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구잠함은 사흘후에야 군항으로 돌아왔다.

전투항해훈련총화를 하고나니 저녁식사시간이 지났다. 김철진은 오래간만에 만난 전우를 자기 집으로 끌었다. 식사를 함께 하고 회포를 나누자는것이다. 최정식은 정치부함장네 집에 얼핏 들렸다 가기로 했다. 박철호를 앞세우고 사택마을에 가니 불이 꺼진 집에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어디엘 갔나?》

박철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을 켰다.

아래목에 놓인 쪽지편지가 눈에 띄웠다.

 

철호동지.

저는 아무래도 황해남도에 가봐야 하겠습니다. 신천에랑 재령에랑 들렸다오노라면 날자가 좀 걸릴테니 그동안 미안하지만 함에서 숙식해주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박철호가 난처한 기색으로 넘겨주는 쪽지편지를 받아본 최정식은 어리둥절해졌다.

《황해남도엔 왜 갔나?》

《집사람이 전쟁때 헤여진 형길동무의 누나를 찾아주려고 그렇게 극성을 부립니다.》

최정식은 움쭉 놀랐다.

《그 일때문에 갔다는건가? 거 정말 여간이 아니로군. 로상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쩐다?》

최정식은 군항에 내려왔던 기회에 춘희를 평양에 데리고가서 치료대책을 세워주려고 했었는데 그럴수 없어서 맹랑했다.

어찌할바를 몰라하던 박철호가 부엌에 나가 쌀함박을 쥐자 최정식은 손을 내저었다.

《그만두오. 난 전대장동무네 집에 가야 해.》

박철호는 몹시 난처해졌다.

《그래도 모처럼 오셨다가 그냥 가면…》

《별소릴 다 하는군. 잘있소.》

최정식대좌가 사라지자 집이 별스레 썰렁하게 느껴졌다. 박철호는 한숨을 나직이 내쉬고나서 구잠함에 나갔다. 거기서 식사를 하고 자기 방에 가서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렬차칸에 앉아있을 안해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그는 근심과 걱정으로 종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새날이 밝아오자 마음속 고충을 내색하지 않고 전투정치훈련과 예술소조공연준비에 전념했다.

제발 안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일은 끝내 불거져나갔다. 객지에서 설을 쇠고 돌아오던 안해는 과로에 못이겨 렬차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것이였다. 렬차원들이 환자를 가까운 역에 내리워 산원에 보내주고 군항에도 련락해주었다.

박철호는 즉시 련락정을 타고 산원이 있는 항구도시에 나갔다. 그는 자기가 무슨 정신에 녀인들이 아기를 낳는 신성한 그 장소에 헐레벌떡 뛰여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안해는 헐끔해지고 눈주위에 검버섯이 돋은데다가 입술에 물퉁이가 진 얼굴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철호동지, 미안합니다. 저는 신천과 재령, 은률까지 가보았지만 형길동무를 아는 사람은 한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춘희는 죄송스러워서 남편의 얼굴을 차마 마주보지 못했다. 춘희의 침대곁에 지켜서있던 의사들은 환자의 남편을 좋은 말로 안심시키려 했다.

《군관동지, 걱정말고 돌아가십시오. 우린 산모의 건강과 순조로운 해산을 위해 모든것을 다하겠습니다. 중앙병원에서 유능한 의사선생을 초빙해오려고 합니다.》

박철호는 이처럼 정성을 다하는 의료일군들을 믿었고 안해의 강한 의지를 믿었다. 그러기에 헐치 않고 위험을 동반할 안해의 해산이 무사히 될거라고 락관하며 군항에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기만을 초조히 기다리던 엄장석함장이 성급히 물었다.

《그래, 아주머니의 몸상태가 어떻소?》

《무사합니다. 이번에 그 사람이 렬차려행을 한건 정상해산에 유리하다더군요.》

《거 다행이로군. 헌데 여기엔 문제가 생겼소.》

《예?!》

엄장석은 바다쪽을 가리켰다.

