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9

 

마포에는 서울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마치도 궁성과 세도가에게 쫓기워 한강을 따라 도망치다 길이 막혀 여기저기 몸을 숨긴듯 한 초가집들이 골뱅이같이 옹크리고있었다.

리면상은 강무현을 따라 걷고있다. 기운차게 길을 축내는 그 걸음을 따라서자니 숨이 찼다. 오늘은 자기가 음악강의를 하겠다면서 사정없이 끌어대는것이다. 요즘 품팔만 한 자리가 변변히 없는것도 사실이지만 친구가 굳이 이끌어대기에 가고있다. 생김새도, 운명도, 리상도 남다른 강무현이 리면상에게 주는 정 역시 류달랐다. 한달이 넘도록 일한 품삯과 가지고있던 돈을 통채로 맡기며 《이보게 깽깽이, 살림살이는 자네가 맡으라구. 내 손에 그 알량한 돈이 있어서는 동풍 닷냥이거던. 망탕 쓰면 안돼.》 하고 제편에서 오금을 박았다.

긴 다리로 걱석걱석 걸으며 강무현은 노래를 짓겠으면 노래같은 노래를 만들라고 훈시를 해댔다.

도적이 도적이야 할 정도로 남의 옷을 입고 제 소리라고 우겨대는 노래는 좀 많은가. 애당초 땅냄새가 다른 곡조를 질러대면서 여보시오, 새롭지 않소 하고 건주정을 하는게 듣기조차 역겹다. 나라가 망했기로서니 백성들의 넋마저 좀먹게 하는 그 타령들이라는걸 들어보면 사람들을 끝없이 울게 하자는 심사다. 세상을 둘러보라. 칼을 물고 날뛰며 도처에서 전쟁이라는 불을 지르고있는데 운다고 누가 우리를 돌아보고 가엾게 여겨줄것 같은가. 울바엔 호랑이소리로 울어야 한다. 맹물이 아니라 피눈물을 뿌리며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나서야 할 백성들이기에 그들이 바라는 노래를 지으라.

열변을 토한 뒤에 제꺽 화제를 돌려 신이 나서 말했다.

《오늘은 노들강에 가서 조개구이나 하면서 쉬자구. 내가 배워주지. 어떤가? 흣, 허허.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 사람 사는 모양이 어떤건지 알게 해주지. 이런 공부는 돈내고도 못한다니.》

방랑살이 품팔이군인 그에 대해 친구로만 여기기에는 배운것이 있다기보다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며칠씩 어데 간다 소리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군 한다. 그럴 땐 남아돌아가는 힘마저 다 빠져버린듯 중얼거렸다.

《개자식같으니, 예수가 아니래도 유다는 반드시 변절한단 말이야.》

알아들을수 없는 말속에는 그만이 알고있는 사연이 있었다.

리면상은 쓸쓸한 웃음을 지은채 바라보았다.

《어떤 땐 복면한 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하하하, 그럴수도 있지. 무슨 일이든 쳐야 속이 편안하겠는데 시원한 놀음을 할수 없어 몸살을 앓고있네. 내 이번 걸음으로 만주에 들어가자고 했는데… 다 왔네. 보라구, 노들강이야. 그 이름이 좋지 않은가.》

한강으로 흘러드는 폭이 좁은 강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기슭에 우거진 개버들숲이 여름바람에 뒤척인다. 매생이보다 커보이는 나루배 한척이 강을 건너오는것이 보였다. 몸에서 한시도 떼놓지 않는 베보퉁이를 리면상에게 맡긴 강무현이 털썩대며 배 오는쪽으로 걸어갔다.

《굼벵이같기란… 빨리 노질하라구요. 저것도 배야, 물함지지. 쯧쯧…》

기슭에 배를 대자 나는듯이 달려간 강무현은 젊은 녀자를 맞아 내리더니 잠시 수군거리고나서 보자기를 씌운 함지를 제것같이 안고 걸어왔다.

