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3 장

7

 

새벽 5시.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뭐요?… 누구라구?!…》

일어서시였다.

《다시, 다시 말해보시오!》

대답대신 흐느낌소리가 울려왔다.

장군님, 오늘 새벽 3시 40분에 박송봉1부부장동지가…》

《동무! 지금 제정신인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그이의 음성은 점차 가슴을 허비는 신음으로 변하였다.

《박송봉이 잘못되다니. 아니요, 아니요! 내가 그한테… 무엇을 들려보냈는지 알기나 하고 이런 전화를 하는가, 동무…》

박송봉이 죽다니, 그럴수 있는가? 나를 대신해서 간 그가, 도중식사 대신 펑펑이를 돌려보낸 그가 잘못되다니 무슨 말인가?!…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그러나 믿어야만 하는 사실을 부둥켜안고 그이께서는 몸부림치시였다. 너무 억이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으시였다. 북천기계! 그 이름이 불처럼 살아오르시였다. 박송봉이 못다간 길, 누워서도 한으로 안고있을 그곳으로 가야 한다. 나를 대신하여 그가 가던 길로 그를 대신하여 내가 가야 한다!…

그이께서는 야전솜옷을 벗겨드시였다.

《차! 차를 부르시오!》

부관이 앞을 막아섰다.

장군님, 삼가해주십시오. 지금 그쪽에는 눈보라가…》

《송봉동무가 나를 부르고있소. 저건… 눈보라소리가 아니요. 송봉이가 날 찾는 소리란 말이요. 그는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일을 하다가 갔소. 가야 하오. 그의 가슴에 한을 남길수는 없소. 내가 북천으로 가야 송봉동무의 눈을 편히 감겨줄수 있단 말이요.》

그이께서는 단신으로 길을 떠나시였다.

태질하는 눈보라소리도 들려오지 않으시였다.

…그날 아침부터 북천기계공장 지배인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눈이 쓰리게 줄담배를 피워대고있었다. 대부분의 설비들을 수입할것으로 예견한 현대화자금타산안이 각종 도면말이며 기술자료들이 더미를 이룬 지배인의 책상우에 놓여있었다.

《자, 이대로 누르자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지배인이 지독한 내굴을 못 참겠는듯 휘손질을 하며 독촉했다. 그래도 모두 묵묵부답이였다. 수입안에 지지를 표시했던 사람들까지도 정작 대목에 와서는 무엇때문인지 함구무언이였다. 그렇다고 계속 끌수도 없는 일이였다.

《거 련하에서도 말을 좀 하시구려.》

《내 말을 듣자는 때가 다 있소?》 하고 말하고싶은것을 온덕수는 가까스로 눌렀다. 처음 이 공장에 와서는 몇번 일어나서 열변을 토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늘 다수의 의견에 밀려나군 했다. 애초 여기 북천사람들은 광폭적인 토의를 거쳤다는 조건부를 위해 그의 참가가 필요했던것 같기도 했다.

비위가 상해난 온덕수는 언제부터인가 이쪽바구니에도, 저쪽바구니에도 오르지 않고 시비를 가르는 마당에서 끝이 빨간 천평바늘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무거운쪽으로 기울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한데 리정은 왜 아직도 오지 못하고있는지…

갑자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닐박막을 댄 창문을 힘들게 내다보던 지배인이 화닥닥 물러나 문을 차고 나갔다. 곧 《만세!》 소리가 물끓듯 들려왔다.

(장군님께서 오시였구나!)

방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메우며 달려나갔다.

정녕 그이께서 오시였다. 성에가 허옇게 불린 차를 마당 깊직이 들여세우고 내려서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고뇌가 력력했다.

