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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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문 《민족음악연구》를 읽으며 리면상은 필자의 다문박식에 경탄하면서도 리론적인 주장에는 불만을 느끼고있었다. 민족음악을 새로운 안목으로 보려는 고심어린 탐구가 많은 자료들을 수집정리한데서 엿보이지만 목적하는 연구과제가 시대의 요구와 민족음악발전의 견지에서 전개되지 못한것이 결함이라고 찾아보게 되였던것이다. 렴필재의 론문이였다.

《위원장동무, 잘 봐주시오. 참으로 오래동안 연구하여 쓴 글이요. 음악리론이라는걸 리해해주기를 바라오.》

필자의 말속에 기대가 담겨있었다. 그는 자기의 론문이 음악교육기관들에서도 참고할 가치가 있는 글이 되게 하려는 큰마음을 먹고 저술하였다는것을 숨기지 않고 말하였다.

리론과 실천의 호상관계를 모를 렴필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론문의 목적을 리론에만 귀착시키려는 의도가 미묘하였다. 의혹을 품고 읽어들어가면서야 필자의 주장을 알수 있었다. 역시 판소리가 민족음악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리론적증명이였다.

리면상은 판소리를 민족성악형성과 발전과정의 기초로, 주류로 평가하는 필자의 리론적주장이 분석상착오라고 생각했다. 어느 민족에게나 노래가 있고 그 노래를 근로하는 인민이 창조하였다는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것이다. 음악은 로동속에서 창조되였고 발전하여왔으며 시대의 요구와 지향을 반영하며 새롭게 완성풍부화되여가는것이다. 때문에 어느 민족의 음악이나 자기의 력사를 가지게 되고 론의하게 되며 보다 훌륭한 방향으로 발전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나 렴필재의 리론은 판소리를 장려하며 성악의 발성적기초로 삼을것까지 제기하고있다. 음악계에서 누구보다 때벗이를 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줄곧 낡았다고 누구나 인정하는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지 않는가.

렴필재는 유럽의 물을 마셔보았다고 해야 할 사람이다. 해방전 로씨야의 원동과 씨비리의 예술극장에서 근무한 전적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열을 올리며 세계고전음악을 론할 때엔 마주서는 리론적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인류음악사의 갈피를 번지며 교향곡과 협주곡에 대하여, 화성학과 복성학에 대하여 멋진 강의를 하면 동업자들은 그지없는 선망과 존경의 눈길을 보내였다.

론문에서 어떤 문제를 취급하는가 하는것은 필자의 권리에 속하는것이지만 렴필재가 민족음악을 판소리중심의 리론으로까지 전개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언젠가 그가 함흥에서 돌아오며 하던 말이 빈말이 아니였음을 알수 있었다.

판소리는 판소리가수들에 의하여 《흥보가》, 《심청가》와 같이 구전설화들을 판소리작품으로 전파한것으로 하여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가수가 춤동작을 펼치며 쐑소리로 엮어대는 극적줄거리를 가진 판소리는 민요와 구별된다. 사설조에 대사까지 뒤섞인 곡조는 음악적인 선률을 추구한것이 아니라 고루한 인간세상사를 판소리에 태운 길이가 한정된것이 없는 노래아닌 노래나 같았다. 가요는 선률과 가사가 결합된 가장 작은 형식의 음악작품이다. 판소리는 민요와 같이 로동생활속에서 체험한 진실한 감정을 간결하면서도 풍부하게 반영하지 못하는것으로 하여 오늘 우리 인민들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것은 물론이고 시대적미감에도 맞지 않았다.