《저걸 보오, 굉장하오. 물고기풍년이 들었거던.》

박철호는 함장이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춤을 추듯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고기배들이 군항으로 들어오고있었다. 물고기를 어찌도 많이 실었는지 어창이 있는 배머리가 푹 잠겨서 자칫하면 고기배가 바다에 곤두박힐것 같았다. 마스트에 만선기가 펄펄 날린다.

《히야! 거 정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군요.》

《이거 야단이요.》

《예?!》

《어항엔 어디에나 동태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더 부릴 장소가 없다누만. 그래서 우리 부대에 공급할건 저리 군항에 부리겠다고 제기가 들어와서 입항승인을 해주었다오. 고기배들이 입항하면 될수록 빨리 물고기를 부려야 한다오. 그래야 빈 배가 제꺽 돌아서서 어장으로 나간다는거지.》

박철호는 싱그레 웃었다.

《이거야말로 떡함지에 엎어진셈이군요. 헌데 함장동문 왜 문제요, 야단이요 합니까?》

《동무가 정치부함장이 옳긴 옳소?》

엄장석은 짜장 두덜거리며 밉지 않게 눈을 부라렸다.

《오늘 우리 함이 자체로 예술소조공연시연회를 해야 한다는걸 잊었소?》

박철호는 입을 하 벌렸다.

안해의 일로 신경을 쓰며 산원에 갔다오다나니 그렇게 계획한걸 깜박 잊은것이였다.

《그런데 우리 함에는 고기배 한척을 통채로 맡아 부리워서 절구든지 말리든지 가공처리하라는 과업이 떨어졌소. 어쩌면 좋소?》

일인즉 정말 공교로왔다.

《그럼 시연회를 래일로 미루고 모두 달라붙어 물고기처리작업부터 해제낍시다.》

엄장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업량이 방대해서 래일까지 끝내겠는지 알수 없소. 어쨌든 우리 함은 모레 예술공연을 부대회관무대에 올려야 하거던. 립체전을 벌리기요.》

《시연회와 물고기처리작업을 동시에 하잡니까?》

《그렇소. 종목별로 인원을 절반 나누고 한개 조가 시연회를 할 때 다른 조는 작업을 하기요. 물고기처리작업은 내가 맡겠소.》

박철호는 선뜻 응하지 못하고 바재이였다.

《저… 작업과제가 아름찬데 모두 달라붙어서 그것부터 해제끼고…》

《명령을 집행하오!》

엄장석은 우정 큰소리를 치고나서 항해용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었다. 그는 작업준비를 한 인원들을 자기가 직접 고기배들이 계류한 2호부두에 데리고갔다.

함장이 이처럼 예술소조공연준비를 적극 도와주니 박철호는 힘이 솟았다.

그는 김형길과 함께 갑판성원들이 준비한 예술소품들을 먼저 보았다.

재담과 기악중주, 군무도 있었다.

장길준포장이 안무를 하고 포수들이 모두 출연한 군무 《함선정비날》은 갑판을 닦아내고 배밑창에 고인 비류지를 퍼내고 함상포의 포신을 소제하는 각이한 동작들을 춤가락으로 형상했는데 흥취가 나고 씩씩해서 정말 볼만 했다.

김형길이 대본을 쓰고 갑판수들과 함께 출연한 합창시도 사상적내용이 좋고 형상을 기백있게 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합창시는 공화국정부의 10대정강이 발표되였으며 전반적9년제기술의무교육이 실시되고 경제국방병진로선을 관철하면서도 농사에 힘을 집중하여 땅이 꺼지게 대풍을 이룩한 지난해의 성과를 자랑높이, 긍지높이 언급하고 온 세상을 놀래우며 번영하는 사회주의 우리 조국과 날로 더 행복해지는 인민들의 안녕을 위해 조국의 바다를 철벽으로 지켜갈 해병들의 불타는 결의를 담은것이였다.

