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22

 

포성마냥 뢰성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화광이 번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어 폭우가 쏟아져내렸다.

리면상은 록음기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악이 울려나왔다.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심산오지의 귀틀집에서 사르륵사르륵 실물레질소리가 들려온다. 눈보라 울부짖다 깊이 잠든 밤, 산촌의 부녀회원들이 유격대원호로 물레를 돌린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하여 밤도와 돌고도는 실물레질소리가 이 나라 녀인들의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대신하여 절절하고 벅찬 선률로 울리는것이다. 최근에 창작된 가요 《귀틀집 실물레》이다.

《좋구나! …》

비내리는 창가에 선 리면상은 한손으로 장단을 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시름도 녹아내린다. 노래는 그래서 인간생활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되는것이다.

하건만 그 음악의 창조자였다고 해야 할 사람의 돌변한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로서는 렴필재를 리해할수 없었다. 한때는 판소리일망정 자기의 장단을 가지고있었는데 지금 그가 추구하고있는것은 사람들의 과거였고 창작된 작품들에 대한 특수한 수술방법이였다. 사람도 작품도 론하는 방향에서 각이하게 평가되는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에 와서 일본음악학원시절의 생활에 대하여 묻는 렴필재를 보니 생면부지의 사람처럼 생각되였다. 가네다와의 관계를 지꿎게 알자고 하는가 하면 후지무라 요꼬에 대해서도 이상한 암시를 하며 해방전 서울에서 만난 사실을 놓고 빙빙 에돌며 물었다. 그 녀자의 신상자료까지 제기하면서 피아노연주가에 불과한 인물을 과장하여 설명하기까지 했다.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일본녀자의 생활에서 무슨 변화인들 없었겠는가. 아직도 시모노세끼바다가에서 마지막으로 본 요꼬의 모습이 의혹을 가지게 한다. 가네다에게서 음악을 배운 녀자가 스승에게 하던 말이 놀랄만큼 생생히 기억되여있다. 서울에서 만났을 때도 그 수수께끼는 풀수 없었다. 잊을수 없는 요꼬이지만 다는 알수 없는 녀자였다. 이것 역시 어쩔수없는 일이 아닌가.

렴필재는 요꼬와의 관계도 료해과정에 심화될것이라는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서라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고 은근히 경고했다. 자기들만이 료해하고 대책할 권한이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아는 모양이였다.

《부상동무, 사람은 몸과 마음을 자주 씻는것이 유익하다는것을 잘 아는 나요. 그러나 남의 손으로 씻을 때는 그 손이 어지럽지 않은가도 알아볼 필요는 있다는거요.》

《이번은 다르다는걸 알아야 하오. 걱정이 된단 말이요, 위원장동무가.》

《나한테 걱정이 있다면 정서의 고갈로 노래를 짓지 못하게 되는것뿐이네. 노래를 짓는 한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남아있을거요.》

렴필재는 약간 놀라는듯 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다시 만나자는 말을 친근하게 남기고 돌아갔다.

문서원이 들어와 병원에 면회를 갈 차가 대기하고있다고 알려서야 리면상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조령출의 병세가 어떤지 알아보아야 했다. 마음이 조급해난 그는 서둘러 준비하고 차에 올랐다.

응급처치를 맡았던 의사는 리면상에게 조령출의 병상태를 간단히 알려주었다. 심장협심증이 경색과 동반하여 쇼크를 일으켰다는것이다. 일단 위급한 상태는 호전되였지만 절대로 흥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상반신을 들어올리는 침대에 누운 조령출은 점적을 받고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눈을 뜬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일이 바쁠텐데 올게 뭔가. 너무 걱정말게. 집사람이 왔다갔네.》

위생복을 걸친 리면상은 간호원이 내주는 나무걸상에 앉았다. 점적관을 통하여 방울방울 떨어지는 액체를 주시하며 말했다.

