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1 장

6

 

준엄하다!…

그 한마디 말만으로는 한가지 색처럼 이 모든 시련과 아픔을 그대로 그려내기 어려울것이다.

고난은 어데서부터 시작되였는가?

집집의 쌀독에서부터였는가, 아니면 어느 산골 리상점이든가 아이들의 간식가방에서부터였는가.

고난은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멎어선 렬차와 무궤도전차들에까지 왔는가.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창문들과 몇몇 의자가 비여있는 교실들에까지 왔는가. 고난은 이제 어디까지 가려는것인가?…

오솔길처럼 뻗어가는 사색으로 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시였다. 이틀전 그이께서는 기계공업부문의 주요공장, 기업소들의 생산실태와 관련하여 박송봉이 만들어올린 대책안을 받아보시였다. 돌이켜보시건대 그렇듯 비장하고 가혹한 문건을 받아보기가 처음인것 같으시였다.

희천공작기계도 그렇고 안흥이나 북천에서도 생산을 거의나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런 형편에서 현대화를 한다는것은 더더욱 생각지도 못하고있었다. 지금 있는 설비들을 유지보존하고 종업원들의 생활을 돌보는것만으로도 모두가 힘에 부쳐했다. 그러기에 대책안에는 CNC라는 단 한마디의 말도 올라있지 않았다.

어떻게 떠나온 CNC화의 길인가.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아야 한단 말인가.

CNC란 먼 앞날에 가서 다시 생각해야 할 꿈이란 말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그시 눈을 감으시였다.

대책안을 세워온 박송봉도 가슴이 아팠을것이다.

그는 문건을 작성하면서 두가지 문제에 애를 먹었다고 하였다.

하나는 공장, 기업소들에서 당면한 생산전략을 어떻게 세우는가 하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산출되는 자금문제였다.

현존생산토대를 유지하자고만 해도 자금소요량이 헐치 않았다.

그 수자만을 여섯번이나 쓰고 지웠다고 한다. 초안작성후 국가계획위원회의 합의를 걸치면서 또 두번을 고쳐썼다.

더 줄이라!… 요구는 그뿐이였다.

…《그 록음기를 다시 켜주시오.》

김정일동지께서 운전사에게 요청하시였다.

차록음기에서는 《사향가》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심금을 울리던 노래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심야방송의 소설랑독시간마다 듣군 하던 귀익은 방송원의 목소리가 올려나왔다.

수령님의 회고록에 나오는 소사하집장면이였다.

 

《내가 신발끈을 매고있을 때 어머니는 고리짝밑에서 5원짜리 지전 넉장을 꺼내여 나에게 주었다.

〈객지생활을 하느라면 돈을 써야 할 때가 많겠는데 이걸 건사해라. 남자의 주머니에는 정 급할 때 쓸 돈이 있어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릎우에 두손을 올려놓으신채 상념에 잠기시였다. 어찌보면 쪽잠에 드신것 같기도 했다. 허나 그이께서는 고요한 상념도 쪽잠도 아닌 마음속의 고전을 겪고계시였다.

인민생활문제를 풀기 위한 완충기의 새로운 혁명적경제전략을 승인해주시던 수령님의 음성이 귀전에 들려오는것 같으시였다.

수령님, 그 3년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인민생활은 여전히 펴이지 못하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 계시던 세월에 《가지 말어라 세월아》 하고 행복만을 노래하던 우리 인민이 너무도 큰 고생을 겪고있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힘이 듭니다.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적습니다.

지금 손에 쥔것은 경공업에 얼마, 농업에도 얼마씩 나누어주기에는 너무도 미력한 자금뿐입니다.

수령님, 제가 가는 여기 이 들길에 잠시라도 나와주실수 없으십니까. 저에게 힘이 되고 지주가 될 말씀 한마디만이라도 해주실수 없으십니까, 어버이수령님!

