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7

 

도꾜의 화물역들에서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과중한 로동과 보잘것없는 돈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원료수송을 진행하였다. 로동보호시설도 보험도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몇푼의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품팔이군들속에는 조선인고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밤에만 일해야 하는 가혹한 조건에서 육체를 소모하며 생존을 유지하는 로동력이였다.

리면상은 지난해 겨울부터 다른 대학의 고학생들과 함께 화물역에서 밤마다 맞다들리는 일을 하였다. 일하는 장소가 가까운데도 있지만 로동이 고된것만큼 품값이 높았기때문이다. 서울에 있을 때 강무현과 막로동을 해본지라 힘든것은 이겨낼수 있지만 일본땅에서 겪는 고역이여서 몇배로 굴욕스러웠다. 새빨간 두주먹을 움켜쥔 젊은이들은 배우겠다는 단 한가지 희망을 이루려고 일본감독들의 갖은 욕설도 참아가며 원시적인 로동을 하였다. 세사람이 한방통의 석탄을 부리면 1원정도 벌수 있기에 초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쉬지도 못하며 일했다.

그날 밤은 눈까지 내렸다. 눈은 눈이지만 섬나라의 눈은 고약하기 이를데없었다. 내려와 쌓이는것이 아니라 땅에 닿기 전에 녹아서 질척거렸고 보잘것없는 옷들을 적셔놓아 추위로 몸부림치게 하였다. 일을 해야만, 허기진 육체의 열량을 끝없이 소모해야만 견딜수 있었으니 이런 날에는 감독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의 채찍이 감독을 대신해주기때문이였다. 하늘을 저주하며, 눈을 원망하며 뼈를 갈아 바치는 이런 날 밤은 고역을 일찍 끝냈다. 그러고나면 온몸의 힘은 다 빠져나가고 걸을 힘도 없어 서로 의지하고 비칠거리며 움직였다.

《면상군, 노래라도 부르라구. …》

음악학원을 다닌다는 리유로 하여 어느덧 의무감같이 되여 친우들의 처량한 심사를 위로하지 않을수 없었다.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못 먹고 못살아도 제 나라, 제땅에서 고생을 한다면 이다지 가슴이 찢어지지는 않으리라. 눈은 눈이라지만 눈같지 않고 한을 품게 하는 눈이였다. 아, 고향의 눈을 맞아보았으면 하는 못견디게 파고드는 생각으로 내리는 눈을 뿌리치며 소리가 나오지 않아 휘파람을 불었다. 막막한 허공으로 울려가는 그 소리를 따라 애절한 마음들이 향수에 젖은 노래를 불렀다.

 

푸른 산 저너머로 멀리 보이는

새파란 고향하늘 그리운 하늘

 

이역의 밤, 눈내리는 만리허공으로 날려보내는 망향가는 수난당하는 민족의 불우한 청춘들이 흘리는 피눈물이였다.

리면상은 요즘 화물역의 일감이 변변치 않아 우유배달을 시작하였다. 이른아침에 집집의 대문을 두드리는 구차한 일이지만 그마저 하지 않으면 하루 세끼 먹고사는 강보리밥에 된장국도 차례지지 않을판이다. 고서점에서 음악서적을 사자고 겨우내 석탄방통을 부리고 모아둔 돈을 하숙비로 물자니 아깝기 그지없었다.

아침부터 생존을 위하여 30리가 넘는 거리를 질주한 리면상은 지친 걸음으로 거처인 화교인우동집을 찾아왔다.

이무렵 가네다는 리면상의 음악실기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일본민요를 새롭게 편곡하게 하는가 하면 유럽의 고전명곡을 가지고 바이올린독주곡창작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심한 창작품을 자기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로 직접 연주까지 하며 결함을 지적해주었다. 이 과정에 리면상은 가네다의 음악관이 류다르다는것을 감수할수 있었다. 아시아적인데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하면 어딘가 일본사람들의 감정을 농후하게 고집한다는것도 알수 있었기때문이다. 점차 가네다 역시 일본사람이라는 공감은 하게 되지만 지도에서의 불만도 품게 되였다.

