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제 1 장

4

 

그밤 리정은 대동강역에 나와있었다.

오래간만에 평양나들이를 왔던 누이 리순이 오늘 밤차로 돌아가게 된것이다. 그가 리정의 집에 와서 묵은 날은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 그 사흘간 리정도 집에 있었다. 채이숙은 남편의 이러한 행동을 두고 놀라는 한편 기뻐했지만 리순은 자기가 바쁜 동생의 발목을 잡아둔것이 아니냐고 불안해하였다. 마침 시내에 볼일도 있고 해서 들어와있노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리정은 설복하기를 단념했다.

누이와 상봉하던 날이 떠오르면서 그럴수 있겠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리순이 평양에 도착하는 날도 리정은 역에 나왔었다. 채이숙이 따라나오겠다고 하는것을 저녁준비나 잘해놓으라고 하고는 혼자 나와 마중했다. 리정은 시간이 그리 넉넉한 사람이 아니였다. 그러나 누이만은 성의껏 맞이하고싶었다. 리정이 가정을 이루던 해에 만나보고는 몇해만에 처음 평양에 오는 누이였다. 지금은 그 누이가 아들구실까지 맡아 년로보장을 받은 아버지를 모시고있었다.

지난해 리정은 통일거리에 집을 배정받아 분가하였다.

그때도 채이숙과 의논하고 아버지를 모셔오려고 했지만 리순이 반대했다. 아버지가 큰일을 하는 아들에게 부담을 끼치고싶어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후 일에만 묻혀살던 리정에게 누이가 보내온 《17일 밤렬차로 도착》이라는 짤막한 전보는 집, 가정, 생활 등 머리속에서 잠시 멀어졌던 많은 문제거리들을 떠올렸다. 누이는 아버지를 모셔오던 해에 직장일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왔다.

그 연약한 손에 년로한 아버지와 간석지건설사업소에서 일하는 매부 그리고 세 조카가 달려있었다. 갑자기 리정은 누이가 퍽 늙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사이에 생활은 몹시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누이는 언제한번 아버지를 모시기가 힘들다거나 무엇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무슨 도움을 받자고 찾아오지는 않을것이다. 리정은 그렇게 확신했다.

기다림칸에서는 밤시간에 한번씩 렬차시간을 알려주군 했는데 정시로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렬차가 드물었다. 리순이 탄 렬차도 몇시간 연착되였다. 리정은 나들구에서 리순을 맞이하였다. 자그마한 배낭에 손가방을 들고 털목도리로 얼굴을 한절반 둘러감은 리순은 차칸에서 좀 얼었는지 추워하는 기색이였다. 리정은 배낭부터 받아지고 기다림칸으로 가서 긴의자에 마주앉았다.

별로 서두르고싶지 않았다.

《뭘 지고올게 있어야지. 그 배낭엔 까나리랑 말린 물고기를 좀 넣구 이 가방안엔 아버지가 손자한테 보내는 뜨개옷하구 내가 오레미한테 주자구 신발을 한컬레 넣었다.》

《아버지건강은 어때요?》

《일없다. 그저 손에서 일을 놓았으니 뭘 꼭 잊어먹은것 같다고 그러시지. 한데 넌 그냥 여전하구나. 더 젊어진것 같애.》

《누이도 생각보다는 늙지 않았군요.》

리순은 아무말없이 그저 웃어보였다. 어딘가 서글퍼보이는 웃음이였다. 리정의 말이 지어낸것이라는것을 증명해보이듯 리순의 눈가에 자름자름한 주름살들이 가득 잡혔다.

《내가 올 길을 왔는지 모르겠구나.》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해요. 오래간만에 평양에 왔는데 시내구경이랑 하면서 며칠 푹 쉬여야지요. 지성이도 좋아할겁니다.》

《그 애도 퍽 컸겠지? 옷이 작지나 않겠는지…》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주차장으로 갔다. 리정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누이를 위해서 그랬다. 가정사로 차를 부르는 일이 한번도 없었지만 그때만은 그러고싶었다. 리정이 차유리를 두드리자 졸고있던 운전사가 내다보고 얼른 짐칸문을 열었다.

《이거… 무슨 차니?》

리순이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타는 찹니다.》

《네 차? 에그머니, 그럼 이게…》

리순은 마치 차를 처음 보기라도 하는것처럼 몇걸음 물러서기까지 하더니 《난 몰랐지. 우리 집안에 차타는 사람이 다 생기구.》 하고 몹시 감격해하였다. 차에 올라서도 내내 말이 없었다.

집에서는 채이숙이 그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고있었다. 반가와서 어쩔줄 몰라하던 채이숙은 밥을 다시 덥혀야겠다며 부엌으로 내려가고 리순은 잠자는 지성이의 머리맡을 지키고앉았다.

《사진을 볼 때는 잘 모르겠더니 꼭 아버지로구나.》

늦은 저녁상을 물리고나니 밖이 밝아오고있었다.

지성이가 잠에서 깨여나 낯선 고모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우리 지성이 깨났구나. 지성아, 네 고모다.》

채이숙이 애를 안아 일으켜세웠다.

《지성아, 어디… 이 고모가 좀 안아볼가?》

녀석은 내우를 하며 제 어미의 무릎에 가앉았다.

리순은 《저것 좀 보지, 글쎄 친척이라도 다니지 않으면 남이 된다니까.》 하고 섭섭해했다.

리순은 가지고온 짐을 풀어놓았다. 아버지가 보냈다는 뜨개옷을 지성이에게 입혀보니 품이 널널한것이 몇해 잘 입힐것 같았다.