렴필재가 그것을 모를수는 없다. 그렇다면 리론상의 이 오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리면상의 뇌리에 문득 아득한 세월속에 묻혔던 친우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음악공부를 하려고 서울에 온 리면상은 품팔이군이 되여 헤매는 신세가 되였다. 하루는 강가에 나갔다가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봄빛이 무르녹는 강기슭의 그늘밑에서 듣기에도 숨이 찬 노래가락이 흐르고있었다. 판소리타령인데 창법이 특이했다. 거친가 하면 부드럽고 애수인가 하면 기고만장한 웨침이 뒤섞인 노래의 주인은 상상외로 너무도 젊은 청년이였다. 차림은 교복인데 펼쳐놓는 건들춤은 사모쓴 량반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손에 든 부채를 점잖게 흔들며 팔자걸음을 하다가 《어허허, 네 아니뇨. 아하 내 사랑 가을하늘에 비꼈던 고오 네 이름 추월아?》 하고 부르며 찾으니 《예이?》 다홍치마자락을 날리는 기생이 곱게 대답하며 나타나자 둘이 어깨를 붙이고 들썩대며 《우리 함께 봉황, 원앙이 되여어어 단산에 올라 놀고 록수도 희롱해보자꾸나? 아아…》 남녀가수의 판소리가락이 구름을 탄듯 날아오르자 장고가 흥취를 돋구고 가야금소리가 둥기당당 기세좋게 화답했다. 더 볼만 한것은 그 자리에 터럭상통을 한 일본순사가 무엇이 좋은지 누런 이발을 드러내고 웃고있는것이였다.

판소리로 노래를 잘 불러 젊은 녀자들의 호감을 자아내고 일본순사까지 구경군으로 만든 사람이 렴필재였다. 사귀고보니 서울의 큰 전당포집 아들이였고 음악에 뜻을 뒀기에 가까이 지냈다. 그의 조상들은 쟁인바치에 불과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봉건의 바위틈에서 자란 이끼같은 장사치였다. 치부방식을 갖춘 그의 아버지는 서울변두리 농촌에서만도 천석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부재지주였는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전당포를 차렸고 아들을 일본에 류학시킬 결심까지 품고있었다. 아들이 구강의학을 배우고 돌아오면 서울에 치과병원을 내오자는것이였다.

《내 평생 남의 썩은 이발이나 뽑으며 산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하건만 운명이란 거역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아버지의 구속에서 몸부림치던 렴필재의 모습을 되새겨보며 리면상은 론문에 눈길을 박은채 읽어내려갔다.

《아니, 뭘 그리도 탐독하기에 문두드리는 소리까지 못 듣나?》

리면상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마주 오는 시인 조령출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눌러쓴 중절모와 테가 굵은 안경이 자못 무게있게 다가오자 사무걸상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대답했다.

《론문을 보던중이네.》

상우에 놓여있는 두툼한 론문을 얼핏 내려다본 조령출은 말없이 걸어가 창문쪽 걸상에 앉았다. 담배부터 붙여물고나서 연기를 훌훌 내불어댔다.

무슨 일로 왔을가. 새 가사를 썼는가. 아니면 가극대본을 수정하자고? 선률만 들어도 시줄이 흘러나오고 가사의 한련이 읊어지면 노래가 따라서는 둘사이였다. 해방전 수난속에서도 그렇게 불렀고 나라의 해방과 함께 터뜨린 격정도 언제나 같았으며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을 헤치며 부른 노래도 심장으로 나눈 벅찬 이야기들이다. 정열과 흥분으로 시어의 바다에서 사는 사람이 오늘은 침중한 얼굴이다.

《기분이 좋은것 같지 않구만.》

《오선지가 아니라 원고지에 관심을 가질줄은 몰랐소. 허?》

《조금 기다리게, 몇장만 보면 되겠는데 방해하지 말구.》

《아, 그러지. 위원장이 론문까지 집필할줄이야, 괜찮아.》

리면상은 상대가 그러거나말거나 시선을 원고우에 떨구며 읽다만 글줄을 찾았다. 론문의 결속부분에서 필자는 민족음악의 발전문제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펼치고있다.

민족이 이루어놓은 음악유산은 어느것이나 다 소중한것이다, 현대음악이라는 사조가 강하게 대두하고있는 오늘 민족적인것과 현대적인것에 대한 리해를 옳게 하는것이 필요하다, 오늘에 사는 사람들이 현대적이라고 창조하는 음악도 마침내는 민족적인것으로 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새것속에 낡았다는것이 존재하며 낡은것이라고 하는 그것속에 오늘의 새것이 잠재해있었다는것을 리해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력설하며 판소리를 집요하게 긍정하고있었다.