가네다가 모방을 반대하면서도 모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견해를 드러내여 리면상은 의견을 말하고싶어도 자기의 음악리론이 빈약한것으로 하여 침묵을 지켜오고있다. 책이라도 많으면 교수지도를 떠나 자체수업이라도 할수 있으련만 어데서 빌려볼수도 없는것이 음악서적이였다. 아마도 그런 책을 한권 사려면 한해동안 석탄방통을 부려도 어방없을것 같았다. 사람은 이상하다. 한번 욕심을 내면 기어코 가져보려고 헛된 고생도 하는것이다. 그가 바로 음악서적을 손에 넣겠다는 욕망으로 고역을 찾아다니며 치르고있었다.

련습실에서 가네다가 지시한대로 리면상이 일본민요를 편곡하고있는데 요꼬가 곁에 왔다. 우에노공원에 갔다온 후 이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친근해졌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교묘한 이 심술꾸러기가 딱 질색이지만 피할 도리도 없었다.

《샤미센이 마음에 들어요?》

《숙제를 할뿐이요.》

《수동적인 그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지요?》

뒤짐을 진채 몸을 흔들어대는 요꼬의 자세가 방자하게 보였다. 어떤 대답을 얻어내자는것인가. 샤미센은 아름다운 선률을 가진 악기요, 세계적인 악기대렬에 당당히 들어서게 될거요라는 말이 나올것을 바라는가.

《배우는 사람이기에 머리를 수그리는거요. 요꼬가 도와줄수도 있지 않소.》

눈을 동그랗게 뜬 요꼬가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지혜로운데요. 음악에만 주린줄 알았지요.》

리면상은 도전적으로 내뱉았다.

《조선사람이 일본음악에 심취되기는 힘들것이라는것쯤은 리해할수도 있지 않소?》

머리를 까딱해보이는 요꼬의 얼굴로 미묘한 잔웃음이 흘러갔다.

《면상씨를 지극히 아끼시는 가네다선생이 찾아요.》

리면상은 요꼬의 집요한 시기를 느끼며 가네다에게 갔다.

《면상군, 졸업기가 박두했네. 이건 내가 아니라 안해가 주는걸세. 기대를 표시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리면상은 자기앞에 놓인 책을 보는 순간 어린아이같은 환성을 지를번 하였다. 《세계명곡집》, 한권에 수십원을 하는 책이 놓여있는것을 본 그는 동화의 세계에 들어서는것만 같았다.

《선생님, 이건?! …》

《졸업작품을 훌륭하게 성공시키기를 바라네.》

리면상은 가네다의 방에서 나와 속으로 울며 걸었다. 하루 세끼 밥 한공기와 된장국에 절인 무우 몇쪽으로 끼니를 에우며 하숙비와 학비로 허덕이는 자기였다. 누가 나의 고통을 아는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도 아들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돈 한푼 보내주지 못한다. 사람의 만족이 이렇듯 작은것인줄은 몰랐다.

학원의 정원에는 정향꽃향기가 취하도록 풍기였다. 그속으로 걸으며 리면상은 아름다운 인간의 체취를 취하도록 느끼고있었다.

《면상!》

자기를 찾는 소리에 멎어선 리면상은 렴필재에게 손을 반갑게 쳐들어 보이며 걸음을 빨리했다. 도꾜에서 만난 그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렴필재였다. 의학공부가 아니라 음악에로 방향을 돌렸던것이다. 한손을 교복주머니에 찌른 렴필재는 해볕에 눈이 부셔 쪼프린채 바라보고있었다.

《가네다선생이 찾던가?》

《그래.》

리면상은 가네다의 호의인 《세계명곡집》을 자랑하고싶지만 렴필재의 차거워지는 체취를 느끼며 말없이 걸었다.

《그 책을 주던가?》

《음.》

짐작하고있었던지 렴필재는 고개를 건들 흔들어보이고나서 《역시 가네다는 가네다야.》 하고 불만이 섞인 말을 하였다.

《심술이 나나?》

리면상이 놀리듯 묻자 렴필재는 피식 웃으며 실눈을 짓고 고개를 돌리였다. 가네다로부터 여러번 학원규률을 지키라는 엄한 경고를 받은 렴필재였다. 최근에는 련습실에서 새장고를 두드리며 그 고유한 판소리로 조선민요를 불러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그 사실이 가네다에게 알려져 불량선인이라는 험한 욕까지 먹었다. 이국땅에서 만난 친우의 모습에서 리면상은 그전과는 다른 자유주의기분을 느끼였다. 배우는 학생의 자세와는 거리가 먼 행동에 대하여 말해주면 《반발심이 제절로 생기는걸 어쩌겠나. 조선사람이라고 업신여기는데는 가네다라고 다를바가 없다는걸 알았거던.》 하는 대답이 울려나왔다.