지배인이, 어느 직장장이, 다음은 온덕수가 이렇게 순서없이 겨끔 인사를 드리였다. 응집한 로동자들이 자체의 힘에 이쪽, 저쪽으로 밀리우며 묽숙한 그 무엇처럼 늠실늠실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현장을 돌아봅시다.》

다녀가신지 얼마 안되여 달라진것이 없는 생산현장을 또 돌아보시겠다니 지배인은 난감해하는 인상이였다. 그이께서는 지배인의 안내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앞서 생산현장으로 향하시였다. 달포전에 박송봉과 함께 왔던 곳이였다. 낯익은 생산현장에는 아직도 그때처럼 낡은 설비들이 처분을 기다리듯 주런이 늘어서있었다.

다만 회칠을 새로 했는지 건물안이 밝아보였다.

그이께서는 황갈색도료를 칠한 대형기대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 거구의 설비가 바로 박송봉이 말하던 북천기계에 10여년동안이나 사장되여있는 문형후라이스반이였다, 그이께서는 죽은 나무처럼 빛갈도 활력도 느껴지지 않는 쇠붙이에 손을 얹으시였다.

(그가 이 설비를 5면가공중심반으로 개조할수 있다고 했지, 련하에 맡기면 해낼거라고. 그때 왜 선뜻 대답을 주지 못했을가?)

《이 설비는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저, 아직은…》

그럴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좀 생기니 어디에 무슨 좋은것이 있는가만 넘겨다봤지 자기 집안의것은 돌아볼념도 못했을것이다.

《지배인동무, 내가 사람을 하나 소개해줄테니 이 설비를 5면가공중심반으로 개조해보시오. 될거요. 아니, 꼭 되오.》

자꾸만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시느라 그이께서는 말씀을 길게 하지 못하시였다. 몇걸음 걸어가느라면 뒤에서 꼭 박송봉이 따르고있는것 같아 저도 모르게 돌아보군 하시였다.

《면적은 운동장같은데…》

《지금 타산안을 잡고있는중인데 다그치도록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지배인의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시였다.

《그 타산안이라는게 남을 쳐다보는거요?》

《…》

공간과 공간, 기대와 기대사이에서 로동자들이 하나, 둘 머리를 내밀었다. 잠시후 넓은 생산현장에는 그이께서 서계시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모여선 사람들로 큰 가락지모양이 만들어졌다.

《내가 동무들을 찾아온것은 공장현대화때문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 개별적일군이 아니라 둘러선 전체 로동계급의 심장에 호소하시였다.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이겨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모든것이 넉넉치 못한 형편입니다. 한창 추서기 시작한 나라의 경제는 어디서나 로력과 자금과 설비를 더 요구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동무들에게 공장의 현대화문제를 놓고 두가지 좋은 점과 두가지 나쁜 점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로동자들은 원을 좁히며 다가들었다.

《련하기계를 놓으면 무엇이 좋은가? 우선 자금이 적게 듭니다. 이것이 첫째고 둘째로는 동무들이 련하기계와의 밀접한 련계밑에 지속적인 기술봉사를 받을수 있는것입니다. 설비를 수입하는 경우 그러한 특혜는 바랄수 없고 또 받더라도 값을 톡톡히 물어야 할것입니다.》 로동자들속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돌려왔다. 《그럼 두가지 나쁜 점은 무엇인가? 물론 아직은 련하기계가 기계제작공업이 발전되였다고하는 나라들에서 만든 제품들보다 못한 측면이 있을수 있습니다. 압니다. 그래도 내가 지배인이라면 나는 우리것을 놓겠습니다. 왜? 현대화의 본보기공장으로 꾸리려는 이 공장부터가 우리것을 외면한다면 다른 공장들에서도 모두 그 본을 따자고 할것입니다. 결국 련하는, 우리것은 무시되고맙니다.》

격하신듯 한손으로 공간을 후리시였다.

《써야 보배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리 훌륭한 과학기술성과라고 해도 실천에 도입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이 만든것을 우리가 쓰고, 우리가 주는 의견을 그들이 퇴치하면서 함께 비약하고 전진하는것이 바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겠습니까.》

로동자들속에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온덕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훔치였다.

병든 자존심과 다수에 복종한다는 식의 소심성에 빠져서 응당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고있은 자신을 타매하고있었다.

