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4 장

3

 

리정이 무역부와 외교부를 드나들며 출장준비를 갖추고있을 때 집안은 집안대로 설레였다.

출발이 모레다, 글피다 하는 때 한씨가 어데서 호화포장을 한 구두 한컬레를 얻어다가 가족들앞에 내놓으며 자랑겹게 말했다.

《털구둘세. 저 8층 비둘기집 조카가 모스크바요, 베오그라드요 하여간 외국에 수바늘 드나들듯 하던 사람인데 임자가 우리 나라 기계를 가지고 국제전시회에 간다는 말을 듣고 이걸 보내왔다지 않겠나. 몸건사 절반이 발건사라구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만.》

오른발이 맞는데 왼발이 안 맞을리 있으랴만 리정은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몇번이나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구두맵시를 보이느라 방안을 한바퀴 돌기까지 했다. 이렇게 가족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서야 리정은 《그런데 어머니, 제가 가는 나라에는 겨울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한순간 어리둥절해졌던 집안에 웃음보가 터졌다. 그 단순한 지리적개념을 모두가 잊고있었던것이다.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말라구. 외국휴양을 간다면 이러겠나? 내 알건대 사회주의시장이 무너진 후로 우리 기계가 자본주의시장에 진출하기가 처음인것 같은데 조선이라는 이름이 사상적으로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굳건하다는걸 꼭 보여주게.》

웃음끝에 장인이 가장답게 한마디 했다.

말라이반도의 남쪽끝에 자리잡고있는 나라의 기후는 무덥고 습하였다. 수십여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령토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유럽과 아시아, 오스트랄리아 3대륙을 련결하는 해상 및 공중교통중심지로서 일찍부터 중계무역이 발달해온 이 나라에서는 국민소득의 80프로가 중계무역에서 얻어지고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부터 리정은 긴장하였다.

일개 연구사인 그에게 기술교류나 협조사업이 아니라 대외무역사업을 맡겨주신 믿음이 큰것만큼 가슴속에 걱정의 그림자도 크게 드리웠던것이다. 남들이 만든것을 들고왔다 해도 이같지는 않을것이였다. 연구사이며 생산자이며 판매자로까지 된 리정은 자기의 변모를 새삼스럽게 의식하는만큼 긴장하게 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와 함께 《련하기계》상표가 붙은 CNC줄방전가공반은 전시회장 D구역 1-5위치에 자리잡았다.

첫날부터 《련하기계》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다.

보건대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아직까지 유독 붉은색으로 지도를 표시하고있는 조선에서 그것도 첨단급의 설비를 들고 국제시장에 나왔다는 그자체만으로도 놀라와하는것 같았다,

안시학과 리정이 번갈아가며 면담에 나섰다. 영어, 중어, 말라이어 등이 공용어로 쓰이고있는 이곳에서 리정은 안시학만 못지 않게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었을뿐아니라 기술문제에서도 막히는것이 없어 어쩌면 더 적격자라고 할수 있었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하고 거리구경을 나간다던 리정이 어디서 깽들이 끼고다니는것과 비슷한 안경을 하나 사끼고 돌아왔다.

안시학은 자기 동행자에게 저런 몰취미도 있었는가싶어 눈이 둥그래졌다. 다음날부터 리정이 그 안경을 끼고 면담에 나서자 안시학은 질색했다. 외교석상에서 그것은 실례라고 하면서…

그러자 리정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련하를 위해서 잠간 실례합시다.》

리정이 앞서 수차례나 공회전을 거듭하고있던 싱가포르인 중개업자와의 면담에 나설 때에야 안시학은 그가 한사코 색안경을 고집한 리유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였다. 상대가 바로 그런 안경을 끼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은 맹인의것처럼 차겁고 우멍스러운 안경이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을 보는 상대로 하여금 까닭모를 불안과 초조감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끝을 알수 없는 우물의 밑바닥을 밟아보려고 한치한치 손더듬하며 내려갈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그것을 전투에 비유한다면 한사람은 참호속에 엎드려 총구만 내놓고있는데 다른 사람은 흉장우에 올라서서 온몸을 드러내놓고 쏠내기를 하는것과 비슷했다. 동남아시아 각곳에 지부를 두고 전자 및 기계무역을 전문업으로 하고있다는 대방은 우리에 대한 연구를 퍼그나 한듯 질문들이 제법 까다로왔다.