《치료를 받아야겠소. 료양을 가는게 어떨가. 환경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게 없으면 나을지도 모르지 않나.》

《따뜻한 권고네만 그렇게야 못하지. 이겨내야 해. 지금은 더구나 공룡은 사멸했지만 고사리는 살아남지 않았나. 난관이란 피하면 더 큰 난관을 가져다준다네. 창작중인 가극대본을 빨리 완성해야 하네. 숨이 져도 원고지앞에서 눈을 감아야 할게 아닌가. 그저 그 세계에서 살아야 산다고 하는거지.》

한 인간의 강직하고 순결한 마음을 읽으며 리면상은 심장이 아파나는것을 느끼였다. 귀밑머리가 희여가는 이 사람은 자기의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왔는가. 일제의 서슬푸른 총칼이 걸음마다 따라서는 수난과 공포의 시대에도 량심의 붓을 안고 민족을 떠나지 않았다. 삼천리강토에 재생의 환희가 물결칠 때 생의 닻을 새로 올리고 진리를 찾아 당의 품에 안기였으며 이 땅에 전쟁의 검은구름이 밀려오자 군대와 인민을 조국수호전에 떨쳐나서게 하려고 노래의 가사를 지었다.

《조국보위의 노래》를 부르며 이 나라의 아들딸들은 원쑤를 격멸하였고 어머니들은 싸우는 고지들에 탄약과 식량을 날랐다. 인간으로서 바칠수 있는것은 다 바치며 사심없이 사는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고있다. 오늘이 있는데 과거를 론하는 리유가 어데 있는가. 설사 오유를 범한다 해도 이 아까운 사람들을 버려야 옳은가. 잃으면 보석이고 얻으면 황금에 비길 인재의 귀중함을 알고있는가. 그 무엇을 바라지도 달래지도 않으며 따라서는 이 사람들은 누가 지켜주어야 하는가. 가슴아픈 실태를 보고하여야 한다. 리면상의 마음속에서는 충격이 태동하고있었다.

《위원장동무, 어제밤 나는 고향 아산의 참대숲을 찾았다오. 향촌의 옛집은 없었고 집터에서 껑충하게 자란 엉겅퀴꽃만 보았소. 갈길을 몰라 서있는 나를 그 누군가 이끌어주더군. 나는 그 순간 다시 젊음을 찾았네. 삶의 광휘로운 빛을 우러렀고 내 안겨살 열정의 품을 보았네. 손길에 이끌려 걷는 나의 눈앞에서는 어머니당의 그 고귀하고 성스러운 기발이 숭엄히 나붓기는것이였네. 내 해방된 조국의 첫 기슭에서 그 기발을 생명으로 받아안고 무엇을 맹세했던가. … 모진 아픔은 멎고 눈을 뜨니 새 아침이였네. 왜 우나?》

어쩌면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고 같은 아침을 맞았는가. 리면상은 눈굽을 훔치고나서 조령출의 손을 잡았다. 혈맥을 타고 꼭같은 피가 흐르는것을 똑바로 느낄수 있었다.

《명암의 말을 들으니 나를 더 잘 알게 되였네. 그 녀가수가 생각나나? 지난 전쟁시기 고산진을 찾아 어려운 길을 걸을 때 만났던…》

《아무렴, 인간이 자기를 책임지자면 어떻게 의지를 가다듬어야 하는가를 배워주었지.》

두사람은 한 녀성의 모습을 떠올리며 준엄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았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는 매 인간들의 신념을 판정하는 시금석과도 같았다. 북으로 가는 그들의 행군길은 간고하였다. 적들이 간선철도며 도로들을 장악하였기때문에 산악행군을 해야 하였는데 일행에는 임신부까지 있었다.

그들이 평안남도와 자강도의 접경지대 산간마을에서 묵어가게 된 날 밤, 리면상은 그 녀가수를 만나 어떻게 그 몸으로 싸움마당에 나설 생각을 했는가고 물었다.