론문의 마감까지 다 읽고난 리면상은 렴필재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오랜 세월 보아온 사람의 얼굴인데도 선명하게 안겨오지 않았다. 무엇인가 주장하고있지만 그 주장이 오히려 인간의 본색을 흐려놓는것만 같았다. 미술작품에서 채색을 덧하여 묘사대상을 알아볼수 없게 만드는것과 비슷한 경우를 목격한 기분에 휩싸인 그는 어떤 의견을 줄것인가를 골몰하기 시작하였다. 선률이라면 함께 씨름질이라도 해보련만 리론을 전개한것이여서 자신이 없었다. 자기가 본것을 그대로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 일을 생각하니 박정하게 여겨졌다. 그래도 오랜 지기이고 부상인 그가 심혈을 기울인 글을 부정한다는게 못할 일처럼 느껴졌던것이다. 그는 원고지의 마지막페지 수자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2천매가 넘었다. 방대한 원고집필에 바친 탐구와 고심과 열정에 좋은 말을 해줄수 없으니 애초 바쁘다는 구실로 받지 않을걸 그랬다는 후회까지 찾아들었다.

(언제 봐야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게 탈이야.)

리면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정말 오늘은 지겹구만. 찾아온 사람을 곁에 앉혀놓고 제 할 일만 하니 인사불성도 여간해야지…》

드디여 조령출의 불만이 울려나오자 리면상은 자기가 처신을 바로 못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황황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 옥성동무가 언제…》

조령출 혼자인줄 알았는데 김옥성은 언제 들어왔는가.

《위원장선생이 바쁜 시간이여서… 마침 조선생이 와계시기에…》

김옥성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려 하자 조령출은 손을 내저으며 《가세, 우린 환영할 인물이 못된다는건데.》 하고 당장 나가버릴 잡도리를 하자 리면상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러지 말게, 명암(조령출의 필명). 내가 좀 실수를 했기로서니 뭘 그러나.》

리면상은 오늘도 조령출을 옛시절처럼 필명으로 친근하게 찾는것을 좋아했다.

《무슨 론문인지 나도 좀 보세.》

《그건 안되네.》

리면상은 서둘러 제자리에 가서 원고마감부분들을 정리하여 큼직한 봉투속에 넣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잘된 노래라면 당장이라도 함께 듣자고 할 그였지만 렴필재의 론문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사람은 호상 인격을 지켜줄줄 알아야 한다.

《없는 재간을 부리지 마오. 높은 나무에 오르다 떨어지면 오선지도 다루지 못할수 있다오.》

말투는 비꼬는것 같지만 진심의 우려가 담겨있음을 잘 아는지라 리면상은 어색한 웃음을 보이는것으로 대답하였다. 사실대로 말하다 자칫하면 크건작건 남의 뒤소리를 하게 될가봐 근심됐던것이다. 조령출이나 김옥성은 시기를 모르는 창작가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높은 실력으로 관록을 지닌 시인이고 작곡가였다. 그러나 렴필재에 대한 견해에서는 같을수 없었다.

리면상은 자기의 책상우에 놓인 록음기의 스위치를 넣었다. 스르륵거리던 잡음이 이내 사라지고 흥취나는 민족음악장단이 울려나왔다. 합창곡으로 창작된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였다. 풍년가을을 안아온 협동조합의 분배장으로 금시 들어서는 기분이다. 푸른 하늘가로 울려퍼지는 농악무가락, 장새납이 땅을 가꾸는 사람들의 희열을 터뜨리자 상모춤이 우줄우줄 떨쳐나온다. 장고소리에 북이 화답하며 음악은 이 나라의 가을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소박하고 진실한 감정으로 노래하고있다.

《좋거던. 이런 노래를 두고 인민가요라고 말할수 있소. 옥성동무, 천리마시대의 명곡을 창작한데 대해 다시한번 축하하오.》

음악속에 심취되였던 조령출이 말했다.

