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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준비를 할 때 함은 명절준비를 하는 가정처럼 흥성거린다. 명절을 앞두고 어느 집에서나 별식을 만들려고 공급물자를 타들이거나 음식감을 사들인다. 이것이 흥을 돋군다. 마찬가지로 군함들은 출항을 앞두고 후방물자를 적재하는데 이것이 해병들을 신바람나게 하는것이다. 함은 부두에 여러개의 관을 늘여놓고 연유와 윤활유, 청수를 배부르게 빨아들인다. 해병들은 바다에 나가서 먹을 흰쌀과 밀가루, 육류와 수산물, 남새와 조미료를 싣노라 분주히 움직인다. 당과류나 담배를 넣은 지함을 메나르기도 한다. 군관 안해들이 정성껏 마련한 통김치와 동치미, 깍두기와 젓갈 등을 가지고 찾아온다. 고급어족과 빠다를 먹는다고 으시대는 해병들이지만 통김치나 동치미를 보면 누구나 환성을 올린다. 군항에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먼바다에 나가면 민족의 향기와 땅냄새가 푹푹 풍기는 이런 음식이 입맛을 부쩍 돋구어주기때문이다.

통김치와 동치미는 그저 음식이 아니라 해병들이 항해도중 때없이 즐겨먹는 간식이기도 하다. 파도가 날아드는 갑판에서 통김치나 동치미의 물을 한국자 퍼서 쭈욱 들이키면 클클하던 속이 시원해지고 정신이 번쩍 든다. 사이다나 맥주도 그 맛에 비길수 없다. 시원하고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얼벌벌한 그 물속에서 만문하게 잘 익은 고갱이나 무우를 건져내서 어석어석 씹어먹는 재미가 또한 기막히다. 날바다에 나가지 않고서는 통김치와 동치미의 진미를 알수 없다.

장길준포장은 해남이와 함께 사과상자를 가득 실은 밀차를 밀고왔다. 지하저장고에 보관했던 사과는 방금 딴듯이 생기있고 신선하고 향기로왔다.

그런데 어느 한 상자안에 있는 사과들은 곯아서 갈색을 띠였다. 갑판장은 상골을 찡그리며 퇴짜를 놓았다.

《이건 썩었구만. 3마일밖에서 날아가는 갈매기와 물오리를 가려본다는 장포장의 눈이 잘못된게 아니야? 당장 되돌아가서 생신한걸로 바꿔오게.》

장길준은 제편에서 큰소리를 쳤다.

《겨누면 겨눈대로, 쏘면 쏜대로 맞히는 명포수의 눈이 잘못될리 있습니까. 이건 내가 사과저장고를 다 뒤지면서 눈을 밝히고 품을 들여 한알한알 골라온겁니다. 자,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핑 돕니다. 썩은게 아니라 자연발효된 사과술이란 말입니다.》

《그으래?》

갑판장은 미덥지 않아하면서도 곯을대로 곯아서 홍시처럼 말랑말랑해진 사과알을 하나 집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찡그려진 그의 얼굴이 일순 굳어지더니 부채살처럼 쫙 퍼졌다. 상쾌하고 자극적인 향기가 콕 찌르듯이 풍겼던것이다. 애주가처럼 두눈을 자불거리며 그 냄새를 페장깊숙이 들이켰던 갑판장은 감탄을 뿜어댔다.

《여! 이거 기딱막히는구만.》

긴장해서 갑판장을 지켜보던 장길준포장과 해남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싱글벙글 웃었다.

《갑판장동지, 이걸 잘 보관해두었다가 먼 해구에서 2월 8일을 맞으며 한알씩 나눠줍시다. 명절을 축하해서 축배를 들어야지요.》

《아주 좋소! 찬성이요. 가만, 이왕이면 사과저장고에 가서 이런 사과를 한상자만 더 골라오라구.》

갑판장이 욕심을 부리자 장길준은 두손을 번쩍 들었다.

