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전쟁은 이 땅에 가혹한 참화를 안겼지만 그 전쟁을 이겨낸 인민은 자기 힘을 가늠할줄 아는 용기와 담력, 슬기를 지니게 되였다. 복구건설의 노래를 부르며 수도 평양은 재더미를 털고 일떠섰고 천리마의 발구름소리와 함께 영웅도시의 자랑스러운 면모를 빛내여갔다.

기적은 이 나라에서 매일 매 순간 보게 되는 현실이자 누구나 창조할수 있는 평범한 생활이였다. 남들 같았으면 전쟁의 피해로 하여 기아와 병마로 시달렸으련만 인민이 사는 거리와 일터에서는 삶의 희열이 약동했으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은 날마다 찾아들었다. 나라의 경제장성속도는 1960년대 중엽에 아시아나라들에서 앞선 자리를 차지하였을뿐만아니라 공업의 장성지표는 세계를 놀래웠다. 아이들은 무료교육의 혜택속에 무상공급하는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갔고 로동자, 사무원들은 유급휴가를 받으며 좋은 계절에 명승지마다에 자리잡은 휴양소와 정양소에서 휴식과 치료의 나날을 보내고있다.

평양의 저녁풍경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방불케 하였다. 극장과 영화관들에서 설레이는 젊은 가슴들과 모란봉기슭에 새로 마련한 공원에서 물결치는 청춘들의 륜무는 희망찬 래일을 불러오는 랑만에 넘친 화폭이였다. 로동이 노래로, 기쁨으로 된 생활은 귀천이 없는 직업과 안정된 물가와 무엇이나 요구되면 살수 있는 상품의 충족으로 정신도덕적만족을 주었다.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불사르라!》는 구호앞에서 사람들은 성실한 로동의 구슬땀을 흘렸으며 거리들에는 밝은 미소, 즐거운 웃음이 차넘쳤다. 로동의 하루를 거품이는 시원한 맥주가 흥겹게 하여주는가 하면 석양비낀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대동강숭어국의 구수한 냄새가 풍겼고 옥류관의 이름난 평양랭면을 맛본 사람들이 유보도를 따라 저녁산책을 하였다. 랑비를 자랑하는 만족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로동의 대가로 응당하게 누릴수 있는 생활을 가졌기에 더없이 만족한것이였다.

새로 형상한 민족가극 《춘향전》이 매일저녁 초만원속에 공연되고있었다. 리면상은 가극의 창조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며 시연회도 참가하였지만 관중의 의견을 듣기 위해 조용히 혼자 극장을 찾았다. 관람표도 줄을 서서 뗐으며 극장관리일군들의 눈을 피하여 자리를 잡았다. 그의 옆좌석에 앉은 젊은이들은 무대막이 오르기 전부터 흥분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중에서 창극 《춘향전》을 여러번 본 청년이 쐑소리를 눌러가며 《때는 어느때뇨. 록음방초 승화시라… 얘 방자야, 광한루로 어서 가자. …》 하고 대화창의 한 대목을 흉내피워 처녀들을 웃기였다.

막이 오르며 광한루의 봄장면이 펼쳐지고 부용당의 달밤이 가극의 정서를 고조시키자 관객은 민요에 바탕을 둔 음악과 노래에 심취되여 춘향의 눈물겨운 사랑을 새로운 시각과 감정으로 받아들이였다. 조선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구전설화에 기초한 가극이지만 흥미를 느끼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리면상의 옆자리에서 처녀의 숨죽인 소리가 들려왔다.

《동무처럼 꺽꺽거리는 노래는 없군요.》

《그건 창극에서 부른 노래라구.》

《노래야 노래겠지요 뭐.》

《발전해야지. 꺽꺽인 낡았거던.》

《호호…》

자기의 녀동무를 나무린 청년이 리면상에게 낯을 돌리며 미안한지 어색하게 물었다.

