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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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어진다거나 빨라진다고 말을 하는 지각생들과 퇴근시간을 앞당기지 못해 안달아하는 사람들에게 리면상은 《7음계보다 먼저 만들어진게 시간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며 어길수 없는게 시간이라는것을 알아두라구.》 하는 말을 이따금 하였는데 그것이 어찌 보면 자기의 성격이기도 하였다. 선률을 분과 초의 길이로 계산하며 창조하는 그로서 음악에 대한 감상은 시간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고 여기였는데 청중이 감수하게 될 정서적리듬에 대한 집요한 련상이 습관으로 된 까닭이기도 하였다. 노래는 불리우는 예술이다. 재미없고 지루하면 듣기 싫어지기마련이고 따라부르고싶지 않으면 그것은 짓지 않은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음악가동맹 위원장이여서가 아니라 시간과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어기는 규률위반자들과 무절제인들을 제일 싫어하는 그가 지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랬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오는 법을 모르던 안해가 뜻밖의 소식을 짤막하게 전해왔던것이다. 집에 찾아온 손님은 인민군대 군관이였다는것, 자기보고 리면상선생의 부인이 옳은가고 묻기에 초면이여서 놀랐다는것이다. 영문모를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겠는가고 첫마디부터 묻기에 처음엔 아연하였다는것이다.

손님은 30년이 되여오는 세월을 거슬러가며 묻는데 나눈 대화는 간단하였다.

《부인은 1937년 여름 서울시 안국동에 자리잡은 레코드점에 와있은 일이 있지요?》

《그래요. … 언니나 같은 녀자의 집이여서…》

《고화동지의 최후에 대한 소식이 실린 신문을 받은 기억이 납니까?》

《네… 그런 일이… 어느날 밤이 깊어서…》

《그 신문을 아직까지 가지고있지야 않겠지요?》

《그럼, 고화언니 소식을 가지고 오셨던…》

《알아보시겠습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경황이 없었습니다. 무례하다고 여겼으면 널리 량해하십시오.》

《신문은 오늘까지 간수했고 주인이 사적고증을 하겠다면서 해당 기관에 보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리면상선생의 인간됨을 보게 된것이 기쁩니다. 난 선생이 지은 <조국보위의 노래>를 부르며 포화속을 헤쳤습니다.》

안해가 전해온 소식은 리면상의 가슴을 흥분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가슴이 조여들며 흥분을 동반한 예감이 머리를 쳐들었다. 고화와 함께 강무현의 투쟁사적을 보증해줄 인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한순간에 환히 밝혔다. 그래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일본놈들의 법정앞에서 백두의 서광이 비쳐오는 날 조국의 해방은 이루어질것이라며 독립만세를 웨치였던 불굴의 인간, 죽음을 맞받아 당당히 걸어나가던 최후의 모습, 어느 한시도 잊은적 없는 사람이다. 빨리 그 인민군군관을 만나자면 집으로 가야겠는데 점심시간은 느리게도 다가오는데다 사무실로는 창작가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들었다.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자면 노래 한편에 반나절도 모자라는 직업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오늘따라 국립민족예술단 단장이 대머리를 번들거리며 나타났다. 질기기로 소문난 사람앞에서 리면상은 너무 바빠서 건위산을 먹는 연기아닌 연기를 하였다. 몸이 불편하니 가달라는 사정이지만 상대는 마치 명의나 되는듯이 온갖 약이름과 사용방법을 설명해대는통에 공연한 놀음을 했구나 후회를 하면서 어서 용무를 말하라며 웃고야말았다. 비위살이 좋은 량반은 위원장이 자기네 극단에 관심이 없다는 푸념질을 한창 하고나서 민족가극 시연회를 언제 하겠는가고 조여댔다. 하는수없이 이번주는 넘기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겨우 등을 떠밀어보내니 이번에는 작곡가 김옥성이 위원장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들어서는것이였다. 가장 사랑하는 음악의 벗이 나타나자 그는 집에 가려던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두팔을 벌리며 맞았다.

