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살진 동태떼는 대소한의 강추위를 타고 동해기슭에 다투어 밀려들었다. 사령탑에서 굽어보면 백파가 일어번지는 물면에 검푸른 구름장같은것이 희뜩희뜩 흘러가는게 눈에 띄운다. 그게 바로 물면우에 떠오른 물고기떼였다.

끼야! 까오!

갈매기와 가마우지, 청대가리, 바다비둘기들이 살판을 만났다고 새된 소리를 지르며 련이어 물면에 내리꽂힌다. 물고기사냥에 신바람이 난것이다.

그물과 바줄에 매단 띄우개들이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파도에 흥떡인다. 만선기가 해풍을 안고 춤을 춘다. 뜨랄선과 저예망선을 비롯하여 크고작은 고기배들과 가공선, 운반선들이 다 떨쳐나와 춥고 사나운 날바다에 흥취나는 대원무를 펼쳤다.

구잠함 103호가 군사분계선 해상연장선이 지척인 해금강앞바다에서 경비함 42호로부터 해상경비근무를 넘겨받았을 때 바다는 성어기를 맞고 이처럼 물고기잡이로 들끓고있었다.

구잠함과 가까운 곳에서 낯익은 저예망선이 양망기로 잔뜩 배가 부른 그물을 끌어올렸다.

선장의 신호에 따라 검은 고무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젊은 어로공이 그물아구리를 터치자 팔뚝같은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며 폭포처럼 갑판에 쏟아졌다. 어로공은 황급히 뒤걸음을 치다가 뒤로 벌렁 넘어져 물고기더미에 파묻힐번 했다. 미끈거리는 물고기들을 두손으로 헤치며 가까스로 일어나는 그를 보고 버치를 들고나오던 취사원처녀가 허리를 꼬부리며 웃어댄다. 젊은 어로공은 처녀에게 알을 찬 동태를 골라준다.

박철호는 버치에 물고기를 가득 담아이고 취사장으로 가는 처녀를 보니 안해가 생각났다.

바다가에서 자란 녀인들이 다 그러하듯이 안해도 물고기를 절구고 말리우거나 부산물로 알젓이나 창란젓, 식혜 같은걸 만들기 좋아했다. 보잘것 없는 잡어따위도 깨끗이 손질하여 말리워 가루를 내서 먹음직스런 완자를 만들었다. 정성이 깃든 이 물고기가공품들을 해병들은 누구나 좋아했다.

박철호가 산원에 찾아갔을 때 안해는 덕대에 동태를 절반밖에 걸지 못한걸 두고 몹시 안타까와했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박철호는 출항전에 하루품을 내여 동태를 코에 꿰서 덕대에 가득 걸었다. 부산물로 명란젓과 창란젓을 담그었는데 정작 제 손으로 해보니 그게 헐한게 아니였다. 손톱이 빠질 지경으로 손이 시리고 허리가 꺾어지는것만 같았다.

동태철이면 안해가 불편한 몸으로 이런 고생을 달게 했다는걸 박철호는 이번에야 체험을 통해 알게 되였다.

안해는 곱게 생겨서 눈길을 끄는 녀자가 아니였다. 애교를 피울줄도 몰랐다. 그러나 지내보면 볼수록 끌리우고 정이 들었다. 건강치 못했지만 강기가 있고 이악했다.

군관사택에 새살림을 편 그날부터 안해는 집일을 일체 제 손으로 했다.

박철호가 휴식날에 심심풀이로 터밭을 뚜지거나 회칠을 하려고 하면 안해는 큰일이나 난듯이 즉시 도구를 빼앗고 남편을 추궁했다.

《이런건 정치부함장이 할 일이 아닙니다. 난 철호동지가 직책상임무수행에 전심전력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수 있도록 도와드리자고 안해인 제가 있는거예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당신은 몸이 불편한데…》

《그렇다고 이런 일이야 내 손으로 못하겠나요. 난 동지를 도와드리자고 따라온거지 부담을 주거나 도움을 받자고 온게 아닙니다. 보기 싫어요. 어서 구잠함에 나가세요.》

남편이 가정잡사에 신경을 쓸세라 군항으로, 군함으로 등을 떠밀어주는 안해였다.

박철호는 이처럼 사랑스럽고 미더운 안해가 정말로 분해서 눈물조차 흘리게 만든적이 있었다.

