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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잠함은 연유와 윤활유, 청수보충을 끝내자마자 즉시 출항하였다. 총참모부의 작전안에 따라 이미 전투항해준비를 갖추고 대기중이던 이곳 군항의 경비함 46호도 닻을 올리고 구잠함의 뒤를 따라섰다. 파랗게 얼어붙은 방파제안의 물면은 마치도 넓은 판유리를 깔아놓은것 같았다. 날카로운 배머리에 부딪친 얼음판은 쩌저적! 하고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조금만 더 두껍게 얼었더라면 얼음을 까고 배길을 여느라 역사질을 할번 했다.

련속 들이치는 파도에 날린 물보라가 떨어지기 바쁘게 얼어붙고 또 얼어붙어서 방파제는 기다란 얼음산이 되여버렸다.

함은 미속으로 얼음장을 까고 헤가르며 조심스레 방파제끝을 돌아섰다. 얼음판이 사라지고 파도가 줄지어 밀려들었다. 함은 배머리를 추켜들며 파도와 사나운 해풍을 맞받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휘소에서 선수와 선미갑판을 번갈아 굽어보며 출항작업을 긴장하게 지휘하던 엄장석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해도실에서 나온 부함장이 그에게 말했다.

《전대장동지가 기다립니다.》

엄장석은 몸에 밴 습관대로 차림새를 바로하고 해도실에 들어갔다.

해도실에서는 전대장이 최정식대좌에게 해도를 손가락으로 쿡쿡 짚어보이며 무슨 설명을 하고있었다. 함장과 부함장이 들어오자 김철진은 고개를 돌렸다.

《정치부함장은 어디에 있소?》

《선수갑판에 있습니다.》

《그 동무도 데려오시오.》

고도의 긴장과 민첩성을 요하는 입출항때마다 박철호는 선수갑판이나 선미갑판에 내려가 해병들과 함께 바줄을 당기거나 건늠다리를 끌어올리군 했었다. 오늘은 얼음판때문에 사고가 날수 있어 선수갑판에 갔던것이다.

선수작업조와 함께 갑판을 정리하던 박철호는 호출을 받고 지휘소에 달려올라가 해도실에 들어갔다. 김철진은 도착보고를 하려는 그를 손짓으로 만류하고 근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작전토의를 합시다.

먼저 총참모부 부처장동무가 정황을 통보하겠소.》

모두들 긴장한 눈길로 최정식대좌를 바라보았다.

최정식은 작전가방에서 문건을 꺼내며 말했다.

《동무들이 해상경비근무에 진입한 첫날 우리 령해에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외국선박을 발견하고 즉시 상급지휘소에 보고한건 아주 잘한 일입니다.》

엄장석은 긴장을 풀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 일이 석연치 않아서 체기를 받은듯 여태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던것이다. 그것이 이 순간에야 쑥 풀려 내려가는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 부함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총참모부에서는 최근 놈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동해에서 정탐행위가 있을수 있기에 동무들의 보고에 각별히 주의를 돌렸습니다. 그 보고내용을 즉시 해당 단위들에 통보하여 우리 령해에 그러한 선박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집중감시를 조직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깊은 밤중에 청진앞바다에 정체불명의 선박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전파탐지초소에서 감시한데 의하면 그 선박은 쏘련의 뽀씨에뜨만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우리 령해에 들어왔는데 한시간후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보면 여러 나라의 어선들이 모여드는 오호쯔크해에 물고기잡이를 갔다오다가 항로가 미실되여 우연히 우리 령해에 들어왔을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파탐지초소에서는 경각성을 더욱 높이고 감시를 계속했습니다.》

온몸이 귀가 되여 듣던 박철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엄장석의 울대뼈도 꿈틀 오르내렸다.

《그 배는 이튿날 다시 청진수역에 나타났습니다.

공해와 령해사이를 들락날락하다가 어랑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쪽에 있는 전파탐지소에서는 갑자기 전파장애가 생겨 감시가 곤난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 시각 어로작업을 하던 고기배가 국적을 알리는 기발을 올리지 않은 외국선박이 나타났다고 무선으로 통보한 자료가 총참모부에 올라왔습니다. 전파장애는 정체불명의 그 선박이 놓은것으로 추측됩니다.

