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7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리면상은 왜놈들한테 당한 고문어혈을 겨우 풀고 학교에 나갔으나 기다린것은 해직선고였다. 반백의 교장은 암울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같이 사람이 무맥하다고 생각한 때는 없었을거네. 나라잃은 백성 상가집 개보다 못하다는 말을 통감하는 우릴세.》

마음속으로 존경해온 교장의 서글픈 탄식을 들으며 리면상은 끝없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인간으로서 의지가 이 순간처럼 그리운 때는 없었다. 마음속은 텅 비여버리고 좌절감만이 차흘렀다. 대를 두고 농사를 짓는 가난한 집에서 아들 하나를 공부시켰건만 교원살이 이태도 못하고 일자리에서 쫓겨났으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고향의 부모님들이 안다면 자식의 앞날로 눈물을 흘릴것이다. 하건만 차례진 운명은 피할수 없는것이니 걸음을 돌려세워야 했다.

《교장선생님, 제가 마지막수업을 할수는 없습니까?》

《오늘부터 음악시간은 당분간 수업을 못한다고 알려주었소. 다른 과목을 배워주게 되는데 선생이 요구하니 그렇게 하오.》

《고맙습니다.》

리면상이 교실에 들어와 인사를 하자 학생들은 흐느낌부터 터뜨리였다. 사제간의 정만이 아닌 노래로 이어진 류다른 감정의 분출이였다.

《학생들, 노래를 부릅시다. 밝고 명랑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목이 메여난 그는 풍금앞에 마주앉아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나서 건반을 눌렀다. 풍금반주에 맞추어 학생들은 목소리를 합쳐 교가를 불렀다. 이어 자기가 배워준 노래들의 곡목을 바꿔 타면 그의 마음을 아는 학생들은 독창으로, 중창으로, 합창으로 불렀다. 이미전에 노래를 배워주면서 성부를 갈라 형상을 해왔기에 익숙된 감정들로 자연스럽게 부르는 목소리들이였으나 비분이 섞여있었다.

수업시간을 늘 초과한 리면상이지만 오늘은 명심하고 풍금건반에서 손을 뗐다. 노래가 사라진 교실안에 정적이 깃들었다. 그 정적은 자기들의 깨끗한 정서를 도적맞히고있지 않는가 하는 이상야릇한 공포가 얼구어놓은것이기도 했다.

리면상은 교실 뒤자리에 앉은 처녀교원을 보았다. 순간 두사람의 눈빛은 마주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것은 그들로서도 알수 없는 말이여서 서둘러 눈길을 피하였다. 분명 상실을 감수하고있었다. 교정과 함께 음악의 하늘을 날던 희망의 나래는 꺾이였다. 형언할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비틀어댔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고통과는 전혀 다른 아픔이였다. 인간에게 절망을 초래하는 괴로움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학생들의 눈동자들이 그를 새겨둘듯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를 기다리고있었다. 풍금을 타면서도 작별인사말을 생각한 그였지만 처녀교원을 보는 순간 골라두었던 단어와 문장을 순간에 날려보내고말았다.

리면상은 학생들에게 마지막웃음을 보냈다.

《노래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노래는 민족의 감정이고 슬기입니다. 교정에서 학생들의 노래소리가 더 힘차게 울려나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떠납니다.》

학생들의 눈물에 젖은 부름소리를 등뒤에 남기고 교실을 나선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걸음을 옮겼다.

크지 않은 운동장을 지나다가 무춤 멎어섰다. 언제나 정답게 불러주던 종소리를 들었던것이다. 마음속 빗장이 한순간에 벗겨져나가며 감정의 피인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돌아보니 남녀학생이 종을 울리며 울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니다. 교정을 떠나는 자기를 바래는 작별의 노래였다. 학생들속에 선 처녀교원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리면상은 형언할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바래는 저 마음속에 학생이나 다를바없이 분별을 모르던 들뜬 음악훈장에게 교정과 먼 다른 곳에 가서 부르고싶은대로 노래를 부르라는 말이 간직되여있지 않을가 생각되자 걸음은 쫓기는듯 빨라졌다.