《어서 앉으라구, 옥성이! 황해도 농촌에 나가 오래동안 있었는데 몸은 일없나?》

《보고싶었습니다. 위원장동지가 준 의견대로 교성곡을 완성했는데 졸작이 아닌지 내놓기 두렵습니다.》

《자네야 그런 사람이지. 제 작품에 대해선 가혹하거던. 그게 진정한 작곡가의 창작태도구.》

리면상은 낯을 가려가며 없는 소리로 칭찬을 해대거나 시기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질색하였다. 그보다는 열정없이 창작한 작품을 내놓고 미련한 기대를 품으며 크지 않은 의견에 얼굴을 붉히다 못해 창작지도일군들의 작풍까지 꿰들고 여기저기에 찾아다니는 설익은 사람들은 맞대놓고 추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예술로 감상할수 없는 음악들이 나오고있는데 그것은 작곡이 아니라 작두질이라고 비난하여 위원장 마음에 드는 노래는 만들기 힘들다는 소리도 나돈다. 그런 비난쯤은 지나가는 바람만큼도 여기지 않는 그지만 김옥성과 같은 작곡가를 만나면 헤여지고싶지 않았고 음악과 선률에 대하여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옥성동무가 <결전의 길로>를 작곡한 전화의 나날에 지녔던 정신으로 창작한다는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오.》

《그게 언제 한 말인데…》

《그게 전후복구건설시기 나하구 황철에 나갔을 때지?》

《옳습니다. 제가 그때 자신이 말한 그대로 창작하고있는지… 창작이라는 원시림을 끝없이 헤치노라면 사실 지칠 때도 있습니다. 전화의 날 고지의 용사들은 동요를 모르지 않았습니까.》

《자신에 대한 동무의 요구성이 바로 좋은 음악을 창작하게 하는 바탕이요. 나에게 지금같은 말을 자주 해주오.》

《위원장동지도… 전 선생님의 음악정서를 일생동안 따라갈 결심을 한 사람인데요, 허허…》

한손을 내흔든 리면상은 김옥성이 가져온 교성곡의 악보를 보며 휘파람을 나직이 불기 시작했다. 무릎우에 놓인 손이 가벼운 장단을 치고 곡상에 잠긴 그의 얼굴에는 엄숙한 표정, 환희의 감정이 흘렀다. 휘파람소리가 잦아들고 눈보라소리같은 허밍이 울려나오기 시작하자 김옥성은 긴장했던 몸을 풀었다. 리면상의 이같은 감정의 변화는 선률에 대한 긍정이라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좋아! 혁명전통주제의 교성곡이라는데 의의가 있는것이요!》

흥분된 어조로 말한 리면상은 작품의 머리부분의 기본선률을 반복하여 발전시키며 중간부에서 항일유격대원들의 혁명적랑만을 생활적으로, 통속적으로 서정화하는것과 함께 절정에서 격조를 높이기 위한 조식의 변화에 대한 의견을 주었다.

《의견이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좋은 작품엔 긴 의견이 따르지 않는거요.》

만족한 기분으로 김옥성이 돌아가자 리면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성곡의 선률을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며 돌아본 천리수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자연의 광란으로 짐승들조차 추위속에서 죽어간 천고의 동토에서 조선독립의 기치를 든 투사들은 원쑤들과 싸우면서도 노래를 불렀고 군정학습까지 하였다. 혁명가들의 의지에는 한계가 없었다. 불굴의 신념을 지니였기에 승리를 락관했으며 마침내 이 땅우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안아왔던것이다. 역시 김옥성은 재능있는 작곡가라는 생각에 마음은 마냥 즐거워나며 그는 교성곡의 마지막부분에서는 지휘자처럼 팔을 힘있게 내저어대기까지 하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예?》 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진행되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또 어느 질군이 찾아들겠지 했는데 문가에는 거수경례를 한 인민군 대좌가 서있다. 민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리면상은 손님에게 자리를 권했다.

