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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어 목단강역을 떠난 렬차는 길림성소재지 장춘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벽 2시에 일어나시였다.

조국에서보다 더 일찍 깨나신셈이였다. 고르로운 차바퀴울림소리에 습관적으로 잠이 깨신 그 첫순간에 그이께서는 렬차가 중국의 동북땅을 달리고있다는것을 감감 잊으시였다. 언제나와 같이 조국의 대지를 누비는 야전렬차강행군길에 있다고 생각되신것이다. 조국과 인민과 한몸이 되여 늘 살아오신 체질화된 관습의 힘이였고 강성부흥을 위해 매진하도록 공장과 농촌, 인민을 찾아가시던 정 넘치던 마음이 그대로 이어지기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칸벽에 붙여놓은 쏘파에 앉으시였다. 몸이 그닥 거뜬하지 못하고 무겁게 느껴지시였다. 참관의 첫날일정은 힘겨운것이였다. 이른아침 중국의 국경역을 출발하여 목단강시에 도착하였고 경박호를 돌아보신 다음 3시간이나 차를 달려 목단강시 해림농장과 젖소목장을 참관하시였다. 저녁에는 목단강시의 호텔에서 흑룡강성 일군들과 작별연회를 치르고 렬차에 오르시였다. 12시간이 넘는 강행군참관이였다. 흑룡강성 성장과 당서기가 그이께 호텔에서 쉬실것을 간청했으나 이미 앞당긴 렬차행군로정이고 드틸수 없는 일정이였다. 밤렬차를 부지런히 달려야 아침에 장춘에 도착하는것이다.

최근 국제통신자료를 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으로 역홈의 불빛이 언뜻언뜻 지나치는것을 보고 창가림을 밀어놓으시였다. 렬차는 돈화역을 지나고있었다. 목단강을 떠난 렬차는 벌써 왕청과 연길, 안도를 지났다. 이제 렬차는 교하를 거쳐 길림에 이르게 된다. 캄캄한 밤이니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을 벌리신 잊지 못할 혁명전적지들이 있는 땅, 친근한 동북의 산야를 부감할수 없는것이 아쉬우시였다. 시간이 있으면 그 옛날 풍상고초를 겪으신 수령님의 청춘시절의 피어린 자욱을 빠짐없이 따라가보고싶으시였다.

안도와 소왕청과 처창즈유격근거지, 좌경적인 반《민생단》투쟁을 바로잡은 다홍왜회의, 일제침략자들을 무찌른 크고작은 무수한 전투들… 수령님의 추억속에 있었던 그 모든 항일전의 사변들은 일찌기 김정일동지의 마음속에, 추억속에 깊이 새겨져있어 이 동북광야를 무심히 지나실수 없는것이였다. 돈화를 지나 두어시간나마 달린 렬차는 어느덧 교하를 통과하고 길림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청년시절에 혁명활동을 벌리신 력사의 땅 길림…

작년 8월에 중국을 방문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다른 고장보다 먼저 길림을 찾으시였고 북산공원과 약왕묘, 옛 육문중학교교사를 참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고색짙은 벽돌건물인 옛 육문중학교교사의 정원에 모셔진 수령님의 동상에 꽃바구니를 진정하셨고 교실에 들어가보시였다.

교단도 교탁도 풍금도 퍽 낡았지만 옛모습 그대로였다. 그이께서는 1927년부터 1929년의 잊을수 없는 나날에 수령님께서 앉아 공부하셨던 옹이있는 소나무걸상에 앉으시여 감회에 싸여 칠판을 바라보시였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1920년대시절처럼 목깃이 닫긴 검은 옷과 세라복을 입은 육문중학교의 남녀연예대학생들이 소박하게 부르는 《일성장군의 노래》는 그이의 심중을 울리시였다.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빨찌산이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밤이 지새도록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하많은 빨찌산의 사연, 피어린 항일전쟁의 자욱, 조선혁명과 중국혁명에 바치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칭송하는 노래가 육문중학교의 창밖으로, 푸른 하늘가로 울려갔다.

