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44

 

총독부 관리가 오늘까지 세번째로 리면상을 호출하고있다. 일본에 건너간 가네다가 전보로 리면상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목적이 무엇인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것이다.

첫번째 상면때 관리는 전보용지를 내보이며 만족한 얼굴로 축하한다는 말까지 하였다. 전보내용과 관리의 말은 교활한 놈들의 음모라는것을 제꺽 짐작할수 있게 했다. 이쯤 해놓으면 아무리 고집이 센 리면상이라 할지라도 빠져나갈수 없다고 여긴 관리는 앞에서 기다리는 길운에 대한 감언리설을 해댔다. 도꾜의 이름있는 오케스트라단의 작곡가, 한달 봉급이 백엔에 꼬리가 달린다니 자기보다 퍽 많은 돈을 받는 자리라면서 부러워하는가 하면 도꾜에 오면 독립가옥이 기다린다는 가네다의 담보를 전하면서 총독부 관리로서는 꿈도 꿀수 없는 행운이라며 느침을 흘려댔다. 가네다의 검질긴 회유에 다시 걸려든 리면상은 당장 빠져나갈 구실을 찾을수 없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사흘이 지나기 바쁘게 그놈은 독촉을 하였다. 말하자면 가네다의 전보장이 날아든 후 두번째 호출이였다. 처음 찾았을 때는 횡재를 만났다고 수선을 피워댔지만 오늘은 눈살이 꼿꼿하여 도꾜의 지시를 집행해야 한다는 강경한 립장으로 나왔다. 위선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것이였다.

시간을 늦추면 무슨 모략을 꾸밀지 모른다고 판단한 리면상은 도꾜에 갈수 없는 리유를 내놓았다. 가정적으로 움직일 형편이 못된다, 임신중인 안해가 심하게 앓고있기때문에 려행할 몸이 아닌데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로자도 마련할수 없다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사될수 없는 조건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총독부 관리와 처음부터 좋지 못한 대화를 나누는것을 피하려 했던것이다. 그러나 예견한 그대로 놈은 모든 조건은 만족할것이라며 자기도 이미 료해했기때문에 당신 가정과 함께 본국으로 가는 의사를 대기시켰다는것, 려비로 총독부자금이 할당되였으니 아무런 불편없이 갈수 있다고 조여댔다.

일본땅에 강제로 끌어가려는 가네다의 흉계에 편승한 관리의 태도앞에서 결정적인 립장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를 지금같이 품을 들여 데려가려는 진짜 목적을 말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야 이미 말하지 않았소, 면상선생. 재능있는 선생을 관현악단 작곡가로 발탁했다고.》

《일본의 민족차별정책과는 너무도 관대하군요. 보다는 내가 가네다를 잘 안다는것이요. 그는 나와 음악리상에 있어서 상반되오. 나는 조선사람이며 오선지우에서 일본노래를 지을수 없는 작곡가요. 따라서 지금의 요구는 접수할수 없소.》

관리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시물시물 흉칙한 웃음을 섞어가던 얼굴이 표표해졌다. 축 드리웠던 눈갓이 쳐들리더니 눈알이 번들거리며 살기를 뿜었다.

《호의를 저버리면 차례질게 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에게 우리 일본의 노래를 짓고 부르게 하자는것이다. 알았는가?》

