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4 장

3

 

역구내의 대피선을 차지하고있는 렬차집무실에서 김인순을 맞이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때까지 미루고계시던 아침식사를 같이하자고 부르시였다. 오랜 나날을 교단에서 보낸 김인순은 침착하고 준수한 몸가짐을 가진 녀성이였다. 눈귀에 잡힌 잔잔한 주름이며 드물게 섞인 흰머리칼에서도 그의 지성과 로숙함이 풍겨오는듯 했다.

입고온 회색양복도 잘 어울렸다.

《아침식사로 죽을 준비했습니다. 구미에 맞겠는지요?》

장군님, 고맙습니다. 전 아직도 꿈을 꾸는것만 같아서…》

《나 역시 선생을 만나게 되여 기쁩니다. 그동안 도당책임비서의 개별교수를 하기가 힘들었겠습니다. 막 욕을 할수도 없었겠고…》

《그래도 제가 욕먹을짓은 한게 없습니다. 그렇지요?》

연형묵이 너무 면바로 물어오자 녀성은 고개를 틀며 웃음을 지었다. 맞대놓고 말하기만 멋했지만 연형묵의 열성은 실로 대단했다.

어떤 면에서는 대학생들보다 더 정열적이였다.

한번은 김인순이 수자조종공작기계의 주전동장치와 주축매듭에 대해 설명하다가 기척이 없어 보니 연형묵은 《변속치차전동을 가진 주전동…》 라고까지밖에 쓰지 못한 학습장우에 펜을 박고 꼬불꼬불한 금을 그리며 졸고있었다. 그를 깨워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바재이다가 김인순은 책을 걷어안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다음날 대학에 찾아온 연형묵은 못내 섭섭해하였다.

《왜 나를 깨우지 않았습니까.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에도 그러시는가요? 아니겠지요? 선생이 일단 나를 학생으로 받았으면 어떤 경우에도 례외를 보지 말아야지요. 며칠 잠을 못 자다나니 그런 실수를 했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겁니다.》

그때 김인순은 생산단위의 일군도 아닌 도당책임비서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연형묵은 《장군님을 따라가느라고 그럽니다.》라고 대답했다. 신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장군님의 뜻을 따르지 못할가봐 그것이 겁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장군님을 받든다는것은, 장군님을 따라 혁명을 한다는것은 바로 이런것이구나 하고 김인순은 뜨겁게 절감했었다.

장군님, 오히려 제가 책임비서동지한테 배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지식인중에서도 교원은 특별한 지위와 존엄을 가지는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다. 세계는 사람과 자연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주인은 인간이다. 세계의 주인인 인간의 성장을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적으로 상대하는 지식인이 교원들이다.

그들에게는 교권이라고 부르는 남다른 존엄의 세계가 존재하고있다. 김인순과 같은 녀성의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특별할것이다. 그럼에도 김인순이 남에게 선뜻 헤쳐보이기 힘든 사연을 연형묵에게 터놓았을 때에는 도당책임비서라는 직무에 앞서 인간적인 공감과 존경이 가슴에 자리잡았기때문일것이다.

《선생은 참 똑똑한 조카를 두고있습니다. 그가 쓴 편지를 나도 읽어보았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겠는지…》

김인순은 한순간 당혹한 표정이였으나 곧 평온을 되찾고 《아닙니다. 저같이 평범한 녀성의 사생활문제에 이르기까지 장군님의 짐이 될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게 무슨 짐이겠습니까. 가정을 떠난 사회, 사회를 떠난 가정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인간의 참다운 삶을 위하여, 사회주의를 위하여 혁명을 하는 우리가 사회의 세포인 가정에 관심을 돌리는것은 짐이 아니라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나는 그 무엇을 주입하자는것이 아닙니다. 나는 선생의 감정을 존중합니다.》

《저는… 저의 마음은 편지에 씌여진 그대로입니다.》 하고 김인순은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자기의 번민과 상반되는 솔직한 감정을 고백한것이였다. 가까이에서 기적소리가 웅장하게 들려왔다. 통나무를 가득 실은 무개화차가 역구내를 통과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진동이 멀어지기를 기다리시였다.

《한유준동무에 대해서는 선생도 잘 알고있겠지만 그는 나라의 기계공업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입니다. 고난의 행군때 자칫 그를 잃을번 한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지군 합니다. 선생도 그때 환자의 곁에서 며칠밤을 새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보살핌이 늘 머물러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장군님, 앞으로 제가…》

《가만…》 그이께서는 김인순의 말을 멈추시였다. 《나는 지금 당장 선생의 결심을 듣자고 그러는것이 아닙니다. 선생이 내 걱정을 덜어준다고 하면서 희생적으로 나오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다면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특류영예군인들과 일생을 같이하기로 결심한 청년들이 그것이 무슨 수령의 의도라서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우리 청년들이 지니고있는 고상한 정신세계의 정화이고 스스로의 심장이 선택한 숭고한 감정입니다.》

얼마나 뜨겁고 솔직하고 다심하신 말씀인가. 녀성의 존재와 인간의 감정을 무한히 존중하시는 어버이께 김인순은 아뢰였다.

장군님, 말씀의 뜻을 새기겠습니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이께서는 여담을 하나 들려주겠다고 하시였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결혼식상을 차려준것이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듬해였습니다. 대학시절 수령님을 모시고 그때 지명으로 순안군 중석화리에 갔다가 한 피살자가족의 집에 들렸던적이 있습니다. 그 집 아들은 농촌을 떠나 군식료공장에 가서 일하고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다시 데려다가 고향에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결혼식도 당에서 맡아 차려주자고 하시였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결혼식날자를 1965년 1월 2일로 잡았는데 그러다나니 양력설에도 마음놓고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들면서 이야기합시다.》

그이께서는 서리를 맞은 갓으로 담근 상갓김치보시기를 인순의 가까에 놓아주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때 내가 받은 생활비로 신부의 옷감을 사고 두루 상차림감도 마련했습니다. 그것을 신랑의 집에 보내고나니 양력설날 점심을 건느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배고픈줄을 몰랐습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내가 로년결합을 주관하기도 처음이 아닌데 모두들 잘살고있습니다.》

진눈까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차창에 점점이 들어붙는 눈송이들을 세여보시듯 그이께서는 이윽토록 정깊은 눈길을 보내시였다.

《자강도에 자주 오지만 이번 길이 참 뜻깊었습니다.》

장군님,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일이 있거든 편지를 보내주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렬차승강대에서 김인순을 바래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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