《가네다선생과 부인이 들놀이에까지 데리고 다닌다는 뒤소리가 돈다는걸 아나? 질투한다고 생각지 말라구. 너무 친분이 가까와보이거던. 보다는 그 까닭이 석연치 않단 말이야.》

렴필재는 리면상의 정통을 찌르고있었다. 우에노공원에 갔던 일이 학원내에 알려졌다. 요꼬가 자랑을 하고 다닌 모양이였다.

《사실 난 가려고 간게 아니네. 그 자리엔 요꼬도 있었지.》

《주의해. 그 일본처녀가 가네다의 두귀일수 있거던. 명백한건 일본사람들이 보내는 호의에 대해서 무엇이든 의심해야 한다는거야.》

두사람의 걸음이 멎었다. 그들의 앞에 뒤짐을 진 요꼬의 자태가 막아섰던것이다. 급해난 렴필재가 엉너리를 쳐댔다.

《요꼬, 한송이 백합처럼 숲속에 피였구만. 흐흐…》

《난 나리꽃이 아니라 튜립으로 불리우고싶어요.》

《우리 말을 엿듣고 선생에게 고발하려는게 아니요?》

《그건 남자들이나 하는짓이예요.》

요꼬는 사정없이 쏘아붙였다.

요꼬의 출현이 반갑지 않은지라 리면상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요? 요꼬, 우린 이야기를 나누던중이요.》

흰 운동화끝을 세우며 마주선 요꼬가 눈길을 내리깔며 몸을 흔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시작에 앞서 상대의 심리를 점쳐보는것이였다.

《부탁… 한가지, 청을 드릴게 있는데…》

《나한테?》

렴필재를 흘겨본 요꼬가 리면상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오늘 공연관람을 같이 가요. 명치극장앞에서, 저녁 6시!》

일방적인 요구인데 만날 장소와 시간까지 제기하는것이였다. 리면상은 옆으로 피하여 걸음을 옮기며 대답할 말을 찾았다.

《요꼬, 나한테도 그런 약속을 할수 있지 않소.》

《흠, 필재씨가 1등석을 예약했다는걸 다 알아요. 우리 같은건 셈에나 있겠어요?》

요꼬의 빈정을 들은 렴필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소리나게 쳤다. 리면상은 량해를 구하며 말했다.

《만약 가지 못한다면 리해하오. 고학생이라는걸…》

《동무들이 다들 가요. 도이췰란드 유명한 악단의 공연이예요.》

《나도 알고있소.》

도꾜의 청년들속에서 녀자동무와 짝을 무어 이름있는 극장에 가는것이 하나의 류행이였다. 색정을 부끄럽지 않은 일로 여기는 그와 같은 곳에서 야꾸자들이 녀자강탈행위를 서슴없이 하였다. 도덕의 무덤속에는 패륜이 화농하기마련이다.

극장출입은 리면상에게 있어서 가장 원하는 일이지만 이루기 힘든 소원이여서 유혹을 물리칠수 없었다.

관람표 한장이 쉽게 차례졌고 유명한 악단의 공연을 보면 배우는것도 있어 가려고 결심까지 하였으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화물역에 나가는 다른 대학의 고학생들이 찾아와 일감이 생겼다고 알려주었던것이다.

다음날 학교에 나간 그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가네다의 노기띤 얼굴에 놀랐다.

《신의를 버리면 사나이에게 무엇이 남는가! 함께 공연관람을 간 녀동무 하나를 지켜주지 못한 너희들에게 나는 침을 뱉는다! 너희들을 가르쳐온 내가 부끄럽다!》

요꼬가 망나니패에 걸려 변을 당할번 했다는 소리를 들은 리면상은 어제 저녁에 있은 일을 련상할수 있었다. 야꾸자들은 백주에도 륜간행위를 뻔뻔스럽게 해제끼는 무리들이다. 그런 불량배들에게 걸려든 요꼬의 신상이 어떤 강요를 당했겠는가. 동무들이라고 따라간 남학생들은 다 도망쳤는데 다행히도 한 청년이 야꾸자들의 손에 들어간 요꼬를 구원해냈다는것이다.