안해의 몸안에서 자라고있는 미래의 자식때문이였다. 산원에서는 안해의 건강상태로 보아 해산은 생명안전을 담보할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박철호는 재고재다가 안해에게 어머니가 되기를 그만두는게 어떠냐고 조심스레 의향을 물었던것이다.

《뭐라구요?!》

팩 화를 내며 쏘아보는 안해의 눈동자는 마주보기 두려울 정도로 매서웠다.

《당신은 이자 저에게 무슨 말을 했어요?》

격분한 안해의 입에서 처음으로 당신이라는 부름이 튀여나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했냐 말이예요? 어쩌면 그런 말을 할수가 있어요? 너무해요. 당신이 그럴줄은 정말 몰랐어요.》

안해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흑흑! 소리를 내며 슬프게, 서럽게 울었다.

박철호는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랐다. 넘치는 련민의 정에 떠밀린 그는 안해를 꼭 껴안아주었다.

반발할줄 알았던 안해가 남편의 품에 공손히 안긴채 계속 흐느꼈다. 잠시후에야 흐느낌소리가 잦아들었다. 눈물에 함씬 젖은 얼굴을 든 안해는 가냘픈 어조로 애원했다.

《제발 부탁이예요. 나에게 다시는 그런 권고를 하지 마세요.》

순간 안해는 떼질을 쓰고난 소녀처럼 보였다.

박철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철호동지.》

《응.》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겁이 나요.》

안해의 어깨가 애처롭게 바르르 떨렸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면 무서워요. 그러니 나에게 힘을 주는 말을 해주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아기를 낳으라고, 건강하고 잘생긴 해병감을 낳으라고 명령하세요. 어서요.》

박철호는 도저히 입을 열수 없었다.

입을 떼는 순간 못나게도 겨우 참고있던 눈물이 쏟아질가봐 두려웠다.

《왜 말이 없어요? 설사 철호동지가 승인을 하지 않아도 난 기어이 아들을 낳고야말겠어요.》

물기가 말라버린 안해의 두눈엔 비상한 각오와 결심이 번뜩이였다.

《그것이 바로 군관의 안해인 내가 해야 할 의무예요.

내가 왜 처녀때 철호동지의 불같은 청혼을 선뜻 받이들이지 못했는지 아세요?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가봐 두려워서 그런거지요. 난 철호동지와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할 때 앞으로 내가 잘못되는 한이 있어도 꼭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 조국의 바다를 지키게 하리라 맹세했어요. 》

희생조차 각오한 안해의 비장한 목소리가 지금 이 시각도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여기 먼바다에로 길길이 메아리쳐오는것만 같았다.

《정치부함장동무!》

함장의 부름에 박철호는 깊숙이 잠겼던 안해에 대한 생각에서 깨여났다.

《이걸 보오.》

박철호는 함장이 주는 문건을 받았다.

경비함 42호가 해상경비근무를 인계하면서 준 적정자료였다.

정초부터 고기배들속에 무장함선들을 끼워 우리 령해에 들이밀려다 되게 혼쌀이 난 적들이 요즘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였다. 명태떼가 밀려드는 풍성한 우리 어장에 군침을 흘리며 공해쪽에서 덮치기를 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어선들도 웬일인지 거의다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박철호는 군사분계선 해상연장선과 령해선주변이 이처럼 조용해진게 오히려 껄끔했다. 경계심이 머리를 들었다.

《폭풍전야의 고요가 아닐가요?》

엄장석은 신중한 기색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음, 어쩐지 심상치 않군.》

쌍안경으로 남쪽해상을 지켜보던 조용순은 어깨를 으쓱하며 픽 웃었다.

《놈들은 작년 이맘때 되게 혼쌀이 나더니 우리 령해에 기여들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때 해안포친구들에게 선손을 빼앗긴걸 생각하면 얼마나 아수한지…》

조용순은 딱딱 손가락마디를 꺾는 소리를 내며 이발을 부득부득 갈았다.

엄장석도 얼굴을 찡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 역시 그때일을 돌이켜보면 다 잡았던 맹수를 다른 사냥군에게 떼운것처럼 아수했던것이다.

