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2

 

가네다의 초청을 물리친 리면상은 서울에서 열린 후지무라 요꼬의 독주회를 찾아가 관람하였으며 문예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 공연성과를 축하해주었다. 무엇을 깊이 생각한 행동이 아니였으나 그로서는 달리는 할수 없었다. 인간은 리성의 요구에만 복종하는것이 아니였다.

리면상은 공연이 끝난 후 자기가 아는 작은 음식점으로 요꼬를 안내하였다.

《일본료정이 아닌걸 량해하오.》

요꼬는 눈시울을 좁히며 리면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말뒤에 숨은 선률을 음미하는것 같았다. 음악학원시절의 모습엔 경망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침착한 자세와 너그러움을 안고 시종 미소를 보내고있었다.

《충분히 리해합니다, 조선의 작곡가선생. 이렇듯 만족해할 인사를 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외교석상에서 갖추는 억양과 잘 다듬어진 말이 강박부로 울리자 리면상은 어색하게 웃었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음악가가 마주앉은것은 사실이다. 나라를 빼앗겼어도 나는 마땅히 조선작곡가로 불리워야 한다. 그 심리를 알고 만족시켜주는것인가.

《고맙소. 우린 힘겹게 노래를 짓고 부르오. 요꼬는 아마 모를거요.》

《일본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일본이 얼마나 가혹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고있는가는 알고있어요. 놀랐어요. 이 땅에 아직도 자기의 노래가 남아있다는것이 말이예요. 우에노공원에서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있겠지요?》

《<자신을 알라!> … 어떻게 잊겠소.》

《난 후회해요. 무엇때문인가구요?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후회가 오래갈것만 같아요.》

《요꼬는 언제나 리해하기 어려웠소.》

《그게 바로 저예요. 지금은 더욱 그럴거예요.》

요꼬는 오묘한 웃음을 짓고 바라보았다.

《에도의 옛성터가 기억날거요. 그날 나는 <요꼬,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이렇게 물었지.》

《그랬어요. 면상씨가 알아둘건 이 요꼬 역시 일본사람이라는거예요.》

저녁식사를 하면서 요꼬는 그사이 자기 신상에서 있은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시모노세끼에 정착한 다음 그곳에 와있는 프랑스음악가부부와 친교를 맺고 피아노수업을 계속하였다. 요꼬의 재능에 탄복한 그들은 독주가로 내세워도 되겠다고 인정되자 그를 교또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유럽인들이 갓 창설한 관현악단이 있었다. 프랑스 음악가부부는 자기들의 이름으로 개인독주회를 개최하고 요꼬의 실력을 과시했다. 유럽사람의 음악을 지향하는 악단의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입직할수 있었다. 교또의 현대음악은 일본에서도 권위를 가지고있은것으로 하여 어렵지 않게 피아노연주가의 지위를 차지한 그는 첫 해외공연으로 베를린과 윈으로 날아갔다. 요꼬의 실력은 나날이 높아져 국내에는 경쟁자가 없을만큼 인기를 독점하였다. 그러던중 고대해온 소원인 조선으로 건너올수 있은것은 두번째 해외공연에 나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차례진것이고 그 첫 공연지가 서울로 확정되였기때문이다. 10일간의 서울체류가 끝나면 중국의 관내를 거쳐 인디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고 말한 요꼬는 제 자랑만 늘어놓아 미안하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네다를 만나보셨어요?》

아마도 요꼬는 이 말을 제일먼저 묻고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리면상은 고개만 가로저었다. 백운남이 찾아왔댔다는 소리는 입에 올리기도 싫었다. 그러는 심중이 리해되는지 요꼬는 더 묻지 않았다.

강무현이 소식을 알고 매일과 같이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고 들볶아댄다는 말을 듣고나서 요꼬는 한순간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어색한 웃음으로 바꾸며 말하였다.

《무현씨는 사내예요. 이 요꼬가 조선사람을 알게 된 사나이라 할지…》

리면상이 자그마한 음식점에서 요꼬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을 때 가네다는 연회장에서 펼쳐놓은 춤판을 바라보며 즐겨마시는 위스키를 잔에 담아들고 음악과 녀자들의 육체미에 도취되여있었다. 방금전에 터뜨린 탕고춤의 열광이 온몸에 살아서 그 어떤 욕망을 부르고있었다. 참으로 흥분을 누를수 없게 하는 춤가락이다. 아르헨띠나의 보까라는 크지 않은 항구에서 시작되였다는 무용이다. 바다속으로 태양이 잠겨드는 밤이 오면 삶의 욕망을 누를길 없는 선원들이 고독한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보려고 슬픔과 애수를 안고 몸부림친것이 오늘날 탕고춤의 한갈래라고 한다. 느리고 빠르게 망망대해의 심연을 들부시는 파도와 같은 광란, 무의식과 관조의 세계를 추구하며 급격히 변하는 격정적인 리듬, 예상할수 없는 박절에 따르는 미칠듯 한 춤가락에 넋과 몸을 맡겨버리는 률동에는 창파우에 던진 인생과 향수를 이겨내기 위한 선원들의 눈물이 흐르는것이다.