이어 연예대학생들은 길림육문중학교교가를 불렀다.

 

    인덕을 키우고 학문을 배우는 학교

    인재들 자라나는 육문을 나는 사랑해

    …

김정일동지께서는 학교를 떠나시면서 방문록에 친필을 남기시였다.

 

 

조중친선의 상징이며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길림육문중학교가

훌륭한 일군들을 더 많이 키우기를 바랍니다.

                2010. 8. 26

                 김 정 일

 

육문중학교 연예대학생들의 노래소리가 귀전에 쟁쟁하고 다녀가신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되여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낯익은 길림역사를 내다보시였다. 길림에 들리지 못하는것이 서운하시였다. 밤에 렬차를 타고오면서 대병국국무위원이 하던 말이 생각나시였다. 이번 중국방문시 김정일동지께서 길림성에는 장춘시에 반나절밖에 체류하지 못하신다는것을 알게 된 길림성당서기는 불공평하다고 국무위원에게 항의를 했다.

그는 정일총비서동지의 길림성참관단위를 더 정하고 방문기일도 늘여줄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길림성은 조선과 긴 국경선으로 산과 강이 잇닿아있다, 길림성은 김일성주석동지께서 오래동안 혁명활동을 벌리신 곳이고 중국의 로세대혁명가들과 혈연적인 정을 맺으신 고장이다, 1950년 10월에는 중국인민지원군이 바로 길림성에시 압록강을 건너 조선전선으로 달려나와 조선인민과 어깨겯고 미제침략자들을 무찌르는 싸움을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길림성은 정일총비서동지를 제일 오래 모실수 있는 당당한 권리가 있다는것이 성당서기의 주장이였다.

성당서기는 종시 국무위원을 통해 《길림성의 념원》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김정일총비서동지를 모시는 사업에 있는 성의를 다하였다. 그는 성당과 성정부의 간부들을 데리고 참관지인 중국제1자동차집단공사와 장동북핵심구역건설계획전람관을 돌아보면서 부족점이 없는가를 살펴보았다. 장춘시 동북지구의 개발과 관련한 경제발전계획전람관은 1층부터 3층까지 걸어다니며 참관하는데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했다. 성당서기는 비상대책을 세워 전람관의 바닥마루를 전부 강판으로 교체하였으며 많은 돈을 주고 축전지차 3대를 특별히 제작하여 보내주었다.

아침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길림성당과 성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친절속에 장춘에 도착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중국제1자동차집단공사를 찾으시여 현대화추진정형과 생산실태를 료해하시였으며 공사리사장이 선물로 올리는 새형의 승용차 《홍기》를 받으시였다. 밤새 렬차행군을 하여 퍼그나 힘드시였지만 그이께서는 장동북핵심구역건설계획전람관은 축전지차를 타고 편안히 돌아보시였다.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길림성과 장춘시인민들이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합니다. 계속 분투하기 바랍니다. 성당서기와 길림성동지들이 수고많았습니다. 앞으로 강너머 이웃인 길림성에 자주 오겠습니다.》

장춘역두에서 하신 김정일동지의 따뜻한 작별인사는 그들을 감동시켰다. 국무위원에게 항의까지 하면서도 소원을 이루지 못했던 길림성 당서기는 노여움이 풀렸는지 눈물이 글썽해서 렬차승강대에 서계시는 정일총비서동지를 향해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렬차는 낮 2시경에 장춘시를 출발하여 쉼없이 달려 다음날 저녁 8시반경에 중국의 화동지역인 강소성 양주시에 도착하였다. 무려 30여시간에 5 000리를 달린 초강도렬차강행군이였지만 그이께서는 차칸 집무실에서 별반 휴식을 모르시고 일군들과 담화도 하고 지시도 주시였고 책도 읽으시였다.

