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3 장

6

 

그 시각 박송봉은 영변발전소 지배인의 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이 우툴두툴하게 생긴 지배인은 수십년전 박송봉과 함께 영변발전소의 기초를 닦았던 초창기건설자의 한사람이였다. 그때 박송봉은 건설자들과 고락을 같이하기 위해 몸을 푼지 얼마 안되는 안해를 그 산골로 불러들였다.

렬차에, 자동차에 그리고 나중에는 도보행군으로 시달릴대로 시달려 부석부석해진 얼굴로 나타난 안해의 허리에는 땀에 절은 미역보자기가 바오래기처럼 동여져있었다. 그때 안해의 등에 업혀 빽빽 울어대던 갓난아기가 바로 그의 맏딸이였다.

《어디 편찮습니까?》

뒤좌석에 앉아오던 지배인이 등받이에 목을 고인채 차가 가는대로 흔들거리는 박송봉에게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아니요.》

외투앞섶에 손을 찔러넣은 박송봉은 불안스럽게 꿈틀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면서도 옆사람들에게 영향을 줄가봐 그런체를 하지 않고있었다. 며칠전부터 몸상태가 과히 좋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는 병원에 전화를 하려고 송수화기를 잡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것이 곧 평양으로 전달될지도 몰랐기때문이였다.

옆차창으로 흘러드는 해빛이 박송봉의 볼이며 목덜미를 농촌집 토기와처럼 따끈따끈하게 달궈주면서 온몸이 솜처럼 잦아들게 했다. 무엇으로든 기운을 좀 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평양을 떠나올 때 장군님께서 주신 간식꾸레미를 가방에서 꺼냈다.

《도중식사까지 준비했습니까?》

지배인이 또 참녜했다.

《이거? 금덩이보다 더 귀한 간식이요.》

말아붙인 포장종이를 몇거풀 벗기자 손가락모양으로 길게 뽑은 강냉이펑펑이가 나졌다. 박송봉은 그만 손이 굳어졌다.

《아니, 그게 펑펑이가 아닙니까?!》

운전사도 자못 놀라운듯 물었다.

《그래, 펑펑이요. 뭐 별게 나올줄 알았소?》

운전사는 박송봉보다도 뒤에 앉은 자기 지배인에게 신경이 쏠리는듯 후사경을 곁눈질하며 《글쎄요. 큰 일군들이 출장길에 그런 간식을 들고다닌다면 선뜻 믿어지지 않지요.》라고 하였다.

그 말에 박송봉과 지배인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용서하십시오. 전 원래 직통배기가 돼놔서…》

그다음 박송봉은 입을 꾹 다물고 무릎우에 놓인것을 눈이 저리게 내려다보았다. 이 운전사에게 《이건 장군님께서 주신것이요.》 하고 말해준다면?… 그는 눈을 부릅뜨고 당장 내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내가 과연 장군님을 어떻게 모시고있는것인가.…

짧은 겨울해가 옆창을 넘어갔다.

어둠이 허겁지겁 내리덮이는 가주령을 넘어 정주-박천간 도로를 따라 달리고있던 승용차는 청정리에 못 미쳐서 흰 수건 같은것을 마구 휘두르는 행인을 만나 돌부리를 긁으며 멎어섰다.

《무슨 일이요?》

운전사가 머리를 내밀었다.

《신세를 좀 집시다.》

박송봉은 차창에 이마를 눌러붙이고 어둑한 로상에서 차잡이를 하고있던 사람을 눈여겨보았다. 목소리가 귀에 익어서였다.

《어디까지 가는데요?》

《아무데든 좋으니… 철도역까지만 데려다주시오.》

《거 혹시 리정동무가 아니요?》 박송봉이 문을 열어제꼈다. 《나요, 박송봉이요. 이런데서 동무를 만나다니. 어서 타시오.》

털모자귀덮개를 내리우고 솜옷깃까지 곤두세운 리정이 구세주라도 만난듯 달려왔다. 널널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가던 발전소 지배인이 얼른 그의 손을 받아 차안으로 맞아주었다. 그새 로상에서 얼마나 얼었는지 입술이 파래서 말까지 꾹꾹 씹었다.

《어떻게 된거요, 사장동무?》

《1부부장동지를 만나게 될줄은… 하여간 이젠 살았습니다.》

운전사가 이제는 어쩌라는가고 묻듯 박송봉을 쳐다보았다.

눈치빠른 리정이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전 그저 아무데나 가까운 역에 내리워주십시오. 거기서 화차든 객차든 잡아타고 북천기계까지 가면 될테니까요.》

떠날 때는 마침 봉화기계공장에 일을 보러왔던 차가 있어서 그걸 얻어타고 떠났는데 봉덕리쯤에서 차가 고장나 도보행군에 나섰다는것이였다. 봉덕리라면 거의 50~60리길이 잘되였다.

