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1

 

《들국화》는 찬서리를 맞았지만 리면상이 새로 창작한 가요 《꽃을 잡고》는 성공의 파문을 일으켰다. 수많은 작곡가들과 가수들이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바라고바란 소원이 성취되였지만 리면상의 마음 한구석은 쓸쓸하고 울적하였다.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에게 알릴수 없었던것이다.

아침상을 물리고나니 어머니가 여느때없이 불러앉히고나서 한숨을 앞세우며 원산에 반가운 소식을 알려야 하지 않는가고 조심스럽게 말하여 류진과 류연이를 끓게 만들었다. 연이는 손벽을 치며 우리가 왜 그 생각을 못했는가고, 당장 전보를 쳐야 한다고 했고 류진은 나이든 총각행세를 하며 동생을 나무리고나서 눈치를 살폈지만 그도 속은 여간만 조급해하지 않는게 헨둥하였다.

《이 사람, 내 보기엔 그 처녀가 기다릴것 같아서 그러네.》

자식의 속마음은 어머니가 안다는 말이 있다. 친혈육이 아니건만 아들같이 여기며 마음을 써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연이가 누가 왔는지 인사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옥련이였다. 그는 레코드회사의 전속가수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이 아침 그가 안고 온 소식은 놀라운것이였다. 강무현이 대구에서 운송회사 로동자들의 파업을 지도하고 일본경찰에 체포되였는데 고문으로 페인이다싶이 되여 나왔다고 한다. 그곳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갔다 만나보기까지 하고왔다니 의문을 가질것조차 없었다.

《어이구나? 그 사람 성미가 불같아 걱정했더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최근에는 좋은 일로 걱정했는데 닥쳐든 불상사로 가슴을 두드리는 어머니에게 대구에 내려갔다 오겠다는 말만 하고나서 리면상은 황황히 집을 나섰다.

대구역을 나선 리면상은 진옥련이 이끄는대로 따라걸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자기의 마음을 내비치기 주저하며 진옥련은 소리를 죽여 한숨을 내쉬였다.

《그인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병이 위중해요. 약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치료는 거의나 받지 못하고있는것 같아요. 여기에 놔두면…》

어떤 방도가 있어서 따라나선것이 아니였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미인 강무현이 잘못될가봐 늘 걱정이던지라 허둥지둥 예까지 왔던것이다.

고개를 수그린 진옥련은 자신없는 어조로 심중의 문을 열어보였다. 대구에서 만난 강무현은 이전처럼 매정스럽게 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 데려오면 집도 있고 용한 의사도 불러 치료를 받을수 있어요. 집말인가요? … 우리 집에서… 안되겠어요?》

리면상은 오늘까지도 자기 마음속에 의문으로 남아있는 두사람의 사연이 어떤 인연같이 느껴졌지만 더이상 묻지 않았다.

《고맙소.》

《뜻대로 되기는 힘들거예요. 성미를 잘 알지 않나요. 먼저 서울로 옮겨놓고 그다음… 아마 면상씨가 노력해야 할가봐요. 그렇지요?》

강무현은 도시변두리에 자리잡은 농가에 들어있었다. 주인내외는 두사람이 나타나자 무등 반가와하였다. 생활이 어려워 치료는 거의나 받지 못하고있었다. 병자의 상태는 진옥련이 말한 그대로 생사기로에서 헤매였다.

《서울로 가자구, 내 말대로 해야 하네. 옥련씨가 오지 않았나. 거처는 있으니 치료만 받으면 되네.》

예견한대로 병자는 고집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은 누구도 알수 없는것이다. 왜놈경찰들이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내보낸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무슨 냄새를 맡은게 분명했지만 입을 열지 못했고 단서를 잡을수 없어 두고보기로 한것이다. 어데 가든 감시속에서 살아야 하고 그런 까닭에 돌봐주는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을수 있었다.

《저의 집에 들기가 싫어서 하는 말이지만 다시 생각해보세요. 대범하기를 바래요.》

진옥련의 그 말에 강무현은 자기 심정을 털어놓을수 없어 꺼져내리는 한숨을 내쉬였다.