1월 20일에는 마양도앞바다에서 이 배가 발견되였습니다. 선박은 안성갑으로부터 8. 2마일되는 수역에까지 들어왔습니다. 해상경비근무를 수행하던 경비함이 그쪽으로 기동하자 선박은 재빨리 공해로 나갔습니다.

총참모부에서는 여러차례 우리 령해에 들어왔던 정체불명의 외국선박에 대하여 최고사령부에 보고하였습니다.》

모두들 자세를 바로잡으며 최정식대좌를 지켜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나라의 배든지 관계없이 우리 령해에 들어오면 엄격히 단속하며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했을 때에는 즉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교시대로 해군에서 빨리 그 배의 국적을 확인하고 무엇때문에 우리 령해에 들어왔는가를 밝히라고 우리에게 직접 임무를 주시였습니다.》

청년장군이신 김정일동지께서 이번 작전을 친히 지휘하고계시니 모두들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선박이 미제무장간첩선일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것이 확인되면 공군과의 협동작전으로 나포하라고 명령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그러면 즉시 전쟁접경의 위험한 정세가 조성될수 있으니 그에 대처할 만단의 준비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전쟁접경이라니?!

모두들 정신을 번쩍 차렸다.

최정식은 손으로 군살이 한점도 없는 칼날같은 턱을 매만지며 계속했다.

《남의 나라 령해에 꺼리낌없이 기여들었다가 징벌을 받으면 사죄할대신에 보복을 하겠다고 덤벼드는게 놈들의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4년전에 있은 바크보만사건의 교훈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사건인즉 미제가 북부윁남의 바크보만에 침입시킨 저들의 함선을 윁남측이 먼저 공격했다는 당치 않은 구실로 북부윁남에 대한 대규모적인 공습을 감행하고 남부윁남에서의 전쟁을 북부에로 계단식으로 확대한 사건이였다. 윁남에서는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있었다.

《까놓고 말하면 이번에 동해에서 바크보만사건이 되풀이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린 전면전쟁을 각오하고 이 작전을 수행해야 합니다. 놈들의 있을수 있는 도발에 대처하여 김정일동지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우린 어뢰정대와 항공대를 동원하여 협동작전을 하게 됩니다.

주역은 동무들이 해야 하오. 수색을 빈틈없이 해서 정체불명의 함선을 적발해내야지 놓쳐버리면 이 작전은 무용지물이 되고 조국의 안전에 엄중한 후과가 미치게 됩니다.》

박철호는 심장을 치는 강한 충격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벅찬 희열이 전률을 일으킨것이였다.

아! 기다리고기다리던 때가 왔구나. 훈련을 하고 또 하며 그리도 고대하여마지않은 전투항해를 드디여 하게 됐구나!

심장이 흉벽을 막 쳐서 도무지 진정하기 어려웠다. 곁에서 몹시 흥분한 함장의 숨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의 얼굴엔 나라의 안전과 관련된 이 중대한 임무를 기어이 수행할 각오와 결심이 어려있었다. 부함장은 자책이 짙게 어린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불편한 숨소리를 냈다.

부처장의 정황설명이 끝나자 김철진전대장은 해도에 눈길을 준채 물었다.

《동무네가 해상경비근무에 진입한 날 그 선박이 왜 우리 령해쪽으로 접근했는가? 우선 이 문제부터 풀어보기요.》

그러지 않아도 지금껏 그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굴려본 엄장석이 즉시 대답했다.

《무언가 그 선박의 구미를 돋굴만 한것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게 뭔가 말이요?》

《특수한 전파가 새여나간것 같습니다. 선박이 그걸 포착했는데 신호가 약해서 그쪽으로 가까이 접근하려고 한게 아닐가요?》

《정치부함장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저도 그렇게 봅니다.》

《그렇다면 그 선박이 공해로 나가 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있소?》

《그 선박은 원산만이 아니라 우리의 주요군항들과 전파탐지소들에 다 흥미를 가지고있는것 같습니다. 그날 우리 함에 발견된 선박은 공해로 나가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시를 따돌리고 일정한 시일이 지난 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볼장을 보자는게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김철진은 웬일인지 주눅이 들어 고개를 떨구고있는 부함장을 바라보았다.

