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2 장

2

 

《련하사장동무! 어데 있소?… 련하!》

꼬박 이틀밤을 화차칸에서 보내느라 몸이 꽁꽁 얼어든 리정은 누군가가 화차방통문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를 치는 바람에 둘러감고있던 모포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잘못 들었는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모포속에 얼굴을 감추려는데 방금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동행하고있던 자령기계 설비부원이 웅얼거렸다.

《사장동무를 찾는게 아닙니까?》

《그런것 같소.》

리정은 몸을 일으켰다. 문짬으로 내다보니 전천을 얼마 앞둔 운송역이였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멀었는데 누가 나를 찾는걸가? 목소리임자가 다른 방통으로 건너가는지 자갈 밟히는 소리가 왈그락왈그락 들려왔다. 리정은 넙적문을 밀어젖히며 소리쳤다.

《련하기계를 찾습니까?》

철도제복을 입은 사람을 뒤에 달고 걸어가던 사나이가 틀진 체구를 빙그르 돌렸다. 그는 연형묵이였다.

《아니?! 도당책임비서동지가?…》

《있으면서 대답을 안했소?》

너부죽한 얼굴에 짐짓 노기를 띠운 연형묵이 어서 내려오라고 손시늉을 하며 다가왔다. 이때 《책임비서동지!》 하고 웨치며 리정의 등뒤에서 설비부원이 먼저 내리꽂혔다. 아마도 낯익은 책임비서의 얼굴을 보게 되자 꼭 자기를 마중나온듯 반가움이 앞선 모양이였다. 연형묵이 그의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누구더라?》

《자령기계 설비부원입니다.》

《아, 동무였구만! 먼길에 수고가 많았소.》

그러니 리정은 이 유명한 도당책임비서가 정말 누구를 찾는것인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 그저 문턱을 짚고 서있었다.

《왜 그러고있소? 어서 내려오라는데.》

몸이 얼어서인지 뛰여내릴 때 그는 약간 비칠했다.

《내 차에 타시오.》

《예?!》

《난 동무를 마중하러 왔소.》

벌써 역사앞에 서있던 승용차가 슬슬 굴러오고있었다.

《그런데… 전 이제 자령기계공장으로…》

《알고있소.》 연형묵이 차문을 열며 재촉했다.

그래도 리정이 움직일념을 하지 않자 연형묵은 《어, 듣던바 그대로 고집이 여간 아니군.》라고 하며 자기네 사람(설비부원)을 돌아보았다.

《주인이 마지막까지 수고해야지. 동무는 설비들을 마저 호송하시오. 사장동문 나와 잠간 일을 보고 내 차로 태워다주겠소.》

《알겠습니다.》

《봤소?》 하고 연형묵은 그 무슨 시위라도 하듯 말하였다.

《여긴 자강도땅이니 주인들의 말대로 해야 하오.》

리정은 잠자코 차에 올랐다.

따로 볼일이 있다니 그게 뭐겠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름을 들은지는 벌써 오랬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게 되누만. 사장동무, 이제부터 동무는 우리 자강도의 단골손님이 되겠으니 나와 친해두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거요.》

역구내를 빠져나온 승용차는 이미 내정이 돼있는듯 철길과 차도로, 장자강이 외태머리처럼 한데로 닿아진 길을 따라 무평리, 광명리 멈추지 않고 계속 톺아올라갔다.

《책임비서동지, 어데로 갑니까?》

《가보면 알게 되오.》

성간에서부터는 기본도로에서 떨어져 산골길을 달렸다.

연형묵은 말없이 차창만 내다보는것이 리정에게 자강도에는 어떤 산골까지 있는가를 구경시켜주려는것 같았다. 갑자기 눈앞이 탁 틔였다. 북쪽특유의 뾰족지붕을 얹은 살림집들이 산기슭을 따라 보기 좋게 늘어선 마을이 펼쳐졌다. 마을복판으로 내물이 흐르고 집마다 눈고깔을 푹 뒤집어쓴것이 어느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같았다.

《여기가 어딘가 하니…》 연형묵이 차문을 열었다. 《성간림산사업소마을이요. 리상촌이지. 자체발전소에다가 유희장까지 갖고있구. 저게 보이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역시 림산맛이 나게 도툼하니 지어놓은 목욕탕이 있었다.

《동무의 임무는 저기서 목욕을 하는것이요.》

《예?!》

《목욕 말이요. 목욕을 모르오?》

리정은 연형묵이 롱담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지금 자령기계에선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새 설비들을 맞이하겠다고 모두들 기다리고있지 않습니까?》

《사장동무, 이것도 장군님의 분부이시오. 알겠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책임비서동지?…》

연형묵이 뒤짐을 얹고 리정의 주위를 돌아갔다.

《몇시간전에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로상에서 동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자강도당 책임비서가 직접 마중하여 몸도 녹여주고 식사도 시켜서 공장까지 데려다주라고 당부하시였소, 그럼 여기는 어떤 곳인가. 지난해 여름 그이께서 다녀가신 곳이요. 저 목욕탕에도 들어가보시였소. 자강도는 이렇소. 이렇듯 외진 산골마을에조차 그이의 발자취가 속속이 닿아있는 곳이란 말이요. 그러니 앞으로 성심껏 우리 자강도를 많이 도와주시오.》

리정은 그제야 이 웅숭깊은 책임비서가 왜 하필 자기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알게 되였다. 자강도는 이렇소 하던 연형묵의 말이 그 땅을 딛고서있는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참, 자령기계 현대화지도소조책임자가 동물 잘 안다더구만.》

《저를 말입니까?》

《그도 련하기계출신이라오.》

(련하기계출신?! 누굴가?) 짚이는 사람이 없었다.