소심성! 그 튼튼한 갑을 깨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후회를 삼켜왔던가. 리정에게, 김경조에게 그리고 정림이에게까지도…

《다음은 나라가 입게 될 손해입니다. 바른 때일수록 우리는 나라 살림살이를 물감장사처럼 깐지게 해야 합니다. 만약 설비를 수입하면 그만한 자금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나라에서는 자금을 공장들에 투자하고 공장들에서는 그것으로 련하기계를 가져다놓고 련하의 리득이 다시 국고에 돌아온다면 같은 자금으로도 공장을 살리고 련하도 살리고 나라도 살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민족경제를 살려나가야 합니다. 동무들, 내 말이 납득이 됩니까?》

장군님,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슨 의견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 장군님!》

소리치며 나선것은 손에 노기스를 쥔 로동자였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이 천만번 옳고 정당합니다!》

《현대화를 해도 주체를 세우고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까이에 전화가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지배인이 그이를 지령실에 모시였다. 자투리철판으로 살을 대서 만든 긴의자가 한쪽벽면을 차지하고있는 비좁은 방이였다. 앞서 지령실에 들어선 지배인이 모자를 벗어 기름때가 앉은 전화기를 문대려는것을 만류하며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잡으시였다.

《련하기계와 련결하시오.》

잠시후 울림이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련하기계회사 사장 리정이 전화받습니다.》

《수고하오. 김정일이요.》

순간 벌떡 일어섰는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정이 감격하여 인사를 올리는것을 묵언하시고 《왜 북천에 오지 않고 돌아섰소?》라고 엄하게 물으시였다.

《숨지는 순간까지 북천으로 가달라고 부탁하던 송봉동무의 몸이 식기도 전에 어쩌면 그렇게 돌아설수 있소. 그게 도덕이고 의리이고 인간성인가. 동무는 걸어서라도 왔어야 했소. 송봉동무는 자기의 죽음앞에 눈물만 흘리는 리정을 바라지 않았을거요.》

그이의 심장에서 일어난 거세찬 폭풍이 한줄기 전화선을 따라 천리로 퍼져나가 리정의 가슴을 세차게 들이치고있었다.

《동무와 이렇게 전화로 처음 만나게 될줄 몰랐소. 동무를 만나면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이렇게 비판부터 하게 될줄은 몰랐소. 대답해보시오. 내가 동무를 잘못 보았는가? 그렇소?》

장군님!…》

심장을 긁는 비통한 소리였다.

《언젠가 송봉동무가 온덕수를 업고 동무앞에 나타났던적이 있었지. 지금은 내가 북천기계를 업고 련하기계를 찾아가고싶은 심정이요. 여기로 오시오. 오면서 동무는 생각해보아야 하오, CNC라는 그 한마디 말이 얼마나 무겁고 값비싼것인가를. 자고 깨면 저절로 밝아오는것 같은 매일매일의 아침이 어떤 애국의 삶들을 간밤에 묻고 오는것인가를 동무는 생각해보아야 하오.》

《알았습니다. 장군님, 떠나겠습니다.》

리정의 목소리가 멀리 세상끝에서 들려오는것 같으시였다.

통화가 끝났을 때 그이께서는 어쩔수없이 긴의자에 앉으셔야 했다. 피로와 긴장이 덧쌓여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몸을 흔들어놓았던것이다. 컴컴한 현장이 내다보이는 창문밑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온덕수였다. 그이께서는 창유리를 두드리시였다.

《이리 들어오시오.》

온덕수가 들어서자 그이께서는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켜보이였다. 그런데도 온덕수는 한사코 서있었다.

장군님.》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건 다 제탓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서 그랬다치고… 련하의 넋을 지켜야 할 제가 다수에 복종한다는 식으로 맹종맹동했습니다. 저는 주대도 없고…》

《련하에서 왔다면 어디서나 떠받들어줄줄 알았소? 련하는 대접을 받을게 아니라 그들을 가르쳐주어야 하오. 모르겠으면 그만두라고 내버려둘것이 아니라 의무교육을 하듯이 따라다니면서 배워주고 뜻을 합쳐야 할 때란 말이요. 물론 쉽지 않지. 희생도 있고…》

그이께서는 그만 눈앞이 흐려지시였다.

