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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전투경보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매번 그러하듯이 박철호는 즉시 심장이 세차게 높뛰며 설설 끓는 뜨거운 피가 일시에 정수리로 솟구치는감을 느꼈다.

그는 홱 돌아서서 재빨리 옷걸이에 걸려있는 군복을 벗겨입었다. 계속하여 외투를 입고 단추를 채우며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춘희는 다급히 뒤따라나가며 남편에게 겨울군모를 씌워주었다. 박철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짙은 어둠속에서 울부짖는 눈보라.

박철호는 그속을 뚫고 군항으로 내달렸다.

머리속에서는 의문부호가 다투어 떠오른다.

어째서 전투경보를 울렸을가? 전투정황이 발생했는가? 그렇다면 다른 함정들은 왜 잠자코 있겠는가. 전대지휘부에서 우리 함의 전투동원준비상태를 선택검열하자는건가? 아니면 혹시 사고가 난게 아닐가?

누군가 냅다 마주 달려왔다. 서로 홱 지나쳤다.

몇걸음 지나쳐서야 낯익은감이 들어 둘은 동시에 턱 멈춰서 돌아보았다.

《정치부함장동지!》

애티나는 쟁쟁한 목소리…

오해남전사였다. 그는 비편제성원이여서 전투경보가 울리면 련락병의 임무를 수행하군 했다.

《무슨 일이요?》

해남이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사연을 말했다.

《저녁식사후에 우린 교양실에 모여 예술소조공연준비를 하댔습니다. 그런데 륙군복차림을 한 대좌동지가 문을 열더니 〈전투경보!〉 하고 웨쳤습니다. 총참모부 선택검열이랍니다.》

박철호의 눈앞에 보름전에 전화를 걸어왔던 최정식대좌의 갱핏하고 칼칼한 모습이 피뜩 떠올랐다.

혹시 그가 내려왔는가?

사택마을쪽에서 기관장과 포병장, 기관조장이 달려왔다. 래일이 휴식일이라 그들도 집에 들어왔던것이다.

《빨리 가기요!》

박철호는 이렇게 웨치며 계속 내달렸다.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군항에 들어서자 매캐한 배기가스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잠함의 자태가 어둠속에서 드러났다.

벌써 주기관이 와릉와릉 돌아간다. 불빛이 번뜩거리는 갑판에서 항해복장을 하고 전투장구류를 휴대한 해병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부리나케 항해준비를 하고있었다.

박철호가 달려오던 그 속도로 선미갑판과 부두사이에 경사지게 놓여있는 건늠다리를 뛰여오르려는데 누군가 목도채를 들고 덤벼치며 마주 내려왔다. 갑판장이였다. 그통에 박철호는 뒤걸음치며 물러났다.

《왜 그러오?》

갑판장은 대답할 대신 다급히 조력을 청했다.

《마침입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갑판장은 목도채로 부두의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 박철호네 집에서 기르던 얼룩돼지가 네다리를 묶이운채 옴짝달싹 못하고 죽은듯이 모로 누워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저놈을 함에 실어야 하겠습니다.》

갑판장은 돼지의 발목을 묶은 노끈에 목도채를 뀄다. 잠자코 있던 돼지는 별안간 몸통을 비틀며 꽥! 꽤액!-소래기를 쳤다. 기관조장과 갑판장이 목도채를 메고 끙 용을 쓰며 동시에 일어났다.

돼지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니 목도채가 당장 꺾어질듯 휘여들었다.

갑판장과 기관조장은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잡으며 발을 헛디딜세라 조심스레 건늠다리를 밟으며 갑판에 올라갔다. 건늠다리가 두사람이 어기지 못할 정도여서 박철호나 포병장은 도와줄수가 없었다. 그래서 숨을 죽이고 그들을 지켜보며 뒤를 따랐다.

돼지는 당장 도살장에 들어가기라도 하는듯이 더 요동을 치며 목이 째지라고 소래기를 질렀다.

과연 소란스러웠다.

누구인가 전지불을 번쩍이며 다가와 추궁조로 엄하게 물었다.

《이건 뭐요?》

상대방은 목소리만 들어도 귀에 익은 최정식대좌였다. 박철호는 반가와서 얼른 거수경례를 했다.

