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3 장

1

 

1992년 7월 15일은 수요일이였다.

례사로운 날이였다. 날씨는 개였고 기온은 높았으며 지하철도의 문은 제 시간에 열리였고 궤도전차들도 제 시간에 첫 운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날이 례사롭지 않으시였다.

봉화기계공장에 내려간 박송봉으로부터 콤퓨터수자조종공작기계를 전문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새 집단을 내오는 문제와 관련한 대책안이 완성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던것이다. 곧 박송봉을 전화로 찾으시여 빨리 평양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니 아니, 나도 그곳으로 떠나겠으니 도중에서 만나기요. 공장동무들도 데리고 오시오. 이런 기쁨이야 같이 나눠야지.》

시계를 보니 9시 10분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초라도 걸음을 다그치고싶으시였다.

승용차는 빠른 속도로 교외도로에 들어섰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도로한복판에 정지표식이 나졌다. 붉은 수기를 든 외줄배기병사가 호각을 불어대며 우회로를 가리켰다. 그의 뒤쪽에서는 육중한 다짐기들이 궁싯궁싯 로라를 굴리며 전진해오고 떠들썩한 소음과 함께 피치냄새가 풍겨왔다. 도로포장을 다시 하는 모양이였다.

우회로는 몹시 들추었다. 그이께서는 끝내 우회로를 벗어나지 못하신채 박송봉이 타고오는 차와 맞다들게 되시였다.

최윤동의 승용차에서 박송봉이 먼저 내리고 뒤따라 김경조와 온덕수, 최윤동이 내렸다. 그리고는 잠시 옷매무시들을 다듬었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다가가시였다.

《반갑습니다, 지배인동무!》

최윤동과 먼저 인사를 나누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한걸음 짚어들어가시며 김경조의 우뚝한 어깨를 힘있게 흔들어보시였다.

《변하지 않았구만. 김경조가 틀림없소.》

《제가… 걱정만 끼쳐드렸습니다.》

김경조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신 그이께서는 뒤자리에 엉거주춤 서있는 온덕수를 알아보시고 그에게로 걸음을 옮겨가시였다.

《온덕수동무! 이게 얼마만이요?》

《저는… 장군님, 사실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됐소, 됐소. 그만 진정하시오.》

이때 멀리서 물동량을 가득 실은 중량화물차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나타났다. 자동차는 비좁은 우회도로에 서있는 일행을 발견하자 빵빵- 하고 새된 나팔소리를 울리며 무섭게 질주해왔다.

《저런!…》 김경조가 놀라서 손을 쳐들었다.

《아, 놔두시오. 오금이 쑤실 나이들이겠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유작작하게 길옆으로 비켜서시였다. 화물자동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다가왔다.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휘파람을 쓱쓱 불며 승용차곁을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이크, 끝내 궁둥방아를 찧는구만. 하하하!…》

자동차에 눈길을 따라세우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즐겁게 웃으시였다.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신통치 않아 그이께서는 길녘을 멀찍이 벗어나 아카시아나무가 우거진 안침한 곳으로 향하시였다.

《공장일은 잘돼가오?》

그이께서 물으시자 최윤동이 《예, 상반년계획을 104프로로 넘쳐수행했고 새형의 공작기계를 개발하는 사업도 마감단계에 들어섰습니다.》라고 대답올렸다.

《동무가 수령님을 만나뵙고 돌아가 당비서와 함께 련명으로 써보낸 편지를 받아보았소. 목숨이 끊긴대도 무조건 새 기계를 만들어내고야 말겠다, 좋던데… 그 구절은 누가 쓴거요?》

얼굴이 벌개지는것이 최윤동이 쓴 모양이였다.

《지배인동무가 썼소?》

《저, 펜대는 제가 쥐고있었습니다만…》

최윤동이 뭔가 털어놓을듯 하자 김경조가 바빠맞아 옆구리에 손침을 꾹꾹 박아대는것이 눈에 뜨이시였다. 무슨 재미나는 사연이 있는 모양이였다. 최윤동이 김경조의 손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

《글쎄 이 사람이 말하기를 사실은 내가 당신을 살리자고 당에 편지를 올리려댔다, 그런데 당신이 고목생화하여 돌아왔으니 쓰기는 당신이 써야겠다, 그러면서 편지에 담아야 할 내용까지 자자구구 불러주는게 아니겠습니까, 장군님앞에 꼭 찍어 맹세를 드려야 다시는 물러서지 못할거라면서… 저 사람이 영 독판치깁니다.》

《그래, <관료주의자>지! 하하하!》

김경조의 《억지다짐》이 방불하게 안겨와 그이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서늘한 그늘이 몸을 가리웠다. 어느 길손들이 쉬고 갔는지 돌을 굴려다가 만든 자리가 숲속에 둥그렇게 놓여있었다.

