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1 장

5

 

박송봉은 한유준을 비롯한 여러명의 기술자, 기능공들을 자기 차에 태워 먼저 신의주로 떠나보냈다. 그리고는 설비운반을 책임진 부지배인 권하세와 30톤급견인차의 운전조수석에 나란히 틀고앉아 전속으로 내달렸다. 련결차에는 깔목과 버팀대, 바줄과 방수포 등이 한무지 실려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나무밑둥을 잘라낸것처럼 체격이 튼튼한 권하세는 너무 일찌기 벗어진 이마를 가리우기 위해 총각때부터 모자애호가가 된 사람이였는데 봄, 가을철에는 주로 골텐으로 만든 납작한 캡을 쓰고 여름철에는 전이 넓은 초립모를, 겨울에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약혼기념이라고도 하는 곰털모자를 쓰고다녔다.

그 곰털모자야말로 권하세의 머리에 직접 돋아난것처럼 그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고 공장사람들이 이야기한다는것을 박송봉도 알고있었다. 20여년간 공장에서 일해오면서 로동자로부터 자재인수원, 직장장, 설비과장을 거쳐 부지배인으로까지 성장하는 나날에 권하세는 왕성한 사업의욕과 제낄손, 드센 성격으로 하여 사람들의 신망을 받아왔다. 그를 두고 벌써부터 분공장지배인감이라는 소문이 나돌고있는것이 우연하지 않았다.

그들이 교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필요한 수속을 거친 설비들이 짐함채로 적치장에 나와있었고 그중 포장을 터쳐놓은 설비앞에서 먼저온 공장사람들이 웅성거리고있었다. 박송봉과 권하세가 나타나자 그들은 당황한 기색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어째 그러오? 무슨 일이요?》

권하세가 물어보았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박송봉은 진한 기계기름냄새를 맡는 첫 순간에 벌써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오랜 리용과정에 열을 받고 점도가 변해서 나프탈린과 파라핀 등의 혼합물로 이루어진 원유계윤활유의 고유한 냄새가 아니라 불탄 집에 들어갔을 때처럼 불쾌하고 께름한 자극을 주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던것이다. 아니나다를가 짐함속에는 유럽에서 오래전에 개발리용한 볼반-후라이스반형식의 수평종합가공반이 들어있었는데 30개정도의 공구를 저장할수 있는 원판식공구쌈에는 녹이 쓸었고 주축함이 우아래로 이동할수 있도록 량측면에 배치한 문형기둥안내면에는 가느다란 실금까지 나있었다.

《제길할!》 권하세가 짐함뚜껑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발밑에 놓여있는 쇠망치를 가리키며 《저쪽것도 마저 보기요!》 하고 소리쳤다.

《그만하시오, 부지배인동무.》

박송봉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나직했으나 사람들을 멈춰세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구태여 다른 짐함들까지 개봉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박송봉은 제 자식의 얼굴에 난 흉터를 만져보듯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실금을 쓸어보았다.

불현듯 장군님께 전화보고를 드리던 일이 떠오르면서 속이 뜨끔해왔다. 박송봉을 더욱 놀라게 한것은 안시학이 가지고온 설비들이 안흥공작기계공장에서 자체로 생산할것을 궐기하고 이미 설계전투에 들어간 기대들이라는것이였다. 얼마전 기계공업부장과 함께 공장에 찾아가 로동자, 기술자들과의 협의회에까지 참가한 안시학이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는 공장사람들을 믿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렇게밖에는 달리 생각할수가 없었다.

다음순간 박송봉은 자기 역시 그 누구를 비관할 자격을 상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로왔다.

령수증같은것을 손에 든 안시학이 회색봄외투자락을 펄럭거리며 적치장입구에 나타난것은 그때였다. 박송봉이 마중온다는 련락을 미리 받았던지라 안시학은 조금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보통걸음으로 다가와 《1부부장동지, 다녀왔습니다.》 라고 실무적인 도착보고를 했다. 박송봉은 짧게 한마디 했다.