생각지 못한 자리에서 뜻밖의 치하를 받으며 김옥성은 어쩔줄을 몰라했다. 리면상에게서 혁명전통주제의 교성곡을 지을데 대한 과업을 받았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안타까움속에 찾아왔다가 당하는 일이여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던것이다.

《역시 명암은 작품의 가치를 옳게 평가하거던. 난 말이요. 기분이 울적할 때면 이 노래를 듣군 하오. 그러노라면 옥성동무가 발견한 강서지방의 농악장단에 맞춰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지. 노래란 이런것이 아니겠나. 로동의 보람, 생활의 앞날에 대한 락관, 사람들에게 힘을 안겨주는것이 노래라고 해야 할걸세.》

《새것을 발견하는 창작가의 고충은 참으로 큰것이요. 그렇지 않소, 옥성동무?》

조령출의 칭찬이 시작되면 고도가 얼마일지 모를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것을 잘 아는 김옥성은 물러앉기까지 하며 두손을 쳐들고 흔들었다.

《창작을 했다기보다 민족음악장단을 발굴한데 불과합니다.》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조령출은 말했다. 우리는 창작가의 이와 같은 겸손성을 배워야 한다, 천리마운동의 장엄한 진군과 함께 이 나라의 농촌은 청산리에서부터 새로운 걸음을 내디디였다, 하여 사람들은 청산리에 봄이 오면 온 나라에 봄이 온다고 말한다, 작곡가는 시대의 맥박인 새로운 선률을 찾기 위하여 협동벌전야를 끝없이 찾았으며 조합원들과 꼭같이 고무래도 잡았고 가래질도 하면서 쉴참에는 대지의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는 땅의 주인이 된 기쁨이였으며 나라의 쌀독에 살진 낟알을 채우려는 맹세였다, 로동의 희열에서 환기된 작곡가의 창작적상상력은 마침내 조합원들과 함께 부른 흥겨운 가락과 장단을 오선지우에 옮겨놓았던것이다, 창작이란 이렇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명작이 탄생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는것, 그것이 예술가의 본분이다,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창작하고있는가, 밥을 먹을 때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고 옷을 입고서는 방직공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따스한 방안에서 추위를 모르며 살면서 석탄을 캐는 로동자들의 수고를 생각하는가, 사시절 벌바람이 어떻게 부는가를 모르면서 흰쌀밥을 넘기는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없는가, 나는 한생 작곡가들과 함께 노래를 짓고 부르고있다, 최근에는 눈뜨고 앉아서 남의 장단을 탄 노래를 듣는가 하면 제것인데도 너무도 낡고 진부하여 얼굴을 붉히게 되는 괴상한 선률이 울리는것을 듣는다, 그중에서도 제일 불쾌한것이 쐑소리로 엮어대는 노래가락이다, 우리가 오늘에 와서도 그 판소리, 그런 타령에 무대를 내주어야 하는가, 천리마가 하늘을 나는 1960년대에 봉건사대부들의 라태한 장단과 리듬을 허용해야 옳은가… 조령출은 시인의 기질로 흥분을 쏟았다.

자기 시대에 대한 옹호의 감정이 없다면 참다운 인민의 예술을 창조할수 없다. 리면상은 조령출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였다. 준엄했던 전화의 불길속을 어떻게 헤쳐넘은 시인인가. 또다시 식민지노예가 될수 없었기에 심장의 더운 피로 《조국보위의 노래》를 지었으며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가사들을 창작하였다. 전선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래우는 처녀의 마음속에 품은것은 승리의 그날까지 시집을 안간다는 소박한 언약이였으며 싸움마당으로 아들을 보내며 하는 어머니의 부탁은 한마디로 잘 싸우라는것이였다. 조령출의 시어에는 아무런 과장도 없었으며 아무리 짧은 가사에도 사연이 있었고 인간의 성격이 자리잡고있었다. 하여 그 노래는 병사들의 어머니를 대신하였으며 별이 흐르는 밤, 화선의 전호가에서 사랑하는 고향처녀를 그리는 휘파람소리로 유정하게 흘렀다. 노래도 시대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하여 창작되는것이다. 요구란 인민의 사상감정이 아니겠는가.

