끈따끈한게 실지로 안해와 함께 자는것 같은감이 들었다. 석달이 지난후 시험항해를 끝내고 안해와 작별한 부처는 《푸에블로》호를 몰고 태평양을 건느다가 하와이제도의 진주만에 들렸다. 거기서 항해피로를 풀며 연유와 청수를 보충하고 소수리를 한 다음 태평양을 계속 횡단하여 일본 도꾜만의 요꼬스까항으로 가는중이다.

선하품을 하며 함장실을 나선 부처는 곁에 있는 장교침실의 문을 열었다. 손전지로 비춰보니 두자리가 다 비였다. 하나는 항해장의 자리고 다른 하나는 연구장교의 자리다.

해리슨이 당직근무도 서지 않고 어딜 갔나?

부처가 의아해하는데 맞은편에 있는 정보실에서 인기척이 났다. 부처는 정보실의 문을 밀었다. 안으로 걸어서 열리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신경질을 부리며 문을 쾅쾅 두드렸다.

《나 함장이다! 문을 열라!》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부처는 무춤 굳어졌다. 정보실의 긴장하고 사색적이고 탐구적인 분위기에 일순 압도된것이였다. 분견대원들이 레시바를 끼고 전파도청기재앞에 앉아있었다. 찌륵- 찌르륵- 하고 전파음이 울리고 영상판에서는 전파들이 괴이한 곡선을 그리고있었다.

전파도청작업을 지휘하는 해리슨대위는 중요한 연구사업에 심취된 박사처럼 자못 진지하고 거룩한 기색이였다. 그는 문밖에 서있는 함장을 돌아보더니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 발자국소리라도 날세라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손을 입에 대고 소곤거렸다.

《함장님, 우린 벌써 일에 착수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그는 암호풀이를 한 무전문을 내밀었다. 거기엔 《푸에블로》호가 요꼬스까항에 들어오고있다는 내용의 보고가 실려있었다.

《이건 요꼬하마근방에 있는 미해군안전단에서 해군제독에게 보내는 전문입니다.》

부처는 두눈을 흡떴다.

《우리가 벌써 걸려들었다는건가?》

《예. 내가 우정 전파를 흘렸더니 그것을 해군안전단에서 제꺽 잡아 분석했지요. 그들이 그 결과를 해군제독에게 보고하는걸 내가 도청했구요. 다른 전파도 몇개 잡아서 해득했는데 보시렵니까?

부처는 거절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소. 입항한 다음에 보기요.》

해리슨을 되게 추궁하려던 부처는 더 말을 못하고 수밀문을 조심스레 닫고서 비좁은 구간을 지나 갑판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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