《생물조개지요?》

《새벽에 나가서 받아오는 길이예요.》

《전복도 있나요?》

《헤이구, 좋은건 다 찾는군요. 막조개예요. 조개국 만들어 팔자던건데…》

무명치마저고리를 입었을망정 깨끗한 차림이고 볕에 탄 얼굴이여도 기가 살아있는 녀인이다. 새벽마다 신문을 나를 때면 《조개국 사려? 조개국이요. 조개국 사시우?》 하며 안개속에서 탄식가락같이 울려오던 소리를 리면상은 다시 듣는것만 같았다. 마포녀인들은 조개를 삶아 맑은 물을 내여가지고 서울 시가지에 들어와 판다. 앉아서 받아먹는 사람들은 조개물이 거니마니 하지만 살자고 기를 쓰고 걷는 이 녀인이 새벽마다 부르는 노래가락에 어떤 고역이 흐르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좀더 덜어놓으라구요. 조개국값으로 갚음을 하면 되지 않나요.》

《에이구, 왜 사내루 생겨나지 못했는지 원. 여기 앉아서들 조개구이를 하자구 그러나요?》

《아주머니도 앉았다 가지 않으시려우?》

강무현이 넉살을 부리자 녀인은 정이 가는 눈으로 마주보며 어루만지듯이 대꾸했다.

《정말이나요? 호호호, 조개 잡숫다 조개한테 물려 노들강에 뛰여들면 내탓이라 하겠나요. 호호호…》

노래가락같은 맑은 소리를 따라 떨기웃음이 흐르자 강무현은 두팔을 벌리며 마침 짝을 만났다는듯 기쁨을 터뜨리였다.

《야? 이런 멋쟁이아주머니와 마주설줄이야. 같이 놀아보자요.》

리면상은 두사람이 주고받는 롱담을 들으며 야릇한 충격을 받았다. 녀인의 체취에는 가난에 시들지 않은 웃음이 간직되여있지 않는가. 구슬픈 가락이 아니라 어떤 희망을 안은 장단이 금시 울려나오는것만 같았다.

녀인은 강무현을 능청기가 담긴 눈으로 빗질해대면서 진짜로 멋들어진 소리를 하였다.

《조개 차고 조개 이고 땅 차며 다녀봐야 어디 사내같은 사내가 있습디까. 놀음놀이에 해구멍 막지 말고 곱게 돌아들 가시라요, 나라꼴, 백성꼴이 뭐가 되는 세월인지 원.》

녀인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강무현이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하? 사서삼경에 구정물벼락을 안기는구나!》

《오늘 여기로 오길 정말 잘했네.》

《조개 차고 조개 이고… 어떤가? 운이 맞아떨어지고 음률까지 갖추었거던. 그래서 백성의 지혜는 하늘도 따르지 못한다는거네.》

옳은 말이다. 방금전에 헤여진 녀인의 얼굴이 마주선듯 보인다. 놋대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흥취가 나게 두드리는 모습, 두손을 흔들며 가볍게 발을 옮겨디디는 춤가락, 노들강물결을 타고 노래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망국의 치욕속에도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계속되지 않는가. 민족의 얼, 민족의 감정과 정서, 결코 슬픔이 되여서는 안될 노래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리면상의 마음속에서는 자기가 찾던 민요곡조가 흐르고있었다.

《이 사람이 아예 얼이 쳤구만. 어서 앉으라구.》

강무현이 소리쳐서야 리면상은 돌아보았다. 잉걸불우에 놓인 거밋거밋한 조개들이 입을 벌리고 뽀얀 물을 바글바글 끓이고있다. 베보퉁이를 풀어헤치고 술병과 때오른 잔을 꺼내놓으며 강무현은 눈귀를 찡그려보였다.

《세상 사는 멋은 가지각색이라 우리도 흥을 돋구어보세. 자, 마셔대자구. 노들강귀신이 될 땐 되더래도…》

오늘은 강무현의 모습이 한층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슴에 멍이 진 사람인데 얼마나 태평스러운가. 운다고 불행이 가셔질텐가. 문득 리면상은 진옥련을 생각했다. 참으로 알다가 모를 두사람이다. 어떤 사연인가 물으려들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같이 대답을 피한다.