《이젠 더 없습니다. 이런 귀물이 그렇게 흔한줄 아십니까.》

갑판장은 매우 아쉬워하면서 곯은 사과를 생닭알처럼 손끝으로 톡톡 쳐서 구멍을 내고 거기에 입을 대고 즙을 빨아먹었다.

《여! 이거 별맛이구만, 별맛이야!》

해병들이 나도 맛을 좀 보자고 모여들자 갑판장은 얼른 사과상자를 그러안고 선수창고로 도망쳤다.

구잠함은 손꼽아 기다리는 2. 8절을 벌써 맞은듯이 흥성거린다.

손풍금소리, 노래소리…

흥겨운 분위기에 휩쓸리지 못하고 고민에 잠긴 해병이 있었으니 그는 김형길이다.

해상경비근무기간에 진행할 화선선동사업계획을 토의하려고 정치부함장을 찾아갔던 그는 군무자예술축전준비를 위한 창작조에 동원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러모로 조건이 좋은 거기에 가서 앞으로 군대예술단체나 창작전문교육을 받을수 있는 대학에 갈 준비를 하라니 실은 이만저만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길은 모욕을 받고 배척이라도 당한듯 한 심정이였다. 그는 원망스런 눈길로 정치부함장을 바라보고나서 아무런 응대도 없이 돌아섰다. 언제나 군사규정과 교범대로 행동하며 례절이 밝은 그가 이렇게 처신하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심란하고 심각한 기색으로 차거운 해풍이 불어치는 선수갑판의 방사폭뢰발사기곁에 홀로 서있었다.

부모형제가 없는 그에게 있어서 구잠함은 곧 집이였고 지휘관들과 해병들은 문자그대로 친형제였다. 그래서 함선에 녹이 한점이라도 쓸세라 닦고 또 닦았으며 동지들을 진정으로 위해주고 그들을 위해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왔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번져질줄 알았더라면 창작이고 뭐고 애당초 그만둘걸 그랬다. 학원시절에도 그런데 취미를 붙였다가 대학추천을 받는통에 하마트면 군대에 나가지 못할번 했다. 입대해서는 글짓기요, 작곡이요 하는걸 삼가했어야 하는건데…

하기야 난들 어쩐단 말인가?

보람찬 해병생활이 그대로 노래이고 시인데 그걸 어떻게 가슴에 묻어둔채 입을 꾹 다물고 지내는가.

한편 시인이나 작곡가가 될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니 은근히 가슴이 설레인다.

은연중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자신을 느낀 그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제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설사 나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 해도 전투무기인 방사폭뢰발사기를 피아노나 원고지와 바꿀수 있는가? 없다. 군복을 입은 나에겐 복수자로서의 사명과 의무가 선차다. 그것을 순간이라도 망각한다면 나는 병사의 자격이 없는건 물론 인간이 아니다. 악귀같은 놈들의 손에 온 가족이 학살되고 나 혼자 남았는데 내가 어떻게 전투초소를 떠나 화려한 무대에 올라가 시를 읊거나 피아노를 칠수가 있어? 설사 그렇게 하고싶어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는 생각할수록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서 두눈을 부릅뜨며 두주먹을 꽉 움켜쥐였다.

그래, 미국놈이 원쑤다! 그놈들이 아니였다면 나는 지금 유명한 시인이나 작곡가가 될 꿈을 안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있을는지도 모른다. 문득 등뒤에서 따스한 입김과 배기름냄새기 풍겼다. 형길은 친형보다 더 가까운 기관조장의 체취를 느끼며 얼른 돌아섰다. 아닐세라 언제 다가왔는지 기관조장이 다정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형길이, 왜 그리 심란해하는거지?》

이처럼 무랍없이 다정히 불러주니 형길은 코등이 시큰했다.

권중섭은 남들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형길동무 혹은 선동원동무라고 불렀다. 다시말해서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형길이를 존중해주고 받들어주었다. 그러나 형길은 기관조장이 형길이!하고 불러줄 때가 정말 좋았다.

형길은 울먹거리면서 그에게 자기의 고민거리를 스스럼없이 솔직히 터놓았다.

