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제 1 장

9

 

리정은 아침식사를 하자 평양으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오늘도 리정의 차림새는 단정했다. 구두는 반짝거렸고 와이샤쯔는 금시 다려입은것처럼 목깃이 빳빳했다. 겉보기에는 전과 조금도 달라진것이 없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몹시 설레이고있었다. 현관문을 나서니 낯모를 승용차가 마당에 서있었다. 합숙에 손님이 왔겠거니 심상하게 생각하고 에돌아가려는데 리정이 차옆을 지나는 순간 문이 쭉 열렸다.

《리동무.》

박송봉이 차안에서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어서 타오.》

《저 말입니까?》

《그럼 누구겠소. 동무를 모셔가려고 차를 불렀소.》

리정은 아무래도 박송봉의 말이 리해되지 않아 머뭇거렸다.

《타라니까. 오늘이 초아흐레, 산원에 가는 날이지?》

《예, 한데 그걸 어떻게?》

《난 뭐 귀를 막고 사는 사람인줄 아오? 자, 어서…》 박송봉은 자리까지 내주며 재촉했다. 《실은 나도 오늘 평양으로 돌아가오. 겸사 동무의 아들을 좀 구경할가 해서 기다리던중이요.》

승용차는 리정을 태우고 정문으로 향했다. 출근시간이 박두한 때여서 응당 활짝 열려있어야 할 문이 닫겨있었다. 운전사가 나팔을 치자 접수실안에서 뚱딴지같이 새빨간 꽃묶음을 든 김경조가 벌씬거리며 나타났다. 그뒤로 최수광이 따라나왔다.

《당비서가 벌써 냄새를 맡았구만.》

《1부부장동지, 고맙습니다.》

김경조는 박송봉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나서 《리동무, 내 당신을 <당비서땅크>로 태워갈가 했는데 선손을 떼웠소. 이건 우리 집사람이 보내는거요.》 하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리정동무, 축하하오.》

최수광도 무슨 꾸레미를 넘겨주는것을 경황없이 받았다.

차가 떠난 다음 펼쳐보니 애기옷이였다.

그것도 아들일지, 딸일지 두 경우를 다 타산하여 각각 한벌씩 마련해넣었다. 리정은 차창뒤로 멀어지는 최수광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가 왼심을 쓸수록 리정은 최수광을 대하기가 불편했다. 유치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최수광이 그러는것은 자기때문에 늘 2등을 하던 소꿉시절의 경쟁자에 대한 승리자의 도량이든가 아니면 아버지때문에 산생된 묵은 빚을 끈질기게 갚아보려는 소심한 처사라고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았다.

어떻든 그 두 까닭이 다 싫었다. 그는 최수광이 이모저모로 자기를 보살피고있다는 생각에 좀처럼 익숙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리정의 이러한 생각은 성격이 빚어낸 선입견일뿐 최수광은 그렇게 하는것이 자기 본분이라고 믿고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오?》

《예?》

박송봉이 말을 건네서야 정신을 차린 리정은 《오늘이 퇴원하는 날도 아닌데 꽃다발까지…》 하고 동닿지 않게 중얼거렸다.

《퇴원할 때만 꽃다발을 준다는 법이야 없지. 뭐니뭐니해도 새 생명이 탄생하는 오늘이 진짜거던. 정 뚫고들어가기 힘들면 의사선생들한테라도 전하오. 그러면 집사람이 얼마나 기뻐하겠소.》

리정은 보름나마 공장에 내려와있던 박송봉이 자기와는 정식으로 담화 한번 나누지 않고 돌아간다는것이 이상했다. 하기는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관심을 돌려주는것이 세련된 당일군이 계획한 일종의 료해사업인지도 몰랐다.

《참, 나도 동무한테 줄게 있는데…》

박송봉이 품속에서 크지 않은 수첩을 꺼내들며 말했다.

