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8

 

가네다의 총아인것으로 남다른 시기를 당하면서도 음악에 현혹되여 명성을 꿈으로 안고 사는 요꼬였다. 그런 그가 이 며칠동안 음악과 아무 상관없는 잡사에 매달려 보낸탓으로 지금은 가네다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방으로 가고있다.

앞에서 기다리는 추궁보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였다. 얼굴조차 바로 보지 못한 청년을 찾자고 조선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구와 일하는 곳을 다녀보았지만 헛걸음만 하였다. 자신도 리해하기 어려운 심리에 빠진 그는 피아노며 음악이며 하는것이 멀어져가는감을 느끼게 되였고 달라져보이는 제모습에 은근히 놀라기까지 했다. 머리속에는 자기를 인생의 파멸과 같은 구뎅이에서 구원해준 사람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싶은 생각뿐이였다.

그보다는 음악학원에 다니는것을 반대한 어머니가 더 무섭게 굴었다. 얼굴의 상처가 낫자 학교에 나가려는 딸을 꿇어앉히고 엄하게 말했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을줄 아는게 도리다. 그 사람을 찾거라. 내앞에 데려다 놓지 못하면 내쫓고말테다.》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두주먹을 부르쥐고 뛰여다녔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요꼬는 가네다방 문앞에서 어깨가 처져나오는 렴필재와 부딪칠번 하였다.

《아, 요꼬! 선생님이 기다리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호출번호에서 앞섰구만.》

《멋있던데요. 전번 극장에서 보니… 언제 일본녀가수들과도 사귀였지요?》

《시샘이 나면 오늘 밤 나하구 단 둘이 관람을 가기요.》

《지극한 환대에 사의를 표시해요. 하지만 필재씬 신뢰할수 없는 인물이예요.》

맵짜게 대답해치운 요꼬는 출입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버렸다.

방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서둘러대며 가방을 꾸리고있던 가네다가 요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꼬가 왔는가. 어서 앉으라, 어서!》

요꼬는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곳이 그에게는 음악의 작은 성당과 같았다. 방안의 어느것에서나 피아노의 선률이 금시 울려나올것만 같다.

가네다가 없었다면 오늘의 재능도 생각할수 없다. 마음속에 품고 사는 존경심이 큰것으로 하여 자연히 지금처럼 엄숙한 감정에 사로잡히는것이다. 우상이란 인간자신이 만들어낸다는것을 알수 없는 그였다. 벽면에는 음악명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베토벤, 모짜르트, 슈베르트, 쇼뺑, 바흐…

《면상군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는가? 필재가 예술잡지에 글을 써냈단 말이다. 우리 일본민요를 비난했다는데 주목을 돌리게 된다. 그녀석은 퇴학처분을 받게 될것이다.》

렴필재가 일본음악을 시비했다는 말조차 귀에 담기지 않았다. 고학생인 리면상이지만 등교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요꼬는 전혀 관심하지 못한 일이여서 고개만 설레설레 저으며 가네다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숭엄하게 느낀 스승의 얼굴이 아니다. 어찌된 일인가. 자애가 아니라 탐욕으로 충만된 이런 모습은 본 일이 없지 않은가. 겁이 났다. 심장이 세차게 박동을 울리자 마치도 심중을 알고나 있은듯이 가네다의 목소리가 자기의 넋을 빨아들이는 착각이 밀려들었다.

《난 며칠 출장을 간다. 그사이 련습들을 잘해야 돼. 이건 요꼬가 련습할 피아노곡들이야. 래달 우리 학원의 단독공연이 있다는걸 알지? 그래그래. 이름있는 예술단의 연주가, 배우들이 초청되고 시청과 내각의 관리들까지 관람하는 공연이라는 특혜가 차례진셈이 아닌가. 이번이 기회가 될수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돼.》

가네다의 눈빛이 열광으로 번쩍이자 요꼬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를 까딱거리며 대답을 반복했다. 지휘봉을 휘둘러 수십명 연주가들을 손아귀에 걷어쥐는 가네다가 지금은 연약한 미래의 피아니스트를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고있었다. 술냄새가 섞인 입김이 얼굴을 확 뒤덮은 뒤 생긴 일은 불과 몇초였지만 요꼬는 자기의 입술이 그 무엇에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온몸이 산산이 흩어져나가는것 같아 흐느낌을 터뜨렸다. 눈앞에는 두손으로 어깨를 꽉 움켜잡은 가네다가 음험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며칠후엔 돌아오겠어. 놀라지 말아. 리스트의 <애인명부>에 얼마나 많은 녀자들이 있었는가. 마리 다그, 카톨리네, 롤라… 사랑, 그것이 음악이야. …》

요꼬는 자기가 가네다의 방에서 어떻게 나왔던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리면상에게 주라던 그의 습작품과 피아노련습곡이 손에 들려있었다. 학교후원 숲가에 이른 그는 손수건으로 입을 몇번이고 닦고나서 주저앉으며 고개를 무릎에 떨구었다.