채이숙이 신으라고 가져온 목구두도 모양이 괜찮았다.

《고마워요, 누이. 한데 난 미안해서 어쩔가.…》

채이숙이 신을 신어보며 하는 말이였다.

《미안하긴. 그 신은 사실 지성이 아버지덕분에 생긴거야.》

《우리 지성이 아버지덕이라구요?》

《됐어. 그저 그렇게 알고 신으면 돼.》

채이숙은 머리를 기웃거리면서도 신발을 받아놓았다.

리정은 누이를 위해서 이모저모로 마음을 썼다. 옥류관에도 갔댔고 어제는 교예극장구경을 했다. 그러나 리순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밝지 못했다. 그새 정이 든 지성이의 어리광을 받아줄 때에만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잠시 벗겨지군 했다. 그러더니 어제 밤 마침내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채이숙이 말리고 지성이까지 칭얼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걱정돼서 그런다는것이였다. 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리순의 가슴속에는 말 못할 무엇이 있는것 같았다.

그것이 뭔지 알지 못한채 리정은 누이를 바래우게 되였다.…

새벽공기는 몹시 차거웠다. 수십년래에 처음 본다는 장마와 큰물이 봄부터 온 여름, 가을까지 왔다갔다하는 동안 하늘도 그만 지치고 말라버렸는지 동지달이 기울도록 눈꽃 한점 떨구지 못하였다.

리정이 차표를 끊어오니 누이는 무릎우에 배낭을 올려놓고 또 그우에 두팔을 포개인채 졸고있었다. 보건대 그는 리정의 집에 와서 깊은 잠을 자보지 못한것 같았다. 목수건에서 코가 풀려나온 실오리가 누이의 숨결을 따라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리순이 문득 눈을 떴다.

《내가 잤니?》

《그런것 같애요.》

리순은 물어보던 자세로 그냥 리정을 쳐다보았다.

《누이두, 왜 그렇게 쳐다봐요?》

《응, 그저 옛날 일들이 생각나서… 우리 정이가 언제 이렇게 큰사람이 됐을가 하고 생각했지. 그때 말이야, 네 차를 처음 타보았을 때 난 기쁘기두 하구 한쪽으론 가슴이 활랑거리기두 하구…》

그러더니 리순은 처음으로 밝게 웃어보였다.

《누이, 내가 어려서 씨름승부를 다투던 일이 생각나요?》

《그럼, 나잖구.》

《그 기술공정원의 아들이 지금 나랑 같이 일합니다.》

《누구?!》

《누이가 말하던 〈8번〉말입니다. 우리 련하기계공장에서 부지배인으로 일하지요. 허허, 사람의 일이라는게 참 모르겠거던요.》

《그가? 그렇게 됐구나!…》

그때 리순의 얼굴에 비낀 변화를 리정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리정은 솜옷안섶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리순의 손에 쥐여주었다.

《많지는 못해요. 집사람이 마련한건데 생활에 보태십시오.》

《아니, 이러지 말아. 난 사실…》

《누이, 이번에 우리 집에서 누이를 섭섭하게 하던가요?》

리정이 정색해서 물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누가 나를 섭섭하게 했다는거냐?》

《그럼 왜 이렇게 급히 돌아가는겁니까. 낯색도 좋지 않지…》

《내가 그렇게 보이던?》

리순은 목도리를 조금 헤쳐놓으며 입김을 쏟았다.

《사실은 내가 평양에 온걸 아버지가 모른단다.》

《예?! 그럼 아버지는?…》

《그저 며칠 식량을 구하러 갔다오겠다고 했다.》

《리해되지 않는데요? 누이가 왜 그랬는지…》

이때 구내방송이 열리더니 손님들에게 뭐라고 알렸다.

리순이 《저 방송에서 너를 찾는게 아니냐?》라고 했다.

들어보니 정말 방송에서는 련하기계회사 사장을 찾고있었다.

《왜 그럴가?》

《글쎄요.》

리정도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는 리순에게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 역장실로 찾아갔다. 중년나이의 역장이 기다리고있었다. 역장은 자기도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리정에게 바꿔주었다. 송수화기를 들자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요, 안시학이요. 누이는 떠났소?》

누이소식을 묻는것을 보니 집에 먼저 전화를 건 모양이였다.

《아직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이거 안됐소. 동무와 중요하게 토론할 문제가 생겨서 그렇게밖에는 달리 찾을수 없었소. 이제 나한테 와줄수 있겠소?》

《이제요?》

《아, 차시간이 언제요?》

《두시간정도 늦어진다고 합니다.》

《두시간?》 안시학은 시계를 보는것 같았다. 《누이야 바래줘야지. 하여간 일을 보고 빨리 와주오, 내 기다리겠으니.》

《지금 어데서 전화를 합니까?》

《사무실이요.》

리정은 중요한 문제란 뭘가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짚이는것이 없었다. 그가 돌아오자 리순이 근심스러운 기색으로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물었다. 별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리순은 곧이듣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어서 가봐.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하지.》

(그래, 이렇게 같이 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생이 아니라 바삐 일하는 모습을 보는것이 누이의 기쁨인지도 모른다.)

《누이,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 걱정 말고 일 잘해라.》

역을 나서니 새벽하늘이 밝아오고있었다.

멀리서 첫 궤도전차가 종을 울리며 다가왔다. 그런데 리정에게는 그 소리가 예전같이 즐겁고 기분좋게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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