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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년도전투정치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부대회관에서는 군사칭호수여식을 진행하였다.

지난 훈련에서 모범인 군관들과 해병들이 승급하거나 새 직무로 조동되였다.

구잠함 103호의 정치부함장인 박철호중위는 해군상위의 군사칭호를 수여받았다.

기뻤다. 그러나 한편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였다.

훈련도 잘하고 함선정비와 군무생활에서도 모범이지만 승급하지 못한 해병들이 있기때문이다. 그들은 한초소에 많은 인원들이 있는 기관수들이나 수뢰수들인데 편제군사칭호가 제한되여있었기때문에 외줄배기로 만기복무를 하고 제대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항해훈련을 하거나 함선정비를 할 때 이들이 다른 승무원들보다 더 수고를 한다. 그러기에 박철호는 성실한 그들에게 자기 견장의 별을 떼서라도 달아주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들가운데서도 제일 마음에 걸리는게 김형길이다. 수뢰초소장이였던 박철호의 손탁에서 함선생활의 첫걸음을 뗀 그는 훈련에서 뛰여나게 모범을 보여 기한전에 상등병의 군사칭호를 수여받았다. 그게 박철호가 해군대학에 가기 한달전에 있은 일이다. 그런데 박철호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관이 되여 군항에 돌아오니 형길은 여전히 외줄배기견장을 달고 수뢰수로 복무하고있었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났지만 군사칭호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간 정말로 외줄배기견장을 달고 제대된다는 소리가 나올판이였다.

형길은 비록 상등병이지만 함의 선동원이며 전투소보원이다. 보람찬 해병생활을 노래한 시를 써서 군인문예잡지에 발표하거나 자기가 쓴 가사에 곡까지 붙이는 재간둥이이다.

군대에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얼마든지 발전할수 있는 인재인데 전재고아여서 제 부모들의 이름도, 제 고향이 어딘지도 모른다.

군사칭호수여식이 끝나자 모두들 부대회관밖에 나가 구분대별로 돌아가려고 대오를 지었다.

박철호가 김형길이때문에 전대정치위원을 만나보고 갈것인가, 그냥 갈것인가 망설이는데 김철진전대장이 불쑥 나타났다.

《정치부함장동무! 총참모부에서 전화가 왔소.》

《예?!》

박철호는 일순 어리둥절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형길이때문에 총정치국에까지 의견을 제기하려던 참인데… 때맞춤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선두에서 대오를 인솔하려던 엄장석함장이 둔장질을 했다.

《왜 그러고 서있소? 빨리 가보오.》

박철호는 그제서야 지휘부청사에 들어가는 전대장의 뒤를 따랐다.

방에 들어선 김철진은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군용전화기를 턱으로 가리켰다.

《어서 전화를 받소.》

박철호는 영문을 몰라 얼떠름한 상태로 송수화기를 들었다.

《해군중위… 아니, 해군상위 박철호 전화를 받습니다.》

상대방은 반기며 물었다.

《언제 상위로 승급했나?》

친절한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이처럼 상하간의 관계를 벗어나서 친형처럼 무랍없이 다정히 물어볼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전대장으로 사업하다가 재작년에 해군사령부로 올라간 최정식대좌밖에 없었다.

《대좌동지입니까?》

《그래.》

박철호는 반가와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런걸 난 총참모부에서 찾는다기에…》

《내 얼마전에 여기로 소환되였지.》

박철호는 놀랐다.

《아니, 그럼 해군복을 벗었다는겁니까?》

최정식은 껄껄 웃기만 하는데 그를 대신하여 전대장이 말했다.

《그렇지만 해군을 담당한 작전국 부처장이니 해군이나 마찬가지야.》

《아, 그렇습니까.》

수화기로 최정식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왔다.

《내 방금전에 전대장동무와 전화를 하다가 처가 임신을 했다기에 근심이 돼서 찾았소. 그게 사실이나?》

박철호는 얼굴이 벌개서 면구스런 눈길로 전대장을 얼핏 돌아보고나서 목소리를 낮추며 변명하듯 우물쭈물 대답했다.

