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5 장

1

 

당에서 취한 조치에 따라 련하기계회사가 대동강기슭 수도의 중심부로 옮겨온 후 리정은 매일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였다.

오랜 세월 합숙과 사무실의 딱딱한 나무침대에만 익숙되였던 그는 한동안 퇴근시간이 몸에 붙지 않아 책상우에 자명시계까지 세워놓았다.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몸가까이 다가온 가정의 존재를 느끼였고 퇴근시간의 의미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그해 김장무우를 친다 만다 하는 소리가 날무렵에 리정은 자령기계공장 2단계현대화를 위해 현지로 떠나게 되였다.

《설을 또 외지에서 보내게 됐구만.》

리정이 출장준비를 하고있을 때 집에 찾아왔던 장모가 그를 걱정한다기보다 오는 설날에도 제 집에는 열쇠를 잠가놓고 지성이와 함께 친정에 찾아올 딸의 정상이 념려되는듯 하는 말이였다.

일단 출장을 가면 두석달은 보통이였다.

《뭘요, 이번 출장은 크게 시간이 들게 없으니 잘하면 설전에 돌아올수도 있습니다.》 하고 리정은 집을 떠났다.

늦은 밤차로 자령에 도착하니 최수광이 저녁도 건느고 역에까지 차를 끌고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시오리길을 걸어가지 못할가봐 마중을 나왔는가고 하자 최수광은 세멘트구입때문에 출장을 나가있는 권하세로부터 몇번이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면서 그를 차안으로 떠밀었다.

북쪽의 가을날씨는 해가 있고 없고에 따라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심해서 온풍장치가 없는 화물차를 끌고온 최수광은 차안에 앉아서도 줄곧 목깃을 세워가지고있었다.

《기초공사랑 힘으로 할 일은 거지반 끝냈는데…》 하고 최수광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사장동무의 몫이요. 어차피 오늘 밤은 늦었으니 래일 아침에 기술협의회를 여는것으로 봅시다.》

최수광은 며칠후 공장현지지도기념일을 계기로 궐기모임을 가지고 냅다 돌격을 해야겠다며 다른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궐기모임이 잘되겠는지 모르겠소. 원래는 도당책임비서동지가 참가하기로 되여있었는데 어제 도당에서 전화로 알려오기를 그날 책임비서동지가 공장에 나올것 같지 못하다누만요.》

《그래요? 아마 바쁜 일이 있는게지요.》

《인차 평양에 올라갈거라는 말도 돌아가고…》

《책임비서동지가 평양에요? 그럼 혹시… 소환이라도?!》

《소환이면 좋기라도 하지요. 들리는 말이 책임비서동지가 불치의 병을 만났다오. 어쩌면 2단계현대화가 끝나는것을 보지 못할수도 있다는데 뭐 그렇기야 하겠소만… 도당에서 그런 전화까지 받고나니 가슴이 섬찍해서 그러지요.》

최수광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리정을 숙소에까지 태워다준 최수광은 《혹 피곤하면 늦잠이라도 자시오. 모임시간은 우리가 맞추지요.》 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 인상이 별스레 자극적이였다.

리정은 연형묵에 대한 소문이 좀 과장되였을거라고 생각했다.

연형묵이 정말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아직까지 자강도에 남아있을수 있겠는가. 더구나 장군님께서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됐다. 어지간히 피곤이 쌓였지만 잠이 오지 않아 새벽녘에야 겨우 꼬투리잠에 들었던 리정은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여나 현장을 돌아보러 갔다. 전반생산공정을 통채로 들어낸 2기계가공직장안은 뽈을 차도 될만 하게 넓어보였다. 리정은 매 걸음마다 놓이게 될 설비들과 그 합리적인 공간배치를 타산해보았다.

그러던 리정의 걸음이 문득 멎어섰다.

설계상 그곳은 립체창고를 짓게 되여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와는 상관없는 두툼한 콩크리트구조물이 가슴높이에까지 쌓아져있었다. 지난밤까지 작업이 계속된듯 휘틀안에 세멘트혼합물이 차있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분명 립체창고자리였다. 혹시 로동자들이 여기다 무슨 창고를 짓는다니까 선행작업을 하고있는것은 아닐가 생각해보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오작시공이였다.

유연생산체계내에 속하는 립체창고는 세멘트나 벽돌로 축조하는 일반창고와 달랐다. 그것은 사면이 벽으로 둘러막히고 두툼한 문에 자물쇠가 달리는 건물이 아니라 창고용로보트가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작업을 진행하도록 설계된 개방형구조물이였다.

오작시공이 분명하다고 리정은 생각했다.

쓰인 자재가 아깝기는 하지만 바로잡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것이였다. 리정이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하고있는데 최수광과 공장기사장이 벙글거리며 나타났다. 기사장은 감자찬에 닭알이 짜개져오른 접시를 보고 주방을 불렀다. 얼굴이 부둥부둥한 녀성이 머리를 내밀자 그는 손님대접이 이게 단가고 나무람을 하였다.