《부강조국건설은 하늘을 믿고 하는것도 아니고 금덩이를 캐다가 하는것도 아니요. 사람을 믿고 사람으로 하는것이요. 어떤 사람들인가. 뒤떨어진 사고와 일본새, 온갖 유습과 만족… 이런것을 타파해나갈수 있는 사람, 조국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줄 알고 자기를 돌파해나갈줄 아는 사람들이요. 때문에 오늘 우리 당은 풍부한 지식과 함께 숭고한 정신을 소유한 인재들을 요구하는것이요.》

옹송그린 온덕수의 어깨가 들먹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솜옷안주머니에서 길둥그런 안경집을 꺼내드시였다. 고난의 행군의 먼길을 함께 한 그이의 자그마한 애용품이였다. 때로는 인민이 겪는 고생을 헤아리시며 남몰래 흘리신 눈물을 감춰주었고 때로는 잠시 깃드는 쪽잠으로 그이의 피로를 고이 덜어드리였던 정깊은 물건이였다. 그것을 쓸어보시다가 《내가 끼던 보호안경인데…》라고 하시며 온덕수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송봉동무가 동무의 아들에 대한 말을 자주 했지.》

《예?!》

더 말씀하시다가는 눈물을 보일것만 같으시였다.

《동무의 아들에게 전해주시오. 멀리 래일을 내다보는것은 눈만이 아니라 신념이라고… 내가 그러더라고 전하시오.》

장군님, 그렇게… 꼭 전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실 때처럼 단신으로 귀로에 오르시였다.

북천강다리를 넘어서신 그이께서는 기본도로에서 벗어나 지름길로 차를 꺾어드시였다. 박송봉이 숨을 거두었다는 그 언덕길까지 찾아가보지 않고서는 못 견딜것 같으시였다.

얼마나 달렸는지… 해빛에 물들은 언덕길이 고개마루를 휘우듬히 감쳐도는 곳에 잎떨어진 고로쇠나무 몇그루가 재빛가지들을 설렁거리며 서있었다. 그리 높지도 않은 고개길이였다.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려서시였다.

충혈진 안광으로 고개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송봉이, 이 낮은 언덕길을 끝내 넘어서지 못하고 갔단 말이요?》 하시고는 목이 꽉 메여 말씀을 더 잇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고개마루를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참고참으시였던 눈물이 마침내 앞을 가리웠다.

《송봉동무, 내가 왔소. 김정일이 왔단 말이요. 시련에 찬 고난의 행군길도 꿋꿋이 헤쳐온 동무가,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나를 따라가겠다던 동무가 이 낮은 령을 넘지 못하고 그렇게 간단 말이요. 너무하다, 송봉이! 난 동무의 가슴에 박사메달 하나 달아주지 못했는데… 영웅메달 하나 얹어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는가. 일만 시키다가 보냈구나. 나한테서 책벌만 받다가 갔구나. 송봉이!…》

그이께서는 길가의 나무가지를 부여잡으시였다.

불어오는 바람결마저 전사의 숨결처럼 느껴지시였다.

래일에로의 길,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슬픔과 맹세의 언덕들을 넘어야 하는것인가, 얼마나 많은 고귀한 땀과 삶을 바쳐 불러와야 할 조선의 아침인가. 조국의 미래를 위해 바친 삶은 영원하다. 박송봉이 지녔던 조국과 혁명, 미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천만의 심장속에 이어져 영원히 식지 않고 끝없이 맥박칠것이다.

(송봉동무,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달라고 하더니 내가 이렇게 부르는데 왜 대답이 없는거요! 송봉동무, 눈을 감지 마오. 그대가 바라던 꿈과 리상이 이 땅, 이 하늘아래 펼쳐지는 모습을 동무는 꼭 보아야 하오. 아, 박송봉이! 나의 동지여!…)

그이께서는 겨울의 대지에 더운 숨결을 뿌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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