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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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쾌청한 봄날 봉화기계공장 주택지구에 새로 일떠선 은정마을에서는 정림이와 효은이의 결혼식이 벌어졌다.

온덕수의 집은 들끓었다.

저도 새신랑처럼 끼끗이 차려입은 온덕수가 새하얗게 회를 바른 짝대문앞에서 신랑, 신부를 맞이하고 색종이를 썰어 만든 꽃보라를 량손에 움켜쥔 아이들이 마당가를 잠자리처럼 맴돌았다.

부엌에서는 김치물에 손만 한번 담그어도 맛이 달라진다는 동네녀인 두셋이 손님맞을 준비로 바삐 돌아치는데 설기떡 빚기엔 그만한 사람이 없다고 손꼽히는 장현국의 마누라가 시루번을 두르느라 부뚜막을 타고앉았고 방안에서는 거염스레 상좌에 틀고앉은 늙은이들이 신랑의 거동이 보도록새 방정하다느니, 신부의 차림새가 선녀같다느니 혀가 닳도록 칭찬하고있었다.

정말이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결혼식상을 받아안은 신랑, 신부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의젓하겠는가!

안시학과 김경조, 리정은 나란히 자리를 잡고있었다.

례법대로 순서를 차린 축배잔이 리정에게도 와닿았다. 일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말을 해주고싶었으나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해주고… 행복하시오.》

《형님이 저를 사람되게 해주어서 이런 날이…》

장군님의 은덕이지. 일을 잘해서 보답하자구.》

효은의 어머니는 관례를 깨고 자기가 직접 사진기를 멨다.

손풍금소리가 붕 울리더니 공장처녀들이 제비처럼 모여와 노래를 부르고 잇달아 김경조를 지명했다. 그는 석쉼한 청을 뽑아 《바람결 맑고 별빛도 정다운…》 하고 옛 노래를 불렀다.

1절을 부르고 김경조는 숨이 가쁜듯 《허참, 나도 이젠 늙은것 같소.》 라고 하였다. 그래도 한사코 3절을 부르고서야 자리에 돌아와 세월과 함께 로쇠하는 육체가 한스러운듯 서글프게 웃었다.

《허허, 그래도 3절을 부르는걸 보니 아직 멀었소.》

안시학이 하는 말이였다.

리정도 안시학의 말을 긍정했다.

《너무 일찍 그런 말씀 마십시오.》

김경조는 눈귀에 주름을 가득 잡고 물었다.

《이 김경조가 그렇게 아까운 사람이라면 사장동무, 내가 년로보장을 받은 다음 련하기계에 경비원자리라도 하나 주시겠소?》

리정이 당치 않은 말이라는듯 입을 실그러뜨렸다.

《왜 경비원입니까? 고문자릴 드려야지요.》

《동무가 그런 말을 다 하오? 낡은것은 죄다 물러가시오 해야 리정이지. 생각나오? 내가 처음 동무를 모시러 갔을 때 말이요. 우리랑 같이 줄방전가공반을 개발하자고 하니까 돈은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랬지. 솔직히 난 그때 젊은 사람이 만나자바람에 퉁퉁 돈소리부터 꺼내면서 장사군처럼 논다고 좋지 않게 생각했더랬소.》

김경조는 볼편을 실룩거리며 웃었다.

《한데 지내놓고보니 사람이 진짜야. 내 평생에 복을 꼽으라면 련하기계를 벗하고 일해온 십년을 꼽겠소.》

련하기계와 더불어 흘러온 인생길에는 기쁨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지만 돌아보는 추억은 긍지롭고 아름다왔다.

《참, 내 한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줄게 있소.》 하고 안시학이 리정에게 말했다. 《며칠전 장군님께서는 지금 련하기계가 교외에 자리잡고있기때문에 다른 련관단위들과 련계를 가지는데도 불편하고 대외사업에서도 많은 애로를 느끼고있다고 하시면서 시내중심으로 옮겨올수 없겠는지 연구해보라는 지시를 주시였소.》

《련하기계를 시내중심으로요?》

제일 기뻐하는것은 역시 리정이였다. 련하기계가 시내중심에 들어앉으면 사업상 편리도 그래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것이다.

누군가 리정에게 손님이 찾아왔다고 알려주었다. 하필 이런 때 찾아온것을 보면 공장사람은 아닐게고 특별히 짐작되는 사람도 없었다. 리정이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조심히 일어서는데 손님은 벌써 자칭 《의례》를 맡은 젊은이들에게 이끌려 막 뜨락에 들어서고있었다. 요란한 소개말이 먼저 방안으로 넘어들어왔다.

《중공업의 경사를 축하하여 경공업에서 왔습니다!》

목을 빼들었던 리정은 저으기 놀랐다. 마당가에 나타난것은 뜻밖에 창일이였던것이다. 대학때까지도 가리마를 탔던 머리를 뒤로 빗어넘겨서인지 나이가 썩 들어보였다. 어망결 끌려들어오기는 했지만 창일은 워낙 침착한 성미라 인차 분위기를 헤아려보았다.

《저는 평양방직기계공장 지배인입니다. 동네에 이런 경사가 있는줄은 모르고 왔습니다만 기왕 온바에 여러분들도 이야기했다싶이 경공업을 대표하여 노래를 한곡 부르겠습니다.》

《동무들! 박수!》

창일은 소리는 시원치 않았지만 감정으로 재청을 받았다.

그는 노래를 두곡이나 부르고서야 자리에 앉을수 있었다.

《지배인동무, 좋은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소.》

리정이 벙글거리며 그를 맞아주었다. 대사집 새 손님은 별로 희한한게 아니여서 창일은 곧 뭇사람들속에 섞이우고말았다. 리정이 자기와 같이 군사복무를 한 전우라고 창일을 주위에 소개했다.