합창시를 끝내고 합창으로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를 부르게 되여있었다.

조선인민군협주단의 창작가들이 자기네 함에 와서 완성한 이 노래를 해병들은 누구나 즐겨부르며 각별히 사랑했다.

《모든 종목이 합격이요. 자, 빨리 작업준비를 하고 부두에 모이시오!》

박철호는 조급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작업준비를 한 해병들을 뒤에 달고 2호부두로 달려갔다.

도중에 막대기를 짚고 찔룩거리며 마주오는 부함장을 만났다.

《웬일이요? 상했소?》

조용순은 모욕이나 당한듯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두덜거렸다.

《제기랄… 발목을 곱질렀습니다.》

《어디 보기요.》

《아, 괜찮습니다.》

《군의소에 가기요.》

《괜찮다는데두요. 거 작업장에 가면 주의하십시오. 작업장이 아니라 전투장입니다. 육박전을 하는것처럼 옥작복작하는데 자칫하면 사고가 납니다.》

촉수가 높은 가설전등들을 환하게 켠 2호부두에서는 물고기비린내가 물씬 코를 찔렀다. 고기배들의 선창에서 동태를 퍼내노라 어뢰와 포탄을 적재하는데 쓰던 부두기중기들이 겨끔내기로 팔을 휘저었다. 한편 인력으로도 물고기를 부리우고있었다. 살진 동태를 듬뿍 담은 맞들이를 들거나 질통을 진 비옷차림의 해병들이 선창에서 나와 건늠다리를 건너와 부두에 물고기를 쏟고는 다시 고기배로 올라간다. 길이 막혀서 비켜서라고 저마다 소리치기도 한다.

부두에는 여기저기에 동태더미가 생겼다. 가공을 맡은 해병들은 동태밸을 따고 내장을 처리하여 절구거나 칡줄로 코를 꿰여 부두근처의 야산에 있는 나무들의 가지에 걸어놓느라 야단법석이다. 한쪽에서는 통나무로 동태덕대를 세우고있었다. 군관이고 하전사고 채양이 없는 작업모나 항해모를 쓰고 비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었다. 모두들 미끈거리는 감탕과 물고기비늘에 매닥질돼서 누가 누군지 가려볼수 없었다. 동태가 부두에 쭉 깔려서 발을 옮겨디디기 어려웠다.

부함장의 말마따나 작업장이 아니라 전투장이였다.

박철호는 손전지를 켜들고 그 혼잡속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바깥쪽에 계류한 저예망선의 배머리에서 작업지휘에 여념이 없는 함장을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갔다. 엄장석은 작업지휘를 하면서도 생각은 함에서 진행하는 예술소조공연시연회에 가있었던지라 정치부함장이 나타나자 성급히 물었다.

《아! 벌써 끝났소? 그래 어떻소?》

《괜찮습니다. 그만한 수준이면 회관무대에 나설수 있겠습니다.》

엄장석은 흡족해서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면 그럴테지. 얼마나 열성스레 련습을 했다구… 참, 부함장동무가 함께 갔소?》

《여기로 오던 도중에 만났습니다. 발목을 상했더군요.》

《그 친구가 정말 날쌔더군. 미끄러지는 발판을 부함장이 제꺽 발로 막아 멈춰세웠으니 망정이지 추락사고가 날번 했소. 경쟁을 붙여놓으니 모두들 눈에 달이 떠서 정신들이 없구만. 저마다 작업과제를 먼저 끝내겠다고 숨돌릴 사이도 없이 전투를 벌리고있소. 우리야 예술소조공연준비와 작업을 동시에 벌리고있으니 남들보다 곱절 뛰여야지.》

엄장석은 손나팔을 하고 소리쳤다.

《구잠함 103호, 작업 그만! 교대할것!》

정신없이 물고기를 퍼내고 나르던 해병들은 선뜻 일손을 놓지 못하고 망설이였다.