강소성은 중국의 지도자들인 주은래와 강택민, 호금도를 배출한 유명한 고장이다.

장강과 중국의 북남지역을 련결하는 대운하연안에 자리잡고있는 항구도시인 양주는 아름다운 경치로 하여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였다. 양주시의 수서호는 절승경개로 유명한 호수이다. 중국의 력대황제들치고 《날렵하고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뜻이 담긴 인공호수인 수서호를 찾아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나 없다고 한다. 양주시에서는 수서호의 자연풍치를 살리려고 호수주변에 고층건물을 짓지 못하게 한다.

강소성당서기와 중국동지들은 동북에서부터 수천리 머나먼 길을 렬차행군으로 오신 정일총비서동지께서 수서호의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얼마간이라도 휴식하시도록 하기 위해 성의를 다해 준비하였다. 축전지차가 다닐수 있게 말뚝란간들을 뽑았고 꽃밭들을 정리하였으며 관광객들을 차단하였다. 수서호참관은 이날 오후시간에 하기로 정해졌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서호유람에 수행일군들만 보내시고 자신께서는 양주시내에 있는 화윤소과대형시장을 찾으시였다. 오전에 양주경제기술개발구 《지곡》전람쎈터와 정오태양에네르기과학기술공사, 양력그룹수자조종설비공사들을 참관하시느라 잠시도 쉬시지 못한 그이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1991년 10월 마지막 중국방문시에 유람선 《건륭》호를 타고 돌아보셨던 사적이 있는 수서호에 들려 잠시나마 피로를 풀고싶으시였다.

그러나 그이의 마음은 고색짙고 수려한 풍치로 하여 세계에 이름난 양주땅을 찾는 사람들모두가 들리군 하는 수서호보다 조국의 인민들에게 가계시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을 찾아가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에 도움이 될수 있는 식품들을 료해하고싶으신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정에도 없는 화윤소과대형시장으로 가시여 과일매대와 남새매대, 랭동식료품매대, 당과류매대, 기름매대들을 돌아보시였고 상품의 가지수와 질 그리고 시장경영활동방식을 자상히 알아보시였다.

《외국방문시에 평범한 백성들이 리용하는 시장매대까지 찾아가 인민생활과 관련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는 국가수반은 세상에 없습니다. 총비서동지께 깊이 머리숙이게 됩니다.》

성당서기는 연회에서 강소성인민들을 대표하여 김정일동지께 건강축원의 잔을 올리며 감동에 젖어 말씀드렸다.

《양주시는 수서호와 같은 아름다운 경치로 세계에 이름난것이 아니라 위대한 일성주석동지를 모신것으로 해서 이름이 높습니다. 그런데 오늘 김정총비서동지를 모시여 또다시 대를 두고 전해갈 영광이 차례졌습니다. 오늘은 우리 강소성이 복받은 력사적인 날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당서기에게 친히 술을 부어주시였다.

《내가 보니 양주는 첨단기술경제도 발전했지만 우아하고 고전미와 현대미가 조화롭게 결합된 도시입니다. 성당과 정부가 오랜 력사와 문화적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사업을 아주 잘하고있습니다.》

그이의 과찬의 말씀에 성당서기는 기분이 좋아 가정내막을 털어놓았다.

총비서동지, 저의 아버지는 조선전쟁시기 중국인민지원군에 참전하여 싸웠습니다. 아버지는 1951년 봄에 어머니가 저를 낳았다는 소식을 받고 조선전선에서 편지에 제 이름을 지원군이라는 의미에서 <지군>이라고 지어보냈습니다.》

《지군이… 참 좋습니다. 조선인민의 옛전우의 아들이니 더 반갑습니다.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는 형제적중국인민지원군의 공적과 국제주의정신이 깊이 새겨져있습니다.》

총비서동지, 우리는 지금도 항미원조보가위국의 지원군정신을 견지하고있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힘을 다해 조선을 지원할것입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강소성 남경시에 있는 판다과학기술공사를 참관하신 다음 오후에 베이징을 향해 출발하시였다.