리면상은 자신이 당한 수치같이 여겨졌다. 요꼬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것이 비겁성같이 여겨지기도 하였다. 일본처녀지만 동창생이 아닌가. 서로의 반목은 있을지라도 자기 학교의 녀학생이 모욕을 당했다니 의협심이 치밀어올랐다.

하루수업이 끝나자 리면상은 가네다에게 승낙을 받고 요꼬의 집을 찾아갔다. 처음 가보는 길이여서 니혼바시에서 주소를 물어서야 겨우 집앞에 이르렀다.

주인을 부르기 전에 부엌문이 열리며 머리가 희기 시작한 녀인이 시름어린 얼굴로 나오다 리면상을 바라보았다.

《이 집이 요꼬씨의…》

《어데서 오는 누군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리면상이라고 합니다. 몹시 다쳤습니까?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에미 말을 안 듣는 계집이 화를 당하기마련이지요.》 하자 방안에서 《처음 오는 손님 세워놓고 미운 소리 그만하세요.》 하는 요꼬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듯 울려나왔다.

《망할 년, 속만 잔뜩 살아가지고…》

토방에 올라선 녀인이 미닫이문을 열어주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과일꾸레미를 든 리면상은 다다미방에 들어섰다. 요꼬는 창문쪽으로 놓은 침대우에서 벽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왼쪽 이마가 푸릿한것밖에는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 학교에 나가서야 사연을 들었소.》

《약속을 왜 어겼지요?》

《미안하오. 동무들이 찾아와서… 화물역에 나갔댔소. 나한텐 공연관람보다 하루를 사는게 더 바쁘오.》

자기가 어떻게 되여 이런 말까지 하는지 알수 없었다. 인간의 감성은 고정된것이 아니였다. 무서운 폭행을 당한 당사자앞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솔직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각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던것이다.

《만신창이 되였더라면 오늘 조간신문이 큰 사변이라도 일어난것처럼 떠들어댔을거예요.》

차반을 든 요꼬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안색이 밝았다.

《와줘서 고맙수다.》

《어머니, 마음을 놔도 되겠습니다.》

요꼬가 한숨까지 내쉬며 말했다.

《아유? 벌은 받아놓은거예요.》

딸의 말공부질에 화가 동한 어머니가 채머리를 떨어댔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네년을 그냥 두지 않았을게다!》

《옳아요.》

《이그? 엊저녁에는 무슨 날벼락인가 했수다. 하도 고마운 청년을 만났으니망정이지.》

요꼬가 청년에게 업혀 나타난것은 자정이 되여올무렵이였다고 한다. 옷이 찢겨져 벌거숭이같은데다 반정신 나간 딸이 낯모를 사람에게 업혀 들어왔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대충 사연을 듣고 알았을 때 청년은 벌써 갈 차비로 마당에 나가있었다. 은인이나 같은 사람이여서 인사나 차리자고 붙들어보았지만 허사였다.

《업고 오면서 물으니 어느 음악학원에 다닌다고 하던데… 그 학교가 어데쯤에 있는가요?》

정신이 없어 묻는 말에 대답하고나니 청년은 간 곳없이 사라졌다는것이다.

요꼬는 자기가 폭행을 당한것이 아니라 목격자인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힘이 장사였어요. 깡패들이 쩔쩔매며 도망치는 꼴이란…》

《어이구? 하늘이 도와줬지.》

《그 사람 꼭 찾겠어요.》

요꼬의 말에 한숨을 쉬고난 어머니가 손더듬으로 방바닥만 어루쓸다 리면상에게 차를 들라고 하고는 일어나 나갔다.

《일본의 비극은 말이예요. …》

요꼬는 두손을 반듯이 펴들고 무엇인가 찾을듯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자기들을 너무도 모르는거예요. 나 역시 일본사람이죠. 이 나라가 생긴 모양을 보았어요? 지도를 보세요. 신통히 태평양에서 뒤척이며 대륙을 삼키려는 한마리의 악어예요. 네토막난 몸뚱이를 겨우 이어놓고 필사적으로 자맥질해대는거예요. 먹이사냥을 떠났는데 과연 쉽게 삼켜낼가요?》

리면상은 요꼬가 지난밤에 당한 수치로 하여 아무 말이나 막 한다고 여기며 듣기만 하였다. 어덴가 이지러진 성격의 소유자다. 사고도 행동도 제멋대로인 거기에 이 처녀만이 가질수 있는 개성이 있다고 생각되였다. 이런 부류의 녀자들이 변덕이 심하며 자신을 억제하기 힘들어한다고 어느 소설에 씌여있는것을 보았다.