보통학교 교원자리도 직업이다. 잃으면 생존이 위협을 당하게 되는것이다. 리면상은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음악교원자리를 얻자고 정신없이 뛰여다니였다. 천내, 문천, 영흥까지 오르내리며 발이 닳도록 걸었건만 욕심은 내면서도 거절하였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덕원으로 갔다. 그곳 학교는 도이췰란드선교사들이 설립하였다고 한다. 그 학교 교장은 언젠가 리면상의 음악수업을 참관한 일도 있어 면식이 있는 사람이다. 교수참관을 마치고 은근히 자기의 의향을 내비치기까지 했었다. 자기 학교에 오면 피아노도 있다면서 옮겨오는것이 어떤가고 물었던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짚오래기에도 기대를 건다는 말이 있듯이 리면상에게는 덕원학교 교장이 귀인처럼 여겨져 찾아갔다.

교회당을 지척에 둔 학교는 2층양옥과 두개의 분교로 되여있었다. 학교의 뾰족지붕우에 세워놓은 십자가가 보였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적막감같은것이 찾아드는가 하면 정신적압박감을 느꼈다. 오가는 학생들의 정숙도 교정의 질서가 아니라 교회의 규률처럼 감각되면서 저도 모르게 위축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교장은 잎은 다 지고 열매만 매달린 감나무옆에 나와있다 맞아주었다. 찾아온 사연을 묵묵히 듣더니 례의를 차려 자기 방으로 가자고 했다. 학교의 주인을 따라 운명을 점치며 층계를 오르던 그는 걸음을 뚝 멈추었다. 어데서 나타났는지 알수 없는 경찰이 일본도자루를 움켜쥔채 현관에 뻗치고 서서 음험한 눈으로 노려보는것이였다.

《네 이름 리면상인가?》

무례하지 않으면 일본경찰이 아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죄인취급하는 물음에 분격이 치밀지만 참는수밖에 없었다.

《그렇소!》

《흠, 여기는 어떻게 왔는가?》

《교원이 학교를 찾아왔는데 잘못됐는가요?》

《교원?! 네놈이 무슨 교원인가, 칙쇼! 대일본제국에 반항하는자는 교단에 설수 없다! 알았는가?!》

비분이 사품치며 가슴을 두드렸다. 굴욕을 감수해야만 하는 그 울분은 가난속에 공부를 시켜 자식의 앞날을 마련해준 부모의 기대에 보답할수 없게 된 통탄의 눈물로 이어지고있었다. 불온딱지가 붙은 이상 지금과 같은 걸음을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깨달으며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섰다.

덕원에서 돌아오니 하숙집 주인이 한통의 편지를 내주며 강무현이 왔다간 소식을 알려주었다. 쓸데없는 헛걸음만 하다보니 만나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국한문으로 쓴 편지의 글줄마다에서 거쿨진 사나이의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면상, 시간을 지체할수 없어 몇글자 남기고 떠나네. 자네의 신상에 닥친 일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기에 권고하는데 새겨듣기를 바라네. 교원자리를 찾아다니는 놀음은 하지 말게. 해직은 일본놈들의 강요로 빚어진것이므로 어디에 간들 달라질것은 없을걸세.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순종인가, 반항인가 하는거네. 나는 반항의 길을 찾아 헤매는 인간이네. 조용히 살다 맥없이 죽을수는 없네. 이 몸이 정처없이 흘러도 언젠가는 자네가 지은 노래를 듣게 될것만 같아 그리워지는 정, 헤여지는 정으로 마음을 남기고 떠나네. 다시 만나게 될가? 살아있으면 오늘의 리별만이 아니라 상봉도 있으리라 믿으며 안녕히. 무현》

버리기는 쉽지만 얻기는 힘든것이 바른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류치장에서 열흘남짓이 함께 있으면서 사귄 강무현이 인생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벗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자 가슴은 후더워났다. 이 세상천지를 구름처럼 흘러다니는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난단 말인가. 리면상은 쓸쓸한 감정에 잠기여 하늘가 멀리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초겨울에 접어들었다. 바다쪽에서 밀려드는 구름이 무겁게 뒤덮이는게 금시 눈을 쏟아부을 잡도리다. 마식령에서 불어오는 차거운 바람이 뼈속을 헤치고 스며든다. 빙천설지에 나선 친우의 방랑길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부디 무사하기를 빌었다. 어차피 자기도 따라서야 할 길이였다.

리면상은 교원생활을 몇해하여 돈을 저축하면 일본고학을 떠나리라 마음먹었지만 종래 계획을 이룰수 없는 형편에서 부득불 서울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예측할수 없는 앞날이여도 지금은 걸음을 뗀 다음 결심을 하여야 하였다.