박철호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구잠함 103호는 작년에도 대소한의 강추위가 동태떼를 몰고 들이닥친 바로 이무렵에 해상경계근무에 진입했었다. 적들의 경호함과 경찰선들은 해상분계선 남쪽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우리 령해에 침입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놈들은 우리 해안포의 사거리가 7마일이라는걸 알고 구잠함이 자리를 뜨면 포탄이 미치지 못하는 수역에 기여들려는것이였다. 하기에 구잠함은 노상 남쪽해상을 지켜야 했다. 그런데 상급참모부에서 남쪽의 해상경계를 전파탐지초소와 해안포구분대에 맡기고 령해선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며 순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엄장석은 일순 의아해졌다.

《웬일일가?》

박철호가 넘겨짚었다.

《령해선근처에 일본어선들이 나타난것 같습니다.》

조용순은 치째진 두눈을 깜박거리더니 자신있게 주장했다.

《내 생각엔 상급참모부가 그 어떤 작전을 벌리려는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자리를 뜨면 적함이 기여들건 뻔한데 내버려둘수가 있습니까. 》

그 말에 일리가 있기에 엄장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침로를 북으로 돌렸다.

《함장동지, 올라가는척 하다가 다시 내려옵시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것 같은데 이 기회를 놓치면 됩니까.》

부함장이 곁에서 달달 끓었지만 엄장석은 침로를 돌리지 않았다.

구잠함이 자리를 뜬 틈을 노리던 적경호함이 전속으로 항해하여 우리 령해에 기여들었다.

놈들은 우리 해안경비정형을 탐지하려는것이였다.

상급지휘소로부터 적정통보를 받은 구잠함은 즉시 돌아서서 파도를 헤가르며 내달렸다. 20분정도 항해하니 탐지기영상막에 해안 가까이에서 돌아치는 적함이 깨알같은 점으로 포착되였다.

《전투준비!》

함장의 구령소리에 이어 배고동이 울리고 각 초소들에 설치된 전기종들이 요란히 울렸다. 방사폭뢰발사기와 함상포들, 고사총들이 발사준비를 끝냈다. 내부구간에 있는 초소들에서는 근무수행인원을 제외하고 모두들 자동보총을 들고 갑판에 뛰쳐나왔다.

여기저기서 고동구호가 터져나오고 해병들의 부릅뜬 두눈에선 황황 불이 일었다.

훈련은 너무도 많이 했다. 그러나 적들과 직접 맞다들기는 처음이였다. 절호의 이 기회에 방사폭뢰를 날리고 총포탄을 퍼부어 가슴에 쌓이고쌓인 한을 시원히 풀어보자! 적함을 벌둥지로 만들어 바다속에 처박자!

모두들 이런 심정이였다.

사격자세를 취하고 주시하는 선수쪽해상에서 갑자기 쿵! 쿠쿵! 하고 포성이 련이어 울렸다.

《아! 해안포가 선손을 쓰는군.》

함장이 아쉬워서 주먹으로 이마를 치니 박철호도 등이 달았다.

《저런! 일제사격이로군. 그런데 이게 어찌된거요? 우리 해안포가 10마일밖에 있는 적함을 막 조겨대는구만.》

곁에서 부함장이 펄펄 뛰였다.

《저건 분명 대구경해안포들입니다. 감쪽같이 배비변경을 한게 분명합니다. 그러게 내 뭐랬습니까. 인차 돌아서자고 했는데… 이거 우린 방사폭뢰 한발 쏴보지 못할수도 있겠습니다.》

엄장석은 안달아서 기관실에 대고 소리쳤다.

《속도를 높일것! 최대로!》

기관장도 애가 타서 마주 소리쳤다.

《지금이 최대속도다!》

이때 상급지휘소에서 구잠함 103호는 적경호함의 퇴로를 차단하고 다른 적함들의 접근을 막으라는 무전을 보내왔다. 이리하여 함은 차단경계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적들은 우리 령해에 불법침입했다가 불벼락을 맞고있는 경호함을 구출하려고 대기중에 있던 전투함정들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구잠함이 지켜서있으니 겁에 질려서 감히 해상분계선을 넘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맴돌았다. 사령탑과 포좌지에 있는 놈들의 상통이 빤히 바라보였다. 코앞에 있는 적함을 조준경속에 잡아넣고서도 정작 사격은 할수 없으니 이거야말로 속이 펄펄 끓어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지휘소! 사격명령을 달라!》

해병들은 저마다 피터지게 부르짖었다.

