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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장과 전대장, 정치부함장이 먼저 식사를 하고 얼굴이 불깃불깃해져서 지휘소에 올라오자 조용순은 함장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출항하기 전부터 집요하게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에 옴한채 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함선이 파도머리우에서 곬으로 툭 떨어지는 충격에 그만 발을 헛디디였다.

앞으로 꼬꾸라지려는 찰나에 제꺽 란간을 꽉 틀어잡았으니 다행이지 이마가 깨질번 했다.

그는 자기가 별치 않게 여기였던 외국선박이 문제시되여 총참모부에서 부처장이 내려오고 전대장까지 승선하여 수색작전에 착수하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수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태연자약하게 행동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남들이 비난의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는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식당안에 들어가니 방금 근무를 교대하고 와서 2차로 식사를 하는 해병들이 즐겁게 수저를 놀리고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매울사한 음식냄새가 풍기는 식당은 명절분위기였다.

음식을 차린 식탁을 마주하고 기다리던 함장이 소리쳤다.

《부함장동무! 빨리 오라구. 가오리탕이 식겠소.

여기에 동무가 먹고싶어하던 상어회도 있소.》

그 말을 들으니 조용순은 가뜩이나 화끈거리던 얼굴이 막 타는것만 같았다.

함장이 야속하게도 경비근무에 진입한 첫날에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던것이다. 그때 자기가 문제의 그 외국선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공연히 상어와 가오리만 밑졌다고 두덜거린게 몹시 후회되였다. 혹시 그 일을 해병들이 알면 자기를 어찌 보랴싶어 그들의 눈치를 살피였다.

다행히도 그들은 식사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함장은 양념을 버무려서 시뻘건 상어회를 한저가락 집어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서 드오. 동무가 좋아하는 상어회라니.》

젠장, 또 그 소리군. 이거 혈압이 오르는걸.

조용순은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지만 기분이 잡쳐서인지 도무지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엄장석은 별스레 심각해진 상대방의 안색에 그제서야 주의가 미쳤다.

《왜 그러오? 어디 말짼가?》

《저…》

뜨거운 국물을 미처 삼키지 못한 상태에서 응대하려던 조용순은 그만 개키였다. 고추가루를 듬뿍 친 국물이 코안을 찔렀다. 급기야 기침이 터져나오려고 했다. 그는 숟가락을 떨구며 손바닥으로 입과 코를 싸쥐고 갑판에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보호란간을 붙잡고 요란하게 줄기침을 터뜨렸다. 손수건으로 지저분해진 입주변을 닦아내던 그는 누군가 뒤에서 자기를 붙잡아주기에 고개를 돌렸다. 뒤따라나온 함장이 근심어린 기색으로 물었다.

《왜 그러오? 멀미가 나오?》

조용순은 자기의 얼굴이 멀미를 할 때처럼 해쓱하게 질리고 창백해진줄은 모르고 기분이 상해서 짜증을 냈다.

《제발 나를 좀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하여간 주의하오. 갑판이 몹시 미끄러운데 자칫하면 바다에 떨어질수 있소.》

《함장동지두… 내가 무슨 신입병사입니까?》

상대방이 역정을 쓰자 엄장석은 무안해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허, 거 동무 별나게 구는구만.》

조용순은 함장에게 자기의 고민거리를 툭 털어놓고싶었지만 정작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꺼내물고 라이터를 켰다. 해풍이 세차서 라이터불이 인차 꺼졌다. 왼손으로 바람을 가리우고 겨우 불을 붙였다. 여느땐 달콤하고 구수하던 담배연기가 쓰겁기 그지없었다. 그는 한모금밖에 빨지 않은 담배를 바다에 내던졌다.

어째서 내가 그 외국선박을 각성있게 대하지 못했을가? 그러고도 내가 옳았고 함장동지가 공연히 의심을 한거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었지. 왜 나만이 옳다는 식으로 겸손치 못하게 처신했을가? 아무렴 내가 함장동지보다 정황판단을 잘할수 있나.

그는 자책에 잠겨 그저 발가는대로 걸었다.

파도가 사납고 얼어붙은 갑판은 미끄러웠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민에 잠긴채 비칠거리며 걸었다.

이건 단순히 정황판단능력에 관한게 아니라 전쟁관점에 관한 문제다. 나는 별일이 없을거라고 그저 좋게만 생각하면서…

무엇엔가 발이 걸채인 그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날쌔게 몸을 돌리며 일어나려다가 발을 헛디디며 모짜로 자빠졌다. 눈앞에서 와지끈! 번개불이 일었다. 그는 앗!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오른쪽 관자노리를 싸쥐였다.

《부함장동지!》 하고 다급히 웨치는 형길의 목소리가 꿈속에서처럼 아슴푸레 들려왔다.