《자, 여기 좀 앉읍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밑굽에 그을음이 간 네모돌우에 앉으시여 박송봉이 드리는 문건을 받아드시였다. 문건에는 새로 내올 기술집단의 명칭과 규모,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여있었다. 지금은 종이장에 문자로 씌여진 내용들이 미구하여 실재한 편제와 직능을 갖추고 살아움직이는 집단으로 탄생할것이라고 생각하니 흥분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별지를 넘기기에 앞서 손이 굳어지시였다.

약전기사, 주조기사, 자동화기사 등 필요한 기술인원보장대책을 밝힌 별지에는 체계프로그람기사(리정을 념두에 둔것이였다.)를 비롯하여 교육기관에 소속된 연구사들은 조동없이 시험생산이 끝날 때까지만 동원시키려고 한다는 의견이 적혀있었다.

박송봉으로서는 힘들게 쓴 내용이였다.

솔직히 김경조를 비롯한 공장일군들은 이 기회에 리정과 같은 인재를 공장에 끌어들여 덕을 볼 욕심이였고 대학에서는 그들대로 교육부문을 약화시키는것은 만대의 사업을 망쳐먹는것이라고 머리를 저었다. 원칙은 대학측에 있다고 박송봉은 생각하였다.

《괜찮게 됐소. 좀 생각되는것은 명칭문제인데… 명칭에는 그 집단의 성격과 사명까지도 비끼는것만큼 심사숙고해야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제기된 안을 차례로 불러보시였다.

《연구소, 교류사… 뭔가 부족해. 어떻소, 주인들의 생각은?》 하고 그이께서는 김경조를 바라보시였다.

《저희들생각엔 연구소라고 하는것이 적합할것 같습니다.》

《연구소라…》

물론 연구사들이 모인 집단을 연구소라고 부르는것은 명실상부한 리치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게 쉽게 이름을 달기에는 그이께서 새로 탄생하는 기술집단의 미래에 부치는 꿈이 너무도 크시였다.

《그야말로 도식이요.》 그이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그렇게 명칭을 달면 직능이 협소해지고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제약을 받을수 있소. 나는 이 집단의 명칭을 회사로 하자는거요.》

《회사 말입니까?!》

박송봉까지도 놀라는 눈빛이였다.

《놀랄건 없소. 나는 첨단기술을 소유한 인재들에게 활동의 폭을 넓게 지어주자는거요. 동무들은 왜 한사코 그들을 도면대앞에만 세워놓으려고 하오? 연구사가 지배인역할을 하면 안되는가? 무역활동을 하면 안되는가? 나는 새로 조직하는 연구집단에 현대적인 생산공장까지 배속시켜주자는거요. 그리하여 첨단기술개발과 생산 및 무역활동을 기술집단이 직접적으로, 통일적으로 진행하는 체계를 세우려고 하오. 김경조동무, 내 말이 잘 리해되지 않습니까?》

《저희들로서는 그런 례를 들어본적이 없다나니…》

어리둥절하기는 온덕수나 최윤동도 마찬가지였다.

《례? 그 례라는것도 누군가 먼저 만들어야 생기는게 아니겠소. 지금은 누가 먼저 례를 내놓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때가 아니요. 우리 혁명에 필요한것은 우리가 그 례를 창조해야 하오.》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의 웅지를 다는 헤아릴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새로운 그 무엇이 탄생하게 됐다는 흥분으로 하여 모두의 눈빛이 번쩍이고있었다. 무더우신듯 손부채질을 하시면서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열정적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리고 이 <련화>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소?》

《리정동무가 지은것입니다.》 하고 김경조가 말씀올렸다.

《<련화>라…》 그이께서는 곱씹어보시였다. 《이왕이면 만발하게 피여나 온 나라로 흘러가라는 뜻에서 <련하>라고 달면 어떻겠소? 련하!》

《련하!》 네사람이 동시에 받아외웠다.

《<련하기계회사>로 합시다.》

장군님, 명칭이 정말 새롭습니다.》

《흘러간다는 뜻이 좋습니다.》

김경조와 최윤동이 저마끔 아뢰였다.

《그렇소, <련하>는 고여있지 않을것이요. 이 땅을 적시고 온 나라를 물들이며 흘러갈것이요. 새 세기에로 나아갈것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격정에 넘쳐 일어서시였다.