권중섭은 여느때없이 매우 신중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언젠가 정치부함장동지가 우리와 기관정비를 함께 했었지. 참, 형길이가 오미자단물을 가져다준 날 말이야.》

《예, 생각납니다.》

《그날 휴식참에 정치부함장동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 형길동무의 재간이 아까우니 군무자예술축전준비에 동원시켰다가 전문교육을 받을수 있게 해주자고 말이야. 그래서 난 이왕이면 형길이를 해군대학에 보내달라고 했지.》

김형길은 대뜸 귀가 솔깃해졌다.

《난 형길이가 앞으로 유능한 함장이 될거라고 장담했어. 정치부함장동진 우정 난색을 하며 롱조로 묻더구나. 몇년후에 동생이 정말로 함장이 되여 우리 함에 오면 어쩌자고 그러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난 〈뭐 어쩔게 있습니까. 내가 먼저 동생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그의 명령에 복종해야지요.〉라고 대답했어.》

형길은 펄쩍 뛰였다.

《아니, 그건 무슨 말입니까?》

《내 말을 마저 들으라니까. 난 그날 정말 기쁘더구나. 위축되고 기가 질려 양기없이 지내던 전재고아인 불쌍한 형길이가 어느새 이렇게 자라나 해군대학에 가고 몇년후엔 함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 설레여 진정할수가 없더란 말이야.》

그 웅심깊은 사랑과 기대에 형길은 치밀어오르는 뜨거운것을 삼키노라 울대를 꿈틀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은근히 이런 걱정이 생기더구만. 형길은 부모의 이름도 고향도 모르는데 그게 장애로 되지 않을가? 그래서 정치부함장동지도 몹시 애를 태우더군.

아주머니와 함께 형길이의 누이를 찾아서 신원을 확인하려고 전국각지에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더군. 아주머닌 불편한 몸으로 황해남도에 갔다오다가 렬차에서 의식을 잃어서 곧장 산원에 가게 된거요.》

가슴뜨거운 그 사연을 이제야 알게 된 형길은 고마움보다 송구스러움이 더 커서 어쩔바를 몰랐다.

《그러나 형길이의 고향을 종시 찾지 못했고, 부모님들의 이름도 알아내지 못했어. 그래서 정치부함장동지는 전대장, 정치위원동지들과 함께 형길이의 신원보증을 서고 재능을 꽃피울수 있게 대학에 보내기로 한거야.》

형길은 후더워진 두눈을 슴벅이며 갈린 소리로 말했다.

《나를 위해주는 그 마음은 고맙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전투초소를 더 잘 지켜야 합니다.》

권중섭은 화를 냈다.

《계속 고집을 부리겠어?》

《이건 고집이 아닙니다. 다른 동지들은 뭐 재능이 없고 희망이 없어서 청춘시절만이 아니라 한생을 조국보위에 바쳐가는가요? 기관조장동지를 놓고봅시다. 동지는 전쟁로병입니다. 전화의 나날에 함께 싸운 전우들이 오늘은 전대장급으로 승급하거나 제대돼서도 중요한 초소에서 일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동지는 여전히 비류지가 묻은 정비복을 입고 기관초소를 지키고있지 않습니까. 무엇때문인가요?》

권중섭은 과찬을 받은듯이 거북해서 수염싹이 바늘끝처럼 뾰족뾰족 나온 턱주걱을 손바닥으로 소리나게 문질렀다.

하루만 면도를 하지 못해도 시꺼매지군 하는 그의 억세게 버그러진 턱주걱을 두고 해병들은 깡솔이라고 불렀다. 깡솔은 쇠바줄을 잘라서 만든 녹털기용도구다. 실지로 그의 수염은 철선처럼 꽛꽛했다.

형길은 거북해서 턱주걱만 쓸어만지는 권중섭에게 계속 강타를 들이댔다.

《정치부함장동지는 또 어떠합니까? 그는 전쟁때 적함포탄에 심한 타박상을 입은 후과로 장차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를 처녀와 가정을 이루었지요. 아주머니는 몹시 불편한 몸이지만 우리를 위해 진심을 바치고있습니다. 무엇때문이겠습니까?》

형길은 말을 하는게 아니라 속에서 이글거리던 감동과 격정의 불을 내뿜고있었다.