박철호는 사거리로 보아 권총은 소용없다는걸 알면서도 흥분하여 권총을 뽑아들고 안전장치를 풀며 함장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엔 어서 사격구령을 내리라는 요구가 아니, 절절한 당부가 어려있었다. 리성은 적들이 해상분계선을 넘어오기 전에는 사격을 하면 안된다고 만류하지만 감성은 당장 쏴갈겨야 한다고, 절호의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거라고 웨치는것이였다.

엄장석은 퍼런 불이 번뜩거리는 두눈을 부릅뜨고 량볼이 쩍 버그러질 지경으로 이를 악물고있었다.

자신을 억제하려고 그가 얼마나 모지름을 쓰는지 아래턱이 덜덜 떨리고 꽉 틀어쥔 량주먹의 손등엔 시퍼렇게 피줄이 두드러졌다. 자칫하면 《쐇!》하는 구령이 자기의 입에서 터져나갈가봐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고있는 함장의 모습을 보니 박철호는 그만 숨이 턱 막히는것 같았다.

그래, 참자. 참아야 한다.

이때 내부통화기로 형길이의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함장동지! 뭘 주저합니까? 쏩시다! 쏘자구요. 제발 부탁입니다. 내가 원쑤를 갚을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

장길준포장도 펄펄 뛰며 다그어댔다.

《지휘소! 사격명령을 달라! 어서 달라!》

갑판에 나와 자동보총으로 놈들을 겨눈 해병들도 어서 사격명령을 내리라고 고함을 쳤다.

엄장석은 이마에 뽀직뽀직 내배인 진땀을 꽉 틀어쥔 주먹으로 훔치며 정치부함장에게 부탁했다.

《동무들을 진정시켜주오. 참지 못하고 누가 한방만 갈기면 큰일이요. 그러면 너두나두 쏠거란 말이요.》

박철호가 갑판에 내려가려는데 쌍안경으로 적경호함을 감시하던 부함장이 환성을 올렸다.

《야! 경호함이 침몰됩니다.》

박철호는 덮치듯이 쌍안경을 받아들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만신창이 되도록 얻어맞은 적함이 바다에 처박히고있었다. 선미쪽은 벌써 물속에 잠겼는데 그 서슬에 코를 꿰인것처럼 번쩍 들리운 배머리에 56이라고 쓴 전술번호가 또렷하게 보였다. 참으로 통쾌하고 가슴 후련한 광경이였다.

기쁨도 컸지만 적함을 제 손으로 때려잡지 못한 아쉬움과 분함도 그에 못지 않았다.

엄장석은 함장모를 벗어서 내동댕이치고 두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며 지휘소바닥에 펄썩 주저앉았다.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통탄했다.

《젠장! 그놈을 우리가 족쳐야 하는건데… 정말 분하구나! 통분해!》

결국 구잠함은 해안포친구들이 위훈을 세울 기회나 마련해준셈이였다.

이것이 바로 한해전 이맘때 온 나라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에게 승전의 기쁨을 안겨주고 력사에 기록된 《경호함 56호사건》이였다.

《그때 적들은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움쩍도 못한다니까요.》

조용순은 으시대며 쌍안경을 함장에게 넘겨주었다.

《보십시오. 저쪽은 텅 비였습니다. 경호함이나 경찰선은 고사하고 어선도 한척 눈에 띄우지 않습니다.》

엄장석은 쌍안경으로 남쪽해상을 주의깊게 훑어보았다. 부함장의 말대로 그쪽은 조용했다.

《우리가 요즘 련일 만선의 개가를 올리니 놈들은 몹시 배가 아풀거요. 놈들이 이번엔 멀리 에돌아 공해쪽으로 덤벼들수 있소. 외국선박으로 위장하고 도발할수도 있지. 그러니 공해와 린접한 령해선주변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해야 하겠소.

이걸 참고하시오.》

엄장석은 부함장에게 자료철을 주었다.

구잠함은 남쪽으로 쑥 내려가 군사분계선 해상연장선을 따라 공해쪽으로 나가다가 뭍으로부터 12마일이 되는 곳, 즉 령해선 가까이에 이르러 침로를 북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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