《대좌동지, 안녕하십니까? 언제 오셨습니까?》

웬일인지 최정식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마주보며 버럭 언성을 높였다.

《이게 뭔가 말이요?》

박철호는 면구스럽고 난처해서 그만 입이 얼어붙었다. 곁불을 맞은 갑판장과 기관조장은 서둘러 오금을 꺾고 주저앉으며 꽥꽥! 고아대는 돼지를 갑판에 내려놓았다. 이때 무언가 육중한 기재를 맞든 륙군복차림의 군관들이 그들곁을 지나갔다. 팔에 낀 완장을 보니 강평원들이였다.

립장이 더 딱해진 박철호는 속으로 욕심쟁이인 갑판장을 나무랐다.

전투경보가 울리고 판정성원들이 들이닥쳤는데 그까짓 돼지는 그냥 내버려둘게지 공연히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나.

박철호는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능구렝이인 갑판장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며 사정을 좀 봐달라는 투로 반죽좋게 대답했다.

《대좌동지, 보시다싶이 이건 돼지입니다.》

최정식대좌의 목소리는 더 엄격해졌다.

《동무넨 전투경보를 듣지 못했소? 엉?》

갑판장은 주눅이 들지 않고 여전히 반죽좋게 설명을 했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부터 실으려고… 이건 우리 정치부함장동지의 아주머니가 기른건데 부두에 내버리고 출항할수야 없잖습니까.》

빨래줄처럼 길게 늘어놓는 그 대답이 박철호가 곁에서 듣기에도 귀가 간지러웠다. 갑판장이 이제 되게 추궁을 받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어찌된 일인지 범같은 대좌가 누그러들면서 호기심을 표시했다.

《정치부함장의 아주머니가 기른거라구? 그게 정말이요?》

《예.》

최정식은 선뜻 믿어지지 않아서 네다리를 묶이운채 갑판에 모로 누워있는 소짝같은 돼지를 전지불로 비쳐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불편한 몸에 임신까지 하고서도 이렇게 큰 돼지를 길렀다는거요?》

태연한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바싹 긴장해서 대좌의 눈치를 살피던 갑판장은 이젠 됐구나 하고 사기가 나서 큰소리를 쳤다.

《예! 정확히 103키로나 나갑니다. 우리 함의 전술번호와 신통히도 같습니다.》

구잠함 103호에서 함장을 한 전적이 있어 함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있는 최정식은 대단히 흡족해했다.

《좋소! 아주 좋아. 그래 이걸 어쩔셈이요?》

《래일이 휴식일이니 이놈을 잡아서 특식을 차리려고 계획했댔습니다. 전투경보가 울리든 전쟁이 터지든 갑판장인 나에겐 승무원들을 잘 먹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노래에도 있잖습니까, 먹어야 힘난다구…》

최정식은 또 길게 사설을 늘어놓는 갑관장을 탓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먹어야 힘난다! 옳소, 바다에 나가면 더 잘 먹어야지. 당장 돼지를 잡아서 래일 아침엔 특식을 차리오!》

특식을 차리라니?!

호된 추궁을 각오했던지라 그 소리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반죽좋게 나가던 갑판장은 그만 소심해져서 주저하며 물었다.

《저… 그러니까 전투경보가 인차 해제된다는겁니까?》

《무슨 소릴 하오? 동무네 함은 곧 바다에 나가 전투임무를 수행해야 해.》

《아니, 그럼… 돼지를 어떻게 잡는다는겁니까?》

갑판장이 이런 질문을 할만도 했다.

지금껏 바다에 나가서 돼지를 잡은적은 없었다. 더우기나 이번엔 일반항해가 아니라 전투항해다. 전투항해를 하면서 돼지를 잡아야 한다는건가?

그들의 속마음을 헤아려본 최정식은 갑판장의 어깨를 무랍없이 툭 쳤다.

《동무가 방금전에 말했지. 전투경보가 울리든 전쟁이 터지든 갑판장에겐 승무원들을 잘 먹일 임무가 있다고 말이요.》

《예.》

《그 임무를 수행하오. 귀한 손님들도 왔으니 고기국을 푸짐히 끓이고 순대도 만들고 만두도 빚으라구. 해병들의 식사질이 어떤지 보여주라구.》

귀한 손님들이란 누군가, 함께 온 총참모부성원들을 두고 하는 소린가. 박철호가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갑판장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돼지는 일단 갑판에 올려놓으니 주기관의 동음과 선체의 진동에 얼쳤는지 죽은듯이 잠잠했다.