《부함장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조용순은 흠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동닿지 않게 자기비판을 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조용순은 얼굴을 붉히였다.

《저는 평화적기분에 사로잡혀서 그 선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

김철진은 젊은 부함장이 주눅이 든 까닭을 이제야 알았다.

《교훈을 찾소. 조국의 안녕을 지켜선 우리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게 있을수 없소. 모든것을 전쟁관점에서 대해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김철진은 미더운 눈길로 함장과 정치부함장을 바라보았다.

《동무들이 옳게 보았소.

나는 그날 지휘소에 올라온 동무들의 보고를 받자마자 문제의 그 시간에 어느 구분대, 어느 함선이 전파를 날렸는가를 알아보았소. 우려하던바대로 최근에 특수무기를 장비한 함선이 전파탐지기를 수리하다나니 불가피하게 전파를 날렸다는거요.》

전파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는 이처럼 엄중했다.

《나는 부처장동무와 다음과 같은 작전안을 세웠소.

우선 정체불명의 그 선박이 다시 원산만에 들어올수 있다고 보고 여기를 중시하자는거요.》

김철진은 연필로 그 수역을 가리켰다.

《그 선박이 벌써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원산만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남쪽으로 내려올수도 있소. 그 경우를 예상하여 우린 북쪽으로 올라가며 수색하자는거요. 항로를 이렇게 잡으시오.》

김철진은 해도에 자를 대고 연필을 죽죽 그으며 지그자그로 항로를 표시했다. 숙련될대로 숙련된 솜씨였다. 그러면서 모를 박아 강조했다.

《탐지기감시와 육안감시를 배합하오. 감시근무를 주야간 교대로 조직하여 순간도 빈틈이 생기지 않게 하시오.》

엄장석은 즉시 부함장과 감시근무를 증강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하면서 경비함이 제대로 따라오는가를 돌아보며 기관실에 지령을 주어 속도를 조절하군 했다.

경비함은 구잠함보다 속도가 떠서 미처 따라오지 못해 애가 났다. 최정식은 경비함을 지켜보다못해 한손을 홱 내저었다.

《안되겠소. 전대장동무, 우리 알섬우에로 먼저 곧추 올라가기요. 경비함은 천천히 뒤따라오면서 알섬아래쪽을 수색하라고 하오.》

《알겠소.》

박철호는 교양실에 달려내려가 선동문과 전투속보를 써붙이고나서 전투초소마다 직접 찾아다니며 조성된 정황과 전투임무를 알려주고 해병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려고 먼저 선수갑판에 나갔다.

배머리에 부딪쳐 산산쪼각난 파도가 물보라로 흩날려 선수갑판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끄떡없이 방사폭뢰발사기곁에 지켜서서 긴장하게 해상을 감시하고있는 김형길의 모습은 볼수록 미더웠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그는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전대장동지와 총참모부 부처장동지가 왜 우리 함에 올랐습니까?》

박철호는 조성된 정황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었다.

형길의 두눈은 불을 켠듯 번쩍거리고 얼굴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숨소리도 급기야 높아졌다.

《정치부함장동지, 목숨을 내대고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저를 선참으로 불러주십시오.》

《알겠소. 우리가 여태 기다려온 복수의 기회가 생길수도 있소. 그러면 본때를 보여주자구.》

박철호는 계속하여 함상포와 고사총을 비롯한 갑판상에 있는 초소들을 돌아보며 해병들을 각성시키고 고무해주었다. 내부구간에 있는 초소들을 돌아보려던 그는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취사장에 들렸다. 지지고 볶고 튀기는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겼다. 손이 가는대로 국가마의 뚜껑을 열어보니 가오리탕이 엇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벌렁벌렁 끓는다.

