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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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쥐들이 갑판이나 선실에 나타나면 배가 침몰될 위기에 처했다는것을 알아야 하며 개미가 무리를 지어 굴을 떠나면 큰물이 지던가 지각변동이 생길수 있다는것을 예견해야 한다. 조짐은 일종의 경보나 같은것이다.

렴필재는 조짐을 감각하고 경보를 수감하는 뛰여난 기질을 갖춘 사람이지만 요즘은 자신도 놀랄만큼 멍청해졌다. 그것은 판단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데 기인되는것이기도 하였다. 중요한것은 상급의 의도를 알아맞히는것이다. 이것만은 자신있었는데 올려가는 문건마다 뻘건 글이 추궁을 해댄다. 《자료수집에 불과함.》이라는 불만이 며칠동안 반복되여 진땀을 뽑았는데 오늘은 밤이 깊어서야 되돌아나온 문건 웃머리에 《정세판단에서 착오를 범하고있음.》이라는 보기만 해도 섬찍한 글줄이 엄하게 노려보는것이였다.

자료를 잘 묶는것이 첫째라고 하던 상급이 아닌가. 넘쳐나게 담아 올리니 그사이에 물렸는지 그것도 아니라는것이고 자기로서는 온갖 정력을 다 기울여 만든 문건인데 정세판단도 바로 못했다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수 없어 한시간이 넘도록 망두석같이 앉아있었다. 자신을 자부하여온 렴필재였건만 오늘은 자기가 그지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부상이면 비준을 해야 할 위치인데 문건기안자가 돼버리였다.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되였는가.

렴필재는 지금 장막뒤에 선 사람을 보고있었다. 사업상 접근하니 왈렌끼를 신어보았으며 빠다맛을 안다는 공통점으로 친분관계를 맺어주었다. 직위란 사람을 만들어내는 조각칼과 같은것이였다. 상급이라는 관념은 그 사람이 평범하게 던지는 말도 자기는 모르고 산 지식으로 알게 하였으며 무게있게 울리는 분석과 판단, 결론은 론박할 여지없이 접수되였다. 자연스럽게 한 인간의 의지는 복종되였고 자기 머리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지시에는 집행방법까지 제시되여있었다. 창발적인것이 오히려 화를 빚어내군 하였다. 이와 같은 수직관계, 그 무엇이나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체계에 종속된 맹목적인 사업은 산에서 굴러내리기 시작한 돌처럼 멈춰세울수 없게 어데론가 맹렬하게 돌진하고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여짜야 상급의 의도를 가늠할수 없게 되자 렴필재는 되돌아온 문건을 덮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길을 나선 그는 가로등불빛을 피하여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술조차 혼자서 마시는 사람이 되였다. 자기밖의 모든것을 경계하라는 상급의 금언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철야식당에서 풍겨나오는 불고기냄새가 저녁도 먹지 못해 시달리는 위를 심히 자극하였다.

자리를 골라가며 앉던 렴필재였건만 오늘은 체면마저 다 잃어버리고 서슴없이 찾아들어갔다. 구석에 들어박힌 그는 남들과 같은것을 청해놓고 목마른 사람처럼 첫잔을 들이켰다. 주위에서는 가슴속을 열어제낀 사나이들의 말과 웃음이 떠돌았다. 파란 숯불이 감돌며 먹음직하게 구워내는 고기를 들여다보며 렴필재는 안개발같은 의식의 장막을 헤치고 들어섰다.

광실의 천정에서 오색령롱한 빛을 뿜는 작은 전등들, 누군가 즐겁게 웃으며 뿌리는 꽃보라, 꼬냐크잔들이 경쾌한 음향을 날리고 은근한 피아노의 반주음악에 맞추어 물결치는 우아한 률동, 이상한 활기와 밤의 정서가 흘러넘치고있었다.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어 고맙소. 우리는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요.》

수정잔에 앵두빛액체를 담아든 상급은 사색적인 미소를 띤 엄숙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방금전까지 춤을 춰서인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감추지 못했다. 여기에서는 세계명곡이라는 미명하에 외국노래들이 줄줄이 울려나왔다. 영탄과 애수에 젖어 흐느끼는듯 한 해방전의 류행가들도 거침없이 불렀고 무용수들은 푸들쩍거리는 음악에 맞추어 있는 힘껏 비틀고 흔들고 떨어댔다. 지금은 진정된듯싶지만 새로운 폭발을 준비하고있을뿐이다.