위스키에 취기오른 뿌연 눈으로 무도장을 바라보며 가네다는 자기의 계획이 실패한것으로 하여 은근히 독을 쓰고있었다. 초청한 인물들은 나타나지 않아 어중이떠중이들의 먹자판, 춤판이 되고말았다. 애초 만사가 쉽게 되리라고 여긴것이 오산이다.

출입문쪽에 나타나 어정거리는 백운남의 모습이 보이자 가네다는 접대부를 시켜 자기앞으로 그를 불렀다. 며칠사이에 잘 길들여진 이 인물은 어느새 상전의 비위를 맞출줄 알았다. 그는 리면상이 초청을 거절하고 요꼬의 연주회에 참가한 후 그와 함께 어느 한 음식점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유럽인들이 경영하는 교또의 오케스트라는 일본땅에 존재하는 작은 음악의 왕국이나 같다. 이를테면 로마의 바띠까노라고 할가. 요정같은 계집년을 어떻게 할 도리가 생각나지 않아 독을 쓰는데 백운남이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혀를 내두를만큼 잘 째인 음모의 각본을 듣는 순간 조선사람이 머리가 좋다더니 틀리는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상, 그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어렵지 않게 해냅지요. 춤을 춰도 될가요?》

가네다는 눈을 감은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무렵에 바깥출입을 하게 된 강무현은 은밀히 고화를 만났다. 애초의 계획보다는 늦어졌지만 수일내로 국경을 넘어 만주로 가야 했다. 일본경찰의 요시찰인물인것만큼 삼엄한 감시를 뚫어야 한다. 신의주까지는 고화가 동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서울에서의 탈출은 현재 고화가 맡아서 준비하고있다. 강무현에게는 주야로 감시가 붙어있어 어떤 행동도 할수 없었다.

탑골공원을 한바퀴 돈 강무현은 천천히 진옥련의 집으로 가고있다. 자리에서 일어난 후 매일아침 진행하는 산책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보다도 놈들의 감시를 알아보며 산보로정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단행할 탈출도 이 시간으로 계획되여있었던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를 진옥련이 맞아주었다. 시름으로 병들어 버린듯 한 얼굴을 대할 때면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오늘 면상씨가 오겠다고 했대요. 일선이가 알려주더군요. 일요일이기도 하고…》

어데 나가지 말라고 이르는 소리같이 들렸다. 문득 요꼬를 데리고오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강무현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래방 문이 열리더니 왕성실이 머리를 빗으며 마루에 나왔다.

점심참이 되여올무렵에 리면상이 강무현의 예감대로 요꼬와 함께 나타났다. 한창 전성기의 피아노연주가가 찾아온것으로 온 집안이 들썩거렸다. 공연관람으로 무대우의 요꼬는 보았지만 현실로는 처음 마주한 왕성실과 오일선은 환성을 올렸다. 강무현의 기쁨은 형언할수 없는것이였다.

《요꼬!…》

《무현씨, 진정 놀라게 되는군요.》

요꼬의 감탄은 류다른것이였다. 그들의 상봉을 지켜보는 사람들속에서 리면상만은 이 일본녀자의 마음속에 그만이 가질수 있는 감정이 숨겨져있다는것을 륙감적으로 느꼈다.

《나 역시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 못했소.》

《그럴거예요.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요.》

포도나무 그늘아래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아무 준비도 없은지라 진옥련은 서둘러 만든 수정과를 내왔다. 요꼬가 앉은지라 화제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진행되였다.

《나를 거치장스럽게 여기지 마세요. 오빠 집에 온 동생으로 여기세요. 그런데 내가 누구를 형님이라 불러야 하나요?》

요꼬의 질문이 왕청같아 놀란 눈길을 모았다. 오라버니 집이라고 하니 형님을 찾는것은 너무나 응당했다. 화제를 날라야 할 사람은 자기라고 여긴 리면상이 급한 대목을 넘기느라 아무나 짚어댔다.

《이런 땐 가수를 내세워야지. 령감티가 나는 남자지만 색시가 없으니… 성실이, 네가 대신해라.》

왕성실의 입에서 너무 급한 나머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얼마나 바빠맞았으면 진옥련을 바라보며 《언니가 도와줘요. 이 집 주인이 아니나요.》 하고 구원을 청했다. 그 소리에 진옥련의 얼굴은 창백해지다 못해 파릿하게 굳어지였다.