한시바삐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아무 미련없이 초라한 짐을 꾸리고나서 저녁이 오기만 기다렸다. 쫓겨가는 행색같은 모양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하숙집 주인에게 인사를 하는데 부엌에서 눈물을 훔치며 나온 딸이 어데론가 달려가는통에 안주인이 놀라며 찾아댔다. 리면상이 배워준 학생이라고 해야 할 딸이였다. 처녀애의 그 모습이 리별의 아픔을 더해주었다.

어깨에 바이올린통을 메고 재산의 전부가 들어있는 고리짝을 든 그는 교원생활로부터 방랑이나 같은 길의 첫걸음을 뗐다.

초목이 동면하는 계절이 오니 어데를 둘러보나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올강냉이를 가을하고 무우, 배추를 심었던 밭들에 시래기들만 널려 여기저기에 얼어붙었다. 한산한 길은 달구지바퀴에 짓이겨져 볼품이 없고 여위여 등뼈가 삐여져나온 소 몇마리가 이밭저밭 귀퉁이에서 마른 짚을 씹어삼키고있다.

시가지에 들어서니 첫추위에 쫓기우는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는게 보인다. 바다바람이 세찬 이 고장에서 제일 시달리는것이 지붕이다. 기와장이 덜컹거리면 철판지붕이 귀퉁이를 쳐들고 문풍지 떨듯 하며 아츠러운 소리를 지른다. 역전 앞거리에는 점포와 가게, 전당포, 음식점, 고서점, 양복점 같은 집들이 처마를 잇대놓고 주런이 들어앉았다.

저물녘이 되여오니 음식냄새가 사람들의 시장기를 자극하며 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를 휩쓸기 시작한다. 선술집에서는 벌써부터 혀꼬부라진 소리가 흘러나오고 술에 취한 사나이들이 비칠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리면상은 초겨울의 저녁풍경에서 락망과 비애를 체감하며 역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까지는 부모덕으로 공부를 하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였지만 정처없는 길을 가야만 하는 자기의 앞날은 심연이나 같았다. 꿈은 작곡가가 되는것이지만 현실로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을것이다. 인간이 누구나 희망을 다 성취한다면 리상이라고 말하겠는가. 리상의 실현이란 생활의 가혹한 세례를 견디여내며 거대한 노력의 대가로 가지게 되는 등가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과연 내가 인생의 목표를 점령할 의지를 소유하였을가.

석탄먼지가 덮인 역사의 거무칙칙한 형체가 앞을 막아서자 그는 자기의 온몸이 차굴속으로 금시 빨려들어가는것 같아 흠칫 멎어서서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였다. 멎어있는 기관차조차도 괴물이 도사리고있는것처럼 느껴졌다. 쉭쉭거리며 증기를 뿜어올리다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마치도 불모지에 실어다 주겠다고 위협하는것 같다.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발 옮길 자리조차 없었다. 추위를 피하여 비집고 웅크리고 자리마다에 빈틈없이 박혀앉아 졸고 담배를 피우고 고구마껍질을 벗기면서 먹기까지 한다. 악취가 떠도는 속을 발더듬질로 헤치며 매표구에 이른 리면상은 생각보다는 쉽게 표를 뗐다.

렬차는 정시에 떠난다고 한다. 그러니 아직 두시간동안은 이 굴속같은데서 시달려야 하는것이다.

맑은 공기가 그리워난 그는 출입문쪽에 있는 창문을 향해 이 사람 몸에 걸리고 저 사람 발에 채우며 걸어갔다. 바람받이가 돼서 그런지 빈자리가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야 앉을만 한 곳이 못되여 창문을 마주하고 섰다.

《사람은 서로 보고 느끼는 존재가 아닐가요? …》

처녀교원의 목소리가 이 순간 다시 찾아들자 류다른 감회가 가슴속에서 흘렀다.