《저… 집사람이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아기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기에… 정말 어쩌는 수가 없었습니다.》

《거 무사할가? 내 생각엔 춘희가 평양에 올라와서 치료를 받다가 해산을 해야 안전할것 같아. 그러니 우리 집에 보내라구. 우리 집사람도 그러길 바래.》

최정식대좌의 안해는 진료소의사였다.

대좌의 권고대로 하면 박철호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고 남에게 페를 끼치기를 싫어하는 안해가 선뜻 응할것 같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하여간 의논을 해보겠습니다.》

《조금도 어려워할게 없어. 처를 꼭 평양에 보내라. 그래야 내가 시형구실을 해볼수가 있고 동무의 어머니도 마음을 놓을수 있을거야.》

아닌게아니라 최정식대좌는 박철호에게 있어서 친형이나 다름이 없었다.

《알았습니다.》

최정식은 전화를 끊었다.

책상우에 펼친 해도에 눈길을 주고 귀동냥을 하던 전대장은 감심한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범같은 부처장이 제수생각을 끔찍이나 하는군. 정치부함장동무, 내 생각에도 부처장동무의 의견대로 하는게 좋을것 같소.》

《알았습니다.》

박철호는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해풍이 세차서 물보라가 날리는 구잠함부두에서는 엄장석함장이 생당쑥물주리로 담배를 피우며 정치부함장을 기다리고있었다.

보병출신인 그는 바위돌처럼 다부지게 생겼다.

해군대학을 나온지 5년이 지났지만 그에게서는 바다냄새보다 산냄새가 더 풍겼다. 병사시절에 전호에서 몸에 밴 흙냄새와 풀냄새가 아직도 빠지지 않은 모양이다.

무슨 생각엔가 골똘히 잠긴채 스적스적 걸어오는 정치부함장을 발견한 엄장석은 서둘러 다가가며 성급히 물었다.

《총참모부에서 왜 찾았소?》

《해군사령부에 있던 최정식대좌동지가 총참모부에 소환됐더군요. 그저 나랑 우리 집사람이랑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를 건겁니다.》

《그런걸 난 무슨 일이 생겼나 했군. 헌데 미남자의 인상이 왜 그렇소?》

엄장석은 키꼴이 좋고 반고수머리인데다가 번듯한 이목구비에 눈정기가 유난히도 맑은 정치부함장을 보고 즐겨 《미남자》라고 부르군 했다.

《동문 별을 하나 더 박은게 아니라 떼운 인상이로구만.》

《형길동무때문에 그럽니다. 아직도 상등병이니…》

《그게 어디 그 동무 혼자뿐이요? 기관수나 포수들도 마찬가지지. 기관조장동무는 더한것이고…》

전쟁참가자이며 초기복무사관인 기관조장 권중섭은 십년나마 상사견장을 달고있었다.

《모두 근면하고 성실하고 훈련에서도 모범적인 동무들인데… 오늘 자기보다 후에 입대한 동무들이 하사나 중사로 승급하는걸 보며 박수까지 쳐주자니 생각이 많았을겁니다.》

엄장석은 정치부함장처럼 그들의 심정을 속속들이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다.

박철호는 단호한 어조로 자기의 결심을 표명했다.

《아무래도 형길동무는 대학에 보내야 하겠습니다.》

엄장석은 닁큼 뛰였다.

《뭐라구? 그럼 선동원은 누가 한다는거요? 예술소조공연이나 체육경기도 그 팔방미인이 없으면 안되지. 누구도 형길동무를 대신할수 없거던.》

김형길은 재간둥이이니 해당 부문에서 욕심을 내기마련이다.

래년 2월 8일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인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킨지 스무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을 성대히 기념하여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각종 경축행사들이 진행되는데 군무자예술축전의 막도 올린다. 하기에 벌써부터 총정치국은 물론 군부대들과 구분대의 정치부서들에서도 그 준비사업으로 들끓고있었다.

《함장동무, 해군사령부 정치부에서는 재능이 있는 동무들로 창작조를 무어 무대작품대본을 쓰고 작곡도 한다고 합니다. 나는 이 기회에 형길동무를 창작조에 망라시켜 기량을 더 높이게 하여 후날 전문교육을 받을수 있게 해주자는겁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유명한 시인이나 작곡가로 될수 있지요.