《어떻소, 우리 한잔 마실가?》

《예?!》

《축배야 이런 때 드는거지! 갑시다.》

먼저 차에 오르시여 량쪽문을 툭 터쳐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신발에 묻어온 흙검부레기들을 털어버리느라 지체하는 사람들에게 일없다고 재촉하시였다. 일회용고뿌가 하나씩 차례졌다.

《술은 없소. 샘물로라도 축배를 들기요.》

그이께서 친히 매 사람들에게 축배를 부어주시였다.

《동무들, 오늘을 기억합시다. 오늘은 우리 기계공업에 있어서 참으로 의의깊은 날이요. 먼 후날 이 길섶의 아카시아나무숲에서 련하기계탄생을 축하하여 축배를 들던 오늘을 즐겁게 추억하게 될거요. 동무들! 주체공업이 낳은 옥동자를 축복합시다!》

단숨에 고뿌를 비운 김경조가 입버릇처럼 카! 하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불시에 가슴이 뜨끔해지시였다.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새 집단, 새 생명들이 지금도 태여나고 앞으로도 태여날것인가. 그속의 작은 하나, 이 시각에 태여난 련하기계는 수만의 종업원을 가진 대기업체도 아니고 그 생산량에 따라 나라의 경제눈금이 오르내리는 굴지의 생산기지도 아니였다. 그러나 새 세기에 부치는 소중한 꿈과 념원이 깃들어있었다.

(혁명의 운명을 안고 큰걸음을 내짚었구나!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가야 할 먼길은 앞에 있다, 저앞에…)

한낮이 가까와오면서 소금을 졸여낼듯 한 염열이 지독스레 내려쪼였다. 후줄근해진 나무잎들이 차창 여기저기에 늘어붙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경조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참, 책벌은 벗었소?》

《예, 벗었습니다. 두달전에…》

《매를 좀 맞았다고 뿔빠진 황소가 되여서는 안되오. 뭐니뭐니해도 뿔이 있어야 김경조지. 허허, 그건 그렇고…》 그이께서는 돌아보기 편하게 등받이를 조금 눕혀놓으시였다. 《듣자니 요즘 일부 사람들이 새 기계를 개발하는 문제를 놓고 뛰뛰한 소리들을 한다면서? 자력갱생의 본보기공장에서 <혼혈아>를 만든다고?》

《아직 몇가지 부분품들은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기때문에 들여다가 조립을 하고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당에서는 이미전부터 세계선진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일데 대하여 강조했고 그것이 주체적립장과 어긋나지 않는다는것을 밝혀주었소. 그런데 뭐나 처음부터 자체로 연구개발해야만 주체가 선것이고 다른 나라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는것은 체면도 주체도 없는것이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주체에 대한 비속화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혁명의 길에는 용감한 나팔수가 있는가 하면 제 배냥조차 건사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이게 도대체 어데까지 가야 끝이 나는가고 묻는 사람, 또 쉬여가자고 조르는 사람, 노래를 부르자고 선창을 떼는 사람, 그 짐을 벗어달라고 어깨를 내미는 사람 등 성격과 신념, 준비정도가 다른 천만이 서있는것이다.

《앞선 나라들이 몇십년전에 해결한 문제들을 이제야 붙잡고 어물거려서는 언제가도 현대과학기술의 요새를 점령할수 없소.》

김정일동지께서는 확신적으로 말씀하시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주대를 확고히 세우고 나가시오.》·

그이께서는 온덕수를 부르시였다. 갑자기 부르심을 받은 그는 차안에 앉아있다는것도 잊고 머리를 쪼으며 일어서려고 하였다.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있소?》

《편의사업소에서 적을 옮겨 지금은 우리 공장 1기계가공직장에서 일하고있습니다. 공장대학에도 입학했습니다.》

《공장대학에? 아들을 잘 키우시오.》

장군님,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핏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자, 이젠 그만 헤여져야겠소. 박송봉동무는 내 차를 타고 갑시다. 지배인동무, 공장 로동자, 기술자들에게 인사를 전해주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공장일군들이 탄 차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가에서 손을 흔들어주시였다. 이윽고 박송봉을 데리고 자신의 차에 오르시면서 그이께서는 나직이 외우시였다.

《리정이 없는것이 유감이요.》

《리정동무가 오늘 대학에 가다나니…》

《그가 알면 섭섭해하겠는데… 앞으로 기회가 있겠지.》

승용차는 어느덧 시내의 첫 네거리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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