《나는 천리마시대의 생활과 요구를 알고있는가, 판소리나 들으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대궐의 담장을 쇄국의 울타리로 높이 쌓다가 백의동포를 망국이라는 수난속에 몰아넣었던 량반사대부들과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죄과를 잊지 않고있는가, 부강번영할 자주의 나라를 일떠세워야 할 후대들에게 어떤 노래를 물려주어야 하는가를 알고나 있는가. 나는 사실 이 말을 위원장동무와 나누자고왔던거요. 할 말을 다했소.》

시인의 불같은 심장은 열화를 터뜨려놓았다. 누구든 이에 대답을 하여야 했다.

두손을 깍지껴 무릎우에 올려놓은 김옥성은 눈길을 들어 허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작곡가로서 첫걸음을 떼던 그 기슭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가슴속에 눈물겹게 자리잡은것은 이 나라의 녀성들이였다. 그것은 안해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녀자로 태여난것이 죄가 되여 봉건의 질곡속에 묻혀 온갖 천대를 숙명으로 받아안고 시들어온 이 나라의 녀성들, 그들에게 참다운 자유가 차례졌다. 해방과 함께 이 땅에 반석같이 뿌리내린 인민주권은 그들에게 남자와 동등한 정치적권리를 안겨주었다. 첫 민주선거가 있기 전날 밤 달빛아래 솔문을 어루쓸며 눈물을 소리없이 흘리던 안해를 보며 그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는 감정으로 높뛰였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 왔는가. 사람답게 살게 된 나의 안해와 이 나라의 수많은 녀성들이 터뜨리는 감사의 노래를 선률에 담자. 이렇게 해방후 그의 첫 가요 《녀성의 노래》는 사랑하는 안해의 기쁨과 함께 탄생하였다.

《참다운 의미에 있어서 우리의 창작은 인민이 불러주는 노래를 짓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진정한 향유자는 인민대중이 아니겠습니까. 허지만 우리곁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로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는 무시되고있으며 자기들만이 아는 소리를 하지요. 판소리를 주장하는 창작가들속에는 로동가요를 천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조령출선생의 말씀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고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어조는 나직했지만 김옥성의 표현도 날카로왔다.

리면상은 무엇인가를 말하고싶지만 이상하게도 구속감에 사로잡혀있었다. 두사람의 견해가 일반적인 현상에 대한 분석이라면 자기의 주장은 어떤 대상을 놓고 하는 비판이 될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되였다. 그 대상이란 다름아닌 렴필재다. 방금전까지 그의 론문을 보고있지 않았는가. 개인적인 부탁을 받고 읽었으면 옳건그르건 본인앞에서 의견을 이야기하여야지 뒤에서 함부로 평가하는것은 창조륜리에 어긋난다. 그의 이와 같은 심리는 창작가들이 지켜야 할 도덕에도 있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할줄 모르는 개성의 구속이였다.

《량반냄새를 풍기는 판소리군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하오.》

조령출의 목소리가 다시 울릴 때 리면상은 펀뜩 찾아드는 륙감으로 하여 고개를 출입문쪽으로 돌리다가 놀랐다. 렴필재가 서있는것이 아닌가, 점잖은 차림새로. 곤청색양복소매끝에 드러난 와이샤쯔의 단추가 반짝거린다. 열기띤 말을 주고받느라고 부상의 왕림도 알아보지 못했다. 보다 더한 인사불성은 본의아니게 그의 론문에 대한 비난을 한것이나 다름없이 된것이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였다.

문가에 선 렴필재는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조용히 웃고있었다. 얼굴은 웃지만 눈빛은 얼음처럼 차거웠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경우에나 잃지 않는 침착성이 온몸에 자리잡고있었다.