렴필재는 의미있게 잔을 마주 들어보이며 대답하였다.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우리의 예술을 창조해야 합니다.》

《옳소. 우리는 시종일관해야 하며 류진과 같은 병원체들을 소멸하기 위한 새로운 왁찐을 대담하게 개발리용해야 하오. 부상동문 일을 잘하고있소. 좀더 심화시키는것이 필요하오. 수정주의독소가 뿌리를 내린 이상 우리는 사정없이 들춰내야 하며 무자비하게 소탕해야 하오. 이것이 어렵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요.》

《알겠습니다.》

상급이 손짓을 하자 음악이 바뀌였다. 슬라브족의 민족의상을 입은 남녀무용수들이 손을 잡고 마주르까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따금 휘파람소리가 울리고 짤막한 외마디가 새된 음향을 날리면 춤판이 더욱 이채로운 광경을 펼친다.

《부상동무, 당신이 좋아하는 춤인데 춰보오. 아마 누구도 당하지 못할거요.》

렴필재는 사양하지 않고 무용수들사이에 끼여들어 자연스럽게 손을 잡으며 세련된 동작으로 발을 구르고 스치기를 하며 자기의 기교를 자랑하였다.

화려한 광실이 안겨주던 향수가 이밤엔 숯불연기에 섞인 불고기냄새로 변하여 가슴을 무겁게 자극하는것이다. 상급은 얼마전부터 외국의 고전가극들을 재현해보라고 지시하였다. 변덕스럽다고 해야 할 요구인데 집행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고전음악극들이라는데 대해서는 리해할수 있지만 남의 나라 예술은 다 수정주의라고 인식하는 무지스럽다고 해야 할 견해들을 설득시키기엔 명분이 서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면서 만들어 올려보낸 문건이 결국은 불만을 자아낸것이다. 그렇다고 만족해할 방도도 찾을수 없었다.

《요즘은 허파에 바람이 찬 젊은것들이 생겨나거던. 내 아들녀석의 노래수첩이라는걸 뒤져봤는데 그저 찾아대는건 님이고 사랑이야, 화가 치밀어 둘러메쳤네.》

《배가 불렀지. 정신을 차려야 해. 무슨 귀신이 자식들을 홀려갈지 모르거던.》

《붉은기를 누가 먼저 들었나. 오늘은 우리가 지키고있네. 백악관에 더러운 추파를 던지는 무리들이 나타나고있단 말이야. 우리가 사회주의동방초소를 어떻게 지키고있는가? 우리가 소고기와 빠다를 먹으며 혁명을 하나? 없는것이 많아도 우리는 혁명적량심을 지키고있으며 윁남인민을 지원하고있단 말이네. 아는가? 그 사람들은 알아야 해! 오늘뿐만아니라 래일도 자기들의 후대들에게 알려줘야 해! …》

렴필재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웅크리였다. 곁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조차 자기한테 육박해오려는것 같이 생각됐다. 방금전 무지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옆에 앉아있었던것이다. 살면서 오늘같은 자리는 처음이였고 이런 목소리도 처음 들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론리적인 분석도 화려한 미사려구도 없지만 생활로 체험한 자기들의 드놀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 렴필재는 위축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출근하면 바퀴가 달린 푹신한 의자에 앉아 흐뭇한 기분으로 방안을 둘러보며 《우랄의 라비뉴스까》를 휘파람으로 불군 하였지만 오늘은 기분이 나지 않아 문건들을 뒤적이던 그는 턱을 긁어대기 시작하였다.