 

《…정작 돈을 받아들었지만 손이 떨려서 주머니에 집어넣지 못하고 어떻게 할바를 몰라 망설이였다. 그 돈 20원에 얼마나 큰 어머니의 로고가 깃들어있는가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손가락끝이 모지라지도록 삯빨래도 하고 삯바느질도 해서 푼푼이 저축해둔 20원의 돈, …그만한 돈이면 중소 한마리는 살수도 있었고 쌀을 사서 세식구가 일년은 살아갈수도 있었다.》

 

쌀을 사서 세식구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엇인가 북받쳐오르는 가슴을 쓰다듬으시였다. 개구리마저 등가죽이 익어 벼그루밑에서 말라죽던 지난여름이 떠오르시였다. 평년보다 5도나 높은 고온현상이 백여일째 지속되자 성천강과 금야강, 덕지강, 은파호와 서흥호, 연탄호 등 강과 호수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관개망을 통한 물공급이 중단되였다.

가물피해면적은 7월말경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29만여정보에 달하였다. 8월에는 수십년래에 처음 보는 최대만조와 해일이 서해안 140여개 리들을 물에 잠그어버렸다. 950여개소에 총연장길이 28만 8 800여메터에 달하는 방조제가 파괴되고 10만 7 600여정보의 땅에서 수확을 기대할수 없게 되였다.

《시급한 식량구입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하고 무서운 경고처럼 마무리진 또 하나의 문건이 떠오르시였다.

쌀!… 이제라도 그것을 사왔다고 생각해보자.

식량공급소들의 문이 다시 열리고 누구에게나 한가득씩 쌀을 지워보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발편잠을 잘수 있을가?

혹시는 그랬다고도 생각해보자.

그렇게 몇년을 버티고 새 세기를 맞이한다면? 그사이 더욱 피페해지고 령락된 경제형편을 놓고서도 우리가 이겼으니 만세를 부르라고 말할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고난을 이겨냈을뿐아니라 이겨내고보니 우리 조국이 더욱 힘있고 빛나고 기름지였기에 눈물이 기뻐서 나오고 만세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오는 그것이 진짜 승리일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엇때문에 주저하고있는것인가?!…

 

《…나는 걸음을 내짚었다. 그러나 나의 걸음은 동구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둘레를 돌기 시작하였다. 손에는 돈 20원이 그대로 쥐여져있었다. 한바퀴를 돌고 두바퀴를 돌고 세바퀴를 돌고…

그 길지 않은 시간에 내 머리에는 온밤 내 마음을 쥐여잡고 놓아주지 않던 복잡한 상념의 쪼각들이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내가 이 마당에 다시 들어서게 되는 날은 언제쯤 될가? 과연 내가 지금 승산이 내다보이는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내가 가는 앞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있을것인가?…》

 

희벗한 토사도로가 짝지발처럼 갈라진 분기점에서 한 젊은 직관원이 《위대한 장군님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자!》는 대형구호를 보색하고 있었다. 차는 바로 그앞을 지나가고있다.

(끝까지…) 하고 그이께서는 외워보시였다.

사다리를 타고앉아 해빛이 도는쪽으로 삐뚜름히 모자를 돌려쓰고 붓을 놀려가는 저 직관원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금시 붓끝이 지나왔을 저 문구만이라도 음미해보았을가?

그저 굵기며 획이며 하는데만 신경을 쓰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스쳐버리지 않았을가? 하지만 일을 다 끝내놓고는 몇걸음 물러서서 자기가 쓴 구호의 뜻을 되새겨볼것이다.

끝까지!… 그것은 정말로 어떠한 끝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반대로 끝이 없는, 영원을 의미하는것이다.

젊은 직관원동무, 동무는 그 길에 어떤 넘기 어려운 시련이 놓여있고 가슴 미여지는 아픔이 있겠는가를 생각해보았는가? 그래도 따르겠다는 인민을 품에 안고 부디 강행군길을 선택해야 하는 나의 쓰라린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있는가?…

…《차를 세우시오!》

해지는 들길에서였다. 멀리 서산갓머리에 잠시 머무른 저녁해가 텅빈 들판을 걷는 마지막길손들을 바래우고있었다.

잔광이 마주서신 그이의 어깨며 발부리에서 자글자글 끓었다.

새떼가 끼륵끼륵 목갈리게 울어대며 새초숲 설레는 너른한 들판상공을 지나 어데론가 날아가고있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노을속으로 점점이 사라져가는 한무리 새떼들을 그이께서는 하염없이 바라보시였다.