《자네를 여기에 두고는 못 가네. 지금 형편에선 내 말을 들어야지.》

《아, 이채로 죽기엔 너무도 원통해. 봄이 왔는데… 먼길을 갔다와야 할 몸이건만… 사나이로서 해야 할 일을 알았을 때 이 모양이 되였으니…》

《그래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거네. 지금껏 살면서 비관을 모른 자네가 아닌가. 힘을 내라구.》

《살아야지, 맥없이 죽을수는 없어. …》

진옥련이 어렵게 여긴 일이지만 강무현은 서울에 왔으며 거처도 그의 집에 잡았다. 그 시각부터 성실한 간호부가 된 진옥련은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리면상은 류진네 오누이를 데리고 탑골쪽에 자리잡은 진옥련의 집으로 가고있다. 어머니가 만든 순두부그릇을 인 연이는 한손으로 리면상의 팔을 끼고 걸었다.

진옥련의 집 대문을 넘어서니 기다린듯 두 처녀가 마주 나왔다. 오일선과 왕성실이였다. 성악계에 별처럼 등장한 민요가수들이다. 20대에도 채 이르지 못한 그들이지만 품성이 바르고 재능이 뛰여나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있었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하? 어떻게 둘 다 여기에 있나?》

《선생님도 참, 저희들이 이 집에서 살고있는걸 모르셨습니까?》

성격이 활달한 왕성실은 되물으며 눈을 크게 떠보였다. 진옥련이 혼자 사는 집이고보면 짐작이 갔다. 오일선은 연이가 이고 온 그릇을 받아내리고는 그윽한 눈으로 쓸어만져보듯 하며 말했다.

《아이, 곱게도 생겼네.》

시내물처럼 맑게 흐르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류진은 슬며시 곁눈질했다. 자기와 동갑나이라는데 노래를 잘 불러 이름을 날리고있다. 음악을 꿈꾸는 이 젊은 가슴에서는 누를길 없는 이상한 감정이 솟구치고있었다.

어느새 순두부를 덥힌 진옥련이 연이를 손짓으로 불렀다. 리면상은 연이를 앞세우고 방안에 들어갔다. 웃방에 강무현이 누워있었다. 집에 들던 날 진옥련이 부탁하기에 만들어준 침상의 베개에 파묻힌 강무현은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짓고 맞아주었다.

《어서 오게. 바쁜 걸음을 하는건 아닌가?》

《어머님이 순두부를 앗아서 들리우며 어서 가보라고 독촉해서 쫓기우는 걸음으로 온다네.》

《하? 내 어머니사랑 다시 찾은가보네그려. 어머니도 참…》

김이 몰몰 솟는 대접을 든 연이가 들어와 침상에 모로 앉으며 인사했다.

《무현오빠.》

연이의 얼굴을 강무현은 허둥거리는 눈길로 부둥켜안았다. 그 거동에 리면상은 목이 꽉 메여올라 머리를 숙이였다. 이국만리 거친 땅에 사랑하는 녀동생을 묻고 온 강무현이다.

《순두부를 잡숴야 한대요. 오빠같이 옥고를 치른분들이 어혈과 부종을 푸는데 제일 좋다고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연이가 순두부를 떠든 숟가락을 홀홀 불며 말하자 강무현은 여윈 울대뼈를 실룩이며 말했다.

《말씀드려주렴, 어머님께. 병 털구 일어나 꼭 자식구실을 하겠단다고…》

《네, 어서 드세요. 따갑지 않아요. 그저 삼켜요. 입이 그냥 쓰겁지요? 잡숴야 해요. 원기가 회복되면 입맛이 살아나고 식욕이 커지면 병은 낫는거예요. 말씀하세요, 뭘 잡숫고싶은지. 어머니가 알아오라고 하셨어요.》

방안에 들어와 앉은 사람들은 연이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너무도 어른스러웠던것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병자를 식사시키기가 제일 어려웠는데 강무현이 눈앞에서 순두부 한대접을 다 내는것이다. 긴장한 눈길로 지켜보던 진옥련은 빈그릇이 나지자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왕성실이 무릎걸음으로 나앉으며 투정을 해댔다.