갑판장은 바닥에 쭈그리고앉아 버치에 담은 얇게 저민 철갑상어살점을 시뻘건 양념에 버무리고있었다. 곁에는 식초병과 고추가루와 사탕가루를 담은 단지들이 놓여있다. 그는 오랜 배군들이 다 그러하듯이 제손으로 음식감을 손질하여 료리하기를 좋아했다. 어쩌다 희귀한 철갑상어와 가오리가 생겼으니 솜씨를 시위하는 판이였다.

《수고하누만. 상어대가리는 어떻게 했소?》

박철호의 물음에 갑판장은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며 지레짐작으로 반문했다.

《눈알이 필요해서 그럽니까?》

《음.》

《그러지 않아도 산모에게 상어눈알이나 간이 필요할것 같아서 건사해놓았습니다.》

박철호는 이렇게 관심을 돌려주는 갑판장이 고마왔다.

식기에 담아놓은 상어눈알은 오리알만 했다. 박철호는 그걸 초장에 버무려가지고 취사장을 나섰다. 갑판장이 덴겁을 했다.

《아! 그걸 어디에 가져갑니까? 산모에게 약으로 쓸건데…》

박철호는 그 소리를 못 들은체 하고 전파탐지초소에 갔다.

탐지분조장은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하며 탐지기영상막의 신호를 조절하고있었다. 영상신호가 안개낀듯이 선명하지 못했다.

《이걸 먹고 하오.》

탐지분조장은 그제서야 초소에 들어온 정치부함장을 알아보았다.

《그게 뭡니까?》

《철갑상어 눈알이요. 보약이지. 먹으면 당장 눈이 밝아질거요.》

물론 보약을 먹는다고 당장 효험이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어쩌다 생긴 이 귀한걸 가지고 찾아온 정치부함장이 탐지분조장은 눈물겹게 고마왔다. 그는 목멘 소리를 했다.

《이 귀한걸… 탐지수동무가 오면 하나씩 나눠먹겠습니다.》

탐지수는 유명한 박사의 아들이다.

《참, 그 동문 어딜 갔소?》

《마스트에 올라갔습니다. 영상신호가 정상이 아니거던요. 점검을 해보니 다른 장치들엔 이상이 없기에… 안테나에 얼음이 낀것 같습니다.》

박철호는 서둘러 갑판에 나갔다.

해풍이 어찌도 세찬지 숨이 턱턱 막혔다. 자칫하면 몸이 통채로 날려갈판이였다. 이런 날 마스트에 올라가는건 위험했다. 그는 항해모를 내리워 두귀를 가리우며 마스트밑으로 갔다.

마스트에 올라간 탐지수는 한손으로 란간을 그러쥐고 다른 손으로 탐지기안테나의 반사체에 낀 얼음을 제거하는중이였다. 풍파가 사나우면 마스트에까지 흩날린 바다물이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박철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얼음제거작업을 하는 탐지수를 올려다보았다. 아짜아짜했다.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느니 차라리 자기가 손을 대야 마음이 편할것 같다. 그는 손나팔을 하고 소리쳤다.

《그만하고 내려오라구!》

탐지수는 잠간 일손을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괜…찮…습니다.》

추위에 얼어붙을 지경이 된 그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연기처럼 뿜어나왔다.

《어서! 나와 교대하기요.》

탐지수는 작업을 계속하며 소리쳤다.

《조금만 더하면 됩니다!》

해남이가 마스트밑으로 달려왔다.

워낙 량볼이 발가우리한 그의 얼굴은 맵짠 추위에 더 빨개져서 무르익은 사과알같았다.

《제가 교대로 작업하겠습니다.》

기특한 전사였다. 위험을 동반하는 위태로운 일에 주저없이 나선것이다. 박철호는 사랑스러운 전사를 와락 껴안고 볼을 비벼주고싶었다.