엄장석은 자못 난처한 기색으로 선창을 굽어보기만 하는 정치부함장에게 불같이 독촉했다.

《왜 그러고있소? 시간이 없소! 빨리 저 동무들을 데리고가서 시연회를 마저 하오.》

박철호는 응할수가 없었다.

선창에 꽉 찼던 물고기를 이제야 한쪽귀퉁이나 겨우 퍼낸 상태다. 물고기를 다 부리우고 손질까지 하려면 래일 밤까지 꼬박 새우며 전투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것 같았다.

《저… 작업이 이렇게 긴장한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노래를 부를 겨를이 있습니까?》

《글쎄 여기 일은 걱정마오.》

《어디 걱정을 안하게 됐습니까? 이러다간 물고기처리작업에서 우리 함이 망꼬리를 하겠습니다.》

엄장석은 속이 달아서 짜증을 냈다.

《정치부함장동문 저 동무들을 데리고 어서 가서 시연회를 마저 하오. 여기 일은 내가 책임졌단 말이요. 그러니 상관하지 마오!》

《내가 어떻게 상관하지 않을수 있습니까?》

이럴 때 보면 함장과 정치부함장이 서로 직무를 바꾼것 같았다. 서로의 양보가 지나쳐서 언쟁으로 넘어갔는데 해병들과 꼭같이 감탕과 물고기비늘로 매닥질된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전대장이 불쑥 나타났다.

《음, 103호는 함장이고 정치부함장이고 다 출동했구만. 그런데 왜 티각태각하는거요?》

박철호는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아닌보살했다.

《우린 그저 한담을 하던중입니다.》

엄장석도 제꺽 맞장구를 쳤다.

《예, 정말입니다.》

김철진은 시치미를 떼는 두 군관을 밉지 않게 흘겨보았다.

《그렇게 수염을 뻑 쓸지 말라구. 내가 모르는줄 아나? 동무네 오늘저녁에 예술소조공연시연회를 계획했다지?》

박철호는 저으기 놀랐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전대장이 관할구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를수가 있나. 동무네 대원들이 작업을 하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걸 내 다 들었지. 헌데 무엇때문에 복잡하게 교대를 하면서 시연회를 구잠함에 가서 하려고 하나?》

엄장석이 대답했다.

《작업도 하고 시연회도 계획대로 하자니 어차피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시연회를 여기서 하오.》

《예?!》

두 군관은 깜짝 놀랐다.

《여기서 어떻게?…》

《휴식시간에 하면 될게 아닌가. 그러면 교대하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노라 부산을 피울 필요가 없지.》

김철진은 뒤를 돌아보며 정치위원에게 의논조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예술공연도 하고 작업도 하니 일거량득이지요?》

정치위원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휴식참에 예술공연을 보여주면 모두의 사기를 북돋아줄테니 일거삼득입니다.》

그제서야 박철호는 작업복차림으로 전대장의 뒤에 서있는 정치위원을 알아보았다.

주문진해전참가자여서 해병들이 더 존경하며 따르는 정치위원은 확성기를 들고 온 작업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쳤다.

《동무들! 일손을 부쩍 다그치고 15분후에 휴식합시다. 휴식시간에 구잠함 103호가 예술소조공연을 하겠다고 제기해왔는데 동무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모두들 쌍수를 들어 찬성했다.

《좋습니다!》

《그럼 한시간정도 푹 쉬면서 구경합시다.》

작업장은 즉시 활기를 띠며 흥성거렸다.

일이 이렇게 번져지는통에 박철호는 급해맞았다.

《함장동무, 이거 야단이군요. 어떻게 할가요?》

엄장석은 예견치 못했던 정황에 부딪쳐도 우물쭈물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땅크처럼 내밀군 했다.

《까짓거, 하기요! 마침 한개 조는 시연회를 했으니 그걸 위주로 내밀잔 말이요. 빨리 공연순서를 정하오.》

그는 정치부함장에게 이렇게 이르고나서 구령을 쳤다.