《그러니 새별령을 넘어 줄곧 걸어왔단 말이요?》

《뭐 별수 있습니까.》

《한데 왜 반대로 돌아가는 차를 세웠소?》

《이렇게 가다가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 아무 차나 얻어타고 역으로 갈 생각이였습니다. 어, 날씨도 참…》

리정이 무릎짬에 대고 손을 비비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천엔 무슨 일로 가댔소?》

《온덕수지배인한테서 련락이 왔습니다, 거기서 우리 련하기계를 놓고 뛰뛰한 소리들을 한다면서 내가 좀 와달라고. …》

《련하기계를?!》

박송봉이 심상치 않은듯 뒤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그래 련하기계가 뭐 어떻다는거요?》

《아마 현대화자금을 어떻게 쪼개쓰겠는가를 놓고 론의가 분분했던 모양인데 장군님께서 북천기계를 하이칼라공장으로 꾸리라고 하신 만큼 설비들도 국내산이 아니라 유럽나라들 같은데서 수입해다놓는것이 옳겠다고 락착된것 같습니다.》

송봉은 문득 무딘 칼날이 심장을 우벼내는듯 한 아픔을 느끼였다. 이번에는 좀더 예리한 아픔이 가슴벽으로 해서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숨쉬기조차 가쁘고 정신이 깜박깜박 흐려졌다.

《…그래서 온덕수지배인이 련하기계와 유럽산설비들의 기술적성능과 가격차이까지 례들면서 알아들을만큼 설명해주었는데도 마이동풍이더랍니다. 뭐 잘 모르면 비싼 물건을 사랬다나요, 한심하기란. 글쎄 CNC화를 하겠다고 나선 일군들이 돌아앉아서는 CNC가 뭐냐고 묻더라지 않겠습니까.》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가. 이럴 때에는 하나, 둘… 셈을 세는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련하기계를 차던지고 외국것을 사오겠다니 그 못난이들이 장군님의 뜻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도대체 무슨 일을 치자는건가.…

《차를… 세우시오》

박송봉이 안깐힘을 쓰며 말했다. 그제야 그의 이마와 턱언저리로 흘러내리는 땀줄기를 보게 된 일행이 복닥소동을 벌려놓았다. 리정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는데 영변지배인이 소리쳤다.

《빨리 병원으로!》

《안돼!》 박송봉이 막았다.

《예?!》

《차를 돌리오. 난 북천에 가야 하오, 북천…》

박송봉이 손을 들어 반대쪽을 가리켰다.

리정이 박송봉의 손을 부여잡았다.

《안됩니다, 1부부장동지. 몸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순간 빵!- 하고 경적소리가 아츠럽게, 길게 울리였다.

박송봉이 조향륜에 붙어있는 경적신호기를 누른것이였다.

북천기계는 자령과 더불어 장군님께서 현대화의 본보기단위로 점찍어놓으시고 각별히 마음을 쓰시는 단위였다.

장군님께서는 정초부터 북천기계를 찾으시였고 귀중한 자금을 쪼개주시였으며 아닌 새벽에 언발을 녹여가시며 문자그대로 간고분투의 길을 이어가고계시였다. 밤에는 앓으시고 낮에는 일하시였다. 홀로는 모대기시고 우리앞에서는 웃으시였다.

그런줄 누가 아는가? 모른다. 이 박송봉마저 제 몸 귀하다고 돌아선다면 이 길에 그이께서 오르실것이다.

북천으로 가야 한다, 가야 한다!…

차는 방향을 돌려 지름길로 들어섰다. 산이고 길이고 칠칠암흑이 덮였는데 격앙된 운전사가 어떻게나 가속답판을 밟아대는지 차가 왈칵왈칵 튀여오르는듯 했다. 차는 얼마 못 가서 다시 멈춰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박송봉이 차를 세워달라고 했던것이다.

《지배인, 바꿔앉자구.…》

세사람이 붙어서 그를 조심히 뒤자리로 옮겼다. 차가 출발하자 박송봉은 리정의 손을 자기 무릎우에 올려놓고 글을 써나갔다.

《리정이… 장군님께서는…》

글이 끊기자 리정은 정신없이 《예.》 하고 동닿지 않는 대답을 붙이였다. 박송봉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전압주파수안정기… 련하에 맡기라고… 꼭!》

박송봉의 심장은 마지막박동을 세고있었다. 그런데 그는 일하러 가고있었다. 차를 몰아 어디든 가면 병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일하러 가고있었다. 평양에서는 손자, 손녀들이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어머니의 돐제를 차리러온 자식들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그는 일하러 가고있었다. 장군님께서 멀리 떠나보낸 전사가 돌아올 때가 되였다고 기뻐하시련만 그는 일하러 가고있었다.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봉이가 우리 글을 잘 배웠는지 어디 좀 볼가? 네 이름을 한번 써보아라. 잘 썼다. 그런데 너는 동그라미를 거꾸로 그리는구나. 그럼 이번에는 나랑 같이 써보자.…

김정숙어머님의 다심하신 음성이였다.

어머님, 이 송봉이는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이렇게 가는가봅니다. 그이께서 기다리고계시겠는데, 큰 일감이 생기거든 언제나 이 송봉이부터 찾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짙은 어둠이 드리운 석비레언덕길, 덜컹거리는 차의 진동을 마지막으로 느끼면서 박송봉은 안깐힘을 모아 웨치였다.

아, 일을 하고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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