《동문 취사장에 가서 더운 빠다물을 가져오라구. 어서.》

박철호는 해남이의 등을 떠밀고나서 거치장스러운 항해복을 벗어놓았다. 그는 얼음이 한벌 덮인 마스트에 오르기 시작했다. 장갑을 꼈는데도 차거운 쇠손잡이에 손바닥이 쩍쩍 얼어붙는것 같았다.

올라갈수록 해풍이 더 세차서 숨쉬기가 급하고 눈도 제대로 뜰수 없었다.

삽시에 온몸이 얼어들었다. 성에가 하얗게 불리운 아래우의 속눈섭이 풀칠이라도 한듯이 자꾸만 맞붙으려고 했다. 힘들었지만 기를 쓰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탐지수는 언손을 가까스로 놀리며 작업하고있었다.

《동무, 그러다 동상을 입겠소. 작업도구를 나에게 주고 어서 내려가오.》

얼굴의 솜털에까지 성에가 불리운 탐지수는 더 견디기 어려웠던지 작업공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내려가는데 필요한 기운을 돋구려고 심호흡을 했다.

《조심히 내려가오. 발을 헛디디면 안돼. 떨어질수 있소.》

보온병을 가슴에 껴안고 마스트밑에 나타난 해남이가 챙챙한 목소리로 웨쳤다.

《탐지수동지! 빨리 내려오십시오.》

박철호는 탐지수가 갑판에 무사히 내려간것을 보고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자칫하면 특수합금으로 정교하게 만든 반사체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조심해야 했다. 가느다란 살창들사이에 낀 얼음쪼각을 참대칼로 조심스레 떼냈다. 해풍이 세차고 흔들림이 심해서 자기의 안전에도 신경을 쓰다나니 갑절 힘들었다. 처음엔 손가락들이, 다음엔 량볼과 턱이, 나중엔 두팔이 얼어들었다. 그는 이를 사려물고 얼음쪼각들을 다 떼내고 모달리천으로 반사체를 정히 닦았다. 그러고나서 숨을 돌리는데 밑에서 탐지수가 소리쳤다.

《됐습니다! 영상판에 신호가 제대로 들어온답니다.》

해남이도 곁따라 웨쳤다.

《어서 내려오십시오!》

박철호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마스트에서 내려가려니 발을 제대로 옮겨디딜수가 없었다. 엉기적거리다가 발을 헛디딜번 했다. 얼른 두손으로 계단손잡이를 잡았다. 그 서슬에 작업칼과 모달리천을 놓쳤다. 모달리천은 물론이고 작업칼까지 해풍에 새처럼 날려갔다. 그는 강추위에 장작개비처럼 뻣뻣해진 팔다리를 가까스로 놀리며 힘들게 내려갔다.

해남이가 품에 안고있던 보온병에서 더운 김이 물씬 풍기는 빠다물을 한고뿌 부어주었다. 박철호는 그것을 받아 성급히 마셨다.

어머니의 젖처럼 달콤하고 고소한것이 입안에 가득찼다가 따끈하게 목젖을 지지며 넘어간다. 불덩이를 삼킨듯 얼대로 언 속이 즉시에 화끈 달아오른다. 추위에 졸아들었던 심장이 쿵쿵 높뛰고 거기서 뿜어나온 뜨거운 피가 전신을 내달린다.

피로는 즉시 사라지고 용기가 샘솟았다. 얼굴이 불깃불깃해져서 전파탐지초소에 달려가니 탐지분조장이 반색을 했다.

《이거 보십시오. 영상신호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10마일안에 있는건 다 가려볼수 있습니다.》

《그거 먹었소? 보약 말이요.》

탐지분조장은 빈 식기를 가리켰다.

《예, 탐지수와 하나씩 나눠먹었는데 상어눈알이 어찌도 큰지 배가 다 부릅니다.》

《배를 채우라고 준게 아니야.》

《눈도 밝아진것 같습니다. 웃지 마십시오. 정말입니다.》

《상어눈알이 정말 효과가 있다면 내 또 구해주지. 명심하오, 이번 수색작전의 성공은 함의 눈동자인 동무네 초소에 크게 달려있소.》

《알았습니다.》

《동무 혼자 감시근무를 도맡아서면 눈을 혹사할수 있으니 탐지수와 교대로 잠을 충분히 자오.》

박철호가 탐지초소에서 나와 음탐실과 무전실 등을 거쳐 기관실에 내려가는데 갑판장이 밥국통을 들고 따라오며 소리쳤다.