첫 잔을 비운 강무현은 《좋구나, 천하일미야.》 하고 주먹을 내흔들며 익은 조개를 연방 입으로 나르고나서 《조개 차고 조개 이고 땅 차며 다녀봐야…》를 제 생각대로 주절거리고나서 고개를 쳐들고 웃어댔다.

《부산에 가봐야 하지 않겠나?》

리면상의 물음에 손을 내두르며 《사내다운 사내가 없더라?》 하고 말꼬리를 쳐들어올린 강무현은 《내 기어코 사내같은 사나이가 될테다!》고 맹약을 하며 껄껄 웃어댔다.

《은현이소식을 알아봐야지 않나?》

귀바퀴를 움씰거려댄 강무현이 숱이 많은 눈섭을 모으며 바라봤다.

《가만, 이 정신을… 분명 그 처녀였어. 까맣게 잊어먹고있었는걸.》

동문서답에 골이 난 리면상은 저도 못 들은체 할 심산으로 술잔만 기울였다. 하도 좋은 친구를 사귄 덕에 술이라는 동무를 하나 더 얻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의 물인지 처음 몇번은 내장을 놀래우더니 이젠 배속에 틀고앉아서 들어오는족족 삼켜치운다. 취하는 기분이 어떤건지 알게 되니 그 멋도 과히 싫지 않아진다.

《내 말을 듣지 않나?》

《되려 제편에서, 흠.》

《내 그 처녀를 봤다지 않나.》

《꿈에도 보이면 찾아가 만나라니까.》

《한시에 둘 다 귀머거리가 된게 아니야?》

눈을 크게 뜬 강무현이 똑바로 바라봤다. 무슨 넉두리를 하겠으면 하라는 식으로 고개를 비트는 리면상의 무릎을 철썩 소리나게 두들겼다.

《원산… 경찰서에 면회왔던 처녀. 내 예감이 틀리지 않기에 묻군 했다니. 이름이… 형숙… 그렇지? 성은 기억나지 않네.》

어안이 벙벙해난 리면상은 《허? 밑도 끝도 없는 소리만 하니…》 하고 얼없이 중얼거리다 김형숙의 이름이 튀여나오자 놀랐다.

《광화문 앞거리… 길가에서 지나쳤네. 말이라도 걸어볼가 하다 나야 생면부지나 같아서 그만뒀네.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야. 아마 가슴에 드리웠던 량태머리때문이였는가. 자넬 찾아온게 아닐가? …》

뭐라고 춰올리는 말을 계속해대지만 들리지 않았다. 헤여진지 한해가 되여오지만 편지 한장 없이 살았다. 바이올린통을 열면 눈에 뜨이는것이 활주머니이고 마주할 때마다 김형숙의 눈길이 바라보는것만 같아 괴로운 마음으로 시달린다. 선생의 노래집은 언제 지으며 그 집에서 노래는 언제 울려나오는가고 묻는 목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려오군 한다. 그럴 때면 김형숙의 고요한 눈빛이 마음속으로 찾아드는것이다. 얼마나 너그러운 마음이였던가. 바래려고 역전에 나왔던 모습은 잊을수 없다. 그앞에서 한 말이 무엇이던가. 희망을 기어이 성취하겠노라 맹세했건만 여전히 빈소리로 남아있다.

김형숙이 서울에 왔단들 떳떳이 마주설 용기조차 없다. 수치스러운 사나이 가슴속에 안고 사는 추억으로 그 이름을 새겨두는 길밖에 없었다.

《녀자를 쉽게 믿지 말게. 아? 내가 방금 말한 그 처녀는 말구.》

《우리야 사내들이지만… 은현이가 걱정이구만.》

《부산에서 소식이 오겠지. 전보를 쳤네. 내 친구들이 거기도 있으니까.》

《사람은 보는대로 간다더군.》

《자네가 나보다야 더 잘 알겠나?》

화제를 진옥련에게 돌려보자니 찌프린 인상에 말이 나오지 않아 리면상은 입을 다물고말았다.