위기는 요꼬가 막았다.

《웃겨보자고 한 말이예요. 형님벌이 되는 녀자가 이 자리에 있다면 내가 참지 못했을거예요. 호호호… 그렇지요, 무현씨?》

요꼬의 눈빛은 이상하게 반짝거렸다. 모두가 그의 말만을 재미있게 듣지만 리면상은 자기 동창의 심리에 남다른것이 깔려있다는것을 느끼였다. 위기에서 구원된 때부터 마음속에 둔 남자가 강무현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이룰수 없는 사랑을 안고 사는 요꼬가 아닐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해요. 모두들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군요. 호호호… 마음들을 놓으세요. 하지만 내가 아는 무현씨는 진짜 사내고 좋은분이예요. 이것만은 나의 진심이예요.》

좌중에서 그와 가장 오래동안 교제한 리면상은 학원의 교정과 우에노공원에서 시작된 의혹이 세월을 넘어 오늘은 더욱 짙어간다는것을 다시금 느끼였다.

강무현은 요꼬가 며칠후에는 서울을 떠나 중국의 관내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자 이 기회를 자기의 행동에 유리하게 만들수 없을가 궁리하였다. 고화와 토론해야 한다.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준 요꼬는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며 떠나갔다. 왕성실과 오일선은 회사로 나가고 집에는 두사람만 남게 되였다. 진옥련도 어떤 구실을 마련해서 나갔다오려고 하였다. 어느덧 저녁해가 한강을 따라 서쪽으로 고개를 박고있었다.

강무현은 뒤뜰안 살구나무옆에 앉아서 책을 보았다. 리면상이 가져다준 홍란파의 저서 《쇼뺑과 그의 련인》이였다.

《이봐요, 전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오겠어요.》

보던 책을 덮어쥔 강무현은 가름옷차림인 진옥련을 바라보았다. 이 집에서 석달가까이 묵고있지만 오늘처럼 두사람만 있은 날은 없었다. 왕성실과 오일선이 호위병처럼 진옥련의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병자의 시중을 드는 일이 힘드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이제 준비만 되면 고마운 녀자의 곁을 간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게 될 자기였기에 어떤 촉박감을 느끼며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옥련이.》

사나이의 부름에 무엇인가 예감하고있었던지 진옥련의 어깨가 마파람의 나무잎처럼 떨었다.

《여기에 좀 앉소.》

《말씀하세요.》

가냘프게 선 진옥련은 다쳐만 놓아도 넘어질것 같은 위태로운 자세였다.

《옥련이, 옥련인 나에게 두번째 목숨을 준 사람이요.》

사나이의 큰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낮은 소리에 진옥련은 겁에 질린 사람처럼 한걸음 물러서며 온몸을 옹송그렸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난… 그저… 아버지의… 아니… 그런게 아니고…》

허둥거려대는 말속에서 아무 소리나 나오기에 진옥련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강무현은 그러는 그를 보며 무거운 생각에 시달렸다. 과연 누가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자기가 이들모녀에게 품었던 불만은 얼마나 속된것이였던가. 철없이 동정하였다가 후날 그 무엇을 바란것이 얼마나 속된짓이였는가. 무엇인가 알고보니 마음은 그지없이 처량하고 용서를 빌고싶을뿐이다. 이 녀자에게 얼마나 험하게 굴었던가. 이제 리별의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난다면 두번다시 가슴에 아픔을 남겨놓게 될것이다. 마침내 결심한 강무현은 힘겹게 말하였다.

《만일 내가… 어데론가 간다면… 옥련일 기다리는 사람으로 생각해도 되겠소?》

일진광풍에 휩쓸린 진옥련은 두손을 모아쥔채 날려가지 않으려고 비칠거렸다. 이 남자한테서 이런 고백을 들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적 없었다. 바란다면 자기와 아버지를 죽는 날까지 원망하는 일만 없었으면 하는것뿐이다.

《대답해주오, 긴말없이…》

《전 녀자가 아니예요. …》

진옥련은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강무현의 마음도 찢어지는 아픔을 안은채 고통을 이겨가고있었다.

《세상엔 별일이 다 있소. 나도 이제야 알게 되오. 기다려주겠소?》

《전 깨끗한 몸이 아니예요. …》

《옥에도 티가 있소.》

진옥련은 섰던 자리에서 뒤로 밀려가며 하소하였다.

《옥은 돌이지만 녀자는 사람입니다. …》

강무현은 참을수 없는 흥분을 안고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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