《정치부함장동지! 이걸 가져다주십시오.》

얼결에 밥국퉁을 받아쥔 박철호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밥국통엔 양념을 잘해서 먹음직스런 상어지느러미료리가 가득 담겨져있었다. 항해할 때면 누구보다 수고가 많은 기관수들을 먼저 생각하며 마음을 쓰는 갑판장이였다.

《정치부함장동지가 탐지수들에게 상어눈알을 가져다주는걸 보니 지느러미는 기관수들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관수들이 이걸 먹고 우리 함을 상어처럼 내달리게 하라는겁니다.》

《그거 그럴듯한 소리요.》

박철호는 신이 나서 기관실에 들어갔다.

후끈한 열기가 확 풍겼다.

주기관의 동음이 힘차면서도 고르롭게 울렸다.

군항에 있을 때는 이 소리가 요란하고 소란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바다에 나오면 이보다 정답고 미덥게 들리는 음향이 없다. 사나운 파도소리를 짓누르며 기세좋게 울리는 동음을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힘이 솟는다. 어쩌다 고장이 나서 동음이 멎으면 제 심장도 함께 고동을 멈춘듯 눈앞이 아찔해진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함과 해병은 날바다우에서 운명을 함께 하는것이다.

기관은 함의 심장이다. 그런즉 기관소리는 함의 심장이 울리는 고동소리다. 해병들의 심장이 높뛸 때 함의 심장도 높뛴다. 함의 심장이 순간도 고동을 멈출세라 권중섭을 비롯한 기관수들은 이 추운 날씨에도 비지땀을 철철 흘리며 기관운영에 전념하고있었다.

박철호는 기관조장에게 밥국통을 넘겨주었다.

밥국통뚜껑을 열어본 권중섭은 놀랐다.

《아니?! 이게 상어지느러미료리가 아닙니까?》

《예, 갑판장이 기관초소에만 각별히 보내주는겁니다. 기관수들이 이걸 먹고 함을 철갑상어처럼 씽씽 달리게 해달라는 부탁을 담았지요.》

권중섭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어째서 경비근무를 교대하고 들어왔다가 인차 출항합니까? 정황이 생겼는가요?》

박철호는 조성된 정황을 알려주었다.

권중섭의 두눈이 별안간 사납게 번뜩이였다.

《그런즉 드디여 때가 왔다는거군요.》

《예, 드디여 전투항해를 하게 됐습니다.》

드디여! 그래 드디여 기다리던 때는 왔구나.

권중섭은 너무 벅차서 입을 벌리며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가슴을 들먹이던 그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처럼 길게 숨을 내뿜으며 두눈을 떴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역시, 우리 형길이가 앞을 내다보는군요.》

《예?!》

《해상경비근무를 앞두고 그가 하던 말이 생각나서 그럽니다. 이번에 해상경비근무에 나가지 못하면 일생을 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것 같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됐군요.》

《전투항해 전기간 주기관은 만가동해야 합니다.》

권중섭은 장담했다.

《우리 기관초소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참, 상어지느러미료리는 전대장동지와 부처장동지에게 대접합시다. 인사차림을 해야지요.》

《손님대접할건 따로 내놓았으니 어서 드십시오.》

《도로 가져가라는데두요.》

이렇게 싱갱이를 하는데 전대장의 목소리가 내부통화기로 울려왔다.

《정치부함장동무! 어디에 있소?》

박철호는 제꺽 대답했다.