《공장동무들을 만나보시오.》

안시학은 그때까지도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했는지 몇발자국 걸어가다가 면식이 좀 있는 한유준과 마주치자 《어떻습니까? 한 몇년쯤 굴린건데…》 하고 손짓으로 설비들을 가리켰다.

《너무합니다!》 입을 연것은 권하세였다. 《이거야 공장이 아니라 제강소 파철더미로 실어보내야지요.》

《뭐요?!》

안시학은 침착한 사람이였지만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출장길에 말할수 없이 큰 심리적고충을 겪은 안시학이였다.

이 한대, 한대의 설비들이 어떻게 마련된것인지 당대 공장울타리밖을 벗어나보지 못한 사람들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두 사나이가 마주서자 주위가 갑자기 좁아지는것 같았다.

《그만하시오.》 박송봉이 손을 내리그었다.

《부지배인동무는 빨리 설비들을 차에 옮겨싣소. 그리고 부부장동무는 나와 같이 가야겠소. 견인차를 뒤에 달고 출발하겠소.》

신의주를 출발한 후 룡천, 염주를 지나 절반길에 채 못미쳐서 소모령을 넘었을 때 뒤따르던 견인차가 보이지 않았다.

박송봉은 차를 멈추고 오던 길을 되짚어 걸어갔다.

안시학도 차에서 내려 대여섯보가량 사이를 두고 따라왔다.

견인차는 금시 령을 내려서는 길녘에 고개를 외로 틀고 불편스럽게 서있었는데 권하세며 공장사람들은 셈평좋게 도로 한가운데 퍼더버리고앉아 담배연기를 풀풀 피워올리고있었다. 그들은 먼발치에서 박송봉을 알아보고 땅바닥에 담배불들을 비벼꼈다.

《어디 고장이요?》

《아닙니다.》 권하세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한데 왜 섰소?》

《이 꼴로는 대낮에 공장에 못 들어가겠습니다.》

아까 안시학의 면전에서 불만을 터뜨리던것을 봐도 그래 성미가 여간 아니였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심란해있던 박송봉은 권하세의 행동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어성을 높였다.

《뭐요? 배짱을 부리는건가!》

《스스로 화가 나 그럽니다. 이런줄도 모르고 외국제설비를 들여다가 덕을 볼가 했던 내자신이 미워서 그런단 말입니다.》

권하세도 수입설비에 은근히 기대를 가졌던 모양이였다.

한 일군이 범한 잘못이 아래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것인가. 한 일군이 저지른 잘못이 장군님께는 또 얼마나 큰 아픔을 드리게 될것인가. 권하세에게 노염은 터뜨렸지만 박송봉자신도 쓸모없이 된 수입설비들을 공장까지 운반해서는 어떻게 하겠는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안시학은 떨어져오던 간격을 유지한채 길가에 홀로 서있었다. 봄바람이 그의 봄외투자락을 흔들고있었다. 주머니에 두손을 찔러넣고있는 그의 모습에도 고뇌가 비낀듯 했다.

선천읍을 지나 견인차는 안흥쪽으로 갈라지는 도로를 타고 남은 백여리길을 가게 되였고 박송봉과 안시학은 곽산, 정주방향으로 그냥 남하하였다. 평양에 도착한것은 해질무렵이였다.

차가 당중앙위원회청사를 가까이했을 때에야 박송봉은 안시학에게 장군님께서 부르신다고 알려주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힘차게 나붓기는 당기발이 이날따라 별스럽게 박송봉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그런가 하면 구내길에 활짝 핀 살구꽃들이 진한 향기를 풍기며 다소나마 긴장감을 풀어주는것 같았다. 그들이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총련합영제품전시회장을 돌아보시고 평양시에 새로 놓은 궤도전차의 관리운영사업과 관련하여 정무원총리와 담화를 나누시느라 밀렸던 사업을 처리하고계시였다.