렬차는 끝간데없이 무연한 화북평원을 달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렬차집무실에서 대병국국무위원과 마주앉아 따뜻한 담화를 하시였다. 그동안 참관일정이 너무도 긴장하여 내내 함께 다니시면서도 언제한번 공식석상을 벗어나 호젓한 시간을 내여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하시였다.

당년 나이 70살인 대병국은 중국에서 오래동안 외교사업전반을 담당해온 로련한 국무위원이였다. 그는 세계5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 국가수반들을 상종하면서 중국외교의 질서와 관례를 벗어난적이 없었다. 원래 상무위원회에서 토의된 김정일동지의 중국방문영접계획에는 국무위원이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그이를 마중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대병국은 호금도총서기에게 직접 제기하여 김정일동지를 멀리 국경역인 도문에까지 나와서 영접해드리였다. 거기에는 세계 어느 나라 국가수반들보다 조선의 김정일동지를 현대의 가장 위대한 령도자로 흠모하는 국무위원의 진정이 깔려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외교가 체질화될 정도로 그 분야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국무위원이지만 가식없이 소탈하고 겸손한 그에게 무척 정이 가시였다.

《지난해 중국방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국무위원동지가 먼 로정을 전기간 동행해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를 계속 동행하느라 힘들것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많은 중국일군들중에서 총비서동지를 오래 모시고다니는 행운이 저한테 차례진것을 기쁘게 생각할뿐입니다.》

대병국은 진심을 터놓았다.

《제가 놀라운것은 총비서동지께서 중국에 오시여 5일째 렬차행군을 하시면서 동북지역과 화동지역의 많은 곳을 돌아보시느라 몹시 피로하시겠는데도 왕성한 정력에 넘쳐계시는것입니다. 총비서동지의 건강과 안녕을 책임진 저로서는 정말 기쁩니다.》

《국무위원동지와 중국동지들의 관심이 큰 덕분입니다.》

《저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는데 총비서동지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총비서동지를 저의 고향인 귀주성에 한번만이라도 모시고싶습니다. 저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 성이 가난하여 자랑거리는 별로 없지만 모태주자랑은 있습니다. 우리 귀주성은 중국 모태주의 고향입니다. 제가 직접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고향땅에 가서 50년 묵은 향기로운 모태주를 대접해드리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귀주성에 가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시간나마 국무위원과 정에 넘치는 담화를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렬차에 탄 중국동지들과 국무위원을 데리고 식당칸으로 가시였다.

《별로 차린것이 없습니다. 공식적인 축배사를 하느라 하지 말고 가정적인 분위기속에서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를 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국무위원의 잔에 《평양》술을 부어주시고 조선김치를 맛보라고 그릇을 당겨놓아주시였다.

렬차의 고르로운 동음속에 수저가락소리와 즐거운 말소리가 울렸다.

그이께서는 대병국국무위원의 얼굴에 비낀 서글픈 표정을 띄여보고 물으시였다.

《얼굴색이 좋지 않은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총비서동지… 총비서동지를 모시여 행복한 때에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머리희슥한 대병국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나 떨렸다.

《저는 머지않아 퇴직하게 됩니다. 국무위원직을 그만두면… 앞으로 김정일총비서동지를 더는 모실수 없게 될텐데…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집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세월의 흐름을 어찌할수 없어 괴로와하는 국무위원을 어떻게 위로하실지 몰라 그의 빈잔에 술을 부어주시였다.