《실례지만 당신의 직함은 연구사로 되여있던것 같은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면담결과가 전혀 무의미한것으로 되지 않을것이라는 어떤 설명을 저에게 해줄수 있겠습니까?》

《나는 해당 설비의 연구사일뿐아니라 생산자이며 위임에 따라 계약 및 판매, 그 리행과정에 대한 권한을 전부 행사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있기에 귀국에서는 모든 기업이 국가의 소유로만 되여있고 연구자와 생산자, 판매자의 권리는 서로 분리되여있는것으로 알고있는데요.》

《분리요?》

《예, 분리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낡은 교과서로 공부를 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련하기계회사는 그러한 권리들을 전부, 통일적으로 행사하고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 분리야말로 당신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가령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리정은 면담탁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주먹을 올려놓았다.

《여기에 생산과 소비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이에〈시장〉을 놓았고 나는 〈계획〉을 놓았습니다. 가만 좀 들여다보십시오. 아담 스미스나 밀톤 프리드맨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지배되는 시장경제에 비해 축적과 소비, 생산과 판매의 제요소들이 가장 합리적이고 정확한 계산과 통제에 의하여 관리되는 계획경제야말로 얼마나 통일적이고 련대적이며 과학적입니까. 이것을 참모부가 있는 부대와 없는 부대간의 차이로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만 더 물읍시다. 가령 내가 앞으로 친선적인 귀국에 우리의 기업을 확장하려고 한다면? 당신들은 이전 사회주의클럽내에서조차 그 어떤 형태의 외국기업이나 자본의 투자도 달가와하지 않았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그에 대해서라면 1992년 12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을 보시오. 거기에 우리 나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4차회의에서 채택된 〈외국인투자법〉과 〈합작법〉이 있을것입니다. 요구하신다면 그 내용을 제가 구사해드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만족합니까?》

그리고 리정은 안경을 벗었다. 벗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고객들에게는 〈잠재적신용의식〉이라는것이 존재한다는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늘 쓰던 물건, 다니던 길, 거래하던 회사… 이런데서 선뜻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를테면 심리적집착성이라고 해야 할지…》

《예, 알만 합니다. 물론 독점기업들은 시장에서뿐아니라 구매자들의 심리면에서도 터세를 확장하고있겠지요. 그래서 〈Made in D.P.R.K.〉는 아무리 광고를 해도 구매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판매부진을 막는 방도는 가격을 대폭 낮추는것뿐이다, 그렇습니까?》

중개업자는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자기와 마주앉은 상대를 똑똑히 들여다보고싶은듯 지금껏 벗어본적 없는 안경을 내리웠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련하기계의 훌륭한 기술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몇가지 시험을 해보아도 괜찮을가요?》

그 시험이란 일본, 도이췰란드 등 기계제작공업이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에서 출품한 CNC줄방전가공반에 대비하여 실지 가공작업을 시켜보면서 련하기계의 성능을 검사해보자는것이였다.

(도발이 아닌가?!) 안시학은 신경이 곤두섰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할 준비를 갖출 때부터 리정이 련하기계의 기술적특성과 성능을 담보하는 말을 많이 하였지만 아무래도 신설회사의 기계제품을 제노라 하는 외국회사제품과 맞대놓고 대비가공을 시킨다는것이 속에 께름했던것이다. 안시학은 생각다못해 조국에서 급한 련락이 왔노라고 리정을 불러냈다.

《말려들지 마오. 저건 분명 계약을 미끼로 련하와 독점기업들간의 경쟁을 조작하고 가격공간을 조성해보자는 속심일게요.》

리정은 오연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럴가요? 전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안시학은 그 순간 자기의 마지막유럽행이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몸서리쳐졌다. 그때의 수치감과 모멸감을 이 젊고 야심만만한 과학자에게 그대로 설명해줄수만 있다면!…

《리동무, 동문 좀 흥분한것 같소. 마음을 눅잦히오. 그러다 혹시 랑패라도 보면 어쩌겠소? 나라의 존엄이 손상될거란 말이요. 또 련하기계의 체면과 신용은 어떻게 되겠소?》

《체면이요?》 리정의 오목하고 반짝반짝한 눈이 아주 푹 잠겨있는것같았다. 《깎일바엔 지금, 바로 이제 깎이는것이 훨씬 나을겁니다. 그게 두려워 물러선다면 련하는 언제 가도 세계에로의 창문을 열지 못합니다. 장군님께서도 세계와 가슴을 부딪쳐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해봅시다, 〈하노꾸〉가 별겁니까!》

《하노꾸》란 일본의 유명한 기계제작업체였다.