조용순은 깜박 의식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살펴보니 자기가 방사폭뢰초소의 대피실에 누워있었다. 오른쪽 관자노리가 쿡쿡 쑤셨다. 피가 흘러서 끈적끈적한 거기에 뭔가 잔뜩 붙어있었다. 한쪽옆을 조심스레 떼보니 피에 젖은 담배부스레기였다. 누군가 지혈을 시키느라 타박상을 입은 자리에 담배가루를 붙여준 모양이다.

전투항해를 하는데 이러고있으면 되나.

자리를 차고일어나던 그는 오른쪽발목이 뚝 떨어져나가는듯 한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항해용솜옷의 바지가랭이를 가까스로 걷어올리고 투박하나 든든하게 만든 항해용털구두를 벗고보니 발목이 퉁퉁 부었다. 물고기처리작업을 할 때 미끄러져내리는 발판을 막고 상한적이 있는 발목이였다. 그때는 동지들을 위해서 부상을 당했는데 오늘은 고민하다가 부주의로…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문이 다급히 열리더니 형길이가 위생지도원을 달고 들어왔다.

위생지도원은 관자노리에 입은 상처에 먼저 손을 댔다. 피와 함께 얼고 말라서 달라붙은 담배가루를 조심조심 떼내고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접은 붕대를 대고 반창고로 고정시켰다.

조용순은 눈을 감고 치료를 받으면서 형길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때문에 그렇게 된겁니다. 내가 포탄고에서 예비로 쓸 방사폭뢰들을 꺼내놓고 기름을 닦아내는데 부함장동지가 미처 보지 못하고 거기에 걸쳐서 넘어졌습니다.》

조용순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인했다.

《아니, 잘못은 나에게 있소. 내가 그만 눈이 멀었던거요.》

위생지도원은 계속하여 발목을 치료했다. 발목을 몇번 당기고 침질을 했다. 그래도 부은게 내리지 않고 그냥 쿡쿡 쑤셨다. 위생지도원은 몹시 난감해했다.

《이거 금이 간것 같습니다.》

《뭐요?》

조용순은 눈앞이 아뜩해졌다.

뼈는 차라리 부러지는게 낫지 금이 가면 더 말썽이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위생지도원은 형길의 방조를 받아 판자쪼각을 얻어다가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안정하십시오. 움직이면 안됩니다.》

조용순은 너무 애가 타서 속이 뒤집히는것 같았다. 그는 홰홰 손을 내저었다.

《아, 알겠소. 동무들은 빨리 초소에 돌아가오.》

두 해병을 억지로 떠밀어내보낸 그는 주먹으로 바닥을 깨지라고 내리쳤다.

《이게 무슨 꼴이람, 전투도 하기 전에 부상을 당하다니.…》

함장이 부리나케 뛰여들었다.

조용순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얼른 눈을 감았다. 엄장석은 부함장을 지켜보다가 나직이 한숨을 쉬며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손으로 턱주걱을 문지르며 혀차는 소리를 냈다.

《쯔쯔… 일두 참… 부함장동무, 너무 속을 쓰지 마오. 동문 너무 심하구만. 마음을 푹 놓고 안정하오. 다 제대로 될거요.》

알섬까지 곧추 올라간 함은 다시 지그자그로 해상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박철호는 보조지시기의 영상판을 긴장하게 지켜보았다.

삐 삐!

갑자기 보조지시기에서 잡음이 울리고 영상판의 화면이 이지러졌다. 파도모양의 문양이 퍼져나가는가 하면 괴이한 형태의 곡선들이 언뜻언뜻 어지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군 한다.

전대장은 그걸 보고서도 태연히 담배를 꺼내 부처장에게 권했다.

박철호는 얼른 내부통화기로 탐지분조장을 찾았다.

《탐지초소! 영상신호가 왜 이 모양인가?》

《지금 원인을 찾는중이다.》

박철호는 조급해서 전대장을 돌아보았다.

전대장과 부처장이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보아하니 그들은 이런 정황이 생길거라고 예견한것 같았다.

탐지분조장이 보고했다.

《지휘소! 점검결과 탐지기는 정상이다. 어디선가 장애파가 들어오고있다.》

김철진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럴테지… 그놈의 작간일거요.》

그놈이라면 뻔했지만 박철호는 명백히 알고싶어서 꼬집어물었다.

《우리가 찾고있는 선박을 두고 하시는 말입니까?》

김철진은 장담했다.

《그렇소. 노린내를 풍기는걸 보니 그놈이 감질이 나서 또 우리 령해에 기여든게 분명하오. 해도를 가져오시오.》

박철호는 해도를 펼쳤다.

《동무네가 해상경비근무에 진입한 첫날 정체불명의 외국선박을 발견한 장소가 어디요?》

《여깁니다.》

《그러니까 제딴에 감시를 따돌리고 군항이 얼어붙은걸 기회로 다시 기여든게 분명해. 함장을 부르시오.》

휴식을 하다가 호출신호를 받은 함장이 부리나케 달려올라왔다.

《부함장동무는 좀 어떻소?》

전대장의 물음에 엄장석은 난처해서 어물어물 대답했다.