《잠간만 기다리시오.》

우선 두사람에게 자리를 권하신 그이께서는 갖가지 경공업제품들이 그려진 도안집의 여백에 한단락정도 친필을 남기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그리고는 인위적인 간격을 없애시려는듯 책상주위를 빙 돌아 그들이 앉아있는 긴 쏘파의 첫머리쯤에 허물없이 자리를 잡으시였다.

《안동문 얼굴색이 좋지 않구만.》

《아닙니다. 그저 이번길에 물이 좀 맞지 않아서…》

《물이 맞지 않는다? 모를 소리요. 그게 뭐 한두번만 다닌 길이라구. 아마 이번 출장길이 그닥 즐겁지 못했던게지.》

정통을 찔리운 안시학은 흠칫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동유럽에 도착했을 때부터 안정을 잃었다.

아무리 세월이 변했기로서니 사회주의리념아래 함께 숨쉬며 공동의 번영을 웨치던 체면이야 남아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떠났던 걸음이였다.

그가 처음으로 들렸던 나라의 공작기계 및 공구공업성 부상이라는 사람은 몇해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토시바회사사건까지 거들면서 《이중용도》에 쓰일수 있는 특수설비들을 넘겨주는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안시학은 마치 자기가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의 어느한 분과회의장에 앉아있는것 같았다. 그가 물러서지 않고 하도 끈질기게 달라붙자 상대측에서는 정 그러면 수출은 불가능하지만 기술협조를 해줄 용의는 있다고 하면서 그러되 봉사비를 시간별로 그것도 미국화페로 지불할것을 요구했다.

안시학은 돌아섰다. 다음 찾아간 곳은 한때 사회주의나라들의 기계전시회가 열리군 하던 까르빠띠산줄기가 뻗어나간 아름다운 나라였다.

젊은 시절의 안시학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가 찍힌 공작기계를 가지고 전시회에 진출하여 금메달을 받아오던 추억깊은 고장이기도했다. 만약을 생각해서 몇대 가지고 떠난 《안흥3》호, 《희천5》호선반이 그 시절을 영예롭게 장식했었다.

하지만 그런 애잡깔한 추억따위는 소용없었다. 경제의 사영화, 국영공업의 민영화가 시작되여 하루아침에 무슨 리사장이니, 총회장이니 하는 직분에 오른 이전 공산당원들이 전후복구건설시기에 보내주었던 기계값부터 청산하자고 하였다, 지금 자기 나라에서는. 맑스주의혁명시기에 개인으로부터 몰수하였던 토지와 농기구, 지어 가축까지 이전 소유자들에게 돌려주고있다고 하면서…안시학은 애써 자신을 눅잦히며 말했다.

좋다, 당신네가 근 40년전에 주었다는 낡은 설비보다 몇배로 훌륭한, 바로 당신네 나라에서 열렸던 기계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은 기계들을 주겠으니 오히려 내가 거스름을 받아야겠다.…

상대측에서는 길게, 아주 고약하게 웃었다.

통역이 에둘러 전달하느라 했지만 외국어에 능한 안시학은 그들이 쑹얼거리는 소리를 다 알아들었다. 지금이 어느때게 그런 쇠덩이를 들고다니는가? 저 사람이 우릴 바보로 아는게 아닌가?…

대외사업일군은 그 개인의 인격만이 아닌 국가의 존엄을 대표한다고 말할수 있다. 하기에 안시학은 이따금 갓 새 직무에 배치되여 열정에 북받쳐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말하군 하였다.

《우월감을 가지고 사시오. 혹 그것이 남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수 있어도 모자라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수 없소!》

그날 저녁 숙소에 돌아온 안시학은 종이장우에 낯익은 영문자를 적어보았다. 인생의 가장 보람찼던 추억이 깃들어있으며 사랑하는 조국의 숨결과 체취가 느껴지는, 자기 한생의 영원한 존엄이라고 생각했던 《Made in D. P. R. K.》 라는 상표글자를 쓸어보며 안시학은 눈물을 흘렸다. 숱한 중소기업체들이 파산되여 신문마다 강매, 방매, 경매소식이 꼬리를 물고 실리는데 눈길이 가기 시작한것은 그러한 모든 《공식적인 사업》에서 실패한 뒤였다. 파산된 기업의 낡은 기계를 사들인다는것은 안시학에게 있어서도 처음으로 되는 부끄럽고 괴로운 일이였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체면이 깎이운들 뭐라는가, 공장조업이 늦어지면 나라의 존엄이 손상된다.…

《목을 좀 추기시오.》

김정일동지께서 물을 따라 안시학에게 권하시였다.