이렇게 되여 전시회의 마지막날 수많은 나라의 출품자, 참관자, 구매자들의 관심속에 련하기계와 《하노꾸》, 《호프만》 사이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였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였다. 나란히 세워놓은 3대의 줄방전가공반들이 꼭같은 가공프로그람에 따라 8분동안 제품을 가공하였다. 그 8분이 80년처럼 길어보였다.

제품가공이 끝나자 련이어 정밀검사가 벌어졌다.

검사결과 련하기계의 기술성능이 다른 두 회사의 제품보다 못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하노꾸》는 작업도중 방전선이 두번이나 끊어져 안전성이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거의 배나 되게 비쌌다.

련하기계가 내놓은 줄방전가공반은 그 자리에서 판매계약이 맺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계약을 맺자, 대리점을 내오자고 그들을 찾아왔다.

안시학은 머리를 높이 들었다. 잃었던 그 무엇을 되찾은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존엄이구나, 이것이 진짜 자부로구나. 장하다, 우리 조선의 련하!… 그는 몹시 흥분하였다.

《리동무, 오늘 저녁은 나가 먹기요.》

《나가서요?》

《왜, 내 겉보기는 꼬장꼬장해도 씀씀이가 괜찮은 사람이요.》

안시학은 리정을 《자취식당》이라는 특이한 간판이 붙은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련인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맞는 부부들이 찾아와 주로는 남성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료리를 만들면서 한끼식사를 즐기는 곳이였다. 그래서 식당의 안내책에도 익은 료리가 아니라 조미료를 포함한 료리감들의 값이 올라있었다.

안시학은 감자와 두부, 소고기, 홍당무와 양념감, 중요하게는 조선된장을 신청하였다. 그리고는 손수 위생모에 앞치마를 두르고 불을 지피고 조리를 하고 국물을 잡아서 기막힌 토장국을 끓이였다. 그러는 동안 리정은 안시학의 《련인》처럼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식사준비가 다 되자 안시학은 술도 한병 청했다.

술을 찾기는 조국을 떠나 처음 있는 일이였다.

《리정선생!》

안시학이 일어나며 어색하게 찾는 바람에 리정도 따라일어섰다.

《내 오늘 선생께 귀잡고 절을 드리려오.》

어쩔 사이 없이 안시학은 정말 절을 했다.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리정은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차일을 치고 적당히 널려앉은 손님들이 그들을 지켜보며 참 재미있게 즐긴다는듯 눈먼 웃음을 던지고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손수 끓인 감자토장국을 맛갈스럽게 들이킨 안시학은 식탁여가리를 두손으로 벌려짚고 《인생은 말이요, 복습할수 없는거지. 그렇지만 난 요즘 인생을 예습하고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요.》라고 하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아니요, 마찬가지가 아니요. 동문 아직 젊지 않소.》

《젊었으니 그러지요.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복습할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단번에 잘 써가야지요.》

《단번에라…》 하고 안시학은 턱밑에 손가락을 받쳐들며 엉뚱하게 말을 돌렸다. 《동문 별자리를 볼줄 아오? 난 좀 아오. 외국출장이 잦아지면서 관심을 갖게 됐지. 언젠가는 베를린에 갔다가 유명한 케풀레르식망원경을 기념으로 선사받기도 했소.》

먼 하늘가에 시선을 두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펴나가는 안시학의 표정은 난생처음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황홀감에 가슴을 들먹거리는 소년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것으로 먼 조국의 하늘가에 떠있을 별들을 바라보며 제딴에 가슴을 지지는 감정에 젖어보기도 했고. 그런데 이상하지 않소. 지금은 맨눈인데도 그때보다 별이 더 잘 보이니 말이요. 저기 내 손끝을 좀 보오. 록보석알처럼 박힌 삼형제별이 보이오?》

《예- 보입니다.》

《그게 바로 삼태성이요. 오리온성좌의 2등성들이지. 지금쯤 우리 조국에서 바라보면 하늘복판에 제일 또렷이 떠있을게요.》

《이제 조국에 돌아가면 구면지기처럼 보이겠는데요.》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나오? 내가 당신때문에 저녁도 못 먹고 김경조의 집에서 쫓겨나던 때 말이요. 가만, 내 말을 막지 마오. 그때도 저 별이 떠있었소. 난 밤길을 되돌아가면서 참 흉측스러운 인물과 맞다들렸다고 두덜거렸댔지.》

《비교적 옳게 보았습니다.》

《비교적이라는건 뭐요?》

《그땐 내가 비교적 흉측한 사람이였다 그 말입니다.》하고 리정은 소리없이 웃어보였다. 《한 일군이 나에게 충고하기를 야심만으로는 저 하나의 이름은 낼수 있을지언정 나라는 떨칠수 없다고 했지요. 그 말이 지금 내 가슴복판에 떠오르는것 같습니다.》

《나도 왜 이렇게 가슴이 꽉 차오를가.》

안시학은 한손으로 가슴을 비비였다.