짐승들은 멀미에 꼼짝을 못한다.

갑판장은 호기있게 소리쳤다.

《동무들! 돼지를 중갑판에 날라가오. 당장 잡아야 하겠소.》

여러명의 해병들이 돼지를 질질 끌고갔다.

최정식은 재삼 탄복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역시 춘희는 여간내기가 아니야. 그 몸으로 저렇게 큰 돼지를 기르다니… 참, 평양에 갈 준비는 되여있겠지?》

이건 정말이지 친형만이 할수 있는 각근한 물음이였다. 박철호는 진심으로 되는 성의를 무시하는것 같아서 변명을 하듯 말했다.

《고맙습니다만 집사람이 응하지 않기에… 거 뭐 해병감인 아기에겐 파도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면서…》

다행히도 최정식은 동감을 표시했다.

《아, 그게 정말 그럴듯한 소리요. 그런데 춘희가 무사히 해산할수 있을가? 우리 집사람은 훈련판정을 내려가는 나에게 춘희를 꼭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했소. 어떻게 하겠소?》

박철호는 대답을 피하고 반문했다.

《헌데 이거 갑자기 무슨 검열입니까?》

《총참모부에서 직접 하는 선택검열이요. 실전의 분위기에서 싸움준비정형을 검열하자는거지.》

《그러니까 귀한 손님들이란 판정성원들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다?》

《우리가 무슨 손님이겠나. 인민군협주단의 창작가들이 함께 왔소. 그들이 손님들이지.》

이건 무슨 소리야? 너무도 뜻밖이였다.

《그들이 어째서 우리 함에 왔습니까?》

《현실체험을 온거지. 참, 그들을 정치부함장인 동무가 책임지고 돌봐주어야 하겠소.》

김철진전대장이 불쑥 나타나 최정식대좌에게 사정을 했다.

《부처장동무, 난 어째서 떨어지라는거요. 나도 함께 바다에 나가게 해주오.》

최정식은 매정하게 거절했다.

《내 이미 안된다고 하지 않았소. 전대장동문 지휘소에 틀고앉아서 지휘를 하오.》

《그래두 부처장동무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함께 바다에 나가봅시다.》

《왜, 그렇게두 마음이 놓이지 않소? 전쟁때도 전대장이 모든 배들을 다 타고나가서 지휘를 할수야 없지 않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러는건 아니요. 구잠함 103호야 내가 자신처럼 믿을수 있지. 우리 전대의 기함이란 말이요.》

《그러게 마음을 놓고 어서 배에서 내리라구.》

김철진은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단념한듯 건늠다리를 타고 부두에 내렸다.

전투복장을 한 함장이 달려와 절도있게 보고했다.

《대좌동지, 함은 출항준비를 끝냈습니다.》

최정식은 손전지로 손목시계를 비쳐보았다.

전투경보를 울린지 15분어간에 출항준비를 끝냈다니 함은 경상적인 전투동원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전투임무는 항만을 벗어난 다음에 주겠소. 출항하시오.》

《알았습니다!》

엄장석은 홱 돌아서더니 중갑판으로 달려가 계단을 쾅쾅 구르며 지휘소에 올라갔다.

《출항! 선미작업조, 건늠다리와 계류바줄을 올릴것!》

 박철호는 선미작업조와 함께 명령을 즉시 집행하였다.

《닻 올렷! 미속으로 전진!》

주기관의 동음과 함께 선체를 푸들푸들 떨던 구잠함은 앞코숭이에 무겁게 드리운 닻줄을 칭칭 감아올리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닻이 물면우로 올라왔다.

《속력증가! 해상감시를 강화할것!》

구잠함은 점차 속도를 높이며 유유히 방파제끝을 에돌았다.

기다렸던듯 해풍이 기승스레 맞받아 불었다. 사령탑에 설치한 낚시대모양의 무선안테나들이 그 등쌀에 활등처럼 휘여들었다. 날이 선 배머리에 부딪쳐 산산쪼각난 파도가 갑판에 튕겨올랐다. 함은 항만을 벗어났다.

해풍은 더 세차고 파도도 더 사나와졌다.