《어디 나나 정치부함장동지의 아주머니뿐인가요.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피해를 혹심하게 입었습니다. 그 상처가 얼마나 험한지 오늘도 아물지 못하고 사업과 생활의 이모저모에서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불편을 주고있습니다.》

형길은 두눈을 부릅뜨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누구나 한결같이 저주하듯이 미국놈이 윈쑤지요. 그 악귀들을 모조리 때려부시지 않으면 전쟁의 상처가 절대로 아물수 없습니다. 그러면 완전한 의미에서의 행복도 있을수 없단 말입니다.》

불이 펄펄 일던 형길의 두눈에선 눈물이 번들거리고 불현듯 목소리가 갈렸다.

《나도 인간입니다. 꿈이 있고 희망도 있는 청춘입니다. 보람차고 행복하게 살고싶습니다. 나는 그래서 더우기나 정든 구잠함에서 내릴수 없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전우들곁을 떠날수 없습니다.》

권중섭은 문지르던 턱주걱을 손으로 꽈악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말은 옳아.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건 아니야.》

이쯤하면 제 심정을 충분히 리해해주리라 믿었던 기관조장이 이렇게 나오자 김형길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어쩔수없이 제 자랑을 하게 된 권중섭은 얼굴을 붉히며 말까지 더듬었다.

《거 뭐… 형길이도 알지만 우리 함의 기관초소엔 내… 내가 꼭 있어야 해. 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할수 없거던.》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는 기관의 소수리와 중수리를 언제 했으며 그때 어느 부속품을 교체했는지 일일이 기억하고있었다.

때문에 기관의 동음을 듣고 어느곳에 이상이 생겼다는걸 귀신같이 알아맞추었다. 어쩌다 그가 자리를 뜬 사이에 기관이 고장나면 난사였다. 전대의 한다하는 기관전문가들이 손을 대도 기관은 심술궂은 애꾸러기처럼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래서 구잠함 103호의 기관은 《깡솔》로 문질러주어야 말을 듣는다고 소문이 났던것이다.

《형길이 경우엔 사정이 달라. 방사폭뢰발사기는 지금 해남이도 자신만만하게 다루거던. 형길인 100키로그람짜리 력기를 들 힘이 있는데 그 절반짜리를 들고있는셈이야.》

형길은 반박하려다가 입술만 감빨았다.

자기를 지켜보는 권중섭의 눈빛이 신중하면서도 절절했기때문이다.

《그래서 난 형길이가 해군대학에 가기를 바래.

앞으로 꼭 함장이 돼야 해. 바다싸움은 지휘관싸움이야. 그래야 원쑤놈들을 더 크게, 더 무자비하게 복수할수가 있어! 살인귀들이 빨갱이의 씨를 말리려고 강물에 처넣었던 어린애가 살아서 어엿한 해군지휘관으로 성장했다는 사실 그자체가 놈들을 기절초풍하게 하는거야!》

김형길은 입술을 깨물며 두눈을 꽉 감았다. 철부지때 너무도 끔찍하고 잔인하게 머리속에 새겨진 그 광경이 불현듯 눈앞에 얼른거렸다. 그때처럼 몸서리가 쳐지고 치가 떨렸다.

《당장 배낭을 메고 배에서 내리라구. 이제부터 골 싸매고 입학준비를 해야 해! 만약 시험에서 떨어져 해군대학에 붙지 못하면 우리 함에 돌아올 자격이 없다는걸 명심해! 알겠지?》

김형길은 두눈을 꽉 감고 입술을 깨문채 전신을 푸들푸들 떨기만 했다.

권중섭은 버럭 언성을 높였다.