《아바이, 그렇지요?》

리면상이 시뭇이 웃자 청년은 처녀에게 속삭였다.

《늙은이들은 모를수 있지, 낡았다는걸.》

《동문 언제 보나 경솔해요. 그분이 작곡가면 어떻게 하겠어요?》

기막힌 판단에 놀란 청년은 슬며시 곁눈질을 하고나서 《놀래우자구? 작곡가선생님이 우리와 나란히 앉아있을수 있는가.》 하고 자신을 위안했다.

리면상은 자못 즐거워져 《이 사람아, 자네는 소년단넥타이를 맨 그때부터 나한테 인사를 했어야지. <소년단행진곡>을 내가 지었거던. 부디 행주치마속에 들지 말게. 그러면 야단인걸. 사내꼴이 뭐가 되겠나.》고 속으로 타일렀다.

무대우에는 절개를 지킨 춘향이 리몽룡을 만나는 절정장면이 펼쳐진다. 봉건적신분제도에 항거한 두 젊은이의 사랑은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무대막이 여러번 다시 오르내리며 열광적인 박수가 장내에서 그칠줄 몰랐다.

《배우들이 노래를 잘 부르는구만.》

《이전 창극은 굿타령을 하는것 같았는데 현대감이 나게 형상했소.》

《지긋지긋한 판소리를 안 들으니 좋아요.》

《역시 우리 민요가 좋단 말이요. 맑고 유순한 소리가. …》

《음악도 천리마를 타는겁니다. 뒤떨어지면 말발굽에 채우고말테니 별수가 있소, 허허.》

관객들과 박수를 치던 리면상은 사람들이 나가기를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곁에서 함께 관람한 청년이 녀동무의 충고를 아직도 잊지 않았는지 약간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

《아바인 가지 않으시려나요?》

《같이 가자나?》

《갑시다.》

《방해가 될텐데.》

《제가 방해가 됐습니까?》

《아니요. 판소리는 언제 배웠나?》

《진짜 작곡가선생님이 아닙니까?》

리면상은 한손을 내저었다. 조용히 혼자 있고싶었던것이다. 그의 마음속으로 한줄기 바람이 흘러가고있었다. 참으로 우연히 내린 결심이지만 일반관객들과 공연을 보고나니 모르고 산것을 발견한 심정이였다. 음악심의와 시연회에 얼마나 많이 참가했는가. 그런 자리란 전문가의 술어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소다. 좋다고 통과시킨 작품들이 하나같이 대중의 호평을 받고있는가. 민족가극 《춘향전》창조과정에도 각이한 의견들이 충돌하였다. 봉건사회 량반관료의 자식과 기생딸과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인것만큼 력사적시대에 충실해야 하며 주인공들의 노래는 판소리로 불리워야 한다는 주장은 집요하였다. 낡았다는것을 인정하면서도 고집하는것이여서 밀려나기는 하였지만 완성된 가극에서도 결함은 극복되지 못하였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찍어말하기는 어렵지만 오늘 관객들의 의사를 빌면 이제야 겨우 천리마에 매달려가는 모양을 보게 되는 심정이다. 고작해서 말그대로 뒤발에 채우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유지하는 음악예술의 실태라고 해야 할것이다.

《여기 있었구만. 내 추리도 그만하면 비상하다고 해야 할거요.》

곁에 들려오는 소리에 리면상은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렴필재였다. 텅빈 관람석사이에 선 사람은 비침도가 낮은탓으로 그림자처럼 보였다.

《어떻게?》

리면상의 내키지 않아하는 태도에 렴필재는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위원장동무가 일반관객과 공연을 보았으니 대중의 반향을 충분히 들었으리라고 생각하오.》

《이를데없지.》

《가기요.》

일어나야 했다. 론문 《민족음악연구》에 대한 의견을 몇줄 안되는 글로 써서 돌려준것이 이틀전이다. 마주앉으면 긴 이야기가 될가봐 그랬다. 옛적 동창과 극장을 나선 리면상은 집이 있는 만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동강바람이 이른봄의 찬기운을 몰아왔다.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걸.》

《나쁠것도 없네.》

리면상은 내심 론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자기의 의사를 밝힌것만큼 되풀이하기가 싫었던것이다. 일단 견해를 세우면 양보를 모르는 성격이 고심어린 저술을 한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수 있었다.