조국방문중인 진옥련이 혁명사적부문 일군들을 만났다는 자료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문건에 나타나는 인물들마다 신경을 자극했다. 이 녀자는 서울에서부터 잘 알고있다. 젊은 시절 노래터에 나가면 짝이 되여 판소리가락을 넘기군 하였다. 세월이 흘렀으니 자기쯤은 기억에도 없겠지만 어덴가 께름한 방문객인것만은 사실이였다. 우연히 빚어지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무심히 시작된 대화로 과거가 소급되고 그속에서 인간이 론의되면 놀랄 일이 생겨날수도 있는것이다.

해방전 예술계의 화제거리로 자주 오르던 진옥련이다. 한마디로 사랑이라는 갈증에 시달린 녀자였다고 렴필재는 생각하고있었다. 당시의 녀성으로서는 괴이한 사랑을 추구하였는데 그 대상이 강무현이다. 속으로 왈패같다고 여긴 그 사람이 소문에 의하면 왜놈들의 손에 잘못되였다고 한다. 리면상이 그 인물의 어떤 자료를 의뢰하고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는것을 안지는 오래다.

리면상의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처음에는 소박한 인간의 의리로 보았는데 상급이 튕겨주어서 혁명전통에 대한 외곡된 리해로 분석하고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였다. 그런데 혁명사적부문에서 관심을 돌리여 진옥련이라는 해외동포까지 만나는 리유가 무엇인가. 이것이 정세판단에서 착오인가. 렴필재의 심중은 은근히 긴장되였다. 만일 뒤집히는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질수 있었던것이다. 지금이 어느때인가. 혁명전통의 계승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고있다. 이상야릇한 위구를 느끼며 머리속을 정돈하던 그는 전화종이 울리자 선뜻 들지 못하며 한동안 물끄러미 보기만 하였다.

저 작은 물건이 사람을 위엄있게 만들기도 하고 홀지에 머저리로 굴러떨어지게도 하는것이다. 상급의 서늘한 눈길이 노려보는것 같아 렴필재는 내키지 않는 손을 뻗쳐 송수화기를 들었다.

점잖고 겸손한 목소리가 부상동무인가고 물으며 먼저 인사를 하기에 렴필재는 례절있게 대답하고 다음말을 기다리였다. 상급이 아니였던것이다.

《부상동무가 보고한 후지무라 요꼬선생과의 외교사업준비내용을 보았습니다. 그와 일본음악학원 동창이 아닙니까?》

렴필재는 턱을 긁으며 온 정신을 집중하였다.

《저… 외교사업에서 개인적인 관계가 작용하는것은 사업규률과 어긋날수 있기에…》

《소심하군요. 후지무라 요꼬선생과의 사업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말고 적극적으로 진행할데 대하여 강조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다만 제가…》

《음악가동맹 위원장동무는 부상동무가 사업에서 림기응변할줄 아는 좋은 기질을 가지고있다고 했습니다. 후지무라 요꼬와의 외교사업이 그런 특기를 요구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건 지나친 평가인것 같습니다. 외교사업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경험보다 중요한것은 책임성이지요. 부상동무가 사업에서 최근에 성과를 올리고있다는 자료들도 보았습니다. 일군의 중요한 징표는 심중성입니다. 문제분석에서 항상 객관적이여야 하며 정확성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후지무라선생과의 외교는 부상동무에게 있어서 하나의 계기로도 될겁니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고 해보겠습니다.》

렴필재는 눈을 감았다. 들려오는 말마디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말뜻을 알려고 노력하지만 사업상조언외에는 다른것을 느낄수 없었다.

《한가지 물을것은 음악가동맹 위원장에 대한 문제입니다. 부상동무는 그와 동창이고 해방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데 그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렴필재는 정신을 바싹 가다듬었다. 리면상에 대하여 묻는다. 어떻게 대답할것인가. 지금까지 그의 자료를 여러차례 묶어서 올려보냈다. 료해한것과 다른 견해를 표시할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여지를 두어두는것이 필요하다. 그는 한순간에 앞으로 있을수 있는 문제들을 예견하며 말마디들을 골랐다.