《오라버니요, 너무하군요. 이 성실이가 떠줄 땐 눈을 감고 쳐다도 안 보더니… 연이와 너무나 낯가름하지 않나요?》

강무현이 얼굴을 돌리고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웃었다. 웃는 눈귀로 축축한것이 흘렀다.

《그저 고맙다는 말밖엔 할 소리가 없는 나요.》

그의 눈길이 사람들을 더듬어가다 진옥련에게 가서 멎었다. 문지방너머 오일선과 왕성실의 등뒤에 앉은 진옥련은 고개를 숙인채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의 공간을 헤치며 두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으나 그것은 독백일뿐 대화가 아니였다.

왕성실과 오일선에게 병자를 부탁한 진옥련은 저자보러 리면상을 따라나섰다. 두사람이 언덕길을 내려와 걸음을 옮기는데 그들앞을 경찰이 막아섰다.

《어이, 서라!》

경찰모자를 푹 눌러써서 온 얼굴에 칼날같은 눈빛만 번쩍거리였다.

《무슨 일이요?》

리면상이 물었지만 경찰은 진옥련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등까지 벗겨낼듯이 훑어보고나서 씹어물었다.

《네 이름이 진옥련인가?》

《그래요.》

《집에 누구를 들였는가?》

단도직입으로 묻는게 자못 엄엄하고 사나웠다. 진옥련의 몸가짐은 태연하였다.

《혼자 살기에 잘 아는 녀자가수 두명을 하숙시키고있어요.》

《누가 그걸 묻는가? 바른대로 말하라. 사내는 웬 놈인가?》

일본경찰이 냄새를 맡는데는 귀신이였다. 강무현이 든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리면상의 마음은 자못 불안해났다. 대구에서 회보가 온 모양이였다. 불온인물들은 행선지 경찰기관에 알려 반드시 알아보는것이다.

《대구에서 데려왔어요, 병이 너무 위급해서. 잘못됐는가요?》

《요시찰대상과 무슨 관계인가?》

두다리를 쩍 벌리고 선 놈은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리면상은 진옥련으로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때문에 가슴을 조이며 걱정하였다. 변명이나 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친척이라고 하자니 담당관내의 파출소에서 나온 놈이 분명할진대 호적대장을 확인했을것은 뻔했다.

《이전부터 잘 아는 사람이예요. 이를테면… 남편이… 될분이라 그 말이예요. …》

《그러니 후남편감이라… 그 말인가?》

진옥련이 리혼한 녀자라는것도 다 알고있었다.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좋다. 오늘로 파출소에 오라. 알았는가?》

《그러죠.》

경찰은 얇은 입술을 다문채 랭소를 뿜고는 가버렸다.

선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진옥련이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오늘 있은 일은 둘만 알았으면 해요. 저로선 달리 대답할수가 없었어요.》

 

일개 악단의 지휘자에 불과한 가네다가 총독의 접견을 받았으며 만찬회에 초대된다는것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한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치구조가 권력과 재력으로 이루어졌기때문이다. 제국주의일본의 야성은 바로 이와 같은 골반속의 태아이며 날 때부터 칼부림을 하는 까닭도 그 힘의 지배자가 되려는 탐욕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서울에 도착한 가네다는 제일먼저 총독부에 들려 처가켠의 대신과 장군이 보내는 개인서신과 자기가 마련해가지고 온 선물을 총독에게 전달해줄것을 부탁했다. 악단의 지휘자에 불과한 그의 당당하며 세련된 외교적수완이 즉시반응을 일으켰다. 가네다기업이 신흥군수독점체로 일본정계와 군부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있다는 사실, 처가의 족속들이 입각하여 대신자리를 차지하고 영향력을 넓혀가고있는것을 잘 아는 총독은 매우 친절하게 그를 맞아주었다. 조선에서는 제왕으로 자처하지만 명줄을 쥔 사람들은 도꾜에 있었던것이다.