《면상.》

왕년처럼 리면상의 이름을 허물없이 부른 렴필재는 긴 공간을 두었다가 물었다.

《진옥련을 기억하겠지?》

리면상은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러나? 잊을수 없는 녀자가 아닌가!》

《나한텐 잊지 못하는 녀인이 많다네.》

렴필재가 묻는 녀자가 누구인가를 확인한 리면상은 롱담으로 받아넘기려 했지만 마음은 이상야릇한 향수에 젖어들었다. 아득히 흘러간 옛시절의 노래가 들려왔던것이다. 망국의 수난기, 피눈물을 머금으며 구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속에는 녀자들이 많았다. 재능은 있었으되 소리를 팔아야 살수 있는 인생들이였다.

《진옥련이 노래를 잘 불렀지. 소리색갈이 독특했거던.》

렴필재의 목소리도 감회에 젖어울렸다. 진옥련은 음역이 넓고 부드러우면서도 거센소리를 가진 보기 드문 민요가수였다. 그가 취입한 음판의 인기는 대단했다. 판소리창법도 갖추어 못 부른 노래가 없는 당대의 명가수였건만 운명의 곡절은 류달랐다.

《새삼스럽구만. 이밤 그 녀자의 이야기를 하자는건 아닐텐데.》

《경계진을 치면서 듣는게 좋을거네. 사실 난 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자고 찾아다니다 이렇게 만났네.》

《언제 봐야 말뒤에 말이 있거던.》

《우리가 서로 호상 어떻게 리해하는가는 별문제네. 언제나 같이 살고있고 마주보지 않나. 한마디로 서로가 거울이다 이 말이네. 하지만 그 녀자는 다르거던. 어떤가?》

《역시 선률은 아니구만. 가려듣기가 힘들어. 에두르지 말구 말하게나.》

《그러지. 진옥련이 평양방문을 신청해왔네.》

놀라운 소식이 분명했다. 리해하기가 어려웠다. 아직도 노래나 부를 녀자에 불과한 인물인데 남조선당국이 어떻게 그런 요구를 허용한단 말인가. 분계선이 아이들의 줄넘기처럼 쉬운 금이라면 벌써 지워버렸을것이다. 진옥련이 자기의 의사대로 분계선을 넘어설수 있단 말인가.

렴필재는 진옥련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였다. 그 녀자는 남조선이 아니라 미국의 로스안젤스에서 살고있었다. 어떤 리유로 미국에 건너갔는가는 알수 없다. 명백한것은 해외에서 예술활동을 하고있으며 사적용무로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려고 한다는것이다. 방문기간 만나게 해줄것을 요구한 몇 안되는 사람들중에는 리면상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1945년 마가을, 북행렬차에 오른 리면상의 일행을 바래는 사람들속에는 진옥련도 있었다. 그때 그는 말했었다. 한번은 꼭 북쪽을 찾겠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고향땅을 찾아보는것이 소원이라고… 그 소원을 풀려고 이역만리에서 온단 말인가. 믿기 어렵지만 믿게 되는 녀인의 결심이라는 생각이 온넋을 한순간에 틀어잡았다. 그것은 잊을수 없는 친구와 이어진 사연에 뿌리를 둔것이였다.

의식의 광야에서 긴 다리를 놀리며 날듯이 걸어오는 사나이의 모습이 보였다. 인상깊은 주걱턱, 번쩍이는 눈빛, 한쪽어깨에 노상 둘러메고 다니던 베보퉁이, 《천지는 만물의 려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길손이라 하지 않나. 이 강무현이는 베보퉁이를 베고 눕는 자리가 집일세. 흣, 허허.》 웃는 모양도 소리도 류달랐다. 거칠고 호방한 사나이는 망국의 수난에 항거하여 나섰다가 의로운 최후를 마쳤다.