리면상은 자기가 이 고장에 추억을 묻고 간다는 생각이 들자 처녀교원이름을 새삼스럽게 상기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같은 교정에서 교원생활을 하였지만 가까이 지내지 못한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극상해서 지나치며 인사를 나누었고 수업시간을 어겨 불쾌한 이야기가 오간것이 전부다. 무심했는가 하면 랭담한 관계였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김형숙… 평범한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자 마음은 이상하게도 쓸쓸해났다.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처럼 부드러운 얼굴의 곡선들, 가리마를 탄 단정한 머리와 희고 반듯한 넓은 이마, 직업이 교원이여서인지 무엇인가를 타이르는듯 한 검은 눈동자, 뛰여난 용모는 아니여도 어딘가 믿음이 가는 모습이였다. 유순한 코마루아래 자리잡은 가볍게 다물린 입술은 눈과는 달리 처녀의 마음과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유난히 시선을 끄는것은 숙수치마자락을 가볍게 날리며 탄력있게 움직이던 걸음씨다. 그러니 김형숙의 모습을 관찰했으며 정확히 기억하고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기가 본것이 겉이라면 처녀교원은 음악훈장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그랬기에 자기의 노래만은 리해할수 없다고 하였으며 교원답지 못한 생활을 나무려 들뜬 랑만이라고 말했다. 억양없는 어조에 실린 그 표현은 참으로 불쾌하였다. 그때문인지 학생들과 경찰서에 면회를 왔을 때도, 해직당한 후 하숙집에 왔을 때도 김형숙과는 이야기를 나누려고조차 안했다. 이렇듯 외롭게 떠나자니 남자인 자기가 용렬했다는 후회가 갈마들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고장과 학교와 학생들을 두고 간다는 감정은 지나간 일들을 너그럽게 자책으로 용해시키고있었다.

사람은 서로 보고 느낀다. 얼마나 단순명백한 말인가. 김형숙이 가진 언어에 공감하게 될수록 그와 깊이 사귀였더라면 생활의 새로운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였으리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후회는 항상 뒤늦게 찾아온다는 말의 뜻을 알수 있었다.

누군가 옷자락을 잡아당기기에 고개를 돌리니 무명실로 뜬 수건을 쓴 처녀애가 물기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숙집 딸이였다. 쌍가매라는 아명을 가진 12살 난 처녀애였다.

《네가 어떻게? …》

처녀애가 가리키는 출입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리면상은 저도 모르게 흠칫 가슴을 떨었다. 김형숙의 모습이 시야에 안겨오자 이름못할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외로움에 시달린 마음속으로 찾아드는 한줄기의 따스한 정을 느꼈기때문이였다.

김형숙의 눈빛은 의아해하는것 같은가 하면 수집음에 저어하는것처럼 보였다. 급작스러운 작별의 놀라움과 함께 이렇게 찾아 나오는것이 옳은가를 자신에게 묻고있는 심중이 그려낸 표정이였다.

그에게로 다가간 리면상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숙여보이고나서 변명조로 말했다.

《조용히 떠나려고 했습니다.》

김형숙은 학생들에게 역사 한 모퉁이에서 피우는 불무지를 가리키며 추운데 어서 가서 쪼이라고 이르고나서 석양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두해동안이나 배워준 제자들을 두고 가지 않습니까. 어쩌면…》

해직교원이라는 수치감만 안고 산 리면상은 그의 말에 가슴이 찔렸다. 한순간에 자기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지나친 감성을 앞세우고 살다나니 처신마저 잃어버린것이다. 역시 훈장감이야 하고 속으로 자신을 나무린 그는 난처한 처지에서 헤여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대답을 얼버무리였다.

《떳떳하다면야… 노래나 배워준걸요.…》

《꼭 저를 탓하는 말같아요. 음악도 과목이 아닌가요. 학생들은 노래를 사랑했어요.》

《자기 근심을 먼저하게 되더군요. 속된 사람이라고 두고두고 외우십시오.》

지난 기간은 어쨌든 진정을 안고 온 사람에게 진심을 말해야 하였다.

《어데로 가는가요?》

발길이 닿게 될 지명을 묻는것이 아니였다.

《집을 짓자고 마음먹고 갑니다. 중도에 쓰러지면 기둥도 세우지 못할겁니다.》

자기만이 아는 말을 하고난 리면상은 더이상 설명하기를 그만두었다. 리해해주기 어려운 상대라는 선입견이 남아있었기때문이였다.

김형숙은 입김을 조용히 내불며 목수건 한끝을 꼭 쥐였다.

《그 집에서는 노래가 울려나오겠지요?》

물음이 아니라 야릇한 공감이여서 가슴이 뭉클 젖어나는가 하면 놀라게도 되였다. 얼마나 불만스러워한 처녀교원이였던가. 하여 들뜬 랑만가라고, 리해할수 없는 노래를 부른다고 나무리였다. 그것이 설사 자그마한 오해였다 할지라도 지금같은 리해에로 돌아올수 있는가. 하지만 외로운 마음은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한 녀자에게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게 하였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해도 기어이 작곡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히고나서 조선민요에 바탕을 둔 노래를 지을것이며 그 노래로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을 안겨주겠다는것, 그 길은 이국땅으로 이어질것이라는것도 말하였다.