돈이 남아돌아가는 가네다여서 서울의 제일 좋은 호텔방을 예약하고 왔기에 침식은 만족하였다. 정원산보를 하고 들어온 그는 조선에서 발행되는 일본신문들을 흥심없이 이것저것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자기 악단의 조선공연을 입을 모아 소개하고있다. 언론의 비수를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정객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기막힌 과찬과 아부가 넘쳐나서 보기가 역겨웠던것이다. 한옆에 밀려나있는 조선신문의 태도가 어떤가 하여 들여다보았다. 상품광고만 한 지면을 주고 언제 어데서 일본악단이 공연을 한다거나 하였다고 알리는 말에 불과하다.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가네다는 입안소리로 불쾌감을 중얼거렸다. 시계추가 뚜걱걸음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해서 둔탁한 종이 울린다. 오후 4시를 알려주었다. 이름을 백운남이라고 하였던가. 어떻게 생겨먹은 작자일가. 예술을 한다는 인간이 도박군이라면 쓸모없는 물건이나 다름없다는 소린데. 리면상이 작곡가로 당당한 자리를 차지했단 말이지. 스승이 왔는데 찾아와 인사할줄도 모르니 무례하지 않은가. 아니다. 그녀석은 례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식민지민족의 굴욕을 감수할수 없다는것이다. 가냘픈 선률이야. 반항아닌 반항, 그걸 모르거던. 리면상 같은 음악인을 돌려세우면 그보다 큰 리득이 어데 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급작스레 울화가 치받쳐올랐다. 오래전에 품을 들인 일이 성사되였더라면 지금 와서 이런 궁리나 하고있겠는가. 망할 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던 가네다의 시선이 차탁우에 놓인 사진광고에 멎었다. 요꼬가 피아노연주를 하는 열광에 넘친 모습이다. 마치도 날 좀 보소 하는 매력있는 저 자세야말로 나를 비웃는게 아닌가. 운명이란 이런것인가. 저년은 교또음악의 별이 되였다.

우연한 일치인지 몰라도 후지무라 요꼬가 서울방문의 길에 오른것이다. 가네다처럼 요란한 행각은 아니지만 교또에 있는 유럽예술단의 명칭을 가지고 나타난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었으며 서울에서 몇차례의 연주회를 열었는데 인기도 비교적 높았다. 리면상을 빼돌리고 꼬리가 잡혔을 때 사제관계를 뒤집으며 경쟁자로 나설테니 두고보라고 하던 말이 현실로 되게 한 요꼬였다.

《괘씸한 년같으니…》

호텔안내원이 들어와 찾은 손님이 왔다고 알려주어서야 마음을 진정한 가네다는 호기심어린 눈길을 문쪽으로 보냈다. 백운남이라는 초면의 인물이 흥미를 끌었던것이다. 도박군을 감옥에서 살려내여 친구로 삼자는 판이니 어차피 편역도 들게 되여 아량을 가지고 나타나기를 응시하던 가네다는 백운남을 보는 순간 기막힌 랑패감을 느꼈다.

사람이 우로부터 아래까지 이렇게 잘 마를수도 있는가. 멋을 부려 차려입었다지만 바지저고리가 옷걸개에 걸려있는것만 같다.

《가네다 산조라고 하오.》

선자리에서 손을 내밀자 어질거릴것 같던 방문객이 어느새 다가와 재빨리 맞잡으며 대답했다.

《백운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여윈 몸에 비하면 괜찮게 굵직한 소리를 냈다.

《앉으시오.》

례절있게 인사를 차린 백운남은 자리를 잡으며 일본사람의 표정을 기민하게 살피였다. 이것이 뜻밖의 횡재인가, 아니면 불길한 조짐인가. 몇달동안 감옥에서 갖은 신고를 당했다. 일본의 감옥관리란 식민지민족을 노예나 다름없이 취급하였다. 한해를 지탱하기는커녕 반년전에 저승길을 가는가 하였다. 며칠전에 병보석으로 풀려나왔다. 영문을 알수 없는 혜택에 감지덕지하여 집에서 안정하면서 섭생을 바로하였더니 숨길이 돌아서고 기운이 살아났다. 일본사람 누군가 나서서 도와준것 같은데 짐작이 가지 않아 인사차림도 안하며 차일피일 오늘까지 미루면서 낌새만 보았다. 먼저 찾아오거나 만나자는 인물일거라고 판단했던것이다. 공연한 헛걸음에 돈만 잃을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면부지의 인간과 마주했으니 입건사를 바로해야 하였다.