예로부터 따뜻한 깃을 찾아 강남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노래하며 소박한 꿈을 꾸어온 우리 인민들…

그들이 나를 바라본다. 그들은 군인으로서, 기사로서, 로동자와 농민으로서 조국을 위해 이 어려운 나날에도 일을 하고있다.

그러면 수천만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령도자로서, 조국이라는 위대하고 신성한 부름을 나의 이름과 나란히 불러주는 인민을 위하여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문득 떠오르는 노래의 구절이 있으시였다.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

 

하늘높이 떠가는 삼각대형, 그 첫머리의 정점을 이루고 나아가는 선두기러기를 그이께서는 응시하시였다.

한몸 바쳐 막아서는 폭풍에 파렬구를 뚫을듯 나래쳐가는 너는 더없이 용감하다. 너는 기수, 너는 첨단에 서있다. 첨단이라는 말을 도형적으로 표시한다면 저와 같은 삼각형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 노래, 기러기, 최첨단, 우리의 행군대오…

그것이 의미적으로 저 하늘에 그려진것 같기도 하시였다.

그렇다, 파구는 첨단으로 내야 한다. 기계공업의 CNC화, 그것이 이 고난속에서의 최상의 선택이다. 기계공업이자 중공업이고 중공업이자 국방공업이다.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과학기술을 틀어쥔다는것은 이것이다. 조국을 수호할뿐만아니라 륭성번영에로 추동하는 억센 힘이 여기에 있다.

주저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여리여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눈물이 내 발끝에 떨어지고 어머니들의 젖은 옷고름이 칼끝처럼 내 가슴을 허빈다 해도 가야 한다.

수령님처럼 가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 집둘레를 속절없이 돌고있을 때 어머니가 문을 열어제끼며 준렬하게 나를 꾸짖는것이였다.

〈상기두 무엇이 걱정돼서 그렇게 떠나지 못하구 우물쭈물하느냐? 나라를 찾겠다구 결심품구 나선 사람이 그렇게도 마음이 예리고 집걱정이 많아서야 어떻게 대사를 치르겠니.…〉》

 

《갑시다!》 그이께서는 한손을 힘있게 내리그으시였다.

뒤차에서 내려섰던 장령들이 삽시에 흩어져갔다.

《모두 내뒤를 따르시오!》

그이께서 직접 운전대를 잡으시였다. 차체가 껑충한 군용승용차들이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로우에서는 삽시에 피여오르는 붉은 먼지로 구름이 흩어지는듯 하였다. 속도계의 바늘이 몸서리치듯 파르르 떨리였다.

 

《〈어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모자를 벗고 머리를 깊숙이 숙이였다. 그런 다음 동구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장군님, 너무 과속을…》

박송봉이 얼굴이 거멓게 질려 말씀올렸다.

《동무가 제기한 문건을 수정해야겠소.》

《예?》

《기계공업에 투자합시다. 투자하되 나누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해야 하오. 무슨 의미인가? 나라의 인적, 물적, 지적잠재력을 총동원하여 기계공업의 CNC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뜻이요. 오늘을 보는 눈이 피상적이여서는 이 험한 난관을 헤쳐갈수 없소. 세상사람들에게는 내가 당장의 제도수호를 위해 군령도에만 집착하는것으로 보이는가? 그럴수도 있소.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동무들만은 내 마음을 똑똑히 들여다보아야 하오. 나는 량손에 총을 틀어잡고 오늘을 견디여내자는것이 아니라 한손으로는 래일을 꽃피우는 과학을 떠받들고 이 시련에 찬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려고 하오.》

차단봉이 오르고있었다.

그이를 선두로 한 승용차행렬이 펑퍼짐한 야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어느 한 군부대의 사격장으로 들어서고있었다. 해는 이미 산너머로 종적을 감추고 주위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관총을 아홉정 준비하시오.》

영접보고를 드린 지휘관이 옆구리에 찬 권총집을 한손으로 꾹 누르고 사격좌지를 향해 급보로 달려갔다. 수행한 일군들이 바투 따라서도록 좌우로 각각 손짓을 하시며 그이께서는 《그런데 제기된 문건은…》 하고 중단됐던 말씀을 이으시였다.