《아주머니, 련하기계는 특대우를 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습니까? 그저 무턱대고 나도 반쪽, 너도 반쪽이요?》

《어제 출고받은것으로 하다나니…》

《점심부턴 똑똑히 합시다.》

리정은 깨끗이 비운 밥그릇을 보란듯이 밀어놓으며 《이거 너무 옹색하게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식당음식이라는건 타발을 해야 질이 올라가오.》

최수광도 은근히 기사장의 역성을 들었다.

리정은 식당문을 나서면서 최수광에게 2기계가공직장 유연생산체계구역에 휘틀을 쳐놓은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아, 벌써 봤구만요. 그러지 않아도 말하려댔는데…》

《립체창고를 짓는게 아닙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거지요.》

《예?》

《아, 잠간…》

최수광은 기사장을 외따로 끌고가서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그를 먼저 떠나보내고 리정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리정을 현대화지휘부로 이끌고갔다.

방안에 들어서자 최수광은 큼직한 도면말이를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거기에는 길이 16메터에 높이가 3. 5메터나 되는 대형전망도가 그려져있었다. 련하기계가 바다처럼 펼쳐진 장쾌한 광경아래 《CNC화의 본보기》라고 쓴 붉은 활자가 붓글체로 씌여있었다.

《CNC화의 본보기! 래일이 비낀 대단한 전망도지요.》

《그러니까… 중요하다는게 이겁니까?》

《왜요? 사장동무는 반대인가요?》

오히려 최수광이 이상한듯 되물었다.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설계를 다시 보십시오.》

리정은 콤퓨터탁으로 다가가 보를 벗겼다. 그가 콤퓨터에 외부기억기를 막 꽂으려는데 최수광이 《가만.》 하고 제지시켰다.

《그 설계야 나도 외우고있는건데…》

《그럼 거기에 무엇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지 않겠는데요?》

《알지요, 립체창고를 짓기로 되여있다는걸. 그렇지만 좀 생각해보시오. 유연생산체계의 흐름공정이 거기서 끝나는데 그 절정대목에다가 창고만 하나 덜렁 세워놓으면 섭섭하지 않을가요?》

최수광은 원탁을 빙 돌아가서 사무용지가 몇장 널려있는 책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리정에게 조용히 물었다.

《창고를 옮기면 안되겠소?》

리정은 아연해졌다. 립체창고는 여기에 지어도 좋고 저기에 옮겨도 무탈한 개인집 헛간 같은것이 아니였다. 각종 CNC설비들과 로보트로 이루어진 유연생산세포에서 가공된 제품들이 콘베아를 타고 가닿게 되는 종착점이 립체창고다. 여기서 제품들은 창고용로보트에 의해 품종별로 분류되고 보관됐다가 지령에 따라 다시 필요한 곳으로 실려나가게 된다. 때문에 립체창고를 유연생산체계에 접근시키지 않고 다른 곳에 옮긴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유연생산체계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는걸 아시겠는데요? 우리 몸의 팔과 다리처럼 제자리가 있지요. 그런데 이걸 발기한 사람이 도대체 누굽니까?》

《나요.》

《책임자동무가요?》

최수광으로서는 많은 고심끝에 결심하고 시작한 일이였다.

1단계과업을 수행한 시점에서 공장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변모되였다. 재래식설비들을 거의다 들어내고 련하기계를 도입했으며 부분적으로 유연생산세포까지 꾸려놓았다. 올해 봄부터 련하기계기술보급소가 문을 열어 일반공작기계를 설계하고 다루던 기술자, 기능공들이 콤퓨터수자조종기술을 습득하고 공장기능공학교에서는 몇십년동안 내려오던 교재내용이 달라졌다.

최수광으로서는 자령기계공장현대화에 온넋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가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지도 한해남짓했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주로 설비와 기술지도를 맡은 리정과 달리 최수광은 당앞에서 자령기계공장현대화를 주인들과 함께 직접 책임져야 하는 현대화지도소조책임자인것이다. 이런데로부터 최수광은 공장사람들과 자신을 별개로 보지 않았으며 그들의 일이자 자신의 일이고 그들의 성과이자 나의 성과라는 관점에 서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가 련하기계와 자령기계사이에 서있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자령기계사람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령기계현대화는 어쩌면 그가 인생에서 오를수 있는 마지막봉우리인지도 몰랐다. 최수광이 련하기계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그자신도 인정하다싶이 크게 해놓은 일은 없었다. 생산단위에서 지도단위로 올라와서부터는 더욱 하는 일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무엇인가 인생의 령마루를 딛고싶은 욕망을 느끼였다.