《커피를 좋아하오?》

가네다가 차탁우에 커피잔을 놓아주며 물었다.

《예? 예예.》

백운남은 내심 긴장되여있으면서도 본능적으로 타산이 밝은 저울질을 하고있었다. 이놈의 섬종자들은 간특해. 십년을 섬겨도 하루아침에 차던지는 족속들이니까.

커피잔에 입술을 대던 가네다가 고개를 돌렸다.

《백상, 나도 예술가요.》

《하? 그런가요?》

백운남은 대수롭지 않은 상대와 마주했다는 안도감으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자기같이 소리나 지르고 풍각을 울려 살아가는 사람이 무슨 돈이 많아서 한다하는 일본인들도 쳐다보지 못하는 이 호텔에 들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살같이 날자 헝클어뜨리려던 몸가짐을 제꺽 바로잡았다.

《예술, 음악은 숭고하고 신성한것이요. …》

천천히 말머리를 뗀 가네다가 열기를 뿜어대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두다리로 걷기 시작한것이 사람에로의 진화라면 노래 다시말하여 음악을 가지면서 정신적인 진보를 이룩했다고 할수 있다. 인간이 노래를 알고 부르면서부터 문화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사원과 성당에 가보라. 신을 찬미하는 노래가 없었다면 숭배의 엄숙을 마련할수 있었겠는가. 노래가 있었기에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우상들이 보다 신비한것으로 되는것이다. 음악으로 인간은 고상해지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한다. 음악은 인종의 우렬도 가르게 하며 변변한 음악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어차피 망하는것이다. 조선사람들이 그렇다. 일본의 문화, 일본의 우월한 음악을 섭취하여 문명을 이룩해야 한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자 야마또민족이 반도인들에게 안겨주는 최상의 은총인것이다. …

가네다의 궤변적인 음악강의에 백운남은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예술을 한다는 당신이 도박쟁이가 된것도 내가 말하듯 인간타락이며 조선사람이 몽매하다는 증거요. 리해가 가는가?》

커피대접을 받으면서 당하는 모욕이여서 그 수치가 더 컸다. 이놈이로구나. 나를 무슨 일에 부려먹자고 구정물을 들씌우며 멱을 틀어쥐는것인가. 어떤 부림을 당할지 모른다. 그는 속으로 별의별 궁리를 다해가며 점을 쳐보았다.

《나는 당신이 대세를 옳게 보고 리성을 되찾기를 바라오.》

《지당한 고견입니다.》

별로 생각도 하지 않으며 되는대로 대답해치운 백운남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가네다는 륙감적으로 이놈도 조선사람이다 하는 결론을 내리며 어떻게 주물러야 반죽을 잘하겠는가를 궁리하였다. 데라우찌라면 두드려 맛을 내겠지만 자기의 방식은 달라야 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곳이 감옥이요. 한마디로 산자에게 차례지는 지옥이라는거요. 몸으로 느꼈을테니 말을 해보시오.》

자비를 베푼자의 혹독한 요구가 시작되였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을 이렇게 만날줄이야… 보답하리다.》

감옥문으로 다시 들어가는것 같아 여윈 어깨를 솟군 백운남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이것은 숙명이다. 주인과 노예사이에 평등이란 바랄수 없는것이 아닌가. 가네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공포야말로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는 심리이다. 두들기기 전에 저절로 마르게 하여 맛을 보았더라면 데라우찌의 말이 달라졌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화제를 돌리였다.

《리면상을 아는가?》

예견치 못한 질문으로 백운남은 어정쩡하니 고개만 주억거렸다.

《내가 가르친 제자요. 잘 있는지?》

지어낸 경배의 감정우에 놀라움까지 개올리며 백운남은 대답했다.

《스승이였군요! … 그는 서울음악에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입니다.》

《혜성이라… 너무 요란하구만. 나는 일찌기 그의 재능을 안 사람이요. 그러나… 어떤 음악을 하는가 하는것인데… 그의 동향을 의심하게 된단 말이요.》

백운남은 가슴속에서 시기와 반목이 부글거리며 괴여오르자 있는 말재간을 다하여 헐뜯어댔다.