《위원장선생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겁니다.》

《누군지? …》

《1차 남진할 때는 문경고개에서 만났고… 그땐 중대장이였지요. 세해전엔 우리 사단에 오셨댔지요.》

《아! … 정치부사단장… 이런 귀한 손님을 내가 몰라보다니, 인사불성이요. 내라는 놈은 노래에 미쳐 사는데다 나이보다 먼저 눈도 어두워지고 건망증의 대가다보니… 이거 정말 안됐소.》

《얼마나 좋습니까, 음악속에 사는것이. 늙지 않을테니까요.》

대좌는 군인다운 절도, 정치일군의 부드러움과 유모아도 가지고있었다.

《내가 온건 위원장선생에게 감사를 드리고싶어섭니다.》

《원, 무슨 소린지. 사민 늙은이가 군인감사를 받는 새 규정이라도 나왔소?》

《하하하… 인간적인 감사, 동지적인 감사도 있지 않습니까.》

다감한 사람이였다. 군복에 어울리지 않게 제편에서 고개를 숙여보이며 갈린 소리를 내는데 눈귀가 젖어나기까지 했다. 귀밑머리가 희슥해나는걸 보면 자기보다 나이가 퍼그나 아래사람이 아니다.

《감정비약이 너무 심하여 나로선 알아듣기가 어렵구만요.》

《강무현동지를 알고계시지요?》

《아! …》

리면상은 그제야 안해의 전화내용을 다시 상기하며 이 군관이 자기 집에 왔던 사람이라는것을 확인하였다. 북받쳐오르는 감정에 휩싸인 그는 무작정 대좌의 두손을 와락 움켜잡으며 《잊을수 없는 내 친구외다! … 이놈은 좋은 소식만 속절없이 기다렸지요. …》 하며 눈굽을 찍었다.

《오히려 나를 원망하십시오. 내가 전선부대에서 군무에만 몰두하다나니 강무현동지의 투쟁사적을 밝혀주기 위한 노력을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이러지 마시오. 나라는 사람은 한 일이 너무도 없소.》

대좌는 해당 부문의 조회에 따라 해방전 서울과 대구일대에서 활동한 조국광복회 특수조직인 새별회의 조직형태와 투쟁내용, 극비로 되여온 성원들에 대한 자료를 고증하였다. 강무현을 리경진, 박일천으로 불렀다는 사실이 확인된것이다. 그들은 강무현이 대구경찰서에 구류되였을 당시 여러차례 구출작전을 계획하였으나 본인의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조직이 로출될수 있는 모험적인 일체 행동도 허용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불굴의 인간이였습니다.》

《대구에서 열린 법정에서 나는 그의 최후의 모습을 보았소.》

《위원장동지의 노력이 큰 도움이 되였다고 일군들이 말하더군요.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대좌는 일어서서 정중히 인사하였다.

이튿날 리면상은 진옥련이 든 호텔을 찾았다. 요꼬가 그곳에 함께 있었다. 시내구경을 하고 방금 돌아온 그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꼬가 요꼬답게 재빨리 커피를 끓여서 가져왔다.

《요꼬선생, 내가 조선커피를 제조하는 방법을 배워달라오?》

리면상의 옆 쏘파에 앉으며 요꼬는 생기에 넘쳐 대답했다.

《조선커피라니 흥미가 있어요. 가르쳐주세요.》

그들의 대화를 진옥련도 호기심을 가지고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대번에 넘겨짚을줄 알았는데 유감이요. 아주 간단하오. 팥밥을 지어봤소?》

능청스럽게 웃어보이는 리면상을 보며 요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테지. 요꼬선생은 조선료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깊었다오. 옥련, 이것 역시 무심하게 들을 이야기가 아니요. 우린… 오래전 일이요. 요꼬선생의 집에서 조선음식을 먹어봤거던요.》 하고 말머리를 뗀 리면상이 손짓까지 해가며 설명했다.