《리면상위원장의 음악적재능과 원만한 사업능력은 인정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아래일군들이 불만스러워하는 결함은 리론적으로 빈곤하다는것입니다. 빈곤한것으로 해서 무원칙하고 심의사업에서 독단도 부리며 가족주의라고 할수 있는 온상을 마련하고있을뿐만아니라 지어는 무슨 사적자료라면서 해당 부문에 들고다니는 분별없는 처신도 하고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아래에서 제기된 문제입니다. …》

《부상동무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렴필재는 숨이 차서 넥타이매듭을 한손으로 당겨내리며 대답하였다.

《그건 좀더 연구하고…》

《잘 알았습니다. 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전화를 끝낸 렴필재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손으로 관자노리를 눌렀다. 금시 맥이 풀려나며 허탈 비슷한것이 온몸을 휩쓸었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권력이라는것은 불과 같아 너무 가까이 하면 뜨거워 견디기 힘들고 지내 멀리하면 추워서 참기 어렵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를 지금은 알수 있었다. 높이 오른다는것은 언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암시나 같지 않은가.

그는 이 순간 리면상을 생각했다. 그는 언제건 직위를 내놓을 준비가 되여있으며 작곡가로서 노래만 지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여러번 느끼였다. 그러기에 자기처럼 조심할것도 없었고 기를 쓰며 어느 사람을 료해하느라고 정력을 소비할 필요도 없는것이다. 제 모양대로 살아가는데야 뭐가 걱정일텐가. 리면상에 대한 평가를 아래에 밀면서 적당히 뭉그려 대답한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의 숨을 내쉬던 렴필재가 다시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눈귀를 찡그리였다. 시답지 않아 송수화기를 집어들던 그는 껑충 놀랐다. 상급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던것이다. 누구와 이야기하면서 전화를 거는지 목소리가 부드러웠고 웃음소리까지 섞여서 들려왔다. 최근 극장들과 영화관들에서 관중들이 제기하는 반영자료들을 종합하여 가지고 오라는 지시였다.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우에서 걸려오는 전화들이 하나처럼 아리숭하게 들리였다. 극장에서 무엇을 공연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던 상급이다. 그가 요구한것은 언제나 적수들을 타격하기 위한 자료들이였다. 투쟁을 기질로 한 사람이 오늘은 영화관 관람석을 찾기에 의혹이 더 가는것이다. 수가 높은 상급들은 아래사람들이 상상할수 없는 문제를 제시하고 시험치기를 재미있어하기도 하는것이다. 하긴 시험이란 다 그런것이지. 아는것은 묻지 않고 모르는것만 물어보는게 시험이 아닌가.

저녁 사업보고시간에 상급을 찾아간 렴필재는 불이 죽은 곰방대를 보고나서 좋지 못한 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예감을 받았다. 《이오씨프곰방대》라고 측근인물들이 말할 때 처음엔 아부의 극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뽐만 한 물소뿔대통을 보고 점을 쳐보는 버릇이 붙었다. 저 자그마한 소도구에도 인간의 성격이 자리잡고있는것이다. 일부러 담배불을 죽이고 나를 기다렸을수도 있는 사람이 아닌가.

요구한 자료들을 받아 한옆에 밀어놓은 상급이 불이 죽은 곰방대를 쥔 손으로 자리를 말없이 가리키는데 무언극의 배우와 같은 동작이였다.

렴필재는 성상을 마주한 신도처럼 두손을 무릎우에 얹고 상급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곰방대주인은 사색깊은 걸음으로 천천히 그의 앞을 시계추처럼 오갔다. 이윽하여 갈리고 거센 목소리가 힘겹게 울리며 《부상동문 복고주의자인것으로 하여 반수정주의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게 아니요?》 하는 심히 모욕적인 첫 물음이 흘러나왔다.

아직까지 이런 추궁은 받아본 일이 없었다. 조용히 다독이기나 하듯 꾸짖는 말이여서 때리는 매보다 참기가 더 어려웠다. 미처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곰방대주인의 기지있는 야유와 유모아적인 조소, 은유적인 표현들과 집도의사의 수술칼같은 분석이 렴필재라는 인간을 여지없이 발가벗기였다.