《나는 일본에 가지 않겠소!》

《반항하는가?!》

《사람이기에 자기를 주장하는거요.》

《일본을 거역한 조선사람은 있을수 없다!》

《좋소. 가네다의 흉계와 당신의 강요에 대하여 총독부에 정식으로 항의할것이며 이 사실을 신문을 통하여 세상에 공개하겠소.》

《뭣이?! …》

폭력만능의 환상에 빠져살던 인간이 두눈을 흡떴다. 자기의 뜻대로 될수 없는 일도 있다는 깨달음때문인지 발을 쾅쾅 굴러대고나서 다시 찾을테니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 반응이 없던 놈이 오늘 다시 찾는 까닭은 무엇인가. 가네다의 옹노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게 아닐가. 운명의 갈림길에 선것 같아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며 살아왔다. 말수더구가 나날이 줄어만 가니 안해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켜보고있다. 마음고생은 한사람이 하는것만도 충분하다. 가정이라는 살림살이를 걷어안고 허덕이는 안해를 보느라면 가난을 덜어줄수 없는 자기가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두살이 잡힌 딸애는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제야 겨우 걸음을 떼는데 가슴을 찢어대는 정상이다. 그런데 안해의 배속에 있는 새 생명은 자기를 기다리는 세상이 어떤것인지도 모르며 태여나기를 재촉하고있다. 아직까지 한번도 물은 일 없는 안해가 오늘은 월급을 언제 주는가고 맥없이 묻는것이였다. 총독부에 불리워간다는것을 알리 없었다.

리면상을 호출한 인물은 전번에 만났던 관리가 아니였다. 자기는 군인이라는것을 알라는 뜻인지 제복에 략수를 패용한 가슴을 쩍 벌리고 거들먹대며 맞아주었다.

《당신 리면상인가?》

《그렇소.》

《일본에 가기를 거절했는가?》

《그렇소.》

《조선의 작곡가이기때문에 일본노래를 지을수 없다고 했는가?》

《그렇소.》

《칙쇼! 우리는 네가 어떤 인물인가를 연구하고있다. 너희들이 강무현의 장례와 같은 괴이한 란동을 다시 부리면 용서치 않을것이다!》

리면상의 조용한 대답이 반복되자 노기가 치민 놈은 수염을 비틀어올리며 물어메칠듯 악청을 내질렀다. 조선사람은 복종해야만 살수 있다, 반항하면 기다리는것은 감옥이며 죽어야 한다고 망언을 줴쳐대고나서 사발눈을 희번득거렸다.

아무리 고압적인 태도로 위협했지만 상대가 완강한 침묵으로 저항하자 놈은 마침내 자기의 조건부를 내놓았다. 일본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한 총독부가 자리잡은 조선에서는 자기의 말대로 해야 한다면서 예술단체의 이름을 렬거하고는 상기 악단에서만 창작활동을 할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그속에는 백운남의 극단도 들어있었다.

《대답하라. 네가 선택할수 있는 권리는 이것이 전부다.》

일본에 가기 싫으면 조선에서 일본을 위해 노래를 지으라는 강요였다.

《설사 음악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요구하는 곳에는 가지 않겠소.》

《리상을 포기하는가?》

《나는 작곡가요. 살아있는 날까지 민족의 노래를 부르겠소.》

《좋다! 불복하면 대가를 치를것이다.》

리면상은 다시 찾아온 봄의 숨결이 구슬프게 어린 하늘을 바라보며 무거운 상념에 잠긴채 걸었다. 다가오는 인생의 갈림길은 마음의 의지였던 선률을 삼켜버리고있다. 숨막히는 이 하늘아래에서는 노래라는 작은 꽃마저 피울수 없는것이다. 노래를 팔자고 살았는가.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그에게서 작곡은 리상이였을뿐만아니라 생계의 수단이나 같았다. 이 하루가 자기 집의 처마밑에서 잠들려 할무렵 안해는 한줌 쌀이면 될 어린 딸의 배고픔을 달래며 눈물을 흘려야 한다. 먹어야 사는게 인간이 아닌가. 동냥길에 나선자에게 자존심을 물을 필요가 없다. 생활의 가혹한 요구가 사람들을 바라지 않은 길로 떠미는것이다. 살아야 하는 까닭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막막한 시름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굶주림이 두려워 시정배로 굴러떨어져 친일음악인이 될수는 없다. 량심을 지키자니 리상을 버려야 하고 살아갈 앞날을 결심해야 하는것이다. 내가 과연 무슨 일을 할수 있는가. 서울에 처음 내려왔을 때처럼 막벌이군이 될것인가. 만일 그 길을 택한다면 안해는 상심에서 헤여나오지 못할것이다. 어느 시골의 학교에서 교편을 다시 잡자 해도 왜놈들이 그냥 둘리 없다.