《너무 상심해하지 마십시오. 중국의 옛 성인인 로자도 말했지요. <공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가야 한다.> 국무위원동지는 중국외교사에 남긴 공적이 큽니다. 더우기 조선과의 대외관계에서… 새 세기에 들어와 조중친선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올려세우는데서 국무위원동지가 사심없이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대병국은 손으로 젖어드는 눈굽을 문대고는 김정일동지께서 부어주신 불빛이 반짝거리는 술잔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국무위원동지, 우리들사이에 맺어진 우정을 위하여 잔을 듭시다. 앞으로 퇴직한 다음에 가족을 데리고 아무때고 조선에 놀러오십시오. 내가 중국에 다시 오면 당신을 꼭 찾겠습니다. 조중 두 나라 인민은 영원한 전우입니다.》

그이의 후더운 말씀에 목이 꽉 멘 대병국은 겨우 입술을 움직였다.

《영원한 전우… 고맙습니다, 총비서동지!》

×

 

김정일동지께서는 베이징에서 호금도총서기와 회담하시였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를 대표하여 정일총비서동지께서 또다시 중국을 방문하신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총서기동지의 진심으로 되는 초청과 훌륭한 환대에 사의를 표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짤막히 인사말씀을 하시였지만 호금도총서기에 대한 정이 흐르시였다.

이번에 호금도총서기는 외교관례를 벗어나 국무위원을 먼 국경역에까지 파견하여 마중하도록 하였으며 매일 국무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일동지께서 불편한 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였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김정일동지와 상봉하고 담화를 나눈것은 외신보도들이 대서특필한바와 같이 《미국대통령을 포함해서 중국을 방문한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은 꿈도 꿀수 없는 최대의 특혜》였다.

《우리는 총비서동지께서 김정은대장동지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인민은 조선의 3대령수이신 젊은 김정은대장동지를 몹시 보고싶어합니다.》

호금도총서기의 말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중국인민의 호의를 우리 대장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조선로동당창건 65돐 열병식때 조선을 방문한 우리 법무위원도 그렇고 공안부장과 수행기자들모두가 김정은대장동지의 출중한 인격에 몹시 감탄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주석동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세계제일의 미남이시고 땅크를 직접 몰고가면서 명중포사격을 하시는 보기드문 무관형의 령도자이시라고 칭송하고있습니다.》

김정은대장이 그무렵에 우리 당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사업을 보좌해왔습니다. 내가 조선에서 강성국가건설을 위해 현지지도를 많이 하고 정세가 긴장하지만 이렇게 중국도 방문하면서 마음놓고 대외활동을 할수 있는것은 우리 대장이 군사를 비롯해서 당과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다 맡아 처리하기때문입니다.》

김정은대장동지가 계시는건 총비서동지의 복이고 조선의 행운입니다.》

《총서기동지, 나는 이번 중국방문을 통하여 두 나라 로세대령도자들께서 몸소 맺어주신 전통적인 조중친선이 참으로 귀중하다는걸 다시한번 뜨겁게 느꼈습니다. 중국땅 어데가나 우리를 친혈육의 정으로 맞아주고 중국동지들이 지난 세기 항일혁명전쟁에서 조선혁명가들이 흘린 피와 공적을 잊지 않고있는것이 기쁘게 생각되였습니다.》

총비서동지의 말씀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니 항일의 전장인 동북지역의 젊은 사람들마저 자기 땅의 간고한 력사를 잊어버리고있습니다. 중조친선의 력사적뿌리와 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으며 그것이 오늘날 동북아시아평화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후대들이 잘 모르고있습니다. 그런걸 총비서동지께서 깨우쳐주셨습니다. 총비서동지의 중국방문에서 가장 큰 성과는 두 나라간의 전략적의사소통과 경제무역합작을 발전시키신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중조친선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가도록 해주신것입니다. 총비서동지께서 수만리 중화대지를 다니며 바치신 그 로고에 대해 정말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건 다 호금도총서기동지와 중국동지들이 조중친선관계를 중시한 덕분입니다. 앞으로 쌍방이 여러 분야에서 래왕을 밀접히 하면서 국경을 접한 도들에서 우호적인 합작교류를 강화하고 두 나라 청소년들의 체육, 문화교류를 중시해나가면 전통적인 조중친선을 한계단 더 발전시킬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내가 총서기동지한테 먼저 사의를 표시해야 할 문제인데… 알다싶이 지난해말에도 그랬지만 올해 들어와서도 미국은 우리의 평화적인 핵동력문제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끌고가 <의장성명>을 채택하려고 못되게 굴었습니다. 조선반도정세를 악화시키고 국제무대에서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파탄시키는데서 유엔안보상임리사국인 중국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감사히 생각합니다.》