《예, 기관실에 있습니다.》

《허- 동문 마스트에 올라가 교예를 하더니 언제 기관실로 락하했소? 동태신세가 됐겠지?》

《예, 너무 추워서 몸을 녹이는중입니다.》

《거기엔 동갑이가 있으니 걱정할게 없소. 동문 빨리 손님대접을 하라구. 부처장동무가 배가 고파서 헐헐하는구만.》

박철호는 계기판우에 붙어있는 해상시계를 보았다. 벌써 점심식사시간이 되였다. 그는 부리나케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는 근무에 나갈 해병들이 식사를 하고있었다. 그는 갑판장과 함께 구석진 식탁에 밥차림을 했다.

전대장이 최정식대좌를 뒤에 달고 들어왔다.

《자! 우리 먼저 식사를 하고 함장과 부함장을 교대해주기요. 부처장동무, 이만하면 만족하오?》

최정식은 초긴장으로 굳어졌던 안색을 그제서야 풀며 탄성을 올렸다.

《히야! 요란하구만. 가오리탕에 철갑상어회라…

평양의 이름난 식당에 가도 이런건 먹어보기 힘드오.》

최정식은 부쩍 구미가 당겨서 곁눈을 팔 새도 없이 욕심스레 퍼먹었다. 짠물이 뼈속까지 슴배인 그는 오래간만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특색있는 해산물료리를 맛보게 되자 사기가 났다. 김철진은 그에게 덧국그릇을 밀어주며 짐짓 나무랐다.

《부처장동무, 먹기만 하겠소?

아기의 이름이라도 지어주어야 할게 아니요.》

최정식은 기꺼이 응했다.

《음, 그 애 이름이야 큰아버지벌이 되는 내가 응당 지어주어야지. 해남이가 어떨가? 바다사나이란 뜻인데…》

동의를 바라는 부처장에게 박철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함에 그런 이름을 가진 동무가 있습니다.》

《참, 그렇지. 그럼 해웅이라고 부르자구.》

즉흥적으로 이 이름, 저 이름 불러대는 부처장에게 김철진이 퉁을 놓았다.

《그건 내 막내녀석 이름이요.》

최정식은 주먹으로 이마를 쳤다.

《아하! 내가 그걸 잊었댔군.》

김철진은 쯔쯔 혀를 찼다.

《부처장동문 임신한 정치부함장 아주머니의 걱정은 끔찍이 하면서도 아기이름을 지어줄 생각은 왜 못했소?》

최정식은 고개를 들고 저으기 멋적은 기색으로 한창 식사하는 해병들을 둘러보고나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가 불편한 몸이기에 무사히 아기를 낳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었네. 그런데 기어코 아들을 낳았으니 보통이 아니요. 정치부함장이 색시를 잘 만난거지.》

박철호는 식사를 하면서 무안한대로 전대장과 부처장이 주고받는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런 녀성이 한둘이 아니요. 우리 집사람이 면회를 갔다와서 그러는데 바로 그 산원에서 작년 봄엔 전쟁시기 미국놈들에게 두팔을 다 잘리운 녀성이 딸을 낳았다는구만. 딸의 이름을 복수라고 지었다오.》

강한 충격을 받은 박철호는 놀라며 그만 수저를 바닥에 떨구었다. 식당안은 삽시에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식사를 하던 해병들도 굳어진채 전대장을 지켜보며 귀를 기울이였다.

최정식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드오. 그래, 복수를 해야지.

미국놈들과는 대를 이어가며 결산을 해야 해.》

박철호는 먼저 일어나 갑판에 나갔다. 그는 두눈을 부릅뜨고 수평선 한끝을 노려보았다. 무정한 바다도 격분을 참지 못해 몸부림치는것만 같았다.

그는 미더운 안해와 아직은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을 그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여보! 우리 함은 드디여 전투항해길에 올랐소. 우리 령해에 기여든 정체불명의 함선이 미제간첩선이 분명하면 복수의 불벼락을 안길거요. 기다려주오. 승전의 기쁜 소식을 안고 내 산원에 찾아가겠소.》

그의 얼굴이 금시 환해졌다.

신통한 이름이 생각났던것이다.

그래, 승전이라고 이름을 지으면 어떨가? 박승전, 박승전… 거 정말 뜻도 깊고 부르기도 좋은걸… 부처장동지랑 동무들과 의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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