《기계공업부문에서 년차별로 현존생산토대의 일부를 현대화하고 점차 확대한다는 소극적인 전략은 필요없소. 지금의 경제형편에서 그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고난의 행군은 도피나 굼때기가 아니요. 내가 이미 강조했지만 우리는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래일을 위해서 혁명을 하는거요. 어려운 때일수록 래일을, 래일의 아침을 생각합시다. 나는 기계공업의 현대화를 위해 동무가 부른것보다 열배를 더 주겠소. 운명적이요. 여기서 주저하면 안되오. 나라의 총력을 CNC화에 투자합시다!》

7.62미리기관총 아홉정이 누런 탄띠를 물고 사수들을 기다리고있었다. 200메터거리에 세워진 같은 개수의 목표판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화력지휘관을 부르시였다.

《동무!》

《옛! 소좌 강일국!》

《집에 애들이 있소?》

《?!》

《아이들이 있는가 말이요?》

무슨 명령이든 내리시라는듯 팽팽히 부풀어있던 소좌의 가슴팍이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관골이 울뚝불뚝한 그의 얼굴이 위장한 철갑모아래서 이상하게 움씰거리고있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열살난 딸과 여섯살난 아들이 있습니다.》

《여섯살잡이가…》 하고 되받으시며 그이께서는 잔디를 입힌 화선에 두손을 짚으시였다. 《오늘 아침에 뭘 먹였소?》

최고사령관동지! 저의 집에서는 아침에…》

소좌의 목젖이 그만 울컥했다.

《됐소. 소좌동무, 저앞에 중심목표 한개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시키시오. 장령동무들, 일제히! 한목표를 소멸합시다.》

《알았습니다!》

《사격준빗!》

김정일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열살, 여섯살… 그 애들이 나를 리해해줄가? 그 작은 배마저 곯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이다음 크면 나를 보고 뭐라고 할가?)

《쐇!》

첫 불줄기가 그이께서 틀어잡으신 기관총에서 터져나갔다.

화선이 진동했다. 번쩍이는 불줄기들이 벼락치듯 쏟아져나가 목표를 덮쳤다. 탄착점에서 도탄된 총알들이 바스라지듯 별찌를 휘뿌렸다. 무자비한 타격이였다. 절컥! 빈 격철이 떨어졌다.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좌지에서 일어나지 못하시였다.

 

1998년 1월 15일 밤, 세찬 눈보라가 역구내에 서있는 렬차를 둘러싸고 우우 소용돌이치고있었다. 발차시간이 박두한듯 검차원들이 분주히 뛰여다니고 홈밖으로 머리를 내민 기관차에서 울리는 기적소리가 눈보라에 뒤섞여 흐리멍텅하게 들려왔다. 문득 어느 한 렬차승강대의 문이 열리더니 밝은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박송봉동무가 아직 도착하지 못했소?》

김정일동지께서 승강대에 나오신것이였다.

《예! 장군님, 제가 여기 왔습니다.》

어둠속에서 박송봉이 나타났다.

눈보라가 어찌나 세찬지 그는 한손으로 모자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앞을 허우적거리며 맞바람을 피하느라 머리도 들지 못하고있었다. 몇몇 일군들이 뛰여내려가 그를 승강대로 끌어올렸다.

일군들의 등을 떠밀어 안으로 들여보내신 그이께서는 승강대에 홀로 서시여 어둠에 잠긴 수도의 거리를 바라보시였다.

모든것이 추위속에 웅크리고있었다.

사방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캄캄했다.

그이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 하늘가를 더듬으시였다.

(수령님! 이 겨울의 첫 폭풍이 터졌습니다. 한치 앞도 가려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저는 자강도로 떠나려고 합니다. 이 길에 운명을 겁니다. 세상이 모두 내 마음을 몰라준대도 수령님께서만은 아실것입니다. 수령님, 저를 지지해주십시오. 지켜보아주십시오!)

그이께서는 조용히 외우시였다.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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