우리 구잠함 103호에서 유명한 시인이나 작곡가가 나온다는게 얼마나 희한한 일입니까.》

그날을 그려보니 막 성수가 나서 박철호는 밝게 웃으며 언성을 높였다.

엄장석은 심술을 부리듯이 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찬성할수 없소.》

《어째서요?》

《내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그 동무를 보내면 우리 함의 예술이나 체육은 누가 끌고나가겠소?

대렬합창도 그렇지. 그런 재간둥이는 바로 군대에 필요하단 말이요! 군대에!》

인재를 데리고있는 지휘관은 이런 경우에 욕심을 부리기마련이다. 박철호는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했다.

《형길동무야 혈혈단신이 아닙니까. 우리가 친형이 되고 친누이가 된 심정으로 그의 장래를 생각해줘야지요.》

론의에 오른 김형길은 밀대를 쥐고 흥이 난듯 상체를 률동적으로 흔들며 갑판에 얇게 깔린 눈을 쳐내고있었다.

무슨 평가사업이 있으면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하고 박수만 쳐준 사람들은 마음이 좀 허전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표창이나 칭찬을 받은 사람들과 자기를 대비해보면서 앞으로 군무생활과 훈련을 더 잘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자면 조용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마음을 안정시킬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형길은 여느때나 다름이 없이 밀대를 쥐고 갑판청소를 하고있다. 얇게 깔린 그 정도의 눈은 치지 않아도 되건만… 함선관리가 체질화되여서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밀대나 걸레를 손에 들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해하는 성실하고 근면한 해병이였다.

신입병사로 구잠함에 배치되여왔을 때 그는 키가 큰 축이지만 몸이 약했고 해쓱한 얼굴을 거의다 차지한듯 한 커다란 두눈에 겁기와 소심성이 어려있는 애숭이였다. 양기가 없는데다가 자꾸만 눈치를 보면서 정도이상으로 조심하는게 이상하다 했더니 알아본즉 그는 전재고아로서 중등학원을 나오고 해군에 입대한것이였다.

학원원장이 보내온 편지에 의하면 형길이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놈들의 학살만행이 감행된 장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라고 한다. 놈들은 창고에 가두어놓았던 마을사람들을 꽁꽁 묶은채로 목에 돌을 매달아 다리에서 강물에 떨구어 수장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물에 퉁퉁 부어오른 시체들이 떠내려가다가 기슭에 밀려나왔는데 그속에 까무라친 어린 사내애가 있었다. 정찰을 나갔던 인민유격대원들이 그 애를 살려내서 후방으로 보냈다. 그 애는 고향도, 부모의 이름도 몰랐다. 그저 형길이라는 제 이름이나 알고있었고 쩍하면 슬피 울면서 누나를 찾군 했다.

학원에서는 울보이고 겁쟁이인 그애에게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기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이였다. 손풍금을 배워주고 그림공부와 문학공부도 시켰다. 그에겐 문학적재능이 있었다. 그가 지은 작문들, 동요와 동시들이 《아동문학》잡지에 실렸다.

학원에서는 그를 대학에 보내여 문학전문교육을 받게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떼를 써서 군복을 입었다. 기어이 부모님들의 원쑤를 갚겠다는것이였다.

이런 사연을 알리며 학원원장은 형길이의 분대장에게 그를 용감한 해병으로 키우며 장차 작가나 작곡가로 발전할수 있게 도와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당시 수뢰초소장이였던 박철호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수뢰수로 배치되여온 형길이에게 품을 들이고 요구성을 높이였다.

예술적재능이 있어서인지 영민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형길이는 함선규정통달에서부터 다른 신대원들보다 쑥 앞서더니 수기신호와 불빛신호, 바줄매는 법도 쉽게 익혔고 초소복무동작훈련에서도 모범을 보이였다.

그런데 수영만은 꼴찌였다.