안시학은 자기가 너무 제 감정에만 빠져 주위를 망각하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할말, 못할 말 다한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속이 후련했다. 이분 아닌 누구앞에서 이렇듯 자기를 깡그리 드러낼수 있으랴. 그는 물을 마시지 못하고 고뿌를 매만지기만 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조용히 뇌이시였다.

《그것이 나라를 위한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박송봉이 더 참지 못하고 일어서려는것을 한손으로 제지시키시며 그이께서는 나머지 설비는 어떻게 해결하려는가고 물으시였다.

《저,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일부 건설대상들의 조업기일을 미루든가 아니면…》

《아니면 , 뭐요?》

《최소한 건설규모라도 적당히 조절하면서…》

《지금 동무가 말하는 일부 대상들이란 구체적으로는 당 제6기 제14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른 건설대상들을 의미하는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의 끝을 약간 늘구시며 안시학을 바라보시였다. 3개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박식가, 대학시절부터 열정가로 소문이 났던 사람…

문득 수십여년전 김일성종합대학에 첫 등교를 하던 날이 떠오르시였다. 새 교복차림에 새 학습장들을 가려넣은 가방을 들고 첫 등교길에 오를 때 가슴속에 차오르던 환희를 잊을수 없으시였다. 그러나 개학날의 대학공기는 기대했던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당의 요직에 틀고앉아있던 반당수정주의자들은 흐루쑈브의 우리 나라 방문을 앞두고 전례없는 환영행사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세대당 꽃보라를 얼마씩 만들어바치라는 지시를 내리먹였는가 하면 늙은이들에게까지 로어인사말을 배워주고 검열을 하는 등 별 망동을 다 부렸다.

가슴아픈것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까지 며칠간 수업을 전페하고 쏘련노래보급을 벌려놓은것이였다.

그때 경제학부입학생들에게 쏘련노래 《마야 로지나》를 배워주던 사람이 안시학이였다. 숙성한 생김새며 몸가짐을 보고 처음에는 모두 상급생인가 했지만 알고보니 그도 신입생이였다.

그이께서 학급동무들을 이끌고 룡남산마루에 오르시여 이 땅에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배워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리라는 불같은 맹세를 다지실 때 그 목격자들속에 안시학도 있었다.

《동무의 로어수준이 괜찮은것 같습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대답을 못하였다.

《함께 손잡고 내 나라를 위한 공부를 합시다.》

이렇게 그이께서는 안시학과 첫 인연을 맺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룡남산에서 다진 맹세대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을 생명으로 간직한 혁명인재들로 학생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오시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때 안시학의 모습은 훌륭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아래에 내려가 담화도 하고 협의희에도 참가했다는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왔는가? 그야말로 달리는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온것이다.

차창밖으로는 붉은기가 펄럭이고 사람들이 오간다.

혁명가요가 우렁차고 마치와 삽과 주먹들이 번쩍인다.

허나 그는 고급승용차의 푹신한 좌석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면서 맑은 차창너머로 그들을 바라볼뿐이다. 어쨌든 그들이나 승용차나 같은 길을 달리고있으니만큼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수도 있다, 나는 들끓는 현실의 한복판을 달리고있다고.…

(어떻게 할것인가?)

그이의 심정은 괴롭고 착잡하시였다.

《동무는 돌아가서 지시를 기다리시오.》

《알았습니다.》

안시학은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섰다.

그가 방에서 나가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내가 좀 지친것 같지 않소?》 하고 박송봉에게 물으시였다.

박송봉은 대답을 망설이였다.