《팥밥은 담아내고 솥에 붙은 가마치를 한동안 둬두었다 물을 붓소. 다음 뜨거워지면 차잔에 담아내오. 뭐 별게 아니요. 색갈은 커피보다 연하면서도 쓴맛보다 구수하여 조선사람은 후후 불며 마신다오. 조선커피!》

다 듣고난 요꼬가 가볍게 무릎을 두드리며 유쾌하게 웃었다.

《정말 비슷해요. 신통해요. 밥도 짓고 차도 끓인다! 조선녀인들은 정말 지혜로와요. 호호호…》

진옥련은 리면상이 이렇게 한낮에 찾아온데는 사연이 있다고 여기며 그의 거동을 주시하였다. 숭늉을 가지고 롱담이나 하자고 시간을 보낼 사람이 아니였기때문이다.

《난 사실 여기로 오면서 금시 잡히는 선률을 안은채 흥분에 잠겨 어쩔바를 몰랐소. 기쁜 소식을 알리자니 아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소. 천금같은 노래이기때문이요. 가만, 옥련! 그 량반은 어떻게 지내오? 이런 자리에서 화제에 올릴 인물은 못되지만… 백운남말이요.》

리면상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진옥련은 자못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 경멸한 인간이기때문이였다. 돌이키고싶지 않은 사람을 물어보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용나발도 곧잘 불어댔는데 요즘은 기운이 진했는지 잠잠한게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러오.》

약간 턱을 들어올린 진옥련은 조소가 비낀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얼마나 비렬한 인간이였던가.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무슨짓이든 다하는 추물이였다. 그같은 인생도 교훈은 남기는것이 아닐가.

《기억나시겠는지 모르겠어요. 빅타레코드회사에서 노래를 부른 신 카나리아를 말이예요. 예, 잊지 않으셨군요. 그는 지금 로스안젤스에 있어요. 심장병으로 고생해요. 그가 어느 한 잡지에 낸 글을 나는 한자도 틀리지 않게 외울수 있어요. 들어보시겠어요? 기사에 요꼬도 아는 사람이 있으니 흥미가 있을지도 몰라요.》

진옥련은 동의나 얻을듯 요꼬를 바라보았다.

《들려주세요. 가극에 나오는 어떤 인물의 아리아를 듣는게 아닌지… 기대가 가는군요.》

요꼬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며 진옥련은 기억을 더듬었다.

《청와대 주인자리를 찬탈한 군사독재광이 버젓이 일본과 <국교>정상화의 길에 나섰어요. 일본정계와 재계의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별의별 대표단을 다 무어가지고 서울행에 나섰답니다. 신 카나리아의 노래를 대신 불러드릴테니 들어보세요.》

진옥련은 그 내용을 상기하느라 지그시 눈을 감은채 기억을 살려 랑독하듯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청와대가 큰 잔치를 베풀자 백운남을 위시한 떨거지들이 나발통들을 둘러메고 먹이를 찾아 연회장이라는데를 찾아갔는데 부끄럽지만 그속에 나도 들어있었다. 각하들의 신변상안전을 위해 골방에 갇히운 우리는 언제면 불러주고 먹다 남은것이라도 입에 넣어볼가 빈 배를 쓸며 울대방아만 찧어대는 꼴로 기다렸다. 우리 모양이나 비슷한 족속이 옆방에도 있었다. 알아보니 일본대표단이 오면서 거느리고 왔다는 악단이였다. 나이는 있어도 약아빠지고 걸음이 잰 백운남이 어느새 일본악단 책임자를 찾아냈다.