《꼭 일본에까지 가야 음악공부를 하는가요?》

《제땅에 배울 학교가 없으니 그 길을 선택하는거지요.》

리면상의 한숨소리를 들은 김형숙이 어깨를 추스르며 조심스럽게 마주보았다.

《제일 미운게 왜인들이예요. 이따금 학교에 나타나 짐승같이 소리를 쳐대는 순사놈의 상통만 보아도 치가 떨려요. 아마도 이 땅은 망국의 어둠속으로 깊이 잠겨들거예요. 언제면…》

담담한 어조에 실린 말꼬리가 잦아들자 리면상은 찢기는듯 한 아픔을 함께 맛보았다. 연분홍수건으로 목을 감싼 김형숙은 자기와 리면상의 사이에 숯불을 가져다 놓아주는 학생들을 보며 홍조가 비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였다.

《미안합니다. 솔직히 제 눈에 보인 선생은 대장부가 아니였어요. 허지만 오늘 선생의 결심을 들으니 사람은 보고 느끼기만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닫게 되는군요.》

그것은 명백하지는 않아도 일종의 공감이였다. 먼길을 가야 하는 리면상에게는 누구도 줄수 없는 고무이기도 하였다. 린색한감은 없지 않지만 자기가 알고있는 처녀교원이 이쯤 평정하면 우등생은 된다고 여겨졌다.

《보고 느끼면 됐지 무엇을 더 알아야 합니까?》

김형숙의 눈길이 이상하게 침착성을 잃고 허공을 더듬더니 리면상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검은 눈동자뒤에서 열정의 불꽃이 반짝거렸다.

《읽어야지요, 마음을.》

놀랐다. 사람은 보고 느끼는 존재라는 말은 공감했지만 마음까지 읽는다는것은 상상조차 못하였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학공식을 제기하고 의문점을 묻듯이 김형숙은 자기의 론거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리면상은 반문할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학생들의 마음을 읽으며 수업을 합니까?》

《그건 교원의 초보적인 갖춤새예요. 물론 꼭 알아맞히고 그에 맞게 배워주는건 아니지만…》

《그렇군요. 나로선 생각 못해본 물음이여서 옳은 대답을 할수 없는것이 유감입니다.》

《회피하는건 아닌가요? 노래의 집을 짓겠다고 하셨지요? 작곡가… 그들의 집집에서 울리는 노래가 사람들모두 따라부를 때 의미가 있는게 아닐가요?》

리면상은 김형숙의 시선을 피하다 그의 손이 눈에 띄였다. 인상깊은 희고 갸름한 손가락, 백묵가루가 묻은 잉크자욱이 찍힌 가운데손가락 끝마디가 대답을 하지 않고서는 어쩔수없게 하였다. 마치 교단아래 선 학생같이 되여버렸다.

《불러주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지요. 선생의 말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며 노래를 짓기 위해 노력하렵니다. 하지만 읽는다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김형숙은 고개를 수그리며 머리를 젓고나서 리면상이 메고있는 바이올린통을 달라고 손짓해보였다. 거절할수 없게 하는 동작이였고 요구여서 얼떠름한 정신으로 내주었다. 뚜껑을 열고 활을 꺼내 쳐든채 잠시 쓸어만지듯 보고나서 가지고 온 주머니를 정성스럽게 씌웠다. 비취색공단천으로 만든 주머니는 둘레를 따라 금실로 동그라미를 수놓고 손잡이쪽에는 한송이 꽃을 빨간 수실로 박아넣었다.

《이 활이 재간을 부리더군요. 그렇지요?》

마주보며 묻는 김형숙의 표정은 천진스러웠다. 음악에 대한 자기의 리해를 서슴없이 말하는데 그 녀자의 솔직성이 있었다.

《주의깊게 관찰했는데요. 활을 자유자재로 정확히 그어야 합니다. 많은 숙련을 요구하는 악기지요. 솔직히 말해서 내 활은 무재의 손에 들리다나니 죽도록 고생만 해옵니다. 평생 그어서 사람들이 즐겨 부를 노래만 지을수 있다면 갖은 고생을 다 시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리면상은 김형숙이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명랑한 기분을 자아내는 입술사이로 백옥같은 이발이 드러나며 시내물처럼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이 웃는 얼굴은 그지없이 깨끗했다.