《아닌게아니라 미국은 정초부터 유엔무대에서 중국이 조선을 지지하지 못하도록 꽤나 모지름을 썼습니다. 미국의 고위정객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조선의 탄도미싸일이 미국본토에 닿는다고 <위험계선>에 도달했으니 중국이 방관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미국사람들이 반세기전부터 조선반도의 남쪽에 엉뎅이를 디밀고 핵무기를 끌어들이고 핵전쟁연습을 계속해서 오늘의 조선반도핵문제를 산생시키고는 왕청같이 중국사람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하는것은 리치에 닿지 않습니다.

불을 놓은 사람이 그 불이 자기 집에 타번질것 같으니 애매한 다른 사람보고 불을 끄지 않는다고 하는것은 사실상 언어도단입니다.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중국은 조선반도핵문제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조선반도핵문제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아니라 반드시 6자회담에서 토의해야 합니다.》

《총서기동지가 조선반도정세를 객관적으로 공정히 평가하는 좋은 말을 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나서 계속하시였다.

《조선반도를 비핵화할데 대한 우리의 립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중국측과 긴밀히 교류하고 협조하여 하루빨리 6자회담을 재개하며 조선반도의 긴장격화를 막고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 올해는 조중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체결 50돐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계기로 조선과 중국은 전략적의사소통을 강화하는 동시에 경제무역합작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발전전망이 큰 중국 동북지역은 조선과 접하고있고 산천도 류사하고 공업구조가 비슷한것으로 해서 무역과 합작을 더욱 활성화할수 있습니다. 호혜공영의 원칙에서 중국기업들이 조선에 투자하는것을 환영합니다.》

《중조친선뉴대의 좋은 정치관계에 경제협조를 따라세우시는 총비서동지의 의지를 높이 평가합니다. 압록강대교건설공사는 벌써 그 첫걸음을 내짚었습니다.》

《압록강대교건설공사는 조중친선우호합작의 새로운 상징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는데 만족하시였다.

호금도총서기는 저녁에 김정일동지의 중국방문을 환영하여 인민대회당의 최고급연회장인 금색대청에서 성대한 연회와 특별예술공연을 마련하였다.

호금도총서기는 김정일동지께서 기뻐하시도록 전해의 두차례 중국방문시 그이와 상봉했던 사람들을 거의다 연회에 참가시켰다. 국가부주석과 당정치국 상무위원 4명이 참가했는데 이것은 중국이 다른 나라 국가수반들을 위해 차리는 연회에서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최고급수의 환대였다. 호금도총서기는 정일총비서동지께서 예술에 조예가 깊으시기때문에 품을 들여 최고수준의 공연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전국각지의 명배우들을 데려왔으며 어제는 새벽 2시까지 시연회를 하였다. 호금도총서기는 환영연회의 음식차림표를 직접 보고 비준하였고 김정일동지께 중국의 유명한 모태주를 드리도록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근 6일간에 걸치는 중국방문의 로정에 쌓인 피로를 가시지 못하셨지만 기분이 무척 좋으시여 호금도총서기의 격동적인 연설을 들으시였다.

호금도총서기는 조선동지들과 함께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조강화의 정신에 기초하여 중조친선협조관계를 부단히 발전시킬 의지를 피력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연설에서 9개월만에 또다시 중국을 방문하여 산과 강이 잇닿아있는 친근한 이웃이며 형제인 중국인민들의 각별한 친선의 정을 후덥게 느꼈다고 말씀하시였다.