파도머리를 타고 높이 올라갔던 구잠함은 낭떠러지를 만난듯 급기야 배머리를 숙이며 위태롭게 내리꽂혔다. 어찌보면 그대로 바다물속에 들어박힐듯… 아짜아짜한 순간 함은 가까스로 배머리를 추켜들고 와릉와릉 용을 쓰며 산같이 앞을 막아선 파도머리를 톺아오른다.

날바다에 나오니 집채같은 구잠함은 그야말로 가랑잎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 가랑잎에 매달린 해병들은 무엇에 비겨야 할는지. 횡포무도한 대자연의 광란에 시달리노라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하찮고 보잘것 없게 여겨지기도 한다.

박철호는 현실체험을 하러 온 인민군협주단의 창작가들을 책임지고 돌봐주라던 최정식대좌의 당부가 생각나서 얼른 지휘소에 올라갔다. 도중에 상갑판에서 강평원들과 무슨 기재를 설치하는 최정식대좌를 만났다. 박철호는 처음 보는 기재에 호기심이 났다.

《대좌동지, 이건 뭡니까?》

《새로 나온 공중목표발사기요. 참, 창작가들을 만나봤소?》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서 가기요.》

박철호는 대좌를 따라 지휘소에 올라갔다.

강평원완장을 끼지 않은 륙군복차림의 두 군관이 지휘소 한쪽옆에 서있었다. 얼굴색이 창백해진 그들은 보호용손잡이를 꽉 틀어쥔채 옴짝도 못했다. 벌써 멀미가 나는 모양이였다.

최정식은 아량있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물었다.

《바다에 나오니 감상이 어떻습니까?》

두 군관은 얼굴을 찡그린채 입술만 감빨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지러우면 군관침실에 가서 누우시오. 그러면 멀미가 덜 납니다.》

갱핏한 얼굴에 광대뼈가 두드러진 중좌가 사양했다.

《괜찮습니다. 전투항해훈련을 하는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안경을 껴서인지 군관이 아니라 학자처럼 보이는 소좌도 미안쩍은 어조로 말했다.

《견딜만 합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을 했지만 두 군관은 얼굴이 더 창백해지면서 련속 하품을 했다.

박철호는 그들에게 동정이 갔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도 멀미에 포로가 되면 자기의 인격을 지켜내기 어렵다. 술에 만취되였거나 유해가스에 중독됐을 때처럼 자신을 통제할 기능을 상실하기때문이다. 오죽하면 먹은걸 토하고도 그것을 제 손으로 치울 엄두를 내지 못하랴.

최정식은 그들에게 박철호를 소개했다.

《정치부함장입니다.》

박철호가 거수경례를 하자 얼굴이 갱핏한 중좌가 답례를 하며 자기를 소개했다.

《난 시를 쓰는데 석광희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이 대뜸 귀에 익었다.

박철호는 시인의 두손을 덥석 잡으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올렸다.

《히야! 전시가요 〈결전의 길로〉를 쓴분이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곁에 있던 소좌도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올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손창세입니다. 배우생활을 하다가 재작년에 작곡가가 되였습니다. 아직 변변한 곡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많이 도와주십시오.》

최정식은 그들의 고충을 터놓고 말해주었다.

《이 선생들이 고심하여 대렬합창곡을 하나 내놓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최종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했다누만. 우리 병사들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전투적인 기백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였다오. 그래서 최전연의 전호가에도 서보고 땅크와 직승기도 타보았는데 신통한 곡상이 잡히지 않더라오. 그래서 이렇게 전투항해훈련판정에까지 참가하게 된거요. 심장을 와짝 달구자는거지.》

최정식은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툭툭 쳐보이며 싱글벙글 웃었다.

《항해길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지 자칫하면 사고가 날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치부함장동무의 방조를 받으며 초소들을 돌아보시오.》

구잠함이 항만을 벗어나자 최정식은 작전가방을 열고 훈련명령문을 꺼내여 함장에게 주었다. 엄장석은 재빨리 그것을 보고 몹시 흥분하면서 정치부함장에게 넘기였다. 박철호가 보니 함장이 흥분할만 했다.

명령문의 내용은 적잠수함이 항공대와 호위함의 지원을 받으며 갈매기해구의 수중에 침입하였으니 수색소멸하라는것인데 마감에 참고부호를 치고 《사격명령이 내리면 실탄을 쏠것!》이라고 밝혔던것이다.