피로가 력력한 모습을 뵈옵느라면 백번이라도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올리고싶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주기를 바라시는 말씀같아 대답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안시학동무는 나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은 사람이요.》

《알고있습니다, 장군님.》

《하기야 작은 문제가 아니지. 이제는 기름 한방울도 거저 내놓겠다는 나라가 없소. 그래서 지금 승천화학공장의 가공능력을 몇십만톤 더 늘여놓고도 배를 불리워주지 못하고있소. 콕스나 생고무 같은것도 마찬가지요. 어려워졌소.》

사실 그렇다. 전세계의 정치경제구조가 무섭게 뒤흔들리고있는데 우린 아무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닌보살을 한다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하며 일종의 허세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을것이다.

그런 속에서 안시학은 우리의 사상과 제도, 과학기술과 경제를 대표하여 자본주의와 대면해야 한다. 안시학이 자본주의사상에 물젖었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사회주의경제가 낳은 물질적성과가 자본주의에 비하여 일부 기술적으로 낡아진데로부터 감수한 결론이 잘못된것이다. 우리의 리념이 자본주의가치관을 상대로 승리하려면 그 생활력과 물질적성과도 담보되여야 한다.

안시학이 낡은 기계를 들여오면서도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것은 그의 사상적준비가 미약한데도 원인이 있지만 우리의 기계제작기술이 응당한 높이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자본주의세계와 직접 마주서게 된 객관요인도 작용하지 않았겠는가. 이를 부인하고 그의 사상과 신념이 떨떨해서라고만 밀어붙인다면, 나라의 기계제작기술이 점차 뒤떨어지고있는것을 모르는체 하고 그만을 탓한다면 앞으로 또 다른 안시학이 몇이나 나올지 모른다. 사상적우월성만이 아니라 자기것에 대한 자부와 존엄을 채워주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사색이 이르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안시학이 범한 잘못이 자신의 짐처럼 실려오는것을 느끼시였다. 기계공업의 현대화, 결국 이것은 기계문제만이 아닌 인간문제, 신념문제였다

(해야 한다. 기계공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그 존엄과 운명을 위하여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기술적해결이기 전에 인간문제의 해결이다. 나아가서 우리의 사상을 리론적으로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담보하는 사상전이다.)

박송봉이 자기를 비판했다.

《일이 이렇게 된데는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수입설비를 다문 몇대라도 해결해오면 조업기일을 보장하는데 유리하지 않겠는가고 은근히 기대를 가졌댔습니다. 결국 나라에 손해를 주고…》

《손해? 내가 가슴아픈것은 몇푼의 경제적손실보다도 믿었던 사람들이 흔들리고있는거요. 어려운 때 나라를 생각한다는게 안시학동무가 말하는 그런것이겠소? 이걸 읽어보시오.》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번져진채로 놓여있던 문건을 드시였다.

안시학이 작성했다는 봉화기계공장 실태료해자료였다.

《아무래도 봉화기계공장에 동무가 가봐야 할것 같소. 그곳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오. 나는 공정한 보고를 기다리겠소.》

박송봉이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만!》하고 그를 불러세우실번 하였다.

그 공장에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가 가있는데 리정이라고, 동무도 기억나지 않는가고 한마디라도 튕겨주고싶으시였다.

공화국창건 40돐기념 공작기계전시회장에서 리정과 만나던 이야기를 하면서 과학기술이 기계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시대가 왔습니다라고 하던 박송봉의 진지한 표정이 떠오르시였다.

하지만 더 다른 말씀을 않으시였다. 자그마한 편견도 없는 공정하고 원칙적인 보고를 기다리시려는것이였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걸음으로 돌아가던 안시학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오직 현실만이 그를 깨우칠수 있다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자기가 믿지 못하였던 로동자, 기술자들이 어떻게 분발하여 일떠서는가를 보면서 그들과의 성실한 교감과 투쟁속에서 자기를 깨달을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하시였다.

이렇게저렇게 생각이 많아지신 그이께서는 안시학이 비우지 못하고간 옥색물고뿌를 손에 들고 추억에 잠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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