자기는 이미 가네다의 롱락물이 되였다는 절망과 함께 이름할수 없는 증오가 가슴을 헤치며 터져나왔다. 너무도 뒤늦게 찾아든 의식은 모르고 산 고통의 련속이라는것을 깨닫고있었다. 운명을 건 배움터에서 존경해온 스승이라는 인간이 안겨준 감정은 말로는 형언할수 없는것이였다. 얼마나 뻔뻔스러운 상통이였던가. 추악한 탐욕마저 강의시간에 하던 말처럼 거침없이 지껄이였다. 그만큼 배워주었으면 보답하는것이 응당하다고 여기는것이 분명했다.

《개자식! … 더러운 놈! …》

요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을 구르며 언덕길로 달려내려가던 그는 자기를 찾는 소리에 멎어서서 고개를 돌렸다.

《요꼬, 어델 가? 나를 떼놓고 다니다간 전번같은 봉변을 또 당해.》

금이발을 드러낸 남학생이 로골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바라보고있었다. 기르는 놈이나 자라는 놈이나 생겨먹기는 한가지다. 사무라이후예들이 입으로 지껄이는 소리란 미인과 권력만 쥐면 된다는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부자간에도 칼부림을 서슴지 않는 족속들이다.

《너도 일본사내니? 어서 련습실에 들어가 샤미센이나 타고앉아!》

《요꼬, 왜 그래?》

《칙쇼! 빠가야로!》

요꼬는 오른손을 쳐들고 상스러운 손동작을 해보이며 연방 욕질하고나서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갔다. 학원정문을 나온 그는 리면상의 하숙집을 찾아가볼 결심을 하였다.

음악에 대한 요꼬의 야심은 류다른것이였다. 그의 꿈은 성공하여 세상 가보고싶은 나라들을 다 찾아보는것이 소원이다. 그 길은 피아노연주가로 명성을 가질 때 이룰수 있다고 여겼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섰는데 가네다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낸것이다. 물러설 자리가 없단 말인가. 가네다의 올가미를 벗자면 야심을 버려야 한다. 품고 사는 희망을 버리자니 지금까지 기울인 정력이 아깝고 그냥 걷자니 앞에는 야꾸자들에게 찢기는것보다 더한 운명의 함정이 기다린다.

그는 자신이 외롭고 나약한 존재임을 오늘에야 알수 있었다. 마음을 의지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기가 무엇때문에 리면상을 찾아가는지 알지 못하며 걸음을 다그쳤다.

중국인우동집은 찾기 쉬웠다. 저고리와 앞치마가 기름이 배여 반들거리는 차림새인 로인이 리면상을 찾아왔다니 시답지 않은 얼굴로 바라보면서 뒤뜰로 돌아가라고 손짓하였다. 파수군같은 로파가 하품을 하며 한동안 앉은자리에서 우물거리다 손에 들었던 바느질감을 때가 낀 광주리안에 던져넣고 전족한 발을 되뚝거리며 일어섰다.

《들어가라구, 저기루. 안에 우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네.》

가리켜주는대로 찌그러든 문안으로 들어서던 요꼬는 구석에서 놀란 검정닭이 날아나오는 바람에 비명을 질렀다. 되돌아나와 바라보는 처녀에게 로파는 들어가라고 하는 말을 부채질로 대신하였다.

볕이 들지 않는 창고안에 다시 들어선 그는 사다리를 짚다 소리쳤다.

《면상씨!》

고미다락에서 대답은커녕 겁이 더 나게 하는 신음소리가 울려왔다. 우를 쳐다보며 망설이던 요꼬는 용기를 내여 기여올라갔다. 만장은 바닥보다 더 어두운데다 곰팡내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어데 계세요?》

《누구요?》

《요꼬… 예요.》

《무슨 일로 왔소?》

리면상의 목소리인데 반가와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화가 치미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더듬거려 눈길을 돌리던 그는 술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미치자 급기야 돌아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술 마시고 수업에 빠지는줄은 몰랐지요.》

간다는 인사로 빈정대보았는데 한숨섞인 대답에 다시 돌아섰다.