창일은 자기를 유심히 바라보는 눈빛을 느꼈다.

마주앉은 사람이 거의 무안할 정도로 그를 찬찬히 뜯어보고있었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창일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는 바로 십여년전 대학입학시험을 치러가는 창일을 자기 승용차에 태워주었던 안시학이였다. 이마가 더 벗어져올라갔을뿐 틀진 모색이 그대로였다. 여기서 그를 다시 만나다니! 불쾌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의 조업기일을 보장하자면 황해도 쌀값이 어떻고 저떻고 떨떨한 소리를 하던 사람…

《어데선가 본 기억이 있는것 같은데…》

안시학이 중얼거렸다.

《예. 언제인가 대학으로 가는 한 제대병사를 차에 태워준적이 있었지요.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을 건설할 때 말입니다.》

《아, 생각나오. 종합대학모표!》 안시학은 마침내 얼굴이 까맣게 탄 공병상사가 안고가던 옛 분대장동지가 물려준 배낭이며 종합대학모표를 기억에서 되살려냈다. 《그러니 그때 동무가 안고가던 배낭이 바로 리정동무가 물려준것이였겠소?》

《예.》

《허, 세상에 이런 일도…》

안시학은 그때 일이 눈에 선했다.

《반갑소. 그래 지금은 어데서 일을 보시오?》

《평양방직기계공장 지배인으로 일하고있습니다.》

《지배인? 그 상사가 지배인이라?! 십년이 참 무섭소.》

《저도 이렇게 다시 만날줄은 몰랐습니다. 참, 제가 얼마전에 안흥에 다녀왔는데 차를 타고가면서 옛날 일을 생각했습니다.》

안시학의 표정이 굳어졌다. 곁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있던 리정이 안시학의 얼굴빛이 갑자기 달라지는것을 보고 끼여들려는데 마침 신랑, 신부가 노래값을 치르듯 새 술병을 따들고 창일에게 다가왔다. 김경조가 허물없이 설명을 달았다.

《알고 받소.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잔치술이라오.》

창일이 잔을 비우기를 기다린듯 이번에는 손풍금을 멘 청년이 건반을 쭉 내리훑으며 《그럼 이번에는 신랑, 신부가 준비한 노래를 들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좌중에 물었다.

역시 잔치집이라 분위기는 개개인의 감정에 구애됨이 없이 흘러가는것 같았다. 안시학의, 귀에는 노래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공병상사…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그가 방직기계 지배인이 되다니?! 세상의 상봉은 늘 이렇게 오묘한것일가?)

온덕수의 안해가 특별한 비방으로 말았다는 메밀국수까지 깨끗이 대접받고 리정은 한발 먼저 일어났다.

그가 량해를 구했을 때 안시학은 대범하게 웃어보이면서 《어서 가보시오. 방직기계 지배인동무가 찾아왔을 때는 무슨 급한 일이 있는가본데.》 라고 했다.

리정은 창일을 데리고 련하기계공장으로 향했다.

봄바람에 민들레씨앗이 날리고있었다. 소연하던 대사집을 벗어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자 그들의 가슴속에는 멀리 흘러간 옛 시절의 감정이 그윽히 차올랐다. 소중한 감정을 주고받기에는 무슨 말을 하기보다 이렇게 그냥 걷는것이 더 나을것 같았다.

말없이 걷다가 창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찾아온게 뜻밖이지요?》

《아닌게아니라 좀 놀랐소.》

리정은 걸어오면서 줄곧 생각하던 문제를 물어보았다.

《안시학부상과는 어떤 사이요?》

《뭐 사이랄것까지는 없습니다. 내가 제대돼서 대학으로 떠나올 때 그가 자기 차에 태워다주었지요. 그런데 도중에 차가 고장나서 렬차를 옮겨탔습니다. 그때 우리 부대가 건설한 수자조종공작기계분공장을 놓고 몇마디 얘기를 나눈게 있었는데…》

창일이 그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리정은 아까 안시학이 창일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왜 표정이 굳어졌는지 리해됐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다 지나간 일입니다. 괜히 마음쓸게 없지요.》

《동문 아직도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것 같구만?》

《좋고 나쁘고 언제 그런데까지 신경쓸새가 있습니까. 안흥에 다녀온 다음부터 난 하루도 발편잠을 자보지 못했습니다.》

안시학에 대한 창일의 감정은 좋지 않았다. 하긴 리정자신도 십년전 안시학에 대한 감정은 그 이상으로 좋지 않았었다. 세상에 고정불변한것이란 없다. 모든것은 변한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안시학에 대하여 생각되는바를 다 이야기해준다는것은 불가능했다.

《참, 안흥에는 언제 갔댔소?》

《작년 가을에 갔댔습니다.》

《작년에?》

《지배인으로 임명돼서 첫 출장인셈이였지요.》

《그래 춘호동무도 만나봤소?》

《예, 내가 오기 몇달전에 련하기계를 참관했다면서 말을 많이 하더구만요. 그가 련하에 찾아가보라고 조언을 주었습니다.》

그러는새 두사람은 련하기계공장에 다달았다.

생산현장에는 조립중의 각종 CNC설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그것을 손으로 대우라도 내듯 쓰다듬던 창일이 불쑥 《이런걸 우리 공장에도 줄수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야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

《그렇겠지요.》 창일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아무래도 지배인직분이 내게 너무 아름찬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내가 오늘 련하기계에 찾아오기까지 곡절이 있었습니다. 어디 마실 물이 좀 없습니까?》

리정은 창일을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갔다.

창일은 물을 두고뿌나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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