《교포사업을 담당한 부문에서 찾을거네. 신중해야 하지 않을가?》

렴필재의 우려가 리면상의 불만을 자아냈다. 자기 민족의 한사람이 제 나라를 찾아와 아는 사람들을 만나겠다는데 생각할게 뭐가 있는가. 겨레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의 수고를 헤아리고 어떻게 하면 잘 맞아들일가를 념려하는것이 옳을것이다.

렴필재는 자기의 심중을 조심스럽게 내비치였다. 사람이란 어떤 운명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 의심해서라기보다 조심해야 하며 리면상의 경우 조선음악가동맹 위원장이라는것을 알고 처신하는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겨들으면 친우만이 줄수 있는 권고라고 할수 있었다.

《아니, 난 만나겠네. 개인자격이라는것도 있지 않나. 불원천리하고 찾아와 만나자는데 피할수야 없지 않은가.》

《결심대로 하게. 그러나 이 세상에 후회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는것을 잊지 않는게 좋아.》

《난 후회를 안해.》

《오선지우에 기염을 쏟아놓는 즉흥이 고질이 됐거던.》

《그런 기질도 없으면 숙맥이게, 흥. 휘휘? 휘?》

리면상은 습관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것은 정서에 파동이 일 때 생겨나는 버릇이였는데 한손으로 장단을 치는 행동을 동반했다. 때없이 이런 모양을 하는 그를 경망스럽다고 나무리던 렴필재인지라 지금도 화가 나는것을 겨우 참았다. 생활과 선률이 혼탁된 무절제라고 탓해오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임의의 장소에서도 음악의 새 선률이 떠오르면 진행하던 모든것을 다 줴버리고 자기의 흥분속으로 잠겨버리는 리면상이였다.

렴필재는 진옥련의 조국방문문제로 리면상과 의견불일치를 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지금같은 태도로 나오리라는것을 예견 못한것은 아니다. 그러니 대화의 첫 문제만 제시한셈이다. 다음은 자기의 론문에 대한 견해를 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휘파람소리가 기분을 잡쳐놓았다.

《다시 형상한 민족가극이 새롭던가?》

렴필재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관객의 반향을 묻는거겠지?》

《아니, 리론상의 문제를 놓고 하는 질문이요.》

《그야 부상동무와 같은 리론가들이 이제 분석하겠지.》

《조선음악을 책임지고있는 위원장동무의 의견을 듣고싶소.》

《되겐 비트네그려. 우리에게 얼마나 재능있는 음악가들이 많다고 그런 소리를 하나.》

《그렇게도 요란하게 주장을 하면서 형상했지만 위원장동무가 제일 싫어하는 대화창은 남아있지 않소.》

민족가극 《춘향전》창조과정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렴필재는 가극의 기본형상수단인 노래의 바탕을 두고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는 예술은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하면서 종전의 창극처럼 판소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에 동조하여 여러 예술가들이 민족가극인것만큼 력사주의적원칙을 지키자고 호응했다. 대다수는 판소리창법으로 노래를 불러온 사람들이였으며 완고하기 이를데없는 창작가들이였다. 하나의 가극을 놓고 두 진영이 대결하는것과 같았다.

한편에서는 복고주의라고 타매하지만 다른편에서는 그들대로 민족음악의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면서 새것을 론하는 사람들에게 양풍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엄숙히 경고했다.

리면상은 이전의 창극을 재현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절감하지만 민요형식에 바탕을 둔 가극을 창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리론적주장을 피력할 능력도 부족하였다. 그가 믿는것은 새로운 가극창조에 나선 창작가, 예술인집단이였다.