《훌륭한 비평에 감사를 드리오.》

담담한 목소리였다. 조령출과 김옥성은 그 누구를 지명하고 비난하지 않은 까닭에 리면상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솔직한 인간들의 당황한 감정이였다.

《위원장동무의 방에서 이런 모임을 자주 가지오?》

렴필재의 물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강조하듯 울렸다.

감각이 뛰여난 조령출은 방안의 공기가 이상하게 변하는것을 느꼈으며 대담하게 육박했다.

《부상동무, 오래간만에 만났으면 인사를 하고 자리를 같이해야 옳을거요. 우린 무슨 비평을 하고있은것도 아니요. 창작가일진대 현실에 대한 소감도 나누지 못한단 말이요?》

《조동무! …》

자못 날카로운 억양으로 눌러서 찾은 렴필재가 천천히 다가오며 《옳다고 하는 주장이 보편성과 타당성을 가지자면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오. 이거야 무시하지 못하겠지요? 우리야말로 주관을 범하기 쉬운 사람들이요. 왜서인가? 그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겠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보를 모르는 존재로 변해가고있소. 마치 원칙은 자기들에게 속하는것처럼 여기게 됐단 말이요.》 하고 추궁조로 말했다.

《다시한번 권합니다. 부상동무, 앉으십시오.》

조령출의 권유에 렴필재는 리면상을 외면한채 김옥성에게 의미있는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옥성동무도 그렇게 생각하오?》

앉을자리가 옳은가고 묻는 소리여서 김옥성은 례의를 차렸다.

《유익한 담화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개별적의견을 부상동지가 청취할수도 있지 않습니까.》

《좋소. 새로운 인상을 받아봅시다. 론쟁은 언제나 흥미있는것이니까.》

렴필재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리면상은 어떻게 하나 화제가 판소리로부터 멀어져 견해상차이로 마찰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먼저 말했다.

《조령출동무와 김옥성동무는 방금전에 우리 민족음악의 실태에 대해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였소. 물론 창작가들의 개별적인 의견에는 차이가 있을수 있다고 보오. 그러나 공통된 인식은 가질 필요가 있다는것이요.》

렴필재는 령리한 사람이였다. 이 방에서 울려나온 판소리에 대한 불만과 자기의 론문은 상관이 없다는것을 알았지만 창작에서 제노라 하는 이 사람들에게 리론적인 공격을 하고싶었다.

《좋소. 그럼 내가 물읍시다. 음악에서 민족적인것에 대한 리해인데 여기엔 폭 즉 넓이가 존재하오. 다시말해서 민족음악의 포괄범위라고 합시다. 어떻게 보는것이 옳겠소?》

조령출의 눈섭이 대번에 쭝깃거렸다. 대가연한 리론가의 첫마디부터가 비위를 건드린 모양이였다. 침묵을 일종의 정숙으로 여겼는지 렴필재는 정확한 발음으로 강의나 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문학과 예술은 각이한 시대사조들의 흐름으로 이루어지며 진화와 도태의 과정을 이루어왔소. 사회주의사실주의레알리즘의 형성과 발전이 그것을 보여주오. 사실주의가 모체라는 이 사실을 부인할수는 없소. 따라서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서 인정해야 하며 리해를 옳게 하는것이 필요하오. 민족음악의 견지에서 어느것은 좋고 어느것은 배제해야 한다는것은 편협한 견해요. 어느 나라에나 궁성음악은 존재했으며 음악발전에 기여를 했소. 무시해서는 안된다는것이요. 나는 옛것을 숭상해서도 아니며 다만 민족의 음악유산은 다같이 연구하고 보존하며 발전시켜야 한다는것을 말하고싶을뿐이요.》

흥분을 억제하기 어려워하는 조령출이 움쭉 일어섰다.

《나는 천리마시대의 사조만을 인정하오. 그만 물러가겠소.》

단호한 그의 태도에 렴필재는 불쾌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협소하오. 폭넓은 리해에 도달하기는 어렵겠소.》

리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렴필재에게로 다가왔다.

《민족과 노래, 이 문제를 놓고 앞으로 진지한 의견을 나누게 되기를 바라오.》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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