《안정하면서 치료를 받소.》

요꼬가 눈길을 쳐들었다. 무슨 말인가를 할듯 하다 그만두었다. 그는 하루밤사이에 대양을 건너 뭍에 이른 심정으로 생활을 새롭게 대하고있었다. 자기를 구원해낸 청년이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리면상은 화교인이 경영하는 우동집 고미다락에서 하숙하고있었다. 자식없는 늙은 내외가 괴벽하기는 해도 린색한편은 아니였고 인정을 바랄 사람들은 못되지만 시끄럽게 구는 일은 없었다. 이따금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언제 자기의 조상이 이주하여왔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사시절 마고자를 입고 다니였다. 할머니는 대나무걸상에 앉아서 신창을 만드는 바느질하다 끄덕끄덕 조는것이 하루일이고 할아버지가 품파는 젊은 녀자와 작은 식당일을 맡아하는데다 자기 전에는 로친의 발까지 씻어주었다. 그것도 중국사람들의 풍속인지.

《젊은이, 호궁을 켤줄은 모르나?》

귀가 밝지 못한 할머닌데 바이올린소리가 나면 리면상에게 묻군 하였다. 악기이름은 알지만 탈줄은 잘 모른다고 하면 《일본사람들은 석줄로 재간을 부리지만 우린 두줄을 가지고도 못 내는 소리가 없다네.》 하고 흥흥거리며 자랑했다.

리면상이 우동집 뒤뜰에 난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늘진 곳에 앉아서 졸고있던 할머니가 눈을 뜨며 맞아주었다. 한손을 내저으며 《콰이 콰이디?》 하는데 너무 들어서 빨리 올라가라는 말이기에 눈인사만 해보였다. 마구간같은 창고에 들어가면 고미다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다. 한발을 옮길 때마다 천반이 움씰거려댄다.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다락방에는 다다미대신 때오른 거적이 깔려있었다. 주인도 없는 방안에 웬 사나이가 큰대자로 나가누워 태평스럽게 코까지 골아대고있어 놀래였다. 천정이 낮아 허리도 펴지 못한채 두손으로 무릎을 짚은 리면상이 불청객을 내려다보았다. 자기의 책들을 되는대로 모아 목침처럼 베고 누운 사람은 털속에 묻혀 얼굴을 가려보기 어려웠다.

《여보시오.》

나직이 불러보았으나 단잠에 들어 대답조차 안했다.

《도대체 누구시오?》

화가 치밀어 큰소리를 쳐대자 코고는 소리가 멎었다. 분명 눈을 뜬것 같은데 일어날념을 안한다. 한낮에도 초불을 켜야 할만큼 어두운 방이였다.

《여기가 임자 굴인가?》

《응?! …》

《여기서 가네다의 제자가 수도하는가 말일세.》

《…》

《네가 면상이라는 녀석이 옳으냐? 의리도 없는 놈같으니!》

《아니?! … 자네가, 무현군! …》

한덩어리가 된 두사람은 장작 패듯 두들기면서 울고웃어가며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격한 소리만 내질렀다. 강무현은 친구를 억센 두손으로 잡아 버쩍 쳐들며 일어서려다 천정이 내려누르는통에 나가넘어졌다.

《흣, 하하하… 전보를 쳤더니 자네가 일본에 건너온지 1년이 넘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찾자구 헤매다닌게 오늘에야 이 굴을 찾았어! 흣, 하하하…》

호걸스러운 웃음소리를 들으며 리면상은 눈물을 훔치였다.

《은현인… 동생을 찾았나?》

《고생하지? 밥술은 어떻게 뜨나? 공부는 잘되구?》

한시에 만단사연을 다 알자고 헤덤벼대며 물으니 대답을 할 사람이 없어졌다.