리면상은 우선 배일사상을 가진자로서 소위 민족음악을 선전하며 돌아친다.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자라나는것이 문제다. 금곡처분을 받은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여전히 색갈이 모호한 노래를 짓고있다. 인간개체도 불순하다. …

끝이 없을상싶은 이야기를 듣고있던 가네다가 입을 열었다.

《백상, 우리는 다같이 음악의 지우들이요. 친목을 두터이 하는것이 중요하오. 내 부탁을 들어주겠소?》

백운남은 혀를 깨물었다. 일본사람의 속심을 잘못 타산했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무엇이든…》

《나는 이번 기회에 반도 문예인들을 만나보려고 하오. 어떻소?》

《황송합니다.》

《례의를 중히 여길뿐이요. 래일 우리 악단의 공연과 연회에 리면상 그리고 이 사람들을 초청하는바요.》

가네다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명단을 내주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을지로에 있는 오케레코드회사 설립자부부가 운영하는 《쌀롱》에 서울의 문예인들이 많이 모여 음악에 대한 론의를 자주 벌리였다.

요즘 여기서는 일본악단과 피아노연주가의 서울공연에 대하여 각이한 의견들이 엇갈리고있었다. 일본음악계와 교류는 불가피하다, 현대음악에서는 일본이 앞섰다는것을 인정해야 하며 배울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새롭게 머리를 들고 나타난것이 주목되는가 하면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완고하였다. 음악은 절대로 수혈해서는 안되며 그것은 민족의 감정정서까지 매도하는 행위라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기회에 우리의 음악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상호관계를 가지자는 의견인데 절충을 들고나오는 립장이였다.

이런 자리에 앉으면 리면상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였다. 누구보다 그의 심중은 착잡하였다. 일본악단의 지휘자는 이러나저러나 자기를 배워준 가네다이기때문이다. 찾아가서 인사라도 하는것이 례의겠지만 마음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았다. 참으로 공교롭다고 해야 할 우연한 일치인 후지무라 요꼬의 조선체류가 섞여있어 처신하기 힘들었던것이다. 몇달동안 치료를 받아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극장출입은 할 형편이 못되는 강무현이 요꼬의 소식을 듣고 그와 만나게 해달라고 야단이다. 이 서울에서 리면상이 일본음악가들을 만난다는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는 일이다. 만난다면 어떤 랑설이 떠돌지 알수 없는노릇이였다.

《쌀롱》을 나선 리면상이 생각에 잠겨 걷고있는데 난데없는 사람이 길을 막아섰다. 백운남이였다. 가슴 한복판이 허물어져내리는것 같은 놀라움으로 굳어진 그는 마주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찌된 일인가. 감옥살이를 한다던 인간이 앞에 섰으니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백운남은 제편에서 반갑다고 웃으며 말하였다.

《나요. 운남! 흐흐, 좋은 소식을 가지고왔으니 한잔 내는게 도리가 아닐가?》

《참으로 오랜만이요.》

《아무렴, 나로 말하면 저승길도 되돌리는 재주를 가졌다네.》

《나야말로 길이 바쁜 사람인데요.》

한시라도 배암같은 사람에게서 벗어나려고 서둘렀다.

《스승되는 사람의 인사야 받아야겠지?》

칭칭 감겨도는데 물리칠 방법이 없어 리면상은 한숨만 내쉬였다.

《무슨 소린지 난 통 영문을 모르겠군요.》

《세상에 모를 일이 어디 한두가지요. 하, 이 백운남이라는 사람도 그렇지 않소. … 가네다선생이 공연과 연회에 자네를 초청했소.》

가네다가 초청을 한다는건 무슨 소린가. 금시 마음이 무거워난 리면상은 힘들게 대답했다.

《우린 이미 절교한 사이요.》

《래일 저녁이니 잊지 말게나. 좋은 기회지.》

석양빛에 잠긴 리면상은 움직일줄 몰랐다. 시모노세끼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가네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도땅에 음악이 있는가, 조선사람은 일본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었었다. 그런 인간을 스승이라고 찾아가 만난다면 단순한 례의로만 될수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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