《구잠함 103호 승무원들은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부두에 정렬할것!》

저예망선의 갑판과 선창에서 물고기비린내가 풍기는 작업도구를 주거니받거니하던 해병들은 비상소집구령이 울렸을 때처럼 날쌔게 부두에 뛰여내려 신속히 정렬하였다.

엄장석은 어서 조직사업을 하라고 정치부함장을 대오앞에 떠밀었다.

박철호는 예술공연관람을 앞두고 힘을 내여 더 부쩍 일손을 다그치는 다른 구분대들을 둘러보고나서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동무들! 본때를 보이기요.

공연순서는 이미 정한 그대로요. 한종목이 출연하면 갑판장동무가 다음종목을 준비시켰다가 제꺽제꺽 내보내시오. 수뢰초소장은 몇명 데리고 빨리 함에 가서 악기들과 소도구를 가져오시오.》

《알았습니다! 그런데 복장은… 얼른 세면을 하고 정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가요?》

《그럴 새가 없소. 작업복차림으로 공연하기요.》

김중복은 기악조를 데리고 구잠함으로 냅다 달려갔다. 장길준포장이 그들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해남이! 포소제대를 가져오는걸 잊지 말라!》

기관조장이 박철호에게 다가왔다.

《정치부함장동지, 공연장소에 탐조등을 비치면 좋을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신통한 생각이였다.

《아주 좋습니다. 기관조장동무가 조명을 맡으십시오.》

《예, 색조명을 하겠습니다.》

권중섭은 나이가 적지 않은데다가 심한 음치여서 예술소조공연준비에 끼여들지 못하고있었다. 무던히 성실하고 고지식한 그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속을 앓고있었는데 이번에 한몫 하게 되여 사기가 났다. 그가 젊은 해병처럼 춤추듯이 달려가는데 구잠함부두쪽에서는 기악조가 손풍금과 기타, 북을 둘러메고 꽹과리와 하모니카, 북채 등을 잔뜩 걷어안고 오금에 불이 일게 달려오고있었다. 그들의 앞장엔 포소제대를 둘러멘 해남이가 섰다.

박철호네가 부랴부랴 공연준비를 하는 사이에 정치위원은 방송차를 불러오고 마이크를 설치하게 했다.

휴식구령이 울리자 모두들 질서있게 정렬한 합창대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구잠함 103호의 사령탑에서 두개의 탐조등이 동시에 켜지면서 세찬 불빛을 내뿜었다. 눈부신 조명에 합창대는 무대에 나선듯 환하게 두드러졌다.

합창대의 앞줄에 서있던 김형길이 마이크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숨을 길게 들이킨 그는 깊은 추억과 흥분에 젖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조용히 헌시를 읊기 시작했다.

 

            해가 솟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우에

            아침해가 찬란히 솟아오릅니다

            우러러보면 볼수록

            자애로운 어버이수령님을

            또다시 우리 함에 모신듯싶어

            우리 마음 파도쳐 설레입니다

 

헌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를 받은 그날의 감격을 오늘도 안고사는 해병들모두에게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전대장과 정치위원의 곁에 서서 자기네 함의 예술공연을 보는 박철호는 격정을 안고 점점 더 높이 울리는 시랑송소리에 불현듯 눈굽이 확 달아오르고 목이 메였다. 금시라도 어버이수령님께서 밝게 웃으시며 다가오시여 자기를 자애로운 한품에 안아주시는것만 같았다. 고향은 어디인가, 부모님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생활에서 애로는 없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던 인자하신 그 음성이 귀전에 울리는듯싶었다. 심장은 세차게 고동치고 가슴은 불을 안은듯 뜨거워졌다.

 

            …

            영광의 그날을 잊지 말자고

            전술번호로 새긴 우리 함은

            통일항로의 앞장에서 달리렵니다

            제주도의 동백꽃향기속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렵니다

 

감동적으로 시랑송을 한 김형길은 합창대의 자기 자리에 돌어섰다.