《저의 고향은 전라도 남원입니다. 친정에 가서 몸을 풀려고 했습니다.》

행군대오를 책임진 리면상은 임신부인 녀가수와 해산을 방조할 인원을 떨구기로 결심하였다. 일행의 한사람이였던 조령출도 반대하지 않았다. 멀고 어려운 길을 다시 떠나야 했다. 대오가 행군을 시작하려는데 몸이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녀가수가 나타났다. 그는 두손을 가슴에 얹고 말하였다.

《전 다 알아요. 지금은 각자가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것을 말이예요. 하지만 생각을 해보세요. 병사들에게 노래를 안겨주며 락동강까지 나갔던 저예요. 이 작은 몸 하나를 그래 책임져주지 못한단 말이예요? 가겠어요. 끝까지 가다가 저와 애… 우리 둘이 함께 죽을지언정 가겠어요. 전사한 남편의 넋을 물려주어야 할 저예요. …》

가슴치는 그 말을 듣고야 리면상은 자기가 사람을 너무도 몰랐다는 후회를 뒤늦게 하였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담가를 준비하고 행군하였다. 녀가수는 고산진에 이를 때까지 제발로 걸었다. 인간은 이렇듯 강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책임졌다. 오늘도 생활의 교훈으로 삼게 되는 녀가수는 노래를 부르고있다.

조령출을 만나고 돌아온 리면상은 자신이 안고 사는 고충과 음악예술부문의 현 실태와 인간들의 운명에 대한 견해를 당에 보고하기로 결심하였다. 혼란된 사고, 지침을 잃은 창작창조활동, 기회를 노리고 스며드는 각이한 사조들과 맹목적인 편승… 자기가 체험하고있는 생활을 음정처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하여 그는 며칠밤을 새웠다.

그로부터 며칠후 리면상은 음악무용종합공연 시연회를 마치고 나오다 한 일군을 만났다. 전쟁시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함께 참가하였던 외무성 국장이였다. 자기를 만나자고 오는 길이라고 말하니 반가왔다. 그 일군을 데리고 극장 응접실로 들어갔다.

《나로 말하면 선생의 노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중의 하나라는것을 알아두십시오.》

외교일군이여서인지 만나기 바쁘게 사람의 마음을 둥 띄우자 리면상은 어색하여 손부터 내흔들었다.

《선생의 최근 가요 <겨레여 뭉쳐나가자>가 좋습니다. 우리 민족의 지상의 과제는 조국통일이 아닙니까.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하나로 뭉쳐 민족의 분렬을 반드시 끝장내야 합니다.》

리면상은 미소를 짓고 공감하였다. 통일! 오매불망 바라는 우리 민족의 소원이다.

《렴필재동무가 어떻습니까?》

뜻밖의 물음이였다. 그것도 외무성일군의 물음이였던것이다. 사업상 거리가 먼 일군이 묻기에 가늠해듣기가 어려웠다. 그 심리를 제꺽 포착한 일군은 담배를 권하고나서 자기가 새 직무에서 사업한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찾아온 리유도 상담이나 하자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니 마음은 웬 일인지 긴장되기도 하였다.

《어떤 면에서 대답해야 합니까? 그와는 해방전부터 아는 사이기때문입니다.》

《선생의 인간에 대한 일반적평가면 됩니다.》

내심 불만을 지울수 없게 하는 렴필재였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이다. 사람을 경솔하게 평가하여서는 안된다는 그의 굳어진 론리가 있었다.

《렴필재부상동무는…》

이렇게 신중히 말머리를 뗀 리면상은 《리론적으로나 사업원칙을 지키는데서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입니다. 자산계급출신이지만 해방전에 이미 아버지와 결별한 단호한 인간이고 카프의 성원이였으며 감옥살이도 하였고 공화국의 품에 안긴 다음 흔들림없이 맡은 일을 잘하여왔습니다. 한마디로 충실하고 총명하며 어떤 일에서나 림기응변할줄 아는 사업가형의 일군이라고 봅니다. 다만 지나친 절제로 하여 랭정하다는 말은 좀 듣지만…》 하고 말하다 끝을 흐렸다.