최수광이 더욱 랭정해지기 시작한것은 1단계현대화사업총화가 있은후부터였다. 그가 그처럼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자령기계공장은 련하기계라는 큰 산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모든 성과의 근저와 상상에는 련하만이 있었다.

최수광이 보건대 련하는 자기가 해놓은것이상으로 열매를 거두어들인 반면에 자령기계는 별로 얻은것이 없었다. 그저 련하의 등에 업혀온것뿐이였다. 최수광의 머리속에는 은연중 련하가 차지한 성과는 그를 대표하는 리정의것이며 그와 구별되는 성과만이 자기의것으로 된다는, 따라서 련하의 몫과 구별되는 자령기계공장의 성과와 얼굴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였다.

최수광이 타이르듯 말했다.

《사장동무, 련하가 너무 자기 욕심만 부린다고 생각되지 않으시오? 여기 자령사람들의 심정을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봤는가 말이요? 그들에게도 꿈이 있지요. 자기들의 공장을 온 나라가 다 아는 일터로 만들려는 소중한 꿈이 말이요. 더구나 자령기계를 CNC화의 본보기로 꾸려야 한다는것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이 아니요. 그래서 인민군대의 감나무중대처럼 이름만 불러도 온 나라가 다 아는 그런 공장으로 내세워보자는건데 뭐가 잘못되였소?》

《물론… 그거야 잘못될게 없지요.》

《그런데도 이것을 리해 못한단 말이요?》

《그걸 리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장동무!》 최수광이 리정의 말을 끊었다. 《좀 지나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천이나 자령이나 그저 다 련하판으로 만들어야 좋겠소? 그만하면 련하야 얻을걸 다 얻지 않았소. 이제는 자령사람들에게도 뭔가 자기들의 긍지를 안겨주어야 할게 아니요.》

(그저 다 련하판으로 만든다고? 내가?!…)

리정은 무슨 말인가 하고싶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언제인가 최수광이 그 비슷한 혹평을 하던것이 생각났다. 리정, 너는 심장이 뜨겁지 못하다고, 그런 사람들이 나중엔 자기를 키워준 조국도 혈육도 동지도 몰라보는 유아독존적인간이 된다고…

그러니 최수광은 지금의 형편을 리정이 그때부터 길러온 결함이 낳은 최종적인 결과물로 보고있는지도 몰랐다.

《그럼 둘 다 살리는 방법은 없겠는지…》 하고 최수광이 타협조로 나왔다. 《례하면 이뒤에 립체창고를 세울수도 있지 않겠소?》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자동흐름선이 도중에 잘리는것은 물론이고 앞이 막혀 창고로보트가 제품을 물어들일수 없게 되지요.》

《그야 창고원을 한사람 세워놓으면 되지 않소?》

로보트대신 사람을 세워놓는단 말인가?!

최수광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할말이 없었다.

리정이 침묵하자 최수광은 목덜미가 붉어졌다.

《좋소, 그럼 어디 솔직히 말해봅시다. 사장동무는 무엇때문에 이 공장현대화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시오? 단지 맡고있는 혁명임무라서요? 그것만은 아니지요. 우린 다 한목적을 위해서 일한다고 보오.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지요. 그렇지 않소?》

《…》

최수광은 목단추를 거퍼 벗겨내렸다.

《하긴 사장동무야 다 모를수 있지. 장군님께서 자령기계를 처음 찾아주시였을 때 공장형편이 참 한심했다오. 그렇지만 이곳 로동계급에게 힘을 주시려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오? 공장안은 새까맣지, 밖은 눈천지지 어디 배경을 할만 한 장소가 없어서 안타까와하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현장을 배경으로 찍자고, 그래야 먼 후날에 가서도 기념이 될거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오. 지난해 1단계현대화가 끝났을 때 공장에 찾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몇해전에 찍은 사진을 아직도 건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유연생산체계를 꾸려놓고 모두 함께 사진을 다시 찍자고 하시였소. 그날이 오면 난 장군님께 이 전경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실것을 말씀드리려고 하오. 사장동무, 이 최수광의 소원이 그렇게도 공감되지 않는가요?》

그의 말은 자못 무게를 가지고 울리였다.

《지금 당장 대답을 바라지는 않겠소. 래일모레 공장현지지도기념일을 쇠고는 곧장 2단계전투에 진입할 계획인데… 될수록이면 그전에 결심을 내려주시오.》

구내전화가 울었다.

《최수광이요.》

《책임자동지!》 누군가 큰소리로 웨치고있었다. 《전망도작업을 어떻게 할가요? 련하사장동무가 중지하라고 했다는데…》

최수광은 리정을 피뜩 바라보고나서 책상을 두드렸다.

《동무! 련하가 하라면 하시오. 젠장!》

송수화기를 내동댕이칠듯 하던 최수광이 갑자기 허공에서 손을 멈추더니 그것을 살그머니 제자리에 가져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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