<핫! 요시요시, 이런 반가울데라구야. 당신 나를 몰라볼수가 있소. 이 백운남을 말이요.>

흰 가발을 쓴듯 한 일본남자가 아연실색하여 아무 말도 못하며 서있는데 얼굴전체가 죽어가는 사람을 방불케 하였다. 천만뜻밖의 자리에 부닥쳤다는 감정을 엿볼수 있었다.

<어찌된 일이요?>

말꼬리를 길게 끌어올리며 노래를 부르는것 같은 백운남의 인사인지, 사설인지, 야료인지 모를 수작질이 장마당 흥정처럼 계속되였다.

<원, 세월이 못하는 일은 정말 없구려. 당초의 모습이란 찾을길이 없고 그대는 황량한 들길에 구우는 락엽이 분명할진대 어인 일이요? 하? 쩡쩡 호기차던 언변은 어데 가고 벙어리모양을 하는거요. 다시 만난 기분으로 통성이라도 합시다그려. 예, 가네다상?!>

나는 놀랐다. 만나본 일은 없어도 이름은 들어온 일본음악가였기때문이다. 한다하는 군수독점재벌의 아들이고 상속자였던 사람이 지금은 무슨 몰골을 하고 서있는가. 전후 일본정계의 인물이 되여 대표단을 이끌고 나타났다면 몰라도 주라를 물고 따라다니다니 알수 없는 운명이다.

드디여 우리 무리가 들랍신다 하는 어지를 받고 연회장무대에 나섰다. 백성은 째지게 가난해도 식탁마다에는 호화로운 료리와 술, 과일과 음료들이 넘쳐났다. 궁성의 불빛은 현란해야 한다. 국가의 권위를 각하들의 식탁이 대변하지 않는가. 그렇다. 청계천은 구린내를 풍겨도 여기에는 향기로운 냄새만 흘러넘쳐야 하는것이다. 드디여 배고픔에 시달린 무리들이 두드리고 불러대기 시작했다. 일본악단과 뒤죽박죽이 된 공연이였다. 참으로 의미가 깊었다. 네것, 내것이 없고 그 옛적 동조동근이 살아나는것 같아 눈뜨고 보기 힘겨운 광경을 펼치였다. 군화를 신으신 우리의 대통령각하가 그 무지스런 발을 굴러대며 일본군장교시절의 군가를 불러대는것이다. 외교도 군사독재자 맛이 나게 얼마나 기운차게 해대는가. 군인은 목적만 수행하기에 과정의 수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남조선정치의 새로운 면모가 있는것이다. 일본사람들도 짝지지 않았다. 중의원 의원이라는 녀정객이 인상깊었다. 춤추는 유연한 자세는 물우로 나는 새와 같았다. 얼마나 매력이 있었던지 탐욕스러운 우리 각하가 참지 못하고 그녀와 탕고춤을 춰대기 시작했다. 이거야말로 인류 대통령외교사에 없었던 화폭을 펼치는것이 아닌가. 정말 멋있다! 손만 가지고서는 안될 판이다. 미친 열에 뜬 연회장이 움씰댔다. 악사도, 가수도 정신이 혼몽한 속에서 무엇을 부르고 켜대는지 알지 못하며 광기를 부렸다. 음탕한 아비가 벌거벗었으니 자식들이 그 꼴을 닮는거야 너무 응당한 리치가 아닐가.

검붉은 조명속에 자리잡은 악사들이 새 곡을 울리자 춤추던 사람들이 끓는 콩물에 서슬을 친 때처럼 엉켜붙기 시작했다. 국가연회가 아니라 사교계의 춤판이 되였다.

대통령각하가 일본 녀정객을 꽉 그러안고 노래를 불러주는 내앞으로 유유히 헤염쳐왔다. 가네다가 내옆에서 타악기를 두드리고있었다. 부서지는 음향속에서도 존귀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사실상 반주는 무의미했다. 선률은 이미 파괴된지도 오랬다.