《히야! 여기서는 재미르 보는구마야.》

강언덕에서 지나가던 웬 싱거운 사람이 거치장스러운 소리를 내자 강무현의 눈길이 감때사납게 번쩍거렸다. 고삭은 밀짚모자를 쓴 젊은 사람이 강뚝에 퍼더버리고 앉아 코를 벌름거리며 비위살 좋게 웃고있다.

《가라니까, 어서! … 어른들 한잔하는데 못써. 어데다 대고 시까스르면서…》

강무현이 한손으로 모기 쫓듯 해대자 저쪽에서는 이게 무슨 횡잰가 하는지 흐흐거리며 굴러내려왔다.

《야? 이눔아, 무혀이 아이니? 간나새끼 어데 바라가 소식이 없는가 했드이 형님두 모르게 싹쓸이를 하니. 사람이 그러문 못쓴다.》

이건 도대체 어데서 굴러든 난데없는 돌인가. 주걱턱을 내민 강무현이 기가 막혀 쳐다보고 차돌처럼 이마박이 반들반들한 사나이가 비위살 좋게 감겨도는 바람에 리면상은 무슨 영문인가 하여 바라보기만 하였다.

《노들강에 내가 뛰여드는가 했더니 마침이다.》

기가 뻗친 강무현은 겨룰 상대가 나졌다고 소리를 치며 일어나 장대기같은 팔을 내뻗치다 정신나간 사람같이 웃어댔다.

《하하하… 이게 누구야? 너 장진도투바우로구나!》

《간나새끼, 헹님보구 하는 말버르스 봐라.》

《도투새끼, 갱개나 먹으면 됐지 조개냄새도 맡다니. 흣.》

사람 칠 기상으로 주먹을 내들었던 강무현의 입에서 기막힌 소리가 나오자 반죽좋은 대답이 제꺽 따랐다.

《이 바쁜 세월에 굶은 개 언똥 나무리겠니. 야 니 사는구나. 헹님한테 공소이 한잔 부서라.》

굴러든 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두손을 썩썩 비비며 리면상에게 웃어보이고나서 《날래 부서라!》 하고 볶아댔다. 강무현은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인사를 시켰다.

《내 친구 면상이야. 원산에서 류치장살이를 같이한…》

《그렇소? 야? 영 반갑소야. 무혀이 말을 마이 들었소.》

함경도내기가 손을 내밀어 잡아보았는데 옹이투성이 나무줄기같았다. 리면상은 잔에 술을 부어 내밀었다.

《드시우.》

《야? 이거 인사 아이됐소야.》

장진감자바우는 술을 마시면서 조개를 구운 감자처럼 훌훌 불며 먹어댔다. 며칠을 굶은 사람같다.

《인천에서 오는 길인가?》

뜨거운 조개를 혀바닥으로 굴려대던 장진감자바우가 틀어쥔 주먹으로 금시 후려칠 기상을 해보인다.

《활 메쳤다는게다. 간나 쪽바리눔이사 내 이래뵈도야 독으 쓰무느 죽는 길이다이.》

《젠장, 죽으라는 소린지 살라는 소린지 알 재간이 있나.》

강무현이 쓴입을 다시자 굴러온 돌이 이마빼기로 받아넘기는 시늉을 하여 두사람의 눈길이 마주 부딪쳤다.

《그래서?》

다그쳐 묻자 조개껍질을 내뱉으며 거칠고 사나운 말마디가 쏟아져나왔다.

《한눔을 내치웠다이. 간나새끼 나만 보무느 누깔이 꼿꼿해서 매질이데야, 사람 주긴다. 쇠치네도 밸이 있지야. 악이 나더라. 베르다가 밤일을 할 때 밟아뭉갰지비. 지금쯤은 바다괴기들이 이 헹님을 고맙게 여기며 뜯어먹어댈게다. 그길루 꼬부데 도망을 친게다.》

도대체 알아들을수 없는 말짬에 앉은 리면상은 얼친 사람같이 입만 하 벌렸고 강무현의 마디가 긴 손은 제 친구의 어깨를 우악스레 잡아 흔들어댔다.