《대답이 정말 재미있어요. 활이 고생하면 그만큼 선생의 고충도 클거예요.》

리해력의 깊이를 잴수 없는 김형숙이였다. 자기가 걸어야 할 앞길을 보며 말하는것이다. 까다롭게만 여겨온 처녀교원의 체취에서 새롭게 받아안게 되는 향기가 류다른것이여서 가벼운 어지럼증까지 일으켰다. 누가 타향에서 타향으로 떠나는 나를 이처럼 바래워주겠는가. 이것이 뒤늦게 찾아든 우정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한가슴 고여났다. 그는 문득 김형숙은 어떤 처녀일가 하는 의문을 품어보았다. 그것이 한 인간을 읽고싶은 충동이라는것을 알수 없었다.

김형숙은 리면상과 다름없는 평범한 농사군의 딸이였다. 류다른것이 있다면 속세의 녀자들이 문맹을 숙명으로 여길 때 공부를 하였고 터득한 지식으로 인간세상을 자기나름대로 보고 결심을 한다는것뿐이다. 그도 이 나라의 물을 먹으며 자란 녀자라는데서 차이가 없지만 인간에게 개성이 있는것처럼 고유한 측면도 있었다. 열여섯살에 교편을 잡았듯이 제나름의 생활을 개척해나가는 자립성을 가지고있었기에 앞날에 만나야 할 남자에 대한 기준이 있었는데 그것은 쉽지 않은 인생관이기도 하였다. 봉건의 구속으로 눈을 가리운 처녀들의 생활은 일생을 같이해야 하는 남편도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뜻에 따른 순종으로 결정되던 시대였다. 강요하는 결혼이란 있을수 없으며 설사 일생을 혼자 산대도 봉건가정은 이루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김형숙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부귀와 사치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뜻을 가진 남자를 만난다면 평생토록 그 포부를 이루도록 자기를 바칠 각오를 하며 기다리는 처녀일뿐이였다.

《사실 이건 만든지 오랬어요. 내 재간이라는게 보잘것없거던요. 호호, 갑자기 떠난다니 어떻게 해요. 이렇게 활주머니 만든거나 드려야지.》

작별의 기념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명백한 표현이였다. 그러니 이미전에 나에게 주었을수도 있지 않았는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리면상은 후두둑 뛰는 가슴을 누르며 서둘러 감정을 윤색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 활이 이 요람에서 깰 때마다 현을 찾으며 노래를 부를겁니다. 기쁨에 넘쳐서…》

음악적상상력을 가진 리면상은 생활에 있어서 지금과 같이 즉흥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웃음을 거둔 김형숙은 자기앞에 선 열뜬 사람을 말없이 주시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결심하며 큰소리도 곧잘 친다. 무엇을 하겠다는 욕망이 결과인것이 아니다. 재능과 의지가 없다면 실현할수 없는 허세로 되여버리는것이다.

《학생들이 기다려요. 저도 선생의 노래를 듣고싶어요.》

김형숙은 기다림과 소원을 속삭였다. 언젠가 나의 노래만은 리해할수 없다던 처녀가 아닌가. 인간의 감정은 고정불변한것이 아니였다.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진심을 보내고있지 않는가. 그것은 리면상에게 있어서 성공을 의미했다. 보다 귀중한 약속을 하기에는 두사람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아깝게 흘러보냈던것이다.

기차를 탈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자 리면상도 뒤따랐다. 김형숙은 학생들과 함께 홈에까지 나와서 바랬다. 승강대에 선 리면상은 손에 손을 잡고 서서 교가를 불러 전송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였다. …

강무현과 헤여진 리면상은 밤길을 홀로 걸으며 한손을 쳐들고 오래도록 바래던 김형숙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사나이로서 품은 결심을 이루지 못한다면 다시 만날수 없는 처녀가 해당화 핀 백사장에서 자기를 지켜본다는 생각이 갈마들자 돌뿌리에 걸채인듯 멎어섰다.

《내 이 서울에서 자네한테 품팔이가 뭔지 알게 해주지. 어떤가, 일본인지 한 땅에 하루한시 빨리 갔다오재도 돈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나를 따라다니면야 고혈을 짠다는게 어떤건지 알게 되지.》

강무현은 헤여지며 이렇게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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