정치위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박철호를 돌아보았다.

《저 동무가 헌시를 썼겠지?》

《그렇습니다.》

《음, 쓰기도 잘하고 읊기도 잘하는군. 저 동문 선동연설도 잘하더구만.》

박철호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넌지시 말했다.

《정치일군감입니다. 그런데 아직 외줄배기니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대장도 공감이 가서인지 고개를 돌리며 정치위원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것은 함장이 합창대앞으로 씩씩하게 걸어나왔기때문이였다. 엄장석은 절도있게 멈춰서더니 합창대를 향해 홱 돌아섰다. 그리고는 발뒤축을 고이며 두손을 머리우에로 번쩍 쳐들었다

합창대는 함장에게 시선을 집중한채 한껏 숨을 죽이고있었다. 함장은 두손으로 힘차게 곡선을 그었다. 순간 합창대는 축포를 쏘아올리듯 우렁차게 목청을 터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어버이수령님께서 갑판에 오르시네

 

전렴을 고음으로 부른 합창대는 함장의 지휘에 따라 파도가 넘실거리듯이 웃몸을 좌우로 흔들며 정서있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1절을 불렀다.

 

            장식기도 기뻐선가

            춤을 추는데

            만면에 웃음 지으신

            어버이수령님

            해병들이 바다지켜

            수고한다시며

            우리 손을 다정히

            잡아주셨네

 

2절로 넘어갈 때 박철호는 정치위원에게 우정 큰소리로 귀띔했다.

《이 노래도 형길동무가 작사, 작곡한것입니다.》

김철진은 이 기회에 진작 하고싶었던 말을 꺼냈다.

《형길동무에게 예술적재능이 있다는건 현실체험을 왔던 인민군협주단의 창작가들도 인정하더군.

석광희선생은 저 동무를 협주단의 전속작가로 소환하게 해달라는거요.》

그 말인즉 정치위원이 들으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정치위원은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수천수만마리의 바다새들이 일시에 나래쳐오르듯이 박수갈채가 요란하게 울렸다.

구잠함 103호의 해병들은 온 전대가 다 모인 장소에서 예술공연을 처음 하는지라 몹시 긴장되였었다. 그런데 관람자들모두가 찬사를 보내니 기세가 부쩍 오르고 무대담이 생겼다. 자신만만해진 그들은 재담과 사이극, 북제창 등 공연종목들을 련속 다채롭게 펼치였다. 군무 《함선정비날》도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김형길이 세명의 해병들과 함께 합창시에 출연했다. 박철호는 또 자랑을 했다.

《합창시도 형길동무가 창작한것입니다.》

정치위원은 여전히 응대가 없었다. 김철진은 지원포를 쏘느라 우정 큰소리로 감탄했다.

《좋아! 합창시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고 피가 솟구치는구만.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데 력점을 찍은것이 좋소. 그게 바로 우리 당의 전쟁관점이요.》

《새해를 맞으며 군보에 실은 사설을 보고 형길동무가 합창시대본을 고쳤습니다. 정세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상적대를 확고히 세웠습니다.》

《음, 형길인 역시 재간이 있어. 재간도 재간이지만 정치사상적으로 준비됐거던. 역시 나무랄데가 없소.》

박철호와 김철진이 정치위원을 둔장질하노라 이런 말을 주고받는데 합창시는 절정에로 치달아올랐다.

 

            우리 함의 방사폭뢰에는

            신천의 원한이 담겨져있다

            우리 함상포의 포탄들에는

            천백배의 복수심이 만장약되였다

 

            만약 미제침략선들이

            신성한 우리 령해를

            한치라도 침범한다면

            우리는 터뜨리리라

            쌓이고쌓인 원한과 복수심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조국의 천리방선을 지켜선 우리는

            일당백으로 준비되였습니다

 

합창대가 우렁찬 목소리로 일제히 복창했다.