《펼쳐보오. 그 수첩종이가 낯익지 않소?》

리정은 낯익은 줄칸모양과 누군가 서둘러 수첩장을 뜯어낸 흔적을 보자 《설마하니 이게?!…》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알아보누만. 언제인가 장군님께서 동무에게 남기신 친필이 바로 그 수첩의 갈피에 쓰셨던거요. 이제부턴 동무가 건사하오.》

《고맙습니다, 1부부장동지.》

그의 가슴속에는 공화국창건 40돐기념 공작기계전시회장을 찾으시였던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친필이 간직되여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꿈만 같았다.

한밤중에 깨여나 그이께서 보내주신 친필을 받아안은 리정은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 없어 한동안 망연해있었다. 수수한 수첩종이에 촘촘히 건너간 줄칸을 무시하고 온갖 교조와 도식을 짓뭉개듯 활개쳐간 그이의 필체는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했다.

《리정동무! 알고 지냅시다. 앞으로 꼭 만나게 될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일가고 리정은 자주 그려보군 하였다.

그러면 래일이라도 문득 불러주실것만 같아 해놓은것이 없는 자신이 민망스러웠고 모든 일에 조바심이 났다. 이 순간에도 리정은 속으로 그러한 초조감을 느끼고있었다. 이제는 그이께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훌륭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계셔야 하겠는가.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작고 어설픈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해놓은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을 인정한다는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괴로운 일…

리정은 묻고싶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대답할수 없고 오직 박송봉만이 대답할수 있다고 어째서인지 그는 믿고있었다.

《1부부장동지,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습니다.》

《뭔데?》

《제가 하는 일이 당의 뜻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많은 의미를 담고있는 물음이였다. 오늘따라 더 웅글게 들리는것 같은 리정의 목소리에서 박송봉은 그것을 느꼈다.

《우리의 기계공업을 최단시일내에 발전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것은 당의 변함없는 의지요.》 하고 박송봉은 대답했다. 《얼마전에도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 특히 중공업의 자립적토대를 완벽하게 다지지 못한다면 급변하는 세계정치정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같이 휘친거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였소. 그러한 현실은 벌써 가까이 다가왔소.》

박송봉은 안시학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아파났다.

당신은 왜 우리 로동자, 기술자들을 믿지 못하는가고 누구나 비판을 할수 있고 또 그 비판이 정당하지만 나라의 기계공업발전을 당앞에 책임진 일군으로서 그런 안시학에게 자, 우리것을 좀 보라고 선뜻 내놓을만 한것이 없다는, 어쩌면 안시학이 결함을 범하게 된데는 자신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되여 마음이 무거웠다.

《당은 새 기계의 탄생을 기다리오.》

《그럼 됐습니다. 전 그거면 답니다.》

(그거면 다라고?)

박송봉은 리정의 대답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법에서 동무를 지켜보고있는데… 그게 두렵지 않소?》

《아니요.》

《어째서 말이요?》

《방금 1부부장동지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아무튼 목적한데까지 가닿으면 되는게 아니겠습니까?》

《흐음.…》

박송봉은 가벼이 코바람을 내불며 실내후사경안에 입언저리로부터 눈섭까지 반쯤 비껴있는 리정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니요, 그게 아니요.》 하고 박송봉은 부정했다. 《수단을 가림없이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경계해야 하오.》

《저도 그런 뜻에서 한 말은 아닙니다.》

《내 눈엔 그런 경향이 보이는데도? 왜 얼굴을 찡그리오, 내 말이 잘 접수되지 않는가본데…》 박송봉은 여전히 후사경에 눈길을 두고있었다. 《동무의 사업에서는 주로 어떤 감정이 쓰이오?》

리정은 질문이 난해하다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사람의 심리와 감정정서는 천가지만가지이다. 그럼에도 례컨대 차바퀴를 만들려면 고무재료를 써야 하고 칼을 만들려면 쇠를 써야 한다는 식으로 매 직업에 따르는 감정을 할당할수 있단 말인가.

《동문 내 말을 잘못 리해한것 같구만.》 하고 박송봉이 주석을 달았다. 《지금까지 연구사업을 진행해오면서 동무가 체험한 주되는 감정이 무엇인가 말이요.》

《물론 성공에 대한 갈망이지요.》

《어떤 성공 말이요?》

《그건…》

리정은 할말을 찾지 못해 잠자코 있었다.