<각하, 젊음을 안겨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지금도 좋습니다. 세련된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습니까.>

<감사합니다. 저 사람은 내가 데리고 왔답니다. 얼마나 흥겹게 그리고 공손하게 두드리는가요.>

그 녀자는 가네다를 눈짓해보이며 대통령과 여유작작하게 교감하였다.

마이크를 든 나는 가네다가 울분과 고뇌에 지쳐서 허덕이는것을 보았다.

대통령과 녀자는 춤을 추고있지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진지한 단독회담을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이때 눈치빠른 백운남이 한점 올려보려고 나서서 내 마이크를 앗아들더니 악사들에게 곡목까지 지정하고나서 거칠고 비린청을 질러댔다. 규슈지방의 일본민요인데 시작하기 바쁘게 일본 녀정객의 불만을 자아냈다.

<각하의 저 가수는 난봉타령을 해대는군요.>

<흐흐흐.>

각하는 말뜻도 헤아리지 못한채 실없이 웃었다. 하기야 일본의 돈주머니에만 정신이 가있었으니까. 국민을 위해서라면 백번도 바보가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우리의 대통령이 아닌가.

녀정객은 백운남을 빤히 쳐다보며 각하에게 송사를 했다.

<안되겠어요. 저건 사람무리속에 끼여든 거세한 한마리의 버새가 분명해요.>

대통령이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안되겠다? 그렇다면 들어내치웁시다, 흐흐. 저런건 아깝지 않거던요.>

어지가 내렸다. 대통령을 쉽지 않게 뵈올수 있는 자리에서 값을 올려보려던 백운남의 잔꾀가 일을 치고야말았다. 실로 가긍한 모습이였다. 그것은 우리모두였다. …》

눈을 뜬 진옥련이 모두 들었겠죠 하는 눈길로 일별하며 말했다.

《기사인용은 이만하겠어요. 방금 가네다의 이름은 들었을것이고 감각이 뛰여난 두분은 일본녀자가 누구인가도 짐작했으리라고 봅니다. 도모미입니다. 일본대표단의 막후조종자였지요. 가네다가 어떻게 되여 그런 몰골로 행차를 따라섰을가요? 가네다재벌은 전후 몰락했습니다. 일본군수독점체들의 운명은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지요. 도모미는 어제날의 남편이였던 가네다를 오늘도 괴롭히고있을거예요. 타민족을 동화시키려고 광분한 그들이지만 자기들의 가정조차 지켜낼수 없었답니다. 한마디로 안해는 남편을, 남편은 안해를 자기의것으로 동화시키지 못했던거예요. 가련한건 백운남이였어요. 청와대에서 쫓겨나며 그가 했다는 탄식 또한 웃어넘길수 없는 말이예요.

<이렇게 림종이 오는가. 왜인 발길에 채울 때보다 더한 굴욕을 찾아가 당하다니…>

생존예술의 대가가 그후 어떻게 되였는지는 누구도 몰라요.》

리면상과 요꼬는 가네다와 그의 안해였던 도모미의 인생길을 자기 나름대로 추정하여 련상해보았다. 무엇이 어쨌든 한때 남편이였던 사내를 권력으로 길들여 끌고다니며 연회장의 악사로 앉히는 도모미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한갖 사랑의 복수는 아닐것이다. 그것을 오늘날 일본이라는 나라의 체내에서 흐르는 잔인한 피로 느끼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리면상은 생각하였다.

《이젠 천금같은 노래를 들려줘야 하지 않는가요?》

진옥련의 물음에 리면상은 상념을 거두며 고개부터 끄덕여보였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소. 그러니 내 차례가 옳소.》

그는 미소를 머금고 두 녀자를 바라보며 강무현의 투쟁자료가 확인된데 대해 말했다.

강무현의 해방전 투쟁사적이 고증되였으며 반일애국렬사로 등록되였다는 사실을 들은 두 녀자는 서로 다른 감정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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