웬일인지 수영시간이 되면 양기를 잃으면서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군 했다. 박철호는 우격다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끌고 바다물에 들어가 수영동작을 배워주고 숙련시켰다. 형길이가 그럭저럭 부두에서부터 구잠함의 배머리에 떨군 닻줄을 헤염쳐서 돌아오게 되자 박철호는 그를 매주 1차 진행하는 3마일수영훈련에 참가시켰다.

그런데 일도 참… 형길이는 불과 백메터도 헤염치지 못하고 물속에서 누가 자기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는듯이 아부재기를 치면서 단정에 매달렸다. 단정에는 기관조장과 위생가방을 멘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원처녀가 타고있었다. 기겁하여 혼쭐이 쑥 나간 형길이는 간호원처녀의 도움을 받아 엉금엉금 단정에 오르면서 부끄러운줄도 몰랐다. 그러던 신입병사가 오늘은 사나운 풍랑속에서도 끄떡없는 믿음직하고 성실한 진짜배기해병으로 성장한것이다.

엄장석은 갑판청소에 여념이 없는 김형길을 생각깊은 눈길로 지켜보다가 불쑥 물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오?》

《예?!》

《형길동무도 유명한 시인이나 작곡가가 될 꿈을 꾸고있냐 말이요?》

엄장석은 광대뼈를 실룩거리더니 생당쑥물주리에서 담배꽁초를 뽑아 내동댕이치고 군화로 비볐다.

《정치부함장동무, 이건 심각한 문제요. 그러니 본인의 의향을 들어보고 결심하기요.》

엄장석은 담배를 또 한대 꺼내여 물주리에 끼우려다가 잘 들어가지 않으니까 짜증을 내며 구겨서 던져버렸다.

《난 형길동무가 그럴수 없다고 보오. 앞으로 판가리결전에서 원쑤들과 반드시 피의 결산을 해야 할 그 동무가 군복을 벗다니, 그게 어디 말이 되오? 말이 되는가?》

함장이 격해서 우둘렁거리기에 박철호는 면구스러웠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변명하듯 타협조로 말했다.

《전문교육을 받고 다시 군복을 입으면 될게 아닙니까. 군대에도 작가와 작곡가가 있으니까요.》

엄장석은 그 소리에 귀맛이 동했다.

《재능은 키워주어야 합니다. 국가적인 리익의 견지에서도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국가적인 리익에 대해서까지 운운하는 정치부함장의 절절한 목소리에서는 재능있는 한 해병의 오늘만이 아니라 앞날까지 책임져주려는 진정이 느껴졌다.

엄장석은 외투깃을 올리며 슬며시 말머리를 돌렸다.

《이거 바람질이 꽤 세찬걸.… 참, 아주머니의 몸상태는 어떻소?》

박철호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알릴듯말듯 안색을 흐렸다.

엄장석은 끙끙 갑자르다가 짜내듯이 힘들게 물었다.

《거… 그러니까… 기어코 아이를 낳겠다는건가?》

박철호는 무안을 당한듯 얼굴이 벌개졌다. 그는 어떤 일에서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그답지 않게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변명하듯 나직이 대답했다.

《예, 고집이 어찌두 센지… 이젠 뭐 어쩔수 없게 되였습니다.》

엄장석은 놀라며 긴장된 어조로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쯤 해산을 할것 같소?》

《래년 2월초에…》

엄장석의 얼굴엔 근심이 어렸다.

일인즉 공교로왔다. 정치부함장의 안해는 전쟁때 입은 타박상의 후과로 지금도 걸음새가 편안치 못한데 임신은 가능해도 해산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몸이였다. 그런데 해산예정일인 래년 2월초에는 남편이 해상경비근무수행으로 먼바다에 나가있어야 했다.

《무사할가?》

엄장석의 입에서 부지중 새여나온 이 짤막한 물음에는 부디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불안과 근심, 걱정과 우려가 짙게 어려있었다. 박철호는 모두었던 숨을 조심스레 내쉬고나서 솔직히 말했다.

《글쎄요. 본인은 일없을거라고 하는데 산원에선 순조로운 해산을 장담할수 없답니다. 해산할 때 자칫하면 산모와 아기중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할 그런 상태에 처할수도 있다는건데… 이건 정말 상상해보기조차 속이 떨려서.》

박철호는 말꼬리를 삼켰다.