《어서! 왜 말뚝처럼 서있어?》

김형길은 그제서야 눈을 뜨고 사랑하는 정든 구잠함을 애무의 눈길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동무들은 여전히 성수가 나서 떠들썩거리며 항해물자를 싣고있었다. 얼군 통돼지를 아기처럼 등에 업고 조심스레 건늠다리를 건너 함에 오르는 갑판장과 장길준포장의 모습이 보였다. 필경 당과류가 들어있을 지함을 둘러메고 기름사탕 같은것을 질근질근 씹으며 선수창고로 오던 해남이는 부러움에 찬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형길이와 눈이 마주치자 멋적었던지 씩 웃었다.

형길은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나는 해군대학에 가라는 상사동지의 권고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장 함에서 내릴수는 없습니다. 난 해상경비근무에 꼭 나가야…》

권종섭은 그의 말꼬리를 툭 잘랐다.

《형길이가 없어도 돼.》

형길은 그걸 인정했다.

《물론 그럴테지요. 하지만 난 함에서 내리면 마음이 편할수 없습니다. 그러니 입학시험준비를 제대로 할수 없지요. 시험준비야 바다에 나가서도 얼마든지 할수 있잖습니까.》

권중섭은 마른기침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제발 제 심정을 리해해주십시오. 난 어쩐지 해상경비근무에 나가지 못하면 일생을 두고 후회하게 될 그런 일이 생길것 같아서 그럽니다.》

권중섭의 숱진 눈섭이 흠칫했다.

《뭐라구?》

김형길의 안색이 근엄해졌다.

《그런 예감이 듭니다. 새해벽두부터 놈들의 책동이 심상치 않거던요. 꼭 무슨 일이 날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도 〈경호함 56호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마음의 탕개를 더 바싹 조여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을 들뜨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간곡하고 절절한 그 부탁에 아니, 호소와 애원에 권중섭은 눈굽이 뜨끔했다. 자칫하면 눈물을 보일것 같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끝내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그는 곧장 정치부함장을 찾아갔다.

《아무리 설복해도 응하지 않습니다.》

박철호는 별스레 눈언저리가 벌개져서 갈린 소리를 하는 그에게 안타까이 물었다.

《해군대학에도 안 가겠다는겁니까?》

《해군대학엔 가겠답니다. 그러나 입학시험준비는 바다에 나가서 하겠다고 합니다.》

《그게 헐치 않을텐데…》

권중섭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사실 형길인 전문예술단체나 창작전문교육을 받을수 있는 대학에 몹시 가고싶어하면서도 그러더군요. 우리 함에 처음 왔을 땐 눈치를 보면서 바다에 뛰여들기조차 주저하던 그가 이렇게 성장했으니… 난 그게 너무도 기쁘고 대견해서…》

권중섭은 목이 메여 눈물이 글썽해지더니 종시 말끝을 맺지 못했다.

박철호도 눈굽이 화끈하고 가슴이 찌르르했다.

《형길인 정말 훌륭한 동무입니다. 어릴적부터 가슴에 품어온 희망과 소원을 뒤전에 밀어놓고 총쥔 병사의 의무에 충실하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권중섭은 뜨거운것을 급급히 삼키고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예, 값비싼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헌신이지요. 이런걸 두고 청춘을 조국에 바친다고 하는게 아닐가요?》

그의 목소리는 격정에 떨렸고 두눈에선 눈물이 번쩍거렸다. 그것은 놀라운 광경이였다. 파도에 절고 배기름에 전 이 바다사나이가 눈물을 흘리는것을 박철호는 오늘 처음 본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헌신적인 초기복무사관이 제가 키우고 걸음걸음 이끌어준 한 병사의 소행에 감동돼서 눈물까지 흘리는것이다.

박철호는 배기름내가 진하게 풍기는 전쟁로병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북받쳐서 그앞에 무릎을 꿇고 절이라도 하고싶었다.

아! 이처럼 성실한 사관들과 병사들이 우리 함에 있다. 그래서 우리 함은 세찬 풍랑이 몰아쳐와도 언제나 밝은 태양만을 우러러 한치의 편차도 없이 충정의 항로로 내달리는것이다. 이런 해병들과 함께 복무의 나날을 보내는 정치부함장인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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