실탄을 쏘란 말이지.

결국 실전과 다름이 없는 이번 전투항해훈련에서 함의 전투력을 유감없이 시위해야 했다.

《선미상공에 적항공대 출현!》

부처장이 전투정황을 주자 엄장석은 즉시 경보신호단추를 눌렀다.

《항공경보!》

아아앙!-

짜르릉!-

배고동소리, 전기종소리…

《불빛가림을 할것!》

갑판은 즉시에 캄캄해졌다.

지휘소도 마찬가지였다. 전투조명인 빨간 불빛이 사람들의 형체나 겨우 가려볼수 있을 정도로 비칠뿐이다. 각종 계기들의 눈금에 바른 야광이 더욱 선명하게 파릿한 빛을 발산했다. 그 빛은 오히려 어둠을 더욱 강조해주었다.

《항공감시를 강화할것! 포초소와 고사총초소들은 발사준비! 실탄을 장진할것!》

최정식은 성수가 나서 련속 구령을 치는 함장의 어깨를 툭 쳤다.

《동문 부상당했소.》

엄장석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부처장을 마주보았다.

《동문 적기가 쏜 총탄에 맞아 전투지휘능력을 상실했소.》

전혀 예상치 못한 정황이였다.

《아… 아니, 그건 무슨…》

《당장 함장실에 내려가 침대에 눕소. 훈련이 끝날 때까지 잠이나 푹 자오.》

억이 막힌 엄장석은 울컥해서 고함을 쳤다.

《이건 너무합니다!》

최정식은 지나칠 정도로 랭정하게 요구했다.

《뭐가 너무해? 어서 부함장에게 지휘권을 넘길것.》

케가 글렀다고 생각한 엄장석은 얼른 낮추 붙으며 통사정을 했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지휘소에 그냥 있게만 해주십시오. 야간에 전투항해훈련을 하는데 만약 사고가 나면 야단이 아닙니까. 귀한 손님들도 승선했는데…》

최정식은 벌컥 성을 내며 함장의 말꼬리를 잘라버렸다.

《아낙네처럼 무슨 사설이 많아? 명령을 집행하오!》

고개를 떨군채 굳어진 함장을 보기가 난처해서 박철호는 나섰다.

《대좌동지, 제가 함을 지휘하겠습니다.》

《동문 창작가선생들을 돌봐주라고 하지 않았나.》

엄장석은 어쩌는 수가 없어서 해도실의 문을 열고 부함장을 찾았다.

《부함장동무, 함을 지휘하시오. 난 부상당했소.》

그는 이 말을 하고나서 정말 부상을 당한듯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비칠거리며 함장실로 내려갔다.

부함장이 격술은 잘하지만 아직은 전투항해훈련경험이 적은지라 그런 햇내기에게 함의 지휘권을 넘겨준 함장의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박철호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니아니한 심정으로 부함장을 지켜보았다. 창작가들도 바싹 긴장해서 부함장을 주시했다.

조용순은 몹시 긴장해서 약간 떨리는 손으로 송수화기가 달린 함장모를 쓰더니 심호흡을 하고나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각 전투부문과 전투초소들에 알린다!

방금전에 함장이 적기총탄에 맞아 부상당했다.

함장을 대신하여 부함장인 내가 함을 지휘한다. 전대지휘소의 통보에 의하면 적잠수함이 항공대와 호위함의 지원을 받으며 갈매기해구의 수중에 침입하였다. 우리는 날이 밝기 전에 적함을 수색소멸해야 한다.

갈매기해구를 향하여 전속으로 달릴것!

적기가 나타나면 즉시 사격하여 떨굴것!》

주기관의 동음이 더 높이 울렸다.

중속으로 달리던 구잠함은 박차를 가한 준마처럼 날이 선 배머리를 번쩍 추켜들고 밀려드는 파도를 뚫고나갔다. 흩날리던 물보라가 갑판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조용순은 정치부함장에게 말없이 내부통화기를 넘겨주었다. 박철호는 내부통화기를 쥐고 선동연설을 할 때면 매양 그러하듯이 흥분해서 두눈을 번쩍이며 목청을 돋구었다.

《동무들! 훈련도 전투다!