시종 밝은 웃음을 띤채 듣고있던 일군이 외교관답게 반응하였다.

《림기응변이란 말이지요. 아주 인간을 방불히 그려보게 합니다. 일군들은 사업에서 림기응변할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개체가 환경에 따라 모양과 색갈을 바꾸는것은 좋지 못합니다. 조령출선생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입원중인데 심장이 매우 나쁩니다. 시인이니 너무 흥분하기때문에 더한것 같습니다.》

일군은 리면상의 말을 들으며 사업수첩을 보고있었다. 이따금 잔기침소리를 내는게 어떤 불쾌한 감정을 누르는듯싶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있더니 해외동포가수인 진옥련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리면상에게 강무현은 누구이며 그의 과거를 사적부문에 제기한 리유를 물었다. 렴필재가 종합한 자료에도 그런 문제가 들어있었다. 혁명전통에 대한 옳바른 견해도 가지고있지 못하는 음악가동맹 위원장이라는 비난이 반영되여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전통의 갈래조차 모른다는 비난이였다. 자기가 한 말이 기록되여있었다. 《나는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애국제단에 한몸을 바친 사람을 후대들이 알도록 하자는것이다. 나는 전통이 아니라 인간을 말하려고 할뿐이다. 민족을 위해 자기를 바친 사람은 력사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한 말을 책임질것이다.》라는…

일군의 안색은 심중해지였다.

《진옥련이라는 녀성이 어떤 경로로 미국에 건너갔는지 모르는 조건에서 그의 조국방문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제기하는 일군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위원장선생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두손을 마주잡은 리면상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대답했다.

《나 개인의 심정을 말한다면 그가 어데 있건 조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맞아주는것이 도의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리해하였습니다. 총련을 통하여 제기되였는데 후지무라 요꼬라는 인물이 관심을 돌리게 합니다. 아시지요?》

대화의 폭이 넓어지자 리면상은 한층 마음이 긴장되였다. 렴필재가 주목하는 후지무라 요꼬이다.

요새 그가 음악가로부터 정객으로 되려고 한다는것이다.

《후지무라 요꼬의 우리 나라 방문은 승인되였습니다. 아마 리면상선생이 영접하고 면담도 하여야 할것입니다.》

《예?》

《후지무라 요꼬는 음악가가 아닙니까.》

《우린 동창입니다. 외교탁에 마주앉기는 불편하겠는데요.》

《유리할수 있다고 봅니다.》

리면상은 설득력이 있는 말이기에 다른 의사를 표시할수 없었다.

《위원장선생은 후지무라 요꼬가 오기 전에 음악가대표단을 데리고 동유럽나라들에 대한 방문부터 먼저 진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리면상은 자기가 외교관으로 직무를 옮기는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해외동포, 음악가대표단… 어떻게 된 일인가. 나라는 사람이 일을 제대로 못하여 사업료해를 받고있는 상태나 같은데 리해할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의 심중을 다 알고있는지 일군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리면상의 손을 잡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번에 동유럽나라들을 방문하게 되는 음악가대표단이 자기 사업을 원만히 하자면 리면상선생이 단장으로 되여야 외교적권위를 세울수 있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예?! … 그이께서…》

《그렇습니다.》

얼마나 마음속으로 기다린분이신가. 그이께서 늙어가는 이 몸을 잊지 않고계시는구나. 김정일동지! … 내 그이의 하늘같은 믿음을 받기에는 너무도 한 일이 없구나. 언제면 그이께서 만족하실 선률의 꽃을 피워드릴것인가. 리면상은 흠모의 열광으로 솟구치는 감격을 안은채 죄책으로 조용히 어깨를 떨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