《난 말이요, 장군님께서 나와 동무를 이곳에 보내신데는 깊은 의도가 계셨을거라고 생각되오. 솔직히 나나 동무나 결함을 범한 사람들이 아니요. 이번에 대표단을 구성할 때 누구를 단장으로 보내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였댔는데 장군님께서는 아무도 따라보내지 말고 우리 두 사람만을 보내라고 하시였다오.》

《우리 두사람만을요?》

《난 여기서 잃었던 존엄을 되찾았소. 과학기술이자 나라의 존엄이라는것을 깨달았단 말이요. 그리고 동무는? 그래 세계와 가슴을 부딪쳐보니 어떻소? 전시관에 가지 못한게 후회되오?》

《후회되다니요? 련하기계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이 가슴에 꽉 차오릅니다. 장군님께서 저의 눈을 크게 틔워주시였습니다. 부부장동지, 지금쯤 장군님께서는 어디에 계실가요?》

《저 별을 바라보고계실는지도 모르지.》

천만리 먼 조국땅 한끝에 그 폭넓은 자락을 드리우고있을 밤하늘을 바라다보면서 안시학은 별이 솟네, 별이 솟네 하고 가요의 한구절을 유정하게 읊었다. 다음구절은 리정이 곡까지 붙여서 제대로 불렀다. 허나 그들이 그려본것과는 다르게 그밤 조국의 하늘에는 별이 솟지 않았다. 무거운 중층구름이 숨막힐 정도로 낮추 떠돌던 하늘에서는 새벽부터 진눈까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

 

교외를 벗어나서야 그이께서는 차를 멈추시였다.

얼마간 사이를 두고 따라오던 연형묵의 차도 멎어섰다.

특별히 표적할만 한것도 없는 애솔 몇그루가 무릎에 감기고 멀리 눈덮인 논벌을 가로지른 고압선철탑이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산언덕길이였다. 뿌연 눈막속에 충충한 모양으로 비껴간 재빛산발들을 바라보시는 김정일동지의 옷자락이 진눈에 젖고있었다.

이제는 연형묵과 작별해야 한다.

장군님.》 하고 목메인 연형묵이 다가섰다.

《이젠 그만 돌아가주십시오. 자꾸 이러시면 제가… 마음이…》

《내가 동무의 차에 모내의를 한벌 실어놨소.》

《예, 입겠습니다.》

《전화하시오, 아무때나…》

《예, 전화도… 하겠습니다.》

연형묵이 흑 하며 고개를 틀었다.

《이곳을 기억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바래워주신 여기까지를 평양동구길로 간직하고… 연형묵이는 떠나겠습니다.》

《그래, 가야지. 가서도 일을 잘하시오. 동무가 좋은 소식을 안고올 때마다 내 여기 평양동구길까지 마중을 나오지.》

그러지 말자고 했건만 연형묵은 끝내 그이의 옷자락을 눈물로 적셔드리고야말았다. 포옹속에 흘린 뜨거운 눈물이였다.

《자, 떠나시오. 어서 …》

이런 작별을 무엇보다 괴로와하시는 그이이시였다.

장군님 , 떠나겠습니다. 부디… 건강에…》

인사말도 맺지 못하고 돌아선 연형묵은 차에 올라서도 한참동안이나 죽자 하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그이께서 마련해주신 모내의를 품에 꽉 껴안고 쏟아지는 오열을 견디여냈다.

얼마전에 연형묵은 총리직에서 소환되여 자강도당위원회 책임비서로 임명되였다.

나라의 경제형편은 물론 정세마저 여의치 않은 때 맡고있던 무거운 직분을 내놓게 된 그는 마치 힘에 부치는 짐을 평양에 벗어놓고 작은 짐을 메러 가는것 같아 천만근으로 걸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총리로서 북남고위급회담에 나선바도 있지만 얼마전까지 외교무대에서는 조미, 조일, 북남관계개선과 관련한 의의있는 회담들이 련이어 벌어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사촉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가 그 무슨 《핵개발의혹》이라는것을 들고나오면서부터 모든것에 얼음이 덮이기 시작했다.