우리모두 지금껏 련마하고 다져온 일당백의 전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야간전투항해훈련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

《승리자가 되자!》

일제히 호응하는 해병들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확성기로 쩡쩡 울려퍼졌다.

최정식은 강평원완장을 낀 참모성원들을 불러 필요한 지시를 주고나서 시인과 작곡가를 돌아보며 의논조로 물었다.

《전투초소들을 돌아보겠소?》

그들은 멀미를 참으려고 애를 쓰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몸이 말째면 그저 여기서 보시오.》

시인은 당황해서 전투초소들을 돌아보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작곡가도 면구스런 기색으로 말했다.

《이거 오래간만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오니 어지럽고 속이 후리후리하군요. 하지만 견딜만 합니다. 어서 초소들을 돌아보게 해주십시오.》

《그렇다면 좋습니다. 자칫하면 타박상을 입거나 바다물에 떨어질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멀미가 심해지면 정치부함장동무의 도움을 받으시오.》

최정식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이처럼 자상히 이르고서야 지휘소문을 열고 나갔다.

시인과 작곡가는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잡으며 서둘러 부처장을 뒤따랐다.

불어치는 광풍에 숨이 턱턱 막혔다. 두툼한 항해복자락이 새의 날개처럼 펄럭이였다. 자칫하면 무섭게 울부짖으며 몰아치는 광풍에 날려가 노호한 파도속에 곤두박힐판이였다.

박철호는 창작가들에게 일렀다.

《란간을 꼭 잡고 내려가십시오.》

어둠속에서 그들이 꾸물거리는데 최정식은 벌써 어디론가 획 사라졌다. 정치부함장의 부축을 받으며 두 군관은 얼어붙어서 미끄러운 사다리를 조심스레 짚으며 갑판에 내려갔다. 그들이 무사히 갑판에 내려가 안도의 숨을 쉬려는데 움씰움씰 밀려온 파도가 함의 현측을 들이쳤다.

어둠속에서 담벽처럼 일어선 파도머리가 아우성치며 무너져내렸다. 그것은 홍수를 만난 산골물처럼 구조물들을 후려치고 갑판을 휩쓸었다.

시인과 작곡가는 비칠거리다가 얼결에 사다리를 꽉 부여잡았다.

박철호는 그들에게 조심하라고 재삼 주의를 주었다.

박철호도 그들도 삽시에 물참봉이 되였다. 젖은 항해복과 군복바지는 즉시 소가죽처럼 꽛꽛하게 얼었다. 추운것은 물론이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아까 목표발사기를 설치한 상갑판에서 쿵! 하고 폭음이 울리더니 주먹만 한 불덩어리가 하늘높이 날아올라가 허공중에 멈춰섰다. 락하산이 달린 야간사격용불빛목표였다.

부처장의 목소리가 벼락치듯 울렸다.

《선미방향 급강하기! 고사총들로 소멸할것!》

이어 초소장들의 구령이 울리고 총수와 조준수의 복창소리가 나더니 여기저기서 여러개의 불줄기들이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

따다닥! 따닥!

목표가 박산났는지 불빛이 꺼졌다.

《지휘소! 적기 소멸!》

《우!》

사격평가를 한 최정식은 매우 익숙한 솜씨로 상갑판에서 하갑판으로 훌쩍 뛰여내렸다. 두명의 강평원들도 그렇게 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날쌔고 기백에 넘쳤던지 시인과 작곡가는 홀린듯이 바라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최정식은 강평원들을 뒤에 달고 선수갑판에 있는 자동포초소로 달려갔다.

공중목표와 해상목표를 다 소멸할수 있는 이 자동포는 포장이 혼자서 다룬다. 전대적으로 손꼽히는 우수한 포장인 장길준은 기관실에 탄띠를 물려놓고 자신만만해서 사격명령이 내리기만을 기다리는중이였다. 포탑곁에 비편제예비포수인 애숭이전사가 서있었다. 최정식이 전지불로 비쳐보니 전사는 멀미가 나서 그러는지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있었다.

최정식은 아직 단련이 부족한 전사에게 동정이 갔지만 그럴수록 더 엄격하게 전투정황을 제시했다.

《전사동무, 포장이 적기총탄에 부상을 당했소.》

장길준은 당황해서 돌아보았다.