해남이가 타는 손풍금반주에 맞추어 합창이 방사폭뢰 일제사격처럼 터져나왔다.

 

            수령이시여 우리들에게 명령만 내리시라

            단숨에 달려가 원쑤 미제 이 땅에서

            소탕하리라

 

전렴에 이어 1절이 시작되자 정치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꾹 다물고있던 입을 열었다.

《음, 이건 인민군협주단의 창작가들이 우리 군항에 와서 완성한 합창곡이로구만.》

박철호는 뻐기였다.

《예, 더 정확하게는 창작가들이 우리 함의 전투항해훈련을 보고 충격을 받아 완성한겁니다. 그래서 우린 이 노래를 각별히 좋아합니다.》

합창이 3절로 넘어가자 함장의 패기있는 지휘에 따라 출연자들은 두팔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더 목청을 높이였다.

 

            국방을 건설해 다진 힘으로

            분렬의 장벽을 짓부셔가자

            혁명의 총검을 더 높이 들고

            멸적의 용맹을 떨쳐나가자

            우리의 손으로 민족의 숙원을 풀고

            삼천리에 통일만세 높이 울리리

 

공연을 관람하던 모든 해병들이 목청을 합쳐 후렴을 같이 불렀다.

 

            수령이시여 우리들에게 명령만 내리시라

            단숨에 달려가 원쑤 미제 이 땅에서

            소탕하리라

 

박수소리와 환성속에 공연이 끝났다.

공연마감을 힘차게 전투적으로 장식한 합창곡은 지금 협주단에서 합창으로 한창 형상하는중이여서 아직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지 않았다.

새 노래를 부르니 인기가 대단했다. 공연에서의 이런 효과를 노리고 출연자들은 련습을 할 때 이 노래만은 입속말로 불렀던것이다. 노래가 통속적이고 병사들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것이여서 관람자들도 3절에 가서는 후렴을 함께 부를수 있었다.

《작업시작!》

구령이 울리자 부쩍 흥이 나고 와짝 사기가 솟구친 기세로 해병들은 물고기하선처리작업에 달라붙었다.

정치위원은 흡족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치부함장이 수고했소. 훈련도 하고 해상경비근무에 나갈 준비도 하면서 예술공연을 준비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지. 동무네는 예술공연판정을 받은걸로 해주겠소. 그것도 훈련으로 치면 강한 우의 성적으로 합격되였단 말이요, 전대장동무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김철진은 즐겁게 웃으며 찬성했다.

《동감입니다.》

정치위원의 안색이 신중해졌다.

《정치부함장동무, 우린 기량을 보자고 예술공연판정을 하는게 아니요. 해병들의 정신상태와 혁명적인 랑만을 보자는거요. 지휘관과 병사들이 서로 돕고 이끌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훈련명령관철에 떨쳐나서 싸움준비를 다그치는 단합된 그 모습을 보자는거요. 바로 오늘 동무들이 그걸 보여주었고 동시에 군사과업수행도 힘있게 떠밀어주었소.》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형길동문 어떻게 하잡니까? 저는 그 동무를 군무자예술축전준비를 하는 창작조에 동원시켰다가 인민군협주단에 보내든가 사회에 내보내여 전문교육을 받게 해주었으면 하는데…》

전대장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동무네 기관조장이 그러는데 형길이는 함장감이니 해군대학에 보내달라더구만. 나도 그게 좋을것 같소.》

여태 잠자코 있던 정치위원이 곁에서 끓어대니 감질이 났던지 욕심을 부렸다.

《아니, 형길동문 정치일군감이요. 정치일군으로 직발시켜야 하겠소. 전투소보를 잘 써, 선동연설을 잘해, 손풍금도 잘 타고 예술소품대본도 잘 만드니 그런 재간둥이를 떼우고싶지 않구만.》

즐겁게 옥신각신하던 그들은 본인의 의향이 뭔지 알아보고 그대로 해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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