그것은 박송봉도 마찬가지였다. 새 세대 과학자로서 나무랄데없이 준비된듯 한 리정에게서 무엇인가 부족되는것을 느끼였지만 그게 무엇인지 딱히 알수 없어 침묵하였다. 어쨌든 지금은 그가 연구사업에서 흔들리지 않는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동무가 법앞에서까지 투정을 부렸다는 말을 들었소.》

(그러니 검사를 만나본게지. 아마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을것이다. 사실말이지 나는 죄를 짓고도 너무 뻔뻔스럽지 않았는가?)

《그때는 제가 흥분한 나머지 그만…》

《우리의 법이 두려운가? 아니요. 우리의 법은 따뜻하오. 그것은 아까 동무가 말했듯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때문에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의 법이야말로 가장 인민적이고 인간적이며 정의롭기때문이요. 정말로 무서운것은 자기 신념을 잃는것이요. 그전에 내가 달구지군을 하던 때 일이 생각나누만.》

박송봉은 십여년전의 일을 추억하였다.

1970년대 중엽 3대혁명성과전시관을 꾸릴데 대한 과업을 받고 몇달째 현장에서 침식하며 건설을 지휘하고있던 박송봉은 뜻밖에 제기된 부당한 신소로 하여 검토를 받게 되였다. 그가 안일해이한 생활을 추구하면서 많은 건설자재를 사취하였다는것이였다. 기타 《죄목》이 덧붙어서 묶어진 자료가 책 한권분량은 되였다.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 무거운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보니 나들문에는 넙적한 봉인딱지가 붙어있었다.

《새집으로 이사간다나봐요.》

앞집 녀인이 가르쳐주는대로 찾아가보니 안해와 어린 자식들이 비물이 뚝뚝 떨어지는 단칸짜리 《새집》에 이사짐을 한무지 쌓아놓고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박송봉은 농장에 내려가 온 겨우내 개털모자를 눌러쓰고 소를 몰았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아버지 박길이 《민생단》에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이제는 내 품에서 송봉이까지 떼내려는가고 하시면서 당장 그를 데려다가 본래의 직무에서 일하게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친히 자신의 승용차까지 보내시여 박송봉을 평양으로 태워오게 하시였다.

《리동무, 물론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억울한 루명을 쓸수도 있고 결함을 범할수도 있소. 그러나 당에 대한 충실성과 신념만은 가슴속에 철심을 박아넣은것처럼 꿋꿋해야 하오.》

어느덧 승용차는 평양산원을 가까이했다.

난생처음 산원출입을 하게 된 리정이 어색한듯 차에서 선뜻 내려서지 못하자 박송봉은 《허허,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구만. 내가 가서 면회수속을 하라오?》 하면서 그의 등을 떠밀었다.

놀랍게도 리정의 안해 채이숙은 예정일을 앞당겨 몸무게가 거의 4키로그람이나 되는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다는것이였다. 리정은 박송봉의 요구대로 두사람의 면회신청을 내고 승인쪽지를 받았다. 채이숙은 눈도 못 뜬 아들을 안고 텔레비죤면회실에 나타났다.

박송봉은 화면속의 아기를 깨워보려는듯 혀를 떡떡 찼다.

《애가 아버지를 닮았다고들 해요.》

아버지, 어머니도 그러더라고 안해가 슬며시 자랑하였지만 리정은 아들의 어디가 자기를 닮았는지 아무리 보아도 알수 없었다.

그는 이름이 가득 씌여진 종이장을 화면앞에 내댔다.

《보이오? 공장사람들이 지은건데 하나 고르오.》

《아이참, 그야 당신이 골라야지.…》

《난 다 좋아보여서 그래.》 하고는 하하 웃었다.

면회가 끝나자 리정은 꽃다발속에 그 종이를 말아넣어가지고 안해의 입원실로 보냈다. 박송봉이 그를 집까지 태워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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