《아니?! 그건 무슨…》

《동문 꼼짝하지 마오.》

이런 정황에서 전사는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뒤미처 자동포초소에 다가간 박철호는 창작가들과 함께 긴장한 눈길로 해남이를 지켜보았다.

해남이는 홱 돌아서서 포탑문을 열더니 좌지에 앉아있는 포장을 갑판에 끌어내렸다. 응급처치를 해준 그는 좌지에 씽 날아올랐다.

《발사준비 끝!》

박철호가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데 최정식은 그야말로 가혹한 정황을 제시했다.

《포탄을 방금전에 다 쏘았소.》

해남이는 기관실에 물려놓은 포탄띠를 뽑아 포탄통에 넣고 서둘러 포탑에서 내려 발뒤축을 고이며 두손으로 포탄통을 그러안았다. 강철포탄통에는 소구경포탄이 수십발이나 들어있었다. 해남이가 아무리 용을 쓰며 당겨도 포탄통은 용접을 해놓은듯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당황해진 전사는 포탄통을 완력으로 끌어내려고 혀를 가로물고 안깐힘을 썼다.

갑판에 주저앉은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장길준포장이 안타까와서 소리쳤다.

《침착하라! 고정장치를 풀고 당겨야지!》

최정식은 분수없이 참견한 포장을 욱박질렀다.

《동문 부상당했다는걸 잊었나? 당장 치료실에 갈것!》

장길준포장은 급해맞아서 그야말로 사정을 아니, 애원을 했다.

《다신 참견하지 않을테니 저를 여기에 그냥 남아있게 해주십시오. 아직 숙련이 부족한 해남동무가 혹시 실수로 무슨 사고라도 치면…》

강평원이 엄하게 소리쳤다.

《어서 사라지라구. 전투경보해제신호가 울리기 전엔 여기에 얼씬도 하지 마오.》

장길준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포장이 귀띔해주어서야 정신을 차린 해남이는 손잡이를 쥔 량손 엄지손가락으로 고정고리를 풀며 포탄통을 힘껏 당겼다. 벼 한가마니의 무게에 맞먹는 육중한 포탄통이 쑥 미끄러져내려와 그의 가슴팍에 콱 안겼다. 해남이는 그 충격과 무게를 가까스로 이겨내며 비칠비칠 뒤걸음을 쳤다.

박철호는 그를 도와주려고 한걸음 나섰지만 강평원의 엄한 눈초리에 제지당했다.

용케도 넘어지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은 해남이는 허리를 굽히며 포탄통을 미끄러운 갑판에 조심히 내려놓고 재빨리 포탄고를 열었다. 예비포탄통을 끌어내서 력기선수처럼 폭발적인 순간힘으로 앞가슴에 추켜올린 그는 두발뒤축을 고이며 포탑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좌지에 뛰여올랐다. 포탄띠를 기관실에 물리고 한손을 들며 소리쳤다.

《발사준비 끝!》

최정식은 상갑판에 대고 소리쳤다.

《목표를 발사할것!》

폭음을 울리며 불덩어리가 하늘높이 올라가서 멈춰서더니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적기를 소멸할것!》

해남이는 목표를 조준하고 사격발판을 밟았다.

쿵! 쿠쿵!-

예광탄을 한발 앞세운 철갑탄들이 화약내를 물씬 풍기며 점발로 하늘을 꿰질렀다. 불덩어리는 계속 내려왔다. 실탄사격을 처음 해보는 해남이가 목표를 명중할수 있겠는지? 박철호는 명사수인 장길준포장을 제껴놓고 신입병사에게 사격구령을 내린 최정식대좌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두번째로 점발사격을 했지만 명중하지 못했다.

박철호는 너무 애가 타서 포탑을 주먹으로 쳤다.

《해남이! 침착하게 겨누고 쏘라!》

쿵! 쿠쿵 쿵!

세번째 점발사격이 목표를 명중했다.

《지휘소! 적기 소멸!》

초시계를 보던 강평원이 웨쳤다.

《우!-》

최정식은 포장을 대신하여 명령을 수행한 애숭이전사의 어깨를 툭 쳐주고 자리를 떴다.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쉰 시인과 작곡가는 탄복하여마지않았다.

《아련해보이던 꼬마전사가 일단 전투명령을 받으니 펄펄 나는구만.》

《정말 용소! 명사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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