《술을 마신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마셨소.》

둘러보니 거적을 깔았을망정 방안은 정돈되여있었고 어디에도 술병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예요?》

《뭘 말이요?》

《동문서답이군요.》

《친구한테 얼이 쳤소, 내 친구인데 사흘전에 만났소. 좋은 선생을 만나 행운이 차례질것 같다고 했더니 이 꼴로 만들었소.》

요꼬는 미간을 쪼프리였다. 어떤 친구인지는 몰라도 가네다자랑을 하다 경을 쳤다는 소리가 아닌가. 우에노공원에 갔을 때 느낀 감정이 되살아났다.

가네다의 친절에 호의를 품었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유명한 피아노연주가가 될 꿈을 실현하려는 자기가 순정을 지불해야 한다면 조선사람인 리면상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것인가.

《좋은 친구가 스승보다 나을수도 있지 않을가요?》

《세상에 악만 차있다고 보는 눈으로야 선량한 사람을 어떻게 가려보겠소.》

요꼬는 가네다의 인간됨을 밝힐수 없는것이 안타까웠다.

《여기 일본에서 선량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울거예요.》

《난 가네다선생만은 존경하오.》

소경이나 한가지인 면상의 말을 들은 요꼬는 구역질이 나서 참지 못하고 힘껏 소리쳤다.

《주정을 그만해요! 아직도 깨지 않았군요.》

《어제 밤에는 그 친구와 마셨소. 지금은 취하지 않았단 말이요.》

《가겠어요!》

벽에 기대여앉았던 리면상이 상반신을 내밀었다.

《내 친구가 누군지 아오?》

《면상씨보다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는군요.》

《하? 방랑살이에 거칠어져서 그렇지 사람이야 인간이지요.》

《이건 가네다가 보내는 면상씨의 습작품이예요. 아마 높은 점수를 줬을거예요.》

《가네다… 왜 그러오? 말투가 이상해졌으니 말이요.》

요꼬는 자기에게 날아오는 리면상의 눈길을 피했다.

《출장을 간다면서 전달하라고 하더군요.》

리면상은 요꼬의 돌변한 랭담에 의문을 품은채 말했다.

《내 친구를 만나볼 생각은 없소?》

《술을 권하려는가요?》

《아, 내가 박자를 어겼구만. 요꼬씨가 찾고싶어하는 사람이 나의 친구 강무현이요.》

요꼬는 리면상이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걸 잘 알았다.

《그럼 그 청년이?! …》

《내 친구는 그런 사람이요.》

《어데 가면 만날수 있는가요? 그 사람을…》

《저녁에 또 올거요. 내가 두손을 들 때까지…》

한정없이 기다리라는 소리나 같았다. 그러나 며칠동안 찾아헤맨 사람을 만날수 있지 않는가. 요꼬는 다시 올 결심을 하였다.

《만나면 제 이야기를 해줘요. 꼭 만나고싶단다고…》

고미다락에서 내려오니 편백나무걸상에 앉은 로파가 끄덕끄덕 졸다가 거슴츠레한 눈길을 쳐들었다. 창고안에서 놀래웠던 검정닭이 구구거리며 모이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요꼬의 인사에 로파는 우글주글한 턱을 들고 눈먼 사람처럼 바라보며 《취바, 취바》를 건성 흘리고는 손만 설레설레 내흔들었다. 어서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어대는것 같았다.

거리에 나와 우동집쪽에 고개를 돌리던 요꼬는 주춤 멎었다. 구척장신의 사나이가 떡 벋치고 서서 마뜩지 않은 시선으로 음식점을 노려보고있었다. 한쪽어깨에 베보퉁이를 둘러멨다. 옷차림새부터가 일본사람이 아니라는게 알렸다. 이상야릇한 예감을 안고 조심스레 다가간 그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습니다. …》

《? …》

거친 수염이 되는대로 자란 험상스러운 얼굴의 주걱턱이 내들렸다.

《혹시… 면상씨를 찾아오시지 않으셨는지요?》

《그 량반 아직 드러누워있습디까?》

요꼬의 입에서 가벼운 경탄이 흘러나왔다. 이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간단없이 떨고있었다. 모진 풍파를 다 겪은 바다기슭 바위같아 보이는 사나이가 그에게는 더없이 친근하게 안겨왔던것이다.