《위원장동무, 명백한 견해를 세워야 하오. 예술가로서 량심을 가지고 말이요.》

렴필재는 이렇게 말하며 최소한 리면상의 침묵을 바랬었다.

《내 생각은 이렇소. 가극창조집단에 맡깁시다. 완성된 다음 군중심사를 받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고 보오.》

렴필재는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오늘처럼 할 말을 찾기 힘들어본적은 없었소.》

그 렴필재가 오늘은 가극의 결함을 정확히 포착하고 묻는것이였다.

《새것이 하루에 이루어질수야 없지 않은가.》

리면상은 자기의 목소리가 자신없이 울리는것을 느끼였다. 결코 잘못 본 의견이 아니였던것이다. 누구라구, 렴필재일진대. 그렇다. 대화창은 없애지 못한 진부한 형상의 근원이다. 개량한 민족악기들의 울림이지만 여전히 허전하다. 가극이라는 음악극의 구조에 대하여 나는 너무도 모른다.

《바로 그거요. 민족음악의 형성과정을 깊이 분석해보지 않고서는 속단하게도 되오. 낡았다고 보기 전에 그속에 내재한 민족고유의 소리를 가려내야 하며 그렇게 될 때 계승에 대한 리해를 옳게 할수 있소. 이런것을 두고 론리라고 한단 말이요.》

《론문변론을 하자는거요?》

《위원장동문 이미 반대하지 않았소.》

《무슨 말인지. 난 개인의 의견을 제기했을뿐이요. 론문심사를 하는 전문기관이 있다는거야 알텐데.》

《여하튼, 나의 론문은 두고봅시다. 그러나 유감스러운건 위원장동무의 태도요.》

리면상은 가로등불빛아래에 선 렴필재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마음은 이상한 동요를 일으키고있었다. 내가 무정했는가. 리론분야는 잘 모른다지만 마주앉아 생각되는것을 이야기해주었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이상한것은 그와 같은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는것이다. 사람가림을 싫어하는 자기지만 최근에 와서 렴필재와는 왜서인지 가까이하고싶지 않았다. 마음속깊이에 자리잡고있는 거부감은 드러낼수 없는것이였다. 지금은 그 감정이 흔들리고있었다.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양보할줄 모른다면 그 고집은 편벽한것으로서 사람들의 호상관계에서 실패를 초래할것이다. 내가 매정한 인간인가.

자신을 돌이켜보는 리면상과 달리 렴필재의 사색은 보다 깊은 곳에서 흐르고있었다. 우리 두사람의 음악리상은 다르다. 그것이 명백해졌다는것을 이번 가극창조과정에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하지 않는가. 나의 음악작품들과 주장이 지금과 같이 무시된다면 나는 나의 존재를 어데서 찾겠는가. 절박한 문제를 제기한 그였지만 명민한 두뇌도 우둔이 들었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태는 그에게서 있어보지 못한것이였다.

리면상은 렴필재가 자기의 론문을 놓고 번민하는것 같아 말했다.

《깊이 생각하게. 내 의견은 개의치 말고… 수정할수도 있지 않은가.》

한사람은 위로와 권고를 하고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먼곳에서 헤염치던 상념을 안은채 조용히 웃었다.

《자신을 수정할 필요는 느끼지 않소?》

렴필재의 질문에 리면상은 의미를 몰라 바라보았다.

《응?! …》

머리를 가로저으며 렴필재는 마음속과 달리 친근하게 느낄수 있는 말을 고르고있었다.

《유감이요, 나는 그래도 운정(리면상의 필명)을 믿었건만. 이밤을 잊을수 없을것 같구려. 우리가 지금처럼 다정히 걸어볼수 있을가. 잘 가게.》

렴필재는 평시처럼 다정하게 손을 흔들고나서 돌아서더니 걸어갔다.

리면상은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자신도 잊은지 오랜 필명을 불러준 사람의 감정을 찾아 그는 무거운 마음의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