《잠간 기다려주게.》

자기가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 리면상이 사다리가 무너지게 뛰여내려갔다. 잠시후 젊은 녀자와 함께 제법 음식을 차려들고 나타나자 강무현은 주먹으로 무릎을 치며 웃어댔다.

《아, 하하하. 깽깽이샌님이 발전했어.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알거던.》

《이쯤이야 해야지. 교즈, 군도미, 닭고기버섯볶음… 구미가 돌지 않나?》

《이놈의 굴속에 사람이 살고있었다는걸 알았네.》

《배갈! 어떤가?》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잃을번 한 정을 다시 찾은 기분으로 마셨다. 서로 안주를 입에 넣어주며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타향만리에서 친우를 만난 감회로 눈물이 글썽하여 물었다.

《은현인? …》

《떠나올 때 옥련이를 만났나?》

《묻는 말부터 대답해야지.》

《아니, 그… 녀자, 어떻게 지내고있나?》

강무현은 제 고집만 내세웠다.

《난 떠나올 때 알리지도 않았네.》

인사라도 나누고 헤여지고싶었지만 만나게 되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그의 리해가 불만스럽기때문이였다. 자기의 앞날에 대한 확신이 없는 리면상에게 있어서 진옥련을 만나는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부담이기도 하였다. 안겨줄것은 음악에 대한 회의밖에 없기에 떠난다는 짤막한 편지를 남겼을뿐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강무현은 고개를 짓수그린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가를 골몰하는게 알렸다.

《잘했네. 미련을 가지는것보다 더한 바보짓은 없거던. 미련이라는건 유혹에로 안내하는 사환군이나 같다네. 깨끗이 잊어버릴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해. 험악한 세상을 동정으로 살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걸세.》

숨 한번 쉬지 않으며 울부짖어댄 강무현은 단숨에 술을 삼켜버렸다.

《은현이의 행처를 알아냈나?》

《공부하는 재미가 어떤가?》

제길, 끝까지 대답을 피할 심산이다. 불길한 예감을 받아안은 리면상은 더 묻기를 그만두었다.

《그런대로 근근히 하지 뭐.》

《일본사람밑에서 배워도 조선사람이라는걸 잊어선 안돼.》

말꼬리에 그루를 친 강무현은 술잔을 움켜쥐며 바라보았다.

《나 같은걸 동정해주는 사람도 있더구만.》

벽에 기대여앉은 강무현이 코투레질을 하며 말했다.

《하긴 나 역시 어제 밤 동정이 가서 일본처녀를 살려주었네. 흠, 내가 만일 저희 족속들에게 매질을 당한다면 불쌍하게 여겨줬을가? 아니, 아니야! …》

강무현은 제가 말하고도 화를 냈다.

일본처녀를 살려주었다구?! 그게 혹시 요꼬가 아닐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쳐드는데 대답은 절로 차례졌다.

《그 처녀가 음악학원 학생이더군. 알아봤더니 면상의 꼬리가 잡히였네. 자네가 가네다라는 일본놈의 수제자가 되였다는것도 알아냈지. 어때, 루빵같이 보이지 않나?》

어떻게 되여 자기 하숙방인 이 고미다락에 네활개를 펴고 드러누워 코까지 골아대며 잤는가를 알수 있었다.

《그렇게 되였군. 난 요즘 행운에 대한 생각을 할 때가 있네.》

《가네다의 덕을 볼 궁리겠지?》

《일본에도 좋은 사람이 있을수 있지 않나.》

고개를 숙인 강무현은 거친 숨만 들이쉬고 내뿜었다. 그의 가슴은 금시 고함을 터뜨릴듯이 오르내리였다. 술잔을 움켜쥔 손이 우둘우둘 떨어댔다.

《예술은 인간에게 선량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심어주는거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악한짓을 하지 않아.》

《그만두지 못하겠나?!》

뜻밖에 울려나오는 울분으로 하여 리면상은 아연해졌다. 술기운이 오른 강무현의 눈동자가 험악하게 이그러져 보기조차 무서웠다.

《자네 제정신을 가지고 사나, 엉? 왜놈의 땅에 와서 두해가까이 살면서 얼이 빠져나갔는가 말이야?!》

《? …》

《가네다?! … 나한텐 짐승의 이름으로밖에 들리지 않아!》

리면상은 강무현의 기상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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