《저… 제가 요꼬입니다.》

《요꼬? …》

사나이의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마주 오자 요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치극장앞에서… 정말 고맙습니다. … 이 은혜를 무슨 말로…》

《나를 알아볼수 없을텐데…》

《면상씨가 이야기했습니다.》

《실없는 사람같으니. 오늘도 학교에 나가지 않았나요?》

《몸이 불편한 모양입니다.》

《허튼수작이요! 가네단지 하는 왜놈훈장을 하내비만큼 여기니 구실하긴 글렀소.》

일본녀자앞에서 일본사람을 왜놈이라고 거리낌없이 욕하는 사나이의 기상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요꼬의 머리속에서는 일순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저의 집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난 왜인들 집에는 발길질을 하지 않소!》

《면상씨와 함께 오시면 가네다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드릴수 있습니다.》

《?! …》

사나이의 호기심을 느낀 요꼬는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되겠다고 타산하며 고개를 연방 기울여보이면서 인사했다.

《물러가겠습니다. 기다립니다.》

약속을 의미하는 말을 남긴 요꼬는 서둘러 돌아섰다. 무엇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요꼬의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저녁무렵 리면상을 달고 강무현이 앞서서 집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들모녀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두사람은 요꼬의 안내를 받아 큰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강무현이 집안을 둘러보며 《얼굴주름 펴지 못하겠나.》 하고 낮은 소리로 오금박았다. 따라서지 않겠다는 리면상을 강다짐으로 끌고왔던것이다.

부엌에서 방안으로 오가는 요꼬의 자태는 나는 새같았다. 두사람앞에 재털이와 담배를 가져다 놓고나서는 자기가 보는 화보들과 사진첩도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하나 성의를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는것이 알렸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찾자 노래나 부르듯 대답하며 달려나갔다.

이윽고 요꼬가 자개박이 큰상을 들여다 놓고 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차렸다. 제일먼저 상우에 놓이는것이 김치그릇이여서 강무현은 의아한 눈길을 리면상에게 보냈다. 침울한 상대가 고개만 가로젓자 킁킁 코소리를 울리며 방안을 공연히 둘러보았다. 조선음식들만 눈에 띄여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회나 절임 같은것은 보이지 않고 찜한 통닭, 남새볶음, 콩나물생채, 물고기구이, 록두지짐, 송편 같은것이다. 어머니가 들어와 앉자 요꼬도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전 매일이다싶이 꾸중을 들으며 살았답니다.》

강무현이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요꼬는 어머니를 훔쳐보며 속삭이였다.

《어머닌 무섭게 군답니다. 은인을 몰라보면 사람이 아니라는거지요. 그러니 제가 무슨 수로 찾겠나요. 정말 다행이예요. 된욕을 면하게 됐거던요.》

《욕만 먹으리, 매라도 들겠다.》

《이건 다 조선음식들인데 솜씨가 대단합니다.》

강무현의 그 말에 요꼬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내가 무슨 재간이 있겠나요. 이건 모두 요꼬가 조선음식점들에 주문해서 가져온거라오.》

요꼬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자기의 진정을 보인 안도감이 깃든 모습을 리면상은 처음 보았으며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송편 한개를 집어 맛을 본 강무현은 자못 놀란 소리를 냈다.

《아, 참기름냄새… 막 취하는구나. …》

《길건너 조선음식점이 료리를 잘해서 소문났어요.》

요꼬가 겨끔내기로 송편을 집어가는 두사람을 보며 말했다.

《구수하구만, 조선냄새가 나오. 이게 우리 음식맛이요.》

《시원한 메밀국수를 먹어봤으면…》

《면상, 우리가 지금 어데 와있나?》

그 소리에 요꼬와 어머니가 즐겁게 웃었다.

리면상도 속이 한층 풀려 강무현에게 말했다.

《내 말하지 않던가. 일본에도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사람들도 있다구.》

선불을 맞은 강무현이 처신을 잃지 않으려는것이 헨둥한 몸가짐을 하였다. 두주먹을 움켜쥔 그는 앉음새를 고치고나서 한숨을 내뿜었다. 묵묵히 리면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련민의 감정같은것이 고여났다.

《내 정신 좀 보지, 국수를 들여온다는걸 잊다니…》

어머니가 서둘러 말하며 일어서자 요꼬가 두사람사이에 나앉았다.

《가네다는 오늘 출장을 갔어요.》

두사람에게는 하등 상관이 없는 소식이였다. 리면상은 교육자로서의 가네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면 바랄것이 없었고 강무현은 그 인간의 위선만 밝혀주면 되였다. 그러나 요꼬라는 일본처녀의 속마음을 들여다볼수는 없는것이다. 변덕이 심한 이 녀자에게 한사람은 위구를 느끼게 됐고 다른 사람은 초면이나 같아 행여나에 기대를 걸었다.