《흠흠, 잘했어! 뼈대가 있어.》

《내사 뉘기라구. 아, 한잔 하이까 기우이 뻗친다야. 내 소리를 하라니?》

술을 여러잔 마신 굴러온 돌이 밭은 목을 뽑아들고 배꼽까지 드러낸채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서는통에 강무현은 그 모양이 우스워 손만 내흔들었다.

《내 친구가 누군지 알아? 망신을 시키지 말게.》

《니 아직 모르니 내 소리르? 응, 못 들어봐서 그런다. 간나들이 하두 잘하이까 줄을 선다야. 맛을 보이마.》

장진감자바우가 대마직바지가 사타구니밑으로 내려가는것도 모르고 기를 올리며 일어서는통에 강무현은 급해맞아 야단을 쳤다.

《야, 이게 벗어내칠 잡도리가 아니야? 그만두지 못해!》

그러거나말거나 바지괴춤을 거머쥔 당돌한 사나이의 입에서 도담한 소리는 터져나오고말았다.

《사냥 가세 사냥 가세 장연오리포루 왜가리 사냥 가세… 왜가리 왜가리 왜놈사냥 가세… 왜…》

급해난 강무현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아 주저앉혔다. 속이 씨원한 소리긴 하지만 백주에 나루터가까이에서 마구 불러대니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손을 떼면 왝소리가 그냥 쏟아져 한동안 씨름질했다. 부두로동판에서 왜놈 두들겨팬 배짱군이여서 노래는 그치게 했지만 입을 완전히 막을수는 없었다.

리면상은 항거란 어떤것인가를 느끼고있었다.

《아이 죽는다이, 곱게 사나 못 죽지비. 쪽바리 간나새끼들 모가지를 물어메쳐야 한다는기다.》

노들강물은 원한맺힌 소리를 들었는지 숨을 죽이고 흐른다.

《이 사람, 면상. 내 말이 그르지 않았지? 자네 후날도 오늘같은 음악강의는 받아보기 힘들거네.》

《그렇네, 뭔가 깨달은게 많네.》

리면상은 서대문앞에서 강무현네와 헤여졌다. 이때 장진감자바우가 딱 바라진 몸을 강무현의 어깨에 실은채 난데없는 소리를 하여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무혀이 이눔아! 네 동생이 왔다, 이눔아. 우리 함바에… 왔드란게다. 어떤… 멋재이간나하구… 히야, 그 간나 좋드라.》

《허튼수작! 내 동생 이름이 뭐야?》

《헹님보구 말버릇이 다니? 니 아이되겠다. 은혀이다. 왜, 틀리니? 그래서 부사이라는데루 갔다구 했다. …》

강무현은 컴컴해나는 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돌리며 리면상에게 말했다.

《래일 만나자구. 거기서 말이네, 공원…》

부둥켜안고 비칠거리며 멀어져가는 두사람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리면상은 걸음을 돌렸다.

저녁은 리면상에게 정가로운 향기를 안겨주었다. 어머니가 웃고 류진이 바이올린을 켜고 연이가 노래를 부르는 이 시간은 그의 심혼을 쓰다듬는 자장가와 같았다. 세상시름을 조금이나마 잊을수 있는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형님, 난 소리를 제대로 못 내요.》

류진은 활을 흔들며 못마땅하여 두덜거렸다.

《내 듣기엔 잘 타는데두.》

《아니예요. 축음기소리를 들어봤는데 바이올린이 우는것 같았어요.》

《너도 주법을 잘 배우면 된다.》

자기가 내는 바이올린소리와 전문가의 연주기법차이를 찾아낸다니 류진의 음감이 독특하다는것을 말한다. 재미로 타려니 했는데 저렇게 알게 모르게 청음훈련을 한다면 나같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리면상은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학교에서 배워주는 공부나 잘하렴.》

가난한 살림에도 어머니는 류진을 보통학교에 보내고있다. 연이도 래년부터는 공부를 시키겠다고 한다. 일자무식이라고 한탄하는 어머니지만 자식들의 앞날을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있었다.