레코드회사에서 기다리고있던 조령출이 어느 노래가 또 금곡처분을 받은게 아닌가고 물었다. 왕성실과 오일선도 그가 총독부의 호출을 받고 갔다는것을 알고 초조하게 기다리고있다가 맞아주었다. 자기앞에 찾아든 고통을 젊은 녀가수들에게 말하고싶지 않아 몇푼 안되는 월급을 받아들자 조령출의 등을 떠밀며 단골술집으로 갔다.

《면상, 재간이 있다는 사람들이 음악밭을 떠나가네. 남자들은 일자리를 바꾸고 녀자들은 가정으로 들어가고있네.》

《그걸 일본놈들이 바라고있지.》

두사람의 이야기는 무겁게 오갔다. 리면상은 자기에 대한 총독부의 압력도 계획된 놀음이라는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 만난 놈은 괴상한 장례라는 말을 숨기지 않고 뱉았다. 창작해내는 노래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놈들이 시선을 다른 곳에도 돌리고있다는것을 말한다. 지금보다 더 가혹한 탄압이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자 리면상은 마음이 오히려 굳어지였다. 무슨 일인들 당하지 않았으며 노래를 지었다고 앞날을 두고 걱정하겠는가. 녀자지만 진옥련은 노래를 부르기가 힘들것이라고, 설사 그렇다 해도 자기는 숨지는 날까지 두견새가 되여 억울하게 간 사람을 찾아 부르고 부르겠다고 했다. 모진 마음을 먹은 녀자였다. 그랬기에 강무현이 사형수로서 상소권을 포기하자 심신을 다해 뛰여다니며 시신이라도 넘겨받으려고 몸부림쳤으며 끝내 뜻을 이루었다.

장례식은 할수 없다는 가혹한 형무소당국의 요구를 집행하기 위하여 경찰들이 진옥련의 집과 골목길에 력량을 배치하고 살기를 풍겼다.

상복을 입고 고인의 령전을 마주하고 앉은 진옥련은 《전 할바를 다하느라고 애썼어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하고 물었다. 리면상은 이 녀자의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속세의 인간을 보내듯 해서는 안된다는 심리가 깔려있는것을 느꼈다. 그의 생각도 같았다. 조령출과 의론했지만 신통한 방도가 나오지 않았다.

곡성조차 울리지 않는 초상집의 깊은 밤, 리면상은 대문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왜놈경찰의 구두발소리를 들으며 치를 떨었고 소리없는 피눈물을 흘렸다. 죽음조차 감시를 받아야 하는 암흑천지, 죽은 사람을 조상의 례법대로 장례마저 지낼수 없는 참혹한 이 현실을 용납할수 있단 말인가. 민족의 장한 아들을 침략자들의 총칼로 바랠수는 없지 않느냐. 가도 떳떳이 가야 한다. 왜놈의 법정을 뒤흔든 사나이의 기개로 당당히 걸어가게 해야 한다.

리면상의 제의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령구발인을 밤에 하는 법이 어데 있는가. 살아서 떳떳했는데 하필이면 어두운 밤길로 가게 한단 말인가. 진옥련만은 침묵을 지켰다. 새날이 오는 시간 날밝기 전에 령구를 발인하자는 뜻을 안 조령출이 강무현은 남다르게 산 백의민족의 아들이니 남달리 보내주는것도 고인의 넋을 따른것으로 된다고 말하였다. 조객들은 처절한 심정으로 공감했다. 부모를 대신한 사람이나 같았던 류진의 어머니가 소리없이 눈물을 뿌리며 《아들아, 네 어두운 밤길을 가면서 이 나라의 아침을 불러오너라!》하고 말하여 이틀밤 정적속에 묻혀있던 집에서 곡성아닌 울부짖음이 한시에 울려나왔다.

령구발인을 밤에 한다는 통고를 받은 일본경찰들은 아연해하면서도 소란을 피우지 않게 되였다고 안심하였다.