당신이 들고다니는 론문이 고심어린 로고의 결실임은 잘 알지만 그 로후함은 도살장에서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을 늙은 소와 무엇이 다른가. 자기의 권위를 봉건관리들의 도포자락으로 날리려 한다면 오늘에 사는 사람의 사고가 옳은가. 간부도 인간일진대 이사짐을 싸가지고 울며 떠나는 사람을 찾아가 무슨 자료를 요구했다니 참으로 비렬한 행위가 아닌가.

렴필재는 눈앞이 아찔하여 금시 졸도할것만 같았다. 무엇을 변명할 겨를도 없이 자기라는 인간의 속옷까지 다 벗겨내는것이였다.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다루는 리유는 무엇인가. 급기야 형세를 가늠하기 시작한 그는 창문가에 서서 등을 돌려댄 상급을 침착하고 예리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부상동무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르는것 같습니다. 동무가 제기한 자료들은 사업에 혼란만을 조성했으니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렴필재는 자기의 온몸이 좌초된 배처럼 물속으로 가라앉는것을 느꼈다. 숨이 차올랐다. 이것이 오늘 부른 목적일수 있다. 모든 일을 자기가 포치하고 진행해왔지만 어떤 사태에 직면하니 희생시켜야 할 인물이 필요한것이 아니겠는가. 이쯤한 고배는 마셔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는가. 그는 상전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고있었기에 마음을 도사려먹었다.

《책임질 사람이 요구됩니까? 그건 걱정마십시오. 난 준비가 돼있습니다.》

상급의 움직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쇠잔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동작에서 굴곡이 생겼다. 그와 함께 축 늘어뜨려졌던 곰방대도 포신같이 쳐들렸으며 목소리도 자기 음색으로 돌아왔다.

《역시 부상동무는 사귈만 한 사람이요. 다시 알게 되여 반갑소.》

자기앞으로 내민 손을 보며 렴필재는 열물같이 쓰거운것을 삼키였다. 이건 모종의 검토인가. 이것이 앞에서보다도 더한 조롱은 아닐가. 네가 나를 이렇게 놀려대기까지 한단 말이냐. 금시 터져나오는 감정을 누르며 그는 상급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밖에는 할수 없는 처지의 복종이였다.

곰방대주인은 렴필재의 옆자리에 앉으며 더없이 친근한 미소를 짓고 말하였다.

《부상동무, 우리의 사격권안에는 목표물들이 많소. 어느 목표를 명중하겠는가. 한번 방아쇠를 당겨서 가장 효과가 큰 대상물을 넘어뜨리는것이 묘기가 아니겠소. 연구해봅시다. 그리고… 내가 이미 지시했지만 아니, 부상동무에게 건의했다고 하는것이 옳은 표현일거요. 사회생활의 새로운 활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외국의 고전가극들을 무대에 올릴 필요도 있다는것이요. 우리에게 이렇다할 작품이 없는 형편에서 과도적으로 말이요. 이를테면 능동적인 조응이라고 할가. 어떻소?》

렴필재는 머리속이 아파났다. 상급의 이 요구는 계속되고있는것이다. 수정주의를 때리면서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의도를 정확히 알수 없었다. 이 사람의 말은 방향이지만 집행은 자기가 해야 하기에 대답하기 힘든 일이였다. 그보다는 앞으로 있게 될 일들이 우려되였다. 무엇인가를 준비할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속에서 흘러갔다. 오늘 강조한 책임이 래일은 더 무서운 요구를 강요할수도 있지 않을가. 그는 이 순간 자기가 마주한 인물이 음모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위엄스럽게 보이던 곰방대에서 피여오르는 연기가 한층 음험한 기운을 풍기였던것이다.

《음악가동맹 위원장과 토론을 해봐야 합니다. 모든 음악작품은 그단계의 론의를 거치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애매한 표현이였지만 상급은 자못 너그럽게 수긍하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위원장동무도 리해를 표시할겁니다. 지금같이 <콩쥐팥쥐>나 <장화홍련전> 같은 진부하고 고루한것들을 무대우에 올려놓아서는 우리 인민들의 정서적요구를 충족시킬수 없습니다. 아마 그 고집쟁이도 납득하게 될거요.》

렴필재는 상급의 입가로 흘러가는 묘한 웃음을 보았다. 그것은 그 어떤 암시나 같은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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