《발목에 금이 갔는데… 아직은 움직이기 곤난합니다.》

전대장은 부처장의 동정을 살피고나서 맹랑한 기색으로 입을 다셨다.

《평소엔 난다긴다하던 사람이 정작 전투를 앞두고 그게 뭐요? 무슨 생각에 그리두 옴해빠졌기에 제풀에 넘어져 발목을 상해?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나?》

《저…》

사연을 말하려던 엄장석은 입을 벌린채 굳어졌다. 화제에 오른 부함장이 부목을 댄 다리를 가까스로 끌면서 지휘소에 들어섰기때문이였다. 그 몸으로 지휘소에 올라오려니 아픔을 참으며 얼마나 모지름을 썼는지 마마자국이 유표한 그의 얼굴엔 비지땀이 흘렀다.

김철진은 엄한 눈초리로 그를 피뜩 돌아보고나서 함장에게 발생한 정황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었다.

《이제부터 전투항해요.》

짤막한 그 말에 지휘소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전투항해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전투항해다. 훈련이 아니라 전투다. 피같이 진한 땀을 아낌없이 뿌리며 훈련을 하고 또 하던 나날에 누구나 고대하여온 결전의 시각이 드디여 눈앞에 도래한것이였다.

《원산앞바다를 향하여 전속으로!》

전투항해를 알리는 배고동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수색을 위해 지그자그로 항해하던 구잠함은 즉시 직선침로에 들어섰다. 주기관의 동음이 급기야 높아졌다. 함은 결승선을 눈앞에 둔 준마처럼 배머리를 번쩍 추켜들고 파도를 뚫고 물갈기를 하얗게 날리며 전속으로 내달렸다.

최정식대좌가 여전히 해도를 굽어보면서 짤막하게 지시했다.

《수색조를 조직하시오.》

엄장석은 피뜩 고개를 돌렸다.

이를 사려물고 비지땀을 흘리며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부함장과 먼저 눈길이 마주쳤다. 조용순은 돌격명령을 받은듯이 얼른 한걸음 나서려다가 비칠거리며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바로잡았다. 꽉 다문 그의 입술이 안타까움과 자신에 대한 환멸로 푸들푸들 떨렸다.

아버지처럼 영웅적인 위훈을 세울수 있는 이런 기회, 이런 순간에 나는 왜 입이 얼어붙었는가?

수색조를 이끌고 본때를 보일 시각을 앞두고 다리부러진 장수신세가 됐으니 이 일을 어이하면 좋단 말인가?

조용순은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입술을 움직이면 자신에 대한 타매와 저주가, 통곡이 터져나올것만 같아서 그는 입술을 더 꽈악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박철호는 함장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수색조는 제가 책임지고 조직하겠습니다. 제가 조장입니다.》

함장만이 아니라 최정식대좌와 전대장도 미더운 눈길로 자진해나선 정치부함장을 바라보았다.

흔히 전투는 시가전이 어려운 법이다. 함선수색전투는 시가전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다. 파악없는 적함에 뛰여오르는건 범의 굴속에 들어가는거나 마찬가지다. 다시말하여 결사의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적함을 수색할수 없다.

최정식대좌는 물었다.

《수색조를 어떻게 조직하겠소?》

《적함의 주요초소들을 수색장악할수 있게 갑판장과 기관조장, 포장, 수뢰수를 조에 포함시키겠습니다.》

박철호는 심장이 튀여나올듯 높뛰던 벅찬 흥분이 가라앉는것을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기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좋소. 놈들이 순순히 응하면 총을 쏘지 마시오. 불응하면 본때를 보여주라구. 먼저 지휘소를 장악하고 놈들을 투항시킨 다음 두손을 묶고 눈을 싸매여 갑판에 죄다 끌어내시오. 해도와 당직일지를 비롯한 문건들을 압수하시오. 그래야 적함이 우리 령해에 기여들어 정탐행위를 한걸 증거로 쥘수 있소.》

《알았습니다.》

《놈들이 필사적으로 반항할수도 있소. 공중과 해상에서 놈들의 지원세력이 달려들수도 있고…

그러면 어디 한바탕 속이 후련하게 싸워보기요.》

습격조원들의 당원증을 받아서 바쳐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진정됐던 박철호의 가슴을 다시 흔들었다. 가슴에 품고있는 당원증을 저도 모르게 만져보는 그의 눈앞에는 전화의 나날 기뢰를 밀고 적함을 향하여 나아가던 해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그들처럼 조국과 인민을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야 할 판가리결전의 시각을 앞두고 전사는 당원증을 조직에 바치게 된다.

전쟁시기가 아닌 평화시기에 이런 순간을 맞이하는 전사는 행복하다. 지금껏 훈련장에서 흘려온 땀방울들이 그대로 위훈으로 빛을 뿌릴수 있게 되였기에… 나는 결전을 치렀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게 되였기에…

비장하고 전투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흐느낌소리가 났다.

박철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떨군 부함장이 괴롭게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꽉 깨문 그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장석이 나직하게 지시를 주었다.

《부함장동문 해도작업을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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