동북지역과 화동지역을 비롯한 광활한 중화대지에서 근면한 중국인민이 이룩하고있는 거창한 변혁과 발전을 자기의 성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 복잡한 국제정세속에서도 변함없이 거대한 생활력을 발휘하고있는 전통적인 조중친선은 공동의 위업인 사회주의건설과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두 나라 인민들의 정의의 투쟁을 더욱 힘있게 추동하게 될것이다.

나는 우리의 이번 중국방문이 력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우리 두나라 인민들의 마음속에 굳건히 뿌리내린 전통적인 조중친선관계를 보다 활력있게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훌륭한 계기로 되리라고 믿는다.

《조중친선은 백두산의 천연수림과 같이 영원히 푸르청청할것이며 압록강의 도도한 흐름과 같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변함없이 계승되고 강화발전될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연설을 마치시자 우렁찬 박수갈채가 장내를 진감하였다.

총비서동지…》

호금도총서기는 김정일동지와 축배잔을 찧고 저으기 흥분되여 말했다.

《중국격언에 <훌륭한 이야기를 들으면 절을 한다>고 했습니다. 총비서동지께서 우리 두 나라의 영원한 친선에 관한 훌륭한 정의를 해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옳습니다. 백두산수림과 압록강흐름은 영원할것입니다. 중국과 조선의 친선은 세계 수많은 나라들간에 문건이나 담화로 공약된 친선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중조친선은 지난 세기 항일혁명전쟁과 동북해방전투, 조선전쟁에서 피로써 맺어진 우정이고 친선입니다.》

《그렇습니다. 문건이 아니라 두 나라 대지에 피로 씌여진 친선이기때문에 세월의 풍파에 끄떡없을것입니다.》

도자기형식의 배경을 한 화려한 무대에서는 중국예술인들의 공연이 진행되고있었다.

중국명배우들은 《초원에 솟아오른 태양》, 《홍루몽》련곡 《사랑의 인사》… 중국노래들과 세계명곡들, 조선노래 《사향가》, 《도라지》, 《꽃과 같이 피여난 정성》을 세련된 기교로 잘 불렀다.

《예술공연이 우아하고 고상하며 수준이 높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만족해하시자 호금도총서기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총비서동지께서 예술에 다재박식하시기때문에 마음에 드시겠는지 은근히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일군들에게 솜씨를 발휘해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중국텔레비죤련속극 <모안영>을 잘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 련속극을 보면서 눈물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총비서동지, 나도 집에서 아들과 딸, 손자, 손녀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후대들을 중조친선의 력사로 교양하는데서 문학예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것을 다시금 느끼였습니다.》

그이께서는 공연을 보시면서 중국지도간부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조선에서 총비서동지의 지도밑에 가극 <량산백과 축영대>를 <홍루몽>에 못지 않게 창조하여 성황리에 공연하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시한번 정식 초청합니다. 가극 <량산백과 축영대>를 하루빨리 중국에 와서 공연하도록 하여주시였으면 합니다.》

《인차 중국에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홍루몽>때처럼 너무 오래동안 중국에 머무르면 페를 끼치게 될것입니다.》

뒤쪽연회탁에서 큰 키에 얼굴이 넙적한 낯익은 중국일군이 다가와 그이께 인사를 올렸다. 지난해 10월에 중국공산당대표단을 인솔하고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일군이였다.

《아, 법무위원이구만. 그새 잘있었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법무위원이 부어드리는 축배잔을 들고 생각나신듯 말씀하시였다.

《<장부일언중천금>이란 말이 있지요.》

법무위원은 약간 얼떠름해서 그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일군들이 그러는데 중국의 <사법장관>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의 에두르신 지적의 뜻을 깨달았는지 법무위원은 낯색이 벌거우리해졌다. 호금도총서기는 저으기 긴장한 얼굴색이였다.