고르로운 다듬이질소리에 귀를 기울인채 바느질을 하던 연이가 리면상을 할깃거리며 어머니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눈동자가 등잔밑에서 진주알처럼 반짝거렸다.

《허허, 요 계집애 못하는 소리가 없다니까.》

《엄마, 오빠를 홀려가면 어쩌나?》

《누가, 힝? 날 홀려?》

류진이 코나발을 불자 까르르 웃음보를 터치던 연이가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박았다.

《뻐꾸기? 해해해.》

《고게 그냥 재부랑거려. 내가 뻐꾸기야?》

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 해질무렵 웬 처녀가 임자를 찾아왔댔다네.》

《저를요?》

리면상은 자기 목소리가 별스레 다급하게 울린다는것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 잘 차려입은데다 곱게 생겼더군. 녀고생같기도 하구. 아는 사이라면서 물을게 있어서 왔다고 하기에 늦어야 들어온다고 했네.》

김형숙을 보았다는 강무현의 말이 생각나 물었던것인데 찾아온 사람은 진옥련이 분명했다.

《그 처녀가 간 뒤부터 연이가 나한테 어떻게나 물어대는지, 허허.》

《조건, 쬐꼬만게 삐쳐들어…》

저보고 하는 소리로 여기고 들여밀었던 머리를 뽑아든 류진이 연이에게 눈총을 쏘아댔다.

《난 그 녀자 밉다, 힝.》

《연이야, 왜 밉지?》

《그냥 미워요.》

《날 홀려갈가봐? 하하, 나 같은걸 누가 홀리겠니.》

《왜요? 엄마, 우리 오빠 잘 생겼지? 난 오빠가 유명한 음악가되는 꿈을 꾸군 해. 오늘 왔던 녀자가 싫어!》

어린 연이의 말이 너무 고마워 리면상은 벽에 기대며 후더운 미소를 지었다. 혈육의 정인들 이보다 뜨거우랴 하는 생각이 가슴을 달구는것이였다.

《사내들은 뜻에 살고 녀인들은 정에 산다는 말이 있네만 한번 마음먹고 나선 길인데 헛눈 팔지 말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간절하지만 리면상은 그 어떤 계시처럼 받아들였다.

《어머니, 오늘 무현군과 노들강에 나갔다 조개국 팔아 살아가는 녀인을 만났습니다. 이 나라에 사내들이 있는가고, 나라도 백성도 무슨 꼴이 돼가느냐고 했습니다. 할 말이 없더군요, 없었습니다. …》

리면상의 말을 류진도 연이도 새겨듣고있었다. 방등심지를 돋구고난 어머니가 저고리고름으로 눈귀를 훔쳤다.

《망국이 뼈에 사무쳐서겠지. 목숨을 아깝지 않게 여기며 떠나간 남정들은 얼마나 많다구. 불귀의 객이 돼서도 기다리는 사람 있다는걸 알면 좋으련만…》

부지중 어머니의 아픈 상처를 다쳐놓았다는것을 깨달은 리면상이 서둘러 바이올린을 찾아들고 일어섰다.

《연이야,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자.》

부드럽고 은은한 선률에 맞추어 연이가 두손을 꼭 마주잡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저고리앞섶으로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향의 봄》은 목가적인 향취만 안겨주는 노래가 아니였다. 고향을 찾으며 그 고향에서 살고싶은 동심을 절절하게 울려주는 서정은 백발로인도 손자, 손녀와 함께 어울려 부르게 하는것이다. 노래란 이런것이기에 민족의 감정으로 되는것이 아닌가. 조개함지를 이고 걸직한 롱담으로 가난을 이겨가는 녀인, 왜놈이 증오스러워 주먹을 부르쥐고 항거의 웨침을 터뜨리던 부두로동자, 백성이 살아있는 한 노래는 노들강가에서처럼 불리우고 또 불러야 한다. 리면상은 자기의 활에 힘이 넘쳐나는것을 느끼며 새 곡을 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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