《당장은 한증칸에서 땀을 쭉 내시오. 자강도에서 첫끼 밥맛이 썩 당기게 말이요.》 하고 연형묵은 리정의 등을 떠밀었다.

연형묵은 돌아서서 이곳에 올 때마다 들리군 하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인 림산사업소 작업반장네 집으로 찾아갔다.

나지막한 울바자에 둘러싸인 마당에서는 한뉘를 림산마을에서 살아 온다는 주인로친이 털등거리를 벗어던지고 기운차게 장작을 빡빡 빼기고있었다. 림산녀인들은 웬간한 사내들보다 도끼질을 더 잘했다. 그러나 전기난방화가 되면서부터는 림산의 정서라고 하던 녀인들의 도끼질소리를 듣기 힘들어졌다.

이곳에 발전소를 건설할 때 연형묵은 사람들을 모여놓고 그런 정서 아닌 《정서》를 림산에 가져다붙이는것은 낡은 시대의 유물이며 사나이들의 수치라고 열변했었다.

《이 집에서는 웬 도끼질소린가? 전기로 지은 밥이 맛이 덜한게지요?》 하고 물으며 연형묵이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구, 책임비서동지가 또 나오셨습니까?》 녀인은 실팍한 어깨에서 김을 무럭무럭 뽑아올리며 허리를 폈다. 《이 장작은 그런게 아니라 돼지우릴 덥히려고 그럽니다. 올봄부터 종축을 하는데 하필 이 겨울에 새끼를 내서 야단이 아닙니까.》

《오, 돼지종축을요?》

《벌써 더러는 기계공장들에 지원을 보냈는걸요.》

《또 더러는요?》

《에그, 그 더러는 우리 남정들한테도 대접해야지요. 호호…》

《허허허!》

연형묵은 즐겁게 웃고나서 돼지우리를 덥히는 일은 내가 맡겠으니 아주머니는 얼른 들어가서 통강냉이죽을 쒀달라고 부탁했다.

《귀한 손님을 한분 모셔왔는데 산골맛을 진하게 보여주자고 합니다. 감자와 당콩을 두고 끓인 통강냉이죽이 그저 그만이지요.》

《그까짓 죽이야 한가마라도 쒀드리지 못하겠습니까만 책임비서동지한테 돼지우리에 불때는 일이야 어떻게…》

《왜요, 잠자리에 세계지도라도 그릴가봐요?》

연형묵이 능청스럽게 던지는 롱담에 녀인은 튼튼한 팔뚝으로 입을 가리고 숨넘어가게 웃어댔다. 부엌으로 들어간 녀인은 곧 강냉이껍질을 벗기느라 드렁드렁 망질을 해댔다. 연형묵은 집뒤에 반토굴식으로 붙여지은 돼지우리를 구경하고 아궁에 불을 지폈다. 온돌장이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구석구석에 배겨있던 새끼돼지들이 설렁거리며 일어나 구들골을 따라서 분홍빛의 통통한 배를 늘어붙이고 꼴꼴- 만족한 소리를 냈다. 어미돼지는 그냥 구석에 들어박혀 새끼들이 좋아하는 모양을 히물히물 바라보기만 했다.

(허허, 저도 어미라고…)

연형묵은 혼자 웃었다. 그는 장작을 몇가치 더 밀어넣고 생각에 잠기였다. 자령기계공장을 현대화의 본보기단위로 정한것은 다름아닌 그였다. 희천을 짚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했다. 이번 현대화는 구체적으로는 련하기계를 도입하고 련하의 기술을 받아들이는것인데 희천이 규모로 보아 너무 큰것 같아서였다.

자강도의 얼굴이며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공장을 시험단위로 정하는것도 그리 마땅해보이지 않았다. 말은 바른대로 희천공작기계는 우리 나라 기계공업의 어머니공장이라는 칭호를 지닌 공장인데 그 아들벌도 아니고 손자벌이 될 련하기계로서는 너무 어벌찬 과업이 되지 않을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연형묵이 최종적으로 결심을 세운것은 장군님께서 지난해 자령기계공장을 돌아보시고 《마누팍뚜라》식이라는 심려의 말씀을 하신 그때였다. 고난의 행군시기 어느 도보다도 어려움이 많았던 자강도를 본보기로 력사에 길이 새겨질 강계정신을 창조하신 뜻에 비추어보아도 뒤떨어진 공장일수록 눈이 뒤집히게 천지개벽하는것이 다른 단위들에 주는 영향에서도 좋을것이였다.

현대화지도소조책임자로 련하기계출신의 일군이 내려온것도 기쁜 일이였다. 이름은 최수광, 한창나이 40대인데 그도 자령기계공장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온 일군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사람이 무게가 있고 련하기계에 대한 파악도 깊었다. 게다가 언제부터 이름으로만 익혀두었던 리정까지 만나고보니 이제는 자령기계공장의 현대화가 다된것처럼 마음이 흥그러워지는것이였다.

(이제는 지배인만 좋은 사람으로 앉히면 되겠는데…)

갑자기 뒤에서 《에그머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이 거지반 되였노라고 알려주러 왔던 녀인이 사색이 되였다.

《책임비서동지, 새끼돼지를 아예 쪄내자고 그럽니까.》

《아차, 이 정신봤나. 불을 너무 땠군!》

연형묵은 황황히 아궁안에서 불붙는 장작들을 끄집어냈다. 어미고 새끼고 모두 궁둥이들이 벌개져서 우리안을 뱅뱅 돌아치고있었다. 내굴때문에 더 앉아있을수도 없었다. 눈물을 훔치면서 밖에 나오니 마침 리정이 목욕탕을 나서는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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