《법무위원은 우리 일군들이 제기하는 수소정제탑납입계약이 리행되도록 하겠다고, 중국에 돌아가면 계약을 지키지 않는 무역관계자들을 감옥에 처넣겠다고 으름장을 펴기까지 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애로가 있는가요? 우리 나라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는 중국에서 수소정제탑들이 도착하지 않아 대상건설을 완료 못하고 비료생산에 큰 지장을 받고있습니다.》

법무위원은 엄한 낯빛으로 묻는 호금도총서기에게 허리를 굽히고 사연을 루루이 설명하였다. 듣고난 호금도총서기는 미안쩍은 기색을 지었다.

총비서동지, 정말 안되였습니다. 내가 병치료를 하다니니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법무위원이 평양에 갔다와서 나한테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상무부가 수소정제탑들을 실어보내도록 당장 대책을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러면 세계적판도에서 미국의 초대국지위를 무너뜨린 중국이 오늘날 그런 별치 않은 무역관계문제를 가지고 미국의 눈치를 본다는게 말이 안되지요. 수소정제탑들은 미국사람들이 걸고드는 <2중용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내가 잘 아는데 수소정제탑은 우리 나라 흥남비료련합기업소의 갈탄가스화계렬공사에서 탄산가스청정계통에 쓰이는 요긴한 설비입니다. 비료생산, 알곡, 인민생활과 련관된 민수용화학설비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해당 기술자들과 상무부무역관계자들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수소정제탑이 우리나라 군수산업에 쓰인다고, <와쎄나조약>에 위반된다고 방해책동을 하는데 반론을 펴지 않고 속수무책이였습니다.

상무부의 일부 담이 약하고 협애한 무역일군들이 중국이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실시하는 대국으로서 절대로 그 누구의 손탁에서 놀아나지 않는다는걸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총비서동지의 지적이 참으로 온당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불미스런 일이 생기지 않을것입니다. 수소정제탑납입계약기일을 어긴건 마땅히 식량으로 보상해드리겠습니다.》

2시간에 걸치는 연회와 공연은 거의 끝나가고있었다.

금색대청의 모든 사람들이 아쉬운 심정을 금치 못하고있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호금도총서기에게 부탁하시였다.

《연회마감으로 내가 좋아하는 중국노래를 한곡 불러주십시오. 왕신이 작곡한 <조국을 노래하노라>입니다.》

공연에 출연하였던 배우들이 다시 무대에 나와 중화인민공화국창건 한돐에 즈음하여 왕신이 작사, 작곡한 중국인민들이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성홍기 펄펄 날려라 승리노래 높이 울려라

    노래하자 사랑하는 조국 부강번영하여간다네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황하장강을 넘고넘어

    넓고 수려한 강산은 우리의 정다운 고향

    영웅적인민은 일떠선다네 우리의 단결은 강철이라네

    …

 

김정일동지께서 호금도총서기와 함께 일어서서 박수를 치시자 연회참가자들은 금색대청이 들썩하게 배우들과 같이 합창했다.

 

    근면하고 용감하라 독립자유는 우리의 리상

    모든 시련을 이기고 오늘의 해방을 찾았네

    …

 

《<조국을 노래하노라>는 명곡입니다. 오성홍기를 날리며 부강번영하는 조국을 일떠세우는 중국인민의 사상감정이 진하게 안겨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금도총서기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씀하시였다.

호금도총서기는 한곡의 노래로 연회마감분위기를 흥분의 절정에 끌어올리시는 그이께 매혹을 느끼고 감동하였다.

총비서동지, 일찌기 모택동동지와 주은래동지는 오성홍기에 중국혁명의 승리를 위해 조선혁명가들이 흘린 붉은 피도 스며있다고 말했습니다.》

합창이 끝났으나 장내에는 조중친선의 정이 격랑처럼 굽이치고 메아리는 오래도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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