엄장석은 언제봐도 락천적이고 명랑한 이 사나이가 안해를 두고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된것이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허… 거 난사로군, 난사야.》

《내 불찰이지요. 이런 일이 생길줄 예상하지 못한건 아니였지만 정작 이렇게 되고보니…  집사람에게 죄스럽고… 이거 어쨌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수 없구만요. 결혼을 한게 후회될 지경입니다.》

엄장석은 날바다우에서도 끄떡없는 이 강의한 사나이의 입에서 이런 나약한 소리가 나오는걸 듣기에 처음이였다. 하기야 오죽했으면 이러랴싶어 그는 정치부함장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없는 말재간을 부렸다.

《걱정마오. 다 제대로 될거요, 제대로 되구말구. 내 처는 말이요, 농촌에서 남새농사를 하던 녀자가 돼서 그런지 무우를 뽑듯이 아이를 헐하게 낳더구만. 산원에 입원하기 전날까지 제 손으로 밥을 하고 돼지물도 주었지. 내가 항해훈련을 하고 밤늦게야 집에 가보니 가마뚜껑에 쪽지편지가 놓여있더란 말이요.

저는 산원에 갑니다. 밥과 국은 가마안에 있어요. 돼지물을 주는건 옆집에 부탁했으니 당신은 내가 아들을 낳아가지고 올 때까지 구잠에 나가서 숙식하세요.〉 이런 내용이였소.

집사람이 없으니 별스레 방안이 허전하고 썰렁하게 느껴지더군. 밥도 먹고싶지 않았소.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함으로 갔지.

함장실에서 자고 아침에 해병들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체조하는데 최정식전대장동지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반달음쳐오다가 나를 보더니 두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더군.

〈함장동무, 당장 산원에 가보오!〉

전대장동지가 숱한 해병들앞에서 그러니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래서 아이나 난 다음에 가보겠다고 했지. 전대장동진 〈벌써 아이를 낳았대.〉하더군. 난 믿으려 하지 않았소.

어쨌든 사람이 세상에 태여나는 일인데 그렇게 쉽게 될수가 있을가? 거 정말 선뜻 믿어지지 않더라니까.

〈방금전에 산원에서 련락이 왔소. 아들을 낳았다누만.〉

전대장동지가 이렇게 소리를 치자 해병들이 일제히 박수를 쳐주었지.

〈함장동무, 해병감이 태여났는데 왜 이러고있나. 어서 떠나오. 련락정을 준비시켜놓았소.〉

전대장동지가 등을 떠밀기에 나는 즉시 련락정을 타고나갔지. 헐레벌떡 산원에 달려가보니 처가 정말로 떡돌같은 사내애를 낳았더란 말이요. 집사람은 얼굴이 벌깃벌깃해지고 기름기가 도는데 해산을 하고나서 더 건강해졌더구만.》

엄장석은 비밀이라도 알려주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녀자들은 생리적으로 아이를 낳아야 건강해진다는거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정치부함장동무의 아주머니도 무사히 되겠지. 꼭 무사할거요. 의지가 강한 녀성이니까. 설사 동무가 우려하는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견디여낼거요.》

과묵한 합장이 이렇게 장황하게 말을 하기는 처음이였다.

박철호는 랑만적이고 즐거운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안해에 대한 우려와 위구심이 어느 정도 가셔지는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최정식대좌동지도 그게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한겁니다. 집사람을 자기 집에 보내라더군요. 의사인 아주머니가 돌봐주게 하겠답니다.》

엄장석은 대뜸 얼굴이 환해졌다.

《됐구만. 평양에 가면 무사히 아이를 낳을수 있지. 그새 정치부함장동문 구잠함에서 숙식하면 되는거고… 집짐승들은 우리 집사람이 봐주게 하겠소.》

《글쎄… 본인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겠는지…》

엄장석은 짐짓 눈을 부라렸다.

《여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대를 세우라구. 오늘 밤 군관당직근무는 내가 설테니 동문 집에 들어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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