새 직무를 맡겨주시며 그이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최후의 인내력을 발휘하고있소. 그건 두려워서가 아니요. 이 땅의 항구적인 평화와 건설을 위해서, 인민의 더 좋은 생활을 위해서 차곡차곡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소중해서요. 그러나, 그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까리브해위기때… 수령님께서 경제국방병진로선을 채택하실 때 동무는 자강도의 기계공장에서 기사장으로 일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연형묵이 어깨를 쭉 펴며 대답올렸다.

《그러니 핵위기가 발생한 때 다시 자강도로 돌아가게 된셈이구만.

기계공업의 발전은 경제기술적가치로서뿐아니라 국방력을 강화하여 혁명과 민족의 운명을 수호한다는데 그 중대한 의의가 있소. 자강도는 우리 기계공업의 뿌리이며 밑천이요. 나는 거기에 자강도는 희망이라는 말을 더 보태고싶소. 내 이 심장속에는 앞으로 자강도에 뿌리고저 가꾸는 씨앗들이 있소.》

씨앗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곡진하게 들려왔던지 연형묵은 저도 모르게 긴숨을 들이켰다. 현실은 엄혹했다. 랭전시대의 소모전을 방불케 하는 가혹한 물적, 기술적, 정신적대결속에 겪어야 할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지 누구도 가늠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겪으실 고생이 얼마나 크고 가혹하겠는지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런데 연형묵은 장군님곁을 멀리 떠나야 하는것이다.

(꼭 열두해가 지났구나!…)

한때 일을 쓰게 하지 못해 지방에 내려갔던 그가 장군님의 믿음을 받아안고 다시 올라와 몸가까이에서 사업한지 벌써 12년세월이 흐른것이다. 누구나 단 한번만이라도 몸가까이 뵈옵기를 소원하며 사는 그이를 하루이틀도 아니고 열흘백날도 아니고 해와 달로 모시면서 해놓은 일이 무엇이더냐 하고 생각하니 연형묵은 철부지자식처럼 옷자락에만 매달려다니다가 슬하를 하직하게 된것 같아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차가 갑자기 속도를 죽이면서 도로리정표가 세워져있는 길옆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때야 비로소 연형묵은 자기가 탄 차를 뒤따르며 울리는 짧고 다급한 경적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이이시구나!)

아니나다를가 눈가루를 뽀얗게 날리며 전속으로 달려온 그이의 승용차가 거의 차체를 슬치며 도로변에 나란히 멎어섰다.

차창이 내리워졌다.

《내 차에 오르시오.》

연형묵이 들어와앉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뜸 외투단추를 벗겨보라고 하시였다. 단추를 벗기자 손수 옷섶을 헤쳐보시였다.

《그럴줄 알았소. 자, 나와 혁띠를 바꾸어 띠기요.》

《예?!》

《어제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보니까 혁띠가 낡았더구만. 동무가 1부총리를 할 때부터 갈음옷과 작업복을 옮겨가며 혁띠를 맨다는 말을 들었댔는데 이렇게 일만 시키다가 그냥 보낼수는 없소. 나라의 총리를 하던 사람인데 그렇게 보내면 자강도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 아마 나를 인정사정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게요.》

《아닙니다. 그건 사실 제가 덜퉁해서…》

《연형묵이, 싫은가?》

할말이 없었다. 바지고리에 술이 다 닳아빠진 혁띠를 받아드시고 한참이나 눈여겨보시는 그이의 안광에 어리는 이름할수 없는 그 무엇! 연형묵은 다시 목이 꽉 메여왔다. 그이의 사랑을 다 받아안기에는 가지고있는 심장이 작아 견디지 못할것 같았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기념도 되겠지만 실은 그 의미가 더 있소. 이 김정일 연형묵이를 꽉 붙잡고 영원히 놓아주지 않는다는거요. 알겠소?》

잠시후 차들은 다시 출발했다. 그이께서는 연형묵이 먼저 떠나는것을 보고서야 자신께서도 돌아가겠다고 하시면서 그냥 길가에 서계시였다. 연형묵은 진눈까비가 턱턱 들어붙는 뒤창가에 아주 돌아앉아서 《빨리, 빨리 모오!》 하고 운전사를 독촉했다.

두굽이를 내처 지나갔다. 그리고 차를 세웠다.

(장군님, 이렇게 갔다가 래일 아침이라도 당장 돌아와 뵈올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며칠간 다녀오는 출장길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 길을 쉽게 돌아오지도 않으렵니다.

자강도를 소왕청으로 만들겠습니다.)

숨이 컥컥 막히는 맞바람을 타고 눈송이들이 연방 얼굴에 날아들었는데 연형묵은 지금 나의 두볼로 흘러내리는것은 그 눈송이들이 녹은 물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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