암흑의 깊은 밤, 그것은 이 나라의 현실이였다. 령구가 가는 길을 밝히는 홰불, 그것은 독립만세를 피타게 웨친 렬사의 애국의 넋이였다. 그 넋의 부름을 따라 사람들이 밝아올 이 나라의 새날을 부르며 걸었다. 그 누군가 너무도 비통하여 《황성옛터》를 목메여 부르자 울분같은 함성이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령구가 서대문앞에 이르렀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떨쳐나와 따라섰다. 뒤늦게야 경찰들이 수습하려고 했지만 막을수 없었다.

상복을 입고 홰불을 든 리면상은 진옥련과 어머니를 부축하고 걸었다. 인왕산언덕을 오르며 웨쳤다.

《무현아! 무현아! 너를 따라 우리도 간다!》

리면상은 그밤의 감정을 안고 조령출을 바라보았다.

《여보게, 명암! 산 사람보다 더 값있는 삶을 지닌 죽은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모두보다 더 죽은 산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나. 무현은 죽었어도 살아있는 나보다 오래 살고 살아있지만 난 그보다 일찍 죽는가보네.》

《날 때부터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 할 운명을 가진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학대한다면 비로소 염세의 문어구에 들어서는게 아닐가. 하늘로 오르자니 길이 없고 땅으로 들어가자니 문이 없구나 하는 탄식이 무엇에 필요한가.》

리면상은 벗의 모습을 새겨보았다. 어딘가 나보다도 강한데가 있어보이지 않는가. 언어는 선률보다 정확하다. 력사의 이름있는 시인들은 그 시대의 얼굴이였고 민족의 정신이였으며 선각자였다. 그들은 민족이 창조한 가장 친근한 언어를 가지고 사람들의 생활을 선도하였고 진보에로 추동하였다. 하여 사람들은 시처럼 다감해졌고 시처럼 억세게 세파를 헤쳤으며 시와 같은 인류의 락원을 찾아 오늘도 길을 걸어가는것이다.

《시인아, 물어보자! 이놈이 백년을 념불하면 음악부처가 되는가!》

《산이 좋다고 들어가선 되돌아서는 꼴이야 보이지 말아야 할거네.》

《이 능구렝이야, 네가 내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있었단 말이냐?! 하하하…》

술기운이 오른 리면상은 오늘 총독부 관리로부터 받은 세례를 털어놓았다. 금곡처분같은 징계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령출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간악한 놈들인가. 제놈들이 던진 유혹의 낚시를 물지 않으니 사정없이 짓밟는것이다. 참으로 암담한 전도를 마주한 작곡가가 아닌가.

《어떻게 할 결심인가?》

조령출은 술잔을 들고 벙긋이 웃는 리면상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의 저 상태는 새 선률을 찾았을 때의 흥분을 드러내는것이다. 이 사람이 지금 노래를 짓고있는가. 그럴수도 있어. 가장 비통한 선률을 심장에 새겨넣는지도 몰라. 그는 솟구치는 련민의 정으로 고개를 수그린채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겠나? 명암을 통해 시를 보았네. 자네의 세계를 선률에 담자고 무던히 고심했거던. 역시 시인은 시인이지.》

《작곡가도 시인이네. 선률로 읊는다는 방식이 다를뿐이네.》

《고맙네. 어떻게 하는가고? 가난한 농사군의 자식이 노래를 지어본것만도 과분한노릇이 아닌가. 노래를 더 만들겠다고 왜놈의 자락에 매달린다면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나. 만주광야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총을 잡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명암도 알지 않나. 설사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해도 이 땅에 해방년이 오는 날 부끄러운 꼴로는 나서지 말아야 할거네.》