《가네다는 음악가로서 명망도 높고 영향력도 있답니다. 인재를 귀중히 여기기도 하고 리용할줄도 알아요. 량면성에 있어서 그는 놀랄만 한 기질을 소유하고있지요. 그보다 알아두실건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이라는거예요. …》

리면상은 즉흥이 강하여 요꼬의 교묘한 말재주에 벌써부터 화가 나는것을 겨우 참았다. 인간의 성격을 론하라는가, 자선사업이라는것은 또 뭔가. 말머리를 뱅뱅 돌리니 가늠해듣기가 힘이 들었다.

《가네다는 자선기금을 세운 많지 않은 사람들중의 하나예요. 돈이 많거던요. 돈많은 음악가를 보셨어요? 그의 아버지 마사하루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광산왕이예요. 혹가이도를 비롯해서 일본 여러곳과 조선에도 광산을 가지고있어요. 가네다부자의 목적은 군수공업체를 창설하는거예요. 이건 이미 알려진 비밀입니다. … 그가 오늘 급히 출장을 떠난것은 가네다기업에 중요한 일이 생겼기때문일거예요. 가네다의 부인줄을 타고 나가면 일본정계에 가닿아요. 부인 나리다 도모미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도꾸가와막부를 종식시킨 일본제국의 개국공신들이며 현재 국회와 정부의 고위인물들입니다. 이것이 제가 알고있는 가네다의 개인자료예요.》

요꼬는 자기의 분석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네다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것은 들은 사람들의 견해에 따를뿐이라는 립장을 표시하는것이기도 하였다.

리면상은 지금까지 모르고 산 요꼬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다 경악하게 하는것은 가네다의 배경이였다. 얼마나 많은것을 모르고 살았던가. 음악학원을 다녔을뿐 학우도 벗도 없지 않았는가. 단순한 음악탐구라는 좁은 굴속에 볕이 찾아들리 만무하였다. 가네다의 선량함을 의심할 여지가 충분한 요꼬의 말이다.

《가네다… 도꾜에 와서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되는구만. 지난겨울 혹가이도 금광에서 조선인광부들의 파업이 있었네. 요구조건이래야 밀린 임금을 달라는것이였는데 광주가 경찰을 동원하여 탄압했어. 조선사람이 일본에 와서 망동을 부리면 살길이 없다는것을 보여주려고 한 억압만행이였지. 처참한 그 마당에 난데없는 광대무리들이 나타났네. 두드리고 켜고 질러대는통에 몸서리를 쳤어. 사람들은 파업이 실패한 좌절감보다 조선사람을 야료하는 그 음악에 미쳐버릴것만 같아 피눈물을 씹어삼켰네. 광대무리를 지휘한 놈이 바로 광주의 아들 가네다였어! …》

사실보다 더 무서운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실체다. 리해관계와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기에 인간은 각이하게 보이는 대상인것이다. 리면상의 머리속에 존재해온 가네다라는 인간의 진모를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볼수 있었다. 하지만 인식이란 집요한것으로서 한순간에 부정하기는 어렵다. 나는 무엇을 보고 가네다를 존경해왔는가. 단순히 스승이기때문인가. 그보다 맹목적인 견해는 없을것이다. 가네다의 호의와 동정이 고마와서였는가. 그는 나에게 남다른 관심을 돌리였고 재능을 헤아렸으며 성공을 기대했다. 그것만은 의심할바 없다. 가네다는 과연 무엇을 바라는가. 리면상의 사색은 가네다라는 인간앞에서 맴돌며 대답을 찾으려 했지만 머리속은 점점 창백해지기만 하였다.

두손을 움켜잡은채 고개를 붙박고 앉은 리면상을 넘겨보고있던 강무현은 《세상에 제일 어려운 일이 사람을 아는거고 그보다 힘든건 자기를 아는걸세.》 하고 마디마디에 의미를 담으며 말했다.

리면상은 이 자리에 요꼬가 앉아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자신을 알라고 이미전에 말한 처녀다. 너는 조선사람이라고. 뇌리에서 벙끗 섬광이 일자 사색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였다. 자기들은 일본처녀의 말을 듣고 무엇인가를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이것을 명백한 모순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만큼 머리속에 자리잡은 가네다는 숭배의 대상이였다.

《면상! 음악을 탐구하기 전에 민족을 알았어야지. 한마디로 자기를 말이야!》

착잡한 의식의 문을 두드리는 강무현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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