조령출과 헤여진 리면상은 밤길을 따라 휘청휘청 걸음을 옮겼다. 머리를 지지리 눌러대던 오만가지 근심이 술에 놀라 달아나버렸다. 락망도 객기로 변하여 산 사람 죽기야 하겠는가 하는 배짱이 생겨났다. 음악이라는게 뭐고 작곡을 해서는 어쩐다는거냐. 하루 세끼 죽사발도 벌지 못하며 노예의 눈물같은 곡조나 남겨서 무엇하느냐 말이다. 차라리 없느니보다 못해… 기가 올라 한손을 내두르던 그는 자기 마음속소리에 놀라 걸음을 뚝 멈추었다. 무엇이라구? 제 민족의 노래를 모욕하다니. 그것이 없었더라면 이 땅의 생명들은 시들어버린지 오랬을것이다. 그 노래가 살아서 남아있지 못한다면 민족의 넋을 배반하는것이나 다름없다. 술잔에 빠져죽어도 아깝지 않을 녀석같으니. 몸뚱이만 제 나라에 서있지 얼은 끌려간게 아니고 뭐냐. 자신에 대한 타매가 뒤따르자 그는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강무현의 모습이 눈앞으로 생시런듯 다가왔다.

《면상, 백두산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으라구. 우리 민족의 노래를 기어이 지켜내야 하네!》

절절한 당부가 흉벽을 두드려대자 리면상은 허공을 무섭게 노려보며 걸음을 옮겼다. 량심의 명령은 엄격하지만 그렇게 살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 선뜻 결심할수가 없었다.

무거운 발길에 이끌려 집앞에 온 그는 문득 안해와 어린 딸이 떠오르자 금시 천길나락에 굴러드는 착각을 느꼈다. 그제야 자기가 일을 저지른것을 깨달았던것이다. 총독부 악마를 쫓으려다 술귀신한테 먹히웠다. 불쌍한 저 인생들은 밥 한술도 못 먹었으리라. 얼마나 몰렴치한 남편이고 아버지인가. 마당어구에 선 나무줄기를 부둥켜안은 리면상은 마구 머리를 찧어댔다. 이 순간 그는 자기라는 인간을 없애버리고싶은 생각뿐이였다.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안해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이 깊어서였다. 나무에 기댄채 쪼그리고 자다가 깨여났던것이다. 시간이 고마왔다. 흘러가지 않았더라면 수치감에 견디지 못했을것이다. 밤이 고마왔다. 밝은 낮이라면 어떻게 안해를 마주보겠는가.

김형숙의 부축으로 집안에 들어온 그는 펴주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이불을 들쓰고 취한체 하자니 정신은 초롱초롱 맑아만지고 안해의 한숨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내들이란 다 나같은 족속일가. 제 좋은 일만 골라하며 넉살머리를 떨어대니 한뉘 같이 산다는게 시름이 아니고 뭔가. 이불속에서 자책을 하던 리면상은 마침내 일어나 앉고야말았다. 한달가까이 혼자 안고 지낸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창백해난 얼굴을 반쯤 숙이고 방바닥에 눈길을 떨군채 숨결을 가다듬던 김형숙은 조심스럽게 남편의 수척해진 모습을 쓰다듬어보았다. 이어 그의 눈기슭에 이슬이 방울졌다. 새 노래를 지을 때마다 밤을 새기에 그러려니만 여겼으니 얼마나 무심했는가.

《제가 조금도 보탬이 못되는군요. …》

안해의 죄책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면상은 황황히 손까지 내저었다. 너무도 깨끗하고 진정어린 마음이여서, 자기라는 초라한 예술가를 리해하여주는 사려깊은 안해여서 그는 쩌릿한 행복감을 감수했다. 이 사랑앞에서 묻어둘 말이란 없었다.

《가네다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부터 나라는 사람을 잡아둘 궁리를 하였소. 늦게야 속내를 알아차린 내가 졸업중도에 귀국해버렸더니 앙심을 품고 서울에 나타날 때마다 회유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총독부까지 내세워 질식시키려는거요. 나에겐 다른 길이란 없소. 친일음악가로 살수 없기에 음악을 버려야 하며 당신과 자식을 위해서 다른 일자리를 잡아야 하오. 난 누구의 동정도 바라지 않지만 아무 일이나 하는것도 두렵지 않소. 사실 이 말은 정말 하기 힘들었소. …》

등잔불이 그려놓은 두사람의 그림자가 노전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깊어가는 밤, 젊은 부부는 이 자리에서 자기들의 장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심중의 갈피를 번지고있었다.

작곡가로서 리면상의 생활에 대한 태도는 즉흥적이였다. 압박에 대한 도전은 하고있지만 구체적인것이 못되고 감성의 토로나 같았다. 그와 달리 김형숙은 남편을 알고있었으며 자기의 작은 가정에 육박해오는 생활을 녀성의 감각으로, 안해의 눈으로 보고있었다. 현숙한 이 녀자는 남편의 리상이 집안의 재산이라는 의지를 가지고있었는바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움터나던 그 기슭에서 시작된것으로서 관념속에 깊이 뿌리박고있었다. 그는 지금의 순간에조차 무엇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온갖 고생을 할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의 날개를 지켜줄 한가지 생각만을 하였다.

《그건 안돼요.》

《안된다는건 무슨 말이요?》

《음악을 떠나선 못살거예요.》

《다른 길은 없소.》

《무거운 짐은 저와 애예요. … 그 짐만 벗으면 돼요.》

아연해진 리면상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안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있는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누가 누구의 짐이였는가. 짐이란 무엇이고 벗는다니 그건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나지만 안해의 말을 기다려야 하였다.

《고생은 할거예요. 그건 피할수 없어요. 저와 애는 할아버님이 계시는 동흥으로 내려가겠어요. 할아버님도 외로워요. 부모님들이 안 계시지 않아요. 손자며느리라는 이 녀자는 때식 한끼도 대접해드리지 못했어요. 남의 나라 땅에 가서 고학도 하지 않았어요. 견디여내세요. 기다리겠어요. 다시 만나 마음편히 살 날이 오겠지요.》

상상도 못한 앞일이 안해의 결심으로 작정되고있었다. 랭정한 판단, 확고한 주견, 무슨 말로도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안해의 심정속에서 흐르는 말을 듣고있었다. 일본놈들이 짓밟는다고 음악을 버린다면 그것으로 량심을 지킬수 있는가. 자기 민족의 노래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이만한 난관앞에 물러선다면 그보다 나약한 인간이 어데 있겠는가. 한가정을 희생시킬 각오도 가지지 못한다면 오늘의 가혹한 압제에서 영원히 노예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는것이 어떻소?》

《그러세요. 음악을 떠날 결심은 하지 마세요. 버리면 다시는 찾지 못해요.》

《고맙소! …》

암담하게만 생각한 이밤이 희망을 안겨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리면상은 후더워나는 가슴을 안고 새날을 맞았다.

선률에 생리가 있다면 생활에도 고유한 론리가 있다는것을 리면상은 알게 되였다. 세방살이를 면하고 그들부부가 이루어놓았던 집은 사라지고야말았다. 안해는 떠나기에 앞서 말했다.

《이제 가면 여길 못 올것 같아요. 잊지 못할분이예요. 묘소를 찾아보고 가고싶어요.》

얼마나 갸륵한 마음씨를 지닌 안해인가. 사람은 옳바르게 죽어야 한다. 죽음은 가르침이 되여야 한다. 리면상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안해와 함께 강무현의 봉분을 찾았다. 무덤가에는 한그루 참대가 자라고있었다. 아마도 진옥련이 심었으리라.

김형숙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였다. 철부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선 리면상은 가슴속에서 흐르는 노래를 조용히 부르고있었다.

 

설한풍 스산한 원한의 피바다야

참혹한 주검이 묻노니 얼마냐

혁명에 피흘린자 그 얼마에 달하였나

 

언제면 이 땅에도 재생의 봄빛이 어리려느냐. 민족의 노래가 강산에 넘쳐날 그날은 오고야말리라. 그날까지 살아야 한다. 백의동포의 깨끗한 얼을 간직하고 부끄럼없이 조선의 노래를 지키리